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봄날 / 천 복 순
그때아이 내 모습
고향(마산)에 왔다가 열차타고 집에 가고 있다
어릴적 동네아이들 합창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우리 집에 왜왔니 왜 왔니
꽃을 따러왔단다 왔단다.
언니가 널뛰던 널 한복판에 앉아있는 그때어린아이 내 모습이 있고
지금 안 계신 부모님모습도 있다
1950년 중반 TV도 없던 시절에 아이들이 동네에 옹기종기 모여서 딱지치기 제기차기 구슬치기 팽이치기
물총놀이 새총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줄다리기하고 우리할머니정구지
(부추)밭에 들어가서 자치기도 하다보면 정구지 밭이 엉망이고 밭 입구에서
할머니 집 금순이가 지키고 서있어도 무시하고 아이들과 우루루 들어가서
뛰놀던 시절 동네아이들과 연날리기하던 생각도 난다
언니가 마분지를 둥글게 말아 한쪽은 창호지 발라서 막은 것 두개에 기다란 실을 연결하고
하나는 내 귀에 대주고 언니는 다른 방에 들어가서“여보세요? 아-아- 여보세요? 들리나 오~바”
동갑인 사촌도순이도“여보세요? 여보세요?”그냥 말해도 다 들리는데
여보세요여보세요 라며 먼저 웃어 웃음보따리 터지던 여보세요전화놀이 하다가
쎄쎄쎄놀이 공기놀이 실뜨기놀이 고무줄놀이 기차놀이 달리기 하루종일 놀이를 하다보면
“밥 먹어라 밥 먹자... ”골목에 울려 퍼지는 우리엄마 목소리
동생하고 빨래판위에 세워서 목욕시키면 밖에 나가지 못하고
밥상에 둘러앉아 밥 먹다가 바닷가재 쏙 속살은 먹고 꼬리는 손가락마다 끼고 사또놀이
하다가 달력을 찢어서 접은 딱지 따먹기 놀이 하면 종이장판 헤질까
“방바닥 좀 그만 때려라 미금(먼지)날린다 어지럽다”시던 우리엄마
이불밖으로 손발이 나오면 잡히는 이불놀이 하자며 오빠하고 언니가 아이들 모두 솜이불하나로 덮어 놓고
막대로 이불을 때리면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서로 이불을 당기며 이불속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대던 웃음소리 이불놀이
장롱 속에 다락방 부엌 대문 뒤 우물 뒤에 몸을 숨기느라
우당탕 우당탕탕 뛰어다니며 숨는 숨바꼭질놀이로 야단법석을 하다가도
저녁이면 아버지이야기 들으려 사촌들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모여앉아
“큰아버지 이야기를 해 주세요”하면 ”오냐오냐 그래그래“ 하시면서
그래서 인자 지금부터...라시며 시작하여 아이들이 다 잠들 때 까지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아이들은 매일 이야기를 들어야 잠이 들었다
토끼와 거북이 우렁이각시 선녀와 나무꾼 심청전 장화홍련 콩쥐팥쥐
삼년고개 의좋은 형제 호랑이와 곶감 은혜 갚은 호랑이 눈이 셋인 도깨비
꼬부랑 할머니 삼국지 손오공 장풍 축지법 등 매일매일 이야기
남동생이 태어나니 우리엄마 노래는 잼 잼 잼 잼 도리도리 도리 도리
동생 넷이 태어나도 아버지 이야기는 계속되어 우리남매와 사촌들은 아버지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아버지 손에는 항상 책을 들고 계셨고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말씀이 없으시니 늘 조용하셨다
그때 아버지도 아버지가 그리워서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들려주시던
아버지 음성을 잊지 못한다
“너희 할아버지는 자식교육이 엄격하셨지
벽에 기대 비스듬히 앉지 마라 양반다리하고 반듯하게 앉아야 한다
너희는 중시조 천만리 충장공파 14대손 영양 천氏이고
천형락 할아버지는 서당훈장을 하시면서 한약방도 하셨고
할머니는 박氏이다
구름상회목화솜가게 큰아버지 천희정 아버지 천희주 작은아버지 천희립
막내 작은아버지 천희옥 비단상회고모는 씨름장사 김성률 어머니시다“ 시던 아버지
윤달에 부모님 산소 보수하면서 봉분에 새로 입힌 뗏장(잔디)이 밀려 떨어진다는막내동생이 우리남매 가족밴드(500번지) 올린사진
봉분에 새로 입힌 뗏장이 떨어졌다니
우리엄마 속에 천불나서 이불 걷어차시나
자식들 보고 싶어 불러 모으시나
봄꽃은 저리고운데
우리어무이 아버지는 꽃구경하실까
늘 조용하시던 우리아버지
바람이 아버지를 깨우시나
새들도 아버지 품이 그리워서 묘를 헤집나
바람도 새들도 다시오지마라 우리아버지산소
내 동생이 지킨다.
아버지양팔에 아기안은 엄마 등 뒤에 꼭꼭 붙어 누워서 아버지옛날이야기 들을 때면
울 엄마 먼저 꿈나라로 가시고 올망졸망 아이들도 하나둘씩 잠이 들고
목화솜 이불 덮고 아홉 식구가 복작복작 거리며 살았던 어린 시절 내 고향
부모님 추억은 나무에 물오르는 봄날이고 나의 자양분이 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