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지 페스티벌'은 특정 기준에 따라 작품을 선정하지 않고 아마추어에서 전문 예술단체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축제를 말한다.
각자 제작한 공연과 작품들을 축제 프로그램으로 구성하고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도 특징.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안문화축제""인 셈이다.
'프린지 페스티벌'은 1947년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국제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이 처음 열렸을 때 초청받지 못한 작은 단체들이 축제의 주변부(fringe)에서 자생적으로 공연을 하며 시작됐다.
이 공연들은 사전에 통일적으로 기획된 것도 아니고 조직적인 체계나 뒷받침이 없었지만, 독특하고 참신한 형식을 선보임으로써 관객들과 언론의 주목을 끄는 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해가 거듭할수록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공연단체들의 수가 늘어났다. 차츰 이들 사이에 교류가 진행되면서 1957년에는 '프린지협회(Festival Fringe Society)'가 발족하였고 홍보와 마케팅 등 공동운영의 시스템과 원칙이 수립되었다.
에딘버러 국제페스티벌에서 프린지 부문은 1947년 여덟명 배우들이 공터에서 무허가로 시작한 것이 출발이었으나 지금은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중심이 됐다. 현재 '에든버러 프린지(Edinburgh Festival Fringe)'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1000여 개의 공연단체들이 200개에 이르는 공연장에서 다양한 공연물을 선보이는 세계 최대의 축제로 발전하였다.
우리나라의 인기공연 `난타'도 1999년 참가해 좋은 반응을 얻어 해외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에든버러 프린지의 지속적인 성장은 다른 지역으로 프린지 현상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67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도 `오프(off)' 라는 명칭으로, 공식초청작품들과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공연들이 등장하였다. 또 1982년 캐나다 에드먼튼에서 프린지 페스티벌이 창설된 이래 북미 전역에서 10여 개의 서로 다른 프린지 페스티벌이 개최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1982년에 홍콩 프린지 페스티벌이 창설되었으나, 지난 1998년을 끝으로 축제의 막을 내렸으며 1999년 태국에서 창설된 방콕 프린지 페스티벌 정도가 아시아 지역의 유일한 프린지 페스티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 ""한국적 프린지의 실험과 모색""을 모토로 개최된 '독립예술제'가 2002년 5회째를 맞이하면서, 국제적 성격의 행사로 확대, 아시아 각국의 공연단체들을 참여시키면서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로 명칭을 바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