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초등학교 백일장 때로 기억을 되돌려 보자.
그 때 나는 무엇을 했던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얀 원고지에 재빠르게 시를 적었을 것이다. 모처럼 수업이 없는 백일장 날, 재빨리 시를 써서 선생님께 제출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빨리 함께 놀자는 친구의 손짓이 끌렸기 때문이었을까? 시쓰기는 그저 종이에 연필을 대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짧게 적으면 끝나는 나와 매우 친숙한 문학 장르였다. 하지만 내가 성장하며 어느 순간부턴가 ‘식은죽’이었던 시가 부담 백배 학문으로 변해 버렸다. 시에 숨겨져 있는 의미는 암호 해독보다 어려운 일이 되었고, 그러한 암호를 일련 번호에 맞추어 나열해야하는 시쓰기는 더 이상 나와는 거리가 먼 문학 장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골치 아픈 시쓰기! 하지만 낭만 가득한 시쓰기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바로 오늘의 주인공 송수권 선생님의 재능기부 현장을 방문하면 된다!
2011년 여름, 7월․8월 매 주 목요일마다 용봉동 작은 도서관에서는 송수권 시인의 ‘시 창작 실기론’ 특강이 열린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시다. 하지만 강의 시간 내내 ‘깔깔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곳이 골치 아픈 시쓰기를 배우는 곳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송수권 시인께서 사람들에게 쉬운 시쓰기 비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 분명하다. 화려한 문학상에 버금가는 시인만의 시쓰기 비법을 이해하기 쉽게 안내해 주시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송수권 시인은 강의 내내 “시쓰기는 골치아픈 것이야! 시쓰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야!”라고 외치셨다. 게다가 첫 시간, 우리는 강의 수강을 위해 문사철의 이야기가 꽉꽉 채워진 인문학 시험까지 보아야 했다.
영화 ‘시’에 나온 것처럼 보통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수업이 진행될 때에는 지역 주민의 정서 함양을 목표로 하며, 행과 연이 나누어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형적인 자유시 형태의 시쓰기를 배우게 된다. 하지만, 송수권 시인의 특강은 거기에 멈추어 있지 않았다. 과거의 전통적인 시쓰기 방식에서 나아가 오늘 이 시대에 젊은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새로운 시쓰기 방식까지를 접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의 장을 마련하셨다.
- 깔깔깔 시창작 실기론 1 : 현대시는 비평의 정신! 산문의 정신!
접대란 말 아셔요. 주인이 손님을 깍지게 접어 모시는 것을 말하지요. 접대나 대접이나 그게 그것 아녀요. 그런데 이 틈새를 파고드는 말이 있어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안동 가서 들은 얘기인데요. 도산서원 사랑방 툇마루에서 내친구 권오삼과 함께 깍지베개를 하고 누워 배고픈 뻐꾸기 소리를 듣다 들은 이야기인데요. 서원 앞을 휘돌아 나가는 돌머리〔河廻〕 물빛이 왜 저토록 아득한고 했더니 그것이 선비골에만 있는백비탕 때문이라는군요. 오죽 가난했으면 상(床) 위에 펄펄 끓는 물 한 대접이라니요. 뻐꾸기 소리도 구름빛도 하늘빛도 시래기죽이 되어 뜨거운 김이 오르고 있는 그 물 한대접이라니요. 돌계단 앞 모란꽃이 뚝뚝 지고 있는 그 사이 뻐꾸기 울음소리가 간간이 끊기고 있는 그 사이, 친구로부터 점심은 뭘 들거냐고 해서 서원 입구에 있는 ‘영계백숙집’ 하려다 말고 영계와 백숙집 그 사이에서 입 꽉 틀어 막았지요.
-송수권, 「돌머리 물빛」 -안동 백비탕(제 11시집에서)
송수권 시인의 작품을 한 편 읽고 난 후, 수강생들에게서 질문을 쏟아졌다.
“선생님, 이것도 시인가요?” “이것은 산문 아닌가요?”
송수권 시인의 설명은 간결하다. 현대시는 운문이 아닌 산문으로 쓰여진다고 한다. 시의 정신이 현대에 들어서는 노래의 체계에서 비평의 체계로 넘어와 산문화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쓴 수필은 시가 아니라고 한다. 소리내어 읽어보면 시적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 현대시는 음악(가락)이 아닌 이미지가 앞서는 시대이다. 따라서 현대시에서도 더 이상 행갈이를 이용한 운율의 효용을 높이기 보다는 이미지를 선보이는 산문시를 쓰게되는 것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산문으로 시를 쓴다. 과거의 유행가들은 토막내어 불렀지만 현대는 통째로 쓰여진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어진다.
수강생들 사이에서 작은 들썩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시창작 강의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내용이었던 것이다. 시는 모두 행갈이를 명확하게 하여 행과 연을 구분해야 되는 줄 알았는데, 함축을 최대의 미로 여겼던 시가 이러한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 매우 놀라운 사실로 다가온 것이다.
- 깔깔깔 시창작 실기론 2 : 현대시는 라거법!
“선생님, 그런데 제가 어디선가 들어 보았을 때, 시에서는 문장부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들었는데, 선생님의 시에는 문장부호가 다 있네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요?”
송수권 시인의 명답이 이어졌다. 발라드 식의 시는 이제 구시대의 시가 되었다. 현대시는 역동적인 락 음악처럼 쓰인다. 즉 현대시는 발라드법이 아닌 라거법으로 쓰이는 것이다.
구세대는 종결어미, 연결어미를 찍어 줘야 쉬어갈 틈을 주고 글을 정리해 가는 것 같지만 신세대는 그렇지 않다. 그들의 시는 쉬지 않고 쭉 흘러간다. 빠르고 격한 것을 좋아하는 신세대 들은 문장부호의 생략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단어들의 띄어쓰기도 생략하고, 앞에서 언급된 것처럼 문장의 행갈이도 생략해 버린다. 그래서 산문시가 더 대두되는 것이다. 물론 시는 장르의 특성상 매우 함축적인 글이다. 따라서 문장부호를 사용할 때는 매우 치밀하게 계산하여 배치해야 한다. 점 하나, 쉼표 하나에 의미를 부여해서 말이다.
뿐만 아니라 발라드 어법과 달리 라거법은 매우 직설적이다. ‘나도 새처럼 날고 싶어!’라는 말 대신 바로 ‘고잉 고잉 고잉’을 내뱉는 것이다. 이러한 라거법은 언어파괴, 장르파괴, 형식파괴 뿐만 아니라 시의 내용 파괴도 불러일으킨다. 광기의 언어로 변하여 폭력적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시의 언어도 혁명시대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에이, 선생님 그래도 저는 행갈이가 된 전통적인 시가 더 마음에 와닿는 것 같아요. 적당히 쉬어갈 수도 있고”
“그러니까, 발라드 법과 라거법을 절충해야지! 정 하기 싫으면 그냥 집에서 골치 안아픈 시만 쓰면 되지! 그냥 그것도 어려우면 ‘시창작실기론’책을 처음으로 5번만 정독해! 그래서도 시인이 안되면 문제가 있는 것이여!”
“아이, 선생님 말로는 참 쉽죠~잉! 5번 읽었는데도 시인 안되면 챙피하니까 4번만 읽어야 겠네요!”
“깔깔깔~!”
- 깔깔깔 시창작 실기론 3 : 시를 잘 쓰고 싶다면, ‘도둑질을 해라!’
“선생님, 그러면 시를 잘 쓰려면, 여러번 읽고 좋은 시들을 모방하면 되나요?”
“ 능수능란한 자는 훔쳐 먹고 서툰자는 모방한다!”
역대 시인들 중 가장 큰 도둑놈은 성경을 제대로 훔쳐 먹은 윤동주라는 말에 또 한번 도서관이 깔깔깔 웃음 소리로 가득찼다.
장자의 ‘장천하 어천하’라는 선조의 말씀도 있었다. 천하를 돌라서(훔쳐서) 천하게 감추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시험을 보면서 컨닝을 할 때에도 멍청한 애들은 답을 보고도 엉뚱한 답을 쓰지만, 똑똑한 아이들은 한글자만 보고도 더 훌륭한 답안을 만들어 작성하지 않는가! 전자는 서툴게 모방을 한 경우고, 후자가 능수능란하게 훔쳐 먹은 자이다.
춘향이가 맘보바지를 입는 것을 요구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모방을 생각하기 보다 어떻게 하면 싹 도둑질을 할까를 염두에 두고 관찰을 해야 한다고 한다.
"선생님, 저는 너무 착해서, 시 쓰기는 글러 먹었네요!"
“깔깔깔~!”
분명 송수권 시인의 ‘시 창작 실기론’ 특강에서 만난 시쓰기는 절대 식은죽이 아니었다. 오히려 잘못 먹었다가는 입천장이 모두 훌훌 베껴질 뜨겁디 뜨거운, 어려운 시쓰기였다. 하지만 그 시쓰기에는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시대의 흐름에 편성할 수 있는 힘이 실려 있었다. 아줌마라고, 아저씨라고 발라드식의 구시대의 시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미래파라 지칭되는 젊은 사람들의 라거법 시에도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은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 송수권 시인께 배운 시창작 이론을 글 위에 실천해 볼 시간이다!
젊은 기운, 라거법이라는 무기를 장착하여 멋지게 도둑질을 하러 떠나보자!
■ 행사개요
- 행사명 : 재능기부 문학작가 송수권 시인, <시 창작 실기론> 특강
- 일 시 : 2011년 7월 14일 ~ 8월 25일 (매주 목요일 10:30~12:30)
- 취재일 : 2011년 7월 14일, 7월 28일, 8월 4일.
- 장 소 : 용봉작은도서관(북구 설죽로 202번길 37)
- 주최/주관: 문화체육관광부/광주북구일곡도서관
■ 강사 소개
- 송수권 시인
- 1940년 전남 고흥 출생
- 고흥중, 순천사범, 서라벌예대 졸업
- 1975년 ‘문학사상’ 신인상 <산문에 기대어>외 4편으로 등단
- 시집 <산문에 기대어> : 11시집 <언땅에 조선매화 한그루를 심고>
- 기타 30여권 저서
- 소월시문학상, 영랑문학상(제1회), 정지용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월간문학, 김동리 문학상, 한민족 문화예술대상(2008), 지리산인산문학상(2010), 만해문학상(2010) 등
-국립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2005. 8. 31 정년), 현재 명예(강의) 교수
■ 취 재: 정다운(ilovewrite@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