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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헛거시 이야기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벙인다.”
“가을에는 죽은 송장도 꿈지럭한다.”
“가을 들판에는 대부인마님이 나막신 들고 나선다”라는 등의 속담이 있을 정도로 바쁜 계절인 가을에 추수가 끝나고 가을걷이를 끝낸 농촌은 이른 봄부터 땀 흘려 돌보고 가꾸며 농사지은 벼를 수확하여 낟가리를 쌓거나 타작을 끝내고 보리와 밀의 파종마저 마무리를 짓고 나면 벼를 떨어낸 볏짚으로 이엉을 엮어서 한 해 동안 묵은 이엉을 걷어내고 새롭게 지붕을 갈아주는 작업이 시작되는데, 지붕을 갈아 주는 일을 할 때에는 한두 사람의 힘만으로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마을단위라 할 정도로 이웃 간에 품앗이로 여러 사람이 일손을 모아 작업을 하게 되는데 지붕을 갈아주는 일마저 마무리를 하고나면 한 해 동안 눈비에 젖고 햇볕을 받아서 썩고 칙칙하게 변해 있던 농촌마을의 지붕은 노란색을 띈 밝은 모습으로 변모를 하게 된다.
이렇게 지붕을 갈아 주는 작업마저 마무리가 되고 나면 추운 겨울로 접어들게 되면서 새봄을 맞이할 때까지 이렇다 할 바쁜 일이 없는 농한기가 시작된다.
겨울이 되어 날씨가 추워지면 가을에 씨를 뿌린 보리와 밀이 들판을 푸르게 장식을 하는데 추운 날씨로 인하여 서릿발에 뿌리가 솟아올라 얼거나 말라서 죽는 피해를 방지하고 뿌리가 튼튼하게 내리게 도와서 수확량을 늘리기 위하여 보리밟기와 보리이식 작업을 하게 되고, 이러한 작업과 함께 집에서 기르는 소와 염소, 토끼, 닭, 돼지 등의 가축을 돌본다거나 땔감으로 사용하는 나무를 장만하는 외에는 할일이 별로 없으므로 적당한 소일꺼리가 없는 농한기인데다 바깥으로 나가면 춥기 때문에 자연히 따뜻한 방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물론 여자들에게는 삼이나 모시, 목화에서 얻은 솜이나 혹은 누에에서 실을 뽑아 길쌈을 하여 베를 짜서 식구들을 입히고 신기는 한편으로는 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벌어들이는 쉽지 않은 나날이 이어지기는 하지만 남자들에게 있어서는 한가한 날이 많아지면서 자칫 노름판에서 도박과 같은 잘못된 유혹에 빠지기 쉬운 계절이기도 하다.
날씨가 추운 겨울이라고 할지라도 집안에만 머물러 있기 어려운 활동성이 넘치는 아이들은 바깥으로 나가서 팽이치기, 비석치기, 자치기, 땅따먹기, 사방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공기놀이, 연날리기와 같은 놀이들을 하면서 뛰놀아 보지만 그래도 추위가 심해지면 자연스럽게 방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손자 녀석과 또래 아이들이 따뜻하게 군불(온돌방을 따뜻하게 데우기 위하여 때는 불)을 지핀 방안에 올망졸망 모여 앉아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려가면서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시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에 침을 꼴깍꼴깍 삼키기도 하고 때로는 무서움에 몸을 움츠리기도 하면서 귀를 기울인다.
할아버지가 계시는 따뜻한 방 가운데에 놓여있는 무쇠화로에는 잦아진 숯불이 방안의 공기를 훈훈하게 데워주고 때로는 고구마, 감자, 밤이 먹음직하게 익어가는 소리와 고소한 냄새가 아이들의 눈과 침샘을 자극한다.
할아버지의 기다란 장죽담뱃대는 혼자 계실 때에는 담배를 피우는 도구이지만 몸이 가려울 때에는 효자손처럼 손이 미치지 못하는 등을 긁기도 하지만, 좁은 방안에서는 조금 멀리 있는 물건을 끌어당기거나 가까이에 있는 물건을 밀어내기도 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아이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에는 말썽꾸러기 아이의 훈육을 위한 회초리의 역할로 이용이 되기도 한다.
할아버지 앞에 모여앉아 있는 아이들은 한창 자라나는 시기에 있는 개구쟁이들인지라 장난이 심하여 잠시라도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지를 못하고 떠들거나 필요이상으로 설쳐대는 아이라도 있으면 담뱃대로 무쇠화로나 놋쇠재떨이를 가볍게 두드려서 경고를 하기도 하고, 조금 강한 훈육이 필요할 때에는 회초리처럼 사용되기도 하는 쓸모가 많은 것이 할아버지의 장죽담뱃대다.
“할아버지, 오늘은 또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실 건데요?”
“글쎄,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 너희들에게 재미가 있을까? 그래, 오늘부터는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헛거시 이야기’를 해 줄 테니까 잘 들어야 한다. 대신에 내가 이야기를 할 때에는 설치고 떠들지들 말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된다. 너희들이 조용히 앉아서 이야기를 듣지 않고 시끄럽게 하면 나도 생각이 잘 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가 없거든, 그러니까 너희들이 조용히 하지 않으면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 거다 알았지?”
“예, 할아버지 잘 알겠어요. 저희들은 조용히 앉아서 듣고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해 주세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어떤 아이는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에 귀를 기우리기 보다는 화로에서 맛있는 냄새를 풍기면서 익어가는 밤이나 고구마, 감자 같은 주전부리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요, 할아버지 저기에 있는 곶감은 언제 먹어요? 그리고 고구마랑 감자, 밤은 언제 익어요?”
아이들은 저마다의 바람을 말하면서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 외에도 나누어주실 주전부리에 기대를 하고 있다.
오늘날과는 달라서 라디오나 TV, 오락기, 휴대전화기와 같은 볼거리나 방안에서 가지고 놀만한 오락기구가 없는데다가 종이가 귀하고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하여 책마저도 마음대로 구하여 읽기가 어려웠으므로 할아버지로부터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어왔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에서부터 ‘헛거시 이야기’, ‘귀신 이야기’를 비롯하여 재미있는 옛날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할아버지 그런데요, 뭐 하나 물어봐도 되요? ‘헛거시’가 뭐예요?”하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던 아이들이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어본다.
“그래, 좋은 것을 물어 보는구나. ‘헛거시’라고 하는 것은 알고 보면 사실은 별것도 아니야, 흔히들 ‘허깨비’ 또는 ‘도깨비’라고도 하는 ‘헛거시’는 실제로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생각 속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어”라고 하시면서 설명을 이어간다.
“헛거시라고 하는 것은 너희들도 잘 알고 있는 도깨비를 말하는 경상도지방의 사투리인데 실제로는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그런 것이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상을 ‘헛것’이라고 하는 것에서 파생된 것으로 볼 수가 있단다. 예를 든다면 사람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시게 되면 술에 취하여 평상시의 정상적인 정신을 가질 수 없게 되는데, 술에 심하게 취한 경우 이외에도 마약과 같이 좋지 않은 약물에 중독이 되었다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올바른 정신이 아니라거나, 병에 걸리거나하여 몸이 허약해서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거나, 지나치게 두려움이나 무서운 일을 당하게 되는 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정신적으로 평상심을 잃게 되면 일종의 착시현상 같은 것을 일으키게 됨으로서 실제로는 있지 않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이상한 무엇인가가 있는 것처럼 망상이나 착각을 하게 되는 것으로 볼 수가 있단다. 다시 말해서 어떤 물건을 보았을 때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이 실제의 모습과는 다르게 보인다거나 혹은 다르게 느껴진다거나 또는 실제로는 없는 것을 마치 실제로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거든”
도깨비라는 말이 나오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들은 순간적으로 긴장을 하면서 몸을 움츠리기도 하고 겁먹은 표정으로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우리고 있다.
“도깨비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세계의 여러 나라와 많은 민족들이 각각 자기들마다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내는 초자연적인 존재와 얼추 비슷하다고 볼 수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생각으로 만들어 내는 도깨비는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때와 장소에 따라서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거든, 어떤 때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하얀 옷을 입은 여자의 모습으로, 어떤 때에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피가 묻은 으스스하고 무서운 모습을 하거나, 여우나 뱀과 같은 짐승의 모습이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등으로 일정하게 정해진 모습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어, 우리나라의 도깨비는 대체적으로 특별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나쁜 일을 하거나 옳지 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벌을 주거나 골탕을 먹이는 것과 같은 약간은 장난스러운 성격이 강하거든, 이러한 것을 착한일은 권장을 하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징계 즉 벌을 준다고 해서 ‘권선징악’이라고 한단다.”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다 잠간 쉬면서 주전자에서 따뜻한 물을 잔에 따라 입을 축이고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우리나라 도깨비는 고약하게 심술을 부릴 때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장난기가 아주 심한 편이어서 술을 많이 마셔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지 못할 정도로 취하여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하는 술주정이 심한 사람을 심하게 골려 준다거나, 옳지 않은 일을 하는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 벌을 주어서 나쁜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는 해도 사람들에게 무섭게 느껴지는 귀신이나 다른 나라에서 이야기하는 요괴나 유령 혹은 유혼들처럼 사람을 죽인다거나 해친다던지 하는 것 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어, 이러한 예를 잘 설명해 주는 것으로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이야기들이 있단다.”
“할아버지 도깨비방망이 이야기가 뭐하는 거예요? 재미가 있겠는데 자세하게 이야기 해 주세요.”하고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졸라댄다.
“그래, 그렇게 하지, 지금 바로 이야기를 해주마. 오래 전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나보다도 연세가 더 많으신 어른들로부터 전해들은 것이므로 진짜인 것으로 알아들으면 안 되고, 그냥 이야기 일 뿐이니 재미삼아 들어야 된다.”
“예, 알겠습니다. 할아버지”라고 대답을 하면서 아이들이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옛날에 마음씨 착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려고 산에 갔다가 개암나무 열매를 줍게 되었어. 그런데 마침 잔뜩 흐려있던 날씨가 갑자기 비가 내리는 거야,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까 비를 피하기 위하여 마침 가까이에 거의 허물어져 가다시피 하는 오두막집이 있어서 그 집에 들어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깜박 잠이 들고 말았거든, 한참동안 잠을 자다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일어나 보니 도깨비들이 여럿이 모여서 저희들끼리 춤을 추면서 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신나게 놀고 있는데, 가지고 있는 방망이를 두드리면서 ‘술 나와라’하면 술이 나오고, ‘음식 나와라’하면 음식이 막 쏟아져 나오는 거야, 이런 신기한 광경을 한참동안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나무꾼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배가 고파서 조금 전에 산에서 주워온 개암나무 열매를 한개 꺼내서 먹으려고 껍질을 깨기 위해서 입에 넣고 깨물었는데, 개암열매는 껍질이 단단하거든 그래서 힘을 주어서 단단한 껍질을 깨물자 개암열매의 껍질이 ‘딱ㅡ’하고 깨지는 소리에 재미있게 놀고 있던 도깨비들이 놀라서 엉겁결에 가지고 놀고 있던 방망이를 내버려둔 채로 도망을 가버리는 거야, 그래서 나무꾼은 그 방망이를 주워가지고 집으로 와서는 도깨비들이 했던 것처럼 방망이를 두드리면서 원하는 것을 부르자 물건들이 막 쏟아져 나오게 되어서 부자가 되었어.
이런 소문을 듣게 된 이웃마을에 살고 있는 마음씨가 나쁜 나무꾼이 찾아와서 부자가 된 사연을 물어 보자 마음씨 착한 나무꾼이 자기가 겪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해 주게 되었어. 그런 이야기를 들은 마음씨 나쁜 나무꾼은 자기도 도깨비방망이를 가지고 싶은 마음에 착한 나무꾼이 알려 준 곳으로 가서 개암나무 열매를 주워가지고 오두막집으로 가서 도깨비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거든, 그러다 밤이 되자 도깨비들이 나타나서는 착한 나무꾼이 말해준 그대로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방망이를 두드리면서 술과 음식을 주문하여 잔뜩 차려 놓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가면서 재미있게 놀기 시작하는 거야, 그래서 그 나무꾼이 이때다 하는 판단을 하고 가지고 있던 개암을 꺼내서 ‘딱ㅡ’ 하고 소리가 나게 깨물었다가 지난번에 방망이를 잃어서 기분이 나빠 있던 도깨비들에게 붙잡혀서 죽지 않을 정도로 두들겨 맞았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도깨비방망이 이야기를 마치자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허깨비에 대하여는 사람에 따라서 좋게 생각하는 면과 좋지 않게 생각하는 면이 있으나 허깨비가 힘이 약하지는 않아서 때로는 초자연적 힘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고 변화가 무쌍하며 신출귀몰하기까지 하는데 일정하게 정해진 모양은 없고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서 행동이나 형태가 달라지기도 하는데다 여러 가지의 소리로 나타나기도 한단다.
도깨비의 모양을 무섭고 흉악하게 나타내고 도깨비나 도깨비방망이에 뿔이 달렸다거나 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만들려고 그렇게 했던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본래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았다거나 생각하는 도깨비는 일정하게 정해진 모양이 없고 그 때 그 때의 형편에 따라서 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
“죽은 사람의 영혼이 변해서 만들어진다는 귀신과는 다르게 허깨비는 나무나 돌 같은 자연물이나 사람들이 평소에 자주 사용하던 물건이 변하여 되는 경우가 많아서 어두운 밤길에 도깨비를 잡아서 묶어놓고 다음날 확인을 해보니 사용을 하다가 버린 헌 빗자루가 묶여 있었다거나, 밤길에 예쁜 여자를 만나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평소에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던 부지깽이나 죽부인을 안고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와 같은 것으로 짚신, 절굿공이, 체, 키, 솥, 깨어진 그릇, 방석 등 평소에 많이 사용하여 사람의 손때가 절여 있는 물건이거나, 피가 묻었던 것들이 허깨비가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허깨비가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평소에 사용하던 물건이 못쓰게 되어 버릴 때에는 불에 태워버리거나 땅을 깊게 파서 묻어버리는 일이 많았다.”
이야기를 하는 중간에 아이들에게 주전부리를 나누어 주고 아이들이 맛있게 먹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서 잠간 숨을 돌린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런데 사람들이 평소에 즐겨서 사용하던 살림살이 도구나 물건들이 부서지고 닳아서 못쓰게 되었다고 그냥 아무 곳에나 마구 버리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어?”라고 하시면서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사람들이 평소에 사용하던 물건이 부서지거나 닳아서 못쓰게 되었다고 아무 곳에나 마구 버리게 되면 쓰레기가 많아지고, 그렇게 되면 환경이 나빠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하면서 아이들이 대답한다.
“그래, 맞아, 이 녀석들 아주 똑똑하구나, 너희들의 말이 맞아,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사용하던 물건들이 못쓰게 되었다고 아무 곳에나 마구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고 볼 수도 있겠지”하시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허깨비는 들이나 산골짜기, 숲이 우거진 산길, 낡아서 사람이 살지 않는 낡고 오래된 절간이나 헌집 등과 같이 어딘지 모르게 약간은 음침하고 그늘진 곳에 숨어 있다가 사람이 다니지 않거나, 비가 내리는 날이나 안개가 짙은 날, 어두운 밤에 주로 활동을 하다가 새벽에 닭이 울고 날이 밝아지면 사라진다고 하는데, 지방에 따라서는 헛거시, 도채비, 독각귀, 독갑이, 허주, 허체, 망량, 영감 등으로 불리기도 한단다.”라고 하시면서 다른 나라에 대한 이야기도 예를 들어서 설명을 이어나간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허깨비나 도깨비와 비슷한 것으로 다른 나라에서 말하고 있는 유령이라고 하는 것은 육신이 죽은 영혼으로 사람이 죽으면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이라고 하는 음부의 아래로 떨어진 존재라거나, 죽은 뒤에 마치 그림자 같은 존재 혹은 귀신이나 유혼(幽魂) 등이라고 할 수 있고, 요정은 서양도깨비로 자연의 힘을 의인화 즉 사람인 것처럼 나타낸 것으로 태고의 신들이 작아진 것, 멸망한 옛날 종족의 기억과 죽은 자의 영혼, 타락한 천사 등으로 나타내고 있단다.”
“요괴(妖怪)라고 하는 것은 ‘중국도깨비’로 사람이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해 가면서 신체나 성격 등이 변해가는 것처럼 바뀌어 가는 것이지만 모든 것이 좋은 것으로만 바뀌는 것은 아니어서 때로는 변해서는 안 되는 나쁜 것으로 변하는 것을 ‘요괴’라고 하고, 중국에서 볼 수 있는 강시(僵屍)는 실제로는 죽었으면서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시체를 말하는 것이고, 유혼은 ‘육신이 죽은 영혼’으로 곧 ‘음부(陰府 :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아래 떨어진 존재’로 ‘유령’이라고도 한단다.” 이어서 다른 나라에서 말하는 도깨비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또, 정령(精靈)은 만물의 근원이며 생명력의 원천을 이루는 불가사의한 천지의 기운을 말하는 것으로 동양의 전래사상에서는 해, 달, 별 등이 천지만물의 정령이라고 믿었다. 풀이나 나무, 무생물 등 갖가지 물건에 붙어 있다는 혼령으로 나무, 돌, 산, 강 등 모든 것에 제각기 정령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믿고 숭배하는 것이 정령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오니(おに. 鬼)는 일본도깨비로 지옥에서 죽은 사람에게 벌을 주는 괴물옥졸이나 무시무시한 괴물을 통틀어서 말하는 것으로 몸은 사람인데 머리가 소인 고즈(ごず), 머리는 말인데 몸은 사람으로 지옥의 옥졸인 메즈(めず)처럼 커다란 사람의 몸에 동물의 머리를 하고 큰 체구에 뿔이 난 머리, 날카로운 손톱을 기른 세 개의 손가락, 전신에 빳빳한 털이 난 모습을 하고 있단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일본귀신은 이들 외에도 아카오니(붉은 귀신), 아오오니(푸른 귀신), 외눈박이 오니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지옥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의 동굴 같은 곳에 살면서 때때로 마을을 덮친다는 이야기도 있어. 또 옛날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구미호는 꼬리가 아홉 개나 달린 여우라고 하는데, 구미호이야기도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과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구미호의 성격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지, 우리나라에서 구미호는 무서운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지만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해를 끼치는 요물이 아니라 사람이 되고 싶은 강한 소망을 품고 있는 것으로 나오고, 중국에서는 표독하고 간사한 여성상을 상징하며 상당히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어, 일본에서는 중국과 비슷하게 나쁜 의미로 그려내고 있어서 세 나라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를 알 수 있게 한다고나 할까.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깨비나 유령 혹은 동물들의 혼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착한 마음씨를 가졌다고 할 수가 있단다.”
2. 논바닥 허깨비
“야!, 놔라, 놔, 놓으라고, 너 이 자식아 너는 누군데 왜 생판 알지도 못하는 나를 뒤에서 잡아당기고 야단이야. 나는 우리 집에 가야 한다고, 대체 무엇 때문에 나를 붙잡고 집에도 가지 못하게 이러는 것이야?”
어디를 다녀오는지 술에 거나하게 취하여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로 김 씨가 혼자서 볍씨를 뿌리기 위하여 물을 대어서 흙이 질퍽한 논바닥 가운데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하고 있다.
“야, 임마! 너 누구냐, 도대체 뭐하는 놈인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도 않고 자꾸 귀찮게 뒤에서 잡아당기고 그러는데, 이렇게 나를 귀찮게 하는 이유가 뭐냐고?”
‘나? 내가 누구냐고? 글쎄, 내가 누구이던 그것을 네가 알아서 무엇 할 건데, 그래 네가 그렇게 알고 싶다면 내가 누군지 알려주지, 사람들은 나를 헛거시라고 한다. 왜? 이제 알겠어, 이제 네가 나를 알았으니까 어떻게 할 건데?’
“뭣이라? 헛거시라고? 그래, 네가 헛거시라고 하니까 그렇다고 치자, 네가 헛거시이건 누구든 간에 그런 것은 내가 알바는 아니고, 이거 놔, 놓으라니까. 왜 자꾸 나를 잡아당기고 야단이야, 이제 그만 좀 하라고, 제발 나 집에 좀 가자”
몸을 바로 가누기조차 힘에 겨울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신 탓으로 고주망태가 되다시피 해서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환청까지 들리는데다가, 입고 있는 옷은 여기 저기가 찢어지고 흙투성이가 되어있는데, 볍씨를 뿌리기 위하여 물을 잡아서 못자리를 만들어 놓은 논바닥에서 일어서려다가는 뒤로 주저앉고, 겨우 일어서려고 하다가는 다시 제자리에 주저앉기를 거듭하면서 논바닥을 거의 기어 다니다 시피 하는 것이 보기에도 흉한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 그런데 고주망태가 뭐예요?”하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아이가 물어본다.
“음, 그래, 고주망태라고 하는 말은 사람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그렇게 말하기도 하는데, 사실 ‘고주’라고 하는 것은 막걸리와 같은 술을 거를 때에 사용하는 틀인데 그 틀에다 망태를 올려놓으면 망태에 자연스럽게 술 냄새가 배어들게 되거든, 이렇게 고주 위에 올려놓은 망태처럼 술에 절어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을 ‘고주망태’라고 한단다.”
아이의 질문에 자세하게 대답을 해 준 다음에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 나간다.
“아이고, 이제 그만하고 제발 나 좀 놓아주라, 이 자식아 나를 잡아당기지 말라니까 자꾸 잡아당기고 그래, 도대체 너하고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나에게 이유도 없이 왜 이러는 거야고” 지칠 대로 지친 표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존심은 살아 있어서 김 씨는 큰 소리를 쳐본다.
“야, 너, 대체 너는 뭐하는 놈이야, 뭐하는 녀석인데 너하고는 아무런 안면이나 악감정도 없는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고 자꾸만 귀찮게 하는 거야, 이제 제발 그만하고 제발 나 좀 놓아주라”그렇게 사정을 해봐도 상대방이 놓아 주지를 않고 가지를 못하게 하니까 아예 사정이라도 하는 투로 말과 행동이 바뀌어 간다.
“야,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에게 왜 이러는 거야, 너 내가 이전에 단 한 번이라도 만나 본적이라고는 없는 녀석인데 무엇 때문에 나를 붙잡아서 놓아주지 않고 자꾸 못 가게 잡아당기고 이러는 거야, 도대체 왜 그래? 이러지 말고 제발 이제는 그만 나 좀 놓아 주라, 응”
흙과 물이 뒤섞여 질퍽한 논바닥에서 일어서려다가는 주저앉고 다시 일어서려다 넘어지기를 거듭하면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의 상태는 술에 취하여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입고 있는 옷은 여기저기에 찢어진 곳도 있는데다 머리는 풀어 헤쳐저서 헝클어지고, 옷고름이 떨어져 나가서 풀어진 채로 앞가슴은 열려있는데다가 바지는 무릎까지 내려가서 속옷으로 아랫도리를 겨우 가리고 있어서 옷은 말할 것도 없고 전신이 흙투성이가 되다시피 하여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희한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그래, 그렇다 치고, 왜 나에게 이렇게 하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네 말이 맞다. 아이고, 무조건 내가 잘 못했어, 그래 내가 잘못 했으니 이제 그만하고 제발 나 좀 놓아 주라. 내가 무엇을 잘 못했는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이렇게 사정한다. 그러니 제발 그만하고 이제 나 좀 놓아주라. 너 정말로 끈질긴 녀석이구나, 제발 좀 그만하자.”
처음의 당당하던 기세는 어느새 사라지고 이제는 거의 울먹이다시피 하는 목소리로 애원이라도 하다시피 하고 있다. 밤을 거의 지새우다시피 할 정도로 오랜 시간을 논바닥에서 일어서려다가 주저앉거나 넘어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려다가 뒤로 주저앉기를 거듭하면서 기나긴 시간을 시달리면서 발버둥을 쳤으니 이제는 지칠 대로 지쳐서 일어서기는 고사하고 말을 할 힘조차도 없어 보인다.
“이것 봐요, 김씨, 봄에 못자리를 하려고 물 잡아 놓은 남의 논바닥에 들어가서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요? 거 참, 별 이상한 사람도 다 보겠네”
동쪽하늘이 희끄무레하게 밝아오는 이른 새벽에 논밭을 둘러보러 가던 박 씨가 평소에 술주정이 심한데다 걸핏하면 거칠고 난폭한 행동을 함으로써 파락호로 이름이 날 정도로 생활에 규칙이 없는데다가 행동이 바르지 않아 사람들이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하는 김 씨가 혼자서 길옆에 있는 이웃사람의 논바닥에서 입고 있는 옷은 여기저기가 찢어진데다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어서 보기에도 민망한 모습으로 일어서려다가 주저앉고, 일어서서는 다시 넘어지기를 반복하면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행동과 모습을 보고서 하는 말이다.
“어이 이것 봐, 거기 누구야? 어이 박 씨구나, 이것 봐 박씨, 마침 잘 만났네, 제발 나 좀 구해주게”
“아니, 무엇 때문에 그러는데요, 그냥 논에서 나오면 되는데 왜 그래요?”
“아니 글쎄, 그런 것이 아니라니까,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이놈이 내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아서 그래”
“아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요? 그곳에 김 씨 외에는 아무도 없는데 누가 발목을 붙잡는다고 그러세요? 괜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이리 나와요”
“아니야, 그것이 아니라니까, 그런 말 하지 말고 제발 나 좀 도와주게, 이 귀찮은 녀석 좀 떼어 내 주게”
“글쎄 붙잡는 사람이고 뭐고 간에 김 씨 외에는 아무도 없다니까 그런 말을 하고 있어요, 지금 그곳에는 김 씨 혼자뿐이라니까 그러네. 그냥 나와요”
“아니야, 그런 것이 아니라니까 자꾸 그러네, 아 글쎄, 자기의 이름을 헛거시라고 하는 이놈이 어제 저녁부터 이곳에서 나를 붙잡고 밤새도록 놓아 주지를 않아서 실랑이를 하다 보니 이제는 힘도 빠지고 지쳐서 죽을 지경이야,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말고 제발 나 좀 도와주게”
“아이고, 김 씨 외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헛거시가 잡아당긴다고 그래요, 그 곳에는 김 씨 외에는 아무도 없다니까요, 자꾸 무슨 되지도 않은 헛소리 하지 말고 제발 정신 좀 차리고 그냥 나오세요.”
“아니 자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 모양이구나, 헛거시라고 하는 이놈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요술이라도 부린 모양이다. 그러니 제발 그러지 말고 나 좀 도와주게, 응, 제발 나 좀 꺼내 줘”
“아이고 그런 것이 아니라니까요, 자꾸 쓸데없는 헛소리 하지 말고 정신부터 차리고 자세히 보라고요, 지금 김 씨는 자기가 입고 있는 바지자락을 밟고 있잖아요, 질퍽한 진흙 속에서 입고 있는 바지자락을 밟고 있으니 일어설 수가 없는 것이지요, 무슨 헛거시가 있다고 그래요, 그런 쓸데없는 헛소리만 하지 말고 그냥 나오면 된다니까 자꾸 그러네.”
“아이고 아니야, 그런 것이 아니라니까 정말 답답하게 그러네, 내가 어제 장에 갔다가 기분 좋게 한잔 하고 돌아오는 길에 여기에서 알지도 못하는, 자신의 이름을 헛거시라고 하는 이 녀석을 만났는데, 글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집에 가지 못하게 밤새도록 나를 붙잡고 놓아 주지를 않아서 지금까지 이렇게 힘겨운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니까 그러네, 제발 그런 말 하지 말고 나 좀 도와주게.”
김 씨는 평소의 나쁜 술버릇은 찾아 볼 수가 없고 지칠 대로 지쳐서 겁마저 먹은 표정으로 거의 울먹이다시피 하면서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로 헛거시에게서 풀려나도록 도와 줄 것을 사정하고 있다.
“하, 참으로 답답하네, 김씨, 정말로 그런 것이 아니라니까 자꾸 왜 그러세요, 술에 취하여 무엇인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물을 잡아서 물렁한 논바닥에서 뒤로 처진 옷자락을 밟고 있으니 앞으로 일어서려면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으로 잘 못 생각하신 거라고요, 김 씨를 잡아당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제발 정신 차리고 헛거시니 뭐니 하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냥 나오세요.”
“이 사람아, 내가 여기에서 나갈 수가 있었다면 밤새도록 이렇게 고생을 하면서 힘든 실랑이를 하고 있었겠나, 이 녀석이 나를 붙잡고 한사코 놓아주지를 않고 일어서려고 하면 잡아당기고 또 일어서려면 뒤에서 잡아끌기도 하면서 이렇게 하고 있으니 이곳에서 나가는 것은 고사하고 일어 설 수조차 없어서 이러고 있는 것 아닌가, 내가 그냥 나갈 수 있었으면 벌써 나갔지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었겠어,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제발 나 좀 도와주게”
“아니, 그냥 일어서서 나오면 된다니까 정말 왜 그래요. 그런데 물 잡아 놓은 남의 논에는 무엇 때문에 들어갔어요? 그냥 길만 따라 갔으면 되는데 못자리를 하려고 물을 잡아 놓은 남의 논에는 쓸데없이 무슨 할 일이 있다고 들어갔어요, 괜히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정신 차리고 그냥 나오세요.”
“야, 그런 것이 아니라니까 자꾸 그러네, 어제 저녁에 내가 볼일을 보고 집으로 오는데 자신을 헛거시라고 하는 이 녀석이 나를 이리로 끌고 들어 와서는 집에 가지 못하게 자꾸 뒤에서 잡아당기는 거야, 그래서 지금까지 나가지를 못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거라고, 답답한 소리 하지 말고 제발 나 좀 도와줘”
“아, 글쎄 잡아당기기는 누가 당긴다고 자꾸 그러세요, 그러기에 평소에 술 좀 적당히 마시고 다녀요, 그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셨으니 몸이 제대로 말을 들을 수가 있나요, 자꾸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정신을 차리고 그냥 나와요”
이렇게 된 사정을 알고 보면 술에 취하여 정신없이 이리저리 비틀걸음을 걷다가 잘못하여 질퍽한 논바닥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흙탕 속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여 넘어지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입고 있는 옷자락이 아래로 내려가게 되어서 핫바지의발목 부분을 매는 대님이 풀어지고 바지자락이 발뒤꿈치에 밟히게 되자 뒤로 주저앉게 되었는데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면 누군가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처럼 주저앉을 수밖에 없게 되어서 일어서려다가는 뒤로 다시 주저앉게 되었고, 다시 일어서려다가 넘어지거나 주저앉기를 반복하면서 자꾸만 논의 안쪽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혼자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다보니 술에 취하여 정신이 없는 탓에 자신만의 판단으로 ‘헛거시’를 만나서 힘들게 끌려 다니게 됨으로서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된 것으로 잘 못 생각하고 밤을 새워가면서 고생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이상한 모습을 보다 못한 박 씨의 도움으로 겨우 흙탕 논에서 벗어나게 된 김 씨는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마신 술 때문에 밤을 새워가면서 힘겨운 고역을 치르게 된 이날의 사건이 있고난 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마을사람들의 웃음꺼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망하기도 하였으므로 술을 많이 마시는 버릇을 고치게 되었고, 어두운 밤길에 돌아다니는 버릇도 고치게 되었다.
그렇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주정이 사라지고 마을 사람들과 부딪칠 일이 없어지게 되자 사람들이 그를 싫어하거나 피하지도 않게 될 만큼 착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조용한 가운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아이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어온다.
“그런데요 할아버지 뭐 하나 물어 볼 것이 있는데 물어봐도 되나요?”
“그래? 무엇이 궁금한데, 물어 보거라”하면서 아이를 보자 그 아이가 질문을 한다.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시던 가운데 파락호가 뭐예요?”
“어! 그렇지, 파락호라고 하는 것은 부잣집이나 권력이 있는 집안의 자식이 부모의 재산이나 권력을 등에 업고는 나쁜 짓을 하면서 있는 재산을 몽땅 털어먹고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옳지 않은 일을 많이 한다거나, 대체적으로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거나, 나쁜 일을 자주 저지르는 사람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란다.”하고 질문을 한 아이에게 대답을 해 주고는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자 그렇다면 너희들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다른 사람에게서 칭찬을 듣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할까?”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착한 사람이 될 꺼 예요.”
“그렇지, 그래야지, 너희들은 나쁜 일은 하지 않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헛거시를 만나지도 않고 어려운 일을 당하지도 않게 된단다.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나쁜 행동을 하여 욕을 들어 먹지 않아야 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여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야, 알겠지?”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끝나는 때를 맞추어서 화로 속의 고구마와 밤이 맛있는 냄새와 함께 익어간다. 할아버지가 나누어 주는 고구마와 밤을 아이들이 맛있게 먹고 할아버지께 ‘안녕히 계십시오. 내일 또 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발걸음도 가볍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3. 게 다리 한개만 주세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벗어나서 오른 편으로 산을 끼고 왼편으로는 비가 많이 내릴 크게 물살을 이루며 많은 물이 흘러내리지만 비가 내리지 않을 때에는 냇바닥이 들어날 정도로 적은 량의 물이 흐르는 커다란 하천을 따라서 작은 들이 펼쳐져 있어서 평소에는 농사일을 하거나 산에 풀을 베거나 나무를 하러 다니기도 하고, 소와 염소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서 몰고 다닐 정도로 일반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지 않는 오솔길을 따라서 이슥한 밤길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하늘에 옅게 깔린 구름사이로 간간이 내리비치는 달빛아래 어슴푸레하게 나무의 그림자들이 길바닥에 내려앉아 바람을 따라 움직이면서 나타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면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스산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저벅, 저벅, 저벅, ...’
‘저벅, 저벅, 저벅, ....’
마을에서 한참을 벗어나서 산기슭을 따라서 뻗어있는 호젓한 오솔길로 접어들자 분명하지는 않지만 마치 누구가가 뒤를 따라오는 것만 같은 기분 나쁜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그나마 희미한 달빛을 받으면서 약간의 두려움을 가진 채 혼자서 걷고 있는 밤길인지라 마치 누군가가 뒤를 따라서 오기라도 하는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발걸음소리가 약간은 마음에 거슬린다.
‘이상하다, 이 밤에 나 말고 누가 내 뒤를 따라서 걸어오는 것일까?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마치 누군가가 뒤를 따라서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들려오는 기분 나쁜 발걸음소리가 마음에 거슬려서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알 수 없는 음산한 분위기가 한참동안 이어지자 한편으로 두렵기도 하고 섬뜩한 생각마저 들어서 발걸음을 빨리하면 뒤를 따라오는 발걸음소리도 빨라지고 일부러 천천히 걸으면 발걸음 소리도 따라서 느려지면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따라온다.
‘거 참, 이상하네, 뒤를 따라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무슨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것이지?’
이렇게 섬뜩한 분위기가 한참동안 이어지자 어딘지 모르게 오싹한 생각마저 들면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뒤를 따라 오는 알 수 없는 발걸음소리를 떨쳐버리기 위해서 발걸음을 빨리하자 뒤를 따라오는 이상한 발걸음 소리도 같이 빠르게 뒤를 따라온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
‘저벅, 저벅, 저벅, 저벅, ....’
아무런 형체가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소리가 그렇게 크지도 않으면서도 기분을 나쁘게 하는 괴상한 발걸음소리는 한참동안 뒤를 따라오더니,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비탈을 끼고 도는 으슥한 길로 접어들었을 무렵에 뒤에서 누군가가 약간은 앳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온다.
‘할아버지, 지금 가지고 있는 게 있잖아요, 그 게 다리 한 개만 주고가면 안되나요?’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알 수 없는 상대에게 다소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여기에서 겁을 먹고 상대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목소리로 봐서는 아이 같다는 판단을 하고 거절을 해본다.
“어 흠, 안 된다, 이것은 할아버지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손주들에게 주려고 가지고 가는 것이다.”
‘에이, 할아버지,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 개만 주세요. 딱 한 개만 주고 가세요, 네.’
“글쎄 안 된다니까 그러네, 그런데 지금 나보고 게 다리를 달라고 그러는 너는 누구냐, 네가 누군데 아까부터 내 뒤를 자꾸 따라오는 것이야?”
‘나요? 할아버지, 내가 누구냐고요? 사람들이 그러는데 나를 헛거시라고 해요’
무엇인가 희끄무레하게 보일 것 같으면서도 분명하게 보이지는 않으면서도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상대방이 자신을 헛거시라고 하는 말을 듣자 갑자기 섬뜩한 기분이 들면서 살짝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도 자신을 헛거시라고 하는 녀석이 상대방의 기분이야 자기가 알바 아니라는 듯이 계속해서 뒤를 따라 오면서 게 다리를 하나만 주라고 졸라 댄다.
‘에이, 할아버지 그러지 말고 딱 한 개만 주고 가세요. 한 개만 주면 된다니까요’
속으로는 약간의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목소리로 보아서 어린아이로 생각되는 상대방에게 약하게 보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애써 태연한척 해가며 거절을 해 보지만 계속해서 뒤를 따라 오면서 끈질기게 졸라대는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게 다리 하나를 떼어준다.
“아따, 이놈아 꼭 그렇게 먹고 싶다면 딱 한 개다. 그것을 먹고 나서 더 주라고 하면 안 된다.” 그렇게 해서 게 다리 하나를 떼어주자
‘알았어요. 고맙습니다. 잘 먹겠어요’라고 공손하게 인사까지 하면서 떼어준 게 다리를 받아서 한참 동안 아작 아작 맛있게 먹는 소리까지 내면서 뒤를 따라 온다. 그렇게 한참을 따라오던 녀석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게 다리를 다 먹었는지 한 개만 더 달라고 또다시 졸라 댄다. 더 이상은 주지 않겠다고 거절을 하자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협박조로 나온다.
‘할아버지, 정말로 주지 않을 거예요? 어디 안 주기만 해 봐요, 오늘 집에 편하게 가지 못하게 할 거니까요’
“뭐라고, 이 녀석아 네가 뭔데 나를 못 가게 하겠다는 거야, 내 발로 내가 가는데 누가 나를 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야, 보아하니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별 이상한 녀석을 다 보겠구나.”
‘그래요? 게 다리를 더 이상 주지 않겠다고요? 거기에다 내발로 내가 간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어디 갈수 있으면 마음대로 가 보시던가요’라고 하는 말과 동시에 갑자기 녀석이 발을 걸어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였다.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상대방의 갑작스러운 행동 때문에 발이 무엇인가에 걸리면서 몸의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하였으나 간신히 몸을 가누어서 넘어지지는 않았는데 거듭해서 발을 걸어서 걸음을 방해하는 데는 어떻게 대처할만한 방법이 없다. 할 수 없이 게 다리 하나를 더 떼어서 주자 발을 거는 것을 중단하고 게 다리를 받아서 딱딱한 겉껍질을 벗겨내고 ‘바삭, 바삭’ 맛있게 먹는 소리를 내면서 계속해서 따라 온다. 그렇게 한참을 따라 오더니 게 다리를 다 먹었는지 또다시 하나를 더 달라고 졸라댄다.
‘할아버지, 다리 한개만 더 주세요. 게 다리가 너무 맛이 있어서 그래요.’
“좀 전에 하나 더 주었잖아, 다시는 달라고 하지 않는다고 하더니 그렇게 무리하게 더 달라고 하면 안 되지, 더 이상은 못준다.”
‘에이, 할아버지도 참, 좀 전에 준 것은 벌써 다 먹었잖아요, 너무 맛이 있어서 그래요, 너무 인정 없이 그러지 말고 한개 더 주세요, 네!’
“않되, 글쎄 더는 안 된다, 우리 손주들에게 갖다 줘야 한다니까 그러네. 자꾸 귀찮게 하지 말고 이제는 너희 집에가, 제발 가라고, 가ㅡ.”
‘에이 할아버지도 참, 좀 전에 준 것은 벌써 다 먹었거든요, 그러니까 너무 인정 없이 그러지 말고 하나만 더 주세요.’
계속해서 뒤를 따라 오면서 게 다리를 달라고 보채는 것과 함께 더 이상은 주지 않겠다고 하니까 이번에는 발이 아니라 등을 떠미는 바람에 자칫 잘못 하였더라면 앞으로 넘어질 뻔하였다. 이렇게 거듭해서 괴롭힘을 당하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다리 하나를 다시 떼어 주고 말았다.
“야,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 더 달라고 하면 안 된다 알겠어?”라고 하자
‘알았어요, 할아버지’하고 대답을 하면서 ‘아작, 아작’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는 소리까지 나면서 알 수 없는 발자국 소리는 계속해서 뒤를 따라온다.
잔칫집에 가서 오랜만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어울려서 하루 종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가면서 잔칫상 위에 가득히 차려진 음식을 배불리 먹고, 술을 마셔가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하루 종일 기분 좋게 놀다가 얼큰하게 취하여 하루해가 저물어서야 잔칫집에서 챙겨주는 떡과 과일, 과자와 같은 음식을 넣어서 싼 봉지를 허리춤에 잡아매고, 잔칫집이 갯마을인 덕분에 삶은 게 한 마리를 얻어서 별도로 손수건에 싸서들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손주들을 생각하면서 어두운 밤길을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기분이 좋을 만큼 술에 취하여 인적조차 없는 어두운 밤길을 혼자서 걸어오는 도중에 정체를 알 수가 없는데다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헛거시를 만나게 되자 한편으로는 이 녀석에게 해코지라도 당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두려운 마음도 없지는 않았으므로 상대에게 기가 꺾이지 않으려고 애써 태연한척 허세를 부려 가면서 걸음을 걷고 있다.
계속해서 뒤를 따라 오면서 귀찮게 졸라대는 상대방의 성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떼어준 게 다리를 받아서는 아작아작 한참 동안을 맛있게 먹으면서 따라 오던 녀석이 또다시 한 개만 더 달라고 졸라댄다.
아무리 주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거절을 해봐도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곱게 집으로 보내주지 않겠다고 위협을 하는가 하면, 발을 걸어서 넘어뜨리려고 하거나, 등을 떠밀거나, 옷자락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별의별 짓을 다해가면서 졸라대니 도저히 이겨낼 방법이 없어서 다시 한 개를 떼어주고 길을 걸었다.
이렇게 달라고 졸라대고, 안 된다고 거절을 반복하면서 먼 길을 걸어서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다리를 모두 떼어주어서 하나도 남아 있지가 않고 게의 몸체만 남고 말았다.
집안 어른이 출타하고 집으로 오지 않았으므로 집안의 식구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걱정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헛거시에게 아무런 해코지도 당하지 않고 무사히 집에 돌아 왔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모든 술기운은 날아가 버리고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온 몸에 힘이 빠지면서 한꺼번에 피로감이 몰려드는데 겨우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가족들을 안심시킨 후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잔칫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허깨비를 만나서 적지 않은 시간을 시달리며 긴장을 한 탓에 무사히 집에 왔다는 안도감에 더하여 피로감이 일시에 몰려오면서 정신없이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맑은 정신을 가다듬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지난밤에 겪었던 일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집안 식구들에게 어제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헛거시’를 만나서 게 다리를 떼어준 대략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지난밤에 겪었던 황당한 일에 대하여 곱씹어가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으므로 확인을 해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아침밥을 먹고 난 뒤에 잔칫집에서 집으로 돌아온 길을 되짚어 가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이상하게도 헛거시가 게 다리를 달라고 졸라서 떼어서 줄 때마다 껍질을 벗겨내고 아작아작 맛있게 먹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는데 씹히거나 부서진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이 드문드문 길바닥에 게다리가 떨어져 있다.
어두운 밤길이기는 하였지만 평소에 나들이를 다니던 익숙한 길이었기 때문에 잘 알 수 있는 길이었으므로 게 다리가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장소를 가늠해 볼 수가 있었는데 자신을 헛거시라고 하는 녀석이 게 다리를 달라고 졸라대는 성화에 못 이겨서 떼어준 그 자리가 분명한 것 같다.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척 하였지만 보이지도 않는 이상한 상대로부터 자신이 헛거시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어딘지 모르게 오싹한 생각이 들면서 거나하게 마신 술이 확 깨고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정신이 분명하였기 때문에 게 다리를 떼어준 위치가 대략은 생각이 났다.
더욱이 헛거시가 발을 걸어서 넘어질 뻔 했다거나 잠간이나마 넘어졌다는 생각이 드는 곳에서는 길바닥에 튀어나온 돌들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또 등을 떠밀리거나 뒤를 잡혀서 당겨졌다고 짐작이 되는 곳에는 나뭇가지들이 늘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여러 정황들로 미루어서 생각해 본다면 결국 술에 취하여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힘든 상태에서 길바닥에 솟아 있는 작은 돌부리에 발이 걸려서 비틀거렸다거나, 길 위로 늘어진 나뭇가지에 옷이 걸려서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으로 잘 못 생각하고 넘어질 뻔하였다는 것 이외에는 이렇다 할 해명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내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이 길을 한번, 두 번 다닌 것도 아니고 자주 다닌 길인데 이런 일을 겪게 되다니, 정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이런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일을 겪고 난 다음부터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신 다거나, 밤늦게 나들이를 다니는 일을 고치게 되었다.
4. 전봇대 헛거시
5일마다 열리는 장날에 김 씨가 집에서 기르던 소를 가축시장에 내다 팔고 오랜만에 주머니에 두둑하게 돈이 들어오자 시장 가까이에 있는 대폿집에 들러서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어울려서 이런 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어가면서 기분 좋게 권커니 잣거니 술잔을 돌려가면서 늦게까지 놀다가 몸을 가누기가 힘겨울 정도로 거나하게 취하여 비틀걸음으로 어두운 밤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소가 끄는 수레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한 길이 비좁게 느껴질 만큼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길을 휘저어가면서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가까운 들머리 즈음에 접어들었을 때다. 갑자기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다.
‘어이, 이보시게, 오늘 어디 괜찮은 곳에라도 다녀오는가 보지? 거나하게 한잔 하셨구먼,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는 것을 보니까 말이야.’
어스름한 달빛이 구름사이로 간간히 얼굴을 내미는 이슥한 밤이기는 하지만 알고지내든 지인들과 어울려서 찐하게 마신 탓으로 술에 취하여 기분이 좋아서 알 수 없는 소리까지 흥얼거리며 집으로 가고 있는 앞길을 막아서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녀석이 있어서 살펴보니 온몸의 피부가 시커멓고 검은 옷을 입었는데 키가 엄청나게 커서 머리가 어디쯤에 있는지를 가늠할 수조차 없으니 얼굴은 더욱 알아볼 수가 없다.
“야, 임마, 그래, 나말이야 오늘 기분 좋은 일이 있어서 오랜만에 한 잔 했다. 그래서 네가 뭘 어쩔 건데? 야! 그런데 너는 누구야? 뭐하는 놈인데 내가 가는 길을 쓸데없이 막아서고 그래”
술에 너무나 많이 취하여 몸을 제대로 가누기조차 어려운 비틀거리는 걸음을 걸으면서도 앞길을 막아서는 이상한 녀석에게 기분이 나쁘다는 투로 시비라도 하듯이 말을 건넨다.
‘나? 내가 누구냐고? 네가 나를 알아서 뭐 할 건데? 그래, 내가 누군지 알고 싶다면 알려주지, 나를 사람들이 헛거시라고 한다. 왜?’
“그래? 네가 헛거시라고? 헛거시가 뭐하는 놈이야? 네가 헛거시이건 누구든 그런 것은 내가 알바 아니고, 나는 지금 너 같은 녀석하고 쓸데없이 시비나 하고 있을 기분이 아니거든, 나는 지금 우리 집에 가는 길이야, 그러니 괜히 내가 가는 길을 막아서 기분 나쁘게 하지 말고 비켜, 비키라고.”
그러나 자신을 헛거시라고 하는 이상하게 생긴 키다리 녀석은 술에 취한 김 씨를 쉽게 보내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야, 나도 너 같은 녀석하고 시비를 하거나 가는 길을 막을 생각은 전혀 없어, 그렇지만 나는 너처럼 성질이 고약하고 못돼먹은 녀석하고 씨름을 하면서 놀기를 좋아 하거든,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하고 씨름을 한판만 하자, 만약에 네가 나를 한 판이라도 이기기만 한다면 막지 않고 그냥 보내 주겠어, 그렇지만 네가 나를 이기지 못하면 너는 집에 갈수가 없어, 왜냐하면 내가 너를 보내주지 않을 것이니까 말이야’
“뭣이라고? 나하고 씨름을 하자고? 갑자기 웬 씨름이야? 싫어, 내가 왜 잘 알지도 못하는 너 같은 녀석하고 씨름을 해야 하는데, 싫어 너 같은 녀석하고는 놀기 싫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길이나 비켜, 비키라고, 별 시답잖은 녀석을 다 보겠네”
늦은 시간까지 여럿이 어울려서 마신 술 때문에 너무 많이 취해서 몸을 가누기가 힘이 드는데다, 키가 너무 커서 머리가 보이지도 않는 이상하게 생긴 녀석이 느닷없이 나타나서는 가는 길을 막아서서 씨름을 하자고 하자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너 같은 녀석하고는 씨름하기 싫다고 한사코 거절을 하면서 손사래를 쳐보지만 상대방도 막무가내로 앞을 막아서서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야, 그러지 말고 나하고 씨름을 한판만 하자, 나는 지금 너하고 무지하게 놀고 싶단 말이야, 그러니 네가 나하고 씨름을 해서 나를 이긴다면 두말 않고 그냥 보내 줄게, 내가 지면 그냥 보내준다니까 그래, 쉬운 방법이 있는데 왜 그래, 네가 한판이라도 나를 이기기만 하면 두말 않고 보내준다니까, 보기에는 힘깨나 쓰게 생겨가지고는 영 형편없는 녀석이네’
“글쎄, 너 같은 녀석하고 씨름하기 싫다니까 자꾸 왜 그래, 싫어 지금 내가 너랑 씨름이나 할 기분이 아니라고 했잖아, 너 같은 녀석하고는 씨름 안 해, 하기 싫다고, 저리 비켜, 쓸데없는 헛소리 하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비키라고.”
씨름을 하기 싫다고 아무리 거절을 해봐도 녀석이 앞길에 버티고 막아서서는 자꾸 씨름을 하자고 졸라대면서 자기를 한판이라도 이기기만 한다면 보내주고,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보내 주지를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나름대로는 마을에서 힘깨나 쓰고 씨름에서도 남에게 지지 않는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터인지라 오랜 실랑이 끝에 거절을 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승낙을 하고 말았다.
“좋아, 그렇게 네가 나하고 씨름이 하고 싶다면 해 주지, 대신에 딱 한판만 하는 거다. 만약에 내가 너를 이기면 그때는 두말 않고 보내 주는 거다. 약속하는 거지?”
길을 가지 못하게 앞을 막아서서 한사코 같이 놀아 줄 것을 요구하는 상대방의 강요에 이기지를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씨름을 하지만 약속은 받아 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다짐을 받는다.
‘좋아, 그래 분명하게 약속하지, 만약에 네가 나를 단 한 판이라도 이기기만 한다면 그때는 두말 않고 그냥 보내 주겠어, 이래 봐도 나는 내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그 대신 만약에 네가 나를 이기지 못한다면 나를 이길 때까지 하는 거다.’
“좋아 그래, 나도 약속하지. 너 말이야 분명히 나하고 약속을 했다. 네가 지금 나를 술에 취했다고 얕잡아 보고서 그러는 모양인데 어림도 없다. 이래 봐도 이 동네에서 씨름을 해서 나를 이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 네가 누군지, 뭐하는 녀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 오늘 나를 잘못 건드렸어, 알았어? 씨름은 네가 약속한대로 딱 한판만 내가 이기면 되는 거다.”
‘그래, 좋아, 단 한판이라도 네가 이기면 된다. 그럴 일은 절대로 없겠지만 만약에 네가 나를 이기게 된다면 더 이상 너를 붙잡지 않고 그냥 보내 주겠다. 내가 오늘 기분이 좋아서 너하고 놀고 싶어서 그러는데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번 내 뱉은 말은 지켜야하지 않겠나, 좋아 약속하지, 딱 한판만 네가 나를 이기면 된다.”
아무리 거절을 해봐도 한사코 길을 막아서서 씨름을 하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서 할 수 없이 승낙을 해 놓고는 어떻게 해야 녀석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가만히 상대를 살펴보니 새까만 피부에 검은 옷을 입은 데다 홀쭉하고 기다란 몸매인데 키가 엄청나게 크기는 하지만 다리가 하나 밖에 없는 외다리에 외발이어서 이런 상대라면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요놈 봐라,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외다리에다 생긴 것도 새까맣고 시원찮은 녀석이 겁도 없이 나하고 씨름을 하자고, 참으로 웃기는 녀석이네, 외다리를 하고서 나를 이겨 보겠다고, 그래 좋았어, 너 오늘 사람을 잘 못 건드렸어, 각오해라”
마을에서 힘깨나 쓴다고 나름대로 어깨에 힘을 주고 으스대면서 다니던 참이라 힘으로 하는 것이라면 승산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서는 상대방을 끌어안고 씨름이 시작 되었다.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상대인지라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을 하고 상대의 다리를 걸어서 기술을 넣어 보았으나 예상과는 다르게 마음대로 기술이 먹혀들지 않는데다 상대방의 몸을 끌어안고서 힘을 써 보았지만 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처음에 판단을 했던 것과는 다르게 씨름이 시작되어 짧은 시간에 간단하게 끝나지 않고 오랫동안 이어지다 보니 자신이 알고 있는 이런저런 기술을 모두 걸어 보기도 하고 아무리 힘을 써 보아도 도저히 먹혀들지를 않는 것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한참동안을 붙잡고 실랑이를 한 끝에 결판이 나지 않자 힘이 들기도 하여 이만하면 상대방도 지칠 만큼 지쳤겠지 하는 혼자만의 판단으로 끌어안고 있던 것을 풀고는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상대가 여전히 앞길을 막아선 채로 비켜주지 않는다.
“야! 그만하면 되지 않았나? 왜 또 길을 막아서고 그래, 나는 그만 갈 거야. 이제는 피곤하기도 하고, 너하고 더 이상 씨름하기 싫어, 싫다니까, 괜한 고집부리지 말고 비켜, 비키라고”
‘야! 씨름을 시작 했으면 누가 이기고 지던지 승부는 가려야하지 않겠어? 씨름을 하다가 말고 승부가 나지도 않았는데 그만 두고 가겠다는 녀석이 어디에 있어, 너 아직도 술이 덜 깼어? 안 된다. 약속대로 네가 나를 이기지 못하면 절대로 못 간다. 너 방금 전에 뭐라고 했어? 나름대로 동네에서 힘깨나 쓴다면서, 그래 자존심도 없는 거야? 녀석이 허풍만 늘어 가지고 말이야, 실속이라고는 없는 형편없는 녀석이네’라고 하면서 이제는 아예 대놓고 자존심을 건드려가며 약을 올린다.
“아니, 이 녀석아 방금 전에 말 했잖아, 내가 너하고 씨름에서 이기지 못하여서가 아니라 더 이상 씨름을 하기 싫어서 가겠다는 건데 뭐가 문제야, 도대체 왜 그래, 까불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길이나 비켜, 비키라고.”
여전히 술에 취하여 혀 꼬부라진 소리로 중언부언 하면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자신만의 주장을 내 세우면서 이제는 씨름을 그만하고 가겠다고 막무가내로 우겨댄다.
‘누구 마음대로 가겠다고 그래, 씨름을 하다 말고 네 마음대로 그냥 가겠다고? 야, 네가 나를 한판만 이기면 두말 않고 보내 준다니까 그러네, 무엇인가 시작을 했으면 승부는 내야지, 씨름을 하다가 말고 승부를 내지 않고 그냥 가겠다고? 않되, 사내자식이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자기 딴에는 힘깨나 쓴다고 우쭐대던 녀석이 쩨쩨하게 씨름을 하다 말고 그냥 가겠다고?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절대로 안 된다. 올 때에는 네 마음대로 왔지만 갈 때에는 네 마음대로 안 된다고, 네가 나를 이기지 못하면 아예 집에 갈 생각을 하지 말라고 알겠어?’
“야, 너하고는 더 이상 씨름이나 하면서 놀기 싫어,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길이나 비켜, 나는 그만 집에 갈 거야, 글쎄 너하고 놀기 싫다니까 귀찮게 자꾸 왜 그러는 거냐고?”
‘야, 가기는 어디로 가겠다는 거야, 기왕 시작한 씨름이니까 이기든 지던 결판은 내야 할 거 아니야, 짜식 자기가 한 약속도 못 지켜, 네가 나를 이기지 못하면 절대로 네 마음대로 못가. 어디 갈 수 있으면 가보라고, 만약에 내가 진다면 두말 하지 않고 보내 준다니까, 나는 내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고, 알아들었어? 괜한 고집부리지 말고 씨름이나 하자, 간단하잖아 네가 나를 한판만 이기면 된다니까 그래’
집으로 가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치면서 우기면서 떼를 써 봐도 앞길에 버티고 서서 비켜주지를 않는데다가 앞으로 나가려고 하면 이마가 앞을 막아선 녀석에게 부딪치게 되어서 너무 아프고, 오랜 시간 씨름을 하느라 힘을 쓴 탓으로 지친데다 피곤하기도 하지만 온 몸이 누구에게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아프고 쑤셔온다.
“아이 참, 더 이상 너하고 씨름하기 싫다니까 자꾸 왜 그래, 이 자식이 정말로 귀찮게 하네, 제발 그만하고 길이나 비켜, 비키라니까. 나는 그만 갈 거야, 간다니까.”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딱 한판이야, 한판만 네가 나를 이기면 다시는 하자고 안하고 그냥 보내 준다니까 그러네, 자꾸 쓸데없는 고집 부리지 말고 한판만 하자, 동네에서 딴에는 힘깨나 쓴다고 으스대면서 이사람 저사람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귀찮게 하면서 괴롭히던 녀석이 쩨쩨하게 나하고는 씨름 한판을 못 채우고 하다말고 그냥 가겠다는 게 말이 돼? 그것이 말이 되느냐고? 이 좀생이 같은 자식아”
앞길을 막아선 상대는 이제는 슬슬 상대의 자존심까지 건드려가면서 승부를 내자고 끈질기게 요구를 하는 것에 당해내지를 못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상대를 끌어안고 씨름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상대는 있는 아무리 힘을 다하여 씨름의 온갖 기술을 써 가면서 넘어뜨리려고 해봐도 넘어지기는커녕 꿈쩍도 하지 않는다.
키는 커서 하늘에 닿아있는 것 같고 몸은 홀쭉한데다 검은 옷을 입고 있기는 하여도 외다리인 녀석이 힘을 쓰면 얼마나 쓰겠거니 하고 간단하게 이길 수 있을 것으로 판단을 했었는데 막상 씨름을 시작하고 보니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다.
그렇게 온밤을 지새우다시피 하면서 오랜 시간 있는 힘을 다하여 씨름을 하거나 실랑이를 한 탓에 몸은 지칠 대로 지쳐가는 데다가 거나하게 마신 술도 미쳐 깨지 않은 상태로 정신없이 상대를 끌어안고 씨름을 계속하다보니 어느새 동녘하늘이 희끄무레 하게 밝아 오고 있는 것조차도 모르고 상대를 어떻게든 이겨 보려고 온전히 씨름에만 열중하고 있다.
새벽에 일찍 일을 보러 나가던 마을 사람이 볼썽사나운 모습을 한 김 씨가 논두렁에 있는 전봇대를 끌어안고 실랑이를 하고 있는 웃지 못 할 희한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마을에서 평소에 술을 즐겨 마시는데다가 술주정이 심해서 취하기만 하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동네사람들을 상대로 시비를 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도박에다 난폭한 행동을 하는 등 말썽을 자주 일으키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술을 마시지 않으면 마을의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말없이 해 내는 김 씨가 고주망태가 되어서 상투는 풀어져서 머리칼이 볼품사납게 헝클어지고, 입은 옷은 여기저기가 찢어지거나 풀어 헤쳐저서 엉망이 된데다 흙투성이가 된 보기흉한 모습을 하고서 전봇대를 두 팔로 끌어안고 낑낑대고 있다.
더구나 윗도리의 겉옷은 벗어서 전봇대 옆에다 내팽개쳐 두고서 말이다. 이렇게 믿기 어려운 희한한 모습을 보게 되자 ‘저사람 또 좋지 않은 술버릇이 도졌나 보군’하는 생각을 하면서
“김 씨 지금 거기 남의 논두렁에서 뭐 하고 있는 겁니까?”하고 물어 본다. 그러자 어떻게든 한판이라도 이겨보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상대방을 끌어안고 정신없이 씨름을 하고 있던 김 씨가 대답을 한다.
“나?, 지금 나를 보고 하는 말인가?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안보여? 내가 잡고 있는 이 자식이 내가 집으로 가는 길을 막아서서 씨름을 해서 자기를 이기지 못하면 보내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씨름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네? 뭐라고요? 지금 씨름을 하고 있다고요? 누구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데요?”
“나하고 씨름하고 있는 이 자식이지 누구야, 아 글쎄 자기의 이름을 헛거시라고 하는 녀석인데 다리가 하나 밖에 없는 녀석이 내가 가는 길을 막아서서 씨름을 해서 자기를 이기지 못하면 집에 보내주지 않는다고 해서 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 씨름을 하고 있는 중이거든, 글쎄, 이 녀석이 내가 집에 갈려고 하는데 길을 막아서서 비켜 주지를 않는단 말이야, 그러니 내가 씨름을 해서 이 녀석을 이겨야 집에 갈 수가 있을 것 아니야”
“아이고, 김 씨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도대체 누구하고 씨름을 한다고 그래요, 헛거시는 무슨, 지금 붙잡고 있는 것은 전봇대잖아요. 글쎄 전봇대 하고 씨름을 해서 이기겠다고요, 말도 안 되는 쓸데없는 헛소리 하지 말고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아니, 뭐라고? 나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이 녀석이 누구라고? 전봇대라고? 어제 저녁부터 분명히 자기가 ‘헛거시’라고 하면서 내가 가는 길을 막아서서 씨름을 하자고 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데, 당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이고, 아니에요, 지금 김 씨가 붙잡고 있는 그것은 그냥 전봇대라니까요.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보세요, 지금 전봇대를 끌어안고 있잖아요. 전봇대와 씨름을 해서 이기겠다고요, 땅속에 깊게 박혀 있는 전봇대를 무슨 수로 이겨요, 괜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정신 차리고 이쪽으로 나와요”
“아니야, 다리가 하나뿐인 데다 키가 크고 새까맣게 생긴 이 녀석이 분명히 자기의 이름을 ‘헛거시’라고 했거든” 김 씨는 아직도 술이 덜 깼는지 여전히 자세를 바로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면서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횡설수설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있다.
“아이고 김 씨,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전봇대니까 당연히 다리가 하나밖에 아닌 것으로 보이지요, 게다가 가는 길이나 제대로 갈 것이지 쓸데없이 전봇대가 있는 그곳에는 무엇 하려고 갔어요.”
“아니 가기는 누가 갔다고 그래 이 사람아, 내가 한참 기분이 좋아서 집으로 가는데 글쎄 갑자기 키가 크고 새까만 옷을 입은 이 녀석이 나타나더니 떡하니 앞을 막아서서는 다짜고짜 자기하고 씨름을 해서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 보내주지 않는다고 해서 지금까지 씨름을 하고 있는 중이라니까.”
“아이고 아니에요, 김 씨, 거기는 길이 아니고요 그냥 논두렁이란 말이에요, 쓸데없이 남의 논에는 무엇 하려고 들어갔어요, 더구나 나무로 된 전봇대에 썩지 말라고 콜타르를 칠해 놓았으니까 검은 색인데다, 김 씨보다는 키가 몇 배로 큰 것은 당연하지요. 보나마나 어제 또 어디에 갔다가 기분 좋게 한잔 하였는가 보네요,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정신 차리고 빨리 집에나 가세요, 밤새 식구들이 얼마나 걱정을 하면서 기다렸겠어요, 괜히 부질없는 허튼짓 하지 말고 빨리 집에 가세요.”
이러한 광경을 보고 있던 마을 사람이 아직도 술 냄새를 풍겨가며 전봇대를 끌어안은 채로 실랑이를 하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김 씨를 도와서 전봇대에서 떼어내 큰길로 데리고 나와 벗어 놓은 옷과 주위에 흩어져 있는 소지품들을 챙겨서 집으로 갈 수 있게 해 주었다.
결국 김 씨는 술에 취하여 온전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자신만의 생각으로 ‘전봇대 헛거시’와 밤을 새워가면서 씨름을 하였던 것이며, 이날 술에 취하여 밤새 전봇대와 씨름을 한 뒤로는 자연스럽게 마을에 소문이 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꺼리가 되자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줄이게 되었고, 술에 취하지 않으니 자연히 나쁜 술버릇마저 고치게 되어서 다른 사람들과 시비도 하지 않는 착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5. 빗자루 헛거시
한잔, 두잔, 해가 하늘 가운데에 있을 때부터 사람들과 어울려서 시작된 술자리가 밤이 이슥할 때까지 세상살이 이야기를 나누어 가면서 주거니 받거니 이어지다 보니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에는 발걸음을 내딛기조차 힘에 부칠 정도로 거나하게 취하여 넓은 마을길이 비좁게 느껴질 만큼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어이, 거기 가고 있는 아저씨, 오늘 어디에서 기분 좋게 한잔 하셨나보네, 걸음걸이가 예사롭지 않은 것을 보니까 말이야, 그것은 그렇다 치고, 내가 보기에 힘깨나 쓰게 생겼고 기분까지 좋아 보이는 것을 보니, 그냥 보내기는 그렇고 하여 웬만하면 나하고 씨름이나 몇 번 하면서 놀다가 가는 것은 어때?’
몸을 제대로 가누는 것조차 힘이 드는데 더하여 집으로 가기 위해 자칫 잘못되어 넘어지기라도 하면 다칠 수 있으므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정신을 가다듬고 애써 바로 걸어 보려고 애를 써 보지만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만 같은 불안한 자세로 비틀걸음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뒤에서 말을 걸어온다.
“야, 너 누구냐? 방금 그 말은 나보고 하는 소리인 것 같은데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잘 알지도 못하는 녀석이 갑자기 왜 나를 보고 씨름을 하자고 하는 거야, 나는 말이야 지금 당신하고 씨름이나 하면서 놀아줄 기분이 전혀 아니거든 그러니까 쓸데없이 기분 그슬리는 소리 하지 말고 비켜”
술에 너무 많이 취하여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로 혀가 꼬여서 말을 하는데다가 몸을 제대로 가눌 수조차 없을 만큼 비틀거리는 걸음을 걸으며 예상하지 못한 상대방의 요구에 손사래를 치면서 씨름을 하지 않겠다고 거절을 해 보지만 상대방도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물러날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누군지 알 필요는 없고, 그냥 나하고 씨름이나 하면서 놀기나 하자, 마침 오늘 내가 별로 하는 일도 없고 해서 심심하거든,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네가 나하고 씨름을 하면서 놀아주지 않으면 집에 가지 못하게 할 거야’
“뭐야? 당신,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어, 내가 가고 싶으면 가면 되는 것이지 네가 뭔데 나를 가라마라야 건방지게, 내가 집으로 가고 안 가고하는 것은 내 맘이지, 괜히 쓸데없는 헛소리 하지 말고 좋은 말 할 때 저리 비켜”
‘그래? 가고 못 가고는 네 마음이라고, 정말로 그럴까? 그렇다면 어디 갈수 있으면 네 마음대로 가 보던가, 내가 당신을 붙잡고 보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데?’
자신이 술에 지나치게 많이 취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바르게 걸음을 걸어 보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자세를 바로잡고 정신을 가다듬어서 비틀거리지 않고 바로 걸어 보려고 노력을 해 보지만 자꾸만 다리에 힘이 빠지고 발이 꼬이면서 넘어졌다가는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다 자신은 한참을 걸어갔다고 생각을 했는데도 넘어졌다 일어서기만 되풀이 할 뿐으로 거의 제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는데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상처만 늘어간다.
“야, 이거 왜이래, 놔라 놔, 이 자식아, 나는 집에 가야 한단 말이야, 너하고 씨름이나 하면서 놀기 싫다고, 내가 우리 집에 가겠다는데 왜 귀찮게 나를 붙잡고 이러는데”
‘야, 그러니까 나하고 씨름이나 한번 하자, 네가 씨름을 해서 나를 이겨봐 그러면 두말 않고 보내 줄게, 그렇지만 네가 나를 이기지 못한다면 너는 절대로 못 간다고”
술에 취하기는 했어도 정신을 가다듬고 씨름을 하면서 놀자고 귀찮게 졸라대는 상대를 가만히 살펴보니 머리칼을 얼기설기 풀어헤친 이상한 모습인데 다리가 하나뿐인 외다리에다 키도 자그마한 것이 어디가 몸통이고 어디가 다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이상하게 생겼는데 이정도의 볼품이 없는 상대라면 힘들이지 않고 이길 수 있는 상대이므로 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 좋다. 네가 그렇게 나하고 씨름을 하고 싶다면 어디 한번 해 보자, 죽은 놈 소원도 들어 준다는데 너 같은 녀석의 소원을 내가 못 들어 주겠느냐, 대신에 내가 이긴다면 그 때는 두말 않고 보내 주는 거다.”
‘그래, 내가 약속은 지킨다. 대신에 한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5판을 해서 먼저 3판을 이기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하자, 어때?’
“좋아, 네가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지, 거참 보기에는 조그마한데다 볼품없게 생겨먹은 녀석이 되게 귀찮게 하네.”
이렇게 해서 상대와 마주잡고 씨름이 시작되어 한참동안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다가 겨우 한판을 이기기는 하였지만 씨름을 시작하기 전에는 다리가 하나뿐인데다가 키는 작고 보잘 것 없는 상대라고 얕잡아 보았는데, 막상 시작을 하고 보니 생각했던 것만큼 쉽지가 않아서 상당히 애를 먹었다.
“자, 이제 내가 한 판을 이겼으니까 그만 가도 되겠지? 내가 먼저 한판을 이겼으니 그만하고 나는 가겠어.”
‘에이,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씨름을 시작하기 전에 5판을 해서 3판을 먼저 이기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하기로 했잖아, 사내자식이 한번 한 약속은 지켜야지, 겨우 한판하고 그것을 이겼다고 그냥 가겠다는 말이 어디 있어. 않되. 한판 더 하자.’
아무리 살펴봐도 조그만 해서 볼품이라고는 없는 체구인데다가 다리는 하나뿐이고 머리카락은 쭈삣쭈삣 어지럽게 풀어헤쳐져서 얼굴을 제대로 알아 볼 수 없는 이상하게 생긴 조그마한 녀석이 다시 씨름을 하자고 바지자락을 붙잡고 놓아 주지를 않으니 씨름을 그만두고 집으로 가겠다고 걸음을 옮기려고 하다가는 다시 뒷걸음질을 치거나 비틀거리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발이 엉키고 다리마저 꼬여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제대로 걸음을 걸을 수가 없다.
“야! 약속이고 뭐고 하는 것은 내가 알바 아니고, 아무튼 내가 한 판을 먼저 이겼잖아, 그러니까 이제 씨름은 그만 하고 나는 우리 집에 갈 거야, 더 이상 너하고는 씨름 안 해, 다시하기 싫다고, 놓으란 말이야”
‘야, 그러지 말고 약속대로 더 하자, 나하고 씨름을 해서 이기지 못한다면 너는 네 마음대로 못 간다고, 내가 너를 놓아 주지 않을 거니까 말이야, 어디 네 마음대로 가겠다고? 어디 갈 수 있으면 가 보라고.’
풀어진 바지자락을 단단하게 틀어잡고는 한사코 놓아 주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으니 발과 다리가 꼬이고 엉키면서 걸음을 떼어 놓으려다가는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려다가 넘어지기를 반복하면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놔, 이거 놓으라고, 나에게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나는 그만 가겠단 말이야, 너하고 씨름이나 하면서 노닥거리면서 놀기 싫어, 싫다고, 너하고 더 이상 씨름하기 싫다는데 왜 귀찮게 붙잡고 그래, 나는 우리 집에 간다.”
‘어디 네 마음대로 갈 수 있으면 가 보던지, 가지도 못하면서 큰소리는, 야, 그러지 말고 씨름을 더 하자, 씨름을 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보내 주지 않을 거니까 더 하고 안하고는 네가 알아서 결정해, 대신에 보내주고 보내주지 않고는 내 맘이거든’
아무리 씨름을 하지 않겠다고 거절을 하기도 하고, 위협을 하거나, 빌다시피 사정도 해 보지만 씨름을 하자고 한사코 졸라대는 녀석은 자기의 주장만을 고집할 뿐으로 상대방의 말은 아예 들으려고 하지를 않는다.
“야, 그런데 내가 가는 길을 막아서서 씨름을 하면서 놀자고 졸라대는 너는 도대체 누구냐? 너란 녀석은 도대체 뭐 하는 녀석이야? 내가 이 동네에서 태어났고 오래 살아 왔지만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조그만 녀석이 정말로 끈질기네, 너 말이야 어디에 살고 뭐하는 녀석이야, 도대체 한번이라도 만난 적이 없는 나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러는 거냐고”
‘나? 그래, 마침 말 잘 했다. 내가 누구냐고? 그런데 내가 누구이든 그런 것을 네가 알아서 뭐할 건데? 좋아 그렇게 나를 알고 싶다면 말해주지, 사람들이 나를 헛거시라고 하거든, 거기에다 너 같이 성질이 고약하고 못된 녀석을 골려주거나 데리고 놀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거든, 그리고 바로 이곳이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집이야, 이제 알겠어?”
“뭐라고? 네가 누구라고? 헛거시라고? 헛거시가 뭐하는 녀석인데, 그리고 나를 정신 차리게 하겠다고? 내가 정신이 없는 사람으로 보여? 정말 웃기는 녀석일세, 더구나 여기가 너네 집이라고? 여기에 집이 어디 있어, 별 희한한 녀석을 다 보겠네, 내가 아무리 술에 취하였다고 하지만 조그만 녀석이 어른에게 거짓말을 하고 놀리려고까지 해, 이 녀석 아주 버릇이라고는 없는 놈이네”
‘그렇다, 나는 헛거시다. 그래서 어쩔래? 지금 네가 말하는 그런 것은 중요하지가 않아. 야! 그러지 말고 심심한데 그냥 씨름이나 더하자, 네가 아무리 가고 싶다고 해도 네 마음대로는 않되, 내가 보내주지 않으면 너는 절대로 못 간다. 알겠어?’
“내가 이 동네에 오래 살아 왔지만 헛거시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어, 뭐? 그런데 여기가 너네 집이라고, 여기에 집이 어디 있어 조그만 녀석이 얼토당토 않는 거짓말을 하면서 나를 놀려 먹으려 하고 있어, 아주 고약한 녀석이군,”
‘내 이름이 뭣이건 그리고 우리 집이 어디에 있건 그러한 것을 네가 알아야 필요는 없고, 그런 것이 중요하지도 않으니까 그냥 나하고 씨름이나 하면서 재미나게 놀아보자, 당신은 나하고 놀면서 혼이 좀 나야 정신을 차리고 올바른 사람이 된단 말이야, 알겠어? 오늘 마침 잘 걸렸어, 어디 네 마음대로 갈 수 있으면 가 보라고’
“하ㅡ, 이 조그마한 녀석이 어른을 놀리고 있네, 뭐 나를 정신 차리게 해 주겠다고? 참으로 어이없는 녀석이구나, 더군다나 끈질기기까지 해서 거머리처럼 달라붙기도 하는 구나, 좋아,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한판 더 해보자”
이렇게 마지못해서 시작된 씨름이 날이 어스름하게 밝아 올 때 까지도 결판이 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다 보니 지나칠 정도로 많이 마신 술이 어느 정도 깨기는 했으나, 씨름에 이기기 위하여 힘을 많이 쏟았기 때문인지 지칠 대로 지쳐서 발과 다리는 더욱 무거워지는데다가 몸을 제대로 가누기조차 어려울 지경이 되어 버렸다.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씨름을 거듭하다보니 어느 정도 술도 깨고 많은 땀을 흘리게 되어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자 이렇게 해서는 끝이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고, 거듭되는 씨름에서 몇 판을 이겨도 상대가 옷자락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는데다 계속해서 씨름을 요구해 오자, 이 상태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는 넘어져 있는 상대를 가까이에 있는 전봇대에 단단히 묶어 놓은 다음에야 간신히 씨름을 끝내고 집으로 갈 수가 있었다.
밤이 거의 밝아올 무렵까지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며 집에서 걱정을 하고 있던 식구들에게 늦어지게 된 이유를 ‘집으로 오는 길에 헛거시라고 하는 이상한 녀석을 만나서 밤을 지새우다시피 시간을 보내면서 씨름을 하게 되었고 간신히 이겨서 넘어진 상대를 전봇대에 묶어 놓고서야 집에 올 수 있었다.’는 설명하자 집에서는 ‘보나 마나 평소에 그렇게 했던 것처럼 술을 많이 마시고 취하여 어디에선가 시간을 보내고 와서는 할 말이 없으니까 말도 안 되는 변명을 지어서 하는 것’으로 무시를 하는 눈치다. 그렇거나 말거나 심한 피로에 지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자리에서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혼자서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온몸이 쑤시고 아파오는 데다가 어제 저녁부터 오늘 새벽녘까지 밤을 거의 지새우다시피 하면서 다리를 붙잡고 씨름을 요구하며 자신을 놓아주지 않은 상대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인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자세하게 알아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지난밤 씨름에 이겨서 전봇대에 묶어 놓고 온 상대에 대하여 확인을 해봐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실랑이를 했던 곳으로 가서 보자,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낡고 오래되어 쓸모가 없어서 버려진 몽당 싸리 빗자루 하나가 길가의 전봇대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너무 많은 술을 마시고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취하여 밤길을 걷다가 빗자루 헛거시를 만나서 밤을 새우다시피 시달리면서 이해할 수없는 황당한 경험을 하고난 다음부터는 지금까지 살아 왔던 것처럼 걸핏하면 술에 취해서 정신없이 무절제하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고,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하여 밤길을 걷는 것과 같은 무모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평소의 행동에도 조심을 하게 됨으로서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받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평소에 집에서 사용하다가 못쓰게 된 물건이라고 해서 아무 곳에나 마구 버리지 않고 불에 태우거나 땅속에 묻어서 쓰레기처리를 하고, 자기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에 대하여도 친절하게 대하는 착하고 예의바른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6. 억새꽃 길라잡이
장마철로 접어들면서 며칠을 두고 연이어 오락가락 내리는 비로 인하여 여기저기 산골짜기마다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이 마을의 위쪽에 산골짜기를 막아서 만들어진 저수지를 채우고 물목을 넘치고 흐르면서 마을 앞으로 흘러내리는 하천에는 쿵쿵하는 우렁차고 거센 물소리를 내면서 하천의 제방을 넘쳐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를 해야 할 정도로 많은 량의 물이 흘러내려서 사람이 건너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소나기성 빗줄기가 내렸다가 그치기가 반복되는 가운데 변덕스러운 날씨로 인하여 때때로 우레와 천둥소리를 동반한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기도 하고, 몰려가는 비구름사이로 언 듯 언 듯 맑은 하늘이 나타나기도 하면서 먹구름이 지나가는 아래로는 장대비를 뿌리는 굳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장마철이라 벼가 자라고 있는 논에 물을 조절하는 일 이외에는 이렇다 할 소일거리가 없는 할아버지는 농번기에 이어 찾아온 장마 때문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산 너머 마을에 시집가서 살고 있는 외동딸이 보고 싶은 마음에 굳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비를 피하기 위한 삿갓과 필요한 행장을 챙겨서 산길을 걸어서 딸네 집으로 나들이를 나섰다.
낮 시간이 긴 여름날이 어느새 어둑어둑 저물어가고 해질녘부터 내리기 시작된 비가 내렸다가 그치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나들이를 나섰던 어른이 집으로 돌아오시지 않았으므로 집안 식구들이 걱정을 하면서 초조하게 마음을 조이고 있다.
며칠을 두고 연이어 내리는 비로 인하여 많은 물이 거세게 흘러내리고 있어서 다리가 놓여 있지 않은 마을 앞의 하천에는 물이 적게 흐를 때에는 징검다리를 밟고서 발을 물에 젖지 않고서도 건널 수가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량의 물이 하천을 채우고 흘러내리면 건널 수가 없었으므로 크게 걱정을 하면서 차라리 딸네 집에서 주무시고 오기를 바랄 뿐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전화조차 없는 형편이었으므로 연락이 되지가 않아서 더욱 걱정이 커지고 있다.
쿵쿵하는 우렁찬 물소리를 내면서 골짜기를 울리고 거세게 흘러내리는 시냇물과 내렸다가 그치기를 반복하면서 장맛비가 내리는 굳은 날씨 탓에 이렇다 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으므로 집안 식구들이 등잔불이 밝혀주는 방안에 모여 앉아서 걱정만을 하고 있는 그때, 갑자기 “으흠”하는 헛기침소리와 함께 딸네 집으로 나들이를 가셨던 할아버지께서 집안으로 들어오신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바깥에서 많지는 않지만 끊이지 않고 잦은 비가 내렸다가 그치기를 반복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옷에는 한 방울의 비에도 젖지 않은 말짱한 상태로 들어오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한 집안 식구들 모두가 반가운 마음의 한편으로는 놀라기도 하면서 할아버지를 맞이한다.
“아이고,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렇게 비가 내리고 날도 어두운데 아무런 탈도 없이 무사히 돌아오시다니요 참으로 다행입니다.”
“어디 다치시기라도 한 곳은 없습니까? 웬만하면 딸네 집에 하룻밤 주무시고 내일 날이 밝고 비가 개이면 오시지 그랬습니까.”
“마을 앞의 하천에는 물이 많이 흐르고 있었을 것인데, 사람이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놓여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 큰물을 무사히 건너서 올 수가 있었습니까?”
“이렇게 비가 내리는 굳은 날씨인데 어떻게 옷은 조금도 젖지 않고 오실 수가 있었습니까? 참으로 이상한 일이네요.”
“비가 내리고 날은 어두워서 길이 잘 보이지도 않았을 것인데, 더구나 비가 내려서 미끄럽기도 하지만 험한 산길을 어떻게 무사히 오실 수가 있었습니까?”
“비 때문에 길이 미끄럽고 위험하기도 했을 것인데 넘어지거나 어디를 다치지는 않았습니까?”
“아무튼 다치거나 사고를 당하지 않고 무사히 돌아 오셨으니 천만다행입니다.”
이렇게 식구들이 할아버지께서 무사히 돌아오신데 대하여 안심을 하면서도 저마다 몇 마디씩 걱정과 위로의 말을 하면서 경위를 물어오는 것에 대하여 할아버지께서 믿기 어려운 말씀을 하신다.
딸이 시집을 가서 살고 있는 마을은 넓지 않은 들을 끼고 뻗어 있는 길을 따라서 한참을 올라가다보면 양쪽 옆으로 높은 산봉우리를 끼고 있는 두 개의 산봉우리 사이에 ‘한퇴재’라고 부르는 고개를 하나 넘어야 이쪽 마을과 저쪽 마을을 넘나들 수 있는 산길이 나있다.
‘한퇴(汗堆)’라는 말은 ‘높은 고개 또는 큰 재’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다 “재”는 ‘길이 나 있어서 넘어 다닐 수 있는 높은 산의 고개 혹은 높은 산의 마루를 이룬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만큼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아서 말이나 소를 타거나, 짚으로 만든 미투리를 신고 걸어서 다니던 시대에는 상당히 높고 넘나들기에 힘이 드는 산길이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새로운 길인 신작로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사람들이 말을 타거나 걸어서 다닐 때에는 산의 이쪽 고을과 산 너머에 있는 고을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에 고을의 수령이나 통제사와 같은 벼슬을 제수(천거에 의하지 않고 임금이 직접 관리를 임명하는 일을 이르던 말)받아 새로 부임을 해서 오는 수령일행이나, 장삿길을 다니는 보부상을 비롯하여 이런 저런 사정으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다니던 유일한 지름길인 동시에 큰길이었으나,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산기슭을 따라서 마을과 마을사이를 이어주는 다른 곳으로 만들어지게 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높고 비탈진 산길을 힘들게 걸어서 다니는 사람들의 왕래가 뜸해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을 때에는 고을의 수령이 부임을 해서 지나게 되면 마을사람들이 동원되어 길을 정리하고 손질을 하여 길바닥에 황토를 깔아서 환영의 의미를 나타낼 정도로 관리가 잘되어 있던 중요한 길이였지만, 교통수단의 발달로 새로운 도로가 만들어지게 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사라지게 되자 제대로 관리가 되지를 않았으므로 오랜 세월에 걸쳐서 수시로 내리는 빗물로 인하여 길이 패어지고 허물어진데다가 사람의 손길마저 미치지 않았으므로 자연스럽게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덤불이 엉켜서 나무꾼과 산짐승들이나 겨우 다닐 수 있을 만큼 한적하여 예전에 큰길이 있었다는 흔적만이 띄엄띄엄 남아 있을 정도로 허접하고 험한 산길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예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던 규모를 갖추었던 큰길이었으므로 높고도 비탈진 고개를 넘어서 마을 쪽으로 산길을 따라서 내려오면 경사가 조금은 약해지기 시작하는 지점에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의 크기를 가진 바위가 있고, 그 바위의 약간 아래쪽에는 길의 양쪽 옆으로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산길을 오고 가는 사람들이 여행길에 무사안녕을 기원하면서 하나 둘 던져서 자연스럽게 쌓아 올린 사람의 키 높이보다는 다소 높지만 그렇다고 정교하게 쌓아서 만든 탑이라고 하기에는 허술하여 차라리 돌무더기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할만한 2개의 돌탑이 길의 양옆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오늘날에도 길을 다니는 사람들이 길바닥의 돌을 주워서 거의 던져서 올려놓다 시피 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산길을 오고가는 사람들이 발길에 차이는 돌을 치움으로서 여러 사람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하자는 의미 이외에도 별다른 사고나 탈도 없이 안전하게 여행을 다닐 수 있도록 산신령과 지신에게 빌어보는 소박한 마음들을 담아서 길바닥의 돌을 주워서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 올라간 평범한 돌무더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돌탑이 있는 곳에서 조금만 아래쪽으로 내려서면 만들어진지 오래되지 않은 상당한 규모의 물을 담아서 농업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저수지가 있고, 저수지를 끼고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산길이 끝나고 들길로 이어져 집으로 오는 길이 한층 수월해진다.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에 의하면 “딸네 집에서 정성스럽게 차려주는 저녁밥과 함께 반주(밥에 곁들여서 조금씩 마시는 술)를 기분 좋게 마시고는 ‘궂은 날씨에 날도 저물어 오고 하니 위험하게 어두운 길을 가지 마시고 오신 김에 하룻밤 주무시고 가시라’고 하면서 사위와 딸이 한사코 만류를 하였지만 분가(같이 살던 가족 중의 일부가 다른 집으로 나가서 살림을 차림)를 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다 새로 시작한 살림에 어렵게 살고 있는 딸에게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하겠다는 마음에 딸 내외의 잡는 손을 뿌리치고 비록 날이 저물어 가기는 하였으나 비가 약간 그치는 것 같아서 길을 나서게 되었는데, 고갯길을 넘어서 산길을 걸어 오다보니 날은 더욱 어두워지는데다가 비까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더란다.
하루해가 저물어가는 어둑한 산길에 한참을 그렇게 주위를 살펴가면서 조심스럽게 걸어오자 어느새 날씨는 더욱 어두워지고 비가 약하게 내리는 길은 미끄럽기까지 하였다. 그렇지만 이미 딸네 집에서 상당히 멀리 왔을 뿐만 아니라 기왕에 집으로 가겠다고 나섰던 길인지라 되돌아 갈 수는 없었으므로 미끄러지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을 하면서 산길을 따라 올라와 고개를 넘어서 한참 동안을 내려오다가 돌탑이 있는 곳에 이르러서는 평소에 늘 그렇게 해 왔던 것처럼 무사히 집으로 갈 수 있게 도와줄 것은 마음속으로 기원을 하면서 길바닥에서 자그마한 돌을 주워서 돌탑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발걸음을 내딛는 바로 그때, 할아버지의 앞쪽에서 어떤 형체가 뚜렷하게 잡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치 가을철에 무리를 지어서 피는 ‘억새꽃’처럼 보이는 희끄무레한 무엇인가가 슬며시 나타나더니 마치 자기를 따라서 오라고나 하는 듯이 앞에서 가고 있더란다.
그래서 별다른 생각을 해 보지도 않고 그저 앞장에 서서 가고 있는 억새꽃을 보면서 그 뒤를 따라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참동안을 앞에서 가고 있던 희끄무레한 억새꽃이 어느 순간에 갑자기 사라져버리고 보이지 않기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 집이더라는 말씀이다.
“돌탑이 있는 곳까지는 어떻게 왔는지 알겠는데 탑에 돌을 올려놓은 다음부터 갑자기 나타나서 앞장서서 가고 있는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억새꽃처럼 보이는 형체만을 따라서 왔을 뿐으로 어떻게 해서 집에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하여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에 대하여는 나도 모르겠다. 내가 무슨 헛거시에 홀리기라도 했나 보다”라고 하시면서 일반적인 판단으로는 이해를 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러한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하여는 알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해를 할 수도 없지만, 이유야 어떻게 되었건 할아버지께서 아무런 사고가 없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신 것만으로도 식구들 모두가 ‘억새꽃 헛거시’에 대하여 감사하다는 마음과 함께 안심하고 잠을 이룰 수가 있었다.
7. 옹기들의 대화
아침나절에농사꾼 박 씨가 땔감으로 사용할 나무를 한 짐 해서 지게에다 짊어지고 집으로 가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데, 아침부터 잔뜩 흐려있던 날씨가 구름이 차츰 짙어지기 시작하더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비록 규모가 큰 산은 아니지만 수풀이 우거진 산속인지라 비에 젖을수록 나뭇짐은 무거워지고 평지와는 다르게 비탈지고 여기저기 돌들이 많은 산길이라서 조심을 하지 않으면 미끄러워서 넘어지거나 다칠 우려가 큰데다가 숲속을 헤치고 내려오는 길에 나뭇가지들이 앞을 가로막기도 하기 때문에 나무꾼이나 짐승들만 다니는 험한 산길을 헤치며 내려오기가 수월하지 않다.
어렵사리 숲이 우거진 산길을 헤치고 기슭가까이로 내려와서 이전에는 몇 가구의 집이 있어서 자그마한 동네를 이루어 사람들이 살았으나, 언제부터인가 이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들 떠나가고 지금은 우거진 잡초와 나무사이로 허물어진 돌담장과 집들의 흔적들만 남아 있어서 이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소에 왔을 때 장마철 날씨답게 지금까지 약하게 내리던 비가 장대비로 변하면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마을 앞에 펼쳐진 들판을 가로 지르기만 하면 집으로 갈 수가 있으나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대비를 헤치고 질퍽하고 미끄러운 들길을 가로질러서 가기가 쉽지 않았으므로 잠간이라도 비를 피할만한 곳을 찾던 가운데, 마침 거의 다 허물어지고 겨우 뼈대만 남아서 한쪽으로 기울어지다시피 하여 지붕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낡은 한 채의 집을 찾아서 비가 그치면 가야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그나마 겨우 형체만 남아 있는 집의 처마아래에 비를 피하여 나뭇짐을 기대어 세워놓고 겨우 한쪽 모서리정도만 남아있는 마루에 걸터앉아서 기둥에 기대어 비가 조금이라도 잦아지기를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낡고 오래되어 허물어진 집인데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서 손길이 닿지 않은 채로 버려져 있는 상태였으므로 토담으로 된 벽은 대부분이 허물어지고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다 틈새마다 온통 거미줄이 차지하고 있고, 지붕은 대부분이 기울어지고 여기저기가 뚫리고 내려앉았는데 방이라고 있는 곳에는 곰팡이가 보기에 흉할 만큼 더덕더덕 붙어있는 위에 먼지마저 두텁게 쌓여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마루의 한쪽 모퉁이에 비는 겨우 피할만한 공간이 있었다.
허물어진 건물의 옆쪽으로 조금은 평평하여 장독대였을 것으로 보이는 장소에 우거진 잡초와 작은 나무덤불들 사이로 흙먼지와 함께 썩어가는 낙엽을 두껍게 뒤집어 쓴 채로 많지는 않지만 오래되고 낡은 옹기와 사기그릇을 비롯하여 사금파리들이 여기저기에 어지럽게 늘려 있는데다 다수의 주방용품 조각들이 색이바랜 낡은 폐가재도구들과 함께 나뒹굴어 있다.
그칠 줄을 모르고 쉼 없이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비를 맞은 탓에 옷이 젖고 으스스하게 한기마저 느껴지는데다 배가 고프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슬슬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밀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기둥에 기대여 앉은 채로 잠간동안 잠이 들었는지 꿈속인 듯 아닌듯한 가운데 누군가가 모여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온다.
비몽사몽간이기는 하지만 잡초가 우거지고 폐허가 된 이런 외진 곳에서 어떤 이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귀를 기울여서 가만히 주위를 살펴보니 몸은 둥그런데다 배와 허리부분이 크고 아래와 위쪽은 허리에 비하여 약간 홀쭉한데 얼굴이 어디에 있는지 분간할 수가 없는데다 허리께에 붙어 있는 귀는 있는 것도 있지만 없는 것도 더러 있다. 머리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에는 윗부분이 평평하게 생긴 모자를 쓰기도 하고, 쓰지 않은 채로 짙은 갈색이나 검은 피부에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는 이상한 모습으로 앉기도 하고 옆으로 눕기도 한 상태로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우리가 참으로 오랜 세월을 이 곳에서 많은 일들을 겪기도 하고, 지켜보기도 하면서 살아왔지요, 우리 모두가 한창시절에는 반질반질하게 윤기마저 나던 피부였는데 세월이 흘러가다 보니 우리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런 모습은 사라지고 기름기마저 빠져나가 거칠어진지 오래인데다 여기저기가 벗겨지거나 떨어져 나가서 무엇인가를 담아 있으려고 하여도 물기가 슬그머니 빠져나가 버리고 담아 있을 수조차 없게 되다 보니 자연히 쓸모가 없어지는데다가 알뜰하게 닦고 보살피면서 아껴주던 사람들마저 세상을 등지거나 이 마을에서 떠나가고 계시지를 않으니 이렇게 허무하게 세월만 보내고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야, 그래도 한때는 매끈하게 윤이 나는 피부에 하고 있는 일이 많이 있어서 사랑을 받던 시절도 있었는데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그렇지요, 우리에게도 그처럼 아름답고 존재하는 보람이 있는 시절도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이집 주인마님이 우리들을 거의 매일 같이 닦고 보살피며 끔찍이도 아껴주셨거든, 그때가 정말 살맛나고 보람이 있었던 시절이었지요.”
“우리들 모두가 그렇지만 무엇을 담아 있는지에 따라서 붙여지는 이름이나 하는 일들이 모두 달랐으니까 말이야, 어떤 때는 뜨겁게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있기도 하고, 때로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시원하게 온몸에 묻은 먼지를 씻어내는 날이 있었는가 하면, 서릿발 솟는 엄동설한에 꽁꽁 얼기도 하였고, 때로는 눈이 잔뜩 쌓여서 온몸을 뒤덮기도 하였고, 고드름 매달리는 매섭게 추운 겨울에 얼어터지지 않으려고 몸을 떨기도 하였는가 하면, 갑갑한 땅속에 묻혀서 지내기도 하고 그랬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두들 참으로 여러 가지 힘든 조건에서도 저마다의 맡겨진 일을 말없이 하면서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보람을 가지고 시련들을 이겨내고 견디면서 살아들 왔지 않았겠나.”
“우리들을 챙겨주고 보살피면서 주인어른과 아주머님께서 주변의 산과 들에서 얻을 수 있는 온갖 열매를 따와서 술에 담거나 진액을 우려내기도 하고, 나뭇가지나 풀잎, 식물의 줄기나 뿌리 등을 담아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우려내기도 하였는가 하면,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을 했었지”
“메주를 담아서 된장이나 간장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김치를 담아 익혀서 집안 식구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오는 사람, 가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고 갈 수 있도록 나누어 주기도 하였지요.”
“우리들이야 그냥 내버려 두었더라면 평범한 흙으로 지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솜씨 좋은 장인의 손길을 거쳐서 가마 속에서 뜨거운 불꽃을 견뎌내고 하나의 형체를 갖추고 세상에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야 얼추 비슷하였다고 하더라도 제각기 무엇을 어떻게 담아내는지에 따라서 저마다의 이름이나 용도를 달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 사람들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울면서 태어났지만 일생을 살아가면서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떠한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각기 그가 받는 평가가 다르듯이 우리들도 무엇을 어떻게 담았는지에 따라서 각기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었지 않았겠나.”
“그렇지, 어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좋은 일을 많이 하였다면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남길 수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욕심만을 챙기거나 나쁜 일을 많이 하였다면 좋지 못한 이름을 남기게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우리들이야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기느냐에 따라서 역할이나 이름을 다르게 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나.”
“그렇지, 그런 한 편으로는 우리가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이 저마다의 살아가는 모습들을 지켜보기도 하였고, 사람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것들을 경험하기도 하였지, 참으로 돌이켜보면 기쁘고 즐거운 일도 많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힘들고 고단한 시절도 있었고, 가슴 아픈 일들도 많이 겪었지 않았나, 그만큼 우리가 듣고 경험한 사연도 많았다고 보아야 되겠지”
“우리 집의 아주머니는 참으로 착하고 현숙한 분이셨어, 시부모님을 지극정성으로 편하게 모시고, 남편을 존경하고 섬기면서 살림을 알뜰하게 꾸리는 한편으로 다섯 남매 모두를 사랑으로 감싸고 보살피면서 훌륭하게 키워내고, 여러 가지로 바쁜 가운데에서도 집안을 항상 깨끗하고 청결하게 관리하는가 하면, 주위에는 여러 가지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어서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어 가족모두에게 웃음이 떠날 날이 없도록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이나 지나가는 길손들마저도 즐거워 할 수 있게 만드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거든”
“맞아, 그분은 참으로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데다 정감이가는 분이셨지, 항상 웃음지은 얼굴에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록 작은 마을이기는 하지만 이 동네에서 일어나는 온갖 좋은 일이나 굳은 일에도 마다하지 않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하면서도 앞에 나서서 생색을 내기 보다는 표시나지 않게 조용히 도움을 주거나 조언을 하는 그런 분이셨어”
“우리 집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도 진정한 마을의 어른이셨지만 집안의 며느리인 부인이 현숙한 만큼 아저씨도 부지런히 일하여 살림을 넉넉하게 일구면서도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현명하게 해결하고 이끌어 나가는 실질적인 마을의 지도자이기도 하셨지, 마을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 아버지와 마을 어른들의 조언을 들어서 참고로 하시는 한편으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서 앞장에서서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을 하는 분이셨거든”
“사람이 근본적으로 착하고 부지런하면서도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주는 삶을 살아가다 보면 자연히 복도 들어오게 되어 있어, 우리 집의 아저씨는 개인적인 욕심은 내지 않으면서도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늘 조심을 하면서도 올바른 판단을 하면서도 남다른 추진력이 있어서 모든 일을 신중하게 처리를 함으로서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잠시라도 시간이 있으면 책을 가까이 하는 생활에 익숙하다 보니 자연히 풍부한 지식과 훌륭한 인성을 갖추게 되어 기품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밖에 없지 않았겠나, 참으로 보기 드물게 능력과 인품을 두루 갖춘 점잖은 분이셨어”
“자녀들도 그 조부모와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 그랬는지 모두가 남들에게 나쁜 말을 듣지 않는 훌륭한 인격과 심성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서 사회에 진출하게 되었지, 물론 그런 영향으로 모두들 부러워하는 일자리를 잡아서 이곳을 떠나가게 됨으로서 우리들이 쓰임새가 사라지게 됨으로서 자연스레 버림을 받게는 되었지만, 그러한 것은 세월의 흐름이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겠나.”
“우리들이야 손과 발이 없고 눈마저 없다 보니 어디를 마음대로 다니거나 볼 수가 없어서 사람들이 오고가며 주고받는 이야기를 그냥 앉아서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오랜 세월을 같은 자리에 머물러 지내다 보니 참으로 많은 경험들을 하지 않았겠나, 거기에다 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뿐만이 아니라 오고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주고받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가 있었지 않았겠나.”
“저 위쪽의 집에 살았던 아주머니는 친정이 상당히 살만 하였던 모양으로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의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하다시피 받으면서 부족할 것 없이 자랐는데 가난한 집에 시집을 와서 살다보니 여러 가지로 부족한 것이 많은데다 어렸을 때의 습관이 남아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사치와 낭비가 심하여 소비가 늘어나게 되자 넉넉하지 못한 시댁형편에서 자연히 살림살이가 많이 어려워지게 되었고, 모든 것이 자기의 마음대로 되지를 않으니 자연히 불만이 쌓이게 되어 걸핏하면 시부모와 마음을 상하기 일쑤고, 그렇게 되다보니 자연히 남편과도 갈등이 잦아지게 되었는데, 밖으로 나와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시댁에 대하여 좋은 말을 하기보다는 험담을 늘어놓는 것은 예사였고, 자식들에게도 험한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데다가 함부로 대하게 되다보니 자연히 가정에 불화가 끊이지 않게 되었는데, 수시로 우리아주머니에게 찾아와서는 남편과 사느니 못사느니 하면서 하소연이라고 한다는 것이 집안일에 대하여 좋지 않은 말만 늘어놓지를 않았겠나, 그럴 때마다 아주머니는 개의치 않고 늘 좋은 말로 달래고 위로를 하여서 돌려보내곤 하셨거든”
“아래쪽 집에 살았던 아주머니는 마음씨가 착한 분이기는 하였어도 그 남편이 워낙 술을 좋아 하는데다 바람둥이로 소문이 자자했는데, 집안을 이끌어 나가야 할 가장이라는 사람이 그런 무절제한 생활이 계속되다보니 집안 살림은 제대로 돌보지도 않는 한량이어서 아주머니의 속을 무던히도 썩였거든, 가장이라는 사람이 살림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엉뚱한 짓거리만 하고 다녔으니 아주머니의 입장에서는 고생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지, 그러다 보니 속이 상하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이면 우리 아주머니에게 찾아와서 신세한탄을 하곤 했었지,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어머니가 착해서 그랬는지 자녀들은 잘 자라서 객지로 나가서 저마다의 밥벌이는 하면서 살게 되었고 아버지, 어머니가 연세가 들고 기력이 약해지자 자녀들이 모시고 가는 바람에 이곳의 고향집을 비우게 되었지만 말이야.”
“저 아랫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부모는 착하고 마음이 여려서 그렇지가 않았는데, 자식들이 올바르게 자라지 않는 바람에 부모에게 욕을 먹게 하는 그런 가정이었어,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부모가 자식들에게 만큼은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자녀들을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시킨다고 어린나이에 도시로 보냈는데, 일찍 부모와 떨어져 살다보니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아이들이 부모의 기대와는 다르게 공부를 멀리하였나 보더라고, 아들은 불량배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주먹이나 휘두르고 좋지 않은 일을 하다가 여기저기로 쫓겨서 다니는 날이 많았고, 딸아이는 사내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다가 어떻게 되었는지 부모형제와는 연락도 되지 않는다고 걱정을 하면서 우리 집 아주머니를 만날 때마다 한숨을 내쉬더니 그렇게 세월이 가고 늙어서 내외가 죽자하고 고생만 하다가 세상을 등지게 되니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살던 집은 자연히 버려지게 되어 허물어져서 폐가가 되는 형편이 되고 말았지 않았겠나, 그래서 부모의 마음대로 되지를 않는 것이 자식을 낳아서 키우는 일이라고들 하더라.”
“몇 집 안 되는 작은 동네이기는 하였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지켜보면 저마다의 사연이라든지 애환들이 많기도 하더라고, 어떤 사람들은 별로 애를 쓰지 않는데도 편안하게 잘살아 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죽을힘을 다하여 열심히 노력을 하는데도 어려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착하게 살아가는데도 고생을 하는가 하면, 좋지 않은 일을 밥 먹듯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잘사는 사람도 있더란 말이야, 어떤 사람은 건강에 대하여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사는데도 병으로 고생을 하는 일이 없는 반면, 어떤 사람은 건강에 크게 신경을 쓰면서 몸에 좋다는 것은 가리지 않고 구하여 먹으면서 나름대로는 열심히 관리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병으로 고생을 하거든, 이러한 일들을 보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헷갈리는 때도 있더라고, 모든 것이 인과응보라고들 하는데 아무래도 착하게 살다보면 좋은날도 오지 않겠나.”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우리들이 생활하는 것이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게 되더라고,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는 어떤 것을 담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지거든 햇빛아래나 집안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땅속에 묻혀서 얼굴한번 내밀지 못하면서도 김치나 술을 익혀서 맛있게 만들어 내거든, 물론 다른 물건들을 담아두기도 하고 똥오줌 같은 것을 담아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야,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명예나 가치가 달라지더라고, 평생을 훌륭하게 살아서 칭송과 숭배를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삶이 올바르지 않아서 악취를 풍기고 역사에 좋지 않은 이름을 남기는 사람도 있거든”
이상하게 생긴 무리들의 저희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한참을 호기심을 가지고 재미있게 듣고 있다가 문득 잠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장마철 날씨답게 억세게 내리던 비는 어느새 그쳐있고 몰려가는 구름사이로 잠간씩 맑은 하늘과 더불어 구름사이로 내려 비치는 햇살마저 보인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데 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위를 살펴보자 특이한 모양이기는 하였어도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래야 허물어져 가는 집의 주변에 놓여있는 몇 개의 낡은 옹기들과 사기그릇들 이외에 깨어지고 흩어져서 여기저기에 나뒹굴고 있는 사금파리 조각들뿐이다.
자신이 잠시나마 약한 잠이 들어서 꿈결인 것처럼 느껴지는 가운데 누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참으로 괴이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람들이 오랫동안 사용하여 손때가 짙게 배어있는 가재도구 같은 것들은 쓸모가 없게 되었다고 해서 함부로 아무 곳에나 버리게 되면 허깨비가 되어 나타나서 사람들을 괴롭힌다.’라고 하는 어른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와 대비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해 본다면, 사람들이 평소에 사용하던 물건들을 부서지거나 닳아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고 함부로 마구 버리게 되면 환경을 오염시킬 수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을 방지하기 위하여 아무리 용도가 다하여 버려지는 물건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렇게나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되고, 부득이 버려야 할 때에는 반드시 불에 태워버리거나 파기를 해서 땅을 깊게 파고 묻어서 환경이 나빠지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교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한편으로는 이상한 일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어서 바쁘게 나뭇짐을 챙겨서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8. 광대바위 헛거시
“야, 애들아, 한 번 들어 봐라, 다들 조용히 하고 자세히 들어 보라고, 저 위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너희들에게는 아무런 소리도 안 들리나?”
“뭐라고? 어디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우리는 아무런 소리도 못 들었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그러는 거야?”
“그러지 말고 자세히 들어봐, 저 위쪽 골짜기에서 매구(농부들이 두레를 짜서 일을 할 때 꽹과리·징·장구·북과 같은 타악기를 치며 행진·의식·노동·판놀음 등을 벌이는 농악놀이)치는 소리가 나는 것 같거든. 모두들 조용히 하고 자세히 한 번 들어보라고, 분명히 저 위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거든.”
“무어, 매구를 친다고? 지금 이 시간에 누가 이런 산골짜기에서 매구를 치면서 놀고 있다고 그러는데, 더구나 날씨도 이렇게 좋지 않은데, 괜히 이상한 소리 하지마라”
“아이 참, 그런 것이 아니라니까, 다들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들어보라고, 저 위 골짜기에 있는 바위 앞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매구를 치면서 놀고 있는 것 같은데, 너희들에게는 아무것도 안 보이나.”
“글쎄,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뭐가 보인다고 그래, 보이는 것이 없을뿐더러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니까, 자꾸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아니야, 그런 것이 아니라니까, 저 위를 자세히 보라고, 분명히 매구치는 소리가 들리는데다 매구를 치면서 놀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니까”
저마다의 놀이에 열중하면서 재미있게 놀고 있던 아이들은 갑자기 한 아이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 아이가 가리키는 쪽으로 눈을 돌리고 문제의 바위가 있는 곳을 쳐다본다.
“어! 그렀네,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분명하지는 않지만 알록달록하게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매구놀이를 하면서 놀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네, 그런데 참말로 이상하지 않아? 날씨도 좋지 않은 이런 날에 저런 깊은 산골짜기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놀고 있는 것일까?”
“야, 그렇기는 한데 저기에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었는데, 더구나 우리가 있는 이 길이 아니면 저곳으로 가는 길이 없잖아, 산의 위쪽에서 내려온다면 몰라도. 거기에다 우리가 여기에서 놀고 있을 때에 지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참말로 이상한 일이네.”
여름 장마철이라 며칠을 이어서 비가 내린데다 이날은 안개비가 소리 없이 산골짜기를 휘감아 돌아서 조금 거리가 먼 곳은 잘 보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숲이 우거진 골짜기라서 어딘지 모르게 으스스한 느낌마저 느껴지는 날씨이기는 하지만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10여명의 아이들이 평소에 그렇게 해 왔었던 것처럼 소를 먹이거나 소에게 먹일 꼴을 베어서 지게에다 묶어 놓고는 해가 질 때까지 남는 시간에 저희들끼리 모여 앉아서 놀이를 하고 있다.
몇 명의 사내아이들은 넓적한 바위에 윷판을 그려 놓고 편을 갈라서 윷놀이를 하고, 여자아이 들은 그 아래쪽에 흙바닥을 평평하게 골라서 둘러앉아 작은 돌을 주워서 공기놀이를 하면서 놀고 있다.
아이들이 놀이에 집중을 하고 있는 주위에는 소들이 풀을 뜯어 먹거나 풀밭에 앉아서 되새김질을 하고 있는 한가로운 정경이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서 아침에 산에다 풀어놓은 소를 몰러 왔다가 저마다의 할 일을 끝내고 둘러앉아서 놀고 있었던 것이다.
“야, 저 위쪽을 자세히 보라고, 뚜렷하게 모양이 보이지는 않지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바위 아래쪽에서 매구를 치면서 놀고 있는 것 같은데, 너희들에게는 안 보이나?”
“아니야, 우리에게도 어떻게 보면 줄을 지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놀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일까? 거리가 조금 멀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자세하게 얼굴이라든지 모습이 보이지는 않는데 아마도 안개가 껴서 그런가 보다.”
“이렇게 날씨도 좋지 않은데 그것도 이런 산골짜기에서 갑자기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매구를 치면서 놀고 있다는 것은 어딘가 좀 이상한 것 같지 않아?”
“아니야, 조금 더 자세히 보라고, 어떻게 보면 사람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무엇인가 이상하기는 한데, 혹시 도깨비가 아닐까?”
아이들은 각자가 저마다의 느낌을 한마디씩 하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한 아이가 약간은 겁을 먹은 것 같은 목소리로 ‘도깨비’라고 하는 말에 같이 놀고 있던 아이들의 얼굴빛이 바뀌면서 무서움에 어떻게 할 바를 모르고 몸을 움츠리거나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아이도 있다.
그나마도 다행스러운 것은 아이들이 모여서 놀고 있는 장소에서 아래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산기슭을 따라서 약간의 평지가 있는 곳에 다락논과 밭이 있고, 논에서 몇 명의 어른들이 논두렁의 풀을 베거나 김매기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한 아이가 꺼낸 도깨비라는 말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아이들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다소 나이가 많은 아이들이 어리거나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리려고 하는 아이들을 달래가면서 어른들이 일을 하고 있는 곳으로 허겁지겁 뛰어서 내려가면서 고함을 지른다.
“아저씨, 큰일 났어요, 저 위에 있는 골짜기에서 매구치는 도깨비들이 나타났어요.”
아이들이 무서움에 새파랗게 질려서 소와 지게 등은 내버려 둔 채로 산길을 급하게 뛰어 내려오면서 소리를 질러댄다. 저희들끼리 어울려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산길을 뛰어내려 오면서 외쳐대는 소리에 어른들이 일을 하다말고 허리를 펴고 일어서서 아이들이 뛰어 내려오는 곳을 보면서 아이들을 달랜다.
“애들아 갑자기 도깨비라니, 이런 한낮에 어디에서 무슨 도깨비가 나타났다고 그러느냐? 괜찮다. 겁내지 말고 천천히 내려오느라, 그렇게 급하게 뛰어서 오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다친다.”
“아니에요, 그런 것이 아니라니까요, 저 위쪽을 한번 보세요, 저 위에 있는 붉은색의 바위 아래에서 갑자기 도깨비들이 여럿이 나타나서 저희들끼리 매구를 치면서 놀고 있어요.”
“그래? 어디야, 저 위에?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안보이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뭐가 나타나고,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그러는 거냐?”
어른들이 무서움에 몸을 움츠리며 어찌할 줄을 모르고 급하게 뛰어서 내려온 아이들을 달래어서 안정을 시킨 다음에 도깨비가 나타났다고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면서 아이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듣고 있더니
“그래 너희들 말처럼 어떻게 들으면 무슨 소리가 나기는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도 않은 것도 같은데, 얼핏 무엇인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희끄무레한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이는 것도 같기는 하다.”
“안개가 옅게 끼인데다가 약하기는 하지만 비도 내리고 하는 날씨 탓에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가만히 지켜보면 희끄무레하게 사람처럼 보이는 이상한 무엇인가가 왔다 갔다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다”
어른들도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는 한참동안을 지켜보더니 저마다의 느낌을 한마디씩 하면서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아이들이 가리키는 산골짜기를 주의 깊게 쳐다보고 있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만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같이 저곳에 한번 같이 가보자. 가서 보면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가 있지 않겠나?”
“그래,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보았고 이상한 소리도 들었다고 하니까, 괜히 지어낸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우리가 같이 저기에 가서 무슨 일인지 확인을 해보자”
어른들이 의견을 맞추고 산골짜기를 따라 바위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서 주위를 살펴보면서 무엇인가 이상한 것이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도깨비가 있었다고 하는 주변을 한참동안 둘러보아도 특별하게 눈에 띄는 것은 찾아 볼 수가 없는데다가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아이들이 놀고 있었던 곳으로 내려오자 방금 확인을 하고 온 장소에서 다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어떻게 들으면 매구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알록달록하게 광대복장을 갖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춤을 추면서 저희들끼리 놀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이 흐릿하기는 하지만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되자 아무런 일도 없을 것이라면서 아이들을 달래고 안심을 시켰던 어른들도 다소간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아이들이 베어 놓은 풀과 지게를 챙기고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을 몰아서 아이들과 함께 서둘러서 산을 내려와 마을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산속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마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게 되었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마을의 연세가 드신 노인들이 말씀을 하신다.
“옛날부터 광대바위에는 안개가 끼거나 비가 오는 굳은 날이면 간혹 광대도깨비가 나타나 매구놀이를 하면서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윗대부터 전해오고 있기는 했어, 그렇기는 해도 우리가 실제로 도깨비를 만났거나 본적은 없어”라고 하시면서 이전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광대도깨비와 더불어 그 아래 자네들이 일을 하고 있던 곳에서 도랑너머 오른쪽 산비탈에 있는 송곳바위와 가마바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러한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가에 대해서는 진위를 알 수는 없고 우리도 윗대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에 불과 하니까 믿기는 어렵지만...”하시면서 이들 3개의 바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비록 높은 산은 아니지만 면적이 넓은 만큼 골짜기가 많아서 맑은 물이 1년 내내 마르지 않고 흘러내리기 때문에 나무와 풀이 잘 자라서 숲이 우거지고 사람과 야생동물을 비롯하여 여러 생명들이 살아가기 좋은 마을이다.
마을의 앞으로는 사계절을 두고 맑은 물이 끊이지 않고 흐르는데다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철이면 산골짜기마다에서 흘러내리는 여러 갈래의 물줄기들이 한 곳으로 모여서 많은 양의 물이 흐르고, 제법 규모가 큰 하천의 건너편에는 골짜기를 따라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큰길이 통하고 있어서 옛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직업에 따라서 말을 타거나 가마를 타기도 하고 혹은 등짐을 지거나 머리에 이고 장사를 하기 위해서 다니기도 했었다.
소와 염소를 기르는 집에서는 사람이 먹을 양식조차도 부족하여 흉년이라도 들게 되면 산이나 들에서 나는 나물을 비롯하여 풀뿌리와 나무의 열매나 껍질 등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으로 끼니를 때워야 할 정도로 어려웠던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주린 배를 채우고 목숨을 이어가야 하는 힘든 시기를 살아야 하는 어렵고 힘겨운 시대였기 때문에 집에서 기르는 소와 염소에게까지 곡식을 먹일 수가 없어서 봄부터 가을까지는 마음대로 풀을 뜯어 먹을 수 있도록 산에다 풀어 놓아서 길렀다.
아침이면 아이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바쁘게 소를 몰고 나가서 산에다 풀어 놓고 오후에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면 산으로 가서 소를 찾아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 때에 사내아이 들은 땔감용 나무를 하거나 소와 염소에게 먹일 꼴을 베어서 짊어지고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고, 여자 아이들은 산나물이나 쑥을 캐기도 하고 땔감으로 이용할 나무를 해서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 왔다.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과는 다소의 거리가 먼 산골짜기 가운데서 소를 풀어 놓고 먹이기에 좋은 2개의 골짜기가 있어서 다소 큰 골짜기는 이름을 ‘큰 소먹이 골’, 작은 골짜기는 이름을 ‘작은 소먹이 골’이라고 하였지만 사람들이 부르기 쉽게 ‘소멕골 또는 소맥골’이라고 부르는 골짜기가 있다.
이 소먹이 골에 마을 사람들이 ‘송곳바위’, ‘가마바위’, ‘광대바위’라고 부르는 3개의 바위가 있는데 송곳바위는 긴 삼각뿔 모양으로 꼿꼿하게 하늘을 향하여 서있고, 이 바위에서 약 30~40걸음 정도 떨어진 아래쪽에는 직육면체에 가까운 커다란 가마바위가 있는데, 이들 바위가 있는 장소에서 골짜기를 따라서 상당히 위쪽으로 올라간 곳에는 붉은 색의 이끼가 군데군데 붙어 있어서 멀리서 보면 마치 피라도 묻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위가 광대바위로 이들 바위에 얽힌 이야기가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마을의 앞쪽으로는 이쪽 고을과 산 너머 고을을 이어주는 유일한 큰길이 통하고 있어서 여러 가지 직업이나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바쁜 일이 없는 비수기를 맞은 사람이나 단체는 수입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비용을 절약하기 위하여 일정기간 평지를 이용하여 천막 등을 설치하거나 민가에 세를 얻기도 하고 주막에 자리를 잡아서 머물렀다 가기도 하였다.
이들 가운데 한 무리의 광대(가면극, 인형극, 줄타기, 땅재주, 판소리 따위를 하던 직업적인 예능인의 무리)패가 일이 없는 비수기가 되면 산기슭의 평탄한 장소에 자리를 잡아서 커다란 천막을 쳐놓고 임시숙소를 마련하여 머물렀다 가기도 하였는데, 이들 일행들 가운데 서로가 좋아하는 사이인 처녀와 총각이 있었다.
두 사람은 시간이 있을 때마다 남들의 눈을 피하여 만나서는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였는데, 이들 광대무리 가운데 은근히 처녀를 짝사랑하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여 저희들끼리 남몰래 만나는 처녀와 그 처녀가 좋아하는 총각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품은 사람이 있었다.
이렇게 좋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느 날 자기가 마음에 두고 있는 처녀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것에 격분하여 이들 처녀와 총각을 아무도 모르게 죽이게 되었고, 죽어서라도 만나지 못하고 서로가 그리워하면서 바라보고만 있으라고 하는 고약한 생각으로 산속에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묻어 버렸다.
그런 일이 있고난 다음에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총각을 묻었던 자리에는 ‘송곳바위’가, 처녀를 묻었던 자리에는 ‘가마바위’가 생겨났다고 하며, 총각과 처녀를 죽여서 아무도 모르게 묻어버린 그 사람도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골짜기를 따라서 한참을 올라간 곳의 바위의 아래쪽에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고, 그때 흘린 피가 바위에 그대로 묻어서 바위가 붉은 색으로 물들었는데 비가 오거나 날씨가 어둑어둑하고 으스스한 날이면 광대복장을 한 헛거시 패들이 나타나서 꽹과리와 징, 소고 등의 악기를 치고 나팔과 피리를 불면서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사람들이 간혹 보게 되었다고 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이런 일이 이어지자 마을 사람들은 광대 허깨비들이 나타나서 놀고 있던 바위의 이름을 ‘광대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며, 비가 오는 날이나 안개가 끼고 궂은 날이나, 해가 지고 으스름한 저녁 무렵이면 광대바위 아래에서 한 무리의 광대복장을 한 헛거시들이 나타나서 매구를 치면서 춤판을 벌이는 것은 원통하게 죽은 처녀 총각의 영혼을 위로하고 아무런 죄도 없이 사랑하는 총각과 처녀를 죽여서 묻어버린 나쁜 광대를 징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 광대와 사당패.
예인들의 집단은 ‘창우집단’ 혹은 ‘광대집단’이라 불리기도 한다. 천민들로 구성된 신분집단이자 기능집단이기 때문에 전통연희를 했던 아전집단 즉, 중인출신 동호인 집단과는 성격이 다르다. 조선후기의 예인집단은 주류집단과 아류집단으로 나누어지며, 주류집단은 조직과 학습 프로그램 그리고 개성적 레퍼토리를 가졌고, 아류집단은 주류집단을 모방하거나 조직의 규모 및 결속력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사당패는 모갑(某甲)이라는 남성 인솔자와 역시 남성인 거사(居士) 그리고 여성인 사당들이 모인 여성중심의 공연전문 예인집단으로 불교사찰과 공생관계에 있었다. 사당패들은 안성 청룡사를 위시하여 황해도 구월산의 패업사, 경상도 하동의 쌍계사, 전라도 함열의 성불암, 창평의 다주암, 함평 월앙산, 정읍 동막, 담양 옥천 등에 주로 근거지를 두었다. 김홍도의「사당유희도(寺黨遊戱圖)」와 신재효의 ‘박흥부가’, ‘변강쇠가’ 최영년의 ‘해동죽지’등에서 사당패는 도회지나 장시를 근거로 공연하며 화려하게 옷을 차려입고 춤과 노래를 했다. 평안도부터 서울 주변에서 활동했던 사당패와 호남지역을 근거로 활동했던 사당패의 공연 내용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정현석의 ‘교방가요’에 의하면 사당패의 레퍼토리는 놀량춤 외에 ‘방아타령’, ‘산천초목’ 등과 같은 잡가나 민요였다. (참고 : 한국민속 문화대백과사전 발췌).
9. 상엿집 헛거시
산기슭을 따라서 양쪽으로 숲이 우거져 있고 오랜 세월 빗물에 흙이 쓸려 내려 가버리고 길바닥에는 너들처럼 돌들이 촘촘하게 깔려있는데다 나무의 뿌리들이 이리저리 어지럽게 얽히고설켜 있어서 조심을 하면서 걸어야하는 길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다니지는 않지만 지름길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여럿이 무리를 지어서 학교를 다니거나 어른들도 가끔씩 오고가는 길이다.
산길이 끝나가는 즈음에는 사철 끊이지 않고 물이 흘러내리는 상당한 규모를 갖춘 하천이 있어서 장마철이 되어서 비가 많이 내리면 물이 불어나서 하천을 채우고 세차게 흘러서 사람이 건너다닐 수가 없기 때문에 조금은 거리가 멀기는 하더라도 상당히 아래쪽에 놓여있는 다리를 이용하지만, 비가 내리지 않을 때에는 징검다리를 이용하여 얕은 시냇물을 건너게 되면 논밭사이로 나있는 농로와 이어지는 한적한 길이다.
하천을 만나기에 앞서 가까이에 있는 산길의 옆쪽에는 마을에서 초상이 났을 때에 사용하기 위한 상여를 보관해 두는 낡고 오래된 상여집이 있어서 평소에는 그렇지 않지만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내리는 궂은 날이라든지, 하루의 해가 기울고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릴 무렵이면 상여집이 있다는 선입견 때문에 그런 괴담이 생겨나게 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간혹 허깨비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어서 사람들이 다니기를 꺼려하는 그런 길이기도 하다.
상여는 사람이 죽어서 장례를 지낼 때에 죽은 사람을 집이나 장례식장에서 장지까지 운반하는데 사용되는 기구로 상여의 기본적인 틀은 잘 마른 나무로 짜서 맞추고 광목이나 삼베 같은 천으로 단단하게 묶어서 고정을 시키고 그 위에 죽은 사람의 시신이 들어 있는 관을 앉혀서 흔들린다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비끄러매고 바깥에는 될 수 있으면 무게를 줄이기 위하여 작은 나무막대나 대나무로 틀을 짜서 비단이나 광목, 삼베 등으로 외부를 둘러서 종이로 만든 꽃으로 장식을 하고 아래에는 상두꾼들이 어깨에 멜 수 있도록 왼편으로 돌려서 크게 꼰 새끼줄이나 광목천을 이용하여 단단하게 묶어서 완성을 시키는데, 장례 시에는 10여명 내외의 상여꾼들이 상여를 어깨에 메고 선소리꾼의 선도에 따라서 장지에까지 운반을 하게 된다.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에는 상여를 꾸미고 있던 외부의 여러 가지 장식이라든지 소품들은 뜯어내서 태워버리지만 상여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기본 틀은 재활용을 하게 되는데, 사람이 죽어서 장례를 치를 때마다 생나무를 베어다 사용하게 된다면 수년간 자란 나무를 베어내는 것도 문제이지만 생나무이기 때문에 무거워서 운구를 할 때에도 상당한 힘이 든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상여의 틀은 재활용을 하게 되는데 죽은 사람의 시신을 운구(運柩)하는데 사용되는 기구이므로 죽은 사람의 혼이 붙어 있다거나 부정을 탄다거나 하는 좋지 않은 느낌을 가지고 있어서 인가와는 다소 멀리 떨어진 장소에 별도의 집을 지어서 보관을 해 두었는데 이 집을 ‘상여집’이라고 하였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다니기를 즐겨하지 않는 길이지만 이날은 나름대로 마을에서 힘깨나 쓴다고 거들먹거리면서 걸핏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거친 행동을 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꼬투리를 잡아서 행패를 부리기도 하고, 술주정이 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될 수 있으면 멀리하려고 하는 ‘신씨’가 나들이를 갔다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어울려서 술을 마음껏 마시고 몸을 제대로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취하여 기분이 좋아서 콧노래까지 흥얼거려 가면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흔들리는 걸음으로 보슬비가 약하게 내리는 날씨인데다 어둑어둑 깊어가는 늦은 저녁 무렵에 상엿집 옆으로 지나는 산길을 걸어가고 있다.
‘어이, 거기 가는 신씨, 어디 좋은 곳에라도 다녀오는 길인가? 오늘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이는 것 같은데, 누구와 기분 좋게 한잔 하셨나 보지?’
술에 취하여 한껏 기분이 좋아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비틀거리는 걸음을 걸으며 집으로 가고 있는 신 씨에게 갑자기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다.
“어! 그래, 나 오늘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기분이 좋아서 한잔 했다. 그래서 네가 뭘 어쩔래. 내가 한잔 하는데 네가 뭐 보태준거라도 있어?, 괜히 길가는 사람을 잡고 시비야, 그건 그렇고 너는 누구냐? 너 말이야 대관절 뭐하는 녀석인데 나에게 시비야, 짜식 내가 누군 줄 알고 건방지게 말이야”
술에 취하여 몸을 제대로 가누는 것조차도 어려워 보이는데다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상대를 향하여 아주 못마땅하다는 투로 대답을 한다. 그러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상대의 대답이 거칠게 나오다 보니 자연히 상대방의 말도 곱지가 않다.
‘글쎄, 뭐, 내가 당신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내가 보기에 당신이 한잔하고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 같아서 그냥 물어본 것인데 대답이 왜 그 모양이야’
“야, 임마, 내가 한잔을 했건, 열 잔을 했건 내가 기분이 좋거나 좋지 않거나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네가 내게 술이라도 더 사주겠다는 거야 뭐야, 괜히 길가는 사람을 잡고 시비를 하고 있어, 자식이 정말로 웃기는 녀석일세.”
평소의 버릇대로 술에 취한 신 씨는 자기에게 말을 걸어오는 상대방에게 대단히 못마땅하다는 투로 대답을 한다. 그렇게 되자 자연히 되돌아오는 대답도 곱지가 않다.
‘야! 그냥 기분이 좋아보여서 별다른 의미 없이 물어보는 건데 대답이 왜 그 모양이냐, 이 자식 이거 좋게 보내줄려고 했더니 그냥 보내줘서는 안 되겠는데, 너 오늘 잘 만났다 혼이 좀 나야 좋지 않은 버릇을 고치고 정신을 차리겠구나.’
“뭐야? 당신, 지금 나보고 뭐라고 했어? 그래! 네가 나를 곱게 보내주지 않겠다고? 거기에다 나를 혼을 내겠다고, 이 자식이 누구에게 혼을 내겠다는 거야, 너 이 자식 내가 누군 줄 알고 겁도 없이 건방진 소리를 하는 거야, 이 녀석 이거 오늘 나에게 좀 맞아야 되겠구나.”
이처럼 상대방에 대하여 감정 섞인 말들이 몇 번이고 오고가자 신 씨가 평소의 버릇대로 거친 말을 하면서 상대방에게 주먹부터 앞세우려 든다.
‘어, 이 자식 봐라, 그래? 너 이 녀석, 평소에 좋지 않은 버릇이 또 나왔구나, 오늘 너 아무래도 그냥 보내서는 안 되겠구나, 혼이 좀 나야 정신을 차리겠다.’라고 하면서 기분이 언짢았는지 신 씨의 발을 걸어서 길바닥에다 사정없이 내동댕이를 쳐버린다.
술에 많이 취하여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예상하지 못한 상대방의 갑작스런 공격에 발이 걸려서 길바닥에 사정없이 나뒹굴어져버린 신 씨가 겨우 몸을 추스르고 일어서면서 잔뜩 화가 나서는 “아이쿠, 야, 너 이 자식아, 지금 네가 나를 밀쳤어?, 그러지 않아도 마침 온 몸이 근질근질하여 누구라도 걸리기만 해봐라 하던 차에 잘 걸렸다. 감히 나를 넘어뜨렸어, 이자식이 내가 누군 줄 알고 겁도 없이 대들고 시비를 하는 거야, 오늘 너 나에게 맛 좀 봐라”
넘어졌던 자리에서 몸을 추스르고 일어선 신 씨는 예상치도 못한 상태에서 졸지에 당한 일인지라 몹시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하여 자신을 넘어뜨린 상대를 향하여 소리를 지르면서 거칠게 달려든다.
“너, 이 녀석 그렇지 않아도 누구든 걸리기만 해봐라 하던 차에 마침 잘 걸렸다. 오늘 나에게 한번 당해봐라. 이 자식이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까불고 있어, 감히 겁도 없이 나를 건드렸어.”
같은 말을 되풀이 하면서 거칠게 달려드는 신 씨의 격한 행동에 상대는 꿈적도 하지 않고 또다시 신 씨의 발을 걸어서 사정없이 넘어뜨려 버린다. 그러자 넘어졌던 자리에서 몸을 털고 일어선 신 씨가 화가 잔뜩 나서는 자신의 발을 걸어서 넘어지게 한 상대를 잡아보려고 팔을 휘저어 보지만 손에 잡히지 않으므로 헛손질만을 거듭하고 있다.
신 씨의 말과 행동이 난폭해지면 질수록 상대방도 이에 질세라 더욱 거칠게 나오기 시작하면서 얼굴이나 팔, 다리 등을 닥치는 대로 후려치기 시작하는데, 신 씨는 몸을 제대로 가누는 것조차도 어려운 상태인지라 상대를 공격할 때마다 발이 걸리거나 다리가 떠밀려서 넘어지기도 하고, 등이 밀쳐지거나 머리채가 잡혀서 나뒹굴어 지거나, 이마와 얼굴이 긁혀서 상처를 입기도 하면서 일어서서는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다가 넘어지기를 되풀이 하고 있다.
이처럼 아무리 발버둥을 치면서 달려들어 보아도 상대방의 몸을 붙잡기는커녕 옷자락 한 자락도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 채로 일방적으로 당하기만을 수차례 반복하다보니 신 씨도 어느새 술이 조금씩 깨기 시작하면서 은근히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야, 그런데 이 자식 너는 대체 누구냐? 너 도대체 뭐하는 녀석이야?”
아무리 발버둥을 치면서 있는 힘을 다해서 달려들어 보아도 공격을 하면 할수록 그때마다 상대방에 대하여 제대로 대응을 하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할 뿐으로 상대방의 옷자락은 고사하고 머리카락 한 올도 잡지를 못하면서도 평소의 좋지 않은 버릇대로 자존심은 살아 있어서 큰 소리를 치면서 막무가내로 달려들어 본다.
‘이 녀석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그래, 내가 누구냐고? 이 녀석아 나는 이 집에 살고 있는데 사람들이 나를 헛거시라고 부른다. 왜, 이제 알아보겠냐?’라고 하면서 이번에는 신 씨의 옷자락과 상투를 잡아끌어서 길바닥에다 그대로 팽개쳐 버린다.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길바닥에 넘어져 버리자 황당하기도 하였지만 전신이 아파오는데, 나름으로는 그런대로 힘깨나 쓴다고 자부를 해온 터라 기분이 상하고 화가 나서 참아내기가 어렵다. 겨우 몸을 털고 일어서면서도 나름대로의 자존심만은 살아 있어서 큰소리를 치면서 허세를 부려본다.
“뭐야! 네가 헛거시라고? 그래, 그렇다고 치자, 헛거시가 뭐하는 놈인데, 야,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나는 그런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어, 이 자식,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겁이나 먹을 줄 알았지,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대체 너 뭐하는 놈이야?”
상대에게 손 한번 써보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면서도 거친 성격은 그대로 살아있어서 큰소리를 치면서 허세를 부려보지만 상대를 이겨낼 수가 없는데다 길바닥은 돌과 나무뿌리 등으로 어지럽게 엉켜 있어서 넘어지게 되면 다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거듭되는 거칠고 난폭한 행동으로 넘어졌다가 일어서기를 거듭하다보니 손과 무릎은 말할 것도 없고 온 몸이 긁히거나 찢어지고 멍이 들면서 고통이 전해오기 시작한다.
이렇게 힘든 실랑이가 오랫동안 이어지게 되면서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가운데 조금씩 술이 깨고 정신이 들기 시작하자 차츰 무서운 생각마저 들기 시작하면서 겨우 정신을 가다듬어서 땅바닥을 기다시피 도망을 쳐서 산길을 벗어나 물이 얕은 시내를 건너고 논밭사이 길을 지나서 집으로 왔을 때에는 옷과 머리는 여기저기가 찢어지거나 긁히고 풀어헤쳐져서 보기에도 흉한 모습인데다 온 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여기저기에 피가 굳어 붙어서 반쯤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
입은 옷은 여러 곳이 찢어진 데다 흙투성이가 되어 있고, 머리는 풀어헤쳐져서 봉두난발을 하고, 얼굴은 넘어져서 긁히고 부어서 보기에도 민망하게 변해 있는데다 얼굴과 팔다리를 비롯하여 온 몸의 여러 곳이 찢어지기도 하고 긁혀서 상처가 생기고 피가 말라붙어 있어서 반쯤은 혼이 나간 사람이 되어서 흉측한 모습으로 돌아온 사람을 보고 가족 모두가 놀라기도 하고 크게 걱정을 하면서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온다.
“아이고, 이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렇게 늦은 밤에 무엇을 하다가 그렇게 험한 모습을 하게 되었어요, 오늘도 또 누구하고 다투기라도 했나요? 제발 정신을 차리고 술은 좀 적당히 마시고 다녀요”
“아이고, 그런 말은 하지마라, 내가 다투기는 누구랑 다퉈, 그런 것이 아니야, 나 오늘 잘 못되었더라면 죽을 뻔 했다. 내가 집으로 오다가 저 아래 상여집이 있는 곳에서 이상한 녀석을 만나서 그 녀석과 시비가 붙어서 여태까지 죽어라하고 당하기만 하다가 겨우 도망을 쳐서 오는 길이야”
“뭐라고요, 상엿집이 있는 곳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시비가 붙어서 싸우다가 그랬다고요?”
“그래, 그렇다니까, 아이고 말도 마라, 나도 힘깨나 쓴다고 자부를 하는 편인데, 자기의 말로는 이름이 헛거시라고 하는 그 녀석에게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 그 녀석과 다투다가 아무리해도 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겨우 도망을 쳐서 오는 길이라니까”
“뭣이라고요, 오는 길에 헛거시를 만났다고요? 그렇다면 그것이 어떻게 생겼던가요? 당신에게 조차 힘든 상대였다니요.”
“글쎄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아, 그 녀석의 얼굴이나 모습은 아예 보지도 못했으니까, 내 생각에 그냥 키는 훌쩍 크고 시커먼 옷을 입고 있었던 것 같았거든. 거기에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손에는 단 한 번도 잡히지를 않았어, 그러니 어떻게 당해낼 재간이 있어야지, 살다 살다 별 이상한 녀석을 만났다니까.”
“그랬어요?, 그렇게 무서운 상대였나요? 아이고 당신 오늘 하마터면 큰 일 날 뻔 했어요, 말로만 듣던 허깨비를 만났네요. 그나마 이정도로 당한 것만으로도 천만 다행으로 생각 하세요”
“아이고 말도 마라, 다시는 생각조차 하기 싫어, 글쎄 일면식도 없는 녀석이 내가 한발 내 디디려고 하면 발이나 다리를 걸어서 넘어뜨리지, 조금이라도 걸어서 오려고 하면 뒤에서 옷이랑 머리카락을 잡고 잡아당기지, 앞으로 가려고 하면 얼굴이나 몸을 사정없이 후려치지, 그러면서도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데다가 손에는 잡히지를 않으니까 어떻게 할 방법이 있어야지, 정말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는 무서운 녀석 이었어”
“그것 봐요, 그러니 평소에 술 좀 적당하게 마시고 다니세요, 술에 취하면 다른 사람에게 시비나 걸고 다투려고 하는 나쁜 버릇도 이참에 고쳐야 해요, 그리고 제발 밤늦게 다니는 것도 고치고 정신 좀 차리세요.”
신 씨가 허깨비를 만나서 밤새워 식겁을 하고 난 다음날 술이 깨자 온 몸이 쑤시고 아파오는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잘못 했더라면 죽을 수도 있었겠다고 하는 무서움과 두려움으로 소름이 돋으면서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른다.
그러나 사실은 술에 취하여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상태에서 비틀거리면서 거친 산길을 걸어 왔으므로 길바닥에 울퉁불퉁 깔려있는 돌부리를 차서 넘어지기도 하고, 이리 저리 엉켜있는 나무뿌리에 걸려서 넘어지거나, 길 위로 뻗어 있는 나뭇가지에 입고 있는 옷이나 머리털이 걸려서 넘어지게 된 것을 상대가 잡아당기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되었고, 앞으로 나가려고 하면 뻗어 있는 나뭇가지가 얼굴에 부딪히게 된 것을 허깨비가 자신의 얼굴이나 몸을 때린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굴러서 넘어지게 되면 일어서고, 조금 높은 둑에서 떨어졌다가 기어오르기도 하기를 반복하였으므로 얼굴과 온 몸이 긁히거나 다쳐서 상처투성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옷이 찢어지게 된 것으로, 허깨비를 만났다는 것은 술에 취해서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힘들고 혼란스럽고 무서운 일을 당하고 난 다음부터는 정신을 가다듬게 되어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지나치게 많이 마시지 않고 절제를 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걸핏하면 술에 취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시비를 하거나 행패를 부리는 일도 하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정에도 충실한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10. 죽부인 허깨비
대부분 10대 후반부터 20대 중초반이면 결혼을 하지만 집안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여 3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결혼을 하지 못하고 이 고을과 저 고장에서 열리는 장터를 찾아다니며 봇짐장사를 하면서 부모를 봉양하면서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 살림을 꾸리며 살아가는 청년이 있었다.
훤칠한 키에 인물도 좋지만 여러 고장을 다니느라 그런지 신체는 건강하고 많은 고객들을 상대로 물건을 거래하기 위하여 노력한 결과로 입담이 좋은데다 성격마저 서글서글하고 원만하여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
오늘 하루도 준비해간 물건을 모두 팔고 늦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찌는 듯이 뜨거운 해살이 내리쬐는 낮 시간이 지나가고, 땅거미가 내리는 어둑한 산길에 희미한 달빛과 별빛에 의지하여 외로이 걷다보니 이날따라 산길을 넘는 사람이 없는 한적하고 어딘지 모르게 적막함마저 느껴지는 가운데 등에 짊어진 괴나리봇짐을 벗하여 오롯이 혼자만의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평소에도 자주 다니는 길이기는 하지만 그 때에는 동행하는 일행들이 있어서 서로가 의지를 하면서 길동무가 되어서 이렇다 할 어려움이나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다녔었는데 이날따라 다니는 사람이 없는 어두운 산길을 혼자서 걸어가자니 어딘지 모르게 약간의 외로움과 함께 두렵다는 생각마저 밀려온다.
여러 사람이 함께 동행을 하면서 서로 간에 이야기를 나누어가며 다닐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적막한 감정들이 몰려오면서 차라리 산 아래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일찍 길을 떠날 것을 잘못 했나하는 뒤늦은 후회마저 하면서 길을 가다보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나서기는 하였지만 오늘따라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되돌아갈 수도 없었으므로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산 아래에 있는 주막에서 미리 저녁을 든든하게 챙겨서 먹은 후에 배가 고플 때를 대비하여 약간의 마른 음식까지 준비를 하였으므로 배가 고프다거나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은 없었지만 어두운 산길을 오랜 시간 긴장된 마음으로 걷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피로감이 몰려온다.
그렇다고 산속에서 잠을 잔다거나 쉬었다 갈수는 없었으므로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피로함을 무릅쓰고 어디 쉴만한 곳이 없을까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면서 어두운 산길을 한참동안 걷고 있을 때 저 멀리에서 흐릿하게 불빛이 보인다.
비록 멀기는 하지만 불빛이 보인다는 것은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희미하기는 하지만 멀리서 보이는 불빛에 기운을 얻어서 빠른 걸음으로 좁게 나있는 산길을 따라서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다가 가자 짐승들의 출입을 막기 위하여 나지막한 돌담으로 울타리가 둘러쳐진 아담한 초가집 한 채가 있고, 창호지로 바른 방문을 통하여 약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집이 있으니 쉬었다 갈수가 있겠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에 염치불구하고 사립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서 주인을 불러본다.
“여보세요, 늦은 밤에 실례인줄 알지만 안에 누구 계십니까?”
하고 불러보았으나 방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래서 잠시의 시간을 두었다가 다시 한 번 집주인을 불러본다.
“여보세요, 실례지만 방에 아무도 안계십니까?”
그러자 약간의 시간을 두고 방안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누군가가 방문을 열고 나온다. 조용히 문을 열고 방안의 흐릿한 불빛을 등에 지고 나서는 사람은 어두운 밤인 탓에 앞모습을 자세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얼핏 보기에 젊은 여인이다.
“예! 제가 이집의 주인이기는 합니다만, 이 늦은 밤에 무슨 볼일이 있어서 그러시는지요?”하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아! 그렇습니까, 이렇게 늦은 밤에 정말 죄송합니다. 실례인줄은 압니다만 밤이 깊은데다 먼 길을 오느라 너무 피곤하여 길을 갈 수가 없어서 그러니 미안하지만 하룻밤 쉬어갈 수는 없겠는지요?”하고 물어본다. 그러자 상대방은 잠시 동안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하룻밤 쉬었다가는 것은 괜찮지만 보시다시피 집이 작은 관계로 방이 하나밖에 없는데다 제가 여자인지라 뭐라고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하고 곤란하다는 투로 사실상 거절하는 뜻을 담아 대답을 한다.
“예, 그렇기는 합니다만 제가 지금 너무나 피곤하고 가야할 길은 먼데다 산속이라 마땅하게 쉴만한 장소가 없어서 그러니 한쪽 구석이라도 좋으니 실례를 무릅쓰고 부탁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사정을 해본다.
“보아하니 참으로 사정이 딱하기는 합니다만, 손님에게 대접을 할 만한 것도 없는 궁색한 형편이라서 매우 망설여집니다.”하면서 거절의 뜻을 다시 한 번 전한다.
“아닙니다. 오는 길에 저녁은 먹고 왔으니 그런 염려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한쪽 구석이라도 좋으니 잠간이라도 등만 붙였다 갈수 있게만 해 주신다면 정말 고맙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다시 한 번 사정을 해본다.
이렇게 ‘방안으로 들이기가 어렵다’, ‘부탁한다.’는 줄다리기가 한동안 이어진 끝에 집주인이 나그네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려웠던지 대답을 한다.
“댁의 사정이 대단히 어려워 보이니 어쩔 수가 없겠네요, 정히 그러시다면 누추하지만 일단은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여러 가지로 불편한 것이 많으실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마지못해 방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한다.
“예, 고맙습니다. 신세를 지는 형편에 불편하고 안하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저 밤이슬을 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를 드려야지요, 실례를 무릅쓰고 하룻밤 신세를 지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들어선다.
방안에 들어서자 석유기름이 타면서 뿌리는 약한 기름 냄새가 은은하게 방안을 채우고 흐릿하게 주변을 밝히면서 타고 있는 등잔불이 문틈으로 새어드는 바람에 약하게 흔들리는 가운데 방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한 집주인은 예상과는 다르게 통통하고 아담한 키에 상아빛에 가까운 옅은 갈색을 띤 치마와 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었는데, 젊고 단아한 모습으로 조금은 어색한 듯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다소곳하게 서서 나그네를 맞이한다.
더운 날씨에 먼 길을 오느라 목이 말라서 주인에게 청하여 시원한 물을 한잔 마시고나자 별로 할 말이 없어서 마주보고 앉아서 약간의 서먹한 시간이 흐른 뒤에 집주인 여인이 방의 한편에 놓여있는 이부자리를 펴서 윗목에다 길손의 자리를 마련해 준 다음에 자신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서 방의 아랫목에 자리를 마련하고 앉아서 약하게 흔들리는 등잔불을 사이에 두고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처음으로 만난데다 젊은 남녀사이에 이렇다하게 주고받을 만한 말도 없었으므로 서로가 어색한 표정으로 잠시의 시간이 흐르자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겠다는 마음에 긴장감이 풀어진 면도 있었지만 며칠간의 힘든 여행으로 인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눈꺼풀이 무겁게 눌러온다. 그러다가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고개가 앞으로 숙여지는데 깜짝 놀라 정신을 가다듬어서 머리를 들어 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몰려드는 졸음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집주인 여인이 얼굴가득 알 듯 모를 듯 약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더니 자리를 보아 주고는 잠자리에 들기를 권한다.
하루의 바쁜 일과로 인하여 쌓인 피로 때문이기도 하지만 낮선 여인과 같은 방안에 마주하고 있다는 긴장감 때문에 주인이 챙겨주는 세숫물로 간단하게 손발과 얼굴만 씻고 옷을 입은 그대로 자리에 눕자 무더운 바깥날씨와는 다르게 등으로부터 시원한 느낌이 전해오면서 그대로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한숨의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등잔불은 꺼져있고 문틈으로 새어드는 희미한 달빛을 받으며 조용히 잠들어 있는 집주인 여자의 모습이 너무나도 매혹적으로 느껴진다. 그렇다고 하룻밤 신세를 지는 입장에서 예의를 그르칠 수도 없는 입장이어서 조심을 하면서 다시 자리에 누웠으나 쉽게 잠이 들려고 하지 않는다.
한창때의 젊은 피가 흐르는 탓인지 마음과는 다르게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가벼운 몸부림을 치다가 잠간동안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꿈인 듯 생시인 듯 느낌이 이상하여 살펴보니 어느 듯 자신이 젊은 여자를 두 팔로 껴안고 다리를 허리에 얹은 채로 잠들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다소 당황스럽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당장 껴안고 있는 것을 그만두는 것도 어색한지라 “에라, 모르겠다. 기왕 이렇게 된 것을 무슨 일이야 있겠느냐 될 대로 되겠지”하는 심정으로 젊은 여인을 가슴에 품은채로 깊고도 달콤한 잠에 그대로 빠져 들었다.
이처럼 달콤하고도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어느 듯 아침 해가 동녘하늘 높이 떠올라 온 산을 밝히는 가운데 햇빛으로 눈이 부셔서 잠자리에서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것은 도대체 무슨 조화인가.
어제 저녁에 산속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단출한 초가집에 들러서 단아하고 젊은 주인여인을 안고서 허리에 다리를 걸치고 달콤한 잠에 빠져 들었었는데, 초가집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를 않고 주변에는 허물어지고 흔적만 남은 나지막한 돌담이 길게 둘러있어서 이전에 집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터만 남아 있는데다, 젊은 여인은 보이지 않고, 정작 자신은 대나무를 얇게 쪼개고 다듬어 엮어서 만든 죽부인을 팔과 다리로 부둥켜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하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알 수가 없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서 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살펴보니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서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산골짜기 속으로 들어 온데다가 커다란 나무들로 숲을 이룬 아래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그렇게 넓지 않은 빈터에는 이전에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 흔적만 남아 있고,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아래쪽으로 흐르는 개울에는 너럭바위가 깔려있어서 오랜 세월을 두고 흐르는 물에 깎이고 다듬어져서 만들어 놓은 자그마한 폭포아래에 작은 물웅덩이를 이루고 맑은 물이 싱그러운 소리를 내면서 흐르고 있어서 여름철에 더위를 식히기 위하여 가족단위나 몇몇 지인들이 물놀이를 하면서 더위를 식히기에 적당한 장소로 보이는 곳에서 자신은 형체만 남아있는 집터에 놓여있는 2~3명의 사람이 누워도 불편이 없을 정도 되는 넓이의 너럭바위에서 죽부인을 끌어안고 자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너럭바위에는 죽부인 외에도 머리를 빗는 얼레 빗, 참빗을 비롯하여 몇 개의 화장도구와 여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물건들이 흩어져 있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떻게 하여 이런 이상한 장소로 들어오게 된 것이며, 어제 밤에 함께 밤을 보낸 젊은 여자는 누구란 말인가? 아무리 생각을 하고 자신에게 질문을 해봐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더구나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은 비록 하룻밤이 못되는 짧은 인연이기는 하지만 함께했던 여자의 얼굴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선명하게 떠오르지를 않고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혹시나 ‘죽부인 허깨비’에게 홀리기라도 했었다는 말인가?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오래되어 흔적만 겨우 남아 있는 집터에서 특이하게도 죽부인을 비롯하여 여자들이 머리를 빗는 빗과 간단한 화장용 물건들은 어떻게 하여 이처럼 남아 있는 것일까? 혹시나 이렇게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장소를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여름철이면 찾아와서 더위를 식히며 놀다가 가는 곳일지도 모르겠다는 등으로 한참동안 나름대로의 상상에 잠겨있던 젊은이는 정신을 가다듬고 허깨비든 뭐든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하룻밤을 같이 새웠는데 그냥 갈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하는 생각을 하고서 주위에 널려있는 잡다한 물건들을 모아서 땅을 파서 묻거나 불에 태워서 깨끗하게 정리를 한 다음에 그 자리를 떠났다.
그렇다면 죽부인(竹夫人)이란 무엇인가? 대를 쪼개어 겉껍질이나 속껍질을 이용하여 사람이 다치지 않게 매끈하게 잘 다듬은 다음에 얼기설기 엮어서 원통형으로 만든 것으로, 속이 비어 있기 때문에 바람이 잘 통하는데다 대나무자체에서 느껴지는 약간은 시원한 감촉 등의 특징을 살린 것으로 더운 여름철에 껴안고 자면 더위를 어느 정도 덜 수가 있었다. 물론 오늘날에야 선풍기나 에어컨과 같은 냉방기가 있어서 쓸모가 없어졌지만....,
옛날 사람들은 아들이 아버지가 사용하던 죽부인을 쓰지 않는 것을 예의로 여겼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관속에 넣어서 합장을 하거나 불에 태웠다고 한다.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는 무릎에 끼고 자는 대라는 뜻으로 죽협슬(竹夾膝)이라 불렀고, 송나라 시대에는 죽부인이라 불렀는데 죽희(竹姬, 대나무 첩), 죽노(竹奴, 대나무종) 등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부(婦: 며느리 부. 며느리, 아내)자를 쓰지 않고 부(夫 :지아비 부, 지아비, 사내, 장정)자를 썼을까? 이유는 夫자에는 人자가 붙어 있어서 '남의 아내를 높이는 말'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죽부인
대나무는 본래 대장부에 견주었고
분명히 아녀자와 가까운 것이 아니었는데
어찌하여 침구로 만들어져서
억지로 부인이라 이름 붙였나
내 어깨와 다리를 괴어 편안하게 해주었고
이불 속으로 들어와서는 벗이 되었네,
비록 다소곳이 남편 시중은 못 들지만
방 안에서는 내 몸을 독차지하게 되었네,
(고려 시대의 문신, 명문장가 이규보의 '죽부인'의 일부)
11. 지팡이 허깨비
환갑을 넘긴지 얼마 되지 않은 박 씨가 나들이를 나갔다가 주막집에 들러서 저녁식사를 겸하여 쇠고기국밥을 안주삼아 몇 잔의 막걸리를 마시고 배를 채운 후에 기분 좋게 산길을 걸어서 집으로 가고 있다.
그렇게 거리가 멀거나 험한 길은 아니지만, 골짜기를 따라서 싱그러운 물소리를 내면서 시냇물이 흐르고, 양쪽 옆으로 숲이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서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오르다가 야트막한 고개를 하나 넘어서면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산길에는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혼자서 걷는 길이라 나이 탓도 있겠으나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가족들을 생각하며 밤길에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을 하면서 천천히 산길을 걷다보니 어둠은 더욱 짙어진다.
산 고개를 넘어서 희미하게 밝혀주는 달빛에 의지하여 내리막길을 한참동안 내려오다 숲 사이로 평탄한 들길이 내려다보이는 즈음에 이르렀다.
아직은 더위가 가시지 않은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접어드는 계절로 산 고개를 넘어서 이제는 집이 있는 마을도 그렇게 멀지 않은데다, 땀이 흐르고 피곤하기도 하여 숨을 고르는 한편으로 땀도 식힐 겸해서 잠시 쉬어가야겠다고 하는 생각으로 평소에 그렇게 해 왔던 것처럼 커다란 나무아래에 놓여있는 나지막한 바위에 걸터앉아서 허리띠를 느슨하게 풀어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쌈지에서 담배를 꺼내어 담배통에 욱여넣고 부싯돌을 이용하여 담배에 불을 붙여 기분 좋게 흡연을 즐겨본다.
담배연기를 내뿜어가며 쉬고 있는 가운데 잠간의 시간이 흐르자 갑자기 앳된 목소리로 등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다.
“할아버지, 어디 좋은 곳에라도 다녀오시는가 봐요?”
마을의 집집마다 켜진 불빛에 더하여, 하늘에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사이로 비치는 별빛들을 쳐다보면서 별다른 생각 없이 담배를 피우며 쉬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자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무슨 소리를 잘못 들었나? 방금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데 누가 말을 했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담배를 즐긴다.
그러자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조금 전에 들렸던 목소리가 “할아버지, 어디 좋은 곳에라도 다녀오시나 봐요?”하면서 조금 전에 들었던 것과 같은 말을 걸어온다.
이번에도 이상한 말이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를 않는다.
‘헛,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네, 근방에는 아무도 없는데 누가 말을 걸어오는 것일까? 이번에는 분명히 들었는데, 이상하다’하면서 조금 전에 들렸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주위를 다시 한 번 살펴본다. 그러자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 상대가 다소 언짢다는 듯이 말을 건넨다.
“할아버지, 왜 제가 물어보는 말에 대답을 하시지 않으시는 거예요. 제가 하는 말이 들리지 않아요?”
보이는 사람은 없는데 어둠속에서 말소리만 들리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에도 상대의 말에 대한 답을 하지 않고 혼자만의 생각을 하고 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네,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도대체 누가 말을 하는 것일까? 내가 무엇을 잘못 들었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주위를 한 번 더 둘러본다.
그러자 잠간의 시간을 두고 다시 상대방이 말을 걸어온다.
“할아버지, 제가 하는 말이 말 갖지 않아서 그러시는 것입니까? 왜 제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무시를 하시는 겁니까?”
상대방이 이렇게 따지듯이 나오자, 이번에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대답을 한다.
“그런 것이 아니라 내게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말소리만 들리니까 하도 이상해서 대답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내가 당신을 무시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네.”
“뭐라고요? 할아버지,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잠간만 뒤쪽을 보아주시겠습니까?”하면서 다시 말을 건넨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보니 7~8세쯤으로 보이는 낯설지만 귀엽게 생긴 사내아이가 천진하게 웃으며 서있다.
‘거, 참으로 이상하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었는데, 더욱이 어두운 밤에 이런 산속에서 무엇을 하는 아이 길래 혼자 있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을 건넨다.
“그래, 이제야 네가 보이는 구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너를 보지 못했거든, 그런데 너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어, 더구나 밤도 깊은데 말이다. 그리고 네가 사는 곳은 어디이며, 이름은 무엇이고, 나이는 몇 살이나 되었나?”하면서 물어보았더니 예상하지도 못하였던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저요? 저에게는 이름 같은 것은 없어요, 그리고 나이도 몇 살인지 몰라요, 그렇지만 사람들은 저를 보고 ‘지팡이허깨비’라거나 ‘작대기허깨비’라고 부르기도 하던데 그런 것이 무슨 말인지도 저는 모르거든요,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요.”하는 대답이다.
상대방이 자신을 허깨비라고 소개를 하자 갑자기 주위에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온몸에 긴장감이 몰려오고 무서운 느낌마저 들면서 전신에 소름이 돋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질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에게 말을 건다.
“무어라고? 네가 허깨비라고? 그리고 이곳에 산다고?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저 아랫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 왔지만 이곳에 허깨비가 살고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거든, 무슨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나, 나이도 어린아이가 어른을 놀려서야 되겠어? 아무리 늦은 밤이라고 하지만 어린 아이가 어른을 놀리면 쓰나”라고 하면서 되레 이상한 말을 하는 상대를 나무라 본다.
“그러세요? 전에는 이곳에 허깨비가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하였다고요? 그런데요,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제가요 오늘 너무 심심해서 누군가가 같이 놀아줄 사람이 없나 해서 찾고 있던 중이었거든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할아버지, 저랑 같이 잠시라도 놀아 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하면서 의외의 말을 한다.
아무리 아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을 허깨비라고 하는 말에 다소 두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여기서 지면 저 녀석에게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 모르겠다는 판단을 하고는 아랫배에 힘을 잔뜩 주고서 애써 태연한척 하면서 말을 건넨다.
“생판 알지도 못하는 너랑 같이 놀아 달라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오늘 내가 좀 많이 걸었더니 피곤하기도 해서 잠시 쉬어갈려고 여기에 앉았는데, 무슨 허깨비니 뭐니 하면서 어른을 놀리고 귀찮게 하는 것이냐, 이제는 적당히 쉬었으니까 나는 그만 집으로 가야겠다. 괜한 장난 하지 말고 너 혼자서 잘 놀고 있어”라고 하면서 앉은 자리에서 풀어 놓았던 허리띠를 챙겨서 졸라매고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잡아당기는 것이 아닌가.
“할아버지, 그러지 마시고 저하고 같이 잠간이라도 좋으니까 놀아주세요, 저하고 놀아주지 않고 그냥 가시겠다고요? 그렇게 하실 수는 없어요, 왜냐 하면요, 저하고 잠간이라도 놀아주지 않으면 제가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거니까요, 어디 할아버지께서 마음대로 가실수가 있으시다면 그렇게 해 보세요.”라고 하면서 뒤에서 허리띠를 붙잡고 놓아 주지를 않는다.
“어이, 애야, 네가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이렇게 귀찮게 하지 말고 놓아라, 내가 왜 잘 알지도 못하는 너랑 놀아줘야 하는데, 싫어, 나는 집에 갈 거야, 귀찮게 하지 말고 놓아라, 쓸데없이 나를 붙잡고 이러지 마라”고 하면서 달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정을 해본다.
“왜 그러세요? 할아버지는 제가 보내드리지 않으면 절대로 가실 수가 없다니까요, 자신이 있으시면 어디 가 보시던가요, 제가 왜 이러는가 하면요 몇 해 전에 우리할아버지께서 저와 함께 이곳을 지나시다가 저를 이곳에다 두고 가셨는데, 그냥 잊어버리셨는지 아직까지도 저를 데리려 오시지 않으시거든요, 그래서 너무 외롭고 심심해서 그러는 것이니 잠간동안이라도 저랑 같이 놀아 주시면 안 되겠어요?”라고 하면서 뒤에서 허리띠를 붙잡고 놓아 주지를 않는다.
“아야, 애야 나는 그만 집에 갈란다. 나도 우리 집에서 손자랑 손녀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너하고 놀아줄 마음이 없으니 그만 놓아주라”
이렇게 “집에 간다.”, “안 됩니다 저랑 놀아 주세요”라고 하는 실랑이가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면 뒤에서 허리띠를 붙잡고 잡아당기는데, 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힘이 좋아서 아무리 일어서려고 해도 일어서려다 주저앉기만을 반복할 뿐으로 앉은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다. 이렇게 되자 허깨비라서 무섭다는 생각보다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다.
“야, 네가 도대체 뭔데 아무 이유도 없이 나를 붙잡고 이렇게 귀찮게 하는 것이냐? 그리고 아이 치고는 힘이 좋은데 도대체 너는 뭐하는 아이야?”하고 물어본다.
“에이, 할아버지 저하고 잠시만 놀아 달라는 것인데 화를 내고 그러세요? 그렇게 화를 내지 마세요, 저도 혼자서 외롭게 지내다보니 너무 심심해서 부탁을 드리는 것인데 화를 내시면 어떻게 해요, 저하고 조금만 놀아 주시면 좋은데”라고 하면서 붙잡는 데에는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
이렇게 ‘갈란다.’ ‘가지 못한다.’하는 실랑이가 이어지는 가운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다보니 차츰 두려운 생각이 커져가면서 피로감마저 더해 오는데 아무리 힘을 다하여 노력을 해봐도 이 녀석이 스스로 놓아주지를 않는다면 어떻게 떨쳐낼 방법이 없을 것 같다.
“내가 오늘은 아무래도 일진이 사나운 날인가 보다. 평생 만난 적이 없는 네 녀석을 만나서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라고 하자,
“에이,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저하고 잠시만 놀아 주시면 보내 주실 것인데 꼭 가시겠다면 어쩔 수가 없네요. 할아버지 꼭 그렇게 하시겠다면 제가 수수께끼를 낼 테니까 맞힌다면 보내드리겠습니다. 대신에 맞히지 못하시면 맞힐 때 까지는 못가십니다. 아시겠어요?”라고 하면서 엉뚱한 제안을 한다.
어차피 이 녀석에게서 벗어날 적당한 방법이 없는데다 이렇게라도 제안을 해 오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그렇게라도 해보자’는 판단을 하고서는 아이의 제안에 승낙을 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저하고 더 이상은 놀아주지도 않으려고 하는데다가 이제는 시간도 상당히 지나갔고, 또 저 아래에서 초롱불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을 보니까 아마도 손자들이 할아버지를 마중하려고 오는 것 같은데, 그냥 보내드리면 재미가 없고 하니까 제가 내는 수수께끼 문제만 맞힌다면 더는 할아버지께 매달리지 않고 보내 드리겠어요.”라고 한다.
상당한 시간을 자리에서 일어나려고하다가 주저앉기만을 되풀이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상대방의 제안에 대답을 한다.
“좋다. 네가 꼭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면 그렇게 하지, 그런데 만약에 내가 답을 맞히면 더 이상 붙잡지 않고 보내 준다는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알았지? 그렇다면 이제 문제를 한번 내어 봐라”
“할아버지, 제가한 약속은 꼭 지킬 것이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렇다면 지금 문제를 하나 낼 거니까 맞혀보세요, ‘아침에는 네발로 걷다가 낮에는 두발로 걷고 저녁이면 세발로 걷는 것’이 무엇일가요?’라고 하면서 문제를 낸다.
이에 잠시 뜸을 들이던 박 씨가 그런 것도 문제가 되느냐고 하는 듯이 웃으면서 대답을 한다.
“그런 문제라면 아주 쉽지, 그것도 문제냐? 기왕에 문제를 내려면 조금이라도 어려운 것을 내 보거라”라고 하자 이번에는 허깨비가 말을 한다.
“에이, 할아버지, 괜히 모르겠으니까 그러시는 것 아니에요? 이 문제는 저하고도 관계가 있어서 내는 것이니까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시고 얼른 답이나 맞춰보세요”
“그래, 그렇다면 내가 답을 말해주지, 그 문제에 대한 답은 바로 ‘사람’이거든”하고 쉽게 답을 맞히니까 이번에는 다소 이외라는 듯이 뜸을 들이고 있더니 다시 답에 대한 해석을 요구한다.
“할아버지, 그것이 어째서 사람인데요? 설명을 한번 해 보세요”라고 반문을 한다.
“그래, 내가 설명을 할 것이니까 잘 들어봐라 ‘아침에 네발로 걷는다고 하는 것은 아기가 두 팔과 두 다리를 이용하여 기어 다니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낮에는 두발로 걷는다고 하는 것은 젊었을 때에는 두발로 걸어서 다니지만, 저녁에 세발로 걷는다고 하는 것은 늙어서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몸에 중심이 잘 잡히지 않으니까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거든, 어떠냐? 내 대답이 틀렸어?”라고 하자 문제를 낸 허깨비는 놀랍다는 듯이 대답을 한다.
“맞아요, 할아버지의 대답이 맞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 자리에서 그동안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내어 봤지만 할아버지처럼 쉽게 맞히는 사람이 거의 없었거든요, 더욱이 모두들 나를 무서워하면서 달아나기에 바빴거든요, 저를 무서워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약속은 약속이니까 보내 드리겠어요.”하고 말을 한다.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니까 이번에도 그냥은 보내지 못하겠다는 듯이 뒤에서 또다시 잡아당긴다. 그러자 다시 제자리에 주저앉은 박씨가 “애야, 방금 나보고 수수께끼를 맞히면 두말 않고 보내 주겠다고 약속을 했지 않았나, 그런데 왜 보내주지 않고 또 붙잡는 것이냐, 이제는 장난 그만하고 그만 보내주라”고 하면서 사정을 한다.
“할아버지 제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요, 전에 우리할아버지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앞으로만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가다보면 쉬었다가 갈 수가 있고, 돌아서 갈 수도 있고,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섰다가 갈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러니까요 할아버지께서도 자꾸 앞으로만 일어서려고 하지 마시고 생각을 잘해 보세요, 방금 저의 말 속에 답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마침 저 아래에 할아버지의 손자들이 마중을 왔으니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할아버지하고 같이 놀자고 하면서 귀찮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그래도 할아버지 덕분에 한참동안 심심한줄 모르고 잘 놀았어요, 저도 나쁜 아이는 아니거든요, 그냥 저를 여기에다 두고 가버리신 할아버지가 그리워서 그랬어요. 할아버지 안녕히 가세요.”라고 하는 말을 남기고는 순간적으로 서늘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조금 전까지 같이 놀자고 보채던 아이가 사라져 버렸다.
아이가 사라지자 머리가 한결 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에 방금 허깨비가 해준 말을 생각하면서 앉은 자리에서 뒤로 약간 물러앉자 허리춤에서 무엇인가 풀려서 나가는듯한 가벼운 느낌이 들기에 그대로 일어나자 쉽게 일어설 수가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늘어진 허리띠를 다시금 졸라매고 복장을 가다듬고 있을 때에 마침 초롱불을 들고 마중을 나온 두 명의 손자들이 할아버지가 계시는 곳으로 찾아와서 함께 집으로 가는 길에 조금 전에 겪었던 허깨비 이야기를 손자들에게 들려주었다.
다음날 날이 밝아 아침을 먹고 나자 무슨 피해를 입었다거나 험한 일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제 밤에 몸소 겪었던 이해가 가지 않는 황당한 일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아서 집에서 그렇게 먼 거리에 있는 장소도 아니었으므로 논밭도 돌아볼 겸해서 자그마한 괭이 하나를 챙겨 들고 허깨비를 만났던 곳에 가서 주변을 살펴가며 확인을 해 보자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그저 헛웃음이 나온다.
이 길을 지나칠 때면 상시 그랬던 것처럼 피곤해서 잠시 앉아서 쉬었던 곳에는 앉았다 가기에 적당한 세 개의 바윗돌이 가깝게 붙어 있었는데 자신이 앉았던 자리로 짐작되는 곳에는 바위 사이의 틈새에 손잡이 부분을 구부린 노인들이 주로 짚고 다니는 지팡이 하나가 단단하게 끼워져 있다.
아마도 누군가가 짚고 다니다가 이곳에 두고 간 것으로 보이는 지팡이 하나가 바위틈새에 끼어서 손잡이 부분만 살짝 위로 나와 있었고 하필이면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느라고 광목으로 만들어진 허리띠를 느슨하게 풀고 앉았다가 공교롭게도 이렇게 나와 있는 손잡이에 허리띠가 걸리게 되면서 일어서려고 하면 뒤로 당겨지게 되었고,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면 다시 당겨지게 됨으로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던 것이지만 어린아이 허깨비에 대하여는 무엇이라고 단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이러한 추리를 하게 되자 저절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어서 혼자만의 씁쓸한 웃음을 지으면서 바위틈에 끼워져 있는 낡고 오래된 지팡이를 끄집어내어 주변의 여기저기에 버려져있는 쓰레기들을 청소하여 땅을 깊게 파서 지팡이와 함께 묻고는 “지팡이 허깨비야 어제 저녁에는 재미있게 놀아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그동안 바위틈에서 고생이 많았다. 이제는 풀려났으니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붙잡고 장난질하지 말거라, 더욱이 사람들이 자기가 사용하던 물건이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어서 고맙구나.”라고 하는 말을 남기면서 자리를 떠났다.
12. 정자나무아래 담설
조용하고 어딘지 모르게 평화로우면서도 안정된 분위기마저 느껴지는20여 호 남짓한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앉아 조상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가문마다 나름대로의 전통과 가풍을 유지하고 지켜가면서 일손이 부족하고 바쁜 농사철에는 품앗이 등을 통하여 서로가 부족한 일손을 도와가면서 이웃 간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힘을 합하여 해결을 하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하고 축하를 하면서 오순도순 사이좋게 이웃의 정을 나누어가면서 살아가는 마을이다.
예전에는 상당한 규모를 갖춘 마을로 정치를 포함한 여러 분야에 이름난 인물들을 배출하기도 하면서 인근에 있는 마을을 이끌어 갈 수 있을 정도로 세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직장을 구하거나 배움의 길을 찾아서 도시나 다른 지역으로 떠나가고 명절이나 제사를 지낸다던지 하는 특별한 날이면 자손들이 찾아왔다가 행사를 치르고 나면 각자의 터전으로 돌아가고, 연세가 드신 노령의 어른들이 주류를 이루어 고향을 지키고 살아가는 한적한 마을이다.
그나마 지난날에 마을을 지키고 살아가던 일부 이름을 알리며 세력을 누리던 성씨의 종가정도만 남아서 각 가문마다의 전통과 가풍을 지키는 한편으로는 조상들의 유골이 뭍인 선산을 지키고 돌보면서 살고 있어서 몇 채 남지 않은 오래된 기와집들만이 지난날의 영광을 말해주고 있다.
바깥쪽에서 보이는 것 보다는 안쪽이 넓어서 부채꼴모양을 이룬 지형에 동남향으로 햇볕이 잘 들어 따뜻하면서도 포근함이 느껴지는 마을의 앞쪽으로 크지 않은 하천을 따라 맑은 물이 끊이지 않고 흐르고, 마을의 오른 쪽과 왼쪽을 감싸고 휘돌아서 뻗어 내리는 산줄기를 이용하여 가뭄에는 논에 물을 댈 수 있도록 충분한 량의 물을 담아 둘 수 있는 못을 만들었고, 못의 둑을 이용한 산골짜기 사이를 가로지르는 길섶을 따라서 나무를 심어 방풍림을 만들어 마을 쪽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기세를 줄여주는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했던 숲의 흔적이 일부분 남아있어서 회화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다섯 그루의 아름드리나무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마을로 드나드는 길목을 지키며 서있고, 그 가운데 제일 큰 나무를 중심으로 널찍한 터에는 쉼터를 만들어서 평상을 설치하여 날씨가 좋고 따뜻한 날에는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이런 저런 정담을 나누어가면서 쉬기도 하고, 마을에서 이런저런 사소한 일이라도 있으면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의논을 하기도 하고, 여자들이 모여서 길쌈을 하거나, 논밭에서 생산되는 남새나 산과 들에서 채취한 푸새 등을 가지고 나와서 다듬어 먹을거리를 만든다던지, 간단한 일거리라도 있으면 들고 나와서 손질을 하면서 담소를 즐기기도 하고, 이웃 간의 따뜻한 정담을 나누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날도 마을의 씨족들 가운데에서 가세(家世)가 가장 큰 집안의 종손인 이 씨 어른이 가까운 마을로 나들이를 나갔다가 평소에 친분을 나누고 지내던 벗들을 만나서 식사와 함께 가볍게 술잔을 기우려가며 이런 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어 가면서 놀다가 기분이 좋을 만큼 취하여 흐릿한 달빛을 벗하여 이슥한 밤길을 유유자적 즐겨가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나뭇잎들이 연두색에서 옅은 녹색으로 물들어 가는 늦은 봄에서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날씨답게 잦은 비가 내린 탓으로 안개마저 가볍게 내려앉은 고요한 밤길을 천천히 걸어서 마을 들머리의 커다란 나무들이 서있는 쉼터가 있는 장소에 들어섰을 때다.
오랜 세월을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살아왔던 아름드리 커다란 정자나무가 늦은 봄의 계절에 맞추어 진한 녹색으로 물들어가는 다른 나무들과 적당한 간격을 두고 함께 어우러져서 자그마한 숲을 만들고 있는 그 가운데 정자나무에 의지하여 만들어 놓은 넓다란 평상위에 신비감마저 느껴지는 다섯 분의 노인들이 의관을 정갈하게 갖추고 둘러앉아서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예전에는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낮선 노인들로 이분들은 무엇을 하는 분들이기에 이런 밤에 여기에서 담소를 나누고 계시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과 더불어 궁금증이 들기도 하여서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자 평소에 안면이라고는 전혀 없는 분들인데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으면서도 어디에선가 본적이 있었기라도 했었던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정겨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잠이 들어 고요하고, 낮게 깔린 옅은 안게 속에서 별빛이 흐르는 하늘에 무심하게 흘러가는 구름사이로 희미하게 달빛이 내리는 이슥한 밤인데 커다란 나무그늘 아래에서 낮선 노인들이 둘러앉아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서 이분들이 무슨 말씀을 나누고 계시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알 수 없는 친밀한 느낌마저 드는 한편으로는 무엇을 하는 분들인지 궁금하기도 하여서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가 노인들이 앉아있는 뒤편에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외모에서 풍겨지는 모습이 근엄하여 함부로 대할 수 없을 정도로 점잖게 느껴지는 노인들은 자기들의 이야기에만 열중하고 있을 뿐으로 다른 사람이 가까이에 있는 것에 대하여는 조금도 의식을 하지 않는 것 같다.
“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우리가 참으로 오랜 세월을 이 마을사람들이 터전을 일구고 대를 이어 오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살아왔지 않았겠나, 우리가 이곳에 뿌리를 내릴 당시만 해도 마을 사람들이 이쪽 산과 저쪽 산 사이에 많은 나무를 심어서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서 바람 때문에 발생하는 피해를 줄이는 한편으로 안쪽의 좋은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막아주고, 바깥의 좋지 않은 것들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 내고자 하는 비보적인 의미마저 담고 있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러한 사상은 사라지고, 울창한 숲이 차지했던 자리는 언제부터인가 논과 밭으로 바뀌었는데 마을을 살짝 비켜서 돌아가는 넓은 길마저 생기게 되었으니 참 많이도 변했지요.”
단정하게 상투를 틀어 올린 머리에 검은 머리카락이라고는 한 오라기도 볼 수가 없는데다 턱밑에서 가슴에 이를 정도로 길고도 휜 수염을 늘어뜨리고 전체적으로 위엄이 넘치는 얼굴에 시원하게 느껴지는 외모의 노인이 말을 한다.
“그렇지, 어느새 500~600년도 훨씬 넘는 세월이 흘러갔으니 말일세, 우리가 한창일 때만 하여도 주위에는 동료들도 많이 있고 해서 서로 의지가 되고 해서 좋았었는데 이제는 모두들 떠나가고 몇 안 되는 우리만 이렇게 남았네 그려, 한창때는 마을에도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집집마다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아이들이 분주하게 뛰놀았고 그런 아이들의 건강하면서도 명랑한 웃음소리가 참으로 행복하게 느껴지기도 했었지, 때로는 그 녀석들이 귀찮을 정도로 우리의 어깨와 등줄기를 타고 다니면서 놀기도 했었는데 그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세대가 바뀌어 가면서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이제는 모두들 자신들의 길을 찾아서 이 마을을 등지고 떠나게 되니 자연히 젊은이들이 줄어들어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조차 듣는 것이 어렵게 되었으니 세상은 참 많이도 달라졌지.”
“그렇지, 우리도 그동안 마을 사람들이 대를 이어오면서 각기 저마다의 가풍을 지키고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와 행동이나 웃음, 눈물, 억울한 일, 좋은 일, 궂은 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연들을 보고 듣고 겪어가면서 살아 왔지 않았겠나.”
“마을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에게도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 어떤 때에는 가뭄 때문에 고생도 했고, 어떤 때에는 태풍으로 찢어지고, 부러지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아픔을 겪기도 하였으며, 새로운 길을 내고 넓힌다고 베이거나 뽑혀져 나갈 위험한 고비도 넘기고, 참 여러 가지로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어려움도 많이 겪으면서 살아온 세월이었지”
“산다는 것이 모두가 그런 것 아니겠나, 좋은 일은 같이 즐거워하고 슬프거나 어렵고 좋지 않은 일은 함께 나누어 가면서 웃기도 하고 때로는 울기도 하면서 그렇게 어울려가면서 살아가는 것이지,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 말이야”
이런 저런 지금까지 자신들이 살아온 날들에 대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더니, 이제는 이 마을에서 오랫동안 터전을 일구고 가꾸며 살아가고 있는 각 가정마다의 개별적인 사정으로 이야기의 내용이 바뀌어 간다.
“얼마 전에 저 윗집 김 씨네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하더군. 그 집 큰 아들이 한양에서 무슨 비중이 있는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고 여기저기에서 많은 축하를 받던데 그러한 것은 좋은 일이 아니겠나, 참으로 잘 된 일이라고 해야 되겠지”
“그 집안에 선조 대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선덕을 많이 쌓았다고 할 수 있어, 살림이 크게 넉넉한 편은 아니었으나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먹을거리가 없어 살기가 어려워지면 굶주리고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창고 문을 열어서 양식을 나누어 주어 배고픔을 면하게 해주는 구휼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기도 하고, 먼 길을 떠나온 나그네에게는 밥을 먹이는가하면 잠자리를 내어주고, 탁발 나온 스님에게는 한번이라도 빈손으로 보낸 적이 없었거든, 얻어먹는 사람에게도 손님을 대하듯이 극진하게 대접을 해서 보낼 정도로 많은 덕을 베풀었지, 그런 착한 행동을 우리가 오랫동안 지켜보아왔지 않았나, 참으로 정이 많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었어, 그런 선대 조상들의 은덕으로 그 자손들이 부자도 살고, 더러는 출세를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대로 큰 탈이 없이 다복하게 살아왔는데 그런 복을 쌓아 온 것을 자손들이 알기나 하려나”
“그 집에 이번에 벼슬길에 나가게 되었다고 하는 아들은 성정이 선대와는 조금은 다른 모양이더라고, 가문의 종손에 장남인데다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해서 어릴 때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하다 시피하면서 자라온데다, 부모가 아들을 인물로 키워 볼까하는 생각에 일찌감치 공부를 시킨다고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실력 있는 선생아래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마을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축하도 많이 해 주었었지, 그렇기는 하지만 어릴 때부터 큰아들인데다 똑똑하다고 너무 어르고 귀하게 키워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인재를 모아서 공부를 할 수 있게 하는 이름난 학당에 들어가고 난 뒤로부터는 사람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모양이야, 있는 집안의 자식들이 모이는 곳이라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놀기에 바빠서 학문을 소홀히 하는 탓에 부모에게 걱정을 많이 시켰지, 그러다 보니 때로는 사고를 저지르고 쫓겨 다니기도 하는 탓에 그러한 일들을 무마시키느라 재산도 축을 낸 데다 이런 저런 일로 인해서 그 집안 살림도 상당히 줄어들었는데, 그나마도 다니던 학당에서 어떻게 근근이 학업은 마치기는 했지만 일자리를 구하는 둥 마는 둥 부모의 등골만 파먹고 살다가 무슨 세력가의 뒤를 따라 다닌다고 하더니 다행히 이번에 자기가 모시던 세력가의 추천을 받게 되어서 벼슬길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것 같더라고.”
“아무튼 잘 된 일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나, 가세를 기울이다시피 하면서 자식하나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기대를 하면서 일찍부터 정성을 다해서 공부를 시켰는데 이렇다 할 만 한 반듯한 직업도 없이 어영부영하면서 건달행세나 하고 다니면서 살아가는 것 보다야 낫지 않겠나.”
“그것은 그렇지, 그런데 그 집 큰아들은 그렇다 치고, 큰며느리도 문제가 있는가 보더라, 처가가 먹고 살만 한데다가 딸인데도 불구하고 부모 잘 만나서 공부도 어느 정도 했다고 시댁에서 좋아들 했었는데, 아래 동생들은 어른들과는 생각이 많이 다른 모양이더라고”
“형님이 벼슬을 하고 잘 되면 좋아해야지 왜 그럴까? 행여나 동생들이 질투를 해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고, 그 집 동생들이 모두들 심성이 착한 사람들이던데, 형네를 시기하고 말썽을 일으키거나 그렇게 할 사람들은 아니지 않은가?”
“뭐,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그동안 보아 왔지 않았나, 큰아들 공부시킨다고 많은 돈이 들어가다 보니 부모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해도 마르지 않는 우물물처럼 돈이 막 나오는 것도 아니라서 동생들은 인근의 서당 같은 곳에 보내거나, 가까운 서원에 보내서 자기 앞가림이나 겨우 할 수 있도록 하게 된 형제자매도 있었지, 큰 아들을 중앙의 이름 있는 학당에서 공부를 시키려고 하다 보니 적지 않은 수업료에다 객지생활을 그냥 할 수 있나, 그러다 보니 하숙비에다 용돈까지 감당을 해야 하였기에 자연히 돈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다 비록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농촌살림에 저축해 놓고 쓸 정도의 목돈이 어디에 있나, 그러다 보니 할 수 없이 가지고 있던 논밭을 조금씩 팔아서 공부하는 뒤를 대었지 않았나.”
“그랬었지, 거기에다 향교라든지 국가에서 운영하는 교육기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이름 있는 학당에 들어가기는 하였으나 학문을 소홀히 하다 보니 학업을 마치고 나서도 나라에서 치르는 시험에는 합격하지 못하고, 변변한 직장마저 구하지 못한데다 그런대로 이름 있는 집안의 규수를 며느리로 맞이하려다 보니 그나마도 남아있던 전답을 팔아서 살아갈 집도 마련해주고 이런 저런 격을 맞추느라 시골살림이 거의 바닥이 나버리다시피 한 것이야. 어떻게 보면 동생들 입장에서는 안타깝기도 하고 서운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겠지”
“그렇지만 큰아들의 입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대처에서 나름대로 바쁘게 생활하다보니 자연히 고향을 찾는 일이 뜸해지고, 조상을 섬기고 모시는 기제사라든지 성묘라든지 조상의 묘소를 돌보는 벌초를 비롯하여 집안의 이런 저런 대소사와는 자연히 마음이 멀어지게 되었고, 고향에서 선산을 지키고 조상을 섬기는 일은 모두 동생들이 떠맡게 되어 버린 것이야, 사람은 몸이 멀어지면 자연스럽게 마음도 멀어지게 되는 법이거든”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슨 새로운 사업을 한다, 무슨 자리를 구하는데 필요하다느니, 뭐다하는 갖은 핑계꺼리를 만들어서 자기에게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손을 내미니 부모의 입장으로는 그냥 모르는 체 할 수가 없었을 것이고, 동생들이 볼 때에는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지, 그러다 보니 아무리 착한 동생들이라고 할지라도 자연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았겠나.”
“그야 그렇지,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야, 부모가 그만큼 공부를 시키는데 정성을 다하고 뒷바라지를 해주었으면 자기가 열심히 해서 무엇이든 이루어 보려고 하지는 않고 무슨 일만 있으면 부모형제에게 의지를 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귀한자식 일수록 엄하게 키워야 성장을 해서도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인데 어릴 때부터 너무 귀하게만 키우다 보니 어떤 어려운 일에 부닥치게 되면 난관을 헤치고나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거야, 그러니 부모와 형제들이 고생을 하게 되는 것이지”
“그 집의 큰아들이 얼굴은 그런대로 잘 생기고 신체가 훤칠하였기 때문에 그랬는지 학당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큰 며느리가 된 처자를 만났다든가 그러는 것 같던데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하더라고, 사람이 많은 대처에서 내노라 하면서 행세깨나 하는 넉넉한 집안에서 귀염을 받아가면서 성장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시댁 어른들과 자기들은 생활방식이나 의식자체가 다르다, 어른들이 변해가는 세상물정을 모르는데다 생각자체가 보수적이어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느니 뭐다’라고 한다는데 자기 딴에는 굉장히 똑똑하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들 하더라고”
“그런 것만이 아니라 며느리가 시부모와 형제들을 지방에 살아서 생활방식이 자기와는 맞지 않는데다가 이상이나 생각자체도 시대에 뒤떨어져 있어서 세련되지도 못하다고 하면서 대놓고 무시하는 언행까지 한다는 거야, 그러면서도 무슨 어려운 일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남편을 시켜서 시댁에 손을 내민다더군, 그러니 아무리 사이가 좋은 형제자매 사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에게도 아내와 자식이 있고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는 입장에서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좋지 않은 감정이 생겨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불만이 쌓이고 마음마저 멀어지게 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나.”
“큰아들과 큰며느리가 그렇게 처신을 하면 안 되는 것이지, 형님을 공부시킨다고 동생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는데, 더구나 자기들의 형이 좋은 학당에서 공부를 한다고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정말 그 때만 해도 그 집 큰아들이 집안의 큰 희망인 동시에 자랑이었지 않았나, 이런 저런 사정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큰 아들과 큰며느리가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 어떻게 보면 종가의 장남인 자기가 해야 할 가문의 크고 작은 일들을 동생들이 대신해서 돌봐주고 있는데도 그런 것들을 모르는 것 같단 말이야”
“그러게요, 이번에도 동생들이 형이 벼슬하게 되었다고 아버지, 어머니와 의논해서 키우던 소를 팔아서 필요한 일에 보태어 쓰라고 하면서 보내주었다고 하던데, 시골에서 저축해 놓은 돈은 없고, 그러다보니 소나 돼지 아니면 목돈 되는 것이 뭐가 있겠어요. 참으로 착하고 배려심이 깊은 동생들이지요, 그러한 동생들의 착한 마음을 형과 형수가 알아주어야 하는 것인데 그러지를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동생들이 착하네, 그런 동생들에게 형이 그렇게 대하면 안 되는 것이지, 그러한 잘못된 처신을 하게 되면 아무리 피를 나눈 형제간이라 할지라도 오래 못가, 사람은 지위가 높아지고 자기가 귀하게 되면 될수록 몸을 낮추고 덕을 쌓아야 하는 것이거든, 그 동생들은 조상들을 닮아서 선덕을 쌓는데 형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처신을 하게 되면 안 되는 것이야,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그렇지 못하면 벌을 받게 되는 것이 하늘의 법도거든, 몸이 귀해 질수록 모두에게 더 잘해야지 그래야 그 자리를 오래 누릴 수가 있는 것이라고”
“아무튼 우리가 계속해서 지켜보자고, 앞으로 잘 되고 못 되고는 자신이 처신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거든, 모르긴 해도 그 형이라는 사람도 잘 해 낼 거야, 근본은 착한 사람들이니까.”
“저 위에 강 씨 집에는 얼마 전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고 하던데, 사업을 하는 아들이 그동안은 하는 일마다 잘 풀리는 바람에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를 산다고 자랑을 하기도 했었는데, 이번에 크게 사기를 당해서 잘 나가던 사업이 부도가 나고 어렵게 되었다고 하던데 아마도 이전처럼 다시 일어서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하더라고.”
“그렇다고 하더군, 그것도 모두 자신의 인과응보라 할 수 있겠지, 그동안 그 사람이 재산 좀 가졌다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리게 했나, 남의 돈을 빌려서 쓰고는 갚아 주지를 않는 것은 다반사고, 다른 사람에게 사기를 치고, 자기의 욕심대로 안 되면 폭력배들을 동원하여 공갈협박까지 하고, 권력깨나 있는 자들과 결탁하여 이권에 개입하기까지 하는가 하면, 말하기조차 민망스러운 일을 얼마나 많이 저질러 왔었나. 그나마도 지금까지 그 정도라도 누리고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집안의 선대에서 선행을 쌓아 온 덕이었는데 그런 것도 모르고 재물을 조금 가졌다고 해서 지나치게 설쳐 대었으니 말일세.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참, 사람들이란, 낮은 곳에 있을 때에는 겸손하고 예의바르게 처신을 하다가도 조금이라도 형편이 나아지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리고 막 날뛰듯이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고 함부로 설쳐대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 아무리 좋은 인연이라 할지라도 오래 지탱하지를 못하는 것이야”
“아무튼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처신을 바르게 해야 할 것인데, 지금까지 잘못 생각하고 저질러 왔던 옳지 못한 행동에 대한 값을 치루고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되어야 앞날이 있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예전처럼 옳지 못한 행동을 계속해서 저지른다면 앞으로도 상당히 어려워 질 것이야, 우리가 오랫동안 그러한 사례들을 많이도 보아 왔지 않았었나.”
“그렇지,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지난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야, 그래야 떠나갔던 기회가 돌아오고 다시 일어설 수도 있을 것인데 그러지 못하고 예전처럼 옳지 못한 처신을 계속해서 한다면 상당히 오랫동안 고생을 하게 될 수도 있어, 아무튼 우리의 입장에서는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선대에서 행한 올바르고 착한 처신으로 미루어 보아서 이번의 어려움을 이기고 나면 그 자신이 많은 것을 깨닫게 될 것이고,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되기만 한다면 앞으로는 잘 풀려나갈 것으로 생각된다. 어쩌다 잘못된 생각을 하고 옳지 않은 길로 접어들기는 했었지만 근본은 착한 사람이니까 슬기롭게 대처를 잘해 나갈 것으로 보아야지.”
“저쪽 바로 옆집의 박 씨는 사람이 착하고 평소의 생활도 검소하면서 성실하여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인데 병치레가 잦아서 고생하고 있어, 가만히 보면 술도 그렇게 많이 마시지도 않고, 담배는 아예 피우지도 않는데다 평소에 생활하는 것을 보아도 규칙적으로 운동도하고 자기관리는 잘 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잦은 질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쓰럽기도 하단 말이야”
“그렇지, 그 사람이 평소에 생활하는 것만 보아서는 건강하게 잘 살아갈 것도 같은데 그렇지를 않은 것을 보면 어딘가 근본적인 원인이 따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더라고, 참 안쓰럽기도 하지”
“그 사람의 선대는 이 마을을 일으킨 이 씨 어른이 조정에서 높은 벼슬자리에 있을 때에 호위무사를 했던 분이라고 하는데, 무인으로서 강직한 성격에 의리가 있고 성실해서 그랬는지 이 씨 어른이 정치를 그만두고 낙향하여 이곳으로 올 때에 자신도 자리를 그만두고 식솔들을 거느리고 추종자들과 함께 따라와서 이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는데 크고 작은 일들을 자신이 모시던 어른을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하며 앞장서서 해내기도 했었거든, 그런 것을 우리도 보아왔지 않았었나.”
“박 씨 그 사람은 자신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의 아버지가 업보를 쌓았다고 볼 수가 있어, 그래서 아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봐야지, 선대에서는 무인집안 이기는 했어도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일체의 살생을 금하면서 그러지를 않았는데, 그 사람 아버지가 살생을 지나치게 많이 했거든 뱀이나 고양이, 산토끼, 너구리, 오소리를 비롯하여 개 같은 동물들을 몸에 좋다고 많이 잡아먹기도 하였지만 잡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팔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많은 동물들을 죽였는데 그런 업보들이 쌓여서 그 아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볼 수가 있어”
“먹을 것이 부족하여 모두들 굶주림으로 고생을 많이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던지 먹고 목숨을 부지해야 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겠지만, 그 사람은 유별나게 짐승들을 많이 죽였어”
“마을에서 잔치나 초상과 같은 일이 있을 때에는 가정마다의 형편에 따라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닭을 잡고, 개나 돼지, 소까지도 잡아서 행사를 치렀는데, 이런 일이 있을 때에는 자기가 앞장서서 짐승들을 잡았으니까, 물론 필요에 의하여 짐승을 잡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고는 하더라도 굳이 자기가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이런 일을 거의 도맡아서 하다시피 했거든,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부탁을 받게 되어버려서 하지 않아도 되는 궂은일까지 맡아서 하게 되었던 것이지”
“그러니 누구라도 필요 이상으로 살아 있는 생명을 가볍게 여기거나 괴롭히면 안 되는 거야, 따지고 보면 그들도 모두가 하나밖에 없는 귀한 목숨이거든, 그러니까 아무리 하찮은 생명체라 할지라도 귀하게 생각하고 살생은 가려서 해야 하는 것이야, 평소에 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짐승들을 많이 죽이게 되면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잃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성마저도 악하게 변해가는 법이거든”
“그 말이 맞아요,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고 할지라도 목숨은 귀중한 것이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되고, 내 목숨이 귀중한 만큼 다른 생명도 귀중하게 여겨야 하고, 더욱이 살인이나 심지어 자살을 하는 것과 같은 행동들은 돌이킬 수 없이 큰 죄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야”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미물이라고 할지라도 생명을 가볍게 취급하면 그에 상응하는 벌은 반드시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하늘의 도리야, 목숨을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후손에게 까지도 그 벌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법이거든”
“하늘의 법망은 얼핏 보기에는 매우 엉성한 것 같아 보여도 알고 보면 굉장히 촘촘하여 나쁜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벌을 내리지만, 좋은 일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게 되어있어 어떻게 생각하면 참으로 무섭고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하늘의 법도라고 할 수 있지, 이러한 무서운 하늘의 도리를 안다면 거짓말 하거나 사기를 치고, 폭행을 하고, 다른 사람을 모함하여 어렵게 만들고, 뇌물을 받는다거나 여러 가지 옳지 않은 일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야, 그런 일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벌이 따르게 되어 있어”
“그렇지, 하늘의 법도에 따르는 대가를 당장은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는지 몰라도 절대로 하늘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어서 언젠가는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되어있어”
“그런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안쓰럽기도 하지, 자신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아버지가 저지른 잘못의 대가를 자식이 치르는 셈이거든, 언젠가는 좋아져야 할 것인데....,”
“마을의 가운데에 자리 잡은 이 씨네 집안은 사람들이 성정이 어질고 무난하여 별다른 기복이 없이 잘 살아 왔었지, 예전에 그들의 선조들이 복을 쌓으면서 살아왔었던 것처럼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가면서 착하게만 살아간다면 앞으로도 홍복을 누리면서 잘살아 갈수 있을 것이야”
“그렇겠지, 그 사람들이야 조상대대로 이렇다 할 어려움 없이 살아들 왔으니까, 그 집안에는 자녀들은 말 할 것도 없지만 며느리들이 참 좋은 사람을 맞아들이는데 그것도 그 집안의 크나큰 복이라고 봐야지”
“그래요, 집안에 현숙한 며느리가 들어오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어디에 있겠어, 아무리 화목한 가정이라고 할지라도 며느리를 잘 못 들이게 되면 집안에서 다툼이 잦아지고 분란이 생기는 것은 어려운 것도 아니지, 아무리 사이좋게 잘 지내던 형제자매사이라고 할지라도 서로가 반목하고 다투게 갈라놓는 것은 잠시야, 대신에 이리저리 꼬여서 매사에 잘 풀리지 않던 집안이라 할지라도 며느리 한 사람 잘 들어오게 되면 금방 화목한 집안으로 살아나게 되거든, 사이가 크게 벌어진 형제자매라 할지라도 화합하게 만들고 기울어져 가던 집안도 일으켜 세우게 되거든, 그만큼 한 집안에서 현숙한 며느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지”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이 좋은 터에 자리를 잡은 것도 복이라 할 수 있겠지, 원래 그 집안의 선대가 이 마을을 세우다시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 어른이 조정에서 지위가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임금을 잘 모시고 백성을 고루 잘 보살피는 선정을 펼쳤는데 임금이 현명하지 못하면 언제나 그렇듯이 간신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저희들끼리 파당을 지어서 권세를 행사하며 당파를 만들고 서로가 편을 갈라서 사활을 걸고 다투는데다 싸움에서 지게 되면 심하게는 친인척까지도 죽임을 당하거나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는 참혹한 일들을 보고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바로 잡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정치에 염증을 느끼게 되어 사직을 하고서 평소에 자신을 의지하고 따르던 사람들과 그들의 식솔들마저도 함께 거느리고 이곳으로 거의 피신을 해서 오다 시피해서 왔다고 해”
“정치판이라는 것이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다를 것이 없어서 권력자들끼리 서로가 편을 갈라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힘을 다하여 다투다가 싸움에서 지게 되면 권력에서 멀어지게 되어 고생을 하게 되고, 이기면 권력을 잡고 많은 것을 누리게 되는 것이 속성인 셈이지”
“그 어른이 정치를 그만두고 이곳에 내려온 뒤로부터는 눈치를 보아야 하는 어진 신하가 없어졌으니 간신들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면서 자기들 마음대로 국정을 주무르거나, 심지어 임금마저도 자기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갈아치울 정도로 농간을 부리기도 하고, 재물을 챙기고 욕심을 부리다 보니 지방에 있는 관리들도 그들에게 아부를 하게 되고 뇌물을 가져다 바쳐야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데다가 더 좋은 자리에 갈 수 있을 정도로 부패하게 되자 자연히 백성들만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그렇게 부패한 권력이 오랜 기간 유지되다보니 자연히 국력이 약해지게 되어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에는 견디다 못한 민란이 곳곳에서 일어나게 되었거든, 그렇게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력이 무능한 왕을 갈아치우고 권력을 잡고 권세를 누리면서 온갖 나쁜 일을 저지르던 부패한 무리들을 몰아내고 나라의 이름마저 바뀌게 되고 말았지”
“그래요,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 어른이 이 마을에 와서 지금의 자리에다 터를 잡아서 집을 지었는데 ‘집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작고 협소해도 궁색하게 보이지만, 분수에 넘치게 크거나 화려해도 안 되는 것이야, 차라리 큰 것 보다는 약간은 불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소박한 것이 오히려 좋은 것이다. 사람이 집을 이겨야지 집이 사람을 이기면 안 되는 것이거든, 단지 사람이 생활하고 살아가는데 크게 불편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집을 크게 짓지 못하게 하였다고 해”
“맞아요, 집이란 고래 등같이 분수에 넘치게 큰 것 보다는 우선 그 집에 들어갔을 때 어딘지 모르게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드는 집이 좋은 집이거든, 반대로 그 집에 들어갔을 때에 썰렁하고 차가운 느낌이 든다면 그 집은 사람이 살기에 좋지가 않아요.”
“사람들이 집터나 묘 자리를 잡을 때에 어떤 사람들은 많은 재물까지 들여가면서 이름 있는 지관을 불러서 ‘길지다’, ‘명당자리다’ 하는 장소를 찾는데 어디 그런 자리가 따로 있겠나, 그저 햇빛이 잘 들어 밝고 따뜻한데다 어딘지 모르게 편안한 느낌이 드는 한편으로 통풍이 잘되어 축축한 느낌이 없는 장소면 그 곳이 명당자리라 할 수 있어, 길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기에 편하면 그 자리가 바로 명당이고 길지인 것이야. 정말로 커다란 복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이상적인 명당자리가 있다면 지관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그런 자리를 잡아서 조상의 묘 자리나 집터로 하지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겠나, 모든 것은 사람의 생각하기에 달린 것이야, 좋다고 생각하면 그 곳이 좋은 자리인 것이지”
“그 어른이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살면서 세상의 좋지 않은 것을 보기가 싫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사람들을 설득하고 협조를 얻어서 마을 앞에다 커다란 못을 만들고, 그 못의 둑을 이용하여 양쪽 산골짜기를 이어주는 길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서 숲을 가꾸어서 마을의 안쪽에서는 바깥이 보이지 않게 하고 바깥에서는 안쪽이 보이지 않게 한데다, 연못에는 비가 많이 올 때에는 물을 담아서 홍수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는 한편으로 가뭄에는 담아 두었던 물을 농사에 이용 할 수 있게 함으로서 이전에는 제대로 이용이 되지 않고 있었던 땅을 개간하고 밭을 논으로 바꾸어 마을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만들었으니 사람들이 좋아 하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심은 나무가 자라서 숲이 어우러지자 태풍을 어느 정도 막아서 마을에 피해를 줄이고 여러 가지 좋은 일이 많이 생기면서 살기 좋은 마을이 되었어, 그러한 영향으로 마을 전체가 살림이 넉넉해지고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학문에도 열중하게 되어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들도 많이 나오게 되었지”
“그분이 그만큼 앞날을 내다보는 안목과 백성을 생각하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이지, 참으로 훌륭한 어른이셨지”
“아무튼 그 어른이 이곳에 터를 잡고 살면서 재산이 없어서 향교나 서원, 서당 같은 곳에 가서 공부를 할 형편이 못되는 집의 아이들을 불러다 글도 가르치고, 흉년이 들기라도 하면 어려운 이웃에 식량을 나누어 줌으로서 먹고살게 하고, 아픈 사람들을 돌보아 주기도 하면서 좋은 일을 하는 한편, 자손들에게는 벼슬길에 나가게 되더라도 일정한 지위 이상은 욕심을 내지 말 것을 유언으로까지 남길 정도로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했다고 하는데 얼마나 잘못된 정치판의 고질적인 폐단을 몸소 겪으면서 알고 계셨으면 그렇게까지 하였겠어.”
“후손들에게 관직에 나가게 되더라도 뇌물이나 분에 넘치는 접대를 받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하시면서 ‘뇌물이나 접대는 낚시 바늘을 감춘 미끼와 같은 것이어서 미끼를 무는 순간 낚시 바늘에 걸려서 목숨을 잃게 되는 물고기처럼 뇌물이나 접대라는 것은 받는 순간부터 그것을 제공한 사람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어 제공한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직자는 청렴과 명예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가르치고 그러한 사상을 유훈으로 남겼다고 하거든.”
“관직뿐만이 아니라 정치판에도 나가는 것을 달가워하시지 않았어. ‘정치란 널리 백성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행해져야 하는 것인데, 정치를 통하여 권력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면 웬만하게 마음을 다잡아먹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이 혼탁하게 되어 백성의 위에 군림하려하고 입신양명이나 지나친 향응을 받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한편으로 재물을 챙기는 것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백성을 힘들게 하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 애국애민하고 멸사봉공하겠다는 투철한 자기관리와 정신무장이 되어있지 않다면 정치판에는 나가지 말라’고 하였다네.”
“그 어른은 ‘권력이란 예리한 칼날에 묻어 있는 꿀과 같은 것이어서 자칫 꿀의 달콤함에 취하여 권력을 탐하다 보면 혀를 다칠 위험이 있으며,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은 것으로 잠깐 동안은 그 자태를 나타거나 누릴 수가 있겠지만 약한 흔들림이나 햇빛에도 쉽게 스러지는 것과 같이 허무한 것이므로 탐하지 말라’고 경계를 하시는 한편으로는 ‘권력을 가진 자가 알아야 할 것은 권력이란 마치 예리하게 날이 선 칼과 같은 것이어서 어떤 심성을 가진 사람이 칼을 들었는가에 따라서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의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함부로 사람을 해치는 강도의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므로 무릇 권력을 가진 자는 그 성정이 올바르고 착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고 해”
“그러한 조상의 현명한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후손들이 모두가 선덕을 쌓고 관직에 진출을 해서도 크게 문제를 일으키거나 말썽을 부려서 백성들로부터 원성을 사는 사람이 없었어, 우리가 오랜 세월동안 지켜보고 있었지 않았나. 그만큼 한 집안의 가정교육을 통한 가풍과 전통이라는 것은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더욱이 그 어른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사람이 태어났다가 죽는 것은 촛불이 주위를 밝히다 초가 다 타거나 바람이 불면 꺼지듯이 그렇게 가는 것이며, 삶이란 한줄기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고 죽음이란 잔잔한 호수에 달빛이 잠기는 것과 같은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무덤도 크게 만들지 말 것이며, 살아오면서 내세울 만한 일을 한 업적도 없으니 비갈(빗돌의 윗머리에 지붕모양으로 만들어 얹은 비와 그런 것을 얹지 않고 머리 부분을 둥그스름하게 만든 작은 비석인 갈을 아울러 이르는 말)같은 것도 세우지 말라’고 유언으로 남겼다고 하니 참으로 훌륭한 분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런 분을 조상으로 하여 가르침을 가풍으로 물려받고 있으니 그 후손들이 어떻게 잘못된 처신을 할 수가 있겠어, 그러니 대를 이어가면서 복을 누릴 수밖에 없는 것이지, 아마 앞으로도 무리 없이 잘 해 나갈 것으로 생각해”
“그동안 우리도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보고 겪었지 않았나, 지금은 길이 잘 되어있지만 괴나리봇짐이나 짐을 지게에지고 걸어 다니던 오솔길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수레가 걸림 없이 다닐 수 있는 큰길이 되었지 않았나, 이러한 길을 넓히고 편리하게 만든 덕으로 생활전반이 편리해지고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는 하였지만 이러한 길을 만들 때에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시련의 시기이기도 하였지, 우리 모두를 베어내고 어느 정도로 길을 넓히려고 하였는데 다행스럽게도 마을의 어른들이 나서서 선대로부터 마을을 지켜보면서 편안한 쉼터와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생각하며 함께해 왔는데 베어서 없애면 절대로 안 된다고 강하게 반대를 하는 바람에 그런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가 있었지 않았겠나.”
“그렇지, 오랜 세월의 흐름에 의해서 국가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고, 시련의 시간도 더러 있었지만 좋은 일, 궂은일을 가리지 않고 보고 겪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 온 셈이지”
“우리가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보고 느낀 것은 어느 누구를 가릴 것 없이 착하게 살면서 많은 덕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야, 남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면 자신의 눈에서는 피를 흘리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거든,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나쁜 일을 저지르면 당장은 어떻게 벌을 받지 않고 피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자신이 아니면 그 자손에게라도 저지른 만큼의 대가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되어 있어, 그것이 거부할 수 없는 하늘의 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말씀이 맞아요, 오랜 세월을 이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살아가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은 인과응보로 반드시 원인에 따라서 결과가 주어진다는 것이지요,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좋은 결과가 있고, 나쁜 일에는 그에 따르는 벌이 반드시 내려진다는 것이 그런 것 아니겠어요”
다섯 노인이 나누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가운데 자신이나 마을의 이야기 같기도 하여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서 듣고 있는 사이에 시간이 자정을 넘어서 새벽으로 이어지자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노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이제 그만 일어납시다, 곧 새벽닭이 울 것 같아요”고 하면서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오늘따라 밤이 깊어도 집으로 돌아오시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걱정되는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꼬박 밤을 지새우다시피 한 아들부부가 남포등을 앞세우고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가 아름드리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는 마을쉼터에 이르자 평상위에서 커다란 정자나무에 기대어 잠이 드신 아버지를 발견하고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하여 잠을 깨워서 집으로 모셨다.
집으로 돌아와 밤을 새워가며 걱정을 하고 계시는 어머니에게 아무런 탈 없이 아버님께서 돌아오셨으니 걱정하지 마시라는 위로와 함께 자리에 들어 잠시 동안 안정을 취한 후에 아침식사를 마치고나자 어느 정도 정신을 가다듬은 아버지께서 마중을 나왔던 아들과 며느리에게 “야들아 너희가 나를 데리러 왔을 때에 나무아래에서 누군가를 보지 못하였느냐”하고 물어본다. 이에 아들 내외는 아버지가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하다는 것에 안도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하게 여기는 듯 “아버님 외에는 누구도 보지 못하였습니다.”라는 대답이다.
“그래? 그것참 이상한 일이다. 아주 점잖게 생기신 데다 품위가 넘치고 어딘지 모르게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느껴지는 다섯 분의 노인이 나무아래에 있는 평상에 둘러앉아서 이 마을과 관련한 말씀들을 나누고 계셨는데, 너희가 보지 못하였다고 하니 참으로 괴이하다”
“저희들은 아버님 외에는 아무도 보지를 못하였습니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이 어디에 계셨다고 그러한 말씀을 하십니까?.”
아들 내외는 비록 따스한 초여름 날씨이기는 하지만 연세가 드신 아버지께서 밤새워 바깥에서 계신 탓으로 건강에 무슨 이상이라도 생긴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이라도 하는 것 같은 눈치다.
“아니야, 모두들 내가 헛말이라도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 같은 눈치인데, 내가 분명히 보았어, 그 다섯 분의 노인들께서 이 마을과 관련된 말씀들을 나누고 계셨단다.”
“저희가 갔을 때에는 아버님 혼자서만 나무에 기대어 주무시고 계셨을 뿐이며 다른 낮선 어르신들은 보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래? 내가 분명히 다섯 분의 노인들을 보았고, 그분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를 똑똑히 들었거든, 그분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기억이 생생하단 말이야, 너희들이 보지를 못하였다고 하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분들은 어떻게 생기신 분들이었습니까? 저희들은 정말로 어떤 분들도 뵙지를 못하였습니다.”하면서 한 번 더 아들 내외가 조심스럽게 물어 본다.
“그래, 그분들은 머리와 수염이 길고 백발인데다 연세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화색이 넘치는 얼굴에 흰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으신 분들 이셨어, 그런데 너희들이 보지를 못하였다고 하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네”
이러한 대화가 오고 간 다음에 지난밤에 마을의 정자나무 아래에서 존재 자체를 알 수조차 없는 이상한 노인들의 옆에서 들었던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아들 내외와 손자들에게 들려주시면서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옳지 않은 일은 하지 말 것과 언제나 착한 일을 하면서 덕을 쌓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강조를 하신다.
13. 도깨비 불
마치 커다란 양동이로 물을 길어다 퍼붓기라도 하거나, 아니면 하늘에 커다란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고 바람마저 세차게 몰아치는 여름날의 저녁녘이다. 몇 가구 되지 않는 자그마하지만 사람들이 오순도순 이웃 간에 따뜻한 정을 나누어가면서 살아가는 고즈넉한 마을이다.
사람들이 마을건너편 산기슭의 당산이 보이는 집의 추녀아래에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피하여 모여서서 약간은 무섭고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각자 저마다의 느낌을 한마디씩 한다.
“야아, 저기 저것 봐라, 저쪽 산 아래 당산이 있는 곳에 도깨비가 나타났다”
“어디? 어디야, 느닷없이 어디에 도깨비가 나타났다고 하는 거냐?”
“저기를 봐, 저쪽, 안산 기슭에 있는 당산 주위에 도깨비불이 번쩍, 번쩍 한다니까”
“어디에? 안보이잖아,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무슨 불빛이 보인다는 거야?”
“지금은 안 보이네, 조금만 기다려 봐, 아까부터 분명히 도깨비불이 나타났어, 조금 전에도 우리가 확실히 도깨비불이 번쩍번쩍 하는 것을 봤다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나 둘도 아니고 도깨비불이 여러 개가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졌어.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니까”
“그래, 맞아, 나도 확실히 봤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야, 아마도 또다시 나타날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함께 모여 있는 일행들 가운데 몇 사람은 도깨비불을 보았다고 하고, 다른 몇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실랑이들을 하고 있을 때, 또 한 차례의 비바람이 거친 소리를 내면서 거세게 몰아친다. 바로 그 때,
“야, 저것 봐라, 당산이 있는 곳에 여러 개의 도깨비불이 또다시 나타났어, 잘 봐, 저것 보라고, 아까도 우리가 저런 불빛이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 하는 것을 확실히 보았다니까.”
“아, 그러네, 맞아, 불 빛 뿐만이 아니라 막 울부짖는 소리까지 들리는데”
“아이고,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일이야, 도깨비불에다, 도깨비들이 울부짖는 소리까지, 예삿일이 아닌 것 같아, 큰일 났다.”
사람들이 모여서서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깨비불과 도깨비의 울부짖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에 대하여 두려움마저 가진 표정으로 모두들 저마다의 느낌에 다른 사람의 느낌까지 더하여 부풀려가면서 한마디씩 한다.
“모르기는 몰라도 당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많은 도깨비불이 나타나고, 저렇게 도깨비들이 막 울부짖는 소리까지 들리겠나?”
일부 마음이 여린 사람은 겁을 잔뜩 먹은 표정으로 무서워하면서 옆 사람의 팔을 움켜쥐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등 뒤로 돌아가서 숨기도 하면서 두려워하고 있다.
“아이고, 잘 모르기는 몰라도 동네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모양이다. 전에는 없었던 일인데 갑자기 하나 둘도 아니고 저렇게 많은 도깨비불이 나타나는데다 도깨비가 울부짖고 하는 것이지? 아무래도 좋은 일은 아니 것 같다.”
“에이, 그렇다고 설마 무슨 일이야 있을 라고, 많은 비가 오는데다가 바람까지 세차게 부니까 도깨비가 나타나는 것이겠지, 걱정하지 말라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니까”
“전에도 비가오고 바람이 부는 날이면 오늘처럼 저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저런 일이 일어나기도 했었거든, 별일 아닐 거야.”
“그래요? 나는 전에는 저런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언제 그런 일이 있었어요?”
“아니, 자주 그런 것은 아니고, 간혹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날이면 가끔씩 저렇게 도깨비불이 나타나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도 했어”
“그랬어요?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는데요?”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그냥 비가 그치고 날이 개이면 아무런 일도 없었어. 괜히 무서워하거나 쓸데없는 걱정 같은 것 하지 말라니까.”
“그렇다면 다행인데, 행여나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어떻게 해요”
“에이, 괜찮다니까 자꾸 그러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겁내지 말라고”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는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어떻게 합니까?”
“글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니까 그러네,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라고, 뭐 걱정을 한다고 일어나야 하는 일이 안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안 일어날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거든.”
모여선 사람들이 서로가 위로를 해 가면서 잠간씩 나타났다 없어지고, 때로는 여러 개의 도깨비불이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하면서 거세게 울부짖기라도 하는 것 같은 섬뜩한 소리를 질러대는 모습을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각자가 저마다의 느낌을 말하고 있다.
마을에서 그렇게 넓지 않은 들을 지나게 되면 일 년 내내 끊이지 않고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하천을 건너가면 좁다란 논이 있고, 논이 끝나는 곳에 나지막한 둑이 시작되는 산기슭에 해마다 정월 초하루 설날이나 추석 같은 특별한 날이면 마을을 대표하는 어른들이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의관을 깨끗하게 갖추어 입고는 정신을 가다듬어서 동제를 지내는 신성한 장소인 동시에, 가끔씩은 무속인 들이 굿을 하면서 치성을 드리기도 하는 돌을 쌓아서 만든 커다란 돌탑과 그 주위에는 해묵은 고목에 새끼를 꼬아서 오색의 헝겊을 매단 금줄을 두른 당산이 있다.
당산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 전통신앙으로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신(당산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을 모시는 신성한 장소로 마을의 풍요와 평안 등을 기원하는 의례적인 성격을 가진 당제를 지내는데, 제관으로 선정이 된 사람은 일정기간 동안은 근신을 하게 되고, 제삿날이 가까워오면 당산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묵은 금줄은 걷어내고 새 금줄을 갈아 두르고 주위에는 황토를 놓아 부정을 막는 조치를 하게 되는데, 신(神)이 머무르는 신성한 장소로 생각하여 당산의 주위에는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함부로 가까이 할 수 없는 금지구역으로 선택된 사람들 이외에 일반사람들은 가까이 가려고하지 않기 때문에 당산 주위에는 해묵은 커다란 나무들이 있어서 숲이 우거진데다 돌탑을 비롯하여 주위의 큰 나무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천(피륙)조각을 매단 금줄이 둘러져 있기 때문에 음습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당산을 중심으로 주위에서 갑자기 여러 개의 도깨비불이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기도 하고,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 닥치면 다시 나타나는데다 귀신들이 울부짖는 것 같은 괴상한 소리까지 들려오자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알고 보면 당산이 자리한 지형적인 특성과 더불어 비와 바람에 더하여 전기가 흐르는 전선이 함께 어우러져서 만들어낸 것으로 사람들이 상상하는 도깨비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의 철탑이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높은 전신주와는 다르게 나무로 된 나지막한 전봇대가 마을 앞 산기슭을 가로질러서 지나가고 있었는데, 다른 곳은 논이나 밭에 전봇대를 세워서 전선이 설치되어 있고 산을 가로질러야 할 경우에는 전선이 지나가는 아래쪽의 나무를 베어내서 전선이 나뭇가지에 닿아서 합선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였는데, 당산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에는 다른 곳보다 산기슭이 약간 앞쪽으로 튀어나와 있는데다가 다른 곳과는 달리 약간은 신성시되어 접근이 금기시 되는 장소였기 때문에 나무를 베어내거나 주변의 정리가 되지 않아서 바람이 없거나 약한 바람이 불어올 때에는 전선이 직접 나뭇가지에 닿지 않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면 아름드리나무가 흔들리면서 나뭇가지들이 전깃줄에 닿게 되어 있다.
이날따라 억수같이 장대비가 쏟아지는 데다 바람마저 세차게 불기 때문에 나무는 가지와 잎에 많은 물을 머금게 되었고, 전선자체에도 빗물이 흐르고 있어서 바람이 세차게 불면 나뭇가지가 심하게 휘거나 흔들리면서 전깃줄의 이쪽 선과 저쪽 선을 연결하여 맞닿게 되어 순간적으로 합선이 되면서 전기스파크가 일어나서 불꽃이 튀고, 세찬 바람이 전선을 강하게 스치면서 마찰음이 생기게 되어 마치 귀신이 울부짖기라도 하는 것과 같은 소리를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국가적으로 발전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으므로 전력사정이 좋지 못하여 산업시설을 제외한 도시의 일반가정에까지도 제한적으로 전기가 공급이 되었을 정도로 열악한 현실에서 시골에는 전기가 거의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기를 이용하기 위한 기반자체가 갖추어지지 않아 전기에 대한 상식자체가 없다시피 하였으므로 전기스파크로 생기는 불빛을 도깨비불로 오해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이 나뭇가지를 때리면서 발생하는 소리와 세찬바람이 전선을 스치면서 만들어 내는 소리는 바람이 약할 때에는 거의 발생을 하지 않지만 바람이 거세어질수록 소리는 더욱 커지기 때문에 비바람소리에 더하여 전선에서 만들어지는 소리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만들어지는 소리를 귀신이나 도깨비가 울부짖는 소리로 오인을 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4. 아기의 울음소리
부슬 부슬 약하게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짙은 안개로 낮인데도 불구하고 시야가 어두운데다 후텁지근하고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느껴지는 날이다.
약하기는 하지만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나뭇잎에 맺혀있는 물방울이 떨어져서 내리는 빗물과 함께 머리와 얼굴을 타고 내려서 옷을 적시는데다 길섶에 자란 풀들이 발과 다리를 수시로 감아 치면서 젖은 옷자락에 더하여 산길을 내려오는 발길을 힘들게 붙잡는다.
산속에서 사내아이 둘이 소에게 먹일 꼴을 한 짐씩 베어서 지게에 짊어지고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있는 비탈지고 거친 산길을 서둘러서 내려오고 있는 바로 그때, 아이들이 내려오는 산길로부터 멀지 않은 숲속에서 갑자기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응애, 응애, 응애 ~’
‘응애, 응애, 응애 ~’
나무와 풀들로 우거진 숲속에서 들려오는 갑작스런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에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산길을 내려오던 아이들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면서 나이가 조금 많은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아, 야, 이게 무슨 소리고? 저 위의 숲속에서 아기가 울고 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아니야?”
“어, 그러네, 그런데 말이야 이상하지 않아, 저 소리는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가 아니야? 진짜 아기의 울음소리 같은데…”
“그래, 맞아, 아기의 울음소리 같은데, 왜 갑자기 저런 숲속에서 어린 아기가 울고 있을까? 정말로 이상한 일이네, 더구나 이렇게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
“저기는 너덜이 있는 숲속이고, 이렇게 비도 오는데 어떤 아기가 저런 곳에서 울고 있다는 것이야”
“아니야, 잘 들어보라고, 분명히 아기의 울음소리가 맞는데, 참말로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 저런 산속에 어른도 없이 어린아이가 혼자서 울고 있을 수가 없는 것 아니야?”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저 소리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맞아”
이렇게 산속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아이들이 이상하다는 듯이 서로의 생각을 말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가운데 또다시 “응애, 응애”하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온다.
“저 소리 한번 들어봐, 또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이상하기는 하지만 확실히 아기의 울음소리가 맞는데, 안 그래?”
“그래 맞아, 그렇기는 해도 참말로 이상하다. 약하기는 하지만 비가오고 안개도 끼어서 이렇게 궂은 날씨인데 어떻게 어린 아기가 산속에서 울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네, 그렇지 않아?”
그렇게 서로가 자신의 느낌을 이야기 하면서 함께 산길을 급하게 내려오든 한 아이가 약간은 겁을 먹은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다른 아이를 보고 이렇게 말을 한다.
“야, 그런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해봐라, 혹시 저것이 도깨비소리는 아닐까? 아마도 저것은 아기도깨비 같은데 무엇인가 기분이 좋지 않거든, 얼른 내려가자”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내려오던 한 아이가 갑자기 겁먹은 얼굴로 도깨비라는 말을 하자 같이 산길을 내려오던 다른 아이도 표정이 바뀌면서
“뭣이라고? 도깨비라고? 날씨가 궂기는 해도 이런 낮에 느닷없이 무슨 일이야, 아이구야, 정말로 도깨비라면 큰일이다. 빨리 내려가자”
“지금 아기가 울고 있는 저 위의 숲속에는 너덜이 있어서 애장이 많이 있단 말이야, 저것은 도깨비가 틀림없는 것 같아. 도깨비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비가 오는 궂은 날에 어린 아기가 어른도 없는데 혼자서 산속에서 울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큰일이다, 어서 집에 가자”
애장(애葬)이란 어린 아기가 죽어서 무덤을 만들 때에는 장례절차에 따라 땅을 깊게 파고 관을 묻어서 봉분을 만드는 어른의 무덤과는 다르게 항아리 같은 것에 넣어서 묻기도 하고, 큼직한 돌덩이나 널따란 구들장 같은 것으로 덮거나 쌓아서 시신을 야생동물이 파헤쳐서 훼손하지 못할 정도로 엉성하게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멀지 않은 숲속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응애, 응애”하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산길을 내려오던 두 사내아이는 겁을 잔뜩 집어먹고 무서움에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부추겨가면서 짊어진 풀지게가 무거운 줄도 모를 정도로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도망이라도 치듯이 산 아래로 내달린다.
논에서 잡초를 뽑으면서 논매기 작업을 하고 있던 마을 어른이 비가 내려서 미끄러운 길을 뛰다시피 하면서 허겁지겁 급하게 내려오는 아이들을 보고는 넘어지지 않게 천천히 조심해서 내려오라는 충고의 말을 한다.
“야들아, 천천히 조심해서 오너라. 그렇지 않아도 비가 와서 길이 미끄러운데 그렇게 짐을 지고 뛰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잘못하다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다친다.”
“아저씨, 그렇기는 한데요 큰일 났어요. 저 위의 숲속에 도깨비가 있어요. 그래서 무서워서 뛰어오는 것이에요”
무서움에 질려서 산길을 무거운 짐을 지고서도 뛰다시피 내려오던 아이들이 어른을 만나자 조금이라도 마음이 놓인다는 듯이 안도의 숨을 내 쉬면서도 얼굴에는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을 지으면서 조금 전에 저 위에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하면서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겁에 질려서 다급하게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어른이 허리를 펴고 웃으면서 아이들을 달랜다.
“이 녀석들아 도깨비는 무슨, 이런 낮에 도깨비가 어디에 있다고 그래, 짙은 안개가 끼어 있는데다가 보슬비까지 내리고 있어서 날이 궂기는 하다만 그래도 그렇지, 이런 한낮에 도깨비라니, 그런 것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괜찮으니까 천천히 내려와.”
“아이고, 아저씨 그런 것이 아니라니까요, 우리가 거짓말이라도 하는 줄 아시는 모양인데 그런 것이 아니라요, 정말이라니까요, 저 위에 확실히 도깨비가 있어요. 방금 우리가 저 위에서 내려오는 길에 분명히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었거든요.”
“진짭니다. 저 위쪽의 숲속에 애장이 있는 곳에서 우리가 분명히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었단 말입니다.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니까요”
아이들이 겁에 질려서 목소리까지 떨어가면서 어린 아기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말을 하자, 어른도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아이들을 달래면서 말을 이어간다.
“그래? 너희들이 거짓말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려오는 길에 아기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어디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그러느냐? 나는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거든, 더구나 지금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진짜예요, 우리가 확실히 들었거든요, 자세히 한번 들어 보세요, 지금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저 위에 작은 너덜이 있는 숲속에서 나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우리 둘이서 같이 들었다니까요.”
아이들은 혼자만 들은 것도 아니고 둘이서 분명히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는 바로 그때 다시 ‘응애, 응애, 응애’하는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가 아이들이 내려온 쪽의 산 속에서 분명하게 들려온다.
“자, 들어보세요, 지금 또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지요? 저 소리 한번 들어 보세요, 지금 저 소리는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가 맞지요?.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줄 아세요?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정말이라니까요, 저위에 분명히 도깨비가 있다니까요.”
“그래, 그렇기는 하네, 맞아 너희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아기가 울고 있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기는 한다.”
“그렇지요? 우리가 하는 말이 맞지요, 저위에 산속에 분명히 아기 도깨비가 있다니까요, 진짜로 무서웠어요.”
아이들이 무서워하면서 열심히 자신들의 느낌을 설명하는 말을 듣고 있던 어른이 웃으면서 저것은 도깨비가 아니라고 하면서 겁을 내고 있는 아이들을 달래면서 아기울음 소리에 대하여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준다.
“애들아 지금 들리는 저 소리는 도깨비가 내는 소리가 아니란다, 저 소리는 노루나 고라니, 여우와 같은 산짐승들이 짝을 찾거나 할 때에 하는 소리란다. 그냥 산짐승들이 내는 소리야, 그러니까 겁내지 말고 미끄러운 길에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천천히 가거라.”
이러한 어른의 설명을 들은 아이들은 한편으로는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른의 설명에 수긍을 하는 것 같은 눈치다.
“아저씨, 저 소리가 도깨비소리가 아니라 산짐승들이 내는 소리라고요? 참말로 이상하네,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가 맞는데…,”
“아니야, 애들아 저런 소리는 산짐승들이 내는 소리로 도깨비가 아니니까 겁내지 말고 넘어지지 않게 천천히 조심해서 가거라. 비가 내려서 길이 미끄러운데 넘어지기라도 하면 다친다.”
어른의 거듭되는 설명과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해서 가라고 하는 말을 들은 아이들은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마음의 안정을 찾아서 빗길에 넘어지지 않게 조심을 하면서 집으로 갔다.
15. 어느 쇠장수와 허깨비
밤이 이슥해서야 얼굴과 팔다리를 비롯하여 온 몸이 긁히고 여기저기에 피가 말라붙고 멍이 들어있는데다 입고 있는 옷은 여기저기가 찢어지고 흙투성이가 된 험악한 모습의 김 씨가 피곤에 지치고 얼이 빠져서 몸을 제대로 가누는 것조차도 힘들어 보이는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부인과 아이들이 늦게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가장을 기다리고 있는 집안으로 들어오더니 마룻바닥에 거의 쓰러지다시피 들어 눕는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부인과 아이들이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서 익숙하다는 듯이 김 씨를 부둥켜안아서 방안으로 옮기고 자리를 펴고 눕히자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도 모를 정도로 술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우는 가운데 걱정하는 부인과 아이들이 힘을 합쳐서 물을 따뜻하게 데워서 물수건으로 몸에 묻은 피딱지와 흙먼지 등을 닦아내고 찢어지고 헤어진 옷을 갈아입히는 가운데에서도 김 씨는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아이고 너희 아버지는 오늘도 어디서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기에 이 모양이 되었을까, 제발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인데 거의 장날마다 이 모양이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겠니? 참말로 속이 상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하면서 걱정을 한다.
“아니, 아빠는 대체 왜 이러시는 걸까요, 전에는 이러시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글쎄다, 왜 이러시는지 나도 모르겠구나, 너희 아버지가 농사만 짓고 살 때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쇠장수일을 시작하면서 자주 나들이를 하더니 언제부터인가 이러는구나, 주머니에 돈이 좀 들어오니까 우쭐해 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너희 아버지의 돈을 노리는 사람들의 꼬임에 넘어가서 이렇게 변해가고 있는 것만 같아서 걱정이다”
“정말로 무엇 때문에 이러시는 것일까요? 걸핏하면 술을 마시는데다, 가끔씩 술에 취하면 동네사람들에게까지 이상한 행동을 하니 우리들도 사람들 보기가 부끄러워요, 엄마”
“그래도 너희 아버지니 어쩌겠나, 너희들은 아버지의 저런 행동을 본받으면 안 된다. 알겠니?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술에서 깨면 또 무슨 변명과 거짓말을 하면서 둘러댈 것인지 모르겠구나,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은 하도 거짓말에다 좋지 못한 행동까지 하니, 나도 정말 속이 상하지만 어떻게 좋은 방법이 없다. 저러다 정신을 차리게 되면 좋아지지 않겠나, 본래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 어쩌다 나쁜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니 저렇게 되었나보다” 차마 아이들에게까지 아버지를 나쁘게 말할 수 없으므로 좋게 변명이 아닌 변명을 하는 엄마와 자식들 사이에 이러한 답답한 대화가 오고가는 가운데 한동안의 홍역을 치르고는 밤이 깊어간다.
쌀과 보리를 비롯하여 사람이 먹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식량의 절대량이 부족하여 이런바 보릿고개라고 하는 춘궁기가 되면 가정마다 보관하고 있는 식량이 거의 바닥이 나서 끼니를 굶다시피 하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산과 들에서 나는 쑥과 나물을 비롯하여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채취하여 먹고서 목숨을 부지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시절이었으므로 소나 돼지, 염소, 토끼를 비롯하여 닭 등의 가축을 기르는 것마저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소를 사려면 경제적으로 부담이 크기 때문에 쉽게 들일수가 없어서 남의 암소를 빌려다 기르면서 농사일에 이용하는 한편으로 송아지를 낳게 되면 소의 주인과 나누어서 가지게 되는 이른바 ‘배냇소’나 혹은 송아지를 빌려서 기른 다음 수익을 나누는 ‘수냇소’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소를 소유 할 수가 있었으므로 소는 무엇보다도 귀중한 재산으로 소를 가진 집은 그런대로 살림에 여유가 있다고 보아야 할 정도로 소중한 자산인 동시에 소도둑들의 표적이 되기도 하였다.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부업삼아 쇠장수를 시작한 김 씨는 가까운 이웃마을을 다니면서 일반농가에서 기르고 있는 소를 싸게 사서 필요로 하는 다른 농가에 웃돈을 받고 팔기도 하고, 닷새마다 서는 장날이면 가까운 가축시장이나 식육업을 하는 사람에게 내다 팔아 이윤을 남기는 방식으로 상당한 논과 밭을 사들이기도 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를 누리고 살게 되었는데, 재산이 조금씩 불어나고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오자 부지런하고 성실하던 본래의 마음을 잃게 되면서 다른 소장수들과 어울려 술과 도박에까지 손을 대게 되면서 살림살이마저 차츰 어려워지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자 6.25전쟁을 겪으면서 나라의 경제가 어려웠으므로 자동차가 다니는 신작로가 만들어진 것이 오래되지 않아 포장이 되지 않은 자갈길인데다 엔진이 있는 보닛(bonnet)부분이 앞쪽으로 돌출되어 있는 형태로 자동차 자체도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폐차수준의 차를 들여와서 수리하여 운행을 하는 형편이었으므로 고장이 잦고 힘이 약해서 경사진 길에는 잘 오르지를 못할 뿐만 아니라 엔진이 꺼지기라도 하면 승객들이 내려서 밀어주기도 하고, 시동을 걸때에는 별도의 손잡이를 이용하여야 하는 수동식이었으므로 어려움이 많았다.
전문적으로 소를 싣고 다니는 차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다소 많은 비용을 들여서 화물차에다 소를 싣는다고 하더라도 마을마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없는 곳이 많았으므로 소를 기르는 농가마다 다니면서 실어 나르기가 쉽지 않아 소를 전문적으로 몰아주는 소몰이꾼이 있어서 소장수 들은 이들을 이용하였다.
짧은 시간에 많은 액수의 현금이 유통되는 한편으로 이른 아침에 열리는 반면에 오전 중으로 폐장이 되는 가축시장의 특성상 전문적인 사기와 도박 등을 부추기는 노름꾼들이 시장의 언저리에서 눈을 번득이고 있어서 이들의 마수에 쉽게 걸려들 수 있는 환경이 잘 만들어져 있다.
이날도 몇 마리의 소를 팔아서 상당한 이문을 남기고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자 여러 명의 평소에 안면을 터고 지내는 장사꾼들과 어울려서 장날마다 열리는 간이식당에서 점심을 겸하여 국밥과 막걸리로 시작된 술판이 조금씩 커져서 가까운 여관방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도박판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전문가들이 계획적으로 현금이 많은 쇠장수의 주머니를 털기 위하여 술판과 더불어 벌이는 도박판에서 그동안 일부 소장수들과 어울려가면서 길러온 도박기술만으로는 가진 돈을 모두 잃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로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털리고 밑천이 바닥나자 도망을 치다시피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에 남은 것이라고 해야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을 정도로 술에 취하였다는 것뿐이었다.
어떻게 집에까지 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셔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취한 탓으로 정신없이 잠을 자다가 타는 듯이 목이 말라 잠에서 깨어나 물을 찾자 옆에서 자고 있던 아내가 일어나 속 쓰림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기 위하여 물에 꿀을 타서 가져다주고는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말을 건넨다.
“아이들은 옆방에서 자고 있으니 이참에 한번 물어나 봅시다. 어제는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를 해 봐요, 하루 이틀이나 한두 번도 아니고 장날마다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속을 썩이니 말이나 됩니까? 아이들이 넷이나 되는데 아이들 공부도 시켜야 하고 이런 저런 돈 들어갈 일이 많은데 언제까지 이렇게 앞날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갈 것입니까? 이대로는 살아갈 수가 없으니 어떻게 할 것인지 말이나 한번 해 보세요. 자라나는 아이들도 걱정이지만 이웃이 부끄러워서라도 이렇게 살아갈 수가 없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들어나 봅시다.”
참다못한 부인이 정색을 하면서 남편의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 따지듯이 물어온다.
“내가 무엇을 하고 다니든 무슨 상관이야, 그런 것을 알아서 무엇 할 건데?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아파 죽겠는데, 쓸데없는 것을 물어보고 그래, 나라고 뭐 걱정이 없겠어? 나도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하면서 부인의 물음에 오히려 짜증을 낸다.
“최선을 다 하기는, 보나마나 또 노름판에 앉았겠지, 나는 뭐 집에만 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나 보는데, 나도 들은 것이 있어서 다 알고 있다고요, 어제는 또 누구랑 어울려서 노름판을 벌이고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는데 그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고약한 술 냄새를 풍기면서 험한 모습을 하고 왔어요?”하면서 부인도 이번에는 지지 않겠다는 듯이 물어온다.
“노름은 무슨, 거 재수 없는 소리 하지도 말라고, 야! 말도마라, 잘 못했더라면 내가 집에도 오지 못하고 죽을 뻔 했다고, 죽어라 하고 고생을 하고 온 사람에게 기껏 하는 소리라니”라고 하면서 짜증을 낸다.
“아침 일찍 여러 마리의 소를 몰고 나간 사람이 돈은 한 푼도 가져오지 않고 그렇게 험한 모습을 하고 왔으니 누가 당신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겠어요,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것 아니에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을 해 보라고요, 내가 물어본다고 바른말을 하지는 않겠지만, 하다못해 변명이라도 들어 봅시다.”
이렇게 해서 어쩔 수 없이 시작된 김 씨의 이야기는 이렇다.
“소를 모두 팔고 평소에 거래를 하고 지내던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술에 취하게 되었는데, 어느새 날은 저물어가고 그나마 드물게 다니는 막차마저 떠나버리고 없으니 비록 멀기는 하여도 걸어서 올 수 밖에 없어서 비틀거리는 발걸음이지만 간신히 몸을 가누어가면서 걸음을 내딛었다.
찻길을 따라서 먼 길을 걸어서 6.25전쟁 때에 국군과 북괴군이 전투를 치러서 국군이 대승을 거둔 격전지였으므로 젊은 나이에 뜨거운 피를 흘리며 꽃잎처럼 떨어져간 영혼들의 한을 품은 도깨비가 난타난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어서 대낮에도 사람들이 다니기를 꺼려하는 고갯마루를 따라서 나있는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고갯길은 걸어서 넘기에는 구불구불하고 먼데다 달빛만이 희미하게 밝혀주는 스산한 밤에 수많은 원혼들이 울부짖기라도 하는 듯이 싸늘하게 한기마저 느껴지는 길을 술에 취하기는 하였지만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힘겹게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 때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몰고 갔던 소를 팔고나자 점심때가 되어서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어울려서 국밥과 함께 술을 한잔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해가 저물어 가더라고,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운행하는 차도 없고 해서 걸어서 왔는데 거리가 멀다보니 차츰 어두워지는 거야, 그렇게 여우티를 넘어 오는데 갑자기 전신에 섬뜩한 느낌이 들면서 시커먼 무엇인가가 여럿이서 내 주위를 둘러싸더란 말이야, 그러니 머리끝이 곤두서면서 온 몸에 소름이 끼치고 발걸음이 제대로 떼어지지를 않더라고”
그러자 아내는 평소에 저질러 왔던 행동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도 거짓말이거나 궁색한 변명이겠거니 여기는 한편으로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그래서 어떻게 하였어요? 그것이 무엇이든가요?”하면서 건성으로 물어온다.
“어떻게 하기는 무얼 어떻게 해, 그것이 무엇인가 확실하게 보이는 것도 없는데다 그냥 시커먼 그림자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군인복장을 한 사람들이 전신에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길바닥과 주변을 왔다 갔다 하는데, 그것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알 수가 있어야지, 하도 겁이 나고 무서워서 이런 저런 생각이고 뭐고 할 여유가 있나, 그냥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도망을 쳤는데 발이 걸려서 넘어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나서 도망을 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설마, 그것이 도깨비는 아닐 터이고, 혹시 달빛아래 비치는 가로수거나 산에서 자라는 나무의 그림자를 보고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닌가요?”하면서 아내가 물어온다.
“이 사람이! 그렇다면 내가 없는 이야기를 지어 내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분명히 그런 것들이 있었다니까, 내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도망만 쳤겠어? 그것도 하나 둘도 아니고 수를 셀 수도 없이 많더라고.”
“그래요? 정말로 그런 일을 당했다면 큰일 날 뻔 했네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라고 하면서 ‘도박판에서 가진 돈을 모두 털리고 할 말이 없으니까 엉뚱한 거짓말을 지어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믿을 수는 없지만 당신이 하는 말을 믿어 주겠다는 투로 말을 한다.
“어떻게 되기는 뭐가 어떻게 되겠어, 너무 무서워서 죽어라하고 넘어지고 엎어졌다 다시 일어서는 것을 거듭하면서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마구 도망을 쳐서 오는데 아 이것들이 나를 붙잡아서 길바닥에 넘어뜨리고는 허리에 차고 있던 전대(돈이나 물건을 몸에 지니기 위해서 무명이나 헝겊 따위로 길게 만든 자루)를 빼앗아서는 사라져버리더라고, 그래서 돈이고 뭐고 우선은 살고 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죽어라 하고 도망을 쳤는데, 글쎄 이번에는 갑자기 두 개의 시퍼런 불이 나타나더니 앞길을 막아서는 거야”
“아이고 그랬어요? 그렇다면 그것은 또 무엇이던가요?” 아내는 남편이 거짓말을 잘 도 지어낸다는 생각을 하면서 짐짓 모르는 체 하면서 물어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야 알 수가 없지, 도망을 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흐릿한 달빛아래 앞길을 막아서는 것을 얼핏 보니까 몸은 하얗고 무슨 개처럼 보이더라고”
“개처럼 보이더라고요? 어두운 밤에 개가 그런 곳에 있을 리가 없는데 무슨 개가 거기에 있었을까요? 이전부터 그곳에는 종종 여우가 나타나서 사람을 홀리고 정신을 빼앗는다고 하는 말이 전해지기는 했었는데 그렇다면 혹시 그것이 여우는 아니던가요?”이번에는 한 수를 더 뜨면서 물어본다.
“뭣이라고, 여우라고? 그렇다면 그런 곳에 어떻게 여우가 나타난다는 말인가, 나는 여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가 없어서 뭐라고 말은 못하겠고, 더구나 여우가 우리나라에서 없어진지가 언젠데?”
아내가 여우가 아닐까요?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자 더욱 가관이다.
“그러게요, 혹시 당신이 술에 취해서 무엇인가를 잘못 본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더구나 이상한 것을 보고 정신이 없어서 헛것을 보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이번에는 아내가 짐짓 부정을 하면서 무슨 거짓말을 지어낼 것인지 궁금해 하면서 짐짓 남편의 의중을 떠본다.
“뭐라고, 내가 헛것을 보았다고? 말도 않되, 아니야 내가 아무리 술에 취하여 정신이 없었다고 해도 헛것을 볼 정도는 아니었거든, 그렇다면 내가 무슨 허깨비라도 만났다는 말인가”
“그래요?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는데요?”
부인은 놀라기 보다는 남편이 꾸며내는 이야기에 속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무슨 말을 하려는가에 관심을 보이는 것과 같은 태도를 보인다.
“뭐가 어떻게 되기는, 하얀색의 개처럼 보이는 이것이 나를 향해서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거야, 그래서 그것을 쫓아 보내기 위해서 고함을 지르고, 길바닥에서 자갈을 주워들고 던지기도 하면서 도망을 치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구르기도 하다 보니 온몸이 긁혀서 피가 나고 여기저기 옷이 찢어지기도 했거든”
“아이고, 그랬어요, 정말로 큰일 날 뻔 했네요, 그나마 그만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세요,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는데요?”
“그렇게 고함을 지르고 돌멩이를 주워서 던지기도 하면서 넘어지거나 구르면 다시 일어서고 죽을힘을 다해서 도망을 쳐서 고갯길을 겨우 벗어나서 인가가 있는 즈음에 들어서니까 이것들이 더 이상은 따라오지 않더라고, 그래서 급한 마음에 길옆에 있는 술도가에 문을 두드리자 평소에 알고 지내는 주인이 나오더니 놀란 눈으로 나를 보더라고, 그래서 지금까지 당한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 사람이 나를 보고 그러더라고, ‘간혹 밤에 이 고개를 넘다가 여우를 만났다거나, 전쟁에서 죽은 군인도깨비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기는 했어도 자신은 그런 일을 직접 당해보지는 않았다’고 하면서 ‘기왕에 이렇게 된 것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만한 것만으로도 다행인 것으로 생각하라’고 하면서 막걸리를 한바가지 퍼다 주기에 가진 돈이 없다고 하니까 ‘괜찮으니까 그냥 마시고 가라’고 하기에 얻어 마시고는 집으로 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발 술 좀 적게 마시고 밤늦게 다니지 말라고 몇 번을 말 했어요, 아무리 사정을 하고 부탁도 해보고 나무라 봐도 말을 듣지 않으니 그런 험한 꼴을 당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당신 말대로 허깨비에게 욕을 보고, 여우를 만났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나마 그만하기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고 제발 이제부터라도 정신 좀 차리세요.”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니 잔소리 좀 그만해”하면서 짜증을 낸다. 더 이상 말을 하게 되면 화를 돋우게 되어 싸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 이상의 말을 걸지 않고 잠이 들었다.
김 씨가 아침에 일어나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어제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되살아나는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때로는 여럿이서 혹은 혼자서 마음대로 다니든 길에서 허깨비를 만나서 고역을 치렀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데 더하여, 평소에 거래를 터놓고 지내던 사람들에게서 사기를 당하였다는 배신감과 함께 도박으로 돈을 잃은 것을 감추기 위하여 아내와 자식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자 그간의 잘못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평소에 돈을 받고 소를 몰아주던 소몰이꾼을 비롯하여 시장의 변두리를 맴돌면서 기회를 노리던 일당들이 모두 같은 패거리가 되어 자신이 소를 1~2두 정도로 적게 거래할 때에는 노름판에 앉아도 적당하게 돈을 잃어 주기도 하고, 또 자신이 돈을 잃게 되면 개평(‘투전’이나 ‘골패’ 따위의 노름에서 가진 돈을 다 잃어 무일푼이 되었을 때 돈을 딴 사람의 몫으로부터 조금 얻어 가짐)을 주기도 하면서 친분을 쌓아 믿음을 가지게 해 놓았다가 어제는 여러 마리의 소를 몰고 나가서 큰돈이 주머니에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자 본성을 들어내어 자신이 가진 돈을 몽땅 털어간 것이다.
가진 돈을 모두 잃은 데다 도박꾼들이 계획적으로 권하는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신 탓으로 속이 쓰리고 머리가 아프기도 하지만 소를 팔아서 받은 돈을 도박판에서 모두 잃었으니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러한 일을 겪게 되자 지금까지 아무런 탈도 없이 다니던 길에서 느닷없이 허깨비가 나타나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자신이 그동안 행하여 왔던 잘못된 행동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자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차리고 땀 흘리지 않고 함부로 남의 것을 탐내지 않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이날 이후로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땅의 일부를 팔아서 도박으로 진 빚을 모두 청산하고 좋아하던 술을 줄이는 한편 도박에서도 손을 씻고 예전처럼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16. 베매기 허깨비
“어제 내가 참말로 이상한 일을 겪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래, 그렇게 애매하게 말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 봐라”
“그러니까, 무엇이라고 딱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다만, 어떻게 생각하면 실제로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본다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다니까”
“그러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러는 거냐고? 알 수 있게 말을 해야지 본 것도 아니고, 안 본 것도 아니고 그런 것이 어디 있어”
“어제 있었던 일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말이야, 내가 마치 무슨 허깨비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 같거든”
“아,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데, 평소의 너와는 다르게 자꾸 이상한 말만 하는 거냐고, 괜히 여러 사람 궁금하게 하지 말고 이야기를 해 보라니까 그러는 거냐고”
“그래서 내가 지금부터 말을 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한번 들어 보라고, 내가 지어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로 겪었던 일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알고 들어 주었으면 좋겠어.”
“알았어, 우리가 들어 볼 것이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을 해 봐라, 괜히 쓸데없이 뜸만 들이지 말고”
동네 아주머니 몇 사람이 따뜻하게 햇살이 비치는 마룻바닥에 삶은 고구마가 담긴 소쿠리를 놓고 둘러앉아서 간식삼아 김치를 곁들여 먹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 해의 농사가 막바지에 이르러 벼를 비롯하여 농산물의 가을걷이가 대부분 마무리 되고 보리와 밀의 파종마저 끝나 추운 겨울이 시작되기에 앞서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앞 뒷산을 다양한 색깔로 아름답게 장식했던 단풍잎도 막바지에 이르렀고 가을의 햇살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날이다.
동네에서 알아주는 약초꾼인 손 씨 아주머니는 이날도 추수가 끝나서 이렇다 할 만 한 일이 없는데다 이웃에서도 도와 달라고 하는 일거리가 없었으므로 간단하게 간식거리와 필요한 도구를 챙겨서 등에다 동여매고 삽괭이를 지팡이삼아 약초를 찾아서 가까운 산으로 나섰다.
난방이나 조리에 필요한 연료를 나무와 낙엽 외에도 산과 들에서 자라는 풀을 베어다 말려서 사용하고, 소와 염소, 토끼 같은 가축은 풀을 먹여서 기르고, 심지어 농작물의 재배에도 비료가 없어서 인분과 가축분뇨 외에 풀을 이용한 퇴비를 주로 이용하였으므로 산에는 나무꾼들이 다니는 길이 있어서 다니기에 크게 어려움이 없었지만 약초를 캐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으로 가야하였다.
오전부터 일찌감치 산속에 들어가 도라지, 더덕, 하수오, 잔대, 하늘타리, 창출, 백선, 천문동, 둥글레와 같은 약용이나 식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식물의 뿌리를 채취하여 보자기로 동여 싸서 등에 짊어지고 산속을 더듬어서 내려오는 길이다.
상당한 시간을 약초를 찾아서 산속을 헤매고 다닌 탓으로 몸은 지칠 대로 지쳐서 피곤하기도 하지만 갈증마저 나는지라 골짜기의 바위틈새를 타고 흘러내리는 작은 샘물에 엎드려서 갈증을 풀고는 지니고 있던 간식으로 배를 채우고 잠시 지친 몸을 쉬고 있었다.
오랜 시간 산속에서 약초를 찾아서 헤집고 다니느라 피곤한데다 간식과 물로서 배를 채우고 도랑 옆의 평평한 바위에 앉아서 따스하게 다가오는 가을 햇살을 받으며 쉬고 있는 사이에 몸이 나른하고 졸음마저 오기 시작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 정신을 차려야지 하고는 머리를 흔들어도 보고, 어깨를 펴고 몸을 흔들며 기지개도 켜가면서 밀려오는 졸음과 씨름을 하고 있을 때다, 무엇인가 흐릿하기는 하지만 갑자기 이상하게 느껴지면서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물체가 눈앞에 나타나더니 자신을 따라서 오라고 하는 듯이 앞에서 가고 있다.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알 것도 같은데 그렇다고 분명하게 잡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전혀 낯설지도 않으면서 머리 쪽은 약간 동글납작한데다 모자에 헝겊으로 만든 고리 같은 것이 달려 있고 목에서부터 몸통의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납작한 끈으로 단단하게 졸라맨 몸통이 조금씩 커지는데, 졸라맨 부분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넓어지면서 수많은 가닥으로 이루어진 치마 같은 것을 발 부분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내려 입었다.
얼굴이나 눈, 귀, 코, 입을 알아 볼 수 없는 이상한 생김새에 형체마저 뚜렷하지 않지만 앞장에 서서 길안내를 한다.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내려놓았든 등짐을 챙겨서 멜빵을 졸라매고 앞장에서 가고 있는 길라잡이를 따라갔다.
다소 이상하다는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저것이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마저 있었으므로 앞장서서 가고 있는 길라잡이를 따라서 좁은 산길을 한참동안 걸어가자 주변에 산짐승이 더나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돌담장을 쌓아서 울타리를 만들고 출입문이래야 작은 나무로 틀을 만들어 싸리와 대나무 같은 것으로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사립문을 열고 담장 안으로 들어서자 그렇게 넓지 않은 마당이 있는 안쪽으로 약간은 높은 축담 위에 낡기는 하였지만 주변이 깨끗하게 정리된 3칸의 초가집 한 채가 오랜 세월의 흔적을 품어 안고서 집을 관리하고 살아가는 안주인의 성정(性情)을 말해주기라도 하는 듯이 단아하게 앉아 있고, 마당의 한편에는 자그마한 남새밭을 만들어 몇 종의 채소들이 자라고 있는 앞쪽에 마침 걸터앉기에 적당한 바위가 있어서 그 위에 등짐을 풀어서 등 뒤에 받치고 마당에서 베매기 하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베매기 솔 | 베매기, 베짜기 |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는 마당에서 고부사이로 보이는 흰머리를 땋아서 위로 둥글게 틀어 얹은 할머니 한분과 검은머리 사이에 흰 머리칼이 희끗희끗 섞여있는 머리를 곱게 빗어 비녀머리를 하여 얹은머리의 할머니 보다는 다소 젊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노란 빛이 도는 삼실(삼의 섬유질을 풀어서 꼰 실)을 마당의 이쪽에서 저쪽 편으로 길게 늘어놓고 한 손에는 풀을 쥐고 한 손에는 솔을 들어 풀을 먹여가면서 손질을 하고 있다.
베매기 하는 시간이 상당히 되었는지 실의 배열을 조절하면서 실이 서로 엉키지 않도록 하는 한편으로 직물의 폭을 정하는 바디살의 틈마다 날실을 꿰어 늘어뜨려 베매기과정을 거쳐서 말린 상당히 많은 량의 삼실이 도투마리에 감겨있다.
도투마리의 다른 한쪽 저편에는 Y형으로 된 나무를 다듬어 만든 끌개 위에 얹어 놓아 실이 엉키거나 바람에 날리는 것을 방지하는 한편으로 적당한 무게감을 주기 위하여 똬리를 지어있는 실 다발위에 한 개의 맷돌을 올려놓았고, 반대편에는 끌개보다는 큰 Y형의 나무로 만든 받침대를 땅바닥에 말뚝으로 고정을 시키고, 위에는 무거운 맷돌을 얹어서 흔들리거나 끌려가는 것을 방지하도록 하고, 두 갈래로 갈라진 쪽에 2개의 작은 기둥을 세워서 도투마리를 기대어 얹어서 반대편의 끌개위에 있는 실타래의 한쪽을 연결하여 길게 뻗은 날실에 풀을 먹이게 되는데, 주곡인 쌀이나 밀은 식량으로 사람이 먹기에도 부족한 형편이었으므로 수수와 같은 잡곡을 이용하여 풀을 쑤고 치자를 풀어 넣어 색소로 이용하였다.
실타래를 얹어 놓은 끌개와 풀을 먹여서 말린 실을 감는 도투마리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서 도투마리에서 가까운 곳의 날실들이 지나가는 아래에는 실이 불에 타지 않도록 약하게 잦아든 숯불을 깔아서 실에다 풀을 먹이는데, 풀이 실에 잘 먹히도록 하기 위하여 한손에 풀을 쥐고 반복해서 문질러 가면서 실에 풀을 먹이고 풀이 실에 골고루 배어들면서도 서로 엉키거나 달라붙지 않고 잘 마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천천히 솔질을 해준다. 풀이 마른 실은 적당한 간격마다 뱁댕이를 끼워가면서 도투마리에 감아주면 날실이 감기면서 끌개를 끌어오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삼실이나 모시실의 이음새 부분이 풀어지거나 끊어지지 않게 되고, 느슨한 부분들이 견고하게 붙을 뿐만 아니라 삼베 본연의 색상이 살아나게 되어 옷감을 짜는 직물의 재료가 되는 것이다.
“야아~야, 에미야, 풀이 다 되어 가네, 네가 가서 풀을 조금 더 가지고 와야 되겠다.”
“네, 어머님, 제가 가서 가지고 오겠습니다.” 대답을 하고는 하던 일을 멈추고 천천히 부엌간으로 가서 가마솥에 끓여놓은 풀을 바가지에 담아 와서는 가까이에 있는 큰 대야에다 채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시어머니의 며느리에 대한 심부름 같아 보이지만 속마음으로는 며느리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주방까지 오가면서 서둘러서 바쁘게 다니지 않아도 되므로 일하느라 장시간 쪼그리고 앉아서 아픈 허리를 펴고, 뭉치고 아려오는 다리도 풀 겸해서 한숨 돌리라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동안 고부간에 정담을 나누어 가면서 베매기 작업을 이어가다 숯불이 약하게 사그라들자 시어머니께서 다시 며느리에게 심부름을 시킨다.
“에미야, 불이 잦아들어서 잘 마르지를 않는 것 같구나, 가서 숯불을 좀 더 가지고 와야 되겠다.”
“예, 알겠습니다. 불도 잦아진 김에 삶은 고구마도 함께 가지고 올 것이니까 드시면서 잠시 쉬었다가 하시지요.”
“그렇게 하자, 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일을 했더니 허리와 다리가 아프고 갈증도 나고 하니까 잠시 쉬었다 하자. 고구마 가지고 오면서 기왕이면 김치랑 물도 함께 가지고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을 하면서도 풀칠이 마르지 않은 실이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솔질은 쉬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
“예, 알겠습니다. 김치와 물도 함께 챙겨서 올 테니까 허기도 면할 겸해서 먹어가면서 잠시 쉬었다가 합시다.”
이처럼 고부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서로를 배려하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잠시 쉬고서는 다시 일을 시작한다. 일을 하는 가운데도 고부간의 이런 저런 살아온 이야기들로 따뜻한 정담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관경을 봇짐에 기대 앉아 한참동안 보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간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잠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가고 어둠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는데, 좀 전에 보았던 초가집과 베를 매고 있던 두 사람은 보이지 않고 주변에는 잡초 덤불속에 무너진 돌담만 보이기에 순간적으로 머리끝이 서는 것처럼 섬뜩한 생각마저 들기에 바쁘게 짐을 챙겨서 집으로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장서서 너를 데리고 간 그 이상한 것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되었는데?”
“그것이 이상하단 말이지, 분명히 나는 그것을 따라서 고부가 베를 매고 있는 집에까지 가기는 했는데 언제 없어 졌는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더라고, 내가 무슨 허깨비를 따라서 간 것 같거든, 거기에다 베를 매고 있는 그 사람들도 나를 전혀 보지 못한 것 같더라고, 자기들이 하는 일만 하면서 말을 주고받고 하면서도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은 눈치더라니까”
“무슨 그런 일이 다 있어, 네가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네가 말한 그 곳에는 예전에 사람이 살았던 집이 있었던 모양이더라고, 왜 그러냐 하면 그곳에는 오래된 집터가 있고, 집터 주위에 허물어지기는 했어도 돌담장들이 둘러 있고, 남새밭으로 사용했던 흔적들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거든, 우리는 보지도 못했지만 이 동네에 오래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예전에 그곳에 집이 있어서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그러면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대요?”
“그것은 모르지, 아마도 어제 네가 보았다는 할머니의 영감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그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들 내외와 자녀들은 어디 외지로 일자리를 찾아서 떠나갔다는 말만 들었지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어”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이 동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던가 보지요”
“그렇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어, 산속에 한 집만 살다보니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데다 이렇다 할 일거리가 없으니 이 동네에서 일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이 동네사람들과 자주 어울리고 이웃처럼 잘 지냈다고 하더라고, 그 사람들이 떠나간 이유는 알 수가 없지만 살림이 어렵다 보니 일자리를 찾아서 외지로 떠나갔겠지”
“살림살이는 넉넉하지는 않았을 것이야, 마을에 땅을 살만한 형편이 되지 않았으니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산속에 외딴집을 짓고 살았지, 살림이 있었다면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마을에 집을 구해서 살지 않았겠어?”
“그렇다면 왜 허깨비가 되어서 나에게 보였을까요? 참으로 이상한 일이네”
“그야 모르지, 아마도 그곳에 살다가 돌아가신 할머니는 그렇다 치고, 객지로 떠나간 며느리도 저세상 사람이 되어서 예전에 정들여 살았던 집이라서 나타나게 된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지”
“그 참 이상하네, 그런데 허깨비라고 해도 전혀 무서운 생각은 들지 않고 그냥 우리가 길쌈하던 생각만 나면서 오히려 정답기만 하더라고요, 전혀 두렵다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거기에다 다시 생각을 해보니 나의 앞장에 서서 그곳으로 데리고 간 것은 ‘베매기 솔’ 같기도 하거든요”
“그야 뭐, 너도 착하게 고생만 하면서 살아 온데다 돌아가신 어르신들의 말에 따르면 그 사람들도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았을 뿐이지 착한 사람들이었다고 하더라고, 그러니 아무리 허깨비라고 해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해코지하고 그러지는 않았겠지 뭐, 그리고 이전부터 사람들이 사용하다 손때가 뭍은 물건들이 종종 허깨비가 되어서 사람들 눈에 뜨이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있거든,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사람들이 쓰다가 버린 물건들이 허깨비가 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사용하든 물건이 못쓰게 되면 불에 태워 버리거나 땅을 깊게 파서 묻는다고 하더라고.” 이렇게 아주머니들의 허깨비에 관련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 도투마리 : 베를 짤 때 날실을 감는 틀
※ 바디 : 가늘고 얇은 대오리를 참빗처럼 세워서 두 끝에 앞뒤로 대오리를 대고 단단하게 실로 얽어서 만든 것으로, 살의 틈마다 날실을 꿰어 고르게 해 주며, 북의 통로를 만들어 주고, 씨실을 쳐서 직조를 조밀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 베솔 또는 ‘베매기솔 : 모시나 삼베 등의 피륙을 짜기 위하여 실에 풀을 먹여서 실올들이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하는데 쓰이는 솔로서 산과 들에 자생하는 띠풀의 뿌리를 이용하여 만든다. 손잡이가 되는 부분은 소나무 뿌리부분의 껍질을 벗겨서 단단하게 둘러 묶어서 만든다. 아래쪽으로 갈수록 넓어지게 엮고 끝부분에는 삼베를 씌워 마름질 하였다. 실을 팽팽하게 하여 고정시킨 뒤에 콩가루, 겨자, 소금을 물에 타서 만든 풀을 베솔에 묻혀 실에 골고루 풀을 먹인다.
※ 끌개 : 직물의 베매기 작업에 쓰이는 용구의 하나로 Y형으로 자란 나뭇가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만들기도 한다. 날실을 싣고 도투마리 쪽으로 끌려가도록 되어 있는데 적당한 무게의 돌을 얹어서 알맞게 끌려가게 한다. 끄싱개 라고도 한다.
※ 뱁댕이 : 베를 맬 때 도투마리에 감기는 날실이 서로 엉키거나 달라붙지 못하도록 사이사이에 끼우는 막대기. 삼의 껍질은 삼베의 재료가 되며 껍질을 벗겨낸 삼대나 화살대(箭竹) 등의 가벼운 재료를 말려서 뱁댕이로 사용한다.
17. 바둑 두는 노인
오르락내리락 등성이를 이루어 완만하게 뻗어 내리는 산줄기를 따라서 우거진 숲과 어우러져 곳곳에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에 깎이고 개울물에 씻겨서 저마다의 독특하면서도 개성 있는 형상을 이루어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내는 기암괴석들을 배경삼아 형형색색의 꽃과 나무들로 장식하여 절경을 이루는 가운데 골이 깊은 만큼 맑은 물이 사계절 끊이지 않고 이리저리 휘돌아가며 흘러내리는 물길을 옆으로 하는 호젓하면서도 구불구불한 길이 나있어 산 너머의 마을을 이어주는 한편으로는 산경(山景)을 즐겨가며 걷다보면 급하게 흐르던 물줄기가 잠시 쉬어가기라도 하려는 듯이 흐름이 느리고 산영(山影)들이 젖어들어 마음마저 평온하게 느껴질 정도로 고여 있기라도 하는 듯이 잔잔하게 흐르는 물이 내려다보이는 나지막한 벼랑위에 오랜 세월을 머금은 커다란 고목나무가 가지를 널따랗게 펼쳐서 위엄을 나타내는 아래에 언제 세워졌는지 알지 못하는 자그마한 정자 한 채가 아담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양편으로 뻗어 내린 골짜기를 따라서 농부의 손길로 만들어진 다락논과 밭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면서 흘러내리는 물길을 따라서 내려가다 보면 산을 등지고 고즈넉하게 자리하여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마을에서 수시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기도 하고, 가볍게 다치거나 아픈 사람이라도 있으면 침과 뜸으로 치료해 주기도 하면서 어려움 없이 살고 있는 토박이 박 씨가 여유가 있을 때마다 짬을 내어 산책을 하면서 망중한(忙中閑)을 즐기기도 하는 산길을 따라 걷다가 피로도 풀 겸하여 쉴만한 장소를 찾아서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정자를 찾아 들어서니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인초(藺草)를 엮어서 만든 돗자리를 정자의 마룻바닥에 깔아놓고 바둑판을 마주하여 상투머리에 망건을 둘러서 흰 머리칼을 단정하게 손질하고 가슴까지 내리는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데다 의복을 정갈하게 갖춰 입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가볍게 다가가기가 조심스러울 만큼 위엄이 느껴지면서도 연세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색(和色)이 감도는 얼굴을 한 두 분의 노인이 찻잔을 옆으로 두고 바둑판을 마주하고 앉아서 한분은 흑색 돌을 엄지와 검지사이에 끼워 쥐고, 다른 한분은 백색의 돌을 검지와 중지사이에 쥔 채로 깊은 생각에 젖어서 대국을 하고 앉았는데, 그 곁에는 은은하게 다향을 풍기는 다구(茶具)가 놓여있고, 혈색이 좋은 얼굴에 단정하게 복장을 갖추어 신선한 느낌을 풍기는 시동(侍童)으로 보이는 한명의 소년이 시중이라도 드는 듯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화창한 날씨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가 내릴 것 같은 굳은 날씨도 아닌, 그냥 맑은 하늘에 점점이 하얀 구름이 한가롭게 흐르고, 산골짜기를 따라서 때때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씨에 산 아래의 마을이 고향이어서 오랫동안 살아 왔으므로 마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산행을 하면서 이곳을 지나가거나 정자에서 잠시 쉬기도 하였지만, 예전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낮선 노인들이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수를 겨루고 있는 한가로운 모습에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무엇인가에 이끌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분위기를 다치지 않도록 조심을 하면서 슬그머니 노인들의 곁으로 다가가 한쪽 모서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대국을 구경하면서 두 노인이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숲속에서 들리는 새소리와 어울려서 산골짜기 계곡을 따라서 흘러내리는 물소리에 더하여 가끔씩 나뭇가지를 흔드는 싱그러운 바람소리가 수시로 들려오는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두 노인은 가까이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은 전혀 의식을 하지 않기라도 하는 듯이 바둑판위에서 전개되는 대국에만 집중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우리 두 사람이 이 앞산과 저 뒷산을 터전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아울러 그들이 만들어가는 역사들을 지켜보면서 지내 왔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들이 사는 방식들이 물질적으로는 많은 발전을 하였다고 볼 수가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정신적으로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는 면에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재물과 마찬가지로 권력에 있어서도 가진 사람들은 그것들을 이용하여 가지지 못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면서 지배하려 하고, 갖지 못한 사람들은 작은 권력이나 재물이라도 가져보려고 노력하고, 조금만 마음을 열고 멀리 내다본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아웅다웅 다투고 있는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마저 든다는 것 이지요”
“그렇지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자신들이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보게 된다면 한줌의 흙만도 못한 부질없는 것들을 잡으려고 평생을 허비하다가 때가되면 모든 것을 버리고 갈 것인데도 말이지요.”
어떻게 보면 숙연하게까지 느껴지는 분위기를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약간의 거리를 두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에 대하여 전혀 의식을 하지 않는 것 같은 모습으로 자신들만의 대화를 이어 가면서 백을 쥔 노인이 바둑판으 한 점에 돌을 놓는다. 그러자 한동안 생각을 하고 있던 흑을 쥔 노인도 잠시의 시간을 두고 응수를 하면서 대화를 이어간다.
“모두가 부질없는 것들에 매달려서 저희들끼리 다투기도 하고 경쟁하면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바둑판 위에 놓이는 돌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돌 하나, 하나를 놓을 때에는 온갖 수를 생각하면서 머리를 쓰고 있는 힘을 다하여 겨루지만 막상 계가가 끝나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빈 바둑판만 남게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게 말입니다. 어느 특정한 시대나 세대를 가리지 않고 부와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이나, 이미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은 그 가진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온갖 술수를 부리고 다투는 것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보아 왔습니까, 세월이 흐르다보면 모두가 부질없는 허무한 것들인데도 말입니다.”
곁에서 시중을 드는 소년이 조용한 가운데서도 찻잔이 빌 때마다 수시로 따르는 차로 입과 목을 축여가며 세상에 바쁠 것도 없고, 근심과 걱정이나 두려워 할 것이 없다는 듯이 유유자적 바둑판 위에 대국을 이어 가면서 두 노인의 대화는 이어져 나간다.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역사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떠한 시대나 세대를 막론하고 작거나 크고, 더하거나 덜하고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다툼과 분쟁이라든지 전쟁과 같은 불행한 일이 끊이지 않고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이 가진 탐욕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앞장에서서 조직이나 단체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이 올바른 정신을 가졌다면 따르는 사람들이 행복할 것이고, 부정한 생각의 소유자라면 모두를 불행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불행하고 정의롭지 못한 일들을 막기 위하여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를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힘을 가진 자와 그를 따르는 자들이 사리사욕을 챙기기에 바빠서 법과 제도를 지키지 않고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른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올바르지 않은 정신을 가진 지도자를 만나게 되면 극히 일부의 그를 따르고 추종하는 세력들 이외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행하게 되는 것은 불을 보듯이 명확하지요. 그렇지만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고 할지라도 멀리 보면 찰나에 불과 할 뿐으로 오래 가지 못하고 결국에는 그들이 저지른 만큼의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되어 있어요. 자신들이 가진 권력으로 좋은 일을 하였다면 좋은 결과를 맞을 것이고, 나쁜 일에 사용하였다면 그 저지른 만큼의 벌을 반드시 받게 되어 있어요.”
두 노인의 대화가 오고 가는 가운데에서도 바둑판 위에서 백과 흑의 대국은 지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천천히 그러면서도 흥미롭게 펼쳐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왕조를 바꾸어가면서 까지도 권력을 잡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렸습니까. 어떤 왕조에서는 문신과 무신들이 서로 권력을 다투다가 세력을 가진 문신이 무신의 지도자격인 사람의 수염을 불태우기도 하고, 연회석에서 무신의 뺨을 때리는 등의 횡포를 부리면서 모욕을 주었다가 무신들의 원한을 사게 되어 숙청을 당하고 임금마저 갈아치우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어떤 왕조에서는 노론이다 소론이다, 남인이다 북인이다, 사림이다 훈구다, 뭐다, 뭐다 해 가면서 저희들 끼리 파벌을 갈라서 아주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크게는 나라의 역사를 바꿀 정도의 막중한 일에 이르기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대세력을 억압하거나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으로 국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예사로 저지르고 심한 경우에는 권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왕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횡포 앞에 안전할 수 없었을 정도였으니 백성들의 고통이야 어떠하였겠습니까.”
“멀리 갈 것도 없이 근래에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우두머리를 해 보겠다고 나선 사람은 예전에 보기 어려울 정도로 희한한 성격을 가진 사람인 것 같아요, 순간적인 대처능력이라든지 여러 가지 행적들을 비추어 본다면 머리는 상당히 좋은 사람인 것 같은데 근본적으로 정신이 문제가 있는 것 같거든요. 아무리 권력이 좋고 그 권력을 잡고나면 재물이 함께 따른다고 할지라도 정당한 방법으로 지도자의 자리에 앉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온갖 거짓과 교활한 방법들을 동원하여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좋은 머리를 의롭고 옳은 일을 하는데 쓴다면 좋을 것인데 그렇지 않은 것이 그 사람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우려스럽기도 하지만 불행한 일이기도 하지요”
이야기를 하면서 바둑판의 한자리에 맥을 짚어 손가락에 끼워서 들고 있던 돌을 놓는다. 맞은편에 앉아서 대국하고 있는 노인이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고 돌을 들어 바둑판을 내려다보면서 대응의 한 수를 생각하면서 대담을 이어나간다.
“그렇습니다. 그동안 그 사람의 행적을 보면 자신을 따르고 추종하는 세력들을 규합하여 힘을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반대를 하거나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교묘한 방법으로 제거해 버리기도 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일에 대하여는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시치미를 떼거나, 상대방에게 뒤집어씌우기 등으로 모면을 하거나 피해 나가면서도, 자신에게 유리한 일에 대하여는 온갖 달콤한 말과 행동에 더하여 적극적으로 선전을 함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가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묘한 방법으로 자신의 세력을 키워왔어요, 그런 부도덕한 사람이 특정한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어서 마음대로 권력을 휘둘러대면 어떻게 되겠어요. 일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크나큰 불행의 불씨인데도 불구하고 정작 그들은 닥쳐올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마치 미지근한 물이 차츰 데워져가는 냄비 속에서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삶겨서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올바르지 못한 그릇된 정신을 가진 힘 있는 자나 그 주변에 붙어서 따르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행사하는 권력이 영향이 크지 않은 작은 집단이라면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겠지만, 영향력이 큰 집단일수록 피해는 클 것이고, 만에 하나 나라를 다스릴 정도의 권력이라면 선량한 국민들이 고생을 하게 되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최악의 경우에는 나라와 나라사이의 전쟁까지도 불러올 수 있을 정도로 불행한 상황을 만들 수가 있어요,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례들이 있었습니까. 참으로 두렵기도 하지만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일이기도 하지요.”
엄숙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고요함 속에서 바둑판위의 백과 흑이 격렬하게 대국을 이어 가면서도 두 노인이 담담하면서도 우려가 섞인 표정으로 나누는 대화는 깊이를 더하여 가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 속으로 젖어든다.
“그런 올바르지 못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살아온 행적이라든지 평소의 언행들을 조금이라도 주의해서 살펴보면 얼마나 부도덕하고 교활한 사람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워낙 추종하는 세력들의 목소리가 크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올바른 판단이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원래 교활(狡猾)이라고 하는 말은 중국의 ‘산해경(山海經)’이라는 책에 등장하는 동물로 교(狡)는 개의 모양에 표범무늬를 하고 머리에는 소뿔이 있다고 하는데, 교가 나타나는 해에는 풍년이 든다고 하지만 워낙 간사하여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며, 활(猾)이라는 동물은 교의 친구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온몸에 돼지털이 나있고 동굴 속에 살면서 겨울잠을 자는데 도끼로 나무를 찍는 것과 같은 소리를 내는데 교보다 더 간악하기 때문에 활이 나타나면 세상이 큰 혼란에 빠진다고 해요. 교와 활은 호랑이를 만나면 몸을 공처럼 동그랗게 뭉쳐서 변신을 하여 호랑이의 입속으로 들어가 내장을 마구 파먹는데 호랑이가 죽으면 배속에서 나와 미소를 짓는다는 것에서 ‘교활한 미소’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활하고 올바르지 못한 자들이 권력을 쥐게 되면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바빠서 일반 사람들만 고통 속으로 몰아넣어서 망하게 만드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지요”
“맞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너무나도 영악해서 일반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 환호하고 지지를 하게 됨으로서 그들의 술수에 넘어가 불행을 겪게 되는데 그러다가 그들의 속셈을 깨달고 후회를 해봐야 그때에는 이미 늦었다고 할 수가 있어요.”
“그렇지요,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불행이 다가와 있어서 되돌릴 수가 없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일반 사람들은 참으로 순수하다고 해야 하겠지요, 열 번을 못하다가도 한번만 잘해주면 감동받고, 열 번을 잘 해주다가도 한번을 잘 못하게 되면 저항을 하기도 하고, 거짓말이나 속임수인줄 알면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무조건 지지하기도 하거든요. 나쁘게 본다면 어리석은 면이 있다고 해야 되겠지요.”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을 온갖 달콤한 말과 궤변으로 현혹을 시켜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이 나쁜 것이지요, 그들이 하는 궤변이라고 하는 것은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억지스러운 말로서, 굳이 한자로 풀이를 한다면 궤(詭)는 말(言)과 위험(危)을 합친 글자로 ‘속이다’, ‘기만하다’, ‘어그러지다’, ‘헐뜯다.’라는 의미가 있으며, 변(辯)은 두 명의 죄수(辛)가 자신이 무죄임을 증명하려고 이리저리 돌려서 말하는(言) 모습을 담은 글자로 ‘말을 잘 한다’, ‘바로 잡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요,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남의 소를 훔쳤다가 관(官)에서 그를 잡아서 왜 남의 소를 훔쳤느냐고 신문을 하자 ‘제가 길을 가는데 길에 고삐가 떨어져 있기에 그 고삐를 주워 가지고 집으로 간 것뿐이고 소는 모릅니다.’라고 하여 자신은 길에 떨어져 있는 고삐를 주워 왔을 뿐으로 고삐에 소가 매어져 있는 줄은 몰랐으니까 소를 훔친 것이 아니고 소를 보지 못한 것뿐이니 죄가 없다고 주장을 하였다는 것이지요.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학자들이 저들끼리의 학파(學派)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 명가(名家)로 불리는 사람들은 궤변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해요, 그들이 말하는 궤변을 예를 들면 여러 가지 색깔을 사람들에게 보여 준 뒤에 ‘흰색은 색이 아니다’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궤변론자들은 ‘여러분의 말대로 흰색은 색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흰말은 말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유명한 ‘흰말은 말이 아니다(白馬非馬)’라고 하는 명제라고 해요. 이처럼 궤변은 많은 사람들의 이성적이고 올바른 판단에 혼란을 주어서 어렵게 만드는 위력을 가지고 있어요.”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생각을 해 본다면 말도 안 되는 억지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미 그들에게 세뇌가 되어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크게 내서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주장대로 넘어가게 되어 있어요. 설사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불이익이나 보복을 당할 것이 두려워서 말을 못하게 되요. 오랜 역사의 대부분이 그렇게 흘러 왔으니까요.”
“권력이라든지 재물이라고 하는 것은 속성자체가 그런 것인지도 모르지요, 권력이 있는 곳에 재물이 따른다면 재물이 있는 곳에는 권력이 생기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잡기 위하여 노력하면서 정당하고 바르게 살아가지만, 특별한 경우에 권력이나 재물을 잡기 위하여 해서는 안 되는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경우 대부분은 끝이 좋지 않거나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벌을 받게 되요, 그것이 거역할 수 없는 섭리라고 할 수가 있어요.”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노인이 심각하다고 해야 할 대화를 담담하게 나누는 가운데 대국은 흥미롭게 이어지더니 어느덧 바둑판이 메워져서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좋지 않은 생각이나 일을 하는 사람들 보다는 올바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유지되어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의 욕심이라고 하는 것은 한계가 없으므로 각자가 자신의 욕심이나 희망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다보니 선행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도 있는 것이지요.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욕심만을 챙기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 이끌어 나가게 되면 그런 집단은 결국에는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낭패를 당하게 되는 것이지요.”
“낭패라고 하는 것도 알고 보면 전설에 나오는 동물의 이름으로 낭(狼)은 뒷다리가 없거나 짧은데다 꾀가 부족한 대신에 용맹하고, 패(狽)는 앞다리가 없거나 짧고 꾀가 있는 대신에 겁이 많아서 두 동물이 항상 같이 다녀야 제대로 역할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서로 떨어져서 아무 일도 못하게 되는 경우를 ‘낭패’라고 한다고 해요.”
“나이가 들고 많은 경험을 가져서 젊은 사람들이나 뒤를 따르는 세대에게 길라잡이가 되어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아 주거나 충고와 조언을 해 줌으로서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는 역할을 해 주는 것도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요. 나이가 많다거나 경험이 많다는 것을 앞세워 사심을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젊은 사람의 생각이 어떤 면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들 보다 오히려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경우도 있거든요, 지난세월 살아온 경험을 밑천으로 보다 나은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정신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문제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요, 우리가 그동안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참으로 많은 일들을 보고 겪었다고 할 수 있지요, 모든 것은 순간으로 세월이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다투기도 하고 심하면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기도 하거든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간직한 채로 역사는 흘러가게 되어 있어요. 인간의 일은 인간들 스스로의 판단이나 결정에 맡겨 둘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기도 하지요.”
“그렇습니다. 자, 이제는 마무리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어느새 해가 기울어 땅거미가 내리고 있네요.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를 합시다.”
말을 마친 두 사람이 대국을 하고 있던 바둑판에서 계가를 끝내자 승부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는 듯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선다. 두 노인은 의복을 가다듬고 정자의 기둥에 걸어 두었던 햇빛을 가릴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삿갓과 지팡이 등을 챙기는 사이에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청년이 말없이 주변을 정리하고 바둑판과 바둑돌, 다기와 돗자리 등의 짐을 챙겨서 함께 자리를 뜬다.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자 밖으로 천천히 걸어서 길을 나서더니 마을이 아닌 산속으로 길을 따라 올라가더니 그렇게 멀지 않은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것까지는 보았다 싶었는데, 순간적으로 박 씨의 눈앞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얼떨떨하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방금 전까지 눈앞에서 이야기를 나누어 가면서 바둑을 두던 노인과 시중을 들고 있던 시동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을뿐더러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이러한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수시로 이 길을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정자에서 머물기도 하고, 여가를 즐기기도 하였으나 오늘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은 평생에 처음으로 겪게 되는지라 이상하기도 하지만 너무나 황당하기도 하여 “내가 무슨 허깨비에게라도 홀렸었나,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단 한 번이라도 들어 본적이 없었는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잠간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정자를 내려와 집으로 향하였다.
18. 철랑개비 이야기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다. 바깥에서 뛰어 놀 수 없는 아이들이 방안에 모여 앉아서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시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귀를 모우고 있다.
“애들아, 사람이 나쁜 일을 많이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사기를 치거나 도둑질을 하고, 남에게 이유 없이 욕을 한다거나 때리기도 하고, 없는 죄를 만들어 뒤집어 씌워서 어렵게 만든다거나,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사람을 죽인다거나 하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여러 가지 나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을 보고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거나 ‘벼락 맞을 놈’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것이 무슨 말인지 알겠나?”
“할아버지, 벼락을 맞는다고 하는 것은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천벌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정말로 그런 것이 있어요?”하고 아이들이 물어본다. 그러자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래, 천벌을 받는다고 하는 것을 알기 쉽게 말을 하자면 하늘이 내리는 벌이라고 할 수가 있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반드시 지켜야할 도리가 있어서 그러한 것들을 지키면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힘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약한 사람을 지키고 보호함으로서 모든 사람이 안심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나라마다 법을 만들어서 이것을 어기고 나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으면 만들어진 법을 근거로 해서 벌을 주게 되는데 그것을 법치주의라고 한단다. 그런데 나쁜 일을 한 사람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저지른 죄를 증명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벌을 줄 수가 있는데, 죄를 밝힐만한 증거를 찾지 못한다거나, 법을 주어야하는 사람보다도 힘이 있는 사람에게는 처벌을 하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할 수가 없는 경우도 있거든, 그렇지만 하늘이 내리는 벌인 ‘천벌’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이루어진다고 볼 수가 있는데 그렇게 천벌을 내리는 여러 가지 방법가운데 하나가 ‘벼락’이라고 할 수가 있고, 그 벼락을 안내하는 것이 ‘철랑개비’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단다.”라고 하시면서 아이들이 긴장을 하면서 듣고 있는 가운데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어떤 마을에 평소에 행동이 몹시 거칠고 사나울 뿐만 아니라 성격이 좋지 않아서 걸핏하면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싫어하거나 무서워하여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다 천둥번개가 무섭게 치는 날 무슨 할일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우물 가까이에 있는 큰 나무아래에서 벼락을 맞았다고 하더라.”
“그래요? 평소에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는데다 성질이 고약해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막상 그런 일이 있었다니 참 안됐네요, 그런데 그 사람은 장대비가 퍼붓는데다가 천둥번개에 벼락까지 심하게 내리 치는데 무엇을 하려고 우물가에 갔을까요?”
“글쎄요, 무슨 일이 있어서 그곳에 갔는지는 알 수가 없지요, 그 사람은 평소에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상대가 누구이던 가리지를 않고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갖다 대면서 시비를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우물에다 침을 뱉기도 하고, 심지어는 아녀자들에게는 대 놓고 희롱을 하는 등 어쨌건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었지요.”
“그렇기는 해요, 그 사람이 벼락을 맞는 것을 직접 보았다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대비가 쏟아지고 바람도 세차게 부는데다 수시로 뇌성벽력이 무섭게 치기에 자기는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가족들과 함께 우물이 잘 보이는 자기 집의 마루에서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있는데, 그 사람이 혼자서 비를 맞으면서 우물이 있는 곳으로 가더랍니다. 하도 성격이 특별한 사람이라서 무슨 좋지 않은 행동이라도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무 말도 건네지 않고 별다른 생각 없이 보고만 있었는데, 무슨 마음에서 그렇게 했는지는 몰라도 평소의 버릇대로 마을사람들이 이용하는 우물에다 침을 뱉더니 가까이에 있는 나무 밑으로 가서 비를 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서 있더래요, 그때 무슨 시커먼 헝겊 같은 것이 어디선가 날아오더니 그 사람이 있는 곳에 달라붙더라고 해요, 그러자 하늘에서 천둥이 치더니 비를 피해서 나무 밑에 서 있는 그 사람에게 벼락을 내리치더라는 거예요”
“그래요? 그 사람이 평소의 행동에 잘못된 일을 많이 저지르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막상 그런 불행한 일을 당했다는 말을 들으니 참으로 안 되었네요, 그런데 그 사람에게 날아와서 달라붙은 시커먼 헝겊 같은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지요, 이전에 어르신들의 말씀에 의하면 그것을 ‘철랑개비’라고 하기도 하고 ‘천랑개비’라고 하던가 하시면서 나쁜 일을 많이 저지르거나 다름 사람을 해코지하거나 나쁜 짓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에서 벼락으로 벌을 내린다고 하는데, 그 벼락을 안내하여 나쁜 사람이 벌을 받게 하는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모양은 일정하지가 않고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에 아무나 알아볼 수가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철랑개비’나 ‘천랑개비’가 무슨 의미인지 또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어요.” 이렇게 천벌에 대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어르신들의 말씀에 많은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물은 항상 맑은 물이 나오고 깨끗해야 하는데, 그 우물을 더럽힌다거나 좋지 않을 물건을 넣어서 오염을 시키는 짓을 해서는 안 되며 특히 우물에다 침을 받는다거나 하는 행동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좋지 않은 일로서 그런 짓을 하게 되면 천벌을 받게 된다고 하더라고”
“우물이라는 것은 관리가 잘못되면 물이 더러워지게 되고, 오염된 물을 마시게 되면 그 물을 마신 사람과 동물들이 병에 걸리고 죽음까지도 맞이하게 되는 것이야, 그러니까 물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것이므로 우물에 침을 뱉거나 쓰레기를 버리거나, 더러운 것이 들어가게 하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거든, 그러니까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우물에 침을 뱉거나 오염을 시키는 것과 같은 나쁜 일을 하게 되면 무서운 벌을 받게 되는 것이야 알겠나?”
여기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끝내고 잠시의 시간을 내어 아이들에게 주전부리를 나누어주면서 한숨을 돌린 다음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다른 이야기로, 어떤 마을에서 많은 비가 내리고 마치 하늘이 찢어지거나 깨어져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사나운 천둥벼락이 치고 번갯불이 번쩍이고 있었는데, 그때 이상하게도 시커멓고 헝겊처럼 보이는 것이 어디에선가 날아오더니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데다 아래 둥치 쪽에는 부분적으로 썩은 곳이 있는 커다란 고목나무에 금줄을 쳐놓고 특별한 날에는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기도 하고, 때로는 무속인 들이 제물을 차려놓고 굿을 하기도 하는 당산나무의 뿌리에서 가까운 아래쪽에 달라붙더라는 거야, 그러자 갑자기 마치 하늘을 찢어 놓기라도 할 것 같은 커다란 소리와 함께 그 당산나무 아래쪽의 이상한 것이 날아와서 붙었던 곳에 벼락이 내리 꽂히더라는 거야, 그러자 벼락을 맞은 나무에 일시적으로 불이 나기는 했어도 워낙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에 불은 금방 꺼져버렸고, 사람들이 무서워서 가까이로 가지 못하다가 비가 조금 뜸해지자 벼락을 맞은 나무가 있는 곳에 가서 보았더니 그곳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나무의 썩은 구멍 속에서 벼락에 맞아 죽어있더라는 거야, 그것을 본 사람들이 매우 놀라기는 했지만 무엇 때문에 그렇게 큰 구렁이가 벼락에 맞아 죽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아이들이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런 이야기 이외에도 예전부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죄를 짓고 나쁜 일을 많이 저지르게 되면 ‘철랑개비’가 나타나서 벼락을 맞아 죽게 하거나 천벌을 내리게 되는 것이라고 하는 말이 전해오고 있어, 물론 그러한 말은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지어낸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하늘을 두려워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할 수 있단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무리를 짓고 ‘철랑개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설명을 해 준다.
“흔히들 ‘철랑개비’라고 하는 것은 종이를 여러 갈래로 자르고 끝을 구부려서 바람에 돌게 만든 장난감인 ‘바람개비’나 혹은 한곳에 머물러 있지를 못하고 마구 돌아다니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팔랑개비’의 사투리라고도 하는데, 반드시 그런 의미만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아무튼 나쁜 일을 하게 되면 벼락을 맞는다고 하는 말은 상대방에 대한 욕이거나 저주의 의미가 큰 것도 같다고 해야 할 수도 있어, 물론 ‘돈벼락을 맞는다.’ 혹은 ‘벼락부자’라거나 하는 좋은 쪽으로 벼락을 맞는다는 말은 빼야 하겠지만, 거기에다 벼락을 맡기 전에는 항상 철랑개비가 먼저 나타나서 벼락을 맞을 대상에게 달라붙는다고 하거든, 그런 면에서 본다면 ‘철랑개비라’고 하는 것은 ‘뇌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할아버지 뇌신은 또 무엇입니까?”라고 하면서 호기심 많은 아이가 물어 온다.
“그래, 지금 말해 줄 테니까 잘 들어, 뇌신이라고 하는 것은 천둥과 번개를 일으키는 일을 맡고 있는 ‘우레의 신’으로 기상과학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때에는 비바람이 불고 천둥번개와 벼락이 친다던지 하는 현상을 하느님의 조화에 의한 것이라 생각하고 하늘을 매우 무서워하였는데 이러한 것을 하늘을 두려워하고 섬기는 ‘경천사상’이라고 한다. 또 불교에서는 벼락신의 자격을 가진 제석천이 일체의 마귀를 물리친다고 하였는데, 제석천은 세계의 중심에 있는 수미산의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주인으로 부처님이 설법하는 장소에 나타나서 법회를 지키고 보호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라고 하시면서 잠간 뜸을 들이더니 이야기를 다시 이어나간다.
“그 예로서 중국의 신화인 ‘산해경’이라는 책에서 “뇌신은 용신으로서 머리는 사람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배를 북처럼 두드려 울려서 천둥을 치게 한다.”는 기록과 함께 뇌신의 그림을 그려 놓았고, 당나라의 ‘운선잡기’라는 책에도 “우레를 천고(天鼓 불교에서 말하는 치지 않아도 저절로 묘음을 낸다는 천인의 북) 즉 하늘의 북이라고 하며 그 신을 뇌공이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으며, 서양의 그리스·로마 신화에도 제우스나 유피테르가 우레를 일으키게 하는 천공의 신으로 손에는 뇌정과 왕홀을 가진 모습을 하였고 신성에 거슬렸을 때에 응징하는 것을 우레로 나타내었다고 한다.”고 하면서 책이나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는 예를 들어가면서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여러 가지 것들로 미루어 생각을 해본다면 과학이 발전하지 않아 자연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복잡한 현상들을 모두 하나님 즉 신의 섭리로 이해하던 옛날에는 사람들이 하늘의 눈치를 보면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어서 벼락은 신이 인간에게 벌을 내리는 공포의 도구였다고 할 수가 있다. 실제로 벼락을 맞아 죽는 사람도 있고 또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하늘을 찢어 놓기라도 할 것 같은 불빛이 내리 꽂히기도 하므로 가장 확실하고 무서운 벌이 천벌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거든, 어때? 이런 이야기를 듣고서도 나쁜 일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 나쁜 일에는 반드시 하늘에서 벌을 내리게 되어 있단다. 그러니 너희들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남을 괴롭힌다거나 거짓말을 하여 남을 속인다거나 도둑질을 하는 것과 같은 나쁜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겠지”
이야기를 마치고 주전부리를 나누어 주자 아이들은 공손히 두 손을 모아 나누어주는 간식을 받아서 그 자리에서 먹기도 하고 손에 받아 쥐고서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19. 등불 따먹는 허깨비
한낮을 밝혀주던 태양이 구름과 어우러져 하늘화면에 아름답고 황홀한 그림을 그리면서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고 서산 저편으로 기울어 간 시간도 오래된 그믐날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빛만이 무한히 넓은 하늘을 수놓고 있다.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집집마다 석유등잔이나 촛불을 이용하여 어두운 방안을 밝히고 길에는 가로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손전등 같은 것도 없었기에 남포등이나 장명등 같은 것을 이용하여 밤길을 밝혔다.
오늘도 이웃마을로 나들이를 나가신 할아버지께서 시간이 많이 지나서 날이 저물었음에도 집으로 돌아오시지 않았으므로 할머니의 걱정으로 어머니가 챙겨주는 남포등(석유를 원료로 하고 유리로 된 등피를 씌워서 쓰는 등)을 챙겨들고 손자 둘이서 할아버지의 귀가 길의 마중을 나섰다.
형은 열 두어 살, 동생은 여남은 살 되는 두 아이는 밤길이 무섭기도 하여 내키지는 않았지만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께서 늦게까지 집으로 돌아오시지 않으신 할아버지를 걱정하시면서 마중을 갔다 오라고 하므로 밤길을 나섰다.
오늘도 할아버지께서는 자주 그렇게 해 오셨던 것처럼 집에서 거리로 치자면 2㎞가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의 그렇게 멀지 않은 신작로가 지나가는 마을에 사람들이 차를 타고 내리는 간이정류소 옆에 자리하고 있는 규모가 크지 않은 시골마을에서 필요로 하는 잡다한 여러 가지 물건들을 취급하는 자그마한 점방에서 손자들이 마중 나올 것을 기다리면서 마루에 앉아 점방주인과 김치에 간단한 안주가 곁들인 술상을 앞에 두고 한담을 나누고 계실 것이다.
신작로는 포장이 되지 않고 자갈을 깔아서 차가 달리면 흙먼지가 날려서 도로주변의 집들에는 먼지가 쌓이고 길가에는 버드나무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는 그런 길이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는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 운행하던 중고차를 들여와서 수리하여 사용하는 수준이었으므로 경사진 길을 오를 때에는 시커먼 매연을 내 품으며 달리다가도 고장이 자주 나서 운전사와 보조수가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 고물차였다.
집안의 어른이시면서 동시에 자그마한 마을의 크고 작은 일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조정자 역할을 하는 어른이신 할아버지께서는 자주 나들이를 나서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이웃마을이나 먼 곳으로 출타를 하시는 날이면 날이 저물기 전에 이곳 점방에 들러서 평소에 친분을 맺고 가까이 지내는 점포주인과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시며 외상으로 술을 드시면 아버지께서 뒷날에 외상값을 갚아 드리는 방식으로 거래를 하신다.
술잔을 앞에 놓고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시다 보면 자연스럽게 날이 저물고 집에서 손자들이 등불을 앞세우고 마중을 나오면 점방주인에게 손자들의 효심에 더하여 자랑을 하게 되고, 상대도 맞장구를 치면서 아이들이 가정교육이 잘 되어 효심이 깊다고 칭찬을 하게 되어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나 손자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어떻게 보면 이처럼 어른들은 어려서부터 몸으로 효(孝)를 실행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비록 먼 거리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들판을 가로질러 우마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길이 나 있고, 길의 한쪽 옆으로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한 농업용 물도랑이 만들어져 있어서 필요에 따라 벼논에 물을 흘려보낼 수가 있도록 되어 있다.
들판에는 드문드문 가뭄에 대비하여 벼논에 물을 대기 위해 파 놓은 둠벙(웅덩이)있고, 둠벙을 파낼 때에 파 올린 돌이나 자갈, 흙 등을 쌓아서 만들어진 둥천(둑의 방언)이 있어서 여기에도 나무와 잡초가 자라고 있다.
길과 도랑 사이의 둑을 따라 잡초가 덤불을 이루고 있어서 낮에는 그렇지 않지만 별빛만 반짝이는 달도 없는 어두운 밤길을 등불에 의지하여 길을 걷고 있는 두 아이에게는 무섭고 두렵기도 한 길이다.
늦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계절이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논에서는 벼이삭들이 영글어가고 이따금씩 구름사이로 별빛이 흐르는 어둠 속에서 보기에 길섶을 차지하고 있는 키를 넘는 쑥대를 비롯한 잡초들이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서 흔들리는 것이 마치 검은 옷을 입은 도깨비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잡초덤불을 스치고 지나가는 나지막한 바람소리마저도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어서 마치 귀신이 만들어내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여 두 아이는 서로를 위안하는 한편으로 무서움을 이겨내기 위하여 목소리를 크게 하여 이런저런 알맹이 없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밤길을 걸어가고 있다.
“형아, 할아버지는 낮에 일찍 오시면 될 것인데 왜 늦은 밤까지 오시지 않고 기다리다가 우리가 마중을 가게 하시는 것일까?”
“그럴만한 일이 있으시겠지, 그렇다고 자주 나들이를 가시는 것도 아니고 모처럼 나가시다 보면 만나야 하는 사람도 더러 있으실 것이고,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시다 보면 늦을 만한 일도 있으실 거야”
“그래도 그렇지 조금만 일찍 오시면 우리가 이렇게 어두운 밤길에 마중을 나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는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어두운 밤길에 혼자 오시도록 하면 안 된다. 행여나 넘어진다던지 혹은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생각하지 못했던 사고라도 나면 안 되는 것이거든, 집안에 어른이 어디 나들이를 가시면 돌아오실 때까지 식구들 모두가 걱정을 하면서 기다려야 하는 것이 도리야”
“그것은 형의 말이 맞다. 그래서 형이랑 내가 할아버지의 마중을 가지 않으면 할머니, 아버지 그리고 엄마에게 꾸중을 듣게 된다. 그러니 어두운 밤길이 무섭기는 해도 어쩔 수 없지 뭐”
“그런 말 하지마라, 할머니께서 말씀을 하지 않으시더라도 당연히 우리가 할아버지의 마중을 나가야 되는 거야, 그런 것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몸으로 익히고 배우는 것이라고 했거든”
“맞아,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효도하고, 그런 것을 보고 배운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효도를 하게 되고, 이 다음에 만약에 우리에게 자식이 생기면 또 아이들이 부모에게 잘하게 될 것이고, 그러다보면 효도하는 정신이 자연스럽게 대를 이어가면서 물려받게 되는 것이라고 어른들이 말씀을 하셨거든”
“그래, 조금은 하기 싫고 귀찮다고 하더라도 심부름을 하거나 할아버지의 마중 나가는 것을 통하여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두 아이 가운데 그래도 형은 나이를 조금 더 먹었다고 동생의 불만을 달래어 가면서 둘이서 다정하게 밤길을 걷고 있다.
“형아, 그런데 오늘 학교에 가서 뭐 배웠어? 학교에 가면 재미가 있어?”
“학교에 가서 공부하지 뭐해, 책에 있는 거 선생님에게서 배우고, 친구들 하고 놀기도 하고, 힘이 들 때도 있지만 재미도 있어, 너도 내년에 학교에 가면 알 수 있어”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먼데 그렇게 매일 학교에 다니는 거 힘들거나 다니기 싫다거나 그렇지는 않아?”
“다니다 보면 힘이 들고 가기 싫을 때도 있어, 학교에서 공부마치고 먼 길을 걸어서 오다보면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고, 배가 고파서 힘이 빠질 때도 있고 그래, 어떤 때는 배가 고파서 길가에 멍석을 깔아서 말리고 있는 고구마 뺏대기를 훔쳐 먹다가 들켜서 혼이 나기도 하거든”
“형아 그런데 저 아래 둥천이 있는 곳에 오래전에 어떤 사람이 목을 매달아 죽고 난 뒤로부터 등불을 따 먹는 허깨비가 있다고 하는데 정말일까?”
“모르지, 동네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기는 하는데, 우리가 여러 차례 다녀봤지만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거든, 그곳을 지날 때에는 겁이 많이 나지만 별일은 없을 거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어두운 밤길을 걷고 있던 두 아이가 허깨비가 나온다는 곳으로 가까워 갈수록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목소리가 작아지고 말수가 줄어든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낮아지고 말이 없어지기 시작한 앞쪽에는 나지막한 둑이 있어서 잡초들이 듬성듬성 자라나있는 곳에는 언제 부터인가 ‘등불을 따먹는 허깨비가 있어서 그 곳을 지나칠 때에는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이 들고 가는 등불이 자주 꺼지는데 그 이유는 허깨비가 등불을 따먹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전해지고 있는데다 이러한 괴담이 만들어지게 된 동기로 마을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는 이렇다.
‘오래 전 젊은 시절에 돈을 벌기 위해서 일자리를 찾아서 일본에 갔다가 태평양전쟁에 동원되어 이름도 모르는 머나먼 남쪽의 낯선 지방에 끌려가서 돈은 벌지도 못하고 죽자하고 고생만 하다가 전쟁이 끝나고, 해방을 맞이하여 우리나라에 돌아와도 나라가 제대로 질서를 잡지 못하고 혼란을 겪다가 북한군의 침략으로 6.25전쟁까지 겪게 되어 일자리는 없고 사회적으로 어려움이 거듭되고 있었으므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자신 소유의 농사지을 땅도 없다보니 자연히 안정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가 나이가 들어서 고향이라고 찾아 왔는데도 어릴 때 고향을 떠나갔으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반겨주는 사람이나 가족도 없는데다 모두가 먹고 살기가 어려웠으므로 겨우 먼 친척뻘 되는 사람의 집에 방을 한 간 얻어서 일이 있으면 품삯을 받고 남의 일을 거들어 주기도 하면서 생활을 이어 갔는데, 오랜 타향살이에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치고 병이 들어 여기저기가 아픈데다 벌어놓은 재산도 없고 하여 너무나 힘들게 살다가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여 길옆의 나지막한 둑 위에 있는 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을 하였고 이에 마을 사람들이 장례를 치러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로 사람들이 밤에 등불을 들고 이곳을 지나가면 섬뜩한 느낌이 들면서 그림자처럼 보이는 무엇인가가 지나가는 것과 같은 으스스한 기분의 바람과 함께 등불이 꺼져버린다는 소문이 전해지고 있어서 이것은 아마도 고생만 하다가 자살한 사람의 혼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떠돌고 있어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등불 따먹는 허깨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 허깨비가 등불만 꺼지게 할 뿐으로 사람들에게 크게 해코지를 하는 것은 아니어서 어른들은 무서워하지를 않지만 마음이 여린 사람이나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과 함께 마을에 전해오는 허깨비이야기에 더하여 어두운 밤길을 밝히며 들고 가던 등불이 꺼지는 일이 드물게 발생하기 때문에 밤에 이곳을 지나치는 것을 꺼려하는 곳이기도 하다.
조금 전까지만 하여도 서로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하여 별로 의미가 없는 말들을 제법 큰 소리를 하면서 길을 걷고 있던 형제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무서움 때문에 저희들끼리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바짝 긴장을 하면서 등불을 들고 있는 형이 손에 더욱 힘을 주고 ‘허깨비’가 나타난다는 둑이 있는 지점을 지나가고 있을 때다.
갑자기 무엇인가가 길을 가로질러서 훌쩍 뛰어서 벼가 자라고 있는 논 속으로 후다닥 지나가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두 아이는 등줄기에 싸늘하면서도 오싹한 기분을 느끼면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듯싶었는데 이에 더하여 순간적으로 마치 검은 그림자처럼 느껴지는 무엇인가가 앞길을 슥 하고 지나가더니 동시에 휙 하는 바람이 일면서 들고 있던 등불이 꺼져버린다.
이에 형제는 무서움에 할 말을 잃은 채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불도 비치지 않는 어두운 밤길을 내달려서 갑자기 등불이 꺼진 곳에서 다소 거리가 있고, 사람이 사는 집에서 불빛이 흘러나오는 근방에 이르자 가쁜 숨을 고른 다음에 마을에서 전해오는 허깨비이야기를 들어 왔으므로 미리 예상을 하고 있었기나 한 것처럼 마음에 안정을 찾고는 걸음을 늦추어 들길을 건너서 찻길로 접어들어 할아버지께서 머물고 계시는 곳으로 갔다.
찻길에서 사람들이 차를 타고 내리는 정류장을 끼고 길가에 자리하고 있는 점방에는 할아버지와 점방주인이 마주 앉아서 술상을 앞에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어두운 밤길에 불 꺼진 등을 들고 마중을 온 손자들을 보고 할아버지께서는 반기면서도 자랑스러워하시고,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던 점방주인 어른은 두 손자를 보고 기특해 하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탕을 하나씩 나누어주면서 어두운 밤길에 할아버지의 마중을 나온 것에 대하여 참으로 효성스러운 손자들이라는 칭찬에 더하여 “집안에 어른이 나들이를 나가서 귀가가 늦으면 마중을 나가는 것이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다.”라고 하면서 격려의 말씀을 하신다.
점방에서 다시 등에 불을 붙이고 두 손자와 할아버지가 정담을 나누면서 집으로 오는 길에 손자들이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한다.
“할아버지, 좀 전에 마중을 오다가 ‘등불 따먹는 허깨비’가 나온다는 곳에 왔을 때에 무엇인가가 후다닥 길을 가로질러 뛰어서 벼논 속으로 들어가고, 갑자기 시커먼 그림자 같은 것이 이상한 바람과 함께 앞쪽으로 휙 하고 지나가더니 등불이 꺼져버려서 너무 무서웠어요.”
“정말로 겁이 났어요, 우리 둘이서 등불을 들고 오고 있는데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면서 불이 꺼져버렸어요, 그렇지 않아도 겁이 많이 났는데, 정말로 무서웠어요.”
두 손자는 저마다의 느낌을 더해 가면서 허깨비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할아버지에게 한다. 손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웃으시면서 말씀을 하신다.
“그래, 너희들이 많이 무서웠겠구나, 그곳에서 간혹 등불이 꺼지는데다가 오래 전에 사람이 목을 매달고 자살을 한 곳이라서 자연스럽게 이상한 소문이 나게 된 것이지, 그렇지만 소문처럼 허깨비는 없단다.”
“그런데요 할아버지, 정말로 허깨비가 없었다면 우리가 들고 오던 등불이 왜 갑자기 꺼졌을까요?”
“할아버지가 어렸을 적에 있었던 일인데, 이 동네에 들어와서 살든 사람이 그곳에서 자살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 사람이 갑자기 목을 매달아 자살을 하자 경찰에서 조사도 나오고 그랬거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장례를 치러 주었어, 친척이 없어서 장례를 지내줄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해, 할 수 없이 동네 사람들이 장례를 치러 주었지”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그 일이 있은 뒤로부터 죽은 사람이 허깨비가 되어 나타났어요?”
“허깨비는 무슨, 그런 일은 없었어,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무도 돌보아 줄 사람이 없는 자신의 장례를 지내준 마을 사람들이 고마웠으면 고마웠지 마을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해코지를 할 일이 없지 않겠어?,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곳을 지나가면 등불이 꺼지고, 허깨비가 나타난다는 소문이 났는데요?”
“그것은 알고 보면 이곳에서 사람이 목을 매달고 죽었다는 선입견에서 시작된 두려움 때문에 생겨난 소문에 불과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을뿐더러 피해도 전혀 없는데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밤에 그곳을 지나는 것을 무서워하거나 피하는데요?”
“그러한 것을 알기 쉽게 말을 하자면 사람이나 짐승에게는 혼이라는 것이 있어서 육신이 죽어서 화장을 하거나 땅에 묻으면 썩거나 재가 되어 없어지지만, 혼은 일정한 기간 동안 세상을 떠돌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거든, 그래서 그 떠돌고 있는 혼이 허깨비가 되어서 나타나기도 한다는 거야”
“할아버지 그렇다고 해도 그것과 등불이 꺼지는 것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데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볼 수가 있어, 그렇지만 우연이 그곳을 지날 때 너무 긴장을 해서 등불을 들고 있는 팔이 흔들려거나, 또는 순간적으로 부는 바람의 영향으로 불이 꺼졌을 수도 있거든” 여기에서 잠간동안 이야기를 중단하더니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비록 약한 바람이기라고 할지라도 바람은 공기의 흐름이므로 찬 곳에서 더운 쪽으로 이동을 하게 되는 것이거든, 그래서 등의 바깥쪽 바람이 등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면 등의 안쪽에는 불이 타고 있으므로 약하기는 하지만 공기가 따뜻하기 때문에 위쪽으로 공기가 올라가는데 그때에 맞추어서 들고 있는 손이 흔들리게 되면 그것 때문에 등의 흔들림이 커지게 되어 불이 꺼지는 수가 있단다.”
손자들은 할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얼핏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를 못하겠지?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단순하게 생각해. 공기는 밀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찬 곳에서 따뜻한 곳으로 흐르는 것이거든,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말이야, 무슨 말이냐 하면 등(燈)의 바깥쪽은 불이 있어서 따뜻한 안쪽보다 약간은 온도가 낮아서 공기의 밀도가 높기 때문에 공기가 등의 안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인데, 공기가 따뜻한 등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약하게 타고 있던 불이 흔들릴 수 있는데다 너희가 걸음을 걷고 있기 때문에 들고 있는 등 자체도 흔들릴 수밖에 없거든 그렇게 되면 등불의 흔들림이 커지게 되어서 불이 꺼지기도 하는 것이란다.”
“할아버지, 등불이 꺼지는 것은 그렇다고 하지만, 무엇인가가 길을 훌쩍 뛰어서 건너가는 것이라든지, 이상한 그림자 같은 것이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것은 무엇일까요”
“너희들이 알 수 없는 무엇인가 길을 가로질러서 뛰어 갔다고 했지? 그것을 고라니나 노루 같은 짐승이었을 수도 있어, 논에서 벼나 다른 무엇을 먹다가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니까 놀라서 도망을 갔을 거야, 그리고 이상한 그림자 같은 것이 지나갔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실제적으로 허깨비나 무엇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기 보다는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소문이나 괴담을 실제로 있었기라도 했던 것처럼 상상을 하게 되고 그러한 것들 때문에 그 곳을 지나치게 되면 마치 실제로 이상한 무엇인가가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으로 볼 수가 있어”
밤길을 걷는 동안 자세하게 설명을 하지만 그래도 손자들은 완전하게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눈치다. 이런 저런 조손간의 정담을 나누면서 오랜만의 나들이에 나섰던 할아버지를 마중하여 모시고 집으로 돌아 왔다.
이렇게 할아버지와 손자들이 밤길을 걸으면서 나누는 정담 속에서 오래 살아오신 할아버지의 경험과 상식들이 손자들에게 전해지고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정신이 자연스럽게 길러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