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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펀이 읽은 이 계절의 시집과 한 편의 시
계간 《사이펀》에서는 사이펀문학회가 주관하는 ‘이 계절의 시집과 시’를 마련한다. 본 지면은 새롭게 출범한 ‘사이펀문학회’의 첫 활동으로 선정위원들 대다수가 문학회에 몸을 담고 있다. ‘사이펀문학회’는 회원의 창작력을 돋구는 한편 전국 시인들의 시와 시집들을 독자들에게 폭넓게 알리고자 한다.
첫 선정위원은 김루(시인), 김뱅상(시인), 김순아(시인, 평론가), 이종암(시인), 정훈(시인, 평론가) 등 다섯 분이 모셔졌다. 대상 시집은 발간 6개월 이내로 잡았지만 첫 회만 넓게 2년까지로 공간을 넓혔으며, 시는 계간지를 기준으로 하여 3개월 이내의 각종 매체에 발표된 시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물론 선정위원들이 모든 시집과 시들을 빠트리지 않고 읽을 수는 없기에 어느 정도의 한계점이 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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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위원>
-김 루: 2010년 《현대시학》 등단, 구지가문학상 수상, 시집 『오늘의 판타지』
-김뱅상: 경북 안동 출생. 2017년 《사이펀》 등단, 시집 『누군가 먹고 싶은 오후』, 『냉장고에서 비키니를 꺼냈다』
-김순아: 경남 양산출생, 2001년 《한국문인》 시, 2017년 《시와사상》 평론 등단, 시집 『슬픈 늑대』, 『겹무늬 조각보』, 『푸른 파도에게』, 『너만 기억하는 시간이 있다』, 에세이집 『인문학 데읻트』, 『유랑이 아니면 무엇인가』, 비평집 『현대시로 읽는 식인의 정치학』
-이종암: 경북 청도 출생, 1993년 《포항문학》으로 작품활동, 천마문학상 문학평론 당선, 시집 『물이 살다간 자리』, 『저 쉼표들』, 『몸꽃』, 『꽃과 별과 총』
-정 훈: 경남 마산 출생, 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평론집 『시의 역설과 비평의 진실』, 『사랑의 미메시스』, 『두 사람이 걸어오는 저녁』, 시집 『새들 반점』,
-선정위원 추천: 사이펀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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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펀이 선정한 시집과 시
선정 시집: 고명재, 『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시절』(난다, 2026)
금지은, 『겨울로 가는 손금』(사이펀, 2026)
김은령, 『서쪽으로 부는 바람』(애지, 2026)
김휼, 『받아요, 한 다발의 침묵』(문학들, 2026)
신해욱, 『자연의 가장자리와 자연사』(봄날의 책, 2024)
이 계절의 시: 권선희, 「서쪽」(《신생》, 2026년 여름)
강영은, 「문장 줍기」(《사이펀》, 2026년 여름)
김미월, 「1204」(《다층》, 2026년 여름)
문태준, 「물의 산 물의 계곡」(《유심》, 2026년 여름)
이실비, 「파사」(《시결》, 2026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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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루 - 반갑습니다. 《사이펀》의 첫 지면을 꾸미는 데 참여하게 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무엇보다 지역으로 흩어져 계신 분들을 이렇게 한자리에서 종종 만난다는 사실은 더 즐거움을 줍니다. 저는 이번 작업을 준비하면서 최대한 많은 시집을 읽으려고 했습니다만 나름 한계가 있어 아쉽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나름 주목한 시집은 고명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시절』(난다, 2026)입니다. 우리가 AI열풍으로 미래의 어느 날을 한창 점치던 6월이라 더 인상 깊게 읽혔는지 모릅니다. 첫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이 순수한 사랑을 감각하고 깊이 있는 시어로 폭발시킨 작품들이었다면 이번 시집은 인간 본연이 가질 수 있는 내밀함과 따스함, 그리고 사라져가는 인간애가 곳곳에서 다정한 ‘무게감’으로 펼쳐져 있어 더 인상적입니다. 제목처럼 "어깨에 머리를 살포시 기대는 정도의 무게감과 체온"이라면 얼마든지 어깨를 내어주고 싶게 하는 시편들이 곳곳에 펼쳐져 있어 뭉클했습니다. 시 전반에 내밀하게 존재하는 인물들이 잠에서 일어났을 때 얼굴에 남은 베개 자국처럼, "무게를 가진 존재들"이라 더 기대고 싶고 더 보고 싶지만 이 세상에 없는 존재, 슬픔이라 “당신 닮은 것들을 쓰다 내가 되었다”는 시인의 고백이 시에 힘을 더 불어넣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그 옛날 할머니가 하던 것처럼 음식으로 사람을 환대하고 그 음식으로 무르익어 가는 세계를 경험한 시인은 무공해 음식으로 한 상차림 하듯 사물을, 상실을, 슬픔을 미분화시켜 다정한 온도로 내어놓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서정시(Lyric)의 어원은 고대 악기 '리라(Lyra)'에서 왔고, 그 악기가 동물의 내장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들어 "시란 몸 안쪽의 민망하고도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 보여주는 것"이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떠나간 존재들(스님, 할머니 등)과 나누었던 추억과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가장 투명하고 정직한 부위로 꺼내 애도하는 시인의 시편들이 아름다워 독자는 살아가는 일의 숭고함에 감사하게 됩니다. 『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었고, 또 누구에게든 내어줄 수 있는 어깨 하나쯤은 있다는 걸 인식하게 해준 다정한 기울임을 보여준 시집이라 이 계절에 함께 읽어보고 싶은 시집이라 추천합니다. 그런 점에서 시집 속 시 2편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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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 끓는 솥 안에서 무 조각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둥글어집니다 저게 바로 가족이고 가슴이란다 땀을 다 빼야 투명해지는 마음이 있다고 어린 나는 자꾸만 안이 보고 싶어서 젓가락을 들고 무를 푹푹 찌르고 일어나라고 듣고 있냐고 살 좀 찌라고 보살에게 빌던 것이 시가 되었습니다 시가 되었습니다 시가 되었습니다 밥이 되었습니다 샅바처럼 솥을 쥐던 여름이었습니다 갑자기 공양간에서 우는 보살을 비구니가 뛰어와서 안아줍니다 산맥들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솥과 국이 잔잔하게 끓었습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뚫었던 창호를 덮어둡니다 이런 것이 숙(熟)이구나 조용히 익는 것 마당에는 표고가 잘 마르고 있습니다 암도 눌러낸다는 그 귀한 것들이 우산처럼 긴요하던 시절입니다
- 「뭇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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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 엄마는 소설을 읽다가 손님이 오면 당근을 올려두기도 한다 당근을? 멋지지? 때론 양배추 하나로 세계를 누르고 손님들을 맞는다는 게, 뚝배기 전기포트 고구마 가래떡 손만 닿아도 문진은 끝없이 생기고 그건 봄이 꽃을 만지는 이야기 같다 펼쳐둔 책 위에 꿀벌이 앉을 것 같다 글월 문 자에 진압할 진이래 뒤에서 애인이 등을 꼭 끌어안으며 몸을 기댄다 그때 나는 돌솥밥의 원리를 알았지 바둑처럼 아름다운 진압을 보았지 봄이 오면 시골집의 강아지들은 발랑 누워 하늘로 배를 드러내 보이고 그때 나는 분홍과 솜털을 본다 열어둔 쪽문과 환대와 광화문을 본다 가장 어두울 때도 그랬다 가위에 눌려도 당신 생각하면서 대자로 누우면 몸에서 숭늉 끓는 향기가 났다
- 「솥밥-문진 2」
<이 계절에 읽은 시>
그리고 지난 계절에 제가 여러 문예지에서 읽은 시들 중에는 가슴에 와닿는 시편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1편을 선정하라니 무척 아쉬워요. 어쩌겠습니까? 기준이 있으니... 그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실비 시인의 시를 추천합니다.
우리가 아는 먼 곳
손바닥만 한 섬
그곳에서 천천히
사랑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런데
사랑을 안다고 입술을 떼려는 것은
칼로 아주 얇게 입술을 저미는 일이었다
그리고
깊은 바다로 던져 버리는 것
사랑을 안다고 믿었던 입술이 흔들리며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모습
실제로 보고 싶지 않니?
겪고 싶지는 않고
보는 건 괜찮을 수 있잖아
손바닥 섬에 사는 손톱 크기의 원주민이
뜰채로 건져 올린 얇은 입술로 요리할 때
물을 끓이고
입술을 데쳐
간을 맞추고 호호 불어
아기에게 먼저 먹일 테지
손톱보다 더 작은 아기가 입 벌리고 그걸 받아먹는 걸 상상해보면
있잖아
네가 칼이 되고 싶다고 했던 말을 이해하게 돼
-이실비, 「파사-사랑을 알았던 입술」(《시결》, 2026년 여름)
《시결》 2026년 여름호에 발표된 이실비의 「파사」는 묘하게 사람을 찌르는 날카로움이 있어 좋았습니다. 들키고 싶지 않은 내밀함 들춰내 보이는 시의 형식이 감각적이면서 독특해 다시 읽게 된 시입니다. 사랑에 대해 잘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 사랑을 말하려고 막상 입술을 떼는 순간 “칼로 아주 얇게 입술을 저미는” 고통과 잔혹함으로 깊은 바다로 던져버려야 하는 사랑은 대체 어떤 사랑일까?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급반전으로 전개되는 연과 연의 호흡이 인간이 지닌 세밀하고 다양한 감정선을 긁어 놓습니다. “우리가 아는 먼 곳/ 손바닥만 한 섬”을 불러 사랑을 알았던 입술로 독자의 심안으로 들어온 시는 인간이 지닌 이기심을 기묘하게 펼쳐 보여줍니다. “실제로 보고 싶지 않니?/ 겪고 싶지는 않고/ 보는 건 괜찮을 수 있잖아” 사랑으로 인해 벌어지는 어떤 상태의 장면, 고통을 내가 겪고 싶지는 않지만 타인이 감당해 내야하는 고통, 슬픔, 비극을 적당한 거리에서 관조하려는 잔인하고도 끔찍한 인간의 욕망을 시각화시켜 보려는 마음은 대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그것이 질투였을까? 사랑이 대체 뭐기에. 이토록 섬뜩한 진실을 해부하고 베어버리는 칼이 되어 “칼로 아주 얇게 입술을 저미는 일”이라는 문장에 도달하게 되는지.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것도 잊고 몰입했던 이 여름의 시가 이실비의 「파사」입니다. 202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실비의 첫 시집 『오해와 오후의 해』로 이 무더위를 건너고 있습니다.
◾김뱅상 – 반갑습니다. 사이펀문학회가 적극 나서 이런 지면을 마련해주시니 독자의 소통공간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무척 고무적인 것 같아요. 저도 많은 시집 속에서 골라내기가 참 힘들었지만, 이 시집은 꼭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김휼 시인의 『받아요, 한 다발의 침묵』(문학들, 2026)입니다.
김휼 시인은 저와 같은 해인 2017년 《열린시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한국기독공보》 및 《국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시집으로는 『그곳엔 두 개의 달이 있었다』, 『너의 밤으로 갈까』, 사진 시집 『말에서 멀어지는 순간』, 전자시집 『슬픔의 바깥』이 있습니다. 열린시학 작품상, 목포문학상 본상, 제주4.3문학상 등을 수상했더군요. 10여 년의 문단활동에서 많은 흔적들을 남기신 것 같아요.
시인은 언어를 얼마만큼 잘 요리하느냐에 따라 글의 맛이 달라진다고 봅니다. 이 시집은 언어를 요리하는 시집 같습니다. 시 대부분은 첫 연에서부터 압도적인 시적 묘사를 가져옵니다. 매혹이 있기에 리듬을 즐길 수 있습니다. 문장의 씨줄과 날줄은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결이 매우 곱습니다.
시집 대부분은 담양을 소재로 한 시들로 엮여 있습니다. 이미 알려진 명소들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삶의 의미를 비추는 시적 공간으로 완성했더군요. 새롭게 천착된 문장들은 독자에게 읽는 즐거움을 가져다줍니다. 지식을 전달하려는 것보다 자신의 깊숙한 내면의 소리를 전달하려 할 때 독자의 감동은 배가 된다고 봅니다. 특유의 언어 감각과 사유체계에 밑줄을 긋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담양의 숨은 비경을 한 권의 시집 속에 새롭게 담아낸 것들을 눈여겨보았습니다. 김휼 시인의 시집을 보니 다음 여행지는 담양으로 떠나 자연의 내면을 좀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시간을 마련해보고 싶습니다. 추천시를 보시면 독자들도 아마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실 것 같습니다.
꽃을 휘젓던 봄은 짧았습니다
모자를 벗고 내려온 도토리 몇 알
나무 아랜 누군가의 소원이 담긴 소박한 제물이 놓여 있습니다
도토리 한 알 같은 내 바람을 거기 보태 봅니다
지상의 열매는 왜 둥근 걸까요
흘러가는 것들이 만드는 곡선에 대해 참나무 아래를 거닐며 생각해 봅니다
청려장이 닳도록 강산풍월 거닐며 되뇌던 말
넓거든 길지나 말고 푸르거든 희지나 말지
사라진 목소리를 기억하는 나무는
못다 한 뜻을 두고 떠나는 선비의 굽은 등을 지켜보았겠죠
빛이 먼 곳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참나무 같던 다짐도 꽃과 함께 지고
목소리 떠난 자리 헝클어진 메아리만 남았습니다
그곳으로
팔랑이며 내려앉는 고요는
어제를 지켜낸 오늘의 순간에게 보내는 한 다발의 침묵
받아요, 꽃인 양
면할 수 없는 이 적막을 환호의 바깥이라 여겨주세요
한 발 물러앉았던 계절이 숨을 고릅니다
잎 떨궈 낸 가지마다 높이를 더하고
높아진 그 간극으로 스민 저세상의 것인 듯한 어스름
도토리 한 알 툭, 떨어집니다
「받아요, 한 다발의 침묵-면앙정에서」
*면앙정: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1533년 송순(宋純)이 건립한 정자로 이황(李滉)을 비롯하여 강호제현들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길러내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송순이 『면앙정가』 『면앙정 삼언가』 등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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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를 품고 웅크린 채 겨울을 지냈다 가끔 지나가는 햇살의 등을 멀리서 힘없이 바라보며 손가락을 접어보곤 했다 숨죽인 골목의 등이 느리게 굳어갔다
속수무책 엎드려있었다 보이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 것들에게 밀려 희미해지는 동안 귀룽나무 가지의 기울기가 조금씩 달라졌다
몇 차례 봄비가 굳은 마음에 스미고 별들이 내려와 온기를 보태었다 혼자서도 계절은 부풀어 오르고 누군가 땅문 두드리는 소리, 놀란 흙 밖에서 한 줄기 빛이 흘러들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허공
가늘고 빛나는 줄기를 붙잡고 발끝에 힘을 주었다
꿈이라 불리는 높이에 창을 내고 신들은 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홀로 서슬 위를 맨발로 걸어야 했다 흘러내리는 그림자를 붙들고 공중을 건너는 동안 풍상에 베인 가슴, 돋는 쓰라림을 사람들은 향기라 불렀다
나는 직벽을 껴안고 빛의 루트를 개척하는 매혹의 구도자
저 요원한 꿈의 영토에 닿으려면
붉은 가시의 시간을 마저 건너야 한다
-「클라이밍 로즈-죽화경에서」
*죽화경: 담양군 봉산면 유산길 73-16. 동양을 상징하는 대나무와 서양을 상징하는 장미가 어우러진 전통과 현대의 융, 복합 남도 풍경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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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피로 살아가는 나무는
뿌리와 가지가 다른 복음을 지니고 있어
땅속과 하늘 위로 각기 뻗어나간다
낮은 곳으로 향하는 뿌리는 고요의 노선을 달리고
높은 곳을 선호하는 가지는 진보의 노선을 달리고
접점이 어긋난 그들이 성과 속의 경합을 벌일 때마다
가지 끝에 매달린 통증이 펄럭였다
뿌리와 가지의 신념이 충돌한 흔적으로 남은
어지러운 나이테
죽은 뒤에야 그의 중심을 읽을 수 있는 건 다행일까 불행일까
한 몸으로 하늘과 땅을 살아내는 나무들
그 빛나는 그늘에 앉아
뿌리의 힘으로 공중을 뻗어가는 가지를 보며 생각한다
몸 안팎을 오가는 잎사귀는
경직된 두 노선 사이 부드러운 개입일 거라고,
-「부드러운 개입-관방제림을 거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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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에 읽은 시>
김휼 시인의 시집을 재미나게 읽었다면 지난 계절에 읽은 한 편의 시는 독특한 이미지로 시선을 끌어 추천합니다. 제주에서 발간되는 《다층》에 발표된 김미월 시인의 시입니다.
방의 감정은 수건에 있는 걸까
거울은 늘 정면에 있다 아이가 엎드려 그림을 그린다 발이 없는 낙타가 웅덩이처럼 고인다 창문은 조용하고 의자는 복도에 심어져 있다 뿌리는 땅속에만 있는 걸까 낙타가 길게 운다 울음의 처음은 멀리 있다 칸나가 시든다 내일을 먼저 산 걸까 저녁에 만날지도 모를 아이는 손이 파란색일까 새는 나무보다 키가 크고 집들은 사람을 숨겨 놓았다 문을 열고 낙타를 풀어준다 킁킁거리며 돌아다니는 구름들 흰색은 오늘도 할 일을 다한 표정이다
커튼 뒤로 저녁이 펄럭거렸다
-김미월, 「1204」(《다층》, 2026년 여름)
《다층》 2026년 여름호 젊은 시인선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발표된 3편 모두 발상이 신선했습니다. ‘방의 감정은 수건에 있는 걸까’라는 첫 문장부터 흥미롭습니다. 우린 몸이 찌뿌둥하면 샤워를 합니다. 샤워를 하면 젖은 것들은 수건이 가져갑니다. 시 속의 거울은 단순히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물건이 아니라, 화자가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마음속에 쌓아둔 감정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그것들을 아이와 낙타, 의자와 칸나, 새와 구름 같은 낯선 이미지들로 펼쳐 보입니다. 시를 읽는 동안 우리는 익숙한 방 안에 있으면서도 어느 순간 꿈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문을 열고 낙타를 풀어준다’는 문장은 오래 품고 있던 감정이나 상처를 이제는 놓아주어야 한다는 의미로 느껴집니다. 살면서 무엇이 옳은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 가두어 둔 아픈 것들을 언제까지나 붙잡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그것들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저녁은 마음속에 쌓아둔 것들을 내려놓기 좋은 시간입니다.
짧은 시이지만 그 안에는 하나의 방과 한 사람의 마음, 그리고 그 마음속에 갇혀 있던 여러 감정이 들어 있습니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미지들이 마치 짧은 소설처럼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이 시는 마음속에 가두어 둔 것들을 이제 놓아주고, 저녁이라는 새로운 시간으로 건너가는 신선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순아 – 이렇게 마주하여 최근의 한국시단을 훑어본다는 점에서 참 의의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저는 신해욱 시인의 시집 『자연의 가장자리와 자연사』(봄날의 책, 2024)를 가져와 보았습니다. 이 책은 신해욱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인데요, 2024년에 출간된 시집이라 신간이라기에는 다소 시간이 지난 시집이라 할 수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주목해볼 만한 시집이라 가져왔습니다. 이 시집은 시인이 이전에 펴낸 시집들과 마찬가지로 형식적 실험을 시도하는 시들로 가득해서 살짝 난해하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전반적 내용은, 모든 생명이 절멸의 위기에 처한 폐허 위에서 역설적으로 생명의 기원을 탐색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저는 이러한 경향이 ‘자본세’, ‘인류세’라는 이 시대에 응답하는 시의 또 다른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특징적인 것은, 시의 화자들이 현실의 중력장에서 비껴 나 있는 존재, 곧 유령과 같은 비인(非人)의 형태로 출현하고 있다는 것, 그 음성이 ‘우리’라는 복수적 주체로 발화되고 있다는 것인데요, 그것은 자본주의적 가치나 공동체의 질서에 순응할 수 없는 시의 수사일 테지요. 흥미로운 것은 현실의 영토에서 비껴나 있는 ‘주체들-우리들’이 마주하는 현장이 지난 역사의 현장이나 신화적 요소와 겹쳐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시집 제목과 동명의 표제시 「자연의 가장자리와 자연사」 가운데는 제주 4·3의 아픔을 품은 ‘다랑쉬돌’, ‘다랑쉬굴’ 같은 상징물도 등장하고, 우리의 전래동요나 이국의 신화도 등장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신화적 요소를 물질성(신체 기관)의 언어와 결합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삶과 죽음, 물질(신체)과 상징(정신), 역사와 신화의 경계가 무(無)화된 시적 공간과 ‘우리들’이라는 복수적 화자들의 발화는 새로운 의미 생성에 절묘하게 어울렸습니다. 시집 제목의 자연사는 어떤 목적을 두고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역사(History)를 거부하고, 물질(신체) 자체가 가진 활력이나 어떤 목적도 소유의식도 없이 스스로 움직이면서 얽히고설키는 자연사(Natural History), 혹은 그런 존재론적 관계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암튼 제각기 다르게 읽히는 시편들을 어떤 희망의 가능성으로 해석해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몇 편을 옮겨보겠습니다.
까마귀가 울었다. 열한 시의 방향이었다.
까악 까악. 까악 까악. 시계탑의 죽은 시계 위에 올라. 죽은 열한 시의 방향으로. 우리는 호연지기를 키웠다.
뷰가 죽여. 봐봐.
공기도 죽인다. 목욕탕의 죽은 굴뚝까지. 캬바레의 지붕까지. 비닐하우스의 곡선까지. 안식원까지. 살풍경이야. 우리는 막다른 자세로. 가슴을 폈다.
죽은 열한 시의 방향으로. 우리는 삐딱했다. 삐딱하고 명랑했다. 건방지고 아름다웠다.
회상에 젖은 것은 아니었는데. 까마구야, 까마구야, 아름다운 기분에 떠밀려 힘차게 추락할 것만 같았다.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청명이었다.
은밀하고 어리석은 삶의 냄새가 바람에 실려 코끝을 스쳤다.
- 「오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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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밭은 깊었다.
이상하다. 재가 날렸는데. 매캐했는데. 우리는 초토를 헤매고 있었는데. 눈밭이 깊었다.
다 왔나 봐.
잿더미 속에 흩어진 다랑쉬돌을 따라. 저쪽인가. 우리는 다랑쉬돌을 흘리며. 흘린 돌을 주우며. 바람이 불었지. 비틀거렸지. 우리는 비틀거렸는데. 눈이 매웠는데. 눈을 비비자 계절에 휩쓸려. 다 온 거야.
불시착을 한 것 같은데. 우리는 지리에 밝았다.
다 왔어. 우리는 그을음을 덮어쓴 채로. 푹신하다. 눈밭에 묻혀. 소리 소문 없이. 빠짐없이. 다행이야. 다랑쉬돌을 품고, 다 온 거야. 다랑쉬굴에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불을 피웠다.
비로소 일렁이는 것. 비로소 따뜻한 것. 그림자는 커다란 것.
우리는 우리의 불을 쬐었다.
긴장은 풀리는 것. 발은 녹는 것. 우리는 기운을 내어. 다랑쉬! 아끈다랑쉬! 다랑쉬말을 익혔다.
우리는 동면에 들기로 했다.
우리의 숨구멍을 열고. 동그랗구나. 우리의 돌을 토닥이며. 다랑쉬, 다랑쉬, 자장가를 불렀다.
밤은 길었다.
눈밭은 깊었다.
- 「자연의 가장자리와 자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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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종은 끝났다.
남의 텃밭에. 남의 고랑에. 누가 호미를 들고. 남의 보리를. 남의 콩팥을. 남의 혈구를.
타박타박 타박네야. 왜 왔니.남의 땅에.구슬픈 노래를 흥얼거리며. 꽈리와 창자를. 난자와 각막을. 쓸개와 말린 간을.
무엇이 자랄까.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남의 볏짚 속에 숨어. 왜 왔니 왜 왔니남의 틈바구니로. 아지랑이가 핀다. 흙이 들뜬다. 술렁이고 있어. 움이 트려나 봐.
간에는 생간과 말린 간이 있는데. 말린 간에는 신성한 숨결이 들어 있다. 이히요틀이라 부른대. 바다 건너의 외래종이래*
창자에는 큰창자와 작은창자가 있는데. 큰창자에는 생명이 우글거린대. 기분이 구불거린대.**
왜 왔니 왜 왔니만감이 교차한대……
왜 왔니 왜 왔니기억력이 왕성하대……
우리는 향수에 젖었다.
우리는 터주가 되어. 남의 터에. 심장이 뛴다. 삶은 이식된다. 넋은 전파된다. 뿌리를 내릴 것만 같았다.
뛰는구나. 우리는 익숙했다.
나른했다. 남의 그늘아래. 남의 양분 속에. 남의 자유를 만끽하기. 남의 망각에 심취하기. 그래놓고 소스라치기. 그래놓고 무표정으로.
우리는 격렬한 무표정으로. 떡잎은 몇 장일까. 삼매경에 들었다.
기원으로부터 우리는 멀었다.
기원전이었다. 기다릴 수 있었다.
- 「자연의 가장자리와 자연사」
*이히요틀(ihiyotl) : 아즈테카 신화
**장-뇌 축(The gut-brain axis)이론
신해욱 시인의 시집 『자연의 가장자리와 자연사』 속의 시 3편을 소개해보았습니다. 지금 다시 읽어도 그 감칠맛은 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계절의 시를 고르는 작업들이 만만치가 않아 고심 끝에 이번에는 준비를 미루었습니다. 하나를 고르면 다른 한 작품이 눈에 밟히고... 하여간 힘든 행복한 시 읽기였음을 고백합니다.
◾이종암-저는 회의 때마다 포항에서 오지만, 오는 길이 언제나 즐겁습니다. 아무래도 이 자리가 진지하게 시를 논하는 자리이기 때문이겠지요.
지난 계절에 발간된 시집들 가운데 필자가 주목한 것은 김주대 시인의 『모든 흔들리는 눈망울 위에』 (걷는 사람, 2026)와 김은령의 『서쪽으로 부는 바람』(애지, 2026)이라는 두 권의 시집입니다. 김주대의 시집은 윤석열이 감행한 12.3내란과 같은 시대 현실에 적극 응전(應戰)했던 작품들이 한 측면을 이룬다면, 인민군여성동맹 위원장 외할머니와 그의 딸인 어머니가 겪었던 신산했던 삶과 말년에 이른 어머니의 입말을 통해서 드러나는 삶의 진실을 담고 있는 시편들이 또 다른 한 측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난 7월 25일 이육사문학상 수상으로 그간 김주대 시인이 이룩한 시적 성과는 온전한 평가를 받은 바가 있습니다. 두 시집 중 이번 사이펀 지면에는 김은령 시인의 시집을 추천할까 합니다.
김은령 시인의 새 시집 『서쪽으로 부는 바람』은 그의 3시집 『잠시 위탁했다』(문예미학사, 2018) 이후 8년 만에 펴낸 시집인데, 앞의 시집들에 비해 괄목상대의 높은 시적 성과를 이룩했다는 세간의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시집 속에 수록된 「파초」 라는 시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일찍 머리를 깎고 입산하여 2년 남짓 수행하다가 건강상의 문제로 환속한 독실한 불자 시인입니다. 그의 시편들은 남도의 황톳빛 흙이 그러하듯 어떤 곡식도 잘 키워낼 찰진 언어들로 여며져 있으며, 또 절 뒤편의 마애불이 그러하듯 화려한 색채는 아니지만 은은하고 깊은 불교적 사유를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의 시집 속에서 「봉발」이라는 시편을 함께 읽어봅니다.
가창 행정들판이
차랑차랑 논물 가두는 때
그 들판 한가운데 홀로 우뚝한 이팝나무
사백 년 된 몸을 또 한 번 푼다
흰 우레로 와서
허공에서 터지는 섬광!
눈알이 얼얼한데
눈 깜빡할 틈도 주지 않고
그 얼얼함을 밀치고 확, 번지는
밥 냄새
곧,
먼 데서 누가 또 달려올 것이다
-김은령, 「봉발奉鉢」
시의 제목인 ‘봉발’은 승려의 바리때를 말하는 밥그릇, 즉 발우(鉢盂)를 의미합니다. 양산 통도사에 이 봉발대(奉鉢臺)가 지금도 온전히 보존되어 남아있습니다. 대구에서 청도로 넘어가는 가창면 행정리 들 한복판에 사백 년 된 이팝나무가 꽃을 활짝 핀 모습을 봉발(奉鉢)이라고 명명하면서 시는 시작됩니다. 꽃이 활짝 핀 그 순간을 시각, 촉각, 청각, 후각 등 다양한 이미지로 포착하여 감각적이면서도 실감나게 잘 그려놓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얀 이팝꽃나무를 부처님이나 조상께 올리는 발우공양의 그 하얀 쌀밥으로 바라본 것인데, 시의 마지막 행 “먼 데서 누가 또 달려올 것이다”라는 표현은 공양을 주고받는 이심전심의 상응(相應)을 슬쩍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 길지도 않은 짧은 시행 속에서 참 많은 의미를 위 시는 다채롭게 담아내고 있어 놀랍습니다. 여러분은 위 시를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또 다른 시 「고요의 명치」는 녹음이 울울창창 번져가던 여름날에 들른 가야산 해인사 앞 전통 찻집에서 맞닥뜨린 순간을 포착한 작품인데요, 불교적 사유인 고요와 선(禪)의 깨달음을 선명히 드러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가야산 자락 한 귀퉁이 뻘쭘하게 깔고 앉은 찻집 있다
명선茗禪이란 간판 풍경처럼 걸어 놓고 고요를 판다
목수국 꽃잎 여는 계절, 여린 찻잎 풋 향 탐하는 중에
차탁 건너 유리창 밖에서 기척이 났다
생기 등등한 푸른 것들 틈새, 꽃이라니
진록의 온갖 것들 헤집고
기어코 목울대 길게 뽑아 얼굴 들이미는
딱 한 송이 백합!
禪, 그것의 중심을 걷어차 버린다
-이은령, 「고요의 명치」
<이 계절에 읽은 시>
지난 계절에 발간된 각종 문예지에 수록된 여러 시편 가운데 제가 주목했던 작품은 《유심》 2026년 여름호에 발표된 문태준의 「물의 산 물의 계곡」입니다. 바닷가 도시 포항에서 밥벌이를 한 지도 35년이나 되었건만 바다를 제재로 한 괜찮은 시 한 편 얻지 못해 민망한 필자를 더욱 주눅들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작년 연말에 발간된 새 시집 『시 한 편 읽을 시간』(난다, 2025)에서 만난 정일근의 「쇄」는 바닷가의 밀물과 썰물로 오가는 파도를 “판판이 살아 있는 개정판 찍어내는” ‘쇄’라고 명명(命名)하고 노래를 하여 필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더니, 문태준은 바다 한가운데 하얗게 솟아나고 무너지는 파도를 ‘물의 산 물의 계곡’이라 이름 부르며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봄을 기다려 어제도 오늘도 바닷가 모래사장에 찾아갔어요 모래사장에는 물결무늬가 가득했어요 낙엽처럼 말라버린 물결, 파도 껍데기가 흐트러져 있었어요 나는 저기 바다 한가운데에 솟고 무너지는 물의 산 물의 계곡을 보았어요 돌아오는 봄이 앓으며 진저리를 쳤어요 물의 산 물의 계곡은 들판 같고 시장市場 같고 생활의 흥정하는 목소리 같았지만, 나는 물의 산 물의 계곡의 탄식을 들었어요 거기 내 집도 보였어요 그 집이 마음이라면 작년 가을 꽃밭 머리에 수선화 구근을 심어놓았던 내 마음이 보였어요
물의 산 물의 계곡을 건너 봄이 오면 물속에 해초가 바로 서고 평끌 지나간 자리 같은 물 위를 가마우지가 헤엄쳐 가겠지요 그러면 저 비탄의 바닷가 모래사장에 봄의 화첩을 펼쳐놓겠지요 말라버린 물결무늬에서 파랗게 싹이 돋겠지요
-문태준, 「물의 산 물의 계곡」(《유심》, 2026년 여름)
시인의 눈길이 놀랍습니다. 문태준 시인은 바다 한가운데서 ‘물의 산 물의 계곡’을 봅니다. 그런데 그 ‘물의 산 물의 계곡’은 “들판 같고 시장市場 같고 생활의 흥정하는 목소리 같”다는 데서 알 수 있듯, 그것은 우리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구체적 삶과 분리되어 있는 게 결코 아닙니다. ‘물의 산 물의 계곡’은 물론 ‘뭍의 산 뭍의 계곡’도 모두 한 몸뚱이의 지구 생명(生命)입니다. 그런데 문태준 시인이 토해내는 “돌아오는 봄이 앓으며 진저리를 쳤어요”, “나는 물의 산 물의 계곡의 탄식을 들었어요” 같은 시구는 인간의 한정 없는 욕망 추구의 결과로 오늘날 끊어지고 무너져가는 지구 생태계의 심각성을 말하는 듯합니다. 지금 우리가 지구 곳곳에서 목도하고 겪고 있는 이상 기후와 그로 인한 끔찍한 재앙이 바로 그것입니다. 단순히 봄이 아니고 겨울이어서 “낙엽처럼 말라버린 물결, 파도 껍데기가 흐트러져 있었어요”라고 시인은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2연에서 “봄이 오면”이라는 조건을 달고 있지만, 봄의 화첩이 펼쳐지고 말라버린 물결에서 파란 싹이 돋아날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의 산 물의 계곡에 봄을 오게 하려면 “작년 가을 꽃밭 머리에 수선화 구근을 심어놓”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하겠지요? 상대를 배척하지 않고 받아 안는 공존과 사랑의 마음이 살림의 길입니다. 위 시를 생태적 문제로 연결한 제 해석이 너무 과도한 것인가요?
최근 제 주변의 문인들 가운데 큰 병으로 아프다는 소식이 자주 전해져 옵니다. 1999년 포항에서 시동인 <푸른시>를 결성하여 시작의 첫걸음을 함께 내디뎠던 내 오랜 글벗 권선희 시인도 지금 많이 아픕니다. 두어 해 전 유방암이 재발하여 지금은 몸 여기저기 전이되어 많이 아픈데요, 그 몸 아픈 이야기를 ‘서쪽’에 빗대어 쓴 시 한 편을 부산에서 발간되는 계간지 《신생》 2026년 여름호에서 읽었습니다.
새가 들어갔다 새를 삼킨 서쪽이 몹시 붉어 한참을 바라보았지만 서쪽이 새를 뱉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보다 늦게 병에 든 새는 나보다 먼저 서쪽이 되었다
병이란 게 익숙해지니 제법 복된 삶인 것도 같았다 숨을 끝까지 조였다가 풀어주면서 서쪽을 향하는 통증이, 노을이 물어다 주는 하루하루를 받아먹고 무럭무럭 죽어가는 몸이, 신의 변심을 의심하며 서쪽과 새와 당신과 나를 저울에 올리는 숱한 저녁이
새는 저녁별로 안부를 물어 오지만 당신을 생각하면 아직은 서쪽이 될 수 없다 서쪽이 당신이라는 통증 꽉 틀어쥔 낙원이 아니라면 조금만 더 성호를 긋다가, 성호를 긋다가
권선희, 「서쪽」(《신생》, 2026년 여름)
위 시에서 말하는 ‘서쪽’은 노을이 붉게 타오르다 끝내 사위어 깜깜한 어둠이 되는 죽음의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권선희 시인아, “노을이 물어다 주는 하루하루를 받아먹고 무럭무럭 죽어가는 몸”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닥뜨려 무너져가는 제 몸을, 서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제 몸을 대상화하여 이렇게 비장한 노래를 부르다니요? 비장하고도 서늘한, 높고도 깊은 시구를 거느리고 있는 「서쪽」의 행간을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눈물을 머금고 위 시를 또다시 읽은 날 아내와 함께 그간 그의 시와 한 몸뚱이었던 소읍(小邑) 구룡포를 찾아갔습니다. 구룡포 시장 입구 함흥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청소년수련관 뒤편 해봉사의 배롱나무를 친견하러 갔습니다. 권선희 시집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창비, 2024)에 「해봉사 목백일홍」이라는 그녀의 시가 수록되어 있지요. 2년 전과는 달리 올해 해봉사 목백일홍 꽃은 타는 놀처럼 꽃대궐을 이뤄 장엄하였습니다. 그 장관을 권선희 시인에게 곧장 사진으로 보내줬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권선희의 신작시 「서쪽」에서 2연과 3연에서 거듭거듭 완결 짓지 못하고 미완의 문장으로 토해내는 저 시구들은 또 어떻게 읽어야 하는 것입니까?
◾정 훈 – 모두 한자리에서 자주 뵈니 좋습니다. 요즘 발간시집들이 많아 시집을 선정하는 일은 참으로 고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까운 곳부터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주목한 시집은 경남 김해에서 활동하는 금지은 시인의 시집 『겨울로 가는 손금』(사이펀, 2026)입니다. 사이펀 출판사에서 의욕적으로 펴내는 현대시인선으로 나왔는데, ‘붉게 핀 당신의 목 언저리 그늘에 마음을 뉘다’는 제목의 서평을 준비하다 주목시집으로 추천합니다.
이번 시집 『겨울로 가는 손금』에서는 그리움이 지나간 자리를 다시 더듬는 눈길에 서리는 슬픔을 봅니다. 그러나 슬픔은 온전한 울음을 쏟아부은 곳에서 자라납니다. 그래서 축축한 흐느낌이 아니라 바싹 마른 회오(悔悟)입니다. 금지은 시집 『겨울로 가는 손금』은 멀리 떠난 자리에 한참 머물다 되돌아가는 시인의 정신 여정이 가득합니다. 길을 걸으며 다짐하는 말간 꿈과 함께 이 여정에서 진득하게 달라붙는 시간과 사람이 여울처럼 시인의 등을 떠미는 풍경이 오롯하게 나타납니다. 이 풍경속으로 들어가면 지난 생각과 감정의 실타래가 얼음처럼 단단한 투명으로 압착되기에, 더운 손으로 매만지면 조금씩 흘러내리는 수분으로 조각조각 바닥을 적시는 기분입니다. 아래에서부터 젖으며 올라오는 생(生)의 형식과 음률에 조용히 눈을 맞추면서 온전히 마음을 내맡기는 언어가 찬찬한 걸음으로 독자를 향해 다가오는 듯 솔깃합니다. 눈앞에 멈춘 걸음을 훑으면 갑작스럽거나 낯설지 않고 차분한 세계의 눈동자에 어린 촉감이 생기롭게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가령, “산은 안개를 내려놓고/ 눈 끝은 무언가를 잊은 듯/ 풍경에 젖어 들고/ 음악처럼 퍼지던 빗방울과/ 상실의 노랫말 하나가/ 네 목울대를 간지럽히”(「하지」)거나, “골목은 고요했다/ 간간이 고양이 울음소리만 들릴 뿐/ 모든 것들은 침묵을 먼저 배웠다// 어떤 목련은 조용히 떨어지고/ 어떤 목련은 붉은 몽우리로 남고”(「목련꽃으로 너는」)처럼 시인의 눈길이 닿는 세계의 대상과 형식은 아주 오래전부터 마치 그렇게 생동하는 호흡으로 다가오지만, 그 얼굴에는 깊은 주름처럼 상실과 비애의 음성이 흐르고 있다는 점 또한 느낄 수 있습니다.
환희와 비애가 함께 손을 잡고 시인의 눈 속으로 들어오는 아이러니한 삶의 양가성이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주제가 아니겠는가 싶어요. 빛과 그림자, 기쁨과 눈물, 고요와 심란, 선명한 낮의 이미지와 웅크려 달라붙은 어두운 적막 등이 교차하면서 그리는 시편들을 들여다보면 더러 삶의 행로를 떠받치며 추동하는 에너지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시인에게 세계는 걸어가야 할 길이자 응시하면서 눈길로 짚어야 하는 형식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시집에는 그간 시인이 들른 장소나 여행지가 많이 나옵니다. ‘길 위의 시인’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 금지은의 시 세계는 지난 생의 추억과 그리움, 그리고 이 모두를 앗아가는 시간의 무자비한 흐름과 변화를 묵상하는 언어로 색칠되어 있습니다. 낯선 곳에 발을 딛으면서 느끼는 생경함이나 설렘보다는, 마치 이미 그곳에 존재해 왔던 대상과 처음부터 함께였다는 동질감을 안겨줍니다. 대상을 객관화하여 바라보되, 대상을 떠받치는 오래된 ‘현존’에 스며든 의식이 천천히 밀려오는 밀물 되어 독자의 몸을 감싸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붙든 채 묵묵히 밀려간다/ 꽃과 바람과 비와 쭉 뻗은 철길을 본다는 것은/ 변두리에서 이삭을 줍는 일,// 잠시 멈춘 발걸음,/ 숨죽여/ 너를 듣는다/ 서로의 눈빛에 눌려// 우리는 쓰러질 듯 서 있다”(「북천역에서」)와 같은 형상화에서 이를 봅니다.
주어진 세계를 벗어나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길목에 잠시 멈춰서서 지난 공간과 시간을 돌아보는 자리에 뭉글하게 피어오르는 감각을 시인은 가만히 바라봅니다. 많은 이들과 풍경과 사건을 접촉하면서 떠나보내는 이 등 자락에 맺힌 생의 지도에는 언제든 부르고 싶은 ‘당신’의 목 언저리를 어루만지다 생채기처럼 그늘진 흉터, 그 어둑어둑한 세계 속으로 온 마음을 뉘려는 의지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요. 금지은 시집 『겨울로 가는 손금』은 가혹하리만치 차가웠던 지난 계절의 그림자를 걷어붙이고 생경하지만 여전히 낯익은 또 다른 세계로 곧장 들어서려는 시인의 다짐 하나 오롯하게 서 있는 표지이자 이정표입니다.
밖에 비는 오고
억수같이 쏟아지고
너와 나는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앉았다
계곡 아래 바람이 우리를 지나가고
물오른 잎사귀가 먼저 떨었다
산은 안개를 내려놓고
눈 끝은 무언가를 잊은 듯
풍경에 젖어 들고
음악처럼 퍼지던 빗방울과
상실의 노랫말 하나가
내 목울대를 간지럽히고
조용한 당신은 볕에 구워진 돌처럼 곁에 앉아 있다
떨어지는 빗방울은 잎맥을 따라 흘러내리고
백반에 가지나물이 물컹거리고
구운 고등어 한 마리를 부지런히 발라 먹었다
자주 보이던 구멍에 붉은 개미가 사라지고
따뜻한 바람은 굳게 닫힌 철문을 열었다
여름은 온전히 우리의 계절이 되었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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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 속에서 움튼 꿈이 훼손되었다
사탕을 줄까
회초리를 줄까
영화 속 아이는 장기가 파열되었다
복부가 차오르자 아이 눈망울은
바닥의 얼룩을 닮아갔다
식은땀이 아이 등을 타고 흐를 때
너는 힘없이 물었다
왜 사랑은 때리는 거야?
숟가락이 식탁에 부딪히자
엄마는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몸 곳곳의 채찍이 얼룩말을 새겼다
내 몸에서 뛰쳐나온 얼룩말은 푸른 초원을 달릴 것만 같았다
헐떡이며,
헐떡이며,
먼 데 있는 바닷가도 달려보고 싶었지만
붉은 고무통 물 속에서
짧은 숨만 쉬었다
골목은 고요했다
간간이 고양이 울음소리만 들릴 뿐
모든 것들은 침묵을 먼저 배웠다
어떤 목련은 조용히 떨어지고
어떤 목련은 붉은 몽우리로 날고
우리는 아무도
아이의 울음을 듣지 못했다
-「목련꽃으로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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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들판, 햇살은 가볍다
메밀꽃과 코스모스 사이
발끝에서 땅의 열기가 올라온다
우리는 웃는다
야위었지만 단단한 네 웃음이
꽃밭 위로 흔들리며 내 안으로 스며든다
벌들이 꽃 사이를 뒤엉켜 날아다닌다
항암으로 짧아진 그녀의 머리카락이 날린다
내 심장은 살짝 쿵쿵거린다
스크린에 펼쳐진 의사의 소견은 협심증이란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갑자기 빗방울이 날카롭게 흩뿌려진다
꽃잎마다 물방울이 튕기며
붉은 신발 위로 떨어진다
시든 꽃잎 하나가 휘청이며 떨어진다
벌떼가 잠시 우리 주위를 맴돈다
그 안에
북망 같은 어둠이 섞여 있다
우리는 서로를 붙든 채 묵묵히 밀려간다
꽃과 바람과 비와 쭉 뻗은 철길을 본다는 것은
변두리에서 이삭을 줍는 일,
잠시 멈춘 발걸음,
숨죽여
너를 듣는다
서로의 눈빛에 눌려
우리는 쓰러질 듯 서 있다
-「북천역에서」
<이 계절에 읽은 시> 기립하는 말이 영글거나 흩날리거나
저는 시집을 고르는 일도 어려움이 컸지만 방대한 시편들 중에서 한편을 골라내는 지난 계절의 시 읽기도 큰 고역이였습니다. 하지만 그 고역만큼 좋은 시를 읽는 즐거움도 컸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번에 저는 강영은 시인의 시를 한 편 추천합니다. 제가 편집위원으로 있는 사이펀에 발표된 시라서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모처럼 언어의 결을 살리는 시편을 마주했기에 눈에 쉽게 들어온 시입니다.
비문으로 무성해진 풀 사이
감나무가 꽃을 피웠다
벌과 나비의 말 없는 발, 발 없는 말이
햇살의 펜촉 따라 밑줄 긋는다
바람과 햇빛이 채운 순간의 기록이
엉망이 된다
꽃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오후
늘어진 능소화가 붉은 끈처럼
그늘을 뚫는다
그늘 틈으로 매미의 절창이 쏟아진다
예보 없이 날아든
열대성 저기압이 가지와 잎을 잘못 읽는다
바람이 아니라 손길처럼
시선이 아니라 판결처럼
빗줄기가 풋열매를 떨어뜨린다
끝내 익지 못하고 떨어진 낙과
흩어진 기호들이 발치에 뒹군다
버려진 것도 내 언어의 일부라고
나는 마당에 떨어진 미완의 문장들을
하나씩 주워 든다
그 문장들이 아프다고
여름이 다 가도록
한 계절을 다시 써 내려간다
탈고한 감나무가
붉은 등을 내건다
둥근 발음이다
가을!
강영은, 「문장 줍기」(《사이펀》, 2026년 여름)
강영은의 시 「문장 줍기」를 읽습니다. 문장을 줍는다는 표현은 비유일진대, 지천에 널리고 깔린 풀과 나무 그리고 벌레와 계절의 변화에서 천변만화하는 존재의 낌새와 소식을 언어로 가늠해 보는 시인의 눈길이 미덥습니다. 언어는 로고스며, 이성이며, 말씀입니다. 경전에도 나오는 로고스는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처럼 현상계에 미치는 절대 세계의 작용으로 봄이 마땅합니다. 그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반문한다면 시인이 서두에서 말한 “비문으로 무성해진 풀 사이/ 감나무가 꽃을 피웠다”란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성한 풀 사이에 감나무꽃이 피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봅시다. 감나무는 무슨 일로 꽃을 피웠을까요? 이런 어리석은 물음을 던지는 게 다른 까닭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저 나무는 왜 이파리를 떨구나, 노을은 하늘빛을 어쩌자고 심란하게 뭉개고 있나, 빗줄기와 강물은 왜 흘러 흘러 바다로 모여드나와 같은 의문도 모두 한통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니 우리가 보는 현실계의 모든 형식과 현상은 ‘하나’가 일으킨 마음 자락이 펼치는 프리즘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나는 마당에 떨어진 미완의 문장들을/ 하나씩 주워든다/ 그 문장들이 아프다고/ 여름이 다 가도록/ 한 계절을 다시 써 내려”가는 생각을 불러일으킨 텅 빈 앎을 헤아리다 보면 세상천지 굴러가는 물건들이 건네는 귀엣말쯤 들려오지 않겠는가 싶어요. 말과 사물 사이, 봄과 엿들음 사이, 옴과 한없이 사라지려는 것들 사이에 천천히 일어서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곧 말로 채도彩度를 입히고, 점점이 일어서고 가라앉는 세계가 때때로 무르익거나 공기처럼 가벼워져 우리 사이로 흩날리는 때 어느 문장은 마침표를 찍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장 줍기」는 울림으로 공명하는 사람과 자연의 통 큰 수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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