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내려오는 우리동 이름의 유래와 행정구역개편 .의 변천에 따른 동의 역사를 자세히 알려드립니다.
기성동 연혁 및 유래 / 법정동(10개)
- 1914. 03. 01. 대전군 기성면으로 획정
- 1935. 10. 01. 대덕군 기성면 (대전읍부제 실시)
- 1989. 01. 01. 대전직할시 설치에 관한 법률에 의거 대전직할시로
승격과 동시 기성면 전체 대전시로 편입. 서구 기성동으로 발족
흑석동(黑石洞)
옛날엔 금평(琴坪)이라 하였다 그 금평의 우리말은 거믄들이었다. 이 검은들이 후에 와전되어 거문은 검은(黑)으로, 들(坪)으 돌(石)로 변하여 흑석으로 변용 되었다.
매노동(梅老洞)
기성동의 중앙에 자리하여 있는 법정동으로 매화낙지(梅花落地) 형국(形局)의 명당자리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풍수지리적 명칭이다.
산직동(山直洞)
옛날부터 연안 이씨네의 산직이 집이 있었서 산직동이라 붙여졌다고 전해지는가 하면 달리 산직동 일대에 장군대좌(將軍大坐). 옥토망월(玉 望月).금계포란(金鷄抱卵) 세 명당이 일렬로 늘어져 있어 전체로서 산(山)자를 이루고 있으므로 산직(山直)동이 되었다 한다.
장안동(壯安洞)
대둔산(大屯山)에 뿌리를 둔 산줄기가 뻗어치어 산수가 장엄하고 아름다워서 붙여 졌다고 전하는 이곳은 또한 임진왜란당시 장씨가 난을피해 장군봉 아래 베틀굴에서 숨어 3년간 베를짜며 살다가 비로소 지금의 원장안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하여 원장안이 되었다 하며 얼마전까지 이근처 전답과 산은 거의가 장씨일가의 소유였다고 한다.
평촌동(坪村洞)
옛날에는 진벌 또는 질마루라고 부르던 곳으로 잦은 산등선이에서 진흙이 나는 마을이기에 길지(吉地)라 하여 명당 찾는 풍수객들이 자주 찾았다고 전한다. 일설에는 신하신(臣)자 형국이라 하여 명사들이 드나드는 지방이었다.
오동(五洞)
오동은 본래 오리(五里)였다. 물에 떠서 노니는 오리 형국의 명당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이와 달리 골이 짧아 오리밖에 안된다는 뜻에서 유래된 명칭이라고도 한다.
우명동(牛鳴洞)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으로 계곡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여울을 이루어 울었다하여 울여울 또는 울어동이라 불렀다는데, 그 뒤 표기가 변하여 우명(牛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내력이다.
원정동(元亭洞)
마을 앞에 큰 정자가 있어 원정이라고 부르며, 동쪽에는 용촌동과 접해 있고, 서쪽에는 두계천을 경계로 논산시 두마면과 시계를 이루고 있다.
용촌동(龍村洞)
마을입구에 용두처럼 생긴 바위가 있고, 마을 뒤에는 또한 용처럼 생긴 해발 133mdml 용산(龍山)이 있어서 마치 그 형상이 용이 누워 있는 것처럼 생겼다고 하여 그리 부른다.
봉곡동(鳳谷洞)
봉곡동은 원래 진잠군 상남면의 지역으로서 비봉귀소형(飛鳳歸巢形)의 명당이 있다 하여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나무가 무성하고 바위가 많아 부엉이가 많아 살았으므로 부엉골 또는 봉곡이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첫댓글 고생하셨네요^^
근데 광역시로 승격인데 언제적 직할시인가요??
지방자치단체로 특별시(特別市)·도(道)와 함께 상급지방자치단체이다. 원래 직할시라고 했는데,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를 앞두고 중앙집권적 의미를 없애기 위해 광역시로 이름이 바뀌었다.→ 직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