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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상- 필즈상
필즈상은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상으로, 평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였던 존 찰스 필즈의 유언을 따라 제정되었다고 한다.
4년마다 열리는 수학자들의 잔치인 국제수학자대회에서는 대회 첫 날에 지난 기간동안에 뛰어난 수학적인 업적을 남긴 수학자들에게 이 상을 수여한다.
20세기의 위대한 수학자들이 수학에 대해서, 그리고 수학 연구에 대해서 남긴 이야기들과 그들의 일화를 다채롭게 소개한다.
그리고리 페렐만으로 유명해진 ‘푸앵카레 추측’을 탄생시킨 ‘차원을 정복한 수학자’ 스티븐 스메일,
천재 기하학자 윌리엄 서스턴,
수학을 버리고 MS사로 간 마이클 프리드만 등 여러 필즈상 수상자들의 업적을 다룬다.
더불어 빠르게 전문화되고 분화되는 수학의 발전 속에서 대수학과 정수론을 연결하는 랭런즈 추측과 같은
거대한 대통합을 향한 새로운 조류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난제들과 새로운 문제 등도 다룬다.
그동안 필즈상을 수상한 수학자들을 통해서 20세기의 수학과 수학자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수학을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쉽게 와닿지는 않지만,
그들은 어떻게 수학을 만나고 수학을 좋아하고,
수학에 빠져서 수학자가 되었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딜 것 같다.
독서인 지정과제 중에서 수학 분야의 책을 한 번은 읽어야할 것 같아서 큰 맘 먹고 책을 선택했는데, 수학적인
2014년에 처음으로 여성 수학자가 필즈상을 수상하게 되었는데, 마리암 미르자카니 미국 스텐포드대학교 교수를 비롯한 4명의 수학자가 필즈상을 수상하였다.
역대 필즈상 수상자들은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수상자는 2006년의 제 16회 필즈상 수상자인 '그레고리 페렐만'이었다.
페렐만은 100여년간 수학계의 난제로 남아있던 '뚜앵카레 추측'을 해결하면서 필즈상 수상자가 되었지만,
돌연 수상을 거부하고 수학계를 완전히 떠나버렸다. 수학자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상을 거부할 정도로 현실에 초연한 느낌을 주는 그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서 페렐만과 같은 선택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아직까지는(2021년 기준), 필즈상 수상자가 없는 것은 아쉽지만, 2006년 제 16회 다른 수상자인 데렌스 타오의 말처럼 학문의 세계에서 상이 목표가 아니기에, 그저 상에 연연하지 않고 뛰어난 수학자가 많이 양성되기를 바라란다. 드디어 2022년도에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아들 스탠포드대학교 허준이 교수가 당당히
필즈상 수상자가 되었다. 2022년 7월 5일 필란드에서 필즈상을 수상했다.
수학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거부했던 수학자: 그레고리 페렐만
'골드바흐의 추측(Goldbach's conjecture)', '힐버트의 기본문제'와 더불어 현재까지 수학적 난제로 일컬어지는 '새천년 문제들(Millennium Prize Problems)'이다. 새천년 문제들은 7개의 문제로 구성이 되어 있고,
각 문제당 100만 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다.
이 상금은 1998년에 설립된 클레이 수학 연구소(Clay Mathmatics Institute, CMI)라는 비영리 단체에서 2000년도에 내건 상금인데, 이는 하바드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다가 그만두고 보스톤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클레이(Landon T. Clay)라는 사람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현재 그는 'East Hill'이라는 투자 회사의 CEO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까지 풀린 문제 단 한 문제
포앙카레 추측(Poincare conjecture)이라는 문제를, 러시아의 수학자인 그레고리 페렐만(Grigori Yakovlevich Perelman)이 2003년도에 풀었으며, 2006년도에 해법에 문제가 없음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해법은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 포앙카레 추측의 해법: Solution of the Poincare conjecture
국제 수학자 회의: 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maticians
수학적 난제를 언급하면서 포스팅했던 '힐버트의 기본문제'를 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데이비드 힐버트가 '힐버트의 기본문제'를 발표한 곳이 바로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 수학자 회의였다.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수학에서의 올림픽과도 같은 회의이기에 권위가 있는 회의다.
단순히 4년만에 전세계의 수학자들이 모이는 회의라는 것만 의미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4년 동안에 있었던 수학적 업적들을 평가하고, 그 중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수학자에게 주는 필즈상(Fields Medal)과 컴퓨터 과학이나 전산 수학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주는 네반리나 상(Nevanlinna Prize) 발표가 있기에 더욱 권위 있는 회의라 할 수 있겠다.
수학의 노벨상 : 필즈상(Fields Medal)
캐나다 수학자 필즈(John Charles Fields)의 유언에 따라 만들어진 기금으로 기금은 그의 유산으로 운용된다.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은 4년에 한 번씩, 40세 이하의 젊은 수학자들 최소 2명에서 최대 4명까지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상금은 1만 3400달러.
존 찰스 필드
수학자 그레고리 페렐만: Grigori Yakovlevich Perelman
필즈상 메달 앞뒤
그런데 그레고리 페렐만에 대해서는 아주 재밌는 얘기가 있다.
우선 페렐만은 2003년에 수학 전문 잡지에 발표한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 해법을 공개했다는 것이다.
왜? 그건 좀 있다 페렐만의 인터뷰에 나온다. 어쨌든 인터넷에 공개된 해법을 본 많은 수학자들이 2006년에 이 해법이 옳다고 판정해 새천년 7가지 문제들 중에 한 문제의 해법이 완성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그의 업적(수학적 난제를 해결한)을 기리기 위해서인지
2006년 5월 스페인에서 열리는 국제 수학자 회의(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 ICM)에서 필즈상(Fields Medal)을 수여하려고 했는데 페렐만은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필즈상은 수상자를 2년 전(4로 나누어 나머지가 2가 되는 해)에 결정하는데,
그레고리 페렐만은 이 상을 수락하지 않자 그를 방문하여 며칠에 걸친 설득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끝내 수상을 거부하고 수학자 회의에 참석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가 나중에 한 말을 들어보면 가관이다.
"내 논문을 올바로 심사할 줄 아는 수학자가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렇게 얘기한 속내야 알 수 없지만, 발언만 본다면 조금은 건방지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상금에만 눈이 먼 수학자들에 대해서 따끔한 충고를 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런다 하더라도 저렇게 얘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데... 하지만 그는 일관되게 자기 입장을 지켰다는 것이다.
새천년 문제만 하더라도 상금이 100만 달러인데, 그는 거부했다. 사실 새천년 문제의 수상 조건으로는 수학 저널에 논문을 실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페렐만은 끝내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상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학자 미르자카니, 첫 여성 ‘필즈상’ 수상
여성 수상자 미르자카니
오늘 서울세계수학자대회 개막에서는 123개국 5천여명 참가하여 역대 최다의 기록을 세웠다. (2014-08-13 )
“저도 12살 무렵 잠시 수학에 관심을 잃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10대에게 중요한 건 천재성·영재성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생각하도록 자신감을 주는 겁니다.”
1897년 세계수학자대회 출범 117년 만에, 1936년 시상을 시작한 지 78년 만에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의 첫 여성 수상자로 선정된 마리암 미르자카니(37·사진)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의 조언이다.
그는 1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4 서울세계수학자대회’ 개막식 뒤 수상기념 회견에서 “대체로 여학생들의 자신감이 부족하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르자카니는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나 2004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어릴 적 소설을 좋아해 작가를 꿈꾸던 그는 “도전을 통해 기쁨을 얻는 과정이 수학에 빠져들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하학과 동력학계 분야를 통합해 수학의 여러 분야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는 공로를 인정받았다.
고국에서 고교까지 다닌 미르자카니는 “동기부여를 해주는 선생님과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함께 좋은 고교를 다닌 것이 도움이 됐다.
수학을 잘하면 쿨한 것처럼 보이는 학교 분위기였다”고 추억했다.
이날 대회 전통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이 시상자로 나서면서 수상자, 대회 주최자(잉그리드 도브시 국제수학연맹 회장 겸 미국 듀크대 석좌교수)까지 모두 여성인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번 대회(2014년) 필즈상은 4명이 공동 수상했다.
아르투르 아빌라(35)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소장은 비서구권 박사학위자의 첫 수상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지금까지 배출된 52명의 수상자는 모두 남성이면서 북아메리카나 유럽 출신 박사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브라질 태생인 아빌라는 21살 때 자국의 국립순수응용수학원에서 학위를 받았다.
나머지 두 수상자는 마르틴 하이러(39) 영국 워릭대 교수와 만줄 바르가바(40) 미 프린스턴대 석좌교수다.
아버지도 수학자인 하이러는 오스트리아 국적으로 2001년 스위스 제네바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어머니가 수학자인 바르가바는 8월8일생으로, 수상 자격인 ‘만 40살 미만’을 8개월 남겨둔 행운의 주인공이다. 그는 인도계 캐나다인으로 2001년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지 2년 만에 아이비리그 사상 최단시간에 정교수로 임명되기도 했다.
국제수학연맹(IMU) 주최로 아시아에서는 네번째로 서울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는 123개 나라 5000여명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이날 정보과학 등 수학 관련 분야의 40살 미만 학자에게 주는 네반린나상은 수바시 코트(36) 미 뉴욕대 쿠란트연구소 컴퓨터학과 교수가,
공학·비즈니스·실생활 등 수학 이외의 분야에서 공헌한 수학자에게 주어지는 가우스상은 스탠리 오셔(72)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가 받았다.
또 나이나 직업에 상관없이 수학 분야에 뛰어난 업적을 낸 사람에게 수여되는 천상은 필립 그리피스(76) 미 프린스턴고등연구원 명예교수한테 돌아갔다.
폐막일에 수여하는 수학 대중화 공로의 릴라바티상 수상자로는 과학 저널리스트인 아드리안 파엔사(65)가 선정됐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그레고리 페렐만 (필즈상 거부하고 수학계를 떠나다)
1. 소개
Григорий Яковлевич Перельман. 그리고리 야코블레비치 페렐만(Grigori Yakovlevich Perelman)은 러시아의 수학자다.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한 수학자. '모든 것을 거절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지인들이 부르는 애칭은 그리샤.
2. 젊은 시절
14살 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만점으로 금메달을 수상하며 소련 수학계의 미래로도 불렸던 비범한 천재.
16살 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레닌그라드 대학교[2]에 입학했으며, 졸업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스테클로프 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강연을 했다.
이후 페렐만의 재능을 알아본 스탠포드대학교와 프린스턴ㄷ대학교에서 페렐만의 교수 영입을 요청했으나,
거절하고 이후 계속해서 스테클로프수학연구소에서 강연 같은 거 없이 연구직으로 근무하게 된다.
그가 36세 되던 해인 2002년 11월, 정식 논문 저널도 아닌 인터넷 저널인 arXiv에 논문을 올렸는데, 이 논문이 수학계를 말 그대로 뒤집어놨다. 바로 푸앵카레 추측(Poincaré conjecture)을 증명한 것.
그런데, 그 당시 수학자들은 처음 이 논문의 제목을 보고 "이게 진짜 푸앵카레 추측이야?" 할 정도로 푸앵카레 추측과 동떨어진 제목이였다고 한다.
푸앵카레 추측 논문의 내용이 너무나도 함축적이라서 수상을 위해 논문 검토를 하는 사람들이 어떨 때는 한 문장 이해하는데 일주일이 걸릴 때도 있었단다.
푸앵카레 추측은 프랑스의 위대한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앙리 푸앵카레(Jules-Henri Poincaré)가 제시한 추측으로 밀레니엄 문제 중의 하나인데, 그 문제 중 현재 증명된 문제는 푸앵카레 추측 단 하나뿐이다.
이 푸앵카레 추측을 간단히 정리하면
3차원 공간에서 닫힌 곡선(폐곡선)이 하나의 점으로 모일 수 있다면 그 공간은 구로 변형될 수 있다.
실제 푸앵카레는 이 추측을 남겨놓은 책의 마지막에 "이 책은 우리를 머나먼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라고 적었는데 진짜로 멀리까지 와버렸다. 여하튼, 앤드류 와일즈가 페르마의 대정리를 증명한 이후로는 수학계 최대의 난제이다. 이 사람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EBS에서 나온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만, 좀 더 수학적인 내용으로는 NHK에서 나온 게 더 세밀하다. 이 방송을 기반으로 만든 책이 "100년의 난제 : 푸앵카레 추측은 어떻게 풀렸을까?"이라는 책이다.
페렐만이 등장할 때까지 수학자들은 이 추측에 대해서 단 두 가지 가능성을 놓고 갑론을박했는데, 한 가지는 이것의 반례를 찾아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이것이 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어떤 수학자는 푸앵카레의 추측의 반례를 제공하려고 노력하다가 4색정리로 눈을 돌리고, 실제로 증명하게 된다. 이 사람이 바로 그 논란이 된 컴퓨터 증명의 주인공. 그러니까 페렐만 이전까지는 세계적인 수학자들마저도 이 푸앵카레 추측 자체가 구라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건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나 이론들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고 자료와 해석이 축적되면서 사라지는 경향이기도 하다.
페렐만은 기존의 수학자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풀었다. 정확히 말하면 푸앵카레 추측은 위상기하학의 분야이다. 근데 페렐만은 미분기하학과 물리학으로 이 문제를 푼 것. 이 때문에 페렐만이 푼 방식을 대놓고 비난하는 보수적인 수학자들도 있다. 그래도 그런 그들조차도 페렐만이 해결한 것을 부정하진 못하고 예전에 쓰던 방식대로 풀겠다고 여전히 옛 방식으로 도전하는 이들도 있다고... 보수적인 수학자들이 이를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게, 학계의 주류가 위상기하학인데 이젠 비주류가 되어버린 미분기하학으로 이 난제를 풀었다. 참고로 페렐만은 위상기하학에 관심조차 없었다고 한다. 구체적인 것은 서술하기가 좀 곤란하지만 굽은 공간을 어찌어찌 조작해서 구를 만들고[9] 그것으로부터 이 추측을 증명했다고 한다.
페렐만이 arXiv에 게재한 논문의 첫 버전은 단 3페이지였는데, 이것 때문에 예일대와 컬럼비아대에서 4개의 태스크포스가 구성되어 이 논문을 무려 3년간 검증해야했다. 이때 나온 보고서만 수백쪽이라고 한다.
이 짧은 논문 때문에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가 나온 건 페렐만의 버릇 때문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페렐만은 어릴 적부터 짧고 간결한 풀이를 선호했다고 한다. 뉴욕대에서 나왔던 일화로는 페렐만이 논문을 제출했는데 지도교수가 "풀이가 너무 간결하다"며 다시 써왔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자, 그의 표정은 마치 "거기서 뭘 더 추가하느냐?"라는 듯한 표정이었다고.
여하튼 페렐만은 이 위대한 업적으로 수학계의 일약 스타가 되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뛰어난 수학자들이 모인 클레이 수학연구소가 제시한 밀레니엄 문제다. 대부분이 풀지 못한 문제를 풀어버림으로써 따라오는 엄청난 명성은 당연한 것이었는데....
4. 싫어요
맨 위에 언급했다시피, 이 사람은 모든 것을 거절했다. 일단 이 사람을 이른바 대중적인 스타로 만든 계기는 2006년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 거절.
이후에도 유럽 수학회에서 주는 상도 거절하고, 밀레니엄 상도 거절했다.
게다가 이 사람은 필즈상 수상 직후에 그나마 알고 지내던 수학계 동료들과도 연락을 끊고 완전히 잠적했다. 이후 자살을 했다는 둥, 생활비가 없어 상트페테르부르크 교외에서 버섯을 캐어 먹는다는 둥.
나중에는 사과를 하나 사는데도 고민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수준이었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노모와 산책중인 페렐만
유명인이면 으레 그렇듯 억측이 난무했지만, 그는 어머니와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좁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게다가 어머니의 연금보조로 살아간다고 한다. 아파트 관리인에 의하면 사람들과 거의 마주치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곤 하는데, 손에는 항상 스도쿠가 들려 있다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자선단체 측은 차라리 100만 달러를 받고 자신들에게 기부하라고 설득까지 했으나
그는 불쾌하다는 듯이 거절했다.
더더욱 세계적으로 그에 대하여 호기심이 가득해지면서 전세계 여러 방송사들이나 언론이 그를 취재하고자 러시아를 찾아갔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2007년 일본 NHK 측이 러시아로 와서 몇 주 동안 대기했으나, 그를 전혀 만나지 못했다.
결국 페렐만의 은사를 설득하여 그와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여러 번 시도 끝에 통화가 이뤄진 페렐만은 오로지 은사에게만 전화로 대화를 했으며 다른 이가 받으면 즉시 끊는다고 말하는 통에 목소리조차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은사조차도 만나길 거부하고 "앞으론 당신도 전화하지 않았으면 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끊어버렸다.
전화통화 전 이 은사는 페렐만을 백퍼센트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다며 자신했지만 이 상황을 겪고 너무나도 참담해 보였다.
이 은사가 인터뷰하길, "25년 전에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는 뭔가가 달라진 모양입니다..." 2009년에는 한국 EBS 측에서도 그를 만나고자 현지 취재 갔으나 그가 살던 아파트 관리인은 그 동안 전 세계 내로라하는 방송사나 언론이 찾아와 끈질기게 별별 방법을 다 썼으나 그 누구도 그를 만나지도 그의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역시 EBS 측도 어머니를 통하여 "일절 만날 일도, 그 어떤 대화도 안 할 테니 헛수고 말고 돌아가라"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2011년에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자격을 다시 거부한 것으로 또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정회원 후보 제출 명단을 넘기도록 본인 동의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바로 정회원이 될만한 수준의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정회원이 되는건 문제가 없었다.
페렐만과 비슷한 전례를 남길뻔한 물리학자가 한 명 있었는데, 바로 리처드 파인만이다.
노벨상 수상소식을 듣고 자신이 아는 기자에게 연락해 자신은 유명해지기를 원치 않는다며 노벨상을 거절할 수 있는 방법을 물은 바 있다. 기자의 대답은
"그런 짓 하면 훨씬 더 유명해질걸요." 그 대답을 듣고 파인만은 노벨상을 수상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4.1. 싫다는 이유
뉴요커(New Yorker) 지와의 인터뷰에 의하면 "수학 커뮤니티의 도덕적 기준에 실망했다."고 한다.
1982년 필즈상 수상자인 중국계 미국인 수학자 야우싱퉁(丘成桐)이 실제로 페렐만의 논문을 경시하고
동료 중국인 수학자들의 논문에 손을 들어주는 등의 일로 마음고생한 듯. 야우싱퉁은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하에 중국 과학기술계 인력의 세계 진출을 선도하는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위의 일화도 그러한 인맥 관리로 인한 사건으로 보인다. 도덕적으로 진솔한 수학자들조차 정직하지 않은 수학자들을 보고도 눈감아주는 커뮤니티에 실망했다고.
야우싱퉁이 이 페렐만의 증명에도 한번 태클을 건 적이 있다. 심지어, 페렐만의 풀이에 대해 "요령을 제시했다"고 깎아내리는가 하면, 자기 인맥에 속한 두 명의 수학자를 시켜 풀이 증명의 마무리 작업을 시키고는 "이들이 진정으로 풀이를 증명했다"는 식의 치졸한 언플을 구사하기까지 했다. 이것이 뉴요커 잡지를 비롯한 여러 수학자들을 눈살찌푸리게 만들었다.
이에 뉴요커는 야우싱퉁의 업적에 관심이 있다면서 접근을 했고, 야우싱퉁은 신나서 장장 20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4개월 후 야우싱퉁을 기회주의자로 묘사하는 글이 페렐만의 목에 걸린 필즈상 메달을 낚아채는 그림과 함께 실리자 명성에 흠이 간 야우싱퉁은 법적대응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뉴요커는 완전한 사실에 입각한 거라고 맞받아쳤다. 뭐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 끝난 듯? 하여간 야우싱퉁은 뉴욕 타임즈에서 수학계의 황제라고 묘사될 만큼 실력은 뛰어나지만 명성에 매우 집착하는 스타일인 듯하다.
그래서 당시 언론에 “In Perelman’s work, many key ideas of the proofs are sketched or outlined, but complete details of the proofs are often missing,” 즉 "좀 중요한 부분들이 애매하게 써 있었다"고 하면서 동료 수학자 차오화이둥(曹怀东)과 주시핑(朱熹平)이 그 부분을 채웠다는 내용을 내보냈다.
허나 이 역시 중국 과학기술계의 입지를 넓히기 위해 좀 과장되게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안 좋은 시선을 많이 받은 것이다. 거기다 나중에 차오, 쭈 둘이 채운 내용마저도 과거에 예일대의 브루스 클레이너가 페렐만의 증명에 보탠 내용과 똑같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새됐다. 하여간 골자는 야우싱퉁이 자기의 명성을 위해 페렐만의 업적을 뺏을려고 한 게 아니라 자신의 인맥과 국가로 묶인 친목질을 하고 그걸 언플한게 잘못이라는 것. 자세한 내용은여기에 나와있다.
밀레니엄 문제를 낸 클레이 수학연구소에서는 그의 이런 기행에 대해 별로 불쾌해하지 않는 눈치다.
그들의 목적은 수학 분야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음으로써 뛰어난 학생들이 수학자가 되게 하는 것인데,
페렐만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그 목적을 완벽하게 달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5. 근황
페렐만의 한 동료의 말에 의하면 "밀레니엄 문제 중 하나인 나비에-스톡스 방정식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걸 보면 "지금도 연구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페렐만의 친구들의 말로는 수학 자체를 거론하는 것을 싫어할 정도라니 종합해 보면 지금 수학 연구를 하고 있을 가능성은 미지수다.
다만 2009년 EBS 다큐 프라임에서 취재를 갔을 당시 아직까지 연구를 진행중이라는 암시가 있었다. 프로그램 상에서 페렐만이 사는 아파트의 관리인이 "페렐만의 어머니로부터 그가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충돌 관련 연구를 한다고 들었다"라고 언급했다. 아마도 CERN에서 LHC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푸앵카레 추측을 풀어낸 뒤에 100만 달러의 상금을 거절하면서 "내가 우주의 비밀을 쫓고 있는데 100만 달러를 쫓겠는가" 허생전이라고 일갈했다는 루머가 있기에 이로 미루어보면 연구를 계속하고 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7월 25일 뉴스에 따르면 스웨덴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노벨상을 노리는 거라는 개그성 멘트도 있지만 노벨상에는 순수 수학자를 위한 상은 없다.
경제학상 정도가 수학자가 도전해 볼만한 분야.
다만, 나비에-스톡스 방정식을 연구하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고, 만일 유한 시간 내에 해석적인 해를 구할 수 있다는 식으로 증명에 성공한다면 이건 노벨물리학상을 받고도 남을 업적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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