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상은 신비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과는 두 번째 만남이다.
ㅡ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명문장으로 꼽히는 소설의 첫 문장.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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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문정희 시<한계령을 위한 연가>
두 문장은 내 마음 속에 하얀 고립을 키웠고
홋카이도 여행을 계획하게 했다.
13킬로미터 긴 터널의 이쪽과 저쪽.
인간은 고립되고 싶다. 벗어나고 싶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 보호 받고 싶다. 그러나, 자유롭고 싶다.
인간은 그렇다.
이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은 등장인물들의 불확실한 말과 행동을 통해 은밀하고 불분명하게 눈치챌 뿐이다.
긴 터널을 빠져나가지 않고는 갈 수 없는
니가타현 에치고 유자와 온천은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도쿄에 가정을 두고 무위도식하는
여행객 시마무라.
멀리 있는 약혼자의 병원비를 위해
게이샤가 되었다는 소문이 있는 고마코.
살아날 기미 없는 그 약혼자의 새 연인
요코.
이 모든 설정에서 나는 고립을 느낀다.
어떤 장소에 혹은 자기 자신만의 세계로의.
외부는 호기심의 대상이다.
낯선 곳에 오래 머물면서 돈도 있어 보이고
글을 쓰는 시마무라는 이 한적한 동네에서
무언가에 묶여 있는 듯한 고마코와 요코에게는
신비의 대상일 수 있다. 설렘이고 두근거림일 수 있다.
그 감정은 애정과 안타까움으로 확장되어 간다.
그건 시마무라도 마찬가지.
눈의 고장 니가타는 그에게도
미지의 세계이며 외부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시마무라가 더 고립되어 보인다.
시마무라는 사는 곳(도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이곳에 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고마코와 요코에게 향하는 감정의 흐름에
이번에 돌아가면 이제 결코 이 온천에 다시 올 수 없으리라 예감한다.
시마무라는 육체 뿐 아니라
정신적 고립까지 원했을 거라 상상하게 되는 배경이다.
이를 작가는 '허무'라 표현했다.
다 쓸데없는 짓인 것이다.
이는
-고마코와 요코의 열정적 삶과 애인의
죽음,
어차피 떠날 자신에게 애정을 느끼는
고마코,
화재 장소인 고치 창고에서 추락하는
요코-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작가가 이 소설 대표적인 키워드 '허무'로 표현하는 데서 알아볼 수 있는데
어차피 녹아 사라질 세상,
이 글의 제목 [설국]에 닿아 있다.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설국]은 연작 형태로 쓰였다고 한다.
13년에 걸쳐 완결판으로 출간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니가타현의 아름다운 풍경과 인간의 유한함,
정열과 대비되는 허무를 감각적 문체로 그려낸다.
눈 내린 지방 풍경,
그 순백의 아름다움에 대한 섬세한 묘사,
눈 알갱이처럼 개별적으로 내려
심연 깊은 곳부터 소복소복 쌓여 가는 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한 그들의 내밀한 감정의 변화는
줄거리 파악보다는 시각과 청각을 열어 온몸으로 느껴야 하는 일이었다.
마치 영화 <색ㆍ계>, <헤어질 결심>의 탕웨이의 표정을 알아채 듯.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을 평생 흰옷만 입게 만들었다는 뒷얘기가 있는 이 소설은
작가가 펼쳐 놓은 시선과 소리에 집중하여 따라가다 보면,
서늘하게 그려지는 한 편의 서정시를 만나게 된다.
비록, 시마무라의 니가타가 아니고 문정희의 한계령이 아니더라도,
시 세계를 탐하는 나는 그 고요한 고립을 엿보고자 홋카이도로 간다.
오오 눈부신 고립*
너는 홀연히 왔다
한 줄로 늘어선 자작나무를 따라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지우는
지독한 결핍으로
눈 뜨면 눈 내려
길게 이은 족적을 지워도
생을 엮는 고독한 바느질이 계속된다
배고픈 눈길 기름진 상상력
기름진 눈길 배고픈 상상력은
애초에 배가 다른 쌍생아
멍에를 풀지 못하고
교차하는 빙하기의 전언
네 눈 속에
길 들지 않은 영혼을 탐하는
슬픈 눈동자가 있다
미선. . . [눈 속의 여우]
첫댓글 설국!
고등학교 때 만났던 설국을 새삼 떠오르게 해 주어서 고마워요.
그 책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두 번째 만난다는 말에 새삼 감동입니다.
미선 님께선 참으로 진지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한강의 노벨문학상이 가져다 준 선물이라는 생각도 하면서 마음이 담긴 글 잘 감상했어요.
고맙습니다.
아름다운 가을 끝자락엔 하얀 눈이 우리를 반길거란 기대를 해 봅니다.
*1박 2일로 충북 제천에 있는 박달재와 배른성당, 의림지를 다녀오느라 밤늦게 집에 도착하여 글을 읽었습니다.
회장님^^ 먼 길 다녀오시고 바쁘신 중에 정성스런 댓글 감사합니다. 닿지 않는 곳 없게 이모저모 챙겨 주시는 회장님 마음을 늘 배우고 있습니다.
'한계령을 위한 연가' 정말 좋아하는 시 인데요~
겨울이 기다려지는 글입니다.
좋은 리뷰에 '설국'을 읽고 싶게 합니다.
시 같은 리뷰 멋집니다.
떠나고픈 곳으로 여행하시는 것도 부럽고요~
깊은 사유가 담긴 글 참 좋습니다~♡
부회장님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열심히 글쓰시는 부회장님 보며 배우는 바가 많아 따라서 올 초에 써 놓은 글인데 올려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