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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보(李奎報) -발상주(發尙州)-상주를 떠나며
耿耿殘星在(경경잔성재) : 새벽별 아직 하늘에 깜박이는데
曉隨烏鵲興(효수오작흥) : 까마귀 까치 따라 일어났어라.
旅腸消簿酒(려장소부주) : 나그네 뱃속에 막걸리로 푸니
病眼眩寒燈(병안현한등) : 쓸쓸한 등불이 병든 눈에 부시다.
行李同村老(행리동촌로) : 행식은 시골 늙은이 같고
囊裝似野僧(낭장사야승) : 낭장은 야승처럼 초라하다.
歸田計未遂(귀전계미수) : 전원으로 가려도 이루지 못하고
戀闕意難勝(련궐의난승) : 임 그리는 마음 걷잡기 어렵다.
避世慙高鳳(피세참고봉) : 세상을 피해 사는 고봉에게 부끄럽고
知幾謝李鷹(지기사리응) : 기미를 아는 것은 계응보다 못하다.
露深巾墊角(로심건점각) : 이슬이 축축하니 건의 뿔이 기울고
風勁生稜䄂(풍경생릉䄂) : 바람이 거세니 소매에 모가 진다.
石棧霜猶重(석잔상유중) : 돌길의 서리 아직 무겁고
雲崖日未昇(운애일미승) : 구름 낀 벼랑에 아직 해 돋지 않았다.
辭親兩行淚(사친량행루) : 어버이 하직하던 두 줄기 눈물
到曙尙霑膺(도서상점응) : 새벽이 되어도 가슴에 젖어있어라.
◎ 이규보(李奎報) -구병(久病)-오래 앓음
一嬰沈瘵度三秋(일영침채도삼추) : 한 번 앓아 온지 이미 삼 년
臥腐公家俸祿優(와부공가봉록우) : 병으로 누운 채 나라의 록만 썩힌다.
乞退欲休君不頷(걸퇴욕휴군부함) : 물러나 쉬려 해도 허락하지 않으니
天將使我大休休(천장사아대휴휴) : 하늘이 나를 매우 슬프게 하는구나.
◎ 이규보(李奎報) -유어(游魚)-노니는 어부
圉圉紅鱗沒復浮(어어홍린몰복부) : 물 속에 노리는 물고기 잠겼다 떠오르니
人言得意好優遊(인언득의호우유) : 마음껏 즐겨 노는 것을 사람들 부러워한다.
細思片隙無閑暇(세사편극무한가) : 가만히 생각하면 편안할 틈이 없어
漁父方歸鷺更謀(어부방귀로갱모) : 어부 돌아가면 해오라기 다시 노리는구나.
◎ 이규보(李奎報) -언회(言悔)- 말 더듬
我性本訥言(아성본눌언) : 나는 본래 말을 더듬어
庶幾無口過(서기무구과) : 거의 말 실수 없었어라.
昨日率爾言(작일률이언) : 어제 선뜻 한 그 말
我死誰代者(아사수대자) : 나 죽으면 누가 대신하나.
有客笑而對(유객소이대) : 손님이 웃으며 대답하기를
子語似未可(자어사미가) : 그대 말 옳지 못한 듯하여라.
才俊世所稀(재준세소희) : 뛰어난 재주 세상에 드물거니
當憂代者寡(당우대자과) : 의당 대신할 이 적음을 근심하리라.
子非異於人(자비이어인) : 자네도 남과 다르지 않아
所益無一箇(소익무일개) : 이익 될 일 하나도 없어라.
何必見代爲(하필견대위) : 반드시 대신할 이 보아야 하나
俚唱宜無和(이창의무화) : 속된 노래엔 화답하지 말아라.
其言雖似訐(기언수사알) : 그 말이 비록 꼬집은 것 같으나
其意未大左(기의미대좌) : 뜻은 크게 어긋나지 않았어라.
我悔前言失(아회전언실) : 내 지난번 말실수 뉘우치고
起拜再三謝(기배재삼사) : 일어나 절하고 두세 번 사과했어라.
◎ 이규보(李奎報) -앵무(鸚鵡)-앵무새
衿披藍綠觜丹砂(금피람록자단사) : 옷깃은 남색 푸른빛, 부리는 단사빛
都爲能言見罻羅(도위능언견위라) : 모두가 말할 줄 알아 그물에 잡혔구나.
嬌姹小兒圓舌澁(교차소아원설삽) : 애교스런 아이처럼 혀 놀림 어색하고
玲瓏處女惠容多(령롱처녀혜용다) : 차려입은 처녀인 듯 꾸밈새가 예쁘구나.
慣聞人語傳聲巧(관문인어전성교) : 익히 들은 남의 말은 교묘히 소리로 옮기나
新學宮詞道字訛(신학궁사도자와) : 새로 배운 궁중 가사는 글자를 잘못 읽는구나.
牢鎖玉籠無計出(뢰쇄옥롱무계출) : 옥구슬 조롱에 굳게 갇혀 벗어날 길 없어
隴山歸夢漸蹉跎(롱산귀몽점차타) : 둘러선 산으로 돌아갈 꿈 점점 어긋나는구나.
◎ 이규보(李奎報) -투화풍(妬花風)-꽃샘 바람
花時多顚風(화시다전풍) : 꽃 필 땐 광풍도 바람도 많으니
人道是妬花(인도시투화) : 사람들 이것을 꽃샘 바람이라 한다.
天工放紅紫(천공방홍자) : 조물주가 주홍빛 자주빛 꽃피우니
如剪綺與羅(여전기여라) : 마치 비단들을 가위질해 놓은 하다.
旣自費功力(기자비공력) : 이미 그렇게도 공력을 허비으니
愛惜固應多(애석고응다) : 아끼는 마음이야 응당 적지 않으리라.
豈反妬其艶(기반투기염) : 어찌 그 고움을 시기하여
而遣顚風加(이견전풍가) : 광풍을 남겨 보냈을까
風若矯天令(풍약교천령) : 바람이 만약 하늘의 명을 어긴다면
天豈不罪耶(천기불죄야) : 하늘이 어찌 죄를 주지 않을까
此理必不爾(차리필불이) : 이런 법이야 반드시 없을 것이니
我道人言訛(아도인언와) : 나는 사람들의 말이 잘못이라 말하리라.
鼓舞風所職(고무풍소직) : 노래하고 춤추는 건 바람의 맡은 일
被物無私阿(피물무사아) : 만물에 은택 입히니 사사로움 없으리라
惜花若停簸(석화약정파) : 꽃을 아껴 만약 바람다 그친다면
其奈生長何(기내생장하) : 그 꽃 영원히 생장할 수나 있을까.
花開雖可賞(화개수가상) : 꽃 피어 감상하기 좋으나
花落亦何嗟(화락역하차) : 꽃 지는 것을 슬퍼할 게 뭐 있나.
開落摠自然(개락총자연) : 꽃 피고 꽃 지는 것 모두가 자연이니
有實必代華(유실필대화) : 열매가 생기면 반드시 꽃 피어 대신한다.
莫問天機密(막문천기밀) : 묻지 말게나, 오묘한 이치 자연의 이치
把杯且高歌(파배차고가) : 술잔 잡고 소리 높여 노래나 불러보자구나.
◎ 이규보(李奎報)-야제(夜霽)-밤에 개어
娟娟天上月(연연천상월) : 곱고 고운 하늘 위의 달이여
相見間何濶(상견간하활) : 본 지 얼마나 오랜 시간 지났나.
好在佳人面(호재가인면) : 잘 있었구나, 미인 같은 네 얼굴
令我心大豁(령아심대활) : 나의 마음을 활짝 펴게 하는구나..
◎ 이규보(李奎報) -복고가(腹皷歌)
君不見豪家子弟宴華屋(군불견호가자제연화옥) : 그대는 못보았나, 부호 자제들 화려한 집 연회를
撾鍾擊鼓間絲竹(과종격고간사죽) : 종 치고 북 두드리며 간간이 줄 퉁기고 피리 분다.
城西先生獨不然(성서선생독불연) : 성 서쪽 선생은 홀로 그렇지 않으니
醉後高歌鼓大腹(취후고가고대복) : 취하면 노래 부르며 큰 배를 두들긴다.
是中可容數百人(시중가용수백인) : 이 안에는 수백 사람 수용할 수 있고
亦能貯酒三千斛(역능저주삼천곡) : 또 삼천 섬의 술도 저장할 수 있다.
膏田得米釀醇醅(고전득미양순배) : 기름진 밭에 쌀 얻어 좋은 술 빚어
數日微聞香馥馥(수일미문향복복) : 며칠 만에 맡아보니 향내가 물씬 풍긴다.
何必壓槽絞淸汁(하필압조교청즙) : 어찌 반드시 틀로 걸러 진국물 짜내야 하나
頭上取巾親自漉(두상취건친자록) : 머리 위의 두건 벗어 내 손으로 걸러야지.
一飮輒傾如許觥(일음첩경여허굉) : 한번 마심에 문득 양껏 마시고
佐以辛蒜或腥肉(좌이신산혹성육) : 야채나 고기로 안주를 한다.
腹爲皮鼓手爲搥(복위피고수위추) : 배는 북이 되고 손은 북채 되어서
登登終日聲相續(등등종일성상속) : 둥둥둥 종일토록 소리가 계속된다.
隴西窮叟得酒少(롱서궁수득주소) : 언덕 너머 궁한 늙은이 얻은 술 적어
矮屋低頭鶴俛啄(왜옥저두학면탁) : 작은 집에 머리 숙여 학이 머리 숙여 쪼듯한다.
腹如椰子猶未充(복여야자유미충) : 배는 야자 열매만하나 여전히 채우지 못하니
只見靑盤堆苜蓿(지견청반퇴목숙) : 보이는 것은 푸른 소반에 비름나물뿐이다.
暫盛水醬俄復空(잠성수장아부공) : 잠시 장물로 채우지만 이내 곧 다시 배 고파
有如蹶鞠氣出還自縮(유여궐국기출환자축) : 공에 바람이 빠지면 쭈그러짐과 같다.
那將雷吼飢腸聲(나장뢰후기장성) : 어찌하면 우뢰같은 굶주린 장에서 나는 소리 가져다
往和先生鼓腹太平曲(왕화선생고복태평곡) : 선생이 배 두들기며 부르는 태평곡에 맞출까.
◎ 이규보(李奎報) -영계(詠鷄)-닭을 읊다
出海日猶遠(출해일유원) : 바다에 일출이 아직 멀어
乾坤尙未明(건곤상미명) : 하늘과 땅 아직 밝지 않았다.
沈酣萬眼睡(침감만안수) : 사람들 모두 단잠에 젖어
驚破一聲鳴(경파일성명) : 한 울음소리로 놀래 깨운다.
索食呼雌共(색식호자공) : 먹이 찾아 암컷 불러 같이 먹고
誇雄遇敵爭(과웅우적쟁) : 수컷됨을 과시하여 적 만나 싸운다.
吾憐五德備(오련오덕비) : 오덕을 모두 갖춤을 어여삐 여기니
莫與黍同烹(막여서동팽) : 기장과 함께 결코 삶지 말라.
◎ 이규보(李奎報) -대취주필시동고자(大醉走筆示東皐子)- 크게 취하여 붓가는 대로 써서 동고자에게
보이다
我昔在何處(아석재하처) : 내 옛날 어디에 있었나
笙簫宮殿有無中(생소궁전유무중) : 피리소리 궁궐 까마득한 곳이었다.
鈞天廣樂夢正酣(균천광악몽정감) : 천국의 풍악소리에 꿈이 한창 달았는데
何人引我踏塵紅(하인인아답진홍) : 어떤 사람이 나를 끌어 이 티끌 세상 밟게 했나.
大地不能戴我足(대지불능대아족) : 대지도 내 발을 받칠 수 없고
太山不足呑吾胸(태산불족탄오흉) : 태산도 내 가슴 삼킬 수 없구나.
軒然要出六合外(헌연요출륙합외) : 다 털어버리고 천지사방 밖으로 나가고 싶나니
六合之內轍皆窮(륙합지내철개궁) : 천지사방 안은 수레로 모두 갈 수 있는 곳이니까.
茫茫丘隴不可望(망망구롱불가망) : 망망한 묘지언덕 바라볼 수 없나니
今古忍埋龍虎雄(금고인매룡호웅) : 고금에 훌륭한 영웅을 어이 차마 묻었나.
蓬萊山在海中央(봉래산재해중앙) : 봉래산은 바다 가운데 있거늘
碧玉秀出知誰鎔(벽옥수출지수용) : 빼어난 백옥을 누가 녹여 만들었을까.
君先去我當繼(군선거아당계) : 그대 먼저 가면 나도 곧 뒤쫓아 갈 것이니
何必論天仙地仙水僊宮(하필론천선지선수선궁) : 하필 하늘과 신선 땅, 신선 물, 신선 궁궐을 가릴려 하나.
◎ 이규보(李奎報) -칠월삼일작(七月三日作)-칠월 삼일에 짓다
雨久却愁天腐爛(우구각수천부란) : 비가 오래 오니 하늘이 썩나 근심되고
風狂猶恐嶽飛騰(풍광유공악비등) : 바람이 거세니 산이 날아오늘까 두려워라.
深泥沒脛街成海(심니몰경가성해) : 깊은 흙탕에 발 빠지니 거리는 온통 바다
尙有敲門一箇僧(상유고문일개승) : 그래도 스님 한 분이 문 두드리며 찾는다.
◎ 이규보(李奎報)하문장노득사(賀文長老得寺)-문 장로가 절을 얻었기에 치하하다
公道如今尙不隳(공도여금상불휴) : 공도는 지금도 여전히 추락하지 않아
名藍還到一淸羸(명람환도일청리) : 유명한 절에 한 청수한 노화상이 왔어라.
老龍得瀨方專穴(로룡득뢰방전혈) : 늙은 용이 여울 얻어 이제 집을 독점할 것이니
瘦鳳尋梧始占枝(수봉심오시점지) : 여윈 봉새가 오동 찾으니 비로소 가지를 점령했어라.
山水風流眞勝地(산수풍류진승지) : 산과 물의 풍류라 정말 경치 좋은 곳인데
鶯花時節是歸期(앵화시절시귀기) : 꽃 피고 새 우는 시절이 바로 돌아가는 날이어라.
我今懽抃先來賀(아금환변선래하) : 내 이제 기쁨에 못이겨 먼저 와 축하나니
不爲吾師也爲時(불위오사야위시) : 대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 사람 위해서라오.
◎ 이규보(李奎報) -고우가(苦雨歌)-장비를 노래하다
愁霖一月如懸河(수림일월여현하) : 금심스런 장마비 한 달 동안 강물 쏟듯 하여
晝夜昏黑藏羲娥(주야혼흑장희아) : 밤낮으로 캄캄하게 해와 달을 가리웠구나.
已聞街巷遊蛟鼉(이문가항유교타) : 이미 거리에는 교룡과 자라가 논다고 하니
復患庭除生蚌螺(부환정제생방라) : 다시 뜰에는 조개와 소라가 생길까 걱정이구나.
高墻忽倒臥橐駝(고장홀도와탁타) : 높은 담 갑자기 넘어지니 드러우운 낙타인 듯
短屋還頹仆馬騾(단옥환퇴부마라) : 작은 집 무너지니 말과 나귀가 엎어진 듯하다.
雷公揮劍刃如磨(뢰공휘검인여마) : 번개가 칼을 휘두르니 칼날을 갈아 세운 듯.
壁間躍出陶公梭(벽간약출도공사) : 벽 사이에서 도공의 북이 튀어나온 듯하다
直敎平地轉盤渦(직교평지전반와) : 바로 평지를 물웅덩이로 만들었는데
南宅東家放鴨鵝(남댁동가방압아) : 남쪽 집 동쪽 집에서 오리와 거위를 풀어 놓았다.
城中萬戶浮濤波(성중만호부도파) : 성중의 모든 집들이 파도에 떴오르고
大者如舶小如艖(대자여박소여차) : 큰 것은 상선 같고 작은 것은 쪽배 같구나.
一國正作海中倭(일국정작해중왜) : 온 나라가 바로 바다 속의 왜국이 된 듯하고
擬營船舫相經過(의영선방상경과) : 왕래하는 나룻배를 만들어 서로 찾아 지나다닌다.
江湖混混莫分沱(강호혼혼막분타) : 강물과 호수가 서로 섞여 갈래를 못 잡는데
空舟獨艤無魚蓑(공주독의무어사) : 빈 배만 혼자 다닐 뿐 고기 잡는 사람도 없구나.
蓬蒿蕭艾與綠莎(봉호소애여록사) : 다복대 쑥대 푸른 잔디
時哉得意盈山阿(시재득의영산아) : 때 만났다 득의 만만하여 산 둔덕에 가득 찼구다.
可惜南畝漂嘉禾(가석남무표가화) : 아깝구나, 남쪽 논의 벼포기가 물 위에 떴으니
其奈四海蒼生何(기내사해창생하) : 사해의 백성들은 어찌해야 좋을 것인가.
甕中美酒香已訛(옹중미주향이와) : 독 안의 향기로운 술이 이미 변했으니
詎可酣飮令人酡(거가감음령인타) : 어찌 마실 것이며 마신들 취할 수있겠는가.
箱底芳茶貿味多(상저방다무미다) : 상자 속 좋은 차는 맛이 많이 변했으니
不堪烹煮驅眠魔(불감팽자구면마) : 끓여 먹어도 몰리는 잠을 쫓아내지는 못하리라.
掩被雖欲寐無吪(엄피수욕매무와) : 이불을 뒤집어쓰고 꼼짝 않고 자고 싶건만
打窓喧霤可從他(타창훤류가종타) : 요란한 낙수물이 창을 때리니 무슨 수를 쓰리오.
凡百防人多跌蹉(범백방인다질차) : 모든 물막이군 넘어지고 자빠지니
久矣此雨傷天和(구의차우상천화) : 지겨워라, 이 비가 하늘의 조화를 상하게 하는구나.
鳥藏巢底蜂藏窠(조장소저봉장과) : 새는 둥지에 숨고 벌은 구멍에 들고
路絶車馬無鳴珂(로절차마무명가) : 길에는 마차 끊어져 방울 소리도 없어라.
此時行者理則那(차시행자리칙나) : 이런 때 행인인들 무슨 재주 있을까
泥沒腰脊況襪靴(니몰요척황말화) : 진흙이 허리까지 빠지니 신이 소용없구나.
我幸杜門聊養痾(아행두문료양아) : 나는 다행히 문 닫고 병을 고치고 있어
日晏而興誰復訶(일안이흥수부가) : 늦어 일어난들 누가 다시 꾸짖겠는가
率然忽作苦雨歌(솔연홀작고우가) : 갑자기 마음에 감흥이 일어 고우가를 짓는다.
◎ 이규보(李奎報)-운상인장환산걸시(雲上人將還山乞詩)-운 스님이 산으로 돌아가며 시를 청하기에
空門本絶去來想(공문본절거래상) : 불문은 본래 과거와 미래의 망상을 끊는 것
臨別何須更黯然(림별하수경암연) : 이별이라 새삼 슬퍼할 게 무엇인가.
莫恐紅塵隨白足(막공홍진수백족) : 붉은 티끌 흰 발자취에 묻힐까 겁내지 말라.
洗廻還有出山泉(세회환유출산천) : 돌아가 도리어 산에서 솟는 샘물에 씻어버리게나.
◎ 이규보(李奎報)-대농부음이수1(代農夫吟二首1)-농부를 대신하여 읊은 노래
帶雨鋤禾伏畝中(대우서화복무중) : 비 맞고 김을 매며 밭이랑에 엎드리니
形容醜黑豈人容(형용추흑기인용) : 검고 추악한 몰골이 어찌 사람의 모양인가.
王孫公子休輕侮(왕손공자휴경모) : 왕손공자들이여, 우리를 업신여기지 마소
富貴豪奢出自儂(부귀호사출자농) : 그대들의 부귀호사, 우리들로부터 나온단다.
◎ 이규보(李奎報)-대농부음이수2(代農夫吟二首2)-농부를 대신하여 읊은 노래
新穀靑靑猶在畝(신곡청청유재무) : 시퍼런 새 곡식 아직도 채 밭에 있는데
縣胥官吏已徵租(현서관리이징조) : 현의 서리들은 벌써 조세를 징수하는구나.
力耕富國關吾輩(역경부국관오배) : 힘껏 일한 부자 나라 우리들에게 달렸는데
何苦相侵剝及膚(하고상침박급부) : 어찌 이다지도 빼앗으며 살마저 벗겨 가는가.
◎ 이규보(李奎報)-독도잠시(讀陶潛詩)-도잠의 시를 읽고
我愛陶淵明(아애도연명) : 나는 도연명의 시를 좋아하니
吐語淡而粹(토어담이수) : 토해 놓은 말은 담박하고 순수하다.
常撫無絃琴(상무무현금) : 항상 줄 없는 거문고를 어루만지니
其詩一如此(기시일여차) : 그의 시도 또한 이와 같았구나.
至音本無聲(지음본무성) : 지극한 음률은 본래 소리가 없으니
何勞絃上指(하로현상지) : 어찌 피곤하게 거문고 줄에 손을 쓸까
至言本無文(지언본무문) : 지귻한 말은 본래 수식이 없으니
安事彫鑿費(안사조착비) : 어찌 꿈임을 일삼아 말을 허비하리오
平和出天然(평화출천연) : 자연에서 나온 평화로움이여
久嚼知醇味(구작지순미) : 오래 씹을 수록 더욱 진한 맛을 느낀다.
◎ 이규보(李奎報)-석창포(石菖蒲)
露珠偏上翠尖垂(로주편상취첨수) : 이슬 구슬 동글동글 한쪽 푸른 잎에 매달려
愛箇玲瓏未墮時(애개령롱미타시) : 영롱하게 떨어지지 않고 빤짝거림이 좋아라.
賴有彈渦餘海暈(뢰유탄와여해훈) : 바닷가에는 탄자와가 남아 있어
老虯盤穩秘鬚髭(노규반온비수자) : 늙은 규룡 들어와 서리어 수염 감추었구나.
◎ 이규보(李奎報)-석류화(石榴花)
例憑土肉得繁枝(례빙토육득번지) : 굳건히 흙에 붙어야 무성한 나뭇가지
厭見群紅婀娜姿(염견군홍아나자) : 온갖 꽃들의 한들거리는 자태 보기도 싫어라.
賴爾花中獨安石(뢰이화중독안석) : 꽃 주에 너만이 돌에 편히 붙었을 수 있어
鐵腸如我尙開眉(철장여아상개미) : 철석같은 마음 나와 같아 나의 시름 풀어본다.
◎ 이규보(李奎報)-서상화(瑞祥花)
外家鍾慶氣如春(외가종경기여춘) : 외가에 쌓인 경사가 봄날같은 기운이라
華屋尋常燕賀賓(화옥심상연하빈) : 화려한 집안, 경축잔치엔 손님도 많아라.
一朶好花嬌欲語(일타호화교욕어) : 한 송이 좋은 꽃이 말하는 듯 교태로워
又將何瑞報於人(우장하서보어인) : 더 이상 무슨 상서로 주인에게 보답할까.
◎ 이규보(李奎報)-국화(菊花)
霜奔秋來遍放花(상분추래편방화) : 서리 내려 가을 되어 두루 핀 꽃
飽看野岸與山家(포간야안여산가) : 들 언덕 산촌에도 마냥 보겠구나.
石盆硬滑應難穩(석분경활응난온) : 돌화분 굳고 미끄러워 편하기 어려워
一朶寒香尙足誇(일타한향상족과) : 한 송이 찬 향기 자랑하며 피었구나.
◎ 이규보(李奎報- 사계화(四季花)
伴開春艶旋隨風(반개춘염선수풍) : 봄꽃과 함께 피려더니 바람 따라 지고
欲配秋香夢又空(욕배추향몽우공) : 가을 국화와 짝하더니 또다시 헛꿈이어라.
閱遍群芳無可偶(열편군방무가우) : 온갖 꽃을 둘러봐도 짝할 이 하나 없어
依依獨到雪中紅(의의독도설중홍) : 의연히 혼자서 눈 속에서 붉었어라.
◎ 이규보(李奎報)-박승가분죽(朴丞家盆竹)-박승상 집의 화분 대나무
欲試君賢豈一端(욕시군현기일단) : 그대의 어짊을 시험함에 어찌 한가지 뿐일까
悍根又耐石盆寒(한근우내석분한) : 굳센 뿌리는 돌분의 차가움을 견디어 내는구나.
箇中尙有湘江意(개중상유상강의) : 그 중에서도 오히려 상강의 기상이 있으니
直作攙天玉槊看(직작참천옥삭간) : 바로 하늘 찌르려는 옥창의 기운이 보이는구나.
◎ 이규보(李奎報)-취유하녕사(醉遊下寧寺)-취하여 하령사에 놀며
偶到湖邊寺(우도호변사) : 우연히 호숫가 절에 이르니
淸風散酒醺(청풍산주훈) : 시원한 바람에 술 기운 흩는다.
野荒偏引燒(야황편인소) : 거친 들은 불길 끌기 알맞고
江暗陽生雲(강암양생운) : 아득한 강에는 구름 일기가 쉽다.
碧嶺侵沙斷(벽령침사단) : 푸른 고개 모래에 씻겨 끊기고
奔流夾岸分(분류협안분) : 치닫는 물은 언덕에 부딪혀 나뉘었다
孤舟何處泊(고주하처박) : 외로운 배 어느 곳에 대었는가
漁笛晚來聞(어적만래문) : 어선의 피리 소리 저녁에 들려온다.
◎ 이규보(李奎報)-마상유작(馬上有作)-말 위에서 짓다
一別水仙鄕(일별수선향) : 수선의 고을을 떠나
騰裝適南荒(등장적남황) : 행장 챙겨 남쪽 변방으로 간다.
六月行萬里(육월행만리) : 유월 하늘에 만 리를 가니
白汗翻如漿(백한번여장) : 흰 땀이 죽같이 솟는다.
行疲又上馬(행피우상마) : 걷다가 피곤하면 말에 오르고
上馬睡欲僵(상마수욕강) : 말에 오르니 졸려서 쓰러지려 한다.
渴飮山下泉(갈음산하천) : 목말라 산 아래의 샘물을 마시니
泉水極探湯(천수극탐탕) : 샘물도 뜨겁기가 끓인 물과 같다.
童奴喘不息(동노천부식) : 어린 종은 헐떡거리며
屢擇樹陰涼(루택수음량) : 자주 서늘한 나무 그늘을 찾는다.
幸非就國者(행비취국자) : 다행히 서울에 가는 사람 아니라
行李不須忙(행이부수망) : 걸음을 굳이 바삐할 필요가 없도다.
◎ 이규보(李奎報)-지상영월(池上詠月)-못 위의 달을 노래하다
天上群仙會(천상군선회) : 하늘 위 여러 신선 모임
姮娥欲點粧(항아욕점장) : 항아가 몸단장 하려하였어라.
却嫌塵掩鏡(각혐진엄경) : 문득 티끌에 거울 가린 것이 싫어
下洗碧流長(하세벽류장) : 내려와 흐르는 푸른 물에 씻는구나.
◎ 이규보(李奎報)-월야문자규(月夜聞子規)-달밤에 들리는 자규의 울음
寂寞殘宵月似波(적막잔소월사파) : 적막한 밤, 달빛은 물결처럼 잔잔한데
空山啼遍奈明何(공산제편내명하) : 빈 산에 온통 새 울음소리 날이 새면 어이하나.
十年痛哭窮途淚(십년통곡궁도루) : 십 년을 통곡한 궁핍한 자의 눈물
與爾朱脣血孰多(여이주순혈숙다) : 너의 붉은 입술과 피 중에 어느 것이 짙은가.
◎ 이규보(李奎報)-사가(思家)-집 생각
雁信方三到(안신방삼도) : 편지는 이제야 세 번 왔는데
蟾輪已五虧(섬륜이오휴) : 달은 이미 다섯 번이나 기울다.
荒蘺殘露菊(황리잔로국) : 허물어진 울타리에 이슬 젖은 국화
寒樹爛霜梨(한수란상리) : 차가운 나무에는 서리 맞은 배가 익었다.
最憶鴉頭女(최억아두녀) : 머리가 까맣게 윤나는 딸이 가장 그립고
還懷犀角兒(환회서각아) : 이마가 헌칠한 아들놈도 생각난다.
城東一區宅(성동일구택) : 성 동쪽 집 한 채있으니
誰肯葺茅茨(수긍즙모자) : 누가 기꺼이 지붕을 이어 줄까.
◎ 이규보(李奎報)-숙사평진(宿沙平津)-사평진에 묵으며
遊女冶客多效妓(유녀야객다효기) : 노는 계집 몸치장 거의 기생인 듯
居民祝髮半爲僧(거민축발반위승) : 거주민들 머리 깎으니 반은 중이로구나.
江喧如識潮聲漲(강훤여식조성창) : 강이 소란해지니 조수 소린줄 알겠고
地熱那堪瘴氣蒸(지열나감장기증) : 땅이 더우니 질병 일으키는 독기를 어찌 견디랴.
◎ 이규보(李奎報)-영어(詠魚)-고기를 읊다
圉圉紅鱗沒又浮(어어홍린몰우부) : 겨우겨우 붉은 비늘 잠겼다간 다시 떠오르니
人言得志任遨遊(인언득지임오유) : 물고는 마음대로 노닌다고 사람들은 말하노라.
細思片隙無閑暇(세사편극무한가) : 자세 생각하면, 잠시도 한가한 시간 없으니
漁父纔歸鷺又謀(어부재귀로우모) : 어부가 겨우 돌아가자 백로가 다시 또 엿본다.
◎ 이규보(李奎報)-감로사(甘露寺)-감로사에서
金碧樓臺似(금벽루대사) : 금빛, 옥빛에 누대가 어린 듯
環遶水重圍(환요수중위) : 둥글게 물은 겹겹이 감싸는구나.
炤日添秋露(소일첨추로) : 가을 이슬에 밝은 해빛 비치고
干雲散夕霏(간운산석비) : 다가오는 구름은 저녁 놀 흩어버린다.
偶成文字去(우성문자거) : 기러기 우연히 글자 이루어 날아가고
自作畫圖飛(자작화도비) : 백로는 스스로 그림을 그리며 날아간다.
不起江加鏡(불기강가경) : 바람 일지 않아 강물은 거울 같아
路上行人對(로상행인대) : 길 가는 사람, 물 속 그림자와 함께 간다.
◎ 이규보(李奎報)-공암강상음(孔巖江上吟)-공암강 위에서
浴殘飛倦鳥(욕잔비권조) : 목욕한 뒤 날기에 권태로운 새
耕罷臥閑牛(경파와한우) : 밭 갈고 한가로이 누워있는 소구나.
複嶺山中郭(복령산중곽) : 겹친 봉우리들은 산중의 성곽이요
奔舟水上郵(분주수상우) : 치닫는 배는 물 위의 역마로구나.
爲憐江上景(위련강상경) : 강위의 경치를 어여삐 여겨서
潛到荻洲濱(잠도적주빈) : 갈대밭 강가에 남몰래 나왔도다.
太守不汝詰(태수불여힐) : 태수는 당신을 꾸짖지 않으리니
漁翁好下緡(어옹호하민) : 고기잡는 늙은이여 낚시나 즐기시라.
◎ 이규보(李奎報)-소정희작(炤井戱作)-밝은 우물에서 작난삼아
不對靑銅久(부대청동구) : 거울 보지 않은지 오래되어
吾顔莫記誰(오안막기수) : 내 얼굴도 누구인지 수 없도다
偶來方炤井(우래방소정) : 우연히 우물에 비친 모습
似昔稍相知(사석초상지) : 전에 어디서 본 듯한 녀석이로다
◎ 이규보(李奎報)-미인원(美人怨)-미인의 원망
腸斷啼鶯春(장단제앵춘) : 꾀꼬리 우는 봄날 애간장 타는데
落花紅簇地(락화홍족지) : 꽃은 떨어져 온 땅을 붉게 덮었다
香衾曉枕孤(향금효침고) : 이불 속 새벽잠은 외롭기만 하여
玉臉雙流淚(옥검쌍류루) : 고운 뺨, 두 줄기 눈물 흐른다
郞信薄如雲(낭신박여운) : 임의 약속 야속하기 뜬구름 같아
妾情撓似水(첩정요사수) : 내 마음 일렁이는 강물 같아라
長日度與誰(장일도여수) : 긴긴 밤, 누구와 함께 지내며
皺却愁眉翠(추각수미취) : 수심겨워 찡그린 눈썹 펼 수 있을까
◎ 이규보(李奎報)-방각월사(訪覺月師)-각월 스님을 방문하여
步步行隨入谷雲(보보행수입곡운) : 걷고걸어 구름 따라 골짜기로 들어서니
自然幽洞辟紅塵(자연유동벽홍진) : 자연스런 깊숙한 골짝, 세정을 멀리했구나
已將蚊雀觀鍾釜(이장문작관종부) : 이미 봉록을 모기나 참새처럼 여기고
曾把螟蛉戲搢紳(증파명령희진신) : 일찍이 마디벌레나 잠자리 처럼 희롱했도다
俯仰歸來推幻化(부앙귀래추환화) : 굽어보고 올려보고는 돌아오는 것을 환화로 보고
死生得喪任天鈞(사생득상임천균) : 죽고 삶과 이해득실은 하늘에 맡겼도다
多師雪裏猶賖酒(다사설리유사주) : 고맙게도 선사가 눈 속에 술 사와
借與山中一日春(차여산중일일춘) : 산속의 하루 봄날을 빌려 주셨었구나
◎ 증문장노-(贈文長老)-이규보(李奎報)-문장로에게 주다
暫趨十二街中路(잠추십이가중로) : 잠깐 열두 거리 번화한 길 달려보니
長憶三千里外山(장억삼천리외산) : 길이 삼천 리 밖 적막한 산 생각나는구나
莫學閑雲空返岫(막학한운공반수) : 한가한 구름 부질없이 산굴로 드는 것 배우지 말고
好將膏雨澤人間(호장고우택인간) : 기름진 비 내려 인간에게 은택 베풀어 주시옵소서
◎ 이규보(李奎報)-서문장노월경선(書文長老月傾扇)-문장로의 월경선 부채에 쓰다
浮雲斜蹙手中橫(부운사축수중횡) : 뜬구름은 손바닥에 지스든리 비치고
金粉微含雪暈輕(금분미함설훈경) : 달빛은 은은히 엷은 눈빛 머금었도다
相得共工觸山後(상득공공촉산후) : 생각건대 공공이 산을 받아 무너뜨린 뒤
天低西北月輪傾(천저서북월륜경) : 하늘 서북쪽 무너져 기운 달인 것 같도다
◎ 이규보(李奎報)-차운문장노미개김전화(次韻文長老未開金錢花)-문 장로의 금전화가 피지 않았다는
시에 차운하여
早夏移根用意栽(조하이근용의재) : 초여름 옮겨 심은 뿌리, 마음 써서 가꾸었더니
尙含檀口待誰開(상함단구대수개) : 누가 오면 피려고 아직도 예쁜 입술 오므리고 있구나
千金欲買嬌顔笑(천금욕매교안소) : 천금으로 예쁜 얼굴 활짝 핀 웃음 사려하여
自負錢多不肯廻(자부전다불긍회) : 스스로 돈 많다고 자부하고 돌아보려 않는구나
◎ 이규보(李奎報) - 素琴(소금) : 거문고
天籟初無聲(천뢰초무성) : 자연은 처음부터 소리가 없어
散作萬竅鳴(산작만규명) : 흩어져 만 구멍의 소리를 낸다
孤桐本自靜(고동본자정) : 오동은 본래 고요하니
假物成摐琤(가물성창쟁) : 다른 힘을 빌어서 소리가 난다
我愛素琴上(아애소금상) : 줄 없는 거문고를 좋아하여
一曲流水淸(일곡유수청) : 맑은 물에 유수곡을 부르노라
不要知音聞(불요지음문) : 친구가 들어주지 원하지 않고
不忌俗耳聽(불기속이청) : 속물이 듣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
只爲寫我情(지위사아정) : 다만 내 정과 흥을 쏟기 위해
聊弄一再行(료롱일재행) : 애오라지 한두 줄을 희롱하노라
曲終又靜黙(곡종우정묵) : 곡조가 끝나면 고요히 침묵하고
夐與古意冥(형여고의명) : 아득히 옛뜻과 화합하노라
◎ 이규보(李奎報)-죽부인(竹夫人)
竹本丈夫比(죽본장부비) : 대는 본래 장부에 비유도니
亮非兒女隣(량비아녀린) : 참으로 아녀자의 이웃은 아니로다
胡爲作寢具(호위작침구) : 어찌하여 침구로 만들어
强各曰夫人(강각왈부인) : 억지로 부인이라 이름하는가
搘我肩股穩(지아견고온) : 어깨와 다리 걸치어 평온하게 하고
入我衾裯親(입아금주친) : 내 이불 속으로 친하게 들어와
雖無擧案眉(수무거안미) : 눈썹과 나란하게 밥상 드는 일은 못해도
幸作專房身(행작전방신) : 다행히 사랑을 독차지하는 몸은 되는구나
無脚奔相如(무각분상여) : 상여에게 달려가는 탁문군의 다리도 없고
無言諫伯倫(무언간백륜) : 백륜 유령에게 간하는 말도 없도다
靜然最宜我(정연최의아) : 고요한 것이 가장 내 마음에 드니
何必西施嚬(하필서시빈) : 어찌 반드시 아름다운 서시가 필요할까
◎ 이규보(李奎報) -소병(素屛) - 소박한 병풍
君看五侯家(군간오후가) : 그대가 보는 다섯 오후의 집
黃金柱北斗(황금주북두) : 황금기둥으로 북두를 떠받친다
牆壁煥丹靑(장벽환단청) : 담과 벽에는 단청이 두르고
土木衣錦繡(토목의금수) : 흙과 나무에는 비단 옷을 입히었다
坐張百寶屛(좌장백보병) : 앉는 데는 백보병풍을 쳤는데
仙鬼互馳驟(선귀호치취) : 신선과 귀신이 분주하게 달려간다
那憂氷谷寒(나우빙곡한) : 어찌 얼을계곡이 찬 것을 근심하여
只詑銅山富(지이동산부) : 다만 동산의 풍부함만 자랑한다
百年歸山丘(백년귀산구) : 백년 산 수에 산으로 돌아가
等是一丘土(등시일구토) : 똑같이 한 줌의 흙이 되노라
我有一素屛(아유일소병) : 나에게 하나의 소박한 병풍 있어
展作寢前友(전작침전우) : 침실 앞에 벌여 놓았도다
素月炤我容(소월소아용) : 흰 달이 내 얼굴 비추어
白雲落我首(백운락아수) : 흰 구름은 내 머리맡에 떨어졌다
翻思天地間(번사천지간) : 생각하면 하늘과 땅 사이에
此身亦假受(차신역가수) : 이 몸 또한 가탁하여 받은 것이다
求眞了無眞(구진료무진) : 진실을 구하여도 끝내 진실 없고
一物非我有(일물비아유) : 한 물건도 내 소유는 없는 것이다
◎ 이규보(李奎報)-문강남적기(聞江南賊起)-강남에서 도적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고
自聞群犬吠高聲(자문군견폐고성) : 스스로 뭇 개들 시끄럽게 짖는 소리 듣고
匣劍無端白日鳴(갑검무단백일명) : 이상하게도 갑 속의 칼이 한낮에 쩡쩡 운다
闕下牽來應有士(궐하견래응유사) : 놈들을 궐하에 끌어올 장사가 있을 것인데
官家何惜一長纓(관가하석일장영) : 관가에서 어찌 긴 끈 하나를 아끼는 것일까
◎ 이규보(李奎報)-중억오덕전(重憶吳德全)-오덕전을 다시 생각하며
不見吳季重(불견오계중) : 오계중을 못 본지
于今四五年(우금사오년) : 지금 벌써 사오 년이라네
欲飛身欠翼(욕비신흠익) : 날려 하나 날개가 없어
相憶眼成泉(상억안성천) : 생각하면 샘처럼 눈물 고이네
◎이규보(李奎報)-중구일(重九日)-중양절
去年尙州遇重九(거년상주우중구) : 지난해 상주에서 중구절을 지났는데
臥病沈綿未飮酒(와병침면미음주) : 병으로 오래 누워 술을 마시지 못했다
强携藜杖起尋僧(강휴려장기심승) : 억지로 지팡이 짚고 중을 찾아가
手撚寒香空自嗅(수연한향공자후) : 손수 향불 피워 스스로 향내를 맡았다
去年已去莫追悔(거년이거막추회) : 지나간 지난해를 뉘우친들 무엇하랴
却待今年作高會(각대금년작고회) : 올해는 좋은 모임 꼭 가지려 별렀건만
豈知今年又病手(기지금년우병수) : 뉘 알았으랴, 올해도 또 손병 나서
未趁好事時酒輩(미진호사시주배) : 좋은 시주 모임에 나아가지 못한다
亦復起飮嚼霜蘂(역복기음작상예) : 또다시 일어나 물 마시고 국화 씹으니
未能免俗聊爾耳(미능면속료이이) : 속됨을 못 면하고 그저 지낼 뿐이로다
山妻笑勸良足歡(산처소권량족환) : 아내 웃으며 권한 술도 정말 족히 기쁘니
何必登高爛慢醉(하필등고란만취) : 어찌 산에 올라 잔뜩 취해야만 하는가
書生命薄何足道(서생명박하족도) : 서생의 기박한 운명 어이 말하리오
佳節年年病中度(가절년년병중도) : 해마다 좋은 절기를 병중에 지나는구나
落日愁吟遶菊籬(락일수음요국리) : 석양에 울 두른 국화를 읊으며 소요하니
西風有信猶吹帽(서풍유신유취모) : 그래도 서풍은 신의 있어 모자에 불어온다
◎이규보(李奎報)-수병유작(手病有作)-손병이 나서 짓다
平生喜弄如椽筆(평생희농여연필) : 평생에 큰 붓을 휘두르기 좋아하여
嘲戲風月無停時(조희풍월무정시) : 풍월 희롱함을 그친 적이 없었도다
又將搪突造物兒(우장당돌조물아) : 또 장차 조물주에게 부치려 했더니
造物慧黠乃先知(조물혜힐내선지) : 조물이 약아서 미리 알았구나
故敎右手忽生瘡(고교우수홀생창) : 갑자기 오른손에 부스럼을 나게 하여
嚲手縮坐如凍鴟(타수축좌여동치) : 손 늘어뜨리고 쭈구린 몰골 언 올빼미 같다
捻毫潑墨俱艱澁(염호발묵구간삽) : 붓을 찍고 먹 가는 일이 모두 어렵나니
腹雖有藁何由施(복수유고하유시) : 뱃속의 글이 쌓여있어도 글을 어떻게 써낼까
乾坤不復困搜剔(건곤불복곤수척) : 건곤의 비밀도 다시 찾기 어렵지 않은데
神鬼方應肆詆欺(신귀방응사저기) : 귀신이 함부로 흉보고 속이는구나
糖蟹螯肥堪斫雪(당해오비감작설) : 달고 살진 게를 하얗게 쪼개놓으니
左手幸完猶可持(좌수행완유가지) : 다행히 왼손이 성하여 집을 수 있구나
被酒酣眠不覺痛(피주감면불각통) : 술에 취해 잠들면 아픈 줄 모르니
非灸非砭眞我醫(비구비폄진아의) : 참된 나의 의원은 쑥찜도 침도 아니로구나
◎ 이규보(李奎報)-주필사희선사혜미(走筆謝希禪師惠米)-희 선사가 쌀을 보내주어 붓을 달려 사례하다
嗟我落寒貧(차아락한빈) : 아, 가난 속에 빠져들어
渾家皆食粥(혼가개식죽) : 온 집안 모두가 죽을 먹는다
亮非餐霞人(양비찬하인) : 진실로 내가 신선이 아니거니
何由得辟穀(하유득벽곡) : 무슨 수로 벽곡을 할 수 있으리오
仁哉法師心(인재법사심) : 인자도다, 법사님의 마음이여
燐我無寸祿(린아무촌록) : 한 푼 봉록 없이 사는 나를 가엾게 여겨
惠然送白粲(혜연송백찬) : 은혜롭게도 하얀 쌀을 보내왔는가
粒粒眞輭玉(립립진연옥) : 알알이 참으로 부드러운 구슬이로다
何煩顔公帖(하번안공첩) : 안진경공의 첩을 어이 번거롭게 하랴
已貸監河粟(이대감하속) : 이미 감하의 곡식을 꾸어왔는 것을
扊扅方暮炊(염이방모취) : 사방에서 저녁밥 짓고 있는데
寒廚煙始綠(한주연시록) : 차가운 부엌에도 비로소 연기 나는구나
猶堪笑三閭(유감소삼려) : 오히려 삼려을 비웃음을 견디어
冷淡餐秋菊(냉담찬추국) : 쓸쓸히도 가을 국화 먹고 지냈으리라
◎ 이규보(李奎報)- 아삼백음주(兒三百飮酒)-아들 삼백이 술을 마시다
汝今乳齒已傾觴(여금유치이경상) : 네가 어린 나이에 벌써 술을 마신다니
心恐年來必腐腸(심공년래필부장) : 앞으로 창자가 썪을까 마음으로 두렵구나
莫學乃翁長醉倒(막학내옹장취도) : 아비의 늘 취하여 넘어지는 일 배우지 말라
一生人道太顚狂(일생인도태전광) : 한 평생 남들이 미치광이라 하는구나
一生誤身全是酒(일생오신전시주) : 한 평생 몸 망친 것이 오직 이놈의 술이니
汝今好飮又何哉(여금호음우하재) : 너조차 마시기 좋아하니 어찌하랴
命名三百吾方悔(명명삼백오방회) : 삼백이라 이름한 일, 나는 이제야 뉘우치니
恐爾日傾三百杯(공이일경삼백배) : 네가 날마다 삼백 잔씩 마실까 두려워 한다.
◎ 이규보(李奎報)-유천화사음다(遊天和寺飮茶)-천화사에서 놀며 차 한잔 하다
一筇穿破綠苔錢(일공천파록태전) : 한 지팡이 돈짝 같은 푸른 이끼 뚫어
驚起溪邊彩鴨眠(경기계변채압면) : 시냇가에서 조는 오리가 놀라 일어난다.
賴有點茶三昧手(뢰유점차삼매수) : 차 끓이는 오묘한 수법 힘
半甌雪液洗煩煎(반구설액세번전) : 눈 같은 진액 반 그릇으로 번민을 씻는다.
◎ 이규보(李奎報)-식증해(食蒸蟹)-찐 게를 먹으며
君不見(군불견) : 그대는 보지 않았는가
畢郞嗜飮無餘營(필랑기음무여영) : 필랑은 술마시기에 다른 생각 없고
但願持螯了一生(단원지오료일생) : 다만 게를 안주삼아 한생 보냄을 원한 것을
又不見(우불견) : 또 보지 않았는가
錢卿乞郡非他求(전경걸군비타구) : 전경이 고을살이 원함은 다른 게 아니라
唯思有蟹無監州(유사유해무감주) : 오직 게만 생각하고 고을 살피는 일은 하지 않은 것을
猩脣熊掌易爽口(성순웅장역상구) : 성순웅장도 입맛을 새롭게 하지만
只應此味尤宜酒(지응차미우의주) : 다만 게 맛이 술에 더욱 맞음이리로다
江童餉我蝤蛑肥(강동향아추모비) : 강마을 아이들 크고 살진 게를 보내왔는데
厴大臍團多是雌(염대제단다시자) : 큰 딱지 둥근 배가 모두 암컷이로구나
東海輸芒今已了(동해수망금이료) : 벼 까끄라기 동해신에게 이제 보냈으니
後脚差濶眞撥棹(후각차활진발도) : 뒷다리 차츰 넓어 노만큼 크졌도다
平生讀書辨蟧蟛(평생독서변로팽) : 평생에 글을 읽었기에 쓰르라미와 방게는 구별하니
定非司徒舊所烹(정비사도구소팽) : 옛날에 사도가 삶은 것 아니로다
烹來剖破硬紅甲(팽래부파경홍갑) : 삶아서 단단한 붉은 껍질 깨어서 보니
半殼黃膏雜靑汁(반각황고잡청즙) : 노란 자위와 푸른 즙이 반쯤 들었구나
草泥跳躑雖爾宜(초니도척수이의) : 진흙탕에 뛰다니기 너는 좋아하겠지만
猶被王倫餘怒移(유피왕윤여노이) : 오히려 왕윤의 분풀이를 받았었다
不如入我左手把(불여입아좌수파) : 차라리 나의 왼손에 들어 잡혀
日飮無何柳得佐(일음무하유득좌) : 날마다 마시는 술에 안주됨만 못하리라
詩人冷淡食無魚(시인냉담식무어) : 시인의 삶이 담박하여 고기 하나 없기에
爛蒸瓠壺客盧胡(란증호호객노호) : 조롱박 삶아 먹으면 손은 쓴웃음 짓는구나
瓠壺食盡又何續(호호식진우하속) : 조롱박도 다 먹었으니 또 무엇으로 이으리
更見靑盤堆苜蓿(경견청반퇴목숙) : 푸른 소반에 거여풀이 또한 보이지 않는가
硬鱗腐肉猶長饞(경린부육유장참) : 딱딱한 비늘 썩은 고기도 탐낸 지 오래거든
況此海産如糖甛(황차해산여당첨) : 하물며 바닷게 맛이 엿처럼 닮에랴
急呼赤脚撥新甕(급호적각발신옹) : 아이를 급히 불러 새 독을 헤쳐보니
玉蛆星沸香浮動(옥저성비향부동) : 하얀 구더기 솟아올라 향냄새 풍기었다
蟹卽金液糟蓬萊(해즉금액조봉래) : 게는 금액이고 술은 봉래주로다
何必服藥求仙哉(하필복약구선재) : 어이하여 반드시 약을 먹고 신선을 구하리오
◎ 이규보(李奎報)-촉직탄(促織歎)-베짱이의 탄식
去年園中桑葉沃(거년원중상엽옥) : 지난해에 정원에 뽕이파리 무성하여
神蠶作繭大於屋(신잠작견대어옥) : 누에마다 지은 고치 집보다 크었도다
織成五色雲錦羅(직성오색운금라) : 오색의 구름 비단 짜니
不待寒蟲苦相促(부대한충고상촉) : 베짱이의 재촉을 기다리지 않았더라
今年桑老枯且萎(금년상로고차위) : 올해는 뽕나무가 마르고 시들었으니
飢蠶僵臥未生絲(기잠강와미생사) : 주린 누에 모두 죽어 실을 내지 못한다
渾家拱手待天寒(혼가공수대천한) : 온 집안 팔짱 끼고 찬 겨울 기다리니
一聞促織先酸悲(일문촉직선산비) : 베짱이 소리 듣자 마음 먼저 슬프진다
千聲萬聲無一尺(천성만성무일척) : 수다스레 울어대도 짠 베 한 자도 없어
爾吟雖苦終何益(이음수고종하익) : 네 아무리 슬피 운들 무슨 도움 있을까
月叢露葉不耐寒(월총로엽불내한) : 달 아래 이슬 맞은 잎에 추위 못 견디어
入我床前空喞喞(입아상전공즐즐) : 책상머리에 들어 부질없이 우는구나
君不見(군불견)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促織之號何太忙(촉직지호하태망) : 베짱이의 울음소리 저렇게 바쁜 것을
箱無寸線機無聲(상무촌선기무성) : 상자에는 실오라기 없고 베짜는 소리도 없다
唯有病夫雙鬢髮(유유병부쌍빈발) : 다만 병든 이 사람의 두 귀밑머리
一聲促得一絲生(일성촉득일사생) : 한 소리 울 적마다 한 털이 희어진다
縈紆心緖亂莫斷(영우심서난막단) : 얽히어진 심사를 가눌 수 없는데
一夜織得愁萬段(일야직득수만단) : 한밤을 지새면서 온갖 시름 짜내는구나
蟲聲於予已不費(충성어여이불비) : 벌레 소리 나에게 아무 쓸데없으니
勸汝從今啼少緩(권여종금제소완) : 네에게 권하노니, 부디 이제부터 울음 그쳐다오
◎ 이규보(李奎報)-범주(泛舟)-배를 띄우며
江遠天低襯(강원천저친) : 강이 아득히 멀어 하늘은 낮게 붙은 듯
舟行岸趂移(주행안진이) : 배가 지나니 언덕이 따라 옮아가는구나
薄雲橫似素(박운횡사소) : 엷은 구름, 흰 비단처럼 비껴있고
疏雨散如絲(소우산여사) : 성긴 비는 실처럼 흥뿌리는구나
灘險水流疾(탄험수류질) : 여울이 험하니 물 흐름 빠르고
峰多山盡遲(봉다산진지) : 봉우리 많아 산이 오래도록 보이지 않는다
沈吟費翹首(침음비교수) : 흥얼기리며 자주 고개 뽑게 됨은
正是望鄕時(정시망향시) : 바로 고향이 바라보이는 때문이도다
◎ 이규보(李奎報)-사인혜선1(謝人惠扇1)-부채를 준 사람에게 감사하며
交情淡若水(교정담약수) : 사귄 정리가 물처럼 담담하고
團扇皎如霜(단선교여상) : 둥근 부채 서리처럼 깨끗하구나.
不夜月長滿(불야월장만) : 밤이 아니어도 달은 둥글고
先秋風自涼(선추풍자량) : 가을 전에도 바람 절로 서늘해진다.
◎ 이규보(李奎報)-사인혜선2(謝人惠扇2)-부채를 준 사람에게 감사하며
君心眞似氷(군심진사빙) : 그대의 마음 참으로 얼음 같아
相對洗煩鬱(상대세번울) : 보기만 해도 울적한 마음 삭는다.
更贈一襟秋(경증일금추) : 다시 마음속 가을까지 보태어
留爲雙手月(유위쌍수월) : 양손의 달을 만들어 주는구나.
◎ 이규보(李奎報)-탄협가(彈鋏歌)-칼을 두드리는 노래
食無魚食無魚(식무어식무어) : 식탁에 고기 없네, 식탁에 고기 없네
彈鋏哀歌聲激激(탄협애가성격격) : 칼 두드리며 부르는 애절히 부르는 절절도하다
秋菘秋蔌粗充膓(추숭추속조충장) : 가을 배추와 나물로 겨우 배나 채우니
多骨細鯈猶未得(다골세조유미득) : 가시 많은 송사리도 얻지 못했다네
深江豈無魴與鯉(심강기무방여리) : 깊은 강물에 어찌 방어와 잉어가 없으며
玉尺銀刀亂跳擲(옥척은도란도척) : 옥빛 자와 은빛 칼 같이 무수히도 뛰는구나
所嗟不必慕腥膾(소차불필모성회) : 슬프구나, 반드시 비린 음식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但恨無階參肉食(단한무계참육식) : 고기 먹는 귀한 사람들에 참여할 계제 없음이 한스럽다
食無魚緣木求(식무어연목구) : 식탁에 고기 없다고 산에서 구할까
嗟哉嗟哉釣又直(차재차재조우직) : 슬프고 슬프구나, 낚시 바늘마저 곧다니
彈劍之歌且可停(탄검지가차가정) : 칼 두드리는 노래는 이제 그만 둘지니
世無孟嘗誰復識(세무맹상수복식) : 맹상군 없는 세상 그 누가 알아주리오.
◎ 이규보(李奎報)-영춘설득이절2(詠春雪得二絶2)-봄눈을 읊다
梅發遲遲已罪春(매발지지이죄춘) : 늦게 핀 매화, 봄이 원망스러워
喜渠先放玉花新(희거선방옥화신) : 먼저 피워준, 옥 같은 꽃 반가워
梅花開後方交代(매화개후방교대) : 매화 핀 뒤, 이제 교대하려니
莫遣園英有曠辰(막견원영유광신) : 동산의 꽃, 밝은 날엔 피지 않게 하라
◎ 이규보(李奎報)-칠월칠일우(七月七日雨)-칠월칠석 내리는 비
銀河杳杳碧霞外(은하묘묘벽하외) : 은하수 아득한 저 노을 밖
天上神仙今夕會(천상신선금석회) : 천상의 신선들 오늘 저녁 모인다
龍梭聲斷夜機空(용사성단야기공) : 북 소리 끊기고 밤 베틀은 비워
烏鵲橋邊促仙馭(오작교변촉선어) : 오작교가로 신선들 행차를 재촉한다
相逢才說別離苦(상봉재설별리고) : 서로 만나 이별의 괴로움도 못나누고
還道明朝又難駐(환도명조우난주) : 내일 아침이면 또 함께 머물기 어려워라
雙行玉淚洒如泉(쌍행옥루쇄여천) : 두 줄기 눈물은 샘처럼 흘러내리고
一陣金風吹作雨(일진금풍취작우) : 한바탕 서풍이 비를 불어 오는구나
廣寒仙女練帨涼(광한선여련세량) : 광한궁 선녀 명주 수건 차갑고
獨宿婆娑桂影傍(독숙파사계영방) : 계수나무 그림자 옆에 홀로 잠들었다
妬他靈匹一宵歡(투타영필일소환) : 저 신선 남녀 하룻밤 즐거움에 시샘나
深閉蟾宮不放光(심폐섬궁불방광) : 월궁을 굳게 닫고 빛을 비추지 않는다
龍下濕滑難騎(용하습골난기) : 적룡은 미끄러워 올라타기 어렵고
鳥低霑凝不飛(조저점응불비) : 청조는 날개 젖어 얼려 날아갈 수 없구나
天方向曉汔可霽(천방향효흘가제) : 곧 먼동이 틀 새벽이라 그만 개야 하나
恐染天孫雲錦衣(공염천손운금의) : 천손의 깨끗한 옷을 더럽힐까 걱정된다
◎ 이규보(李奎報)-절화행(折花行)-꽃을 꺾으며
牡丹含露眞珠顆(모란함로진주과) : 모란꽃 이슬 머금어 진주알 같아
美人折得窓前過(미인절득창전과) : 미인이 꺾어서 창 앞을 지나가다
含笑問檀郞(함소문단랑) : 웃음을 머금고 신랑에게 묻기를,
花强妾貌强(화강첩모강) : “꽃이 더 예뻔가요, 제가 더 예뻔가요”하니
檀郞故相戱(단랑고상희) : 신랑은 일부러 놀리면서
强道花枝好(강도화지호) : 꽃이 더 좋다고 억지로 말하니
美人妬花勝(미인투화승) : 미인은 꽃이 더 낫다는 말 질투하여
踏破花枝道(답파화지도) : 꽃가지 밟아 버리고 말하기를,
花若勝於妾(화약승어첩) : “꽃이 저보다 더 좋으면
今宵花同宿(금소화동숙) : 오늘밤은 꽃하고 같이 주무시지요”라 하였답니다
◎ 이규보(李奎報)-희우(喜雨)-반가운 비
人皆新有田(인개신유전) : 사람마다 새밭을 마련하니
得雨抃不止(득우변불지) : 비 오자 손뼉 쳐고 또 친다
我無一畝地(아무일무지) : 나는 한 이랑 땅도 없지만
爲國誠自喜(위국성자희) : 나라 위해 참으로 기뻐하였다
國廩如有餘(국름여유여) : 나라의 곳간이 넉넉해야지
吾食何時匱(오식하시궤) : 내 먹을 것이야 언젠들 없을까
願天賜澤周(원천사택주) : 하늘은 혜택을 두루 내리시되
先自公田始(선자공전시) : 공전부터 먼저 시작하셨으면
◎ 이규보(李奎報)-영춘설득이절1(詠春雪得二絶1)-봄눈을 읊다
似怯陽和落細微(사겁양화락세미) : 두려운 듯 따사한 햇볕에 조용히 내리고
我言何必怯春爲(아언하필겁춘위) : 내 말은 굳이 봄을 겁낼 필요야 없다는 뜻
春光尙早花開晩(춘광상조화개만) : 봄볕은 아직 일러서, 꽃 피기 늦었는데
未害將花補此時(미해장화보차시) : 꽃 피워 이 때를 메워도 해롭진 않으리라
◎ 이규보(李奎報)-설중방우인불우(雪中訪友人不遇)-눈 속에 친구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고
雪色白於紙(설색백어지) : 눈빛이 종이보다 희어서
擧鞭書姓字(거편서성자) : 채찍을 들고 성명을 적어두었다
莫敎風掃地(막교풍소지) : 바람이여 눈을 쓸지 말고
好待主人至(호대주인지) :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다오
◎ 이규보(李奎報)-영측중계관화(詠厠中鷄冠花)-측간 계간화를 읊다
鷄已化花艶(계이화화염) : 닭이 변한 요염한 꽃
云何在溷中(운하재혼중) : 어이하여 더러운 것 속에 있나
尙餘前習在(상여전습재) : 여전히 남은 전날의 습관
有意啄蛆蟲(유의탁저충) : 구더기 쪼아먹을 생각 있구나
◎ 이규보(李奎報)-만망(晩望)-저녁에 바라보며
李杜嘲啾後(이두조추후) : 이배과 두보 읊고 간 뒤로
乾坤寂寞中(건곤적막중) : 천지가 온통 적막하 속에 빠졌다
江山自閑暇(강산자한가) : 강산은 절로 한가로운데
片月掛長空(편월괘장공) : 조각 달만이 긴 하늘에 걸렸구나
◎ 이규보(李奎報)-강상우음(江上偶吟)-강가에서 우연히 읊다
滾滾長江流向東(곤곤장강류향동) : 쉼 없는 긴 강은 동으로 흘러흘러
古今來往亦何窮(고금래왕역하궁) : 고금을 오고가니 어느새 다하리오
商船截破寒濤碧(상선절파한도벽) : 상선은 차고 푸른 물결 가르며 지나
漁笛吹殘落照紅(어적취잔락조홍) : 고기잡이 피리소리 울리는데 석양이 진다
鷺格斗高菰岸上(로격두고고안상) : 줄풀 핀 언덕에 해오라기 높이 날아
雁謀都寄稻畦中(안모도기도휴중) : 벼 익은 논두렁엔 기러기 모여 깃들려 한다
嚴陵舊迹無人繼(엄릉구적무인계) : 엄자릉의 옛 자취 잇는 사람 하나 없어
終抱煙波作釣翁(종포연파작조옹) : 끝내는 강호의 안개 속에서 어부가 되고 싶다
◎이규보(李奎報)-영동(詠桐)-오동나무를 읊다
漠漠陰成幄(막막음성악) : 넓은 그늘 장막을 이룬 듯
飄飄葉散圭(표표엽산규) : 날리는 잎새 홀처럼 흩어진다
本因高鳳植(본인고봉식) : 봉황새 보려고 심었는데
空有衆禽棲(공유중금서) : 공연히 뭇 새만 깃드는구나
◎ 이규보(李奎報)-견포우음(犬浦偶吟)-견포에서 우연히 읊다
無端馬上換星霜(무단마상환성상) : 부질없이 말 위에서 또 한 해가 바뀌고
望闕思家倍感傷(망궐사가배감상) : 대궐을 바라보니 집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紅日落時天杳杳(홍일락시천묘묘) : 붉은 해 떨어지니 하늘은 어둑어둑
白雲缺處水蒼蒼(백운결처수창창) : 흰 구름 뚫린 곳에 물빛이 창창하다
雨晴草色連空綠(우청초색련공록) : 비개니 풀빛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風暖梅花度嶺香(풍난매화도령향) : 바람 따스하니 매화꽃 재 넘어 향기 풍겨온다.
薄宦江涯良悒悒(박환강애량읍읍) : 강 뚝 길 걷는 관리 마음은 울적한데
春光何況攪離腸(춘광하황교리장) : 봄빛은 어이하여 나그네 마음 휘졌는가.
◎ 이규보(李奎報)-희제법사진(戱題法師津)-법사진에서 재미로 짓다
淵源未靜多渾濁(연원미정다혼탁) : 연원 깨끗지 못해 흐린 물 많은데
風浪頻興似怒瞋(풍랑빈흥사노진) : 풍랑이 자주 일어 화난 듯하여라.
畢竟難看心湛處(필경난간심담처) : 필경 물 맑은 곳 보기도 어렵거늘
何人呼作法師津(하인호작법사진) : 누가 이름 지어 법사진이라 했는가.
◎ 이규보(李奎報)-삼월우도보안현강상과목(三月又到保安縣江上課木)-삼월에 보안현 강가에 이르러
벌목을 과하다
一春三過此江頭(일춘삼과차강두) : 봄 한철에 세 번이나 이 강가를 지나니
王事何曾怨未休(왕사하증원미휴) : 국가의 일인데 어찌 쉴 틈 없다 원망하리오.
萬里壯濤奔白馬(만리장도분백마) : 만 리 거센 파도 백마가 달리는 듯 하고
千年古木臥蒼虯(천년고목와창규) : 천년 묵은 늙은 나무 창룡이 누운 듯 하구나.
海風吹落蠻村笛(해풍취락만촌적) : 바닷바람은 어촌의 피리소리 불어 보내고
沙月來迎浦客舟(사월래영포객주) : 모랫벌 달빛은 포구의 나그네 배를 맞아주는구나.
擁去騶童應怪我(옹거추동응괴아) : 뒤따르는 마부 아이들 아마도 나를 이상하게 여기어
每逢佳景立遲留(매봉가경립지류) : 좋은 경치 만날 적마다 멈춰 서서 머뭇거리리라.
◎ 이규보(李奎報)-재입림피군(再入臨陂郡)-다시 임피군으로 가며
古縣依然接水湄(고현의연접수미) : 옛 고을은 여전히 물가에 접했는데
前驅紅旆拂林歸(전구홍패불림귀) : 앞서 가는 붉은 깃발 숲을 스치며 돌아간다.
往來雌有鶯相識(왕래자유앵상식) : 가는 길 오는 길에 꾀꼬리만이 아는 듯
衰病那堪馬似飛(쇠병나감마사비) : 늙고 병들었으니 어찌 나는 듯 빠른 말을 견디랴
客舍新除垂柳路(객사신제수류로) : 객사엔 버들 드리운 길 새로 닦았고
人家半掩映花扉(인가반엄영화비) : 인가엔 꽃 빛 어린 사립문이 반쯤 닫혔구나.
參軍孤瘦難堪見(참군고수난감견) : 의롭고 여윈 참군인 나 보기가 난감할 텐데
士女可須聚作圍(사녀가수취작위) : 양반집 아녀자들 하필 떼 지어 둘러섰는가.
◎ 이규보(李奎報)-만경현노상(萬頃縣路上)-만경현 노상에서
長川界斷橫來燒(장천계단횡래소) : 긴 냇물 경계 넘어 타오르는 들불 가로막고
深谷留號怒暢風(심곡류호노창풍) : 성난 바람 안고 깊은 골짜기에 으르렁거린다.
嵐瘴熏人辦何事(람장훈인판하사) : 바다 나쁜 기운 사람을 찌니 무슨 일인들 하겠는가
無端釀作老蒼翁(무단양작로창옹) : 까닭 없이 들볶아서 늙은이 다 만들었구나.
◎ 이규보(李奎報)-제포구소촌(題浦口小村)-포구의 작은 마을에서
流水聲中朝復暮(류수성중조부모) : 아침에도 저녁에도 흐르는 물소리
海村籬落苦蕭條(해촌리락고소조) : 어촌의 여기저기 흩어진 인가가 쓸쓸하구나.
湖淸巧印當心月(호청교인당심월) : 맑은 호수엔 묘하게 달이 찍혀 있고
浦濶貪呑入口潮(포활탐탄입구조) : 넓은 포구는 한껏 밀물을 들이키는구나.
古石浪舂平作礪(고석랑용평작려) : 오래된 돌들은 물결에 닳아 숫돌처럼 평평하고
壞船苔沒臥成橋(괴선태몰와성교) : 부서진 배 이끼에 덮여 다리처럼 누워있구나
江山萬景吟難狀(강산만경음난상) : 강산의 온갖 경치 읊어내기도 어려워
須倩丹靑畫筆描(수천단청화필묘) : 화가 청하여 붓으로 그려야 묘사할 수 있겠구나
◎ 이규보(李奎報)-차이시랑수부화울회시(次李侍郞需復和鬱懷詩)-시랑 이수가 다시 화답해 온
“울회시”를 차운하다
身老病得攻(신로병득공) : 몸은 늙었는데 병까지 드니
不奈胸沈鬱(불내흉심울) : 내 가슴이 답답하니 어찌하랴
時時頗自慰(시시파자위) : 항상 조금씩 스스로 위로는
唯是杯中物(유시배중물) : 오직 이 술 한 가지뿐이도다
尙未足豁然(상미족활연) : 아직 마음에 시원하지 못하나니
只此手端一筆奔騰天地如驥逸(지차수단일필분등천지여기일) : 오직 손안의 한 자루 붓이 달리는 기마처럼 천지를 휩쓸어 달리는 것이로다.
因睹子之詩(인도자지시) : 이에 그대 보낸 시구를 살펴보니
穿天又出月(천천우출월) : 하늘을 뚫고 달은 또 떠오르는구나.
起予者迺君(기여자내군) : 나를 흥기시킨 자 곧 그대이니
捨君誰復噵我平生一一皆具實(사군수복도아평생일일개구실) : 그대가 아니면 누가 다시 내 평생을 인도하여 일일이 진실할 수 있을까
翁雖縮凍龜(옹수축동구) : 이 늙은이 마치 추위에 움츠린 거북 같으나
中有所難屈(중유소난굴) : 속에는 꺾지 못할 바가 있도다.
◎ 이규보(李奎報)-즉사(卽事)
靜戶風開幔(정호풍개만) : 고요한 문에 바람불어 장막이 열리고
乾坤寂寞中(건곤적막중) : 천지는 적막 속에 있도다
屋烏啼孝子(옥오제효자) : 지붕의 까마귀는 효자처럼 울어대고
簷鷰舞佳人(첨연무가인) : 처마 끝의 제비는 미인처럼 춤추는구나
◎ 이규보(李奎報)-연지시(硯池詩)-연지를 노래하다
或問凡河池(혹문범하지) : 어떤 이가 묻기를, 하천과 연못
有水從地出(유수종지출) : 물이 땅에서 솟아나게 되어있거늘
云何此硯池(운하차연지) : 어찌 이것을 연지라고 말 하는가
霑滴始盈溢(점적시영일) : 물방울을 위에서 부어야 차게 되는데
呼之以爲池(호지이위지) : 이것을 못이라 하는 것은
其意似未必(기의사미필) : 그 의미가 온당치 못한 것 같다하니
我答子之言(아답자지언) : 내 이제 그대의 말에 답하노니
於理無奈悖(어리무내패) : 어찌 이치에 어긋난다 하는가.
此池非常池(차지비상지) : 이 연지란 보통 못이 아니어서
凡目耶未察(범목야미찰) : 범안으론 살피지 못하는 것이라.
雖云區區窪(수운구구와) : 비록 작게 파인 웅덩이지만
磨出詞放逸(마출사방일) : 갈아서 유창한 문장을 만들어 낸다.
一磨所自出(일마소자출) : 한 번을 갈아서 나오는 것은
花柳與風月(화유여풍월) : 꽃과 버들에다 풍월이요.
千磨及百磨(천마급백마) : 백번을 갈고 또 백번을 갈면
潤色皇謨密(윤색황모밀) : 임금의 지혜도 자세히 드러낸다.
陶鑄幾詩人(도주기시인) : 시인은 얼마나 만들어 냈으며
沐浴幾萬筆(목욕기만필) : 붓은 몇 만 개나 씻어 주었는가.
大或包天地(대혹포천지) : 크기로는 천지도 포괄할 수 있고
深可呑溟渤(심가탄명발) : 깊기로는 큰 바다도 삼킬 수 있다
硯池復硯池(연지복연지) : 연지여, 연지여
萬古元不渴(만고원불갈) : 영원히 결코 마르지 않으리라
地湧與水滴(지용여수적) : 땅에서 솟거나 물방울로 떨어지거나
其終混歸一(기종혼귀일) : 끝내는 모두가 하나로 돌아간다.
◎ 이규보(李奎報)-기오덕전(寄吳德全)-오덕전에게
海山東去路悠悠(해산동거로유유) : 동녘으로 가는 바닷길 산길은 멀고도 먼데
一落天涯故倦遊(일락천애고권유) : 먼 하늘 끝, 한 번 가니 지치도록 다니신다.
黃稻日肥鷄鶩喜(황도일비계목희) : 누른 벼는 날로 살찌니 닭과 오리도 좋지만
碧梧秋老鳳凰愁(벽오추로봉황수) : 푸른 오동은 가을에 시드니 봉황새도 시름한다.
煙波不返遊吳棹(연파불반유오도) : 안개 자욱한 물결에 오에 놀던 돛대 돌아오지 않아
雪月期浮訪剡舟(설월기부방섬주) : 눈 오는 달밤, 섬을 찾는 배를 띄우노라.
聖代未應終見棄(성대미응종견기) : 지금의 태평성대에 끝내 버려지지는 않으리니
莫辭垂白釣淸流(막사수백조청류) : 흰 머리 드리워도 동안 맑은 강에 낚시질 사양 말아요.
◎ 이규보(李奎報)-유가군별업서교초당2(遊家君別業西郊草堂2)-아버지의 별장 서교초당에서
日高醉未起(일고취미기) : 해가 높이 뜨도록 취하여 일어나지 못하는데
簷燕欺人飛(첨연기인비) : 추녀 끝의 제비는 사람 속이고 날아가는구나
童僕方巾車(동복방건차) : 아이 종은 작은 수레 대어 놓고
苦促南畝歸(고촉남무귀) : 억지로 남쪽 이랑 가자고 재촉하는구나
起坐罷梳沐(기좌파소목) : 일어나 앉아 세수하고 빗질하기를 마치고
長嘯出松扉(장소출송비) : 길게 휘파람 불며 소나무 사립문 나서는구나
林深日未炤(림심일미소) : 숲이 깊으매 해는 아직 비추지 않아
草露猶未晞(초로유미희) : 풀 끝의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않았구나
徐行望淸甽(서행망청견) : 천천히 걸으며 맑은 들을 바라보니
決渠雨靃霏(결거우확비) : 개울물 터졌는데 비는 보슬보슬 내리는구나
田婦白葛裙(전부백갈군) : 농가의 아낙은 흰 갈포치마 입고
田夫綠麻衣(전부록마의) : 농부는 푸른 삼옷 입었구나
相携唱田壟(상휴창전롱) : 서로 손으로 끌며 밭두덕에서 부르니
荷鋤如雲圍(하서여운위) : 호미 메고 구름처럼 모였드는구나
勉哉趁菖杏(면재진창행) : 부지런하도다, 힘써 창포와 살구 찾아
耕穫且莫違(경확차막위) : 철따라 갈고 거두기에 때를 어기지말아라
◎ 이규보(李奎報)-절화행(折花行)-꽃을 꺾는 노래
牡丹含露眞珠顆(모란함로진주과) : 모란꽃 이슬 머금어 진주 알 같은데
美人折得窓前過(미인절득창전과) : 미인이 모란꽃 꺾어 창앞을 지나간다
含笑問檀郞(함소문단랑) : 웃음을 머금고 박달나무 신랑에게 물었다
花强妾貌强(화강첩모강) : 꽃이 더 예쁘요, 제가 더 예쁘요
檀郞故相戱(단랑고상희) : 신랑이 일부러 장난치면서
强道花枝好(강도화지호) : 꽃가지가 더 예쁘다고 말하는구나
美人妬花勝(미인투화승) : 신부는 꽃이 더 낫다는 데 시기하여
踏破花枝道(답파화지도) : 꽃 가지를 밟아 짓뭉개고 말했다
花若勝於妾(화약승어첩) : 꽃이 저보다 예쁘다면
今宵花同宿(금소화동숙) : 오늘 밤은 꽃과 같이 주무시지요라고 하였다
◎ 이규보(李奎報)-유가군별업서교초당1(遊家君別業西郊草堂1)-아버지의 별장 서교초당에서
春風扇淑氣(춘풍선숙기) : 봄 바람은 맑은 기운 부채질하고
朝日清且美(조일청차미) : 아침 해는 맑고도 아름답구나
駕言往西郊(가언왕서교) : 말 타고 서쪽 들로 가나니
塍壟錯如綺(승롱착여기) : 밭두덩이 얼기설기 하구나
土旣膏且腴(토기고차유) : 흙이 이미 기름지고 비옥하니
況復釃潭水(황부시담수) : 하물며 다시 못물을 대리오
歲收畝千鍾(세수무천종) : 한 해 추수가 천종은 되리니
足可釀醇旨(족가양순지) : 맑고 맛난 술도 빚으리라
何以度年華(하이도년화) : 무엇으로써 세월을 보낼까
日日花前醉(일일화전취) : 날마다 꽃 앞에서 취하리로다
念此任胝手(념차임지수) : 이것을 생각하며 손에 못 박히도록
意欲親耘耔(의욕친운자) : 부지런히 내가 직접 갈고 김을 매리라
乘興自忘返(승흥자망반) : 흥겨워 돌아가기 잊었나니
岸幘聊徙倚(안책료사의) : 관 재껴쓰고 애오라지 머뭇거리는구나
遠岫煙蒼茫(원수연창망) : 먼 멧뿌리에는 안개기운 창망한데
曜靈迫濛氾(요령박몽범) : 해는 져서 어둠이 다가오는구나
月明返田廬(월명반전려) : 달이 밝아 시골집으로 돌아니
醉歌動隣里(취가동린리) : 취해 부르는 노래 이웃 마을 흔드는구나
快哉農家樂(쾌재농가악) : 유쾌하구나, 농가의 즐거움이여
歸田從此始(귀전종차시) : 지금부터는 농촌으로 돌아가 시작하리라
◎ 이규보(李奎報)-過洛東江上疏(과낙동강상소)-낙동강을 지나며 상소를 올림
百轉靑山裏(백전청산리) : 몇 백번을 청산 속을 돌았던가
閑行過洛東(한행과낙동) : 한가히 낙동강을 지나간다.
草深猶有露(초심유유로) : 풀이 깊어 이슬 맺히고
松靜自無風(송정자무풍) : 바람은 먿고 소나무는 고요하다
秋水鴨頭江(추수압두강) : 가을 강물은 오리 머리처럼 파랗고
曉露猩血紅(효로성혈홍) : 새벽 이슬 비린 피처럼 붉어라
誰知倦遊客(수지권유객) : 그 누가 알리, 나그네는 게으른
四海一詩翁(사해일시옹) : 세상을 떠도는 시짓는 늙은인 것을
◎ 이규보(李奎報)-조명풍(釣名諷)-명예를 낚으려는 이를 풍자하다
釣魚利其肉(조어리기육) : 고기 낚는 것은 고깃살을 얻지마는
釣名何所利(조명하소리) : 이름은 낚아 무슨 이익되는가
名乃實之賓(명내실지빈) : 이름이란 곧 실상의 손님이니
有主賓自至(유주빈자지) : 주인인 실상이 있으면 손님은 스스로 온다
無實享虛名(무실향허명) : 실상이 없이 헛된 이름만 누리면
適爲身所累(적위신소루) : 마침내 몸에 얽힘이 되리라
龍伯釣六鼇(룡백조륙오) : 용백은 여섯 마리 큰 자라 낚았으니
此釣眞壯矣(차조진장의) : 이 낚기는 정말로 장한 것이도다
太公釣文王(태공조문왕) : 태공이 문왕을 낚음에
其釣本無餌(기조본무이) : 그 낚시에는 본래 미끼가 없었도다
釣名異於此(조명이어차) : 그러나 이름 낚시는 이것과 달라서
僥倖一時耳(요행일시이) : 한때의 요행 뿐이로다
有如無鹽女(유여무염녀) : 마치 추한 여자가 분 발라
塗飾暫容媚(도식잠용미) : 꾸며서 잠깐 얼굴 이쁜 것 뿐이도다
粉落露其眞(분락로기진) : 분이 지워지면 그 참 모양이 드러나
見者嘔而避(견자구이피) : 보는 사람이 구역딯하고 피해다님과 같도다
釣名作賢人(조명작현인) : 이름을 낚아 어진 사람 된다면
何代無顔子(하대무안자) : 어느 시대인들 안회와 같은 선비 없으리오
釣名作循吏(조명작순리) : 이름을 낚아 착한 관원 된다면
何邑非龔遂(하읍비공수) : 어느 고을에 있더라도 공수같은 신하 아니겠는가
鄙哉公孫弘(비재공손홍) : 야비하구나, 저 공손홍은
爲相乃布被(위상내포피) : 정승이 되어 베이블을 덮었도다
小矣武昌守(소의무창수) : 작기도 하구나, 무창태수는
投錢飮井水(투전음정수) : 돈을 주고서 우물 물을 마셨도다
淸畏人之知(청외인지지) : 청백하면서 남이 아는 것을 두려워 했으니
楊震眞君子(양진진군자) : 양진은 진실로 참 군자였도다
吾作釣名篇(오작조명편) : 내 여기 조명편을 지어서
以諷好名士(이풍호명사) : 이름 낚시 놓아한 선비를 풍자하노라
◎ 이규보(李奎報)-절구두운(絶句杜韻)-두보의 운을 딴 절구시
曲塢花迷眼(곡오화미안) : 완만한 언덕에 꽃들이 눈을 어지럽히고
深園草沒腰(심원초몰요) : 깊은 동산, 우거진 풀이 허리를 뭍는구나
霞殘餘綺散(하잔여기산) : 남겨진 저녁놀은 흩어진 비단 자락 같고
雨急亂珠跳(우급난주도) : 세차게 내린 비, 어지러운 구슬이 튀는구나
◎ 이규보(李奎報)-변산노상(邊山路上)-변산의 길 위에서
旌旗光客路(정기광객로) : 깃발은 나그네 길을 빛내고
鼓角壯人心(고각장인심) : 북과 피리는 마음을 장엄하게 한다
野鼠跳藏竹(야서도장죽) : 들쥐는 대숲에 뛰어들어 숨고
驚麕走覓林(경균주멱림) : 놀란 노루는 달아나 숲을 찾는다
◎ 이규보(李奎報)-기망(旣望)-보름지난 뒤
李杜啁啾後(이두조추후) : 이백과 두보가 시 읊은 뒤로는
乾坤寂寞中(건곤적막중) : 천하가 적막한 중에 있었도다
江山自閑暇(강산자한가) : 강산은 저절로 한가한데
片月掛長空(편월괘장공) : 조각달만 높은 하늘에 걸려있도다
◎ 이규보(李奎報)-석죽화(石竹花)
節肖此君高(절초차군고) : 절조는 대나무처럼 고고한데
花開兒女艶(화개아여염) : 꽃이 피면 아녀들처럼 곱기도 하다
飄零不耐秋(표령불내추) : 가을을 못이겨 떨어져 버리니
爲竹能無濫(위죽능무남) : 석죽이란 이름 분수에 넘치는구나
◎ 이규보(李奎報)-江上曉雨(강상효우)-강 위의 새벽비
江岸人歸白鷺飛(강안인귀백로비) : 강언덕에 사람은 돌아가고 갈매기 날고
漁翁日暮得魚歸(어옹일모득어귀) : 해 저물어 어부들도 돌아가는구나
輕雲薄薄那成雨(경운박박나성우) : 구름은 엷어서 비 내리기 어렵고
海氣于天偶作霖(해기우천우작림) : 바다 기운 하늘로 솟아 비가 되어 뜰어진다
◎ 이규보(李奎報)-晩望(만망)-저녁에 바라보다
李杜啁啾後(이두조추후) : 이백과 두보가 시를 읊은 뒤로는
乾坤寂寞中(건곤적막중) : 세상은 시인 적막하네
江山自閑暇(강산자한가) : 강산 저절로 한가하고
片月相長空(편월상장공) : 조각달은 공중에 불거지네.
◎ 이규보(李奎報)-家有衆鷄(가유중계)-집에는 닭도 많아
朱朱公(주주공) : 주주공
好啄蟲(호탁충) : 벌레 쪼기를 좋아하나
予不忍視(여불인시) : 나는 차마 볼 수가 없네
斥勿使邇(척물사이) : 가까이 오지 못하게 쫓으니
汝莫怨我爲(여막원아위) : 너는 나를 원망하지 말라
好生本所欺(호생본소기) : 삶을 좋아함은 본래 기약한 것
我今退老疎散(아금퇴로소산) : 나는 이제 늙어 물러 가노니
不卜朝天早晏(불복조천조안) : 아침 하늘이 밝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豈要聞渠報曙聲(기요문거보서성) : 어찌 새벽 알리는 소리가 필요 있으리오
貪眠尙欲避窓明(탐면상욕피창명) : 잠을 탐하여 도리어 창 밝기를 피해야 하리라.
◎ 이규보(李奎報)-又用東度坡詩韻贈之(우용동도파시운증지)-동파의 시운을 쓰서 지어주다
鮎魚緣竹一何遲(점어연죽일하지) : 메기가 대나무에 오름이 어찌 이리 더딘가
慙愧頭銜似昔時(참괴두함사석시) : 부끄러워라, 벼슬길은 옛날과 다름없네.
只爲別來長飽戀(지위별래장포련) : 다만 이별한 뒤로 너무 오래 그리워
故應相見更多姿(고응상견경다자) : 만나보니 모양이 많이 변했습니다.
詩敎雪暈微侵鬢(시교설훈미침빈) : 시 걱정에 머리털이 조금 희었는데
酒放春紅半蘸肌(주방춘홍반잠기) : 술기운에 얼굴이 불그레해지네.
我亦參禪老居士(아역참선로거사) : 나 또한 참선하는 늙은 거사라
祖師林下舊橫枝(조사림하구횡지) : 옛날조사님들 아래의 아래의 곁가지는 되겠지.
◎ 이규보(李奎報)-又贈金君(우증김군)-또 김군에게 주다
珍重金君愛客心(진중금군애객심) : 귀하고도 소중한 김군의 손님 좋아하는 마음씨
見來長共酒杯深(견래장공주배심) : 오기만 하면 끝까지 술이 나오네.
霜秋少睡先鷄起(상추소수선계기) : 서리 내린 가을밤엔 잠이 적어 닭 울기 전에 일어나
露曉多情伴鶴吟(로효다정반학음) : 이슬 내린 새벽에는 다정하여 학을 친구로 읊조리네.
俊拔子應三耳湧(준발자응삼이용) : 뛰어난 자네는 응당 귀가 셋일 것이요
衰遲我已二毛侵(쇠지아이이모침) : 늙고 무디어가는 나는 벌써 흰털이 생기네.
相逢話舊翻悽悵(상봉화구번처창) : 서로 만나 옛 이야기하니 쓸쓸한 생각이 나
挑盡靑燈淚濕襟(도진청등루습금) : 등잔불을 돋우니 눈물로 옷깃을 적시네.
◎ 이규보(李奎報)-題通師古笛(제통사고적)-통사의 고적에 제하다
靑山挿天玉一朶(청산삽천옥일타) : 청산에 하늘의 옥 한 떨기를 꽂아 놓은 듯
曉湘二公曾燕坐(효상이공증연좌) : 원효와 의상 대사가 여기서 놀았네.
當時說法動人天(당시설법동인천) : 당시의 설법은 사람과 하늘을 감동시켜
應有仙樂飄空下(응유선악표공하) : 아마도 선인의 음악이 공중에 퍼졌을 것일세.
笙簫忽散返玉樓(생소홀산반옥루) : 생황과 피리는 홀연히 흩어져 옥루로 돌아갔는데
偶遺寶笛誤不收(우유보적오불수) : 우연히 보배로운 피리는 잘못하여 남겨 놓고 갔네.
千年鬼護祕扃鑰(천년귀호비경약) : 천년 동안 귀신이 보호해 자물쇠를 채워
神物自隱人難搜(신물자은인난수) : 신성한 물건이 스스로 숨어 사람이 찾아내기 어려워
吾師眼聖獨見之(오사안성독견지) : 우리 대사님 성스러운 눈이 처음 발견하고
信手摩挲心自寄(신수마사심자기) : 손 가는대로 어루만지며 마음으로 전하셨네.
靈珍本爲異人出(령진본위이인출) : 신령스러운 보배는 본래 특별한 사람 위해 나오는 법
古器那宜今世知(고기나의금세지) : 옛날 악기를 어찌 지금 사람이 알아볼까.
外費天巧非人鐫(외비천교비인전) : 밖에 하늘 솜씨로 새겨진 모양은 사람의 새긴 것 아니며
中含龍吟豈俗傳(중함룡음기속전) : 안에 울려나는 용의 소리는 어찌 세속의 전함이리.
曹植謾誇雲夢竹(조식만과운몽죽) : 조식은 부질없이 운몽의 대를 자랑했고
蔡邕空識柯亭椽(채옹공식가정연) : 채옹은 가정의 석가레만 알았구나.
據床三弄淸裂石(거상삼롱청렬석) : 상에 앉아 세 가지 노래 부니 맑은 소리는 돌 깨어지듯
長風挽落猶滴滴(장풍만락유적적) : 그 소리 긴 바람 타고 멀리멀리 퍼지네.
一聲若作獅子吼(일성약작사자후) : 한 곡조가 만약 사자후를 낸다면
堪笑禪家無孔笛(감소선가무공적) : 스님들의 구멍 없는 피리는 우습기만 하리라.
◎ 이규보(李奎報)-景福寺路上作(경복사노상작)-경복궁 노상에서 짓다
一路脩脩繞碧山(일로수수요벽산) : 한 줄기 길이 구불구불 벽산을 감도니
觸松紗帽紸梢端(촉송사모주초단) : 모자가 소나무에 부딪혀 가지 끝에 걸리네.
渴窺深井難抔飮(갈규심정난부음) : 목이 말라 깊은 우물 살펴보나 움켜 마시기 어렵고
行過幽花試折看(행과유화시절간) : 그윽한 꽃 옆으로 지나다가 꺾어 보려했네.
蜻蜓點過淸溝上(청정점과청구상) : 잠자리는 맑은 냇물 위로 날아가고
蜇蝪遁藏碧草中(철탕둔장벽초중) : 도마뱀은 풀 속으로 쏜살같이 도망가네.
山路何須僧導去(산로하수승도거) : 산길에 어찌 반드시 중의 인도를 받아갈까
磬聲敲處認鴦宮(경성고처인앙궁) : 풍경(風磬)소리 나는 곳이 바로 절간이겠지.
◎ 이규보(李奎報)-草堂雨中睡(초당우중수)-초당에서 빗속에 잠들다
緣霤雨浪浪(연류우랑랑) : 처마 끝에 빗물 주룩주룩 내려
撼耳似妨睡(감이사방수) : 귓전을 울리며 잠을 방해하려는 듯 하네
云何雨聲中(운하우성중) : 비 내리는 날은 어떤가
徧得睡味美(편득수미미) : 두루 잠 맛은 좋다네.
晴時雖杜門(청시수두문) : 비 개인 날엔 문을 닫고 있어도
駕言意未弭(가언의미미) : 나가고 싶은 생각이 가시지 않네.
自此夢難酣(자차몽난감) : 이래서 잠이 깊이 들지 않아
假寐或驚起(가매혹경기) : 얼핏 잠이 들다가도 놀라서 깨다네
獨是霖雨中(독시림우중) : 오직 지금은 장마철이라
塗路混爲水(도로혼위수) : 길은 온통 물바다가 됐다네.
雖欲訪情親(수욕방정친) : 정든 사람을 찾으려 해도
咫尺卽千里(지척즉천리) : 지척이 바로 천리라네.
門絶客敲扉(문절객고비) : 문에는 찾는 이 아무도 없고
庭無人響履(정무인향리) : 뜰에는 인적이 끊어졌구나.
所以得於眠(소이득어면) : 그리하여 잠이 깊이 들어
齁齁雷吼鼻(후후뢰후비) : 드릉드릉 우레처럼 코를 골았다네.
此味固難言(차미고난언) : 이 맛은 참으로 표현하기 어렵지
王侯那得致(왕후나득치) : 왕후인들 어찌 이런 걸 누릴 수 있으리
王侯豈不能(왕후기불능) : 왕후도 어찌 낮잠을 못 자리오마는
朝請安可弛(조청안가이) : 조문을 어이 게을리 할 수 있겠는가
◎ 이규보(李奎報)-戱友人製冠(희우인제관)-친구가 관 만드는 것을 웃어주다
新模特地傳椰子(신모특지전야자) : 새 모형이 특별히 야자관에 전해져
古樣何曾問竹皮(고양하증문죽피) : 옛 모형 죽피관을 어찌 다시 물으랴
手熟不生針線迹(수숙불생침선적) : 솜씨가 익숙해져 꿰맨 자국 하나 안 보이니
知君眞箇老冠師(지군진개노관사) : 그대는 참으로 늙은 갓쟁이로구나.
◎ 이규보(李奎報)-江上待舟(강상대주)-강에서 배를 기다리며
朝日初昇宿霧收(조일초승숙무수) : 아침 해 떠오르자 묵은 안개 걷히고
促鞭行到漢江頭(촉편행도한강두) : 채찍을 재촉하여 한강 머리 이르렀네.
天王不返憑誰問(천왕불반빙수문) : 황제가 돌아오지 않으니 누구에게 물어볼까
沙鳥閑飛水自流(사조한비수자류) : 해오라기 한가히 나는데 물만 흘러가네.
◎ 이규보(李奎報)-渡臨津(도임진)-임진강을 건너며
扁舟駕浪疾於飛(편주가랑질어비) : 조각배에 순풍 부니 나는 듯이 빠르고
水氣凄涼逼客衣(수기처량핍객의) : 싸늘한 물 기운은 옷에 스며드는구나.
綠岸有時雙鷺立(록안유시쌍로립) : 푸른 언덕엔 해오라기 때때로 나란히 서있고
碧天何處一帆歸(벽천하처일범귀) : 파아란 하늘 어느 곳으로 돛단배 하나 가는구나.
山含紅日低村樹(산함홍일저촌수) : 산은 붉은 태양 삼키니 마을 나무 나직하고
風卷銀濤碎釣磯(풍권은도쇄조기) : 바람은 은물결 말아가 낚시터에 부서지는구나.
初出東門尙怊悵(초출동문상초창) : 처음 동문을 나올 때 오히려 슬펐으나
渡江無奈益依依(도강무내익의의) : 강을 건너려니 더욱 연연해짐 어쩔 수가 없구나.
◎ 이규보(李奎報)-泛舟(범주)-배를 띄우고
江遠天低襯(강원천저친) : 강이 얼어 하늘이 낮아 땅에 붙은 듯
舟行岸趂移(주행안진이) : 배가 가니 언덕이 따라 옮아가네.
薄雲橫似素(박운횡사소) : 엷은 구름은 흰 비단처럼 비껴있고
疏雨散如絲(소우산여사) : 성긴 비는 실처럼 흩뿌린다.
灘險水流疾(탄험수류질) : 여울이 험하니 물 흐름 빠르고
峰多山盡遲(봉다산진지) : 봉우리 많으니 산이 늦도록 보이네.
沈吟費翹首(침음비교수) : 흥얼거리며 자주 고개 드니
正是望鄕時(정시망향시) : 이때는 바로 고향을 바라보는 때이라네.
◎ 이규보(李奎報)-詠井中月(영정중월)-우물 속의 달
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 : 산속의 스님이 달빛을 탐하여
竝汲一甁中(병급일병중) : 하나 가득 병 속에 같이 담았네.
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 : 그러나 절에 이르면 바로 알리니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 : 병을 기울이면 달빛 또한 비어 있는 것을
◎ 이규보(李奎報)-溪上偶作(계상우작)-개울가에서 우연히 짓다
朅來溪上弄淸波(걸래계상롱청파) : 시내 위에 어정거리며 맑은 물결과 노니
影舞形搖幻怪多(영무형요환괴다) : 그림자는 춤추고 내 몸은 흔들려 괴상하구나
忽憶蘇郞臨潁水(홀억소랑림영수) : 갑자기 소동파가 영수에서 놀던 일 생각나니
鬚眉散作百東坡(수미산작백동파) : 수염과 눈썹 흩어져 동파처럼 백가지 모습이 되었구나.
◎ 이규보(李奎報)-又用東度坡韻(우용동도파운)-또 동파의 운을 쓰다
道人愛深居(도인애심거) : 도인은 깊숙이 숨어 사는 것 좋아
隱几形似木(은궤형사목) : 고목 같이 안석에 기대어있구나.
靜坐不出門(정좌불출문) : 고요히 앉아 문을 나오지 않아
有如凍鼈縮(유여동별축) : 추위에 자라가 움츠린 것 같아라.
跫然聞足音(공연문족음) :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 들리어
一笑響空谷(일소향공곡) : 한 번 웃으니 빈 골짜기에 울린다.
玆遊豈偶然(자유기우연) : 여기 노는 것이 어찌 우연이랴
宿債負幽獨(숙채부유독) : 그윽이 홀로 사는 이에게 오랜 빚을 졌구나.
◎ 이규보(李奎報)-又贈尹公(우증윤공)-또 윤공에게 주다
蔡門初倒屣(채문초도사) : 채옹이 집에서 왕찬을 신을 거꾸로 신고맞았고
闕里孰摩墻(궐리숙마장) : 공자는 궐리에서 누구도 담밖에 거절하지 않았다네
筆海怒濤迅(필해노도신) : 글씨는 바다에 성난 파도 치는 듯 빠르고
醉鄕歸路長(취향귀로장) : 몽롱하게 취하여 돌아갈 길은 멀기만하구나
鵝黃空酌酒(아황공작주) : 나는 아황주만 부질없이 마시는데
鷄舌早含香(계설조함향) : 당신은 일찍이 계설향을 머금었구려
何日同簪管(하일동잠관) : 어느날에야 벼슬에 함께 나가서
賡吟殿閣涼(갱음전각량) : 서늘한 대궐에서 게속하여 시를 읊어 볼까
◎ 이규보(李奎報)-又贈金君(우증금군)-또 김군에게 주다
珍重金君愛客心(진중금군애객심) : 정말로 귀하다, 김군의 손님 좋아하는 마음
見來長共酒杯深(견래장공주배심) : 오기만 하면 언제고 술을 대접이 극진하구나
霜秋少睡先鷄起(상추소수선계기) : 서리 오는 밤에는 잠이 적어 닭 울기 전에 일어나고
露曉多情伴鶴吟(로효다정반학음) : 이슬 내린 새벽에는 정겨워 학을 짝해 시를 읊느다
俊拔子應三耳湧(준발자응삼이용) : 재주가 뛰나난 그대는 총명한 장심통처럼 귀가 셋이 생기리나
衰遲我已二毛侵(쇠지아이이모침) : 나는 자꾸 늙어가는 벌써 흰털이 생겼다네.
相逢話舊翻悽悵(상봉화구번처창) : 서로 만나 옛날 얘기하니 쓸쓸한 생각이 감돌아
挑盡靑燈淚濕襟(도진청등루습금) : 등잔불을 돋우니 눈물은 옷깃을 적시네.
◎ 이규보(李奎報)-感興(감흥)
有舌不可掉(유설불가도) : 혀가 있어도 말 못하고
有眼不可泣(유안불가읍) : 눈이 있어도 눈물 흘리지 못한다
誰能測予懷(수능측여회) : 누가 내마음 알아 줄런지
竟日空悒悒(경일공읍읍) : 종일토록 혼자 답답하기만 하다
豈爲我身寒(기위아신한) : 어찌 내 몸이 추워져
藍縷憂難緝(람루우난집) : 누더기옷 꿰매지 못할까 걱정돼어
豈爲我腹空(기위아복공) : 어찌 내 배는 고파
蔬食憂不給(소식우불급) : 나물밥도 넉넉지 못먹을까 걱정되는구나
所憂意殊深(소우의수심) : 근심하는 바 너무 깊어
疊足仰天立(첩족앙천립) : 발 모으고 하늘을 쳐다보고 섰도다.
仰天益自傷(앙천익자상) : 하늘을 쳐다보니 더욱 마음 상하는 것은
北斗不可挹(북두불가읍) : 북두가 머무 멀어 만질 수 없듯 임금님을 모시지 못하네.
何客印纍纍(하객인류류) : 어떤 사람은 관인을 주렁주렁 찼고
何人冠岌岌(하인관급급) : 어떤 사람은 갓이 높기도 하네
梁鵜咮不濡(량제주불유) : 어살에 사다새가 부리도 젖지 안 듯 소인이 날뛰고
穴鳳羽長戢(혈봉우장집) : 단혈에 봉황새는 아직도 날개를 움츠리듯 군자는 벼슬하지못하네
檻井不早嚴(함정불조엄) : 함정을 일찍 깊이 파지 않아서
豺虎滿州邑(시호만주읍) : 승냥이와 호랑이가 각 고을에 가득하네
賈誼流涕二(가의류체이) : 충신 가의는 시국 걱정에 물 흘릴 일이 두가지 있다고 하였으니
鄭公論漸十(정공론점십) : 당나라 정국공 위징은 열가지 일을 논하였다네
慷慨二子心(강개이자심) : 강개한 두 분의 마음을
今者知誰襲(금자지수습) : 지금 누가 이어 받을지를 알겠는가
嗚呼難重陳(오호난중진) : 아!, 거듭 말하기도 어렵구나
兒小言咠咠(아소언집집) : 소인들의 귓속말이 소곤거리네.
◎ 이규보(李奎報)-景福寺路上作(경복사로상작)-경복사 가는 길에서
一路脩脩繞碧山(일로수수요벽산) : 길은 한줄기 구불구불 푸른산을 감돌아
觸松紗帽紸梢端(촉송사모주초단) : 깁 모자 소나무 닿아 가지에 걸리는구나
渴窺深井難抔飮(갈규심정난부음) : 목이 마르나 깊은 우물 찾아 움켜 마시기 어려워
行過幽花試折看(행과유화시절간) : 그윽한 꽃 옆을 지나다가 꺾어본다.
蜻蜓點過淸溝上(청정점과청구상) : 잠자리는 맑은 시내 위로 날아가고
蜇蝪遁藏碧草中(철탕둔장벽초중) : 도마뱀은 풀 속에 숨어 쏜살같이 도망가는구나
山路何須僧導去(산로하수승도거) : 산길에서 어찌 반드시 중의 인도를 따라가리
磬聲敲處認鴦宮(경성고처인앙궁) : 풍경(風磬)소리 나는 곳이 바로 절간이겠지
◎ 이규보(李奎報)-授李吏部(수리리부)-이 이부에게 드리다
我李羅天下(아리라천하) : 우리 이씨가 천하에 널리 퍼졌는데
賢侯表隴西(현후표롱서) : 대감(大監)은 농서가 근본이지요
素襟淸映雪(소금청영설) : 맑은 회포는 눈보다도 깨끗하고
長焰欻橫霓(장염훌횡예) : 문장은 불꽃처럼 무지개처럼 빛납니다
修月無雙手(수월무쌍수) : 높은 학문으로
登雲第幾梯(등운제기제) : 얼마나 높은벼슬에 올랐을까
佩龜靑嚲綬(패구청타수) : 관리의 귀는 푸른 인끈으로 장식되고
批鳳紫濡泥(비봉자유니) : 임금의 지제고 벼슬 비답엔 붉은 도장이 찍혔구나
雅望宜華要(아망의화요) : 높은 명망은 요직에 적합하고
洪權管品題(홍권관품제) : 큰 저울로 인재 선발을 맡으셨네요
下椎鎔巨闕(하추용거궐) : 망치를 휘둘러 거궐과 같은 좋은 칼을 만들고
剖石覓懸黎(부석멱현려) : 돌을 쪼개어 현려와 같은 아름다운 옥을 골라내신다.
天地癭儒在(천지영유재) : 이 세상에 바싹 마른 선비는
風波宦海迷(풍파환해미) : 거친 물결이는 관계에서 출세할 길이 전혀 없네요.
久爲居轍鮒(구위거철부) : 오랫동안 수래바퀴 자국에 괸 물 속의 붕어같은 천한 신세 되어
動作觸藩羝(동작촉번저) : 걸핏하면 울터라 받은 염소처럼 진퇴양난에 처하지요.
早折姮娥桂(조절항아계) : 일찍이 과거(科擧)에 급제하고
期燃太一藜(기연태일려) : 태일이 지팡를 태울 날을 기다리듯 벼슬을 바랐지요
詩毫頻禿兔(시호빈독토) : 시 쓰느라 토끼털 붓이 자주 문드려지고
書卷費編犀(서권비편서) : 책은 무소 가죽으로 튼튼하게 꿰맸지요
學或嘗熊膽(학혹상웅담) : 글을 읽다가는 웅담도 씹어가면서 열심히 배웠지만
癡難數馬蹄(치난수마제) : 어리석어 대궐의 말발굽 소리의 규제도 헤아리지 못하였지요
窮途翻失適(궁도번실적) : 앞 길이 깜깜하여 어디로 갈지 모르고
短翶未安捿(단고미안서) : 쭉지가 짧아 새가 앉을 곳조차 없었습니다.
鼻待揮斤斲(비대휘근착) : 코끝의 흰 흙을 떠어내는 솜씨로 벼슬에 추천해주기를 바랐는데
聲悲抱璞啼(성비포박제) : 벼슬하지못하고 혼자서 박옥을 안고 우니 슬프기만 합니다
方輪那解轉(방륜나해전) : 모난 바퀴가 어떻게 굴러가겠으며
貝錦謾蓬萋(패금만봉처) : 패물을 바쳤다는 모함마저 입어 관운이 막혔
織屨憐慈母(직구련자모) : 가난하여 신을 삼는 어머님이 너무 애처롭고
當壚愧老妻(당로괴로처) : 주막에 앉은 늙은 아내에게 부끄럽습니다
憶曾單閼歲(억증단알세) : 지나간 묘년(卯年)이 생각나니
叨向孔門躋(도향공문제) : 외람하게도 대감 댁에서 글 배운 일입니다.
坐席間函丈(좌석간함장) : 그때 선생님으로 모셨고
依陰作下蹊(의음작하혜) : 나무 그늘 에는 오솔길이 났지요
祝煩成蜾蠃(축번성과라) : 본받으라 바라시니 나나니 벌로 변하듯 훈화를 입었고
覆始發醯鷄(복시발혜계) : 비로소 술단지에 이는 벌레인 혜계의 뚜껑을 열어주듯 학문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學繢堪方渙(학궤감방환) : 공의 학문 고명한 경지에 이르렀으니
聞韶不必齊(문소불필제) : 소를 듣듯 도를 즐기는 일이 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恩深雖刻骨(은심수각골) : 깊은 은혜는 비록 뼈에 사무쳤지만
信斷忽無輗(신단홀무예) : 소식이 끊어져 찾아 뵐 수 없습니다
末禮何曾檢(말례하증검) : 자질구레한 예절을 어찌 살피리오
中心不是携(중심불시휴) : 속에 이끌어주려는 마음이 없어시겠지요.
憑公一薦禰(빙공일천녜) : 예형을 천거해 주기만 믿고 있으니
記我昔攀嵇(기아석반혜) : 옛날 혜소처럼 저를 붙잡아 주십시오
◎ 이규보(李奎報)-偶吟二首有感(우음이수유감)-느낌이 있어 우연히 두 수를 읊음
拙直由天賦(졸직유천부) : 옹졸하고 솔직한 것은 타고난 천성이라
艱難見世情(간난견세정) : 많은 어려움 겪어서 세상 인정 알았도다
杜門妨客到(두문방객도) : 문 닫아 찾아오는 사람 거절하고
釀酒對妻傾(양주대처경) : 술 빚어 아내와 마주 마신다네
苔徑少人跡(태경소인적) : 이끼 낀 오솔길엔 인적은 드물고
松園空鳥聲(송원공조성) : 소나무 동산엔 새소리도 없어라
田園歸計晩(전원귀계만) : 전원으로 돌아갈 계획은 늦어만가니
慙愧晉淵明(참괴진연명) : 진 나라 도연영에게 부끄럽구나
環顧六尺身(환고륙척신) : 사방을 돌아봐도 육척단신 내 한 몸뿐
一日能幾食(일일능기식) : 하루에 얼마나 먹을 수 있나
尙營口腹謀(상영구복모) : 그런데도 입과 배를 채우려
未去雲山碧(미거운산벽) : 아직 돌아가지 못하는데 구름 산은 푸르기만 하다.
◎ 이규보(李奎報)-矮松(왜송)-작은 소나무
爲草希芝蘭(위초희지란) : 풀이 될 바에는 지초와 난초요
爲鳥慕鸞凰(위조모란황) : 새가 될 바에는 난새와 봉황새로다.
憐汝矮且小(련여왜차소) : 불쌍하게도 네는 외소하고 작지만
意若大而長(의약대이장) : 뜻은 크고도 원대할 것 같구나.
雖生瓦縫間(수생와봉간) : 비록 돌 틈에 생겨났으나
尙學松蒼蒼(상학송창창) : 오히려 솔의 푸르름을 배운다.
若更觀爾性(약경관이성) : 만약 다시 네 성품을 보려면
當須待嚴霜(당수대엄상) : 마땅히 엄한 서리를 기다려야 하리.
◎ 이규보(李奎報)-春暮江上送人後有感六言(춘모강상송인후유감육언)-늦은 봄날 강가에서 사람을
보내며 느낌이 있어
暮春去送人歸(모춘거송인귀) : 늦은 봄날 가시는 이 보내고 돌아오니
滿目傷心芳草(만목상심방초) : 눈에 가득한 향기로운 풀을 보니 마음 아파라.
扁舟他日歸來(편주타일귀래) : 다른 어느 날 조각배 돌아오면
爲報長年三老(위보장년삼노) : 뱃사공에게 알려 주리라
煙水渺瀰千里(연수묘미천리) : 물안개 낀 강 아득하여 천 리인데
心如狂絮亂飛(심여광서란비) : 마음은 버들강아지처럼 어지러이 날리네.
何況落花時節(하황락화시절) : 하물며 꽃 지는 이 시절에
送人能不依依(송인능불의의) : 고운 이 보내고 서운하지 않을까
殘霞映日流紅(잔하영일유홍) : 노을에 석양 비쳐 강물 붉게 흐르고
遠水兼天鬪碧(원수겸천투벽) : 멀리 흐르는 강물은 하늘에 닿아 푸름을 다투네.
江頭柳無限絲(강두유무한사) : 강가 버들 휘늘어진 가지들
未解絆留歸客(미해반유귀객) : 가는 이 얽매어 떠날 줄 모르네.
◎ 이규보(李奎報)-雪中訪友人不遇(설중방우인불우)-눈 속에 친구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다
雪色白於紙(설색백어지) : 눈빛이 종이보다 희어서
擧鞭書姓字(거편서성자) : 채찍을 들고 성명을 써 두노니
莫敎風掃地(막교풍소지) : 바람에게 제발 눈 쓸지 말고
好待主人至(호대주인지) :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게 하였으면
◎ 이규보(李奎報)-開國寺池上作(개국사지상작)-개국사 연못에서 짓다
尋僧散步樹陰中(심승산보수음중) : 스님 찾아 나무 그늘 사이로 걷다가
遇勝留連曲沼東(우승류연곡소동) : 좋은 경치 만나 둥글게 늘어선 연못 동편에 머문다.
點水蜻蜓綃翼綠(점수청정초익록) : 물 위를 나는 잠자리의 얇은 날개가 파릇하고
浴波꜒鶒繡毛紅(욕파계칙수모홍) : 물놀이 하는 원앙새와 뜸부기의 날개털은 붉도다.
仙人掌重蓮承露(선인장중연승로) : 신선의 손바닥 같은 연잎은 떨어지는 이슬 받고
宮女腰輕柳帶風(궁녀요경류대풍) : 궁녀의 허리 같은 버들에는 바람이 이는구나.
出戲游魚休避去(출희유어휴피거) : 나와 노는 고기들아, 피하여 달아나지 말아라.
蹲池不必是漁翁(준지불필시어옹) : 못가에 앉은 사람이라고 고기 잡는 노인만은 아니라네.
◎ 이규보(李奎報)-九日無聊有作(구일무료유작)-중양절에 무료하여 짓다
寒花依舊滿籬黃(한화의구만리황) : 찬 국화 예전대로 온 울타리에 노랗게 가득하고
白露叢邊空嗅香(백로총변공후향) : 이슬 젖은 풀 가에 부질없이 향기 맡는다.
未把一杯酬勝景(미파일배수승경) : 잔을 잡으면서 이 좋은 경치 수작하지 못하니
重陽到我不重陽(중양도아불중양) : 중양이 와도 나에겐 중양 같지 않도다.
◎ 이규보(李奎報)-山中春雨(산중춘우)-산속에 봄날의 비
雨聲偏與睡相宜(우성편여수상의) : 빗소리가 유독 낮잠 자기에 좋아
一榻蕭蕭日暮時(일탑소소일모시) : 걸상에 앉으니 쓸쓸한데 해는 지는구나.
無限人間有年喜(무한인간유년희) : 사람들은 모두 풍년을 기뻐하믄데
山僧獨詑菜苗滋(산승독이채묘자) : 산속의 스님은 채소 모종 자라겠다고 자랑하신다.
◎ 이규보(李奎報)-草堂雨中睡(초당우중수)-비오는 날 초당에서 잠 자면서
緣霤雨浪浪(연류우랑랑) : 처마 끝에 빗줄기 주룩주룩
撼耳似妨睡(감이사방수) : 귓전을 울리며 잠을 방해하는 듯
云何雨聲中(운하우성중) : 어째서 빗소리 중엔
徧得睡味美(편득수미미) : 그리도 잠맛이 좋은가
晴時雖杜門(청시수두문) : 개인 날엔 문을 닫고 있어도
駕言意未弭(가언의미미) : 말타고 나가고 싶은 생각이 그치지 않네
自此夢難酣(자차몽난감) : 이 때문에 잠이 깊이 들지 않아
假寐或驚起(가매혹경기) : 언듯 잠이 들어 놀라 깨곤 했지
獨是霖雨中(독시림우중) : 지금은 장마철이라
塗路混爲水(도로혼위수) : 길은 온통 물바다가 됐네
雖欲訪情親(수욕방정친) : 아무리 친구를 찾으려 해도
咫尺卽千里(지척즉천리) : 지척이 바로 천리일세
門絶客敲扉(문절객고비) : 문에는 아무도 찾는 이 없고
庭無人響履(정무인향리) : 뜰에는 사람의 발소리 끊어졌구나
所以得於眠(소이득어면) : 그래서 잠은 깊이 들어
齁齁雷吼鼻(후후뢰후비) : 드렁드렁 우레처럼 코를 골았네
此味固難言(차미고난언) : 이 맛은 참으로 말로 하기 어려워
王侯那得致(왕후나득치) : 왕과 재후인들 어찌 누릴까
王侯豈不能(왕후기불능) : 왕후도 어찌 낮잠을 못 자리오마는
朝請安可弛(조청안가이) : 조회를 어찌 게을리할 수 있으리
◎ 이규보(李奎報)-寒食日待人不知(한식일대인부지)-한식일 사람을 기다렸으니 오지 않고
百五佳辰人不來(백오가진인불래) : 동자 후 105일 한식일 이 좋은 때, 온다는 사람 오지 않고
鞦韆影外夕陽迴(추천영외석양회) : 그네 그림자 밖으로 석양이 돌아오네.
杏餳麥酪渾閑事(행당맥락혼한사) : 당나라 음식 행당과 맥락 먹는 일은 모두 한가한 일들
只對梨花飮一杯(지대이화음일배) : 배꽃 마주보며 술이나 한잔 들자구나.
◎ 이규보(李奎報)-詠筆管(영필관)-붓을 읊다
憶爾抽碧玉(억이추벽옥) : 기억하노니, 너는 푸른 옥을 뽑아놓은 듯 하고
孤直挺寒林(고직정한림) : 외롭고 곧은 지조는 한림 속에 뛰어나도다.
風霜苦不死(풍상고불사) : 바람과 서리에 괴로워도 꺾이지 않아
反見鋒刃侵(반견봉인침) : 도리어 칼날에 베임을 당했구나.
誰將獨夫手(수장독부수) : 그 누가 독부의 수단으로
刳出比于心(고출비우심) : 비간의 심장을 끄집어냈는가.
爲汝欲雪憤(위여욕설분) : 네를 위해 억울함을 씻고자 하려면
當書直言箴(당서직언잠) : 마땅히 곧은 말과 진리의 말만을 써야만 하네.
◎ 이규보(李奎報)-詠忘(영망)-망각을 읊다
世人皆忘我(세인개망아) : 세상사람 모두 나를 잊어버려
四海一身孤(사해일신고) : 온 세상에 오직 내 한 몸 외롭기만 하다.
豈唯世忘我(기유세망아) : 어찌 오직 남들이 나만을 잊었겠는가.
兄弟亦忘予(형제역망여) : 형제도 모두 나를 잊을 것이오.
今日婦忘我(금일부망아) : 오늘은 아내가 나를 잊고
明日吾忘吾(명일오망오) : 내일엔 내가 나를 잊을 것이네.
却後天地內(각후천지내) : 이런 뒤에 온 천지 안에서
了無親與疏(요무친여소) : 친한 이도 소원한 이도 없음을 알게 될 걸세.
◎ 이규보(李奎報)-謝友人送酒(사우인송주)-친구가 술을 보내온 것에 사례함
邇來杯酒乾(이래배주건) : 요즈음은 술마저 말라버려
是我一家旱(시아일가한) : 이것이 우리 온 집안의 가뭄이었는데
感子餉芳醪(감자향방료) : 그대에게 고맙구나, 좋은 술을 보내주다니
快如時雨灌(쾌여시우관) : 때맞춰 내리는 비처럼 상쾌하구나.
◎ 이규보(李奎報)-八月二 日(팔월이일)-팔월이일
食罷禪房暫啜茶(식파선방잠철다) : 밥을 먹고 절 방에서 잠깐 차를 마셨는데
半山紅日已西斜(반산홍일이서사) : 산 중턱의 붉은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었네.
坐呼階畔馴人鶴(좌호계반순인학) : 앉아서 뜰 가에서 사람 길들이는 학을 부르고
臥聽門前警盜鵝(와청문전경도아) : 누워서 문 앞의 도적을 경계하는 거위 소리를 듣는다.
萬柳影中南北路(만류영중남북로) : 수많은 버들 그림자 속으로 길은 남북으로 갈라지고
一溪聲外兩三家(일계성외량삼가) : 온 시내 물소리 나고 건너편엔 두세 집이 있구나.
卒然得句聊題壁(졸연득구료제벽) : 문득 시구를 얻으면 벽에 쓰려니
寄語闍梨莫羃紗(기어도리막멱사) :큰 스님에게 말을 전하노니 깁으로 덮지 마세요.
◎ 이규보(李奎報)-寒食感子推事(한식감자추사)-한식일에 자추의 옛일에 감탄하여
衆鱗化雲雨(중린화운우) : 뭇 물고기 구름과 비의 은혜 받아
一蛇不與爭(일사불여쟁) : 외로운 뱀 한 마리 함께 다투지 않다.
未見恩波潤(미견은파윤) : 내려지는 은혜의 물결을 보지 못하고
反爲燥炭烹(반위조탄팽) : 도리어 숯불 속에서 삶기게 되었구나.
綿山山上火(면산산상화) : 면산의 마루까지 타오른 불길
已忍焚人英(이인분인영) : 뛰어난 인재 차마 태워 죽였구나.
胡不放神燄(호불방신염) : 어찌 사나운 불길 널리 놓아
焚滅千載名(분멸천재명) : 전하는 이름까지 태우지 않았는가.
遂使後代人(수사후대인) : 드디어 후세 사람들에게
聞名輒傷情(문명첩상정) : 이름 듣고 마음 아프게 하였는가.
每至百五辰(매지백오진) : 해마다 한식일이 되면
萬屋禁煙生(만옥금연생) : 집집마다 연기 금하는 일 생겨났구나.
不及炎岡日(불급염강일) : 곤륜산 옥과 돌이 모두 탈 때
一勺江水淸(일작강수청) : 한 구기 강물만 맑았구나.
◎ 이규보(李奎報)-戱路上醉臥僧(희노상취와승)-길 위에 취해 누운 승려에게
莫笑上人中聖人(막소상인중성인) : 스님이 술에 취한 것을 비웃지 말라
醍醐與酒味同醇(제호여주미동순) : 청주나 탁주나 술 맛은 다 순후하다네.
始知糟麴神麤猛(시지조국신추맹) : 알겠노라, 숭의 신이 거칠고 사나워
解倒金剛三味身(해도금강삼미신) : 금강 삼매의 몸을 풀어서 거꾸러지게 했음을
◎ 이규보(李奎報)-憶吳德全(억오덕전)-오덕전을 생각하며
心將萬里長雲遠(심장만리장운원) : 마음은 하늘에 뜬구름과 멀어지고
淚逐空庭窓雨零(루축공정창우령) : 눈물은 빈 뜰의 창문에 빗방울처럼 쏟아진다.
一別君來誰與語(일별군래수여어) : 한 번 자네를 이별한 후 누구와 이야기하랴
眼中無復舊時靑(안중무복구시청) : 눈앞에는 옛날처럼 반가운 얼굴 아무도 없구나.
◎ 이규보(李奎報)-送春吟(송춘음)-봄을 보내며
春向晩送將歸(춘향만송장귀) : 봄이 저물어가니 곧 돌려보내긴 하지만
杳杳悠悠適何處(묘묘유유적하처) : 아득하고도 머나먼 곳 어디로 가나
不唯收拾花紅歸(불유수십화홍귀) : 한갓 붉은 꽃을 거둬갈 뿐 아니라
兼取人顔渥丹去(겸취인안악단거) : 사람의 붉은 얼굴빛까지 가져가 버리네
明年春廻花復紅(명년춘회화복홍) : 명년 봄이 돌아오면 꽃은 다시 붉겠지만
丹面一緇誰借與(단면일치수차여) : 붉은 얼굴 한번 검어지면 그 누가 다시 빌려줄까.
送春去春去忙(송춘거춘거망) : 봄을 보내려니 가는 봄은 노무 바삐 떠나거늘
空對殘花頻洒涕(공대잔화빈쇄체) : 부질없이 남은 꽃 바라보고 자주 눈물 뿌리네.
問春何去春不言(문춘하거춘불언) : 봄아 어딜 가나 물어도 봄은 대답이 없고
黃鸎似代春傳語(황앵사대춘전어) : 누른 꾀꼬리 봄 대신 말을 전하는 듯하지만
鶯聲可聞不可會(앵성가문불가회) : 꾀꼬리 소리 듣기는 해도 이해할 수 없으니
不若忘情倒芳醑(불약망정도방서) : 정 잊고 좋은 술에 취하는 것이 제일 좋아라.
好去春風莫回首(호거춘풍막회수) : 봄바람을 잘 보내고 미련을 갖지 말자
與人薄情誰似汝(여인박정수사여) : 사람에게 박정함이 그 누가 너와 같으랴.
◎ 이규보(李奎報)-和宿天壽寺(화숙천수사)-천수사에 묵으며 화답하다
百花相倚鬪輕盈(백화상의투경영) : 온갖 꽃 서로 다투어 피면
準擬同君醉太平(준의동군취태평) : 그대와 함께 취하려 했었네.
嘉節無端揮淚別(가절무단휘루별) : 좋은 시절 까닭 없이 눈물로 이별하고
亂山何處皺眉行(난산하처추미행) : 여기저기 어지러운 산들은 어디로 가는가.
玉川文字五十卷(옥천문자오십권) : 옥천 노동(盧仝)은 오천 권의 글을 남기고
魯望生涯三十楹(노망생애삼십영) : 노망 육귀몽(陸龜蒙)은 삼십 간의 집뿐이었다네.
曾是少年爲客處(증시소년위객처) : 일찍이 소년 시절에 노닐던 곳이니
逢人問我舊姓名(봉인문아구성명) : 사람 만나거든 나의 옛 이름 물어보게나.
◎ 이규보(李奎報)-復遊西郊草堂(부유서교초당)-다시 서교초당에서 놀다
初日映短霞(초일영단하) : 아침 햇빛이 자욱한 노을 비추고
長風卷宿霧(장풍권숙무) : 먼 데서 온 바람 묵은 안개 거두네.
四望喜新晴(사망희신청) : 사방을 보니 말끔히 갠 것 보기 좋아
傍林聊散步(방림료산보) : 수풀 곁으로 다만 천천히 걸어보네.
造物固難料(조물고난료) : 만물의 조화란 본래 예측하기 어려워
陰雲忽紛布(음운홀분포) : 홀연 검은 구름이 여기저기 일어나더니
電火掣金蛇(전화체금사) : 번갯불이 온통 금빛을 끌여드리고
雷公屢馮怒(뢰공루풍노) : 우뢰 소리가 어러 차례 허공을 뒤흔든다.
兒童報我來(아동보아래) : 아이들이 내게 달려와 알리기를
入郭及未雨(입곽급미우) : 비오기 전에 성으로 들어가시라 하네
我言天地內(아언천지내) : 나는 말하기를, 이 천지 사이에
浮生信如寓(부생신여우) : 덧없는 인생 붙어사는 것 같으니
彼此無眞宅(피차무진택) : 어딜 가나 참된 내 집은 없고
隨意且相住(수의차상주) : 마음 따라 가다가 멈추면 그만인데
何必戀洛塵(하필련락진) : 하필이면 성중의 티끌을 못 잊겠는가.
局促首歸路(국촉수귀로) : 소견 좁게 돌아갈 길을 향할 건가
換酒傾一壺(환주경일호) : 사온 술항아리를 다 비우니
胸膈無細故(흉격무세고) : 가슴에 아무런 생각 없어라.
頹然臥前榮(퇴연와전영) : 그냥 쓰러져 평상에 누웠으니
萬木蒼煙暮(만목창연모) : 온갖 나무에 푸른 연기만 저물어 가는구나.
◎ 이규보(李奎報)-楊貴妃(양귀비)-양귀비
未必楊妃色絶奇(미필양비색절기) : 반드시 양 귀비 얼굴이 뛰어난 것이 아니니
只緣誤國作嬌姿(지연오국작교자) : 나라를 망치려 예쁜 자태로 지은 것이라네.
君看貞觀太平日(군간정관태평일) : 그대여 당 태종의 태평시대를 보라
宮掖那無一美姬(궁액나무일미희) : 궁중에 어이하여 한 미희가 없었겠는가.
◎ 이규보(李奎報)-江上待舟(강상대주)-강가에서 배 기다리며
朝日初昇宿霧收(조일초승숙무수) : 아침 해 떠오르자 밤안개 걷히고
促鞭行到漢江頭(촉편행도한강두) : 채찍 재촉하니 한강 머리에 닿았구나.
天王不返憑誰問(천왕불반빙수문) : 천왕이 돌아오지 않으니 누구에게 물어볼까
沙鳥閑飛水自流(사조한비수자류) : 해오라기는 한가히 날고 물은 저절로 흐르는구나.
◎ 이규보(李奎報)-草堂詠雨1(초당영우1)-초당에서 비를 읊다
洒空初似飄絲細(쇄공초사표사세) : 공중에 뿌릴 때는 나부끼는 실같이 가늘더니
緣霤還如掛索脩(연류환여괘색수) : 낙수 져서 흐를 때는 새끼 걸어 놓은 듯하네.
頃刻庭前波瀲灩(경각정전파렴염) : 잠깐 사이 뜰에는 물이 출렁이니
兒童聚葉學浮舟(아동취엽학부주) : 아이들이 잎을 모아 배 띄우기 배우네.
◎ 이규보(李奎報)-草堂詠雨2(초당영우2)-초당에서 비를 읊다
風狂紙障濕(풍광지장습) : 바람이 몰아치니 벽지가 젖고
地潤土牆崩(지윤토장붕) : 땅이 젖으니 흙담이 무너진다
硯滴何須涸(연적하수학) : 연적을 어찌 마른 채로 두겠는가
簷端送臂承(첨단송비승) : 처마 끝에 팔 뻗어 물을 받는다
◎ 이규보(李奎報)-行過洛東江(행과락동강)-낙동강을 지나며
百轉靑山裏(백전청산리) : 백 겹 두른 푸른 산에
閑行過洛東(한행과락동) : 한가로이 낙동강을 지나가네.
草深猶有路(초심유유로) : 풀은 우거졌어도 지날 길은 있고
松靜自無風(송정자무풍) : 소나무가 고요하니 바람이 없도다.
秋水鴨頭綠(추수압두록) : 가을 낙동강 물은 오리 머리처럼 푸르고
曉霞猩血紅(효하성혈홍) : 새벽 노을은 성성이 피처럼 붉구나.
誰知倦遊客(수지권유객) : 누가 알리오, 노는 데 싫증난 나그네가
四海一詩翁(사해일시옹) : 사해에 시 짓는 한 늙은이인 것을 말이오.
◎ 이규보(李奎報)-梅花(매화)-매화
庾嶺侵寒拆凍脣(유령침한탁동순) : 유령 추위에 언 입술이 터져
不將紅粉損天眞(불장홍분손천진) : 붉은 꽃가루 지니고 참 모습 잃지 않네.
莫敎驚落羌兒笛(막교경락강아적) : 오랑캐 피리 속에 놀라지게 하지 말고
好待來隨驛使塵(호대래수역사진) : 잘 기다려 역사를 따르게해야 하리라.
帶雪更粧千點雪(대설경장천점설) : 내리는 눈을 받아 천 송이 눈꽃으로 장식하여
先春偸作一番春(선춘투작일번춘) : 봄보다 미리 또 한 봄을 훔쳤구나.
玉肌尙有淸香在(옥기상유청향재) : 옥 같은 살결에 여전히 남은 맑은 향기 있으니
竊藥姮娥月裏身(절약항아월이신) : 약 훔치던 항아의 달속에 있던 몸이라네
◎ 이규보(李奎報)-與鄕黨二三子遊馬巖(여향당이삼자유마암)-고향 사람 두세 사람과 마암에서 놀며
雙馬權奇出水涯(쌍마권기출수애) : 누른 말 검은 말 두 마리 말이 기이하게도 물가에서 나와
縣名從此得黃驪(현명종차득황려) : 이 때문에 황려라는 고을 이름을 얻었다네.
詩人好古煩徵詰(시인호고번징힐) : 시인은 옛날 일 좋아하여 번거롭게 고증하려 하지만
來往漁翁豈自知(래왕어옹기자지) : 오고 가는 고기 잡는 늙은이야 어찌 스스로 알겠는가.
◎ 이규보(李奎報)-尋山迷路(심산미로)-산사를 찾아가가 길을 잃다
暮尋山舍昧西東(모심산사매서동) : 저물어 산사를 찾다가 방향을 잃고
行墮荒榛暗莽中(행타황진암망중) : 우거진 잡목에 떨어지고 잡초 속에 빠지기도 했네.
失路忽逢樵徑在(실로홀봉초경재) : 길을 잃고 가까스로 좁은 나무꾼 길 발견하고
再三珍重採薪翁(재삼진중채신옹) : 나무하는 늙은이에게 재삼 묻곤 하였네.
◎ 이규보(李奎報)-戱贈美人(희증미인)-미인에게 재미로 주다
曉窓呵鏡照凝酥(효창가경조응소) : 새벽 창가에서 거울에 뽀얀 얼굴 비추고
兩朶烏雲滿把梳(양타오운만파소) : 두 갈래 검은 머리빗에 가득 차는구나.
時世粧成紅不暈(시세장성홍불훈) : 세상 여자 화장은 붉어도 수줍음 없으니
千金一笑肯廻無(천금일소긍회무) : 천금같은 미소 되돌리지 말아요.
◎ 이규보(李奎報)-群蟲詠1(군충영1)-여러 벌레를 읊다
두꺼비[蟾]
磊形可憎(비뢰형가증) : 우툴두툴 모양은 밉고
爬자行亦澁(파자행역삽) : 엉금엉금 걸음걸이도 느리다
群蟲且莫輕(군충차막경) : 여러 벌레들이여, 가볍게 여기지 말아라
解向月宮入(해향월궁입) : 월궁 향해 들어갈 줄도 안단다
◎ 이규보(李奎報)-群蟲詠2(군충영2)-여러 벌레를 읊다
개구리[蛙]
無怒亦無瞋(무노역무진) : 노하는 것도 눈 부릅뜨는 것도 전혀 없고
然長 腹(파연장병복) : 편편하게 길고 불룩한 배를 가졌구나
兩部爾莫誇(양부이막과) : 소리내는 두 부분을 너는 자랑 말아라
人將焚牡菊(인장분모국) : 사람이 장차 모란과 국화를 불태우리라
◎ 이규보(李奎報)-群蟲詠3(군충영3)-여러 벌레를 읊다
쥐[鼠]
眼如劈豆角(안여벽두각) : 눈이 콩조각을 쪼개 놓은 것 같아서
伺暗狂蹂蹈(사암광유도) : 컴컴한 곳 엿보아 미친 듯 밟고 다닌다
任爾穿我墉(임이천아용) : 제 맘대로 내 담 뚫으면
滔滔皆大盜(도도개대도) : 도도한 기세는 모두가 다 큰 도적이구나
◎ 이규보(李奎報)-群蟲詠4(군충영4)-여러 벌레를 읊다
달팽이[蝸]
見人頻縮角(견인빈축각) : 사람을 보면 뿔을 자주 뿔을 감추고
有屋解藏身(유옥해장신) : 집이 있어 몸 감출 줄 아는구나
莫敎蠻觸戰(막교만촉전) : 우둔한 촉수로 싸우게 하지 말라
千里血成津(천리혈성진) : 천 리에 피가 강을 이룬단다.
◎ 이규보(李奎報)-群蟲詠5(군충영5)-여러 벌레를 읊다
개미[蟻]
穴竅珠中度(혈규주중도) : 구멍 뚫어 구슬 속을 지나고
隨輪磨上奔(수륜마상분) : 바퀴 따라 맷돌 위로 달린다
誰知槐樹下(수지괴수하) : 누가 알랴 느티나무 아래에서
別占一乾神(별점일건신) : 따로 한 세상 차지한 줄을
◎ 이규보(李奎報)-群蟲詠6(군충영6)-여러 벌레를 읊다
거미[蛛]
緣 懸穀網(연첨현곡망) : 처마에 그물을 치고
壁作錢 (진벽작전과) : 벽 따라 돈 되는 소굴 만드네.
好 穿針日(호견천침일) : 좋게 침 꽂는 날을 기다려
來棲乞巧瓜(내서걸교과) : 술수 부리는 과일에 와 산다네.
◎ 이규보(李奎報)-群蟲詠7(군충영7)-여러 벌레를 읊다
파리[蠅]
疾爾誤鳴鷄(질이오명계) : 닭이 둔다고 착각하는 네가 미워
畏爾點白玉(외이점백옥) : 흰 옥에 점 남기는 것 두려워하노라
驅之又不去(구지우부거) : 쫓아도 가지 않으니
宜見王思逐(의견왕사축) : 왕사의 쫓김 당하는 것 당연하도다
◎ 이규보(李奎報)-群蟲詠8(군충영8)-여러 벌레를 읊다
누에[蠶]
吐絲工騁巧(토사공빙교) : 실을 토하여 교묘한 재주 부리나
作繭反逢煎(작견반봉전) : 고치를 만들어 도리어 삶아지네
似詰還似癡(사힐환사치) : 약은 것 같아도 어리석어
吾於汝獨憐(오어여독련) : 내 홀로 너를 가엾게 여기노라.
◎ 이규보(李奎報)-村家1(촌가1)-시골집
斷煙橫處響村舂(단연횡처향촌용) : 띄엄띄엄 연기 낀 고을에 방아 소리 들리고
深巷無垣刺樹重(심항무원자수중) : 깊은 골목 담은 없고 가시나무들만 무성하다.
萬馬布山牛散野(만마포산우산야) : 말들은 산에 가득하고 소는 들에 흩어져 있고
望中渾是太平容(망중혼시태평용) :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다 태평성대의 얼굴이라오.
◎ 이규보(李奎報)-村家2(촌가2)-시골집
曉寒霜重織聲催(효한상중직성최) : 새벽은 차갑고 서리는 짙은데 베틀 소리 바쁘고
日暮煙昏樵唱廻(일모연혼초창회) : 해는 저물고 연기 오르는 저녁에 나무꾼은 노래하며 돌아온다.
野老那知重九日(야노나지중구일) : 시골 늙은이 어찌 구월 구일을 알까마는
偶逢黃菊泛濃醅(우봉황국범농배) : 우연히 만나보니 국화꽃 띄운 익은 술을 가져왔네.
◎ 이규보(李奎報)-村家3(촌가3)-시골집
山梨葉赤野桑黃(산이엽적야상황) : 산의 배나무 잎은 붉고 들의 뽕나무 잎 누른데
一路風廻間稻香(일로풍회간도향) : 온 길에 바람 불어와 벼 향기 짙게 끼어든다.
沒井聲中人響屐(몰정성중인향극) : 샘물 긷는 소리 중에 나막신 소리 들리는데
柴門不鎖月鋪霜(시문불쇄월포상) : 사립문은 열려 있고 달빛은 처리처럼 서늘하다
◎ 이규보(李奎報)-칠석우(七夕雨)-칠석날에 내리는 비
輕衫小簟臥風欞(경삼소점와풍령) : 댓자리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바람 맞으며 누워보니
夢覺啼鸎三雨聲(몽교제앵삼우성) : 꾀꼬리 서너 번 울음소리에 잠을 깬다
密葉翳花春後在(밀엽예화춘후재) : 빽빽한 잎사귀에 가린 꽃, 봄 지난 뒤에도 남아
薄雲漏日雨中明(박운루일우중명) : 엷은 구름 속으로 비치는 햇살이 비 속에서 더 밝다
◎ 이규보(李奎報)-東明王篇(동명왕편)
元氣判迍渾(원기판둔혼) : 원기가 혼돈함이 나누어져
天皇地皇氏(천황지황씨) : 천황과 지황이 생겨났다. .
十三十一頭(십삼십일두) : 머리가 열셋 또는 열하나이며
體貌多奇異(체모다기이) : 체모도 기이한 곳이 많았다
其餘聖帝王(기여성제왕) : 그 나머지 여러 성스런 제왕도
亦備載經史(역비재경사) : 경서와 사기에 실려 있다
女節感大星(여절감대성) : 여절은 큰 별을 느끼어
乃生大昊摯(내생대호지) : 대호지를 낳았도다.
女樞生顓頊(여추생전욱) : 여추는 선욱을 낳았는데
亦感瑤光暐(역감요광위) : 또한 서광의 빛을 느끼었었다
伏羲制牲犧(복희제생희) : 복희씨는 제사에 쓰는 희생물의 제도를 마련하고
燧人始鑽燧(수인시찬수) : 수인씨는 비로소 나무를 비벼 불씨를 만들었다
生蓂高帝祥(생명고제상) : 명협이 난 것은 제요 때의 상서로움이요
雨粟神農瑞(우속신농서) : 조에 비가 내린 것은 신농씨 때의 상서로움이다
靑天女媧補(청천여왜보) : 푸른 하늘은 여와씨가 기웠고
洪水大禹理(홍수대우리) : 홍수는 하우씨가 다스렸다
黃帝將升天(황제장승천) : 황제가 장차 하늘에 오르려 할 때
胡髥龍自至(호염용자지) : 수염 많은 용이 스스로 내려왔다
太古淳朴時(태고순박시) : 태고 시대 순박할 때
靈聖難備記(영성난비기) :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일을 이루다 기록할 수 없었다
後世漸澆漓(후세점요리) : 후세에 점점 없어져
風俗例汰侈(풍속예태치) : 풍속이 으레 지나치게 사치해졌다
聖人間或生(성인간혹생) : 성인이 간혹 나기는 했으나
神迹少所示(신적소소시) : 신기한 자취는 적었다
漢神雀三年(한신작삼년) : 한나라 신작 삼년
孟夏斗立巳(맹하두립사) : 초여름 두성이 사방을 가리켰다
海東解慕漱(해동해모수) : 해동의 해모수는
眞是天之子(진시천지자) : 참으로 하늘의 아들이니
身乘五龍軌(신승오룡궤) : 하늘에서 내려올 때 몸은 다섯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從者百餘人(종자백여인) : 수행하는 사람이 백여 명인데
騎鵠紛襂襹(기곡분삼시) : 고니를 타고 털과 깃옷을 화려하게 입었다.
淸樂動鏘洋(청악동장양) : 맑은 풍악소리 장장하고 양양하게 울리고
彩雲浮旖旎(채운부의니) : 채색 구름 뭉게뭉게 날아올랐다.
自古受命君(자고수명군) : 에부터 임금으로 명령 받은 이가
何是非天賜(하시비천사) : 어찌 곧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니리오.
白日下靑冥(백일하청명) : 한낮에 푸른 하늘에서 내려옴은
從昔所未眎(종석소미시) : 예부터 보지 못한 신기한 일이다
朝居人世中(조거인세중) : 아침에는 세상에 살다가
暮反天宮裡(모반천궁리) : 저녁에는 하늘 궁전으로 돌아간다.
吾聞於古人(오문어고인) : 내가 예 사람에게 들으니
蒼穹之去地(창궁지거지) : 하늘에서 땅까지 떨어진 거리가
二億萬八千(이억만팔천) : 2 억만 8천 7백 80리라고 했다
梯棧躡難升(제잔섭난승) : 사다리를 밟고 오르기도 어렵고
羽翮飛易瘁(우핵비이췌) : 깃과 날개로 날아도 쉽게 지친다.
朝夕恣升降(조석자승강) : 이침과 저녁으로 마음대로 오르내리다니
此理復何爾(차리부하이) : 이 이치를 다이 어떻게 이해하리오.
城北有靑河(성북유청하) : 성 북쪽에 맑은 하천이 있는데
河伯三女美(하백삼녀미) : 하백의 세 딸이 아름다웠다
擘出鴨頭波(벽출압두파) : 압록강 물결을 헤치고 나와
往遊熊心涘(왕유웅심사) : 웅심 물가에 가서 놀았다네.
鏘琅佩玉鳴(장랑패옥명) : 쟁그랑 쟁그랑 패옥이 울리고
綽約顔花媚(작약안화미) : 부드럽고 가냘프게 얼굴이 예뻤다
初疑漢臯濱(초의한고빈) : 처음에는 한고의 물가로 의심하고
復想洛水沚(부상락수지) : 다시 낙수의 모래톱으로 생각했네.
王因出獵見(왕인출렵견) : 왕이 나가 사냥하다가 보고
目送頗留意(목송파류의) : 날마다 자못 마음을 주었네.
茲非悅紛華(자비열분화) : 이는 화려한 것을 조아함이 아니라
誠急生繼嗣(성급생계사) : 뒤 이를 자식 놓은 것이 급했네.
三女見君來(삼녀견군래) : 세 여자 임금 오는 것을 보고
入水尋相避(입수심상피) : 물속으로 들어 서로 피하였다.
擬將作宮殿(의장작궁전) : 장차 궁전을 지어
潛候同來戱(잠후동래희) : 숨어서 같이 와 노는 것을 망보려하였네.
馬撾一畫地(마과일화지) : 말채찍으로 한번 땅에 그으니
銅室欻然峙(동실훌연치) : 구리로 지은 집이 홀연히 솟아났다
錦席鋪絢明(금석포현명) : 비단 자리를 눈부시게 펴고
金罇置淳旨(금준치순지) : 금 술잔에 맛있는 술을 따라놓았다
蹁躚果自入(편선과자입) : 과연 스스로 돌아 들어와
對酌還徑醉(대작환경취) : 마주보며 술 마시다 곧 취하였다
王時出橫遮(왕시출횡차) : 이 때 왕이 나와 가로 막으니
驚走僅顚躓(경주근전지) : 놀라 달아나다 조금 미끄러져 넘어졌다
長女曰柳花(장녀왈유화) : 맡 딸을 유화라고 하니
是爲王所止(시위왕소지) : 이분이 왕에게 잡혔다네.
河伯大怒嗔(하백대노진) : 하백이 크게 노하여
遣使急且駛(견사급차사) : 사자를 시켜 급히 달려가
告云渠何人(고운거하인) : 이르기를,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乃敢放輕肆(내감방경사) : 감히 이리도 경박하고 방자한가라고 하니
報云天帝子(보운천제자) : 나는 천제의 아들이니
高族請相累(고족청상루) : 높은 집안이니 서로 혼인하기를 청한다 하고
指天降龍馭(지천강룡어) : 하늘을 가리키니 용수레가 내려왔다
徑到海宮邃(경도해궁수) : 수레를 타고 곧장 바다궁궐 깊숙이 이르렀다
河伯乃謂王(하백내위왕) : 하백이 곧 왕에게 이르기를
婚姻是大事(혼인시대사) : 혼인은 곧 큰 일이니
媒贄有通法(매지유통법) : 중매와 폐백에 정한 법이 있거늘
胡奈得自恣(호내득자자) : 어째서 이토록 스스로 방자한가 하니
君是上帝㣧(군시상제윤) : 그대가 상제의 아들이라면
神變請可試(신변청가시) : 신통한 변화를 시험해 보세 하니
漣漪碧波中(연의벽파중) : 넘실거리는 푸른 물결 속에
河伯化作鯉(하백화작리) : 화백이 화하여 잉어로 되니
王尋變爲獺(왕심변위달) : 왕이 곧 변하여 수달이 되었다
立捕不待跬(입포불대규) : 몇 걸음 못가 쫓아 잡았다
又復生兩翼(우부생양익) : 또 하백이 두 날개가 돋아
翩然化爲雉(편연화위치) : 날개를 펄럭이며 꿩이 되니
王又化神鷹(왕우화신응) : 왕은 또 매로 되었다
搏擊何大鷙(박격하대지) : 날아서 맹렬하게 쳤다
彼爲鹿而走(피위록이주) : 저 편이 사슴이 되어 달아나면
我爲豺而趡(아위시이유) : 이 편은 승냥이로 되어 쫓았다
河伯知有神(하백지유신) : 하백은 왕에게 신성이 있음을 알고
置酒相燕喜(치주상연희) : 술을 내어 서로 잔치하며 기뻐했다
伺醉載革輿(사취재혁여) : 취한 틈을 살펴 가죽 수레에 태워
幷置女於輢(병치여어의) : 딸도 수레 옆에 함께 태웠다
意令與其女(의영여기녀) : 그 의도는 그 딸과 함께
天上同騰轡(천상동등비) : 천상에 같이 오르고자 함이었다.
其車未出水(기거미출수) : 그 수레가 미처 물을 빠져나오지 않았는데
酒醒忽驚起(주성홀경기) : 술이 깨어 홀연히 깨어 일어나
取女黃金Ꟃ(취녀황금차) : 여자의 황금 비녀를 빼어
刺革從竅出(자혁종규출) : 가죽을 찔러 구멍으로 나와
獨乘赤霄上(독승적소상) : 하백이 혼자 붉은 하늘을 타고 올라가
寂寞不廻騎(적막불회기) : 적막히 아무 소식이 없어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河伯責厥女(하백책궐녀) : 하백이 그 딸을 책망하여
挽吻三尺㢮(만문삼척㢮) : 입술을 잡아당겨 석자나 늘여놓고
乃貶優渤中(내폄우발중) : 우발수 가운데로 추방하고
唯與婢僕二(유여비복이) : 오직 종 두 사람만 남겨 주었다
漁師觀波中(어사관파중) : 어부가 물결 속을 보니
奇獸行駓騱(기수행비혜) : 이상한 짐승이 돌아다녀
乃告王金蛙(내고왕금와) : 곧 금와왕에게 알렸다
鐵網投湀湀(철망투규규) : 어부는 깊이 쇠 거물을 던져
引得坐石女(인득좌석녀) : 돌에 앉은 여자를 끌어당겨 얻었다
姿貌甚堪畏(자모심감외) : 그 몸매와 얼굴이 너무 무서웠다
唇長不能言(진장불능언) : 입술이 길어 말을 못하므로
三截乃啓齒(삼절내계치) : 세 번 자른 뒤에야 이가 보였다
王知慕漱妃(왕지모수비) : 왕이 해모수의 비인 것을 알고
仍以別宮置(잉이별궁치) : 따로 방을 정하여 주었다
懷日生朱蒙(회일생주몽) : 해를 품어 주몽을 낳았느니
是歲歲在癸(시세세재계) : 이 해가 계해년이었다
骨表諒最奇(골표량최기) : 골상이 참으로 기이하고
啼聲亦甚偉(제성역심위) : 우는 소리도 심히 컸다
初生卵如升(초생란여승) : 처음에는 알을 낳았는데 한 되 크기가 되었다
觀者皆驚悸(관자개경계) : 보는 사람들이 모두 놀았다
王以爲不祥(왕이위불상) : 왕이 이를 상서롭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此豈人之類(차기인지류) : 이것이 어찌 사람의 씨인가 하고
置之馬牧中(치지마목중) : 이를 마굿간에 버려두니
群馬皆不履(군마개불리) : 여러 말들이 모두 밟지 않았다
棄之深山中(기지심산중) : 깊은 산 속에 버려두니
百獸皆擁衛(백수개옹위) : 온갖 짐승들이 다 지켜주니
母姑擧而養(모고거이양) : 어머니가 잠시 들어서 기르니
經月言語始(경월언어시) : 한 달이 지나 말을 시작했다
自言蠅噆目(자언승참목) : 스스로 말하기를 파리가 눈을 빨아
臥不能安睡(와불능안수) : 누워있어도 편안히 잘 수 없다 하였다
母爲作弓矢(모위작궁시) : 어머니가 활과 화살을 만들어주니
其弓不虛掎(기궁불허기) : 그 활을 헛되이 당기지 않았다
年至漸長大(연지점장대) : 나이 점점 장대해지니
才能日漸備(재능일점비) : 재주가 능히 날마다 점차 갖춰졌다
扶余王太子(부여왕태자) : 부여왕의 태자
其心生妬忌(기심생투기) : 그의 마음에 시기심이 생겨
乃言朱蒙者(내언주몽자) : 말하기를, 주몽이란 자
此必非常士(차필비상사) : 이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若不早自圖(약불조자도) : 만약 일찍 스스로 도모하지 않으면
其患誠未已(기환성미이) : 그 근심이 진실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했다
王令往牧馬(왕령왕목마) : 왕의 명령으로 가서 말을 기르게 했으니
欲以試厥志(욕이시궐지) : 그 뜻을 시험하려 함이었네.
自思天之孫(자사천지손) : 스스로 생각하니, 천제의 손자로
厮牧良可恥(시목량가치) : 마굿간에서 말을 기르니 참으로 부끄럽다.
捫心常竊道(문심상절도) : 가슴을 어루만지며 항상 말하기를,
吾生不如死(오생불여사) : 내 삶은 죽는 것만 못하다
意將往南土(의장왕남토) : 마음속으로 장차 남쪽 땅에 가서
立國立城市(입국입성시) : 나라도 세우고 성읍도 세우고 싶으나
爲緣慈母在(위연자모재) : 인자한 어머니 때문에
離別誠未易(이별성미이) : 이별이 참으로 쉽지가 않다
其母聞此言(기모문차언) : 그 어머니 이 말을 듣고
潛然抆淸漏(잠연문청루) : 주르르 흐르는 눈물을 씻으며
汝幸勿爲念(여행물위염) : 너는 내 염려하지 말라.
我亦常痛痞(아역상통비) : 나도 항상 마음 아팠다.
士之涉長途(사지섭장도) : 사나이가 먼 길을 떠남에
須必憑騄駬(수필빙록이) : 반드시 좋은 말이 있어야 하니라 하고
相將往馬間(상장왕마간) : 함께 마굿간에 가서
卽以長鞭捶(즉이장편추) : 곧 긴 채찍으로 말을 치니
羣馬皆突走(군마개돌주) : 여러 말들이 다 달아났다
一馬騂色斐(일마성색비) : 그 중 한 마리 말이 털빛이 붉었는데
跳過二丈欄(도과이장란) : 두 길 되는 난간을 뛰어넘었다
始覺是駿驥(시각시준기) : 비로소 이 말이 준마인 것을 알고
潛以針刺舌(잠이침자설) : 몰래 바늘을 말의 혀에 꽂았다
酸痛不受飼(산통불수사) : 말이 아파 먹이를 먹지 못하니
不日形甚癯(불일형심구) : 며칠이 못되어 심히 야위었다
却與駑駘似(각여노태사) : 그래서 도리어 가장 용렬한 말 같았다
爾後王巡觀(이후왕순관) : 그 뒤에 왕이 둘러보고
予馬此卽是(여마차즉시) : 말을 내준 것이 곧 이 말이었다.
得之始抽針(득지시추침) : 얻고서 비로소 바늘을 뽑고
日夜屢加餧(일야루가위) : 밤낮으로 여러 차례 먹이를 먹였다
暗結三賢友(암결삼현우) : 몰래 세 어진 친구를 맺으니
其人共多智(기인공다지) : 그 사람들은 모두 지혜로웠다.
南行至淹滯(남행지엄체) : 남으로 가 엄체수에 이르니
欲渡無舟艤(욕도무주의) : 건너려 하니 건널 배가 없었다.
秉策指彼蒼(병책지피창) : 채찍을 잡고 저 푸른 하늘을 가리키며
慨然發長喟(개연발장위) : 개연히 긴 탄식을 하니
天孫河伯甥(천손하백생) : 천재의 손자 하백의 외손이
避難至於此(피난지어차) : 어려움을 피하여 이곳에 왔습니다.
哀哀孤子心(애애고자심) : 고아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天地其忍棄(천지기인기) : 천지신령이 차마 버리겠습니까 하고
操弓打河水(조궁타하수) : 활을 잡아 하수를 치니
魚鼈騈首尾(어별병수미) : 여러 고기와 자라가 머리와 꼬리를 나란히 하여
屹然成橋梯(흘연성교제) : 높이 다리를 만드니
始乃得渡矣(시내득도의) : 비로소 건널 수 있었다
俄爾追兵至(아이추병지) : 조금 후에 쫓는 군사들이 나타났다
上橋橋旋圮(상교교선비) : 그들이 다리에 오르니 다리는 곧 무너졌다
雙鳩含麥飛(쌍구함맥비) : 한 쌍의 비둘기가 보리를 물고 날아
來作神母使(래작신모사) : 어머니의 심부름꾼이 되어 날아왔다
形勝開王都(형승개왕도) : 경치 좋은 곳에 왕도를 여니
山川鬱嶵巋(산천울죄규) : 산천이 울창아고 우뚝하였다
自坐茀蕝上(자좌불절상) : 스스로 풀자리 위에 앉아
略定君臣位(약정군신위) : 대략 군신의 자리를 정하였다.
咄哉沸流王(돌재비류왕) : 아, 비류왕이여
何奈不自揆(하내불자규) : 어찌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여
苦矜仙人後(고긍선인후) : 선인의 후손인 것만 애써 자랑하고
未識帝孫貴(미식제손귀) : 천재의 손자가 귀중함은 알지 못하였는가.
徒欲爲附庸(도욕위부용) : 한갓 부용국으로 삼으려고만 하고
出語不愼葸(출어불신사) : 말을 함에 조심하지 않고
未中畫鹿臍(미중화록제) : 사슴 배꼽 그린 그림 맞추지도 못하고
驚我倒玉指(경아도옥지) : 우리 왕이 옥지환 맞추어 깨뜨리는데 놀라는구나.
來觀鼓角變(래관고각변) : 고각이 변한 것을 와서 보고
不敢稱我器(불감칭아기) : 감히 우리 것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來觀屋柱故(래관옥주고) : 집의 기둥이 오래 묵은 것을 와서보고
咋舌還自愧(사설환자괴) : 혀를 깨물고 도리어 부끄러워했다
東明西狩時(동명서수시) : 동명왕이 서쪽으로 순수할 때
偶獲雪色麂(우획설색궤) : 우연히 눈같이 흰 고라니를 잡았다
倒懸蟹原上(도현해원상) : 혜원 위에 거꾸로 매달고
敢自呪而謂(감자주이위) : 감히 스스로 저주하여 이르기를
天不雨沸流(천불우비류) : 하늘이 비류에 비를 내려
漂沒其都鄙(표몰기도비) : 그 도성과 변두리를 표몰시키지 않으면
我固不汝放(아고불여방) : 나는 결코 너를 놓아주지 않으리니
汝可助我懫(여가조아치) : 너는 내 분한을 풀어다오 하니
鹿鳴聲甚哀(녹명성심애) : 사슴의 우는 소리 심히 슬퍼
上徹天之耳(상철천지이) : 위로 천재의 귀에 통했다
霖雨注七日(림우주칠일) : 장마 비가 이레를 퍼부었다
霈若傾淮泗(패약경회사) : 주룩 주룩 회수와 사수를 기울여 쏟은 듯하니
松讓甚憂懼(송양심우구) : 비류왕 송양이 심히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沿流謾橫葦(연류만횡위) : 흐르는 물을 따라 헛되이 갈대 밧줄을 가로대게 하였다
士民競來攀(사민경래반) : 관리와 백성들이 다투어와 줄을 당겨보았으나
流汗相諤眙(류한상악이) : 땀을 흘리며 서로 쳐다보기만 하였다
東明卽以鞭(동명즉이편) : 동명왕이 곧 채찍을 들고
畫水水停沸(화수수정비) : 물에 그으니 물이 곧 멈추었다
松讓擧國降(송양거국항) :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하고
是後莫予訾(시후막여자) : 이 뒤로는 헐뜯지 못하였다
玄雲羃鶻嶺(현운멱골령) : 검은 구름이 송골매 봉우리을 덮어
不見山邐迤(불견산리이) : 산이 연하여 뻗힌 것이 보이지 않았다
有人數千許(유인수천허) : 수 천 명 사람의 소리가 들려왔으니
斲木聲髣髴(착목성방불) : 나무 베는 소리와 비슷했다
王曰天爲我(왕왈천위아) : 왕이 말하기를 하늘이 나를 위하여
築城於其趾(축성어기지) : 그 터에 성을 짓는 것이다 하였다
忽然雲霧散(홀연운무산) : 홀연히 비안개 흩어지니
宮闕高纍嵬(궁궐고류외) : 궁궐이 높이 우뚝 솟았다
在位十九年(재위십구년) : 왕위에 있은 지 19년 만에
升天不下莅(승천불하리) : 하늘로 올라가 내려오지 않았다
俶儻有奇節(숙당유기절) : 뜻이 크고 기이한 절개 있었으니
元子曰類利(원자왈류리) : 맏아들의 이름은 유리라 했는데
得劒繼父位(득검계부위) : 칼을 얻어 부왕의 자리를 이었다
塞盆止人詈(색분지인리) : 물동이 구멍을 매꾸어 사람의 꾸지람을 그치게 했다
我性本質木(아성본질목) : 내 성품이 본시 진실하고 소박하여
性不喜奇詭(성불희기궤) : 기이하고 괴상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初看東明事(초간동명사) : 처음에 동명왕의 이야기를 보고
疑幻又疑鬼(의환우의귀) : 요술인가 귀신인가 의심하였으나
徐徐漸相涉(서서점상섭) : 천천히 조금씩 섭렵해보니
變化難擬議(변화난의의) : 변화가 추측하고 의논하기 어려웠다
況是直筆文(황시직필문) : 하물며 직필로 쓴 글에 있어서
一字無虛字(일자무허자) : 한 글자도 헛된 것이 없었다.
神哉又神哉(신재우신재) : 신이하고도 신이하다
萬世之所韙(만세지소위) : 만세에 전해질 책이다
因思草創君(인사초창군) : 이로 인하여 생각건대, 창업하는 임금이
非聖卽何以(비성즉하이) : 신령스럽지 않으면 어찌 나라를 이루겠는가.
劉媼息大澤(류온식대택) : 유씨 여자가 큰 못에서 쉬다가
遇神於夢寐(우신어몽매) : 꿈에 신을 만났다
雷電塞晦暝(뇌전색회명) : 우뢰 번개에 천지가 캄캄한데
蛟龍盤怪傀(교룡반괴괴) : 교룡이 괴상하고 큰 것에 서리어 있었다
因之卽有娠(인지즉유신) : 인하여 임신하여
乃生聖劉季(내생성유계) : 신성한 유계를 낳았다
是惟赤帝子(시유적제자) : 이것이 적제의 아들이었다.
其興多殊祚(기흥다수조) : 그가 일어남에 특별한 복스러운 징조가 많았다
世祖始生時(세조시생시) : 세조가 처음 날 때에
滿室光炳煒(만실광병위) : 집안에 가득 광명한 빛이 있었다.
自應赤伏符(자응적복부) : 스스로 적복부에 응하여
掃除黃巾僞(소제황건위) : 황건적을 쓸어버렸다
自古帝王興(자고제왕흥) : 에로부터 제왕이 일어나려면
徵瑞紛蔚蔚(징서분울울) : 많은 징조와 상서로운 일이 일어났다
末嗣多怠荒(말사다태황) : 마지막 자손이 많이 게으르고 거칠어
共絶先王祀(공절선왕사) : 모두 선왕의 제사를 끊어지게 했다
乃知守城君(내지수성군) : 이제야 알겠노라, 수성의 임금은
集蓼戒小毖(집료계소비) : 어려운 땅에 처하여 작은 일에 조심하고
守位以寬仁(수위이관인) : 왕위를 너그럽고 어진 마음으로 지키고
化民由禮義(화민유례의) : 백성을 예와 의로써 교화한다.
永永傳子孫(영영전자손) : 영원토록 자손에게 전하여
御國多年紀(어국다년기) : 만은 세월동안 나라를 통치한다.
◎ 이규보(李奎報)-夏日卽事1(하일즉사1)-여름 어느날
簾幕深深樹影迴(렴막심심수영회) : 발 쳐진 깊숙한 곳 나무 그림자 어른거리고
幽人睡熟鼾成雷(유인수숙한성뢰) : 한가한 사람 깊은 잠에 우뢰 같은 코고는 소리
日斜庭院無人到(일사정원무인도) : 해 저무는 뜰에 사람은 오지 않고
唯有風扉自闔開(유유풍비자합개) : 불어오는 바람에 문짝만 닫혔다 열렸다하네
◎ 이규보(李奎報)-夏日卽事2(하일즉사2)-여름 어느날
輕衫小簟臥風檻(경삼소점와풍함) : 대자리 홑적삼으로 바람 부는 마루방에 잠이 들어
夢斷啼鶯三兩聲(몽단제앵삼량성) : 꿈을 깨니 두세 번 앵무새 우는 소리
密葉翳花春後在(밀엽예화춘후재) : 빽빽한 잎에 가린 꽃 봄 늦도록 피어있고
薄雲漏日雨中明(박운누일우중명) : 엷은 구름 속 비치는 햇살 비 내려도 밝아라
◎ 이규보(李奎報)-春曉醉眠尹學錄韻(춘효취면윤학록운)-봄날 새벽 취하여 자다가 윤학록의 운으로
睡鄕偏與醉鄕隣(수향편여취향린) : 꿈속과 취중은 이웃이니
兩地歸來只一身(양지귀래지일신) : 두 곳에서 깨어 돌아오니 내 한 몸일 뿐
九十日春都是夢(구십일춘도시몽) : 구십 일 봄날도 모두 꿈일 뿐
夢中還作夢中人(몽중환작몽중인) : 꿈속이 도리어 취한 인생이네
◎ 이규보(李奎報)-和子美成都草堂韻1(화자미성도초당운1)-두보의 성도초당운에 화답하다
嬾惰無心賦兩鄕(란타무심부양향) : 천성이 게을러 양도부 지을 마음 전혀 없는데
況堪著論效王符(황감저논효왕부) : 하물며 왕부의 잠부론을 짓겠는가
緬思潘閬三峯好(면사반랑삼봉호) : 생각해보면 방랑의 삼봉도 싫지 않으나
且任陳蕃一室蕪(차임진번일실무) : 진번의 한간 집처럼 거칠어도 좋아라
小塢移花邀客看(소오이화요객간) : 조그만 뜰 가꿔 손님 불러
比隣有酒遣兒沽(비린유주견아고) : 이웃에 술 있으니 아이 보내 사왔네
何煩點檢人間事(하번점검인간사) : 인간사 번거롭게 어찌 따질까
出處悲歡命矣夫(출처비환명의부) : 기쁜 일, 슬픈 일 다 운명인 것을
◎ 이규보(李奎報)-和子美成都草堂韻2(화자미성도초당운2)-두보의 성도초당운에 화답하다
不把餘愚汚及溪(불파여우오급계) : 어리석음 떨치지 못해, 더러움 깨끗한 개울로 흘러
幽棲租免宦途迷(유서조면환도미) : 깊은 곳에 살아 세금과 어리석은 벼슬살이 면했네
披襟快得風來北(피금쾌득풍래북) : 옷깃을 헤지고 드는 바람, 상쾌히 북으로 불고
隱几從敎日向西(은궤종교일향서) : 책상에 기대어 책을 읽노라니 해는 저무네
世味淺深曾染指(세미천심증염지) : 짙고 옅은 세상맛 이미 내 손끝에 물들고
人生得失已忘蹄(인생득실이망제) : 인생사 득실은 잊은 지 오래
半窓林影搖森翠(반창임영요삼취) : 창에 반 드리운 숲 그늘, 숲 기운 흔들리고
讀罷書頭落燕尾(독파서두락연미) : 읽고 난 책머리에 제비 똥이 떨어진다
◎ 이규보(李奎報)-和子美成都草堂韻3(화자미성도초당운3)-두보의 성도초당운에 화답하다
半捲疎簾獨倚欄(반권소렴독의란) : 성긴 주렴 반만 걷고 난간에 기대니
雨聲淙瀉劇驚湍(우성종사극경단) : 쏟아지는 빗소리 여울보다 심하네
橫雲尙自暗千嶂(횡운상자암천장) : 비낀 구름에 아직도 온 산이 어둑하고
落日不知餘幾竿(낙일부지여기간) : 해 저물어 낚싯대 몇 이나 남았는지
遇客只愁浮太白(우객지수부태백) : 손님을 만나도 이백처럼 술 먹는 생각뿐
學仙何苦鍊還丹(학선하고련환단) : 도교를 배우는데 단사 굽는 일 괴로웠네
爲言隣叟好來往(위언인수호내왕) : 이웃 노인네들, 즐겨 찾아오시게
除却閑談送老難(제각한담송노난) : 모든 것 제쳐두고 한가한 이야기로 노년을 보내보세
◎ 이규보(李奎報)-聊省驛壁上韻(료성역벽상운)-요성역 벽에 차운하다
幽谷一宵中酒宿(유곡일소중주숙) : 유곡에서 하룻밤 술취해 묶고
聊省半日解驂留(료성반일해참유) : 요성의 반나절 말안장 풀고 쉬어가네
歸來阮籍空長嘯(귀래완적공장소) : 거절당하고 돌아온 완적처럼 길게 휘파람 불며
寂寞相與故倦遊(적막상여고권유) : 쓸쓸한 상여처럼 놀기 권태로워라
郵吏送迎何日了(우리송영하일료) : 관리 송별하는 일 언제 끝나며
使華來往幾時休(사화내왕기시휴) : 중국으로 사신 오가는 일 언제나 끝나나
唯予幸是閑行者(유여행시한행자) : 나는 다행히도 한가한 길손
來不煩人去自由(래불번인거자유) : 올 때 사람 괴롭히지 않았으니 갈 때도 자유로워
◎ 이규보(李奎報)-列子御風(열자어풍)-열자어풍
從來道境尙遺身(종래도경상유신) : 예부터 도의 경지란 육신을 버리는 것을 높였네
何必乘虛始自神(하필승허시자신) : 어찌 허공을 타야만 신선인가
若向風頭尋禦寇(약향풍두심어구) : 만약 바람을 향하여 열자를 찾는다면
滿空飛鳥亦眞人(만공비조역진인) : 공중에 가득한 나르는 새들도 다 진인이리
◎ 이규보(李奎報)-子猷訪戴(자유방대)-완자유가 대안도를 찾아가다
訪人情味雪溪中(방인정미설계중) : 눈 덮인 개울로 사람 찾는 멋
若便相逢一笑空(약편상봉일소공) : 만약 만난다면 서로 한 번 웃을 뿐
莫道興闌廻棹去(막도흥란회도거) : 흥이 다해 노 저어 되돌아갔다 하지 마오
造門直返意無窮(조문직반의무궁) : 대문 앞까지 갔다가 바로 돌아간 것도 너무 멋있어
◎ 이규보(李奎報)-漢江(한강)-한강
朝日初昇宿霧收(조일초승숙무수) : 아침 해 떠오르자 밤안개 걷히고
促鞭行到漢江頭(촉편행도한강두) : 말채찍 재촉하여 한강변에 이르렀네
天王不返憑誰間(천왕불반빙수간) : 천왕은 가고 돌아오지 않으니 누구에게 물어보나
沙鳥閑飛水自流(사조한비수자류) : 물새는 한가히 날고 강물은 유유히 흘러가네
◎ 이규보(李奎報)-延福亭(연복정)-연복정에서
複道渾成碧草蕪(복도혼성벽초무) : 복도는 모두 폐허가 되어 풀 무성하고
笙歌散盡鳥相呼(생가산진조상호) : 노랫소리 다 흩어지고 새들만 서로 노래한다
箇中殷鑑分明甚(개중은감분명심) : 그 중에 본받을 일 분명히 있으려니
莫遣遺基掃地無(막견유기소지무) : 결코 남은 터 쓸어 없애지 말어라
◎ 이규보(李奎報)-南中逢故人(남중봉고인)-남중에서 친구를 만나다
到處相逢新進易(도처상봉신진이) : 도처에서 새 사람 만나기는 쉬우나
他鄕得見故人難(타향득견고인난) : 타향에서 옛 친구만나기는 어렵거니
別來華皓添多少(별래화호첨다소) : 이별한 뒤 백발이 얼마나 늘었는지
互將衰鬚仔細看(호장쇠수자세간) : 우리 서로 흰 수염 잡아보고 자세히 보자구나
◎ 이규보(李奎報)-過奇相林園(과기상임원)-재상 기홍수의 정원을 지나며
金Ꟃ零落歸何處(김차영락귀하처) : 금비녀 미인들 영락하여 어디로 가고
珠履繽紡記昔年(주리빈방기석년) : 구슬 신 고귀한 사람들 옛 날을 생각하네
我亦常時居客後(아역상시거객후) : 나 또한 항상 손님들과 함께 했는데
白頭今過淚如泉(백두금과루여천) : 다 늙어 이제야 지나니 눈물이 샘물처럼 흘러내리네
◎ 이규보(李奎報)-九品寺(구품사)-구품사에서
山險馬頻蹶(산험마빈궐) : 산이 험해 말은 자꾸 미끌어지고
路長人易疲(노장인이피) : 길은 멀어 행인은 쉽게 지친다네
驚鼯時入草(경오시입초) : 놀란 바람쥐 풀 섶으로 숨어들고
宿鳥已安枝(숙조이안지) : 잘 새는 이미 나무 둥지에 들었네
虛閣秋來早(허각추래조) : 빈집에 가을은 빨리 오고
危峰月上遲(위봉월상지) : 높은 봉우리에 달 더디 떠오르네
僧閑無一事(승한무일사) : 스님도 한가하여 아무 일 없어
除却點茶時(제각점차시) : 다른 생각을 떨치고 차 다리는 시간
◎ 이규보(李奎報)-聞琴次韻陳學正澕(문금차운진학정화)-진학정화를 차운한 거문고시를 듣고
人笒幸暗合(인금행암합) : 사람과 거문고 요행이 맞아서
絃手穩相仰(현수온상앙) : 거문고 줄과 사람의 손 서로 반기네
寓古心逾淡(우고심유담) : 옛 곡조 타면 마음은 더욱 맑아지고
通仙骨欲輕(통선골욕경) : 신선과 통하니 몸은 날아갈 듯 하오
淸於嵓溜落(청어암류락) :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보다 청아하고
幽却谷風生(유각곡풍생) : 계곡에서 부는 바람보다 그윽하다
聽罷月微側(청파월미측) : 거문고 소리 끝나니 달은 기울고
冷然洗我情(냉연세아정) : 시원히도 마음 속을 씻어낸다
◎ 이규보(李奎報)-草堂端居和子美新賃草屋韻1(초당단거화자미신임초옥운1)-초당에 살며 두보의
시에 화운하다
杜門無客到(두문무객도) : 두문불출하니 오는 손님 없어서
煮茗與僧期(자명여승기) : 스님과 차 마시기로 악속했네
荷耒且學圃(하뢰차학포) : 쟁기 지고 농사일 배우려함은
歸田當有時(귀전당유시) : 전원으로 돌아갈 때가 있어서라네
貧甘老去早(빈감노거조) : 너무 가난하여 빨리 늙는 것도 모르겠고
閑厭日斜遲(한염일사지) : 한가하니 하루 보내는 것도 지루하구나
漸欲成衰病(점욕성쇠병) : 점점 병들고 쇠약해지니
疎慵不啻玆(소용불시자) : 소홀해지고 게을러지는 것도 이 때문만은 아니라네
◎ 이규보(李奎報)-草堂端居和子美新賃草屋韻2(초당단거화자미신임초옥운2)-초당에 살며 두보의
시에 화운하다
寓興撫桐孫(우흥무동손) : 흥에 겨워 거문고 어루만지며
虛心對竹君(허심대죽군) : 마음을 비우고 대나무 바라본다
林深鴉哺子(림심아포자) : 깊숙한 숲 속에선 까마귀가 새끼를 먹이고
幽靜鳥呼群(유정조호군) : 사방은 고요한데 새들이 새떼를 부르네
坐石吟移日(좌석음이일) : 바위에 앉아 시를 읊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開窓臥送雲(개창와송운) : 창 열고 누워서 흐르는 구름 바라본다
塵喧卽咫尺(진훤즉지척) : 시끄러운 세상 지척이지만
閉戶不曾聞(폐호불증문) : 문 닫고 있으니 들리지 않았소
◎ 이규보(李奎報)-草堂端居和子美新賃草屋韻3(초당단거화자미신임초옥운3)-초당에 살며 두보의
시에 화운하다
漸漸階苔紫(점점계태자) : 여기저기 섬돌엔 이끼 푸르고
茸茸徑草靑(용용경초청) : 길섶에는 푸른 풀 수북하구나
殘生浮似夢(잔생부사몽) : 남은 인생 허무한 삶 꿈과 같고
破屋豁於亭(파옥활어정) : 허물어진 초라한 집, 정자보다 넓구나
不省室囊倒(불성실낭도) : 빈 주머니 사정 생각 않고
猶嫌一日醒(유혐일일성) : 하루라도 술 깬 인생 오히려 싫어라
詩成誰復愛(시성수복애) : 시를 지어도 누가 다시 보아줄까
自寫枕頭屛(자사침두병) : 스스로 베개머리 병풍에 적어둔다
◎ 이규보(李奎報)-草堂端居和子美新賃草屋韻4(초당단거화자미신임초옥운4)- 초당에 살며 두보의
시에 화운하다
心已知焦穀(심이지초곡) : 마음속으로 나 이미 불 탄 곡식인 것 알아
人誰射毒沙(인수사독사) : 누가 나를 중상모략 하리오
老於詩境界(노어시경계) : 나 시의 세계에서 늙었거니
謀却酒生涯(모각주생애) : 일을 하기보다 차라라 술에 취해 살리라
黙笑觀時變(묵소관시변) : 세태의 변화를 보고 그저 웃어 보이고
閒吟感物華(한음감물화) : 사물의 감흥을 한가히 시로 읊어보노라
在家堪作佛(재가감작불) : 집에 있으면서도 부처가 되려네
靈運已忘家(영운이망가) : 사영운은 이미 자신이 집에 있다는 사실마저 잊었다네
◎ 이규보(李奎報)-北山雜題1(북산잡제1)-북산에서
欲試山人心(욕시산인심) : 산사람들 마음 알고 싶어서
入門先醉奰(입문선취비) : 문에 들어 우선 술주정부터 해보네
了不見喜慍(료불견희온) : 술주정 끝나도록 기뻐하지도 성내지도 않으니
始覺眞高士(시각진고사) : 참다운 선비인 줄 알겠네
◎ 이규보(李奎報)-北山雜題2(북산잡제2)-북산에서
高嶺不敢上(고령불감상) : 높은 봉우리에 감히 더 오르지 아니함은
不是憚躋攀(불시탄제반) : 높이 오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네
恐將山中眼(공장산중안) : 산에 사는 사람의 눈으로
乍復望人寰(사복망인환) : 잠시라도 인간세상 다시 볼까봐 두려워서라네
◎ 이규보(李奎報)-北山雜題3(북산잡제3)-북산에서
山花發幽谷(산화발유곡) : 산꽃이 깊숙한 골짜기에 핀 것은
欲報山中春(욕보산중춘) : 산 속 봄을 알리고 싶어서라네
何曾管開落(하증관개락) : 꽃 피고 지는 것, 어찌 간섭할 수 있으리
多是定中人(다시정중인) : 이 모두 선경에 든 사람인 것을
◎ 이규보(李奎報)-北山雜題4(북산잡제4)-북산에서
山人不浪出(산인불랑출) : 산 속 사는 사람, 함부로 나가지 않아
古徑蒼苔沒(고경창태몰) : 좁은 오솔길, 푸른 이끼에 막혀있구나
應恐紅塵人(응공홍진인) : 두려운 것은 세상사람
欺我綠蘿月(기아녹라월) : 푸른 댕댕이 넌출에 걸린 달 나를 속여 가질까봐서라네
◎ 이규보(李奎報)-江行(강행)-강가를 걸으며
路轉長川遠(로전장천원) : 길을 돌아서니 긴 강이 뻗혀있고
雲低曠野平(운저광야평) : 구름 아래로 환한 들판 평평하다
天寒征雁苦(천한정안고) : 날씨 차가워 북쪽의 기러기 괴롭고
沙漲宿鷗驚(사창숙구경) : 모랫벌에 물 차오르자 자던 갈매기 놀라네
鬼火林間碧(귀화임간벽) : 숲에는 도깨비불 파랗고
漁燈雨外明(어등우외명) : 비는 내리는데 고깃배의 불빛은 반짝반짝
歸舟夜未泊(귀주야미박) : 가는 배는 밤에도 멈추지 않고
鴉軋櫓猶鳴(아알로유명) : 삐거덕 삐거덕 노 젓는 소리, 여전히 들려오네
◎ 이규보(李奎報)-偶龍嚴寺(우용엄사)-용엄사에 살면서
羈紲不到處(기설불도처) : 세속의 속박 이르지 못한 곳
白雲僧自閑(백운승자한) : 흰 구름 떠돌고 스님은 한가하네
煙光愁暮樹(연광수모수) : 산안개 속, 저녁 숲은 시름겹고
松色護秋山(송색호추산) : 소나무 빛 가을 산을 감싸주네
落日寒蟬噪(낙일한선조) : 지는 해에 가을 매미 울어대고
長天倦鳥還(장천권조환) : 먼 하늘에는 지친 새도 돌아오네
病中深畏客(병중심외객) : 병중이라 손님 맞이 부담스러워
白晝鎖松關(백주쇄송관) : 대낮에도 솔문을 닫고 있소
◎ 이규보(李奎報)-犬灘(견탄)-개여울
淸曉發龍浦(청효발용포) : 날 맑은 새벽 용포를 떠나
黃昏泊犬灘(황혼박견탄) : 해 질 무렵 개여울에 배를 대네
黠雲欺落日(힐운기락일) : 변덕스런 구름은 지는 해를 조롱하고
狼石捍狂瀾(랑석한광란) : 흩어진 돌무더기 빠른 물살 막고있네
水國秋先冷(수국추선냉) : 강가의 가을이 유난히도 차고
船亭夜更寒(선정야갱한) : 배 속 집은 밤에는 더욱 차네
江山眞勝畵(강산진승화) : 강산은 정말 그림보다 좋으니
莫作畵圖看(막작화도간) : 산수화 따로 보려 하지마소
◎ 이규보(李奎報)-下寧寺(하녕사)-하녕사에서
偶到湖邊寺(우도호변사) : 우연히 호수가 절에 이르니
淸風散酒醺(청풍산주훈) : 맑은 바람 불어와 술기운 사라지네
野荒偏引燒(야황편인소) : 들판은 거칠고 구석져 불 나기 쉽고
江暗易生雲(강암이생운) : 강은 어둑하여 구름 자주 끼겠네
碧嶺侵沙斷(벽령침사단) : 푸른 언덕은 모래 사태로 끊어지고
奔流夾岸分(분류협안분) : 급하게 흐르는 물 살 언덕에서 가라져 흘러가네
孤舟何處泊(고주하처박) : 외로운 고깃배 어느 곳에 머물까
漁笛晩來聞(어적만래문) : 어부의 피리소리 저물어 들려온다
◎ 이규보(李奎報)-沙平江泛舟(사평강범주)-사평강에 배 띄우고
江遠天低襯(강원천저친) : 강은 아득하고 하늘은 나직하고
舟行岸趁移(주행안진이) : 배 저어 언덕 따라 옯겨간다오
薄雲橫似素(박운횡사소) : 얇은 구름 흰 비단처럼 깔리고
疎雨散如絲(소우산여사) : 성긴 비 날리는 실같이 흩뿌리네
灘險水流疾(탄험수류질) : 여울이 험하니 물의 흐름 빠르고
峰多山盡遲(봉다산진지) : 수많은 산봉우리 산은 끝이 없네
沈吟費回首(침음비회수) : 생각에 잠겨 머리를 돌려봄은
正是望鄕時(정시망향시) : 이 때가 곧 고향이 그리울 때라오
◎ 이규보(李奎報)-秋送金先輩登第還鄕(추송김선배등제환향)-가을에 김선배의 등과 후 귀향을 환송하며
射策登高第(사책등고제) : 과거에 합격하여
騰裝返故鄕(등장반고향) : 위세를 갖추고 고향으로 가시네
春同鶯出谷(춘동앵출곡) : 지난 봄 꾀꼬리와 고을을 나와
秋趁雁隨陽(추진안수양) : 이 가을 기러기와 고향 찾아 남으로 가네
落日秋行色(락일추행색) : 해 지는 저녁, 가을에 떠나는 모습
孤煙慚別腸(고연참별장) : 외로운 연기로 이별하는 내 마음 쓸쓸하구나
明年會相見(명년회상견) : 내년에 우리 다시 만나요
好去莫霑裝(호거막점장) : 잘 가세요, 눈물로 옷 적시지 마시고
◎ 이규보(李奎報)-杜門(두문)-문을 닫아두고
爲避人間謗議騰(위피인간방의등) : 인간을 피하려하니 비방의 말들이 비등하여
杜門高臥髮鬅鬠(두문고와발붕괄) : 문 닫고 누워 헝클어진 머리를 묶어본다
初如蕩蕩懷春女(초여탕탕회춘여) : 처음엔 마음이 잔잔하여 봄 여인 같았는데
漸作寥寥結夏僧(점작요요결하승) : 점점 쓸쓸하여 안거하는 여름의 스님인 듯
兒戱牽衣聊足樂(아희견의료족락) : 아이들이 옷을 당기며 장난을 치나 못내 즐거워
客來敲戶不須應(객래고호불수응) : 손님이 와서 문을 두드려도 대답을 않네
窮通榮辱皆天賦(궁통영욕개천부) : 궁하고 통하며 영화롭고 욕됨은 하늘이 주는 것인데
斥鷃何曾羨大鵬(척안하증선대붕) : 메추리 작다 해도 어찌 대붕을 부러워할까
◎ 이규보(李奎報)-蓼花白鷺(요화백로)-여뀌꽃 속의 백로
前灘富魚蝦(전탄부어하) : 앞 여울엔 물고기와 새우가 풍부하고
有意劈波入(유의벽파입) : 물결을 갈라 들어갈 생각이네
見人忽驚起(견인홀경기) : 사람을 보자 흠칫 놀라 일어나
蓼岸還飛集(료안환비집) : 여뀌꽃 언덕으로 다시 날아가 앉는다
翅頸待人歸(시경대인귀) : 목과 날개를 움츠리며 사람 돌아갈 때를 기다리는데
細雨毛衣濕(세우모의습) : 가랑비에 흰 털옷이 다 젖네
心猶在灘魚(심유재탄어) : 마음은 오히려 여울물의 고기에 있는데
人道忘機立(인도망기입) : 사람들은 백로가 멍하니 서 있다고 말하네
◎ 이규보(李奎報)-聞國令禁農餉淸酒白飯(문국령금농향청주백반)-국령을 듣고
長安豪俠家(장안호협가) : 서울 장안의 부호들의 집에는
珠具堆如阜(주구퇴여부) : 보배 구슬이 산처럼 쌓여있네
舂粒瑩如珠(용립형여주) : 절구로 찧은 쌀알의 빛 구슬 같은데
或飼馬與狗(혹사마여구) : 말과 개를 먹이고
碧醪湛若油(벽료담약유) : 막걸리는 맑기가 기름과 같아
霑洽童僕味(점흡동복미) : 종들의 입맛을 맞춘다오
是皆山於農(시개산어농) : 이것이 모두 농부에서 나온 것을
非乃本所受(비내본소수) : 그냥 받은 것이 아니라네
假他手上勞(가타수상노) : 남의 수고를 빌려 노력했다고 하고
妄謂能自富(망위능자부) : 스스로 부자가 되었다고 망령되이 말하네
力穡奉君子(력색봉군자) : 힘들여 농사지어 군자를 받드니
是之謂田父(시지위전부) : 이 사람들을 농부라하네
赤身掩短褐(적신엄단갈) : 맨몸을 짧은 삼베옷에 겨우 가리고
一日耕幾畝(일일경기무) : 하루에 몇 이랑씩 밭을 간다오
才及稻芽靑(재급도아청) : 겨우 벼 싹이 파랗게 되면
辛苦鋤稂莠(신고서랑유) : 힘들여 잡초도 뽑아야 한다오
假饒得千種(가요득천종) : 풍년이 들어 천 섬을 얻는다 해도
徒爲官家守(도위관가수) : 헛되이 관가의 차지가 된다오
無何遭奪歸(무하조탈귀) : 어찌할 수 없이 빼앗기고 돌아오면
一介非所有(일개비소유) : 하나도 가진 것이 없게 된다오
乃反掘鳬茈(내반굴부자) : 도리어 올방개나 파랭이나 뒤져 먹다가
飢仆不自救(기부불자구) : 굶주려 넘어져도 대책이 없다오
除却作勞時(제각작노시) : 노동일 아니고서
何人餉汝厚(하인향여후) : 어느 누가 배불리 먹게 하겠소
所要賭其力(소요도기력) : 필요한 것은 그 힘이고
非必愛爾口(비필애이구) : 반드시 당신들의 입을 좋아함이 아니라오
粲粲白玉飯(찬찬백옥반) : 곱게 찧은 흰 쌀밥과
澄澄綠波酒(징징록파주) : 맑고 푸른 술이여
是汝力所生(시여역소생) : 이것은 너희들의 힘으로 생산한 것이니
天亦不之咎(천역불지구) : 하늘도 이를 탓하지 않는다
爲報勸農使(위보권농사) : 농사를 권장하는 관리여
國令容或謬(국령용혹류) : 국령의 수용이 잘못된 것 아닐까요
可矣卿與相(가의경여상) : 가하도다, 경상의 높은 벼슬아치는
酒食厭腐朽(주식염부후) : 술과 음식이 가득 차 썩는 것이
野人亦有之(야인역유지) : 벼슬에 물러난 사람도 그러한여
每飮必醇酎(매음필순주) : 매번 좋은 술을 마신다오
游手尙如此(유수상여차) : 노는 사람도 이러하거늘
農餉安可後(농향안가후) : 농부에게 쌀밥을 어찌 금하겠소
◎ 이규보(李奎報)-적의(敵意)-내 마음대로
獨坐自彈琴(독좌자탄금) : 혼자 앉아 거문고 타면서
獨吟頻擧酒(독음빈거주) : 시를 읊으며 자주 술을 마시노라
旣不負吾身(기불부오신) : 이미 내 몸도 가누지 못하고
又不負吾口(우불부오구) : 내 코도 가누지 못하게 되었네
何須待知音(하수대지음) : 어찌 반드시 친구를 기다리고
亦莫須飮友(역막수음우) : 또 함께 마실 벗이 있어야 하나
敵意則爲歡(적의칙위환) : 기분에 맞으면 그게 곧 즐거움인 것을
此言吾必取(차언오필취) : 이 말을 내 반드시 좇으리라.
◎ 이규보(李奎報;1168-1241) 정중월(井中月)-우물 속의 달
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 : 산속 스님이 달빛을 탐하여
竝汲一甁中(병급일병중) : 함께 병속에 길러 담았네
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 : 절에 돌아와서야 알았네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 : 병을 기울이면 병속의 달도 없어지는 것을
◎ (11살 되던 해 이 규보가 쓴 漢詩) -白雲居士: 이 규보(1168-1241)-
긴 종이 길에 모학사(毛學士)는 가고
술잔의 마음은 늘 국선생(麴先生)에 있도다.
◎ -이 규보-
사냥을 마치고 누가 제일인가
공을 따지니
마땅히
상을 타야 할 사람의 이름은 빠져 있더라
(고려 신종 4년 1202년 신라의 서울 동경에 떼도둑들의 반란이 크게 일어나 그때 '수제'라는 벼슬자리에 암않게 되었을 때 '이 규보'가 지원하여 나섰다. 1년 3개월을 동경에서 직책을 수행하고 돌아왔으나 다른 사람은 상을 주면서 이 규보 는 빠져있었다. 그 섭섭함을 시로 썼다.)
◎ -이 규보- (젊었을 때 지은 이 규보의 詩)
술은 詩가 되어 훨훨 나는데
여기 미인의 넋 꽃이 있구려
오늘은 마침 이 둘이 쌍을 이루니
귀인과 함께 오름과 같구려
◎ -이 규보-
옛날엔 은잔이 날개 돋쳐 날았다더니 이제는 임금의 서류가 홀연히 하늘로 날아 가누나
◆ (임금의 辭令狀을 가로채고 벼슬을 拒絶했다고 虛僞로 임금께 報告한 姦臣들에게 서운한 마음을 詩로서 비꼬았다)
◎ -이규보- (시골의 오막살이 집에서 쓴 시)
좋구나 청산의 빛이여 벼슬을 벗어나 다시 찾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