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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마불교학당 원문보기 글쓴이: 문문
대일여래 | |
밀교인물사상사(1) 선 상 균(진각종 포교부장) 1. 서 밀교의 특징은 그 가르침이 석존의 것이 아니라 대일여래의 가르침이라는데 있다. 대일여래는 역사적인 존재가 아니라 진리 그 자체를 구체화 한 부처님이다. 바꾸어 말하면 법 그자체를 인격화 한 것이다. 그래서 밀교의 법은 스승이 제자에게 직접 전하는 사자상승 (師資相承) 의 형식으로 전하여졌다. 그것은 밀교가 대일여래의 가르침을 전한다는 점에서 신비주의적이며, 실천을 중시하는 데서 비롯된다. 신비적 체험에 기반을 갖는 밀교는 그 전달을 필수(筆受)에 의하지 않고 면수(面受)에 의하는 것을 불가결의 조건으로 한다. 그러므로 밀교에서의 법 전수의 계보를 중요시하고 있다. 때문에 밀교의 많은 유파에서는 나름대로의 상승계보가 있다. 이제 이러한 상승계보에 대해서 살펴볼까 한다. 2. 대일여래 1) 대일여래의 성립 대일여래란 범어의 마하바이로 자나 타타가타를 번역한 것이다. "마하"란 말은 크다 (大)는 뜻을 나타내고 "바이로자나"는 널리 비춘다는 뜻으로 태양에 비유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하바이로자나를 대일 (大日) 이라 부르는 것이다. '마하바이로자나불' 이란 말이 범어의 음역 (音譯) 으로서 마하바이로자나타타가타의 의미를 나타내는 말이다. 밀교의 대일여래 즉 비로자나여래는 화엄경의 비로자나불을 계승 발전시킨 것으로 이러한 비로자나여래가 밀교와 교주로서 완전히 그 위치를 굳힌 것은 밀교의 중기 즉 7세기경에 성립한 「대일경」과 「금강정경」에서 이다. 몇몇 소승경전 등에서도 태양을 비로자나라고 부르기는 했어도 이것을 부처라고 본 것은 「화엄경」이 처음이다. 그러나 이러한 「화엄경」도 그 주인은 석가모니불이었다. 그런데 밀교의 「대일경」과 「금강정경」에서는 설법주(說法主) 가 석존이 아니라 대일여래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밀교경전인 「대일경」과 「금강정경」 은 역사적 실존인물인 석존의 가르침을 적어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를 초월한 진리 그 자체를 구체적인 경전형식을 취하여 설명한 것이라 할수 있다. 이같이 경전과 교주와의 관계가 종래의 견해와 달라지게 되어 필연적으로 등장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새로운 불격을 가진 교주로서의 대일여래는 밀교의 개조(開祖)로서, 부법(付法)의 제일조 (第一祖)로서 위치하게 된 것이다. 2)대일여래의 삼덕(三德) “대일”이란 말은 “마하비로자나불”의 의역 (意課) 이라고 한다 함은 앞에서 밝힌 바와 같다. 그런데 이러한 역어(譯語)를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선무외삼장 (善無畏三藏)이다. 그는 그가 번역한 「대일경」에서 대일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의 저서 「대일경소」에서 “대일”이란 역어를 쓰게 된 이유로 세가지 점을 밝히고 있다. 즉 제암변명(除暗遍明), 능성중무 (能成衆務), 광무생멸 (光無生滅)이 그것이다. ① 제암변명 - 이것은 대일여래의 지혜의 덕을 나타낸 것으로 태양빛은 한쪽만을 비추므로 어둠과 밝음. 낮과 밤의 차별이있으니 여래의 지혜 광명은 모든곳에 가득차 있기 때문에 안과 밖의 구별도 없이 세상의 모든 곳을 골고루 비추어 주기 때문에 세간의 태양보다는 더 훌륭하고 크다는 뜻에서 대일(大日) 이라 한다. ②능성중무 - 대일여래의 자비의 덕을 나타낸 뜻으로 태양 빛이 땅위의 모든 동식물을 골고루 평등하게 비추어 각각의 본래 기능을 충분히 발휘케 하여 성장시키는 근원이 됨과 같이, 여래의 자비광명은 일체중생을 차별없이 평등하게 비추어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불성을 발휘케 하므로 대일이라 하는 것이다. ③광무생멸 - 이것은 대일여래가 나타내는 진리의 영원불멸성을 나타낸 것으로, 태양이 세상을 비춤에 멸함이 없이 영원한 것과 같이 대일여래 또한 시방삼세에 고루 미쳐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영원하고, 생멸(生滅)이 없이 오랜 옛날부터 영원한 미래에 이르기끼지 항상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함을 말하는 것이다. 3) 대일여래의 지혜 여래삼덕(三德)중 제암변명은 대일여래의 지혜를 나타낸다. 지혜는 자비활동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만일 지혜를 전제로 하지 않는 자비활동은 올바르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본래와 목적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일여래의 지혜는 현실세계의 우리들의 인식작용인 식(識) 을 그대로 가치전환한 것으로 이러한 현실세계의 식이 절대세계의 지혜로 질적인 변화를 이루는 것을 전식득지(轉識得智) 란 말로 표현한다. 밀교에서는 이러한 대일여래의 지혜를 대원경지 (大圓鏡智) , 평등성지 (平等性智), 묘관찰지(妙觀祭智), 성소작지 (成所作智), 법계체성지 (法界體性智) 의 다섯가지로 설하고 이를 오지 (五智) 라고 하고 있다. 이 오지 (五智) 에 관해서 「비장기 」(秘藏記)에서 물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즉 대원경지는 물의 성질이 밝고 고요하여 모든 색이나 모습이 그 위에 나타남과 같을 것이며, 평등성지는 모든 물건의 그림자가 그 물에 비추어짐에 높낮이가 없이 평등한 높이를 유지하는 것과 같으며, 묘관찰지란 수중(水中)의 모든 색상차별 (色相差別)을 비추어 보이는 것과 같으며 그 물이 도처에 편만 (遍滿) 한 것은 법계체성지에, 일체의 유정 비정 (有情非情)이 물을 먹고 성장하는것을 성소작지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대원경지란 대일여래의 지혜를 거울에 비유한 것으로 현실세계의 모든 것이 그대로 비추어 나오는 지혜이며 평등성지란 현상세계에서 존재하는 모든것은 서로 다른 것 같이 보이나 그 본질에서는 평등하다고 하는 지혜며 , 묘관찰지란 일체의 모든것이 평등하면서도 특수성을 가진다고 보는 지혜이며, 성소작지란 지혜의 실천적 능력을 통하는 것으로 인간의 육체와 경험을 통하여 발동되는 지혜이다. 법계체성지란 바로 밀교 독자적인 지혜로서 지혜의 본체이며 다른 4가지를 총괄하는 지혜이다. 이것은 보편적이면서 영원한 절대자로서 절대적 세계를 본질로 하는 지혜이다. 이리한 오지는 구체적으로 5불의 모습으로 표현 되는데, 각각 차례로 아축불, 보생불, 아미타불, 불공성취불, 대일여래의 모습을 취하게 된다. 4)사종법신(四種法身) 제암편명(除暗遍明)이 대일여래의 지혜라면 능성중무(能成衆務)는 그의 자비이다. 물론 이러한 지혜와 자비는 둘이 아니다. 지혜가 곧 자비이며 자비가 곧 그대로 지혜인 것이다. 단지 안과 밖의 차이 만이 있을 뿐이다. 즉 자증(自證)의 세계에서 보면 지혜이고 외용(外用)의 세계에서 보면 자비인 것이다. 때문에 자비의 체(體)는 지혜이며 지혜에 의해서만이 비로소 자비의 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혜와 자비는 불가분(不可分)의 관계에 있다. 그런데 대일여래의 지혜의 면에서 오지(五智-법계체성지, 대원경지, 평등성지, 묘관찰지, 성소작지) 와 오불(비로자나불, 아축불, 보생불, 아미타불, 불공성취불)이 나타나는 것이라면, 자비의 면에서는 대일여래가 네가지 법신 즉 사종법신(四種法身)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종법신은 자성법신(自性法身), 수용법신(受用法身), 변화법신(變化法身), 등류법신(等類法身)의 넷이다. ① 자성법신 자성법신이라고도 하고 또한 다만 법신이라고도 한다. 현상계에 존재하는 일체사물의 본래모습 곧 자성(自性) 자체에서 이뤄지는 불신(佛身)으로 시간적, 공간적인 모든 제한을 초월하는 존재이며 인격을 갖추고 있다. 이 자성법신을 물질적인 원리에서 이법신(理法身)이라 하고 정신적 원리에서 지법신(智法身)이라 하여 둘로 나누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理)와 지(智) 즉 물질과 정신은 유일하고 절대적인 법신불을 임시로 나누었음에 불과한 것으로 이 둘은 상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늘 불가분의 관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② 수용법신 자성법신의 절대적인 경지에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현실세계에 나타난 불신이다. 그러므로 이 수용법신은 자성법신의 상대화(相對化)된 모습이다. 곧 절대자성(絶對自性)의 경지에서 상대의 세계에 나타난 불신을 말한다. 수용법신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자수용법신 (自受用法身)과 타수용법신(他受用法身)이 그것이다. 자성법신이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하여 절대적인 경지를 자각하고 체험한 것을 자수용법신이라 하고 이타(利他)를 위하여 스스로 체득한 경지를 다른 이에게도 체험케하려고 하는 것이 타수용법신이다. 그러나 이 타수용법신의 설법은 우리들과 같은 현실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고 십지(十地)보살이라고 하는 상당한 수행을 쌓은 심안(心眼)이 열린자를 대상으로 한다. ③ 변화법신 현교에서 말하는 화신 또는 응신에 해당한다. 지전(地前)의 보살이라고 하여 보통 수준의 종교적 소질을 가진 자에 대하여 각기의 능력에 응한 법을 설한 불신이다. 예를들면 이 세상에 몸을 지고 나서 깨닫고 가르침을 펴고 입멸하는 불신을 말한다. ④ 등류법신 상대방과 같은 모습이 되어 법을 설하는 불신이다. 즉 부처님의 모습으로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는 것이 아니라, 관세음보살의 33신설법(三十三身說法)과 같이 9계(九界 -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 성문, 연각, 보살)의 중생의 모습과 같은 형태로 중생을 제도하는 불신이다. 깨달음으로 인도하려는 상대와 같은 모습이 되어 불법으로 인도하려는 것이다. 본래 종교적인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자에게 대하는 방법이다. 이상의 사종법신은 그 주체가 항상 대일여래이기 때문에 그 모습은 비록 여러가지 형태이지만 그 내용은 대일여래로서 하나인 것이다. 이것은 일불다신론(一佛多身論)과 동시에 다불일신론(多佛一身論)의 특성을 갖고 있는 밀교의 불신관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⑤법신설법 대일여래 즉 법신붙을 현교에서는 우주진리로서의 법 그 자체로 보기 때문에 오로지 이치(理致)로써만 존재할 뿐 빛깔도 없고 따라서 설법도 할 수 없다고 한다. 소위무색(無色), 무형(無形), 무설법(無說法)이다. 그에 대하여 밀교에서는 법신부처님이 스스로 어떠한 빛깔과 모습을 취하여 인계나 설법을 하신다고 한다. 그것은 사종법신설에서도 잘 나타나있는 바와 같이 밀교에서는 모든 일들이 바로 절대적 세계 그것이기 때문이다. 산천초목이 다 본질적으로는 진리며. 그것이 대일여래라고 하는 인격을 가지고 모든 곳에서 모든때에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그것을 우리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부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태양이 언제나 우리들을 비추어도 눈먼 자는 보지 못하고 천둥치는 소리를 귀먹은 자기 듣지 못함과 같은 것이다. 우리 쪽에서만 확실히 사물의 본질을 여실(如實)하게 뚫어볼 수 있는 눈만 가진다면 현실세계의 모든 일과 그 밖의 일어나는 일들이 다 법신설법으로써 그것을 음미할 수 있는 것이다. 눈을 뜨고 깨어 있는 사람은 언제나 그것을 알아듣고 그 맛을 새길 수가 있는 것이다. 대일여래는 이와같이 항상 비밀한 벌을 설하고 있으나 그것은 대일여래 스스로의 줄거움을 위한 것이어서 거기다가 특정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며 일정한 청중을 앞에 있게 한 것도 아니다. 목적도 없을 뿐더러 그 효과를 기대한 것도 아닌 설법이다. 그러므로 밀교가 퍼지기 위해서는 대일여래의 영원부단한 설법을 파악하여 그것을 스스로의 종교체험속에 살리는 자 즉 법을 받는이가 먼저 필요하다. 또 다음으로 그 체험을 전하여 현실세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내 보여서 사람들에게 이익하게 하는 아사리의 출현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밀교의 전승(傳承)에는 대일여래의 법을 받는 이로서 금강살타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
첫댓글 나무 금강살타보살 나무 금강살타 보살 나무 금강살타보살,,,,,,,나무 대행 보현연명 보살,,,,,,,<<>>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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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지심귀명 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