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종중(광평대군파 송절 장운공종중)의 유래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의 7세손으로 '간정공 이유홍'할아버지라는 분이 있습니다.
간정공은 '종'자 돌림의 12대조 할아버지입니다.
간정공께서는 선조임금시대에 과거에 급제하여
임진왜란등을 겪으면서
어전회의를 준비하는 직책을 시작으로 홍문관부제학, 평안도암행어사, 승정원부승지, 영천군수, 죽주부사를 지내는 등
선조와 광해군의 신임이 두터웠으나
당파싸움에 휘말려서 귀향을 가게 되어 귀향처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사후 100여년 후에서야 복권이 되셨으니 그 아들들의 고생과 낙심은 짐작이 갑니다.
간정공의 네째 아들이 우리종중의 이름에서 보이는 '장운공'할아버지입니다.
당시에 장운공께서는 포천에 살고 있었습니다.
장운공께서 아버님인 간정공의 귀향생활과 타향에서 돌아가심을 보고 깊이 낙심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낙심을 지켜보던 다섯째아들인 '중은'할아버지께서
아버지인 장운공을 모시고 청주로 이사하여 송절에 새터전으로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중은할아버지께서 장운할아버지를 모시고 청주에서 살면서 터전을 잡은 것이
우리 종중이 이곳에 뿌리를 내린 연유입니다.
그분들은 간정공의 고초를 직접 함께 겪은 분들이기 때문에
후손들에게는 벼슬을 하지 말것을 당부하였다고 합니다.
제 고조할아버지이신 의태공께서는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할아버지들의 유지를 받아들여 끝내 벼슬길에 나서지 않으셨습니다.
이상이 우리 종중이 청주에 뿌리내리게 된 역사입니다.
할아버지들의 시대에는 당파싸움 등으로 큰일을 하는 것이 몹시 위험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우리나라도 민주주의국가이면서 선진국으로 당당한 나라가 되어있습니다.
우리종중원과 후손들은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들어 세상사람들이 편하게 이용하게한 그 뜻을 빋들어
마음껏 뜻과 재주를 펼쳐서 세상을 이롭게 하여주기 바랍니다.
종중은 그런분들을 위해서 응원과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아름답고 정다운 명문가문을 우리 함께 만들어 갑시다.
2022. 8. 26.
종중회장 이 범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