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한복판에 있는 군. 면적 482.95㎢. 인구 3만 2113(2003). 동쪽은 창녕군·함안군, 서쪽은 산청군·합천군, 남쪽은 함안군·진주시, 북쪽은 합천군과 접해 있다. 군청소재지는 의령읍 중동리.
설명
경상남도 한복판에 있는 군. 면적 482.95㎢. 인구 3만 2113(2003). 동쪽은 창녕군·함안군, 서쪽은 산청군·합천군, 남쪽은 함안군·진주시, 북쪽은 합천군과 접해 있다. 군청소재지는 의령읍 중동리.
역사
신라 때는 장함현(獐含縣)이었고, 757년(경덕왕 16)에 의령현(宜寧縣)으로 개칭하여 함안군에 속하는 현이 되었다. 1413년(태종 13)에는 현감을 두었고,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개정으로 진주부(晉州府) 의령군이 되었다가 96년 경상남도 의령군이 되었다. 1914년 합천군 궁류면(宮柳面)을 편입하여 13개 면으로 편제되었고 79년 의령면(宜寧面)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83년 합천군 적중면(赤中面) 일부를 부림면(富林面)에 편입하였다. 89년 봉수면(鳳樹面)과 대의면(大義面)에 합천군 대양면(大陽面) 오산리(烏山里) 일부와 삼가면(三嘉面) 외토리(外吐里) 일부를 각각 편입하였다. 2003년 현재 1개 읍, 12개 면, 116리로 되어 있다.
자연
지형은 동서로 길고 남북으로 짧게 뻗은 달걀모양으로 남동쪽 일대는 평야가 발달해 있고, 북서쪽 일대는 산지이다. 즉 낙동강 유역을 끼고 있는 낙서면(洛西面)·부림면 일대와 남강 유역을 끼고 있는 지정면(芝正面)·정곡면(正谷面)·용덕면(龍德面)·화정면(華井面)·의령읍 일대는 평야가 발달해 있고, 그 밖의 가례면(嘉禮面)·칠곡면(七谷面)·대의면·봉수면·궁류면 일대는 대체로 산간분지를 이루고 있다. 북동부 경계를 따라 낙동강이 남류하고 남동부에는 남강이 북동류하며, 남강 및 소하천으로 이어지는 완사면에 취락이 형성, 발달하였다. 지질은 경상계에 속하며 사암·역암·이암·혈암 등으로 되어 있다. 기후는 대체로 온난하며 연평균기온 12.9℃, 1월평균기온 -2.2℃, 8월평균기온 24.1℃이며, 연강수량은 1377(2002)㎜이다.
산업·교통
총경지면적 7731ha로 논이 73%, 밭이 27%로 논농사가 많으며, 대부분은 농업에 의지하나 영세농이 많다. 화정면·의령읍·용덕면 일대의 정암평야(鼎巖平野)와 유곡천(柳谷川) 유역의 유곡면(柳谷面)과 부림면 일대의 부림평야가 주곡산지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맥류·서류·두류 및 기타 잡곡류가 산출되며, 연초·누에치기·가축·원예·특용작물 등으로 수입을 올리고 있다. 또한 전 면적의 68%를 차지하는 임야에서는 용재·죽재·연료와 밤나무 등 각종 유실수를 심어 소득을 높이고 있으며, 궁류병풍과 의령 한지는 유명하다. 8개소의 펄프, 종이제품 제조업체가 있으며, 광공업으로는 금·은·구리·고령토·규석 등의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다. 상업활동은 의령읍의 상설시장과 칠곡·부림·궁류 등 4개의 정기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곳으로 철도는 통하지 않지만 의령읍을 중심으로 창녕·마산·합천·산청·진주를 연결하는 국도와 지방도가 발달하여 있고 이들 도로는 함안군을 지나는 남해고속도로와 연결되어 있어 편리하다.
사회·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임진왜란 전에 읍 동쪽에 있다가 1618년(광해군 10) 지금의 위치로 옮겨진 의령향교를 비롯하여 덕곡서원(德谷書院)·태암서원(泰巖書院)·낙산서원(洛山書院)·도계서원(陶溪書院)·신계서원(新溪書院) 등이 있다. 근대교육기관으로는 1907년(순종 1)에 설립한 의신학교(宜新學校)와 1908년에 건립된 창남학교가 최초이다. 그 뒤 10년에 의령공립보통학교가 세워졌으며, 45년에 의령농업전수학교가 개교되어 중등교육이 시작되었다. 2003년 현재 초등학교 14개교, 중학교 9개교(분교 1개교 포함), 고등학교 3개교가 있다. 문화행사로는 의령문화원 주관아래 1972년부터 의령문화제가 매년 4월에 개최되는데, 그 취지는 임진왜란 때 맨 처음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郭再祐)의 용기와 충성심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이 행사는 군내의 각 예술·문화단체들이 참여하는 군민의 제전으로 발전하였다. 한편 1972년 의령탑이 세워졌고, 76년 곽재우의 위패를 모신 충익사(忠翼祠)가 건립되었다. 또한 김성일(金誠一) 휘하에서 의병활동을 한 송암(松巖) 이로(李魯)가 김성일이 죽기까지의 일들을 적은 《용사일기(龍蛇日記)》를 남겼다.
문화재
유물·유적으로는 고구려의 조각품인 연가칠년명금동여래입상(延嘉七年銘金銅如來立像, 국보 119)을 비롯하여 보천사지삼층석탑(寶泉寺址三層石塔, 보물 373). 보천사지부도(보물 472)·곽망우당유물(郭忘憂堂遺物, 보물 671) 등과 바위에 찍힌 1억년 전의 빗방울자국인 신라통중(新羅統中)의 우흔(雨痕, 천연기념물 196)과 유곡면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2) 등의 문화재가 있다. 또한 지방문화재로 중교리 석조여래좌상(中橋里石造如來坐像, 경상남도유형문화재 6)·성황리삼층석탑(城隍里三層石塔, 경상남도유형문화재 114호)·칠정려(七旌閭, 경상남도기념물 35)·송암문집 및 괴당집책판(松巖文集-槐堂集冊板, 경상남도유형문화재 181)·의령향교(경상남도유형문화재 201)·의령덕교리강씨고가(宜寧德橋里姜氏古家, 경상남도민속자료 11) 등이 있다. 또한 용덕면 소상리(潚湘里)에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강수남(姜壽男)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월정(沙月亭)이 있고, 대의면 중촌리(中村里)에는 병자호란 때 허목(許穆)이 은거한 이의정(二宜亭)이 있으며, 궁류면의 평촌리(坪村里)의 유곡천 중류 우안에는 기암괴석의 절경을 이룬 봉황대(鳳凰臺)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