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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일시: 2004년 3월 17일 오전 9시30분
사고 상황: 학생들 해외 연수 준비를 위해 새벽 3시에 학교에서 출발하여 서울로 향하던 중 중간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난 수면 부족으로 누워서 잠을 자고 우리 학생이 운전 하고있었다. 이천 분기점 부근이었다. 뒷차가 빗길에 미끄러졌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달려와서와 우리 차 뒷부분을 박고 그 충격으로 자체로 뺑그르돌아 또다시 우리 차 옆을 박았다. 차문이 열리면서 나는 10미터 이상 나가 떨어졌다. 다행이 가드래인 쪽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생명을 건질 수있었다. 만약 중앙선 건너편으로 나가 떨어졌다면 고속도로 달리는 차들에 뼈도 못추렸을 텐데... 감사하다.
우리 차를 친 상대편 차는 ‘싼타페’ 였는데 내가 밖으로 나가 떨어지고 난 후 우리 차는 충격에 의해 떨어진 내 위로 지나가고 ‘싼타페’는 다시 나를 향해 돌진해 오다가 조수석에서 “사람이다!~”하고 외치니까 그 순간 하늘에서 지혜를 주셨는지 즉시 시동을 꺼서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 자기가 사고를 냈기 때문에 경황이 없고 사람이 피투성이 되어 나자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 급한 마음에 급브레이크를 밟을 텐데 그 즉시 시동을 끈 것이 내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오토에서 급브레이크는 제동거리가 있지만 시동을 끄면 그 즉시 멈추게 된다고 한다. 만약 브레이크를 밟았다면 즉사 했든지 전신마비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시동으로 멈춘 상태가 한 쪽 팔이 바퀴에 깔린 상태이고 바퀴가 이마에 상처를 내고 멈추어 있었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입안 가득 무엇인가 쏟아져 있었는데 그것이 깨지고 빠진 잇발 조각들이었다. 9시 30분에 사고 났는데 1시가 넘어서야 병원에 도착하게 되었다.
·응급실에서 나타난 주님 사랑:
여러 군대 들렀지만 병원 응급실이 만원이라 겨우 서울 중앙대병원 응급실로 입원하게 되었다. 내가 들어 갈 때는 응급실에 환자들이 여러명이었지만 내가 응급실에서 급히 수술이 시작 될 때쯤에 환자들이 다 빠져서 나혼자 놓고 6시간 가까이 응급 수술을 하게 해 주셨다고 한다. 주님의 특별한 은혜에 감사드린다. 덕분에 응급실 수술인데도 얼마나 꼼꼼하게 잘 꿰맸는지 서울대 병원에서 놀라워 하였다. 봉합수술을 응급실에서 하면서 담당의사가 혼잣말로 “오늘 참 이상하네. 오늘처럼 응급 환자가 한 명도 없었던 적이 없었는데... 응급실에서 이렇게 차분하게 수술해 보기는 처음이다.”며 이야기 하는 소릴 들었다. 수술을 다 마치고 나니까 다시 응급 환자들이 싸이렌 소리와 함께 3~4명이 밀어 닥쳐니 순식간에 수라장이 되는 걸 보면서 너무나 자상하신 주님의 손길을 경험하며 감사를 드렸다. 사고로 얼마나 얼굴이 엉망이 되었는지 조그마한 얼굴을 6시간 가까이 꿰멜만큼 중상이었다. 앞 잇발과 함께 잇몸, 인중 한꺼번에 날아갔고, 상처마다 쇠고랑으로 깊이 파놓은 것 같았다고 한다. 코부리도 다 떨어져 나갔고, 코뼈도 다부수어져 조각조각 났고, 입천장이 구멍이나서 코구멍과 관통되어 있고, 목뼈도 5,6번이나갔는데 그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7번 밑이면 전신마비가 올텐데 다행이 빗나가 준 것이다. 왼 팔은 손목 골절과 신경손상으로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디가 어떻게 다쳤는지는 시간이 흘러야 알 수있만큼 겉으로는 너무 흉칙해서 나를 보면 모두 현기증이 나서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광대뼈가 함몰되었다고 할만큼 양쪽 광대뼈는 깊은 둠벙이 나있고, 입술도 3토막이 나서 코에 가서 붙어 있고 사람의 얼굴이라고는 할 수없을만큼 괴물같았다.
한 달 후 상황 : 어느 누구도 지금의 나의 얼굴이 나오리라 예측을 할 수 없었다. 떨어져 나간 코가 계속 노란 진물만 나오기에 간호하는 동생이 내 코만 보면 징그러워서 식사를 하지 못할 정도 였는데 한 달 만에 정상으로 솟아 나왔다. 마치 버섯 올라오듯이... 그리고 광대뼈 함몰 된 것처럼 둠벙이 난 곳도 양쪽 다 새 살이 차올라서 메꾸어 주셨다. 흉터들도 신기하게 얼굴의 흉터는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매끈하고 희미하게 해주셨다. 얼굴아닌 다른 부분의 흉터들은 보기가 흉할만큼 징그러운데 얼굴은 정작 6시간 꿰맨 얼굴이라고 어느 누구도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깨끗했다. 수술 4개월 후 서울대 성형외과 진료를 갔는데 내 얼굴을 보더니 의사가 깜짝 놀랐다. “한국 여성들이 보통 수술 후 피부 갱생기간이 1년을 잡는데 4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회생 될 수가 있느냐?”고 감탄해 하는 것이다. 모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주님 사랑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감사하다.
감사의 道:
1)두코로 숨쉬는 것 감사: 사고로 가장 많이 다친 부분이 입 안이었다. 입 천장과 코가 관
통 되어 있었다. 혀로 입안을 감지하면 바닷속 다시마 줄기 걸리듯이 갈갈이 다 찢어져 있
었다. 입술도 위아래 3토막 나서 제멋대로 코에 붙어 있었다. 이렇게 입안이 형편 없으니까
원래는 입술을 쳐들어 코 수술을 해야 하는데 깨진 코뼈를 코구멍을 통해 맞추어 놓고 무너
지지 않게 솜방망이로 양쪽 콧구멍을 막아 놓았다. 목구멍으론 코피가 계속 넘어가고 막아
놓은 솜으론 핏물이 고여 마치 물 속에 누워있는 것처럼 하루 종일 매콤했다.
입안 상처로 인해 16일 단식을 시키고 시간마다 베타딘을 주사기로 입에 넣어 물고있을 때
까지 물고 있다가 뱉아 내는 것이 입안 치료 중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코가 막혀 숨을 쉴 수 없기에 입안에 약을 넣으면 숨이 막혀 빨리 밷아낼 수밖에 없
었다. 꿰맨 입술이 조금만 지나면 본드처럼 말라 붙어 옆에서 손으로 입술을 떼어 주어야
숨을 쉴 수 있었다. 코가 막혀 코로는 숨 쉴 수 없고, 상처로 붕어 입처럼 작아진 입구멍마
져 말라 달라붙곤 할때마다 동생이 입을 손으로 떼어 주어야 겨우 숨을 쉬곤 했다. 낮에는
그런데로 숨을 쉬는데 밤이면 계속되는 고열로 가슴이 답답하여 숨쉬는 것이 더욱 어려웠
다. 간호하는 동생이 잠이 들어 버리면 나는 죽음이었다. 혀는 다 갈라져 있고, 입술은 말
라 붙어 있어 숨을 쉴 수 없는데 입천장까지 말라 달라 붙었으니 숨을 쉴 수가 없어 죽을
것 만 같았다. 하지만 난 동생을 깨우고 싶어도 혼자 일어 날 수도, 팔 하나 움직일 수도
없고, 말도 못해서 깨울 수가 없었다. 발을 어떻게 움직여서 침대 옆에 자는 동생의 옷을
살짝 건드리면 눈치를 채고 입 안에 베타딘을 넣어주면 그것을 몇모금 마셔야 입천장이
떨어져 숨을 쉴 수가 있었다.
20일 밤낮 잠 못자면서 숨을 쉬지 못하는 고통을 당하면서 나쁜 충동도 많이 일어났
다. 혼자서 일어 날 수만 있다면 창문을 깨고 뛰어내려 죽더라도 코 막은 솜방망이 빼고
시원한 공기 실컷 마시다 죽고 싶었다. 내가 작은 입 구멍으로 숨을 쉬려 하니 숨을 쉴 때
마다 양 볼이 풍선처럼 불어나게된다. 간호하는 동생에게 말했다. “왜 붕어가 숨 쉴때마다
입을 뻥긋거리고 배가 불룩 거리는지 아니?“ 왜 그런데 언니? ”그건 붕어가 코구멍이 없어
서 그래. 지금 나랑 똑같잖아.” 했더니 동생이 “정말 그러하네”하면서 깔깔웃었다.
코에 솜방망이를 빼주던 날, 난 이세상에 부러울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두 코로
숨 쉴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영원히 감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상 생활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숨쉬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최고의 은총과 특권이었다. 이 세상에 두 코로 숨쉬지 못하는 이들이 많이 있는 한 난 그들에게 빚을 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코로 시원하게 숨 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고 영광인지 숨 쉬지 못하는 죽음의 고통을 당하지 않고는 뼈절이게 알 수 없으리라. 나는 오늘도 감사하다 시원하게 두 코로 숨 쉴 때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지 알기에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지 모른다.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이고 이기적인 삶이 었는지 뒤늦께야 처절히 알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큰 빚쟁이의 삶을 살고 있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2) 처음 거울 보았을 때:
사람들마다 내 얼굴을 보면서 혀를 찼다. 휄체어 타고 검사실로 가는 길에 꼬마들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무지막지하게 깨졌군..”하고 지나간다. 가족들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다 눈물을 흘린다. 처음 내 모습을 보았을 땐 다들 힘없이 주저 앉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인 나는 아무리 상상을 해도 예전 내 얼굴 외로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 거울을 보게 되었는데 거울 속 나의 모습은 괴물과 같았다. 입술은 쿤타킨테 같고, 눈은 권투선수가 얻어 맞아 찢어져 시퍼렇게 부어 올라 있는 흉칙한 모습이었고, 코 끝은 떨어져 나가 없었고, 인중이 떨어져 나가 없으니까 입술을 끌어다 코밑에 꿰매어 놓아 언챙이처럼 되어 있었다. 앞 잇발은 4개나 빠져서 할머니처럼 되어 있었다. 동생이 간호하고 있으면 딸이냐고 다들 물어 보았다. 코리아 병원에서는 옆 병실에 불쌍한 꼬마가 있었다. 부모도 없이 늙은 할아버지하고 사는 아이인데 입원해 있었다. 불쌍해서 먹을 것을 챙겨 주고, 사랑해 주었더니 우리 병실에 자주 놀려 왔다. 그러면 할아버지가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할머니 피곤하시니까 그만 놀고 이제 우리 병실로 가자.”하시는 것이다. 입술은 3토막나 꿰매어 부어 올라 입구멍을 찾기도 힘들었다. 볼은 광대뼈가 함몰됐다고 했을만큼 둠벙이 나있었다. 암튼 이런 작품을 만들라 해도 어려울 것 같은 희안한 괴물 같았다. 거울을 보면서 순간 눈물이 쏱아질 것 같고 목이 메여왔다. ‘지금 거울에 비친 이 모습이 나의 얼굴이다. 앞으론 이 얼굴을 나의 얼굴로 받아 드려야 한다.’ 하고 스스로 마음을 추슬러 보려고 애를 썼다. 이 현실 자체를 운명으로 받아 드리자. 지금껏 42년동안 정상 얼굴로 사랑받으며 건강하게 산 것만으로도 감사하자.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얼마나 빚진 삶이었는가? 마음에 요동이 없고 평화롭고 행복하고 진심으로 감사했다. 여자로서는 가장 큰 환난이요, 불행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마음의 평화가 잠시도 깨어지지 않고 더 큰 행복과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해 지는 것을 경험케 되었다. 그분이 누구이시길래 우리를 불행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에서도 불행할래야 불행할 수 없는 최고의 행복의 신으로 빼내셨는가? 이것은 사람의 마음이 아니었다. 식구들은 내가 거울을 보고 상심에 빠질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나를 지켜 보았지만 감사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먹는 것 같았다. 성경에 “너희는 다 신들이라” 말씀 하셨어도 그냥 이론적으로 ‘그렇지! 하나님 말씀을 받은 자들은 신이라’고 했으니까 ...막연하게만 받아 드렸는데 환난을 당하면서 인간의 마음으로는 도무지 이룰 수 없는 죽음의 고통 가운데에서도 감사가 끊이지 않고 맘의 평화와 행복이 샘 솟는 것을 보면서 이미 우리를 신으로 완성 시켜 주셨는데 각자 확인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를 신으로 빼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3. 물을 마실 수 있는 것 감사: 입안 상처 수술 때문에 16일 동안 단식을 시키는데 배고픈 것은 잘 모르겠는데 얼마나 목이 마르는지 혀는 말라 쩍쩍 갈라져 있고 입 안은 다 말라 입천장이 달라 붙고 고열로 입 안과 입술은 다 타고 물 한모금만 준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입술 달라붙고, 입천장까지 달라 붙어 숨을 쉴 수없을 땐 입천장을 띄어야 숨을 쉴 수 있기에 숨 쉬기 위해서 부득불 입안에 주사기로 넣어준 베타딘 약을 한모금씩 마셔야 할 때 그것마져 맛이있고 시원하게 느껴졌다. 물 마시고 싶은 갈증을 느낄 때 시원한 물 한컵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하늘의 은총이고 특권 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 삶에서 당연시 여겼던 평범한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가장 큰 은총이었고 특권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감사를 잊고 살았었는지 깊이 뉘우치는 순간순간 들이었다.
4. 손씻고 싶을 때 손 씻을 수 있는 것 감사: 양 손의 상처로 한 쪽 손은 통기브스, 한 쪽 손은 상처에 닝겔이 여러개 꽂여 있어 손을 씻을 수 없었다. 손가락 사이 사이로 찝찝하게 오물이 끼어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한 달 가량 되니까 손에 마른 때가 나무 껍질처럼 벗어져 나간다. 손이 얼마나 더러운지 마치 거북이 등 같았다. 손에 물 한번만 대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소원이 되었다. 한 달 가까이 되서야 손에 물을 닿을 때 “ 와! 환상적이다!~”저절로 탄성이나왔다.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시종 학제 이모님이 주희를 대신해서 잠깐 봉사 해 주고 있을 때였는데 내가 소원 하니까 세수 대야에 물을 떠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씻어 주는데 한 쪽 손만 닦는데 2시간 이상이 걸렸다. 닦아도닦아도 마치 즙처럼 때가 밀려 나오니까 너무 질려서 나중에 포기를 하셨다. 난 그때 그 시원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가 찝찝할 때 손을 자유로이 씻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 찝찝함을 맛보지 않는 자는 모를 것이다. 손씻고 싶을 때 손 씻을 수 있다는 얼마나 큰 은총이고 특권인지을...
5.세수 하는 행복: 깔끔쟁이가 1달이 되도록 얼굴 상처 덕분에 세수를 하지 못하니까 견딜 수가 없었다. 시원한 물로 푹푹 세수를 한 번 해보는 것이 얼마나 소원이 되던지... 남들 세수하는 것 보면 난 한 번도 그런 세수를 못해 본 것처럼 생각이 들었다. 처음 시원한 물을얼굴에 닿는 순간 다른 세상 같았다. 얼마나 상쾌하던지...내가 제일 부자가 된 느낌, 나도 세수를 했다는 그 행복!!...너무나 감사했다. 우린 너무 큰 은총 속에 살면서 너무나 감각 없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며 감격스런 감사를 그분께 올리게 되었다. 이 마음 영원히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6.양치 할 수 있는 행복: 이발이 4개나 잇몸과 함께 사라지고 잇몸 위 아래로 찢어져 꿰매 놓았고 입천장이 코와 관통이되어 이식 수술을 해놓은 연고로 양치대신 염증 나지 않도록 베타딘 가글만 시간마다 해주고 있었다. 덕분에 나의 잇발은 중국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까맣게 점색이 되어 얼마나 지저분하고 특갈마져 보이는지 잇발이 끈적거리고 손으로 긁어도 한꺼풀 벗겨질만큼 심각했다.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는 법, 손도 씻고 얼굴도 씻을 수 있으니 이제는 시원하게 양치만 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40여일만에 양치를 하려고 아기 칫솔을 가장 부드러운 것으로 샀지만 너무 아파서 할 수 없었다. 약국에 가서 치약과 칫솔을 다시 구입을 해도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미국에서 사왔던 칫솔을 집에 연락해서 부쳐달라고 해서 양치를 하는데 얼마나 좋은지 한번 양치 할 때마다 5번이나연거퍼 해보곤 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것처럼 감격스럽기만 했다. 지금도 양치 할때마다 ‘내가 양치를 하고 있네!’ 감격스럽고 감사 하기만 하다.
7. 침 흘리지 않는 행복 : 입술과 입안 수술 때문에 입술을 움직이지 못하니까 발음이 되지 않아 말를 잘 못할뿐더러 침대를 조금 올려 앉아 있으려 하면 침이 줄줄 흘러 정신박아가 따로 없었다. 단순간에 바보가 되는 느낌이었다. 일어나면 옆에서 누군가는 침을 받아 주어야 했다. 그동안 앉거나 서도 침을 흘리지 않고 깔끔하게 다닐 수 있었던 것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큰 은총이었고 특권이었는지 이세상에서 감사하지 못하고 불만 불평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하늘에 대한 배은망덕인지를 알게되었다.
8. 혼자서 볼일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 :
사고 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듣는 것과 겨우 힘겹게 눈을 떠서 천장 한번 바라보는 것 외에는 내가 스스로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소변줄로 용변은 대신하고 대변은 침대에서 용변기에 누워서 하고... 옆의 환자들에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사람 추접하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어쩌다 내가 이지경이 되었는지...15일만에 방광에 염증 생긴다고 소변줄은 빼 주었지만 옴싹달싹 할 수 없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누운 채로 용변을 보아야 했다. 얼마나 비참하던지...“하나님! 양변기에 앉아 시원하게 보게 해주세요. 그리고 옆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게 해주세요.” 얼마나 간절하게 소원이 되든지... 일생을 이렇게 살고 있는 전신마비 형제들이 생각이 났다. 정말 위대하게 느껴졌다. 살아있다는 자체가 우주의 대 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사랑의 빚쟁이로 살았었는지 알게 되었다. 다시 정상 생활 할 수 있다면 정말 사랑의 빚을 갚으면 살아가고 싶다.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닌 가치있는 삶을 다시 살고 싶다. 주님은 내 소원대로 양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게 해주셨다.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이것이 얼마나 복된 은총으로 느껴지는지... 하지만 왼쪽팔이 바퀴에 깔려서 신경손상이 왔고 수관절 골절이기 때문에 양손을 전혀 쓰지 못하니까 누군가가 옷을 올려주고 내려 주어야 하고 볼일 보면 밑을 닦아 주어야 한다. 아무리 가족이지만 마지막 자존심인데 그것만큼은 지키고 싶어서 혼자서 어떻게 해보려고 남모르는 노력을 많이 해 보았다. 휴지라도 내 손으로 끊어 보려고 아무리 손톱으로 눌러 보아도 화장지 한컷도 내 힘으로 끊어 보지 못하고 서울대 병원을 퇴원 했다. 지금은 혼자서 화장실에 가서 손쉽게 볼일을 볼때마다 얼마나 감격스런 감사가 터져 나오는지... 우리는 얼마나 많이 감사하고 살아야 하는지...하늘 우주 공간 감사로만 가득한데도 감사보다 불평거리 찾는데 그동안 얼마나 발이 빨랐는지... 하나님은 섭섭하여 먼산 바라 보시며 씁쓸해 하셨을 것이다. 내가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 투정 했을때마다... 화장실 출입 할 때마다 감사하다. 정말 감사하다. 그리고 행복하다. 나 혼자 볼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하늘에서 나에게 준 특권이요 선물이며 은총이기에 늘 감격스런 감사를 한다.
9.머리 감을 수 있는 것 감사: 앞 머리가 깨져 머리를 깍아내고 꿰맸다. 피가 얼마나 많이 흘렀는지 머리가 찐득거린다. 하지만 나는 머리를 감을 수가 없다. 머리 속에도 몸 속에도 유리 가루가 많이 박혔나보다 움직일때마다 찌른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으니 어떻게 할 수 없다. 머리가 다 말라서 이제는 움직일 때마다 머리에 엉겨붙은 핏가루가 빨갛게 하얀 침대 시트위에 떨어진다. 피범벅 유리가루에 까만 아스팔트 가루까지 범벅된 머리에서 움직이때마다 고약한 냄새가 난다. 정말 너무나 역겹다. 머리 좀 감을 수 있다면 ... 동생이 보다 못해 세수 대야에 물을 떠서 침대째 옮겨 암튼 머리에 물을 축여 주었다. 빨간 핏물이 한없이 나왔다. 얼마나 감사하고 시원 했는지 잠깐이지만 잠을 잘 수 있었다. 찝찝할 때 자유롭게 머리를 감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이고 특권인지... 얼마나 머리를 감을 때마다 감사해야 했었는지... 지금은 머리를 혼자서 감을 때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것처럼 감격스럽다.
9. 주사기로 말고 내 손으로 숟가락질하는 것 감사:
16일 동안 단식 후 미음을 먹는 데 입안 상처 때문에 주사기로 호수를 끼워서 먹는 식사 였다. 처음엔 주사기로 2번 정도 넣으니까 위가 오그라들은 탓인지 그것도 과식이 되어 복통을 일으키고 밤새 설사를 하고 적응 기간 동안 힘이 들었다. 코리아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다. 붕어입처럼 작은 구멍이 조금은 넓어져 처음으로 숟가락질을 하는데 일반 수저가 아니라 요플레 프라스틱 작은 수저였다. 그것도 숟가락질을 내 손으로 혼자 했다고 경사가 난 것처럼 여기 저기에 전화해서 축하하고 기뻐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족의 따뜻함을 다시한 번 느껴보게 되었다. 지금은 스텐 숟가락 묵직한 것으로도 마음대로 식사를 하고 있다. 숟가락질을 하면서도 늘 새롭고 감격스럽고 처음해 보는 것같고 암튼 너무나 감사하다. 평범한 일상 생활의 동작 하나하나가 감격스런 감사를 매순간 올려야 하는 것이 우리가 그분께 마땅히 드려야 할 예배 임을 알게 되었다.
10. 말하고 싶을 때 알아 들을 수 있는 발음으로 말 할 수 있는 것 감사:
몇 달 동안 발음을 정확히 할 수 없었다. 처음엔 거의 통역 없이는 알아 들을 수 없을 만큼 말을 할 수 없었고, 입안 상처가 나아감에 따라 비례하여 발음이 좋아졌다. 그 기간이 6개월 정도 걸린 것 같다. 말 못하는 사람들의 답답한 심정을 체휼했다. 말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했는지... 하나님을 떠난 이 지구 자녀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끌어 안고 울고 싶을 정도로 불쌍 했고 너무나 비참 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말을 하고 있는데 틀리게 말하고 있는데도 난 듣기만 하고 “그것이 아니라 이렇다”고 말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답답함을 느껴도 참아야만 했다. 글이라도 써서 의사 표현을 하고 싶은데 손발이 움직이지 않으니 글도 쓸 수 없고, 눈뻔히 뜨고 나에 대해 잘못된 결정 사항을 그냥 지켜 보아야 하는 속터짐... . 때론 눈치 빠른 주희가 나의 말을 정확히 해석해서 전달해 주기라도 하면 얼마나 고마운지... 우리가 얼마나 감사를 잊고 살았었는가? 말하고 싶을 때 정확한 발음으로 의사를 표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얼마나 말을 귀하게 여겨야 하는지... 좋은 말만 하고, 착하고 예쁜 말만 하고, 상대에게 힘이되고 위로가 되는 말을 하고 ,덕이되는 말만 하고 정말 말을 아껴서 사용해야겠다고 다시금 생각 하게 되었다. 하늘의 특권과 은혜의 선물을 정말 가치 있게 감사함으로 소중히 보배스럽게 간직하기로 했다. 정확한 발음으로 말 할 때마다 감사, 감사!!
11. 일어나고 눕고 싶을 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감사 : 사고로 목이 다쳐서 식물 인간처럼 꼼짝 못하고 누워만 있어야 했다. 머리가 너무나 절여서 무감각하고 미칠 것만 같아도 그냥 참아야만 했다. 누군가가 눈치 빠르게 머리를 돌려 주지 않으면 온종일 그 고문 참아 견디어야 했다. 등짝도 엉덩이도 절여 오지만 혼자서는 옴싹달싹 할 수없으니 참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전신마비로 오래 누워서 지내는 형제들이 존경스럽다. 그 기나긴 시간들을 어떻게 참고 견디어 왔을까? 우주의 대 사역자들이다. 건강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 한 일이고 책임과 몫이 따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음대로 눕고 일어나고 뒤척이고 싶을 때 뒤척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해야 할 일인지... 정말 이 건강을 유용한 데에 가치있게 소중히 잘 쓰고 싶다. 우리는 이처럼 큰 복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으면서 당연한 것처럼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죄송한 일인가? 건강한 사지를 주신 하나님께 한없는 감사를 ...
12. 먹고 싶을 때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 16일 단식 끝나갈 무렵이었다. 막내 동생 주희가 친구하고 점심을 먹는데 내가 좋아하는 열무 김치를 넣고 고추장과 그 외 나물을 넣어서 쓱쓱 먹음직스럽게 비벼서 볼이 터지도록 얼마나 막갈스럽게 먹는지... 내가 낫자마자 저것부터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입안 치료와 잇발 치료가 다 끝나기 까지 6개월 정도가 걸렸다. 그동안 나는 거의 다 갈아서 즙으로 만들어 먹어야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왜 물렁한 것만 찾으시고 옛날 어렸을 때 할머니가 고구마를 수저로 긁어서 드실 수 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아무리 맛있는 것이 있어도 그림의 떡이었다. ‘아작 아작’ 소리를 내어서 먹는 사람들 보면 나는 생전 한번도 그렇게 먹어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어느 땐 흰죽도 너무나 아파서 먹지 못하여 국물과 함께 약먹 듯 마셔야만 하였다. 오복 중에 치아가 왜 들어갈 수밖에 없는지도 뼈절이게 느끼게 되었다. 마음껏 먹고 싶은 것을 씹어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는 영원히 감사해도 부족하다. 우리의 작은 행동 하나 하나는 모두가 감격스런 감사의 제사를 올려야 할 재단의 제물들이었음을 알게되었다. 마땅히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함이 자녀된 기본 도리임을 알게 되었다.
13. 내 손으로 문을 여닫을 수 있는 것이 감사: 서울대 병원에 있을 때 동생이 간병을 했었는데 도무지 진전이 없으니까 답답했던 모양이다. 빨리 집에는 가야겠는데 언니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훈련을 시키려고 작정을 한 것 같다. “내가 언제까지 언니 곁에만 있을 수 없으니까 혼자서 문을 여는 것부터 훈련을 해보자”고 한다. 나도 희망 사항이지만 손가락 하나도 까닥 못하는데 어떻게 문을 열 수가 있겠는가? 그냥 문고리에 손을 얹어주면 문꼬리만 쓰다듬다 한번도 내 힘으로 문을 열어보지 못한 채 서울대 병원을 퇴원하게 되었다. 코리아 병원은 정형외과 수술 전문 병원이었다. 15일 입원하고 있었는데도 아무 차도가 없으니까 수술을 하자고 했다. 몸이 극도로 쇠해진 상태에서 1달만에 수술을 3번씩이나 받았고 16일 단식으로 빈 속에 마취제,항생제, 해열제등으로 안좋은 것들만 많이 들어간 상태에서 또다시 수술한다는 것은 나의 체력이 감당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재활 쪽으로 생각하며 기도하고 있는데 어떤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청주 한방병원에 동생이 1달 입원해 있었는데 공기도 서울보다 좋고, 약도 한약으로 주고, 침이나 물리치료로 재활을 하는 데 내려오면 어떻겠느냐고 권하신다. 그렇잖아도 7인실에 공기도 좋지 않고 수술 전문 병원이라 너무나 시끄럽고 정신적으로 조용히 쉴 곳이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로 하여 소원 기도를 올리는 중이었는데 기도 응답으로 주신 것 같아서 바로 청주로 옮겼다. 얼마나 조용하고 공기도 좋고 별장 같은지 주님께 너무나 감사하고 전화 해주신 언니께도 너무나 감사를 드렸다. 청주에 와서도 밥이 들어와도 반찬 뚜껑을 열 수 없어서 누군가가 뚜껑을 열어 주어야 식사를 할 수 있을만큼 상태는 좋지 못했다. 어차피 재활을 택한 이상 보호자가 있으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우선 아프니까 도움을 청하게 되기 때문에 내 스스로는 움직이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운동 신경이 살아남에 비례하여 신경이 좋아진다고 하는데 돕는이가 있는 이상은 스스로 움직여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 자신이 없어도 동생을 집으로 보냈다. 도와 주는 자 없으니까 혼자서 어떻게든 움지여야 하기에 피나는 노력이 필요했다. 노력 끝에 문도 혼자서 여닫을 수 있고, 혼자서 걷는 연습도 조금씩 늘려서 산에도 가게 되었고, 손가락도 조금씩 펴져서 이제는 생활하는데 아무지장이 없도록 치료받게 되었다.
지금도 혼자서 문을 여닫을 때마다 처음 해보는 것처럼 ‘내 손으로 문을 열고 있네~!’ 감격스럽다. 그리고 감격의 감사를 드린다. 내 발로 걸어서 산행을 할때마다 너무나 신기하고 감사하다. 시원한 공기를 두 코로 들이킬때마다 너무나 감사하다. 두 코로 숨쉴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영원히 감사할텐데 보너스로 모든 것을 혼자서 할 수 있게 해주신 ‘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와라’ 말씀하신 그분께 감격스런 감사가 터진다.
14. 목욕 할 수 있는 것이 감사: 사고 후 온 몸의 상처와 움직이 수 없는 몸의 상태 때문에 한달 동안 목욕을 하지 못하여 몸을 움직일 때마다 신냄새와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 한달만에 서울대 병원을 퇴원해서 동생 아파트에서 하루를 묵으면서 내가 소원 하니까 욕실 바닥에 두꺼운 이불을 깔아서 나를 거기에 눕혀 놓고 목욕을 시키는데 얼마나 날아갈 것 같은지... 동생이 흥분을 해서 국수가닥처럼 밀리는 한달 동안의 묵은 때를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밀어 주었다. 너무나 감사했다. 그 행복은 받는 자밖에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아침 저녁으로 땀 흘릴 때마다 마음껏 샤워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고 은총이었는지...
우리가 감사의 道만 잊지 않고 산다면 어느 환경 속에서도 천국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연시 여겼던 삶의 평범한 행위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청난 특권이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세상엔 너무 많다. 우리는 매순간 하늘의 대 특권과 은총 속에 살아가면서도 이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고 은총이었는지도 모르고 잊고 살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평범한 삶의 작은 일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대 은총과 특권이었다. 두 코로 숨쉬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영원히 감사해야 한다.
자상하신 주님의 손길:
1. 6개월간 가마귀를 보내 토마토를 공수 해주신 주님:
입안 상처로 6개월 생것을 갈아서 즙으로 먹다시피 했다. 그런데 토마토가 위에 부담도 없고 갈면 완전 물이되고 먹으면 든든하고 나의 양식으로는 너무나 적합했다. 그런데 나는 얼굴 화상 환자처럼 자외선을 보면 얼굴 상처가 점색이 되기 때문에 방안에도 극장에 치는 검정 두꺼운 천을 떠다가 창문에 쳐놓고 그것도 부족해서 스크린을 침대 옆에 세워놓고 거기도 앞 뒤로 검정 두꺼운 천을 둘러 놓고 그 속에서 암실처럼 해놓고 지내야만 했기에 밖엘 나가지 못하기에 돈이 있어도 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주님이 얼마나 챙겨 주시는 지 6개월 동안 토마토 한번도 떨어지지 않게 방문 오는 사람마다 누가 광고라도 한 것처럼 한결같이 토마도를 사오는 것이었다. 잇발 치료가 다 끝이나서 음식을 조금씩 씹을 수 있게 되니까 그때는 모두 약속 했듯이 토마토를 사오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나 자상하게 돌보시는 하나님과 주님의 은혜에 정말 감사했다.
2. 갖가지 김치를 날으신 자상하신 주님 손길 :
16일 단식을 할 때였다. 동생 주희가 친구와 식사를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열무김치를 넣고 고추장과 기름을 넣어서 비벼 먹는데 얼마나 맛있게 느껴지는지 내가 금식 끝나면 저것부터 먹어야겠다고 생각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6개월 동안 입안 치료 때문에 유동식 외로는 먹을 수가 없었다. 치아 치료를 다 끝내고 열무김치가 너무나 먹고 싶었다. 그래서 맘 속으로 “주님,저 김치가 먹고 싶어요.”라고 기도 했는데 그때부터는 토마토대신 김치만 들어오는데 가지 수를 세아려 보니 놀라웠다. 열무김치, 배추김치, 무우채나물, 깻잎김치, 무우말랭이김치, 고추잎김치, 파김치, 나박김치, 곤들배기김치, 갓김치 등 10가지도 넘게 들어오는 것을 보고 주님의 자상하신 사랑에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3. 두리안을 챙겨 주시는 주님:
1년동안 작은 수술까지 합치면 11번의 수술을 하게되었다. 마취를 할 때마다 폐와 신장에 영향이 많이 간다고 한다. 11월 수술 때였다. 수술 전 종합 진단을 받는데 폐모양이 달라져서 마취를 할 수없기에 수술을 연장을 시켜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원인 파악을 위해 2개월 정도 검사을 하다가 결론은 폐약을 먹기로 결정해서 구정 무렵부터 약을 먹기 시작 했다. 그런데 약이 얼마나 독한지 약한 몸이 감당을 해내기가 너무나 힘이 들었다. 차멀미 심하게 하는 것처럼 어지럽고 울렁거리고 음식을 바라보기도 싫고, 음식을 생각만 해도 토할 것같고, 음식에 대한 말만 들어도 속이 미식거려 왔다. 그래도 약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억지로 음식을 먹으면 밤이 되면 음식을 토하는 것이었다. 밤새 그러하면 나는 탈진이 되어 눈 뜰 기력도 없어 닝거 신세를 져야만 했다. 그런날이 며칠 거듭되면서 폐 낫기 전에 내가 먼저 죽겠다는 생각을 했다. 폐약을 6개월 먹어야 하고 중간에 수술도 해야 하는데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하나님은 그 무렵에 엘리야에게 가마귀들이 먹을 것을 물어다 주었던 것처럼 나에게 방문 오시는 분들마다 두리안을 들고 오시는 것이었다. 두리안은 열대 과일로 과일의 왕이라고 불리운다. 지방과 단백질이 풍성하여 기를 보충해 주고 수술 환자에게는 최고 좋은 과일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늘 언제나 늘 가까이 머리털 세심처럼 자상하게 돌보아 주시는 주님께 너무나 감사를 드린다.
·깨달음
1)생명의 소중함:
죽음을 경험 한 후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죽음 앞에서는 우주는 존재하나 나에게는 우주가 없고, 하나님이 존재하나 나에게는 하나님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무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고 전과 사고 후와 달라진 것이 있다. 사고 전에는 나의 인생의 날들이 한없이 이어질 것처럼 생각하면서 살았었다. 하지만 죽음을 경험하고는 나의 날은 지금 숨쉬고 있는 이 순간만이 나의 날이요, 생명일 뿐이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현재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살아 있는 이 날이 나에게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모든 생명체들이 너무나 귀하게만 느껴진다. 기어다니는 벌레 한마리도, 숲속에 이름 없는 꽃 한송이도, 길가에 자라는 풀 한포기도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소중하고 숭고하게 느껴졌다. 박스에 저장한 고구마를 먹다가 싹이 난 고구마를 발견했다. 생명의 몸부림처럼 느껴져 살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프라스틱 병을 주어다 잘라서 그곳에 물을 담아 자라게 해주었더니 연초록 잎새를 내밀면서 나만 보면 감사하다고 미소지어 주는 것 같았다.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소중하게 느껴지는 분이 있다. 우주의 생명 자체이신 분, 만물에게 생명을 시여하고 계신, 생명의 시여자 주님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불면 날아갈까 놓으면 꺼질까!’ 너무나 소중한 보배로 매순간 느껴진다. 그분이 내 속에 살아 계시고, 그분과 만난 바 되고 그분의 자녀됨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전엔 등산길 무덤을 보면 나와는 무관 했는데 지금은 그 무덤과 나 사이는 백지장 차이도 안되게 느껴진다. 사고 후 가장 많이 피부로 와 닿은 말씀은 ‘오늘 하루만 승리하라’는 말씀이었다. 그 말씀이 매일 삶 속에 생명이 되어 주었다. 요즈음은 무덤 속 부활해서 새 세상에서 모든 것을 처음 보고, 처음 해보는 느낌이다. 만물이 새롭게만 느껴진다. 사고 전에는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 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나와 무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한 달 동안 꼼짝 못하고 누워 있으면서 전신마비 형제들의 심정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냥 그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존경스럽고 위대하게 느껴졌다.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우주의 사역의 배역을 맡고 있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거리고 눈물이 난다. 하나님께서 지구 자녀들을 바라보는 심정이 이러할 것이다. 손발 불구인 형제들의 불편함, 말 못하는 사람들의 답답함, 잇발 없는 노인들의 서러움, 골고루 체험케 되었다. 구속주의 심정을 맛보게 해주었다. 서울대병원 있을 때 조카가 책한 권을 선물을 했다. ‘지선아,사랑해!’였다. 이대 다니던 지선이가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오빠 자가용을 타고 집에 오다 교통사고를 당하여 그토록 곱던 얼굴이 화상을 입어 징그러워 볼 수 없는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다시 옛날 얼굴로 돌아갈래? 아니면 지금 이 얼굴로 살래?” 한다면 지금의 얼굴로 살고 싶다고 말한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죽음을 한 번 경험하고는 똑같은 세상인데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소중한 생명을 되찾아 주신 하나님과 주님께 감사 드린다.
·너희는 신들이며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진통제를 놓아도 잠을 이룰 수 없을만큼 육체의 고통이 극심했던 1년의 병원생활, 짧은 시간동안 11번의 수술을 받을만큼 육체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지만 내마음은 한번도 평화가 깨어지지 않았다. 매순간 감격스런 감사의 제사를 하나님과 주님께 드리게 해주셨다. 감당할 시험밖에 허락지 않으시는 그분께서는 병원이 아니라 매순간 천국을 이루고 누리게 해주셨다. 그것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마음 안에 행복의 왕, 평화의 왕, 천국의 주인께서 신성의 부활을 하셨기 때문임을 알게되었다. 말씀을 받은 자들이 신이라고 하셨는데 지금까지는 성경에 “너희는 신들이요 지존자의 아들이라 (시 82:6,7)” 했으니까 내가 신인가보다 했지 실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환난을 통해서 도무지 인간의 마음이 아닌 신의 마음이 내 안에 작동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이미 신으로 나왔지만 각자 확인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행복과 평화와 천국을 이루게 해주시고 최고의 감사제를 올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신 행복의왕, 평화의왕, 천국의 주인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주님의 희생 깨달음:
두 번째 수술을 할 때였다. 목이 다쳐서 목 기브스를 했기 때문에 전신 마취를 하려면 산소 호흡기를 입안 깊숙이 넣어야 하기 때문에 목을 뒤로 약간 꺽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다친 목을 꺽으면 전신마비가 올 수도 있으니까 그냥 숙면마취를 해서 수술 하기로 결정을 했다. 의사 선생님이 숙면 마취는 너무나 예민한 사람들은 간혹 마취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셨다. 수술실 들어 가기 전 내가 살아온 일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자신을 깊이 돌아보면서 주님께 걸리는 것은 모두 용서를 구했다. 서울대 수술실 복도는 길기도 했다. 이번 수술은 얼굴에 박힌 유리가루와 아스팔트 가루를 긁어내는 것과 부서진 코뼈를 맞추어 고정 시키는 수술이었다. 몇 명의 의사들이 파란 수술복을 입고 내 얼굴을 긁어 내기 시작 했는데 난 마취가 되지 않은 것이었다.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모른다. 감당을 할 수가 없었다. 2시간 30분 동안 수술을 하는데 그분께서 대신 나의 수술대 위에 누워서 나에게 말씀하실 때 난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주님께서 나하나 살리시기 위하여 치르신 희생이 어떠한 희생이었는지를 혀 끝으로 맛보고 할 말을 잃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
그동안 너무나 쉽게 기도로 "우리 주님 나하나 살리시기 위하여 한 마리 어린양으로 각뜨임 당하시고..." 입술로 뇌까리던 희생이 이런 고통이었다고 생각하니 기가막혔다. 나의 구원이 거져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런 잔인한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기에 영원히 구속의 사랑을 연구해도 다 알 수가 없다고 하셨는가 보다. 주님, 영원히 감사 합니다!!!
“구속 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구주와 함께 설 때까지는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치러진 댓가를 깨달을 수 없다. 그때에 우리는 우리의 면류관을 그의 발 앞에 던지고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심이 합당하도다.”
형제들의 사랑에 감사:
어떤 언니는 동생이 간병하느라 힘들다고 가서 쉬라고 며칠씩 일부러 올라와서 대신 간호해 주곤 했다. 벚꽃이 휘드러지게 핀 4월이었다.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에게 꽃을 보여 준다고 휄체어에 태워 병원 뜰에 핀 꽃을 구경시켜 주기도 했다. 너무나 고마운 식구들이다. 청주에 내려와서는 천연식을 할 수 있도록 춘희 언니는 계속 넘치고 남을만큼 야채와 양식들을 가마귀가 되어 날라다 주셨다. 그래서 마음껏 즙도 짜먹고 옆의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돌나라 형제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덕분에 얼마나 치료가 빨랐는지 서울대 병원 성형외과 의사가 나처럼 얼굴 환자는 보통 1년이되어야 회복 되는데 어떻게 4개월만에 이렇게 회복 될 수 있느냐고 놀라워 하는 소릴 들었다. 영육으로 조금도 부족 함이 없이 넘치게 채워 주시고 자상하게 챙겨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감동적인 사랑 받은 것을 지면에 나열 하려면 다 나열을 할 수 없다. 한번은 내 생일 무렵이었다. 물리치료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아는 동생인데 울진이라고 한다. 조금있으면 꽃 배달이 갈테니까 잘 받으라고 한다. 수기 치료가 끝날 무렵 또 전화가 왔다. 꽃 배달이 갔으니까 빨리 올라가 보라는 것이다. 병실에 왔는데 조금 분위기가 흩트러져 있고 세면장 문이 열려 있어 세면장으로 갔더니 갑자기 그 속에서 우르르 6명이 나와서 노래를 불러주고 3살짜리 영롱이가 앗싸춤을 추며 온갖 재롱을 피우며 너무나 감동적인 행복한 시간들을 갖었다. 그리고 농대 졸업생들이 자기들이 농사 지은 고구마랑 배추랑 일일이 포장해서 보내 주었을 때 너무나 감동스럽고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자식을 다 키우고 효도 받으시는 부모님들 마음이 이러하겠구나는 생각을 했다. 폐약 때문에 입맛이 없고 먹는 것이 꼴도 보기도 싫다고 하니까 어떤 언니는 별미로 먹어 보라며 뚝배기와 비빔밥 재료를 만들어 왔다. 고사리, 콩나물, 무우채나물, 양파볶음, 당근볶음. 밀고기다짐 등 골고루 통에 담아 와서 나에게 어떻게든 먹이기 위해서 주님 대접 하듯이 챙기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찡해 왔다. 그리고 수술 후 아무것도 보충을 하지 못해 눈뜰 기력이 없고 회복이 더딘 것을 보면서 헤모글로빈(과일탕)을 내가 회복 될 때까지 떨어지지 않게 대어 주셨다. 어떤 동생은 석류가 피부에 좋고 석류씨는 뼈에 좋다고 언니에게 딱 맞는 약이 될 것 같다며 석류를 그 바쁜 중에도 생즙을 내서 얼려서 보니 주기도 했다. 또 어떤 이모는 청국장이 몸에 좋다고 가루를 만들어서 계속 보내 주시기도 하였다. 그 외로 주신 식구들의 사랑을 낱낱이 기록 하려면 지면이 부족 할 것이다. 이런 식구님들의 진실한 사랑과 기도가 오늘 이런 치료의 기적을 낳았다고 생각 한다. 주님의 희생으로 한 형제된 아름다운 형제들을 주신 하나님과 주님께 너무나 감사 드리고 지극 정성으로 돌보아주며 같이 마음 아파해주고 기도해주신 가족들에게 넘 감사를 드린다.
청주 병원에 와서 만난 환자
38세 노처녀였다. 수원에서 시내 버스를 운전하는 운전수였다. 교통 사고를 당하여 입원게 되었는데 이름처럼 남자와 같았다. 얼굴은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걷는것과 생활하는 것은 완전 남자 같았다. 술, 담배, 노름 좋아하고 옆 병실이었는데 너무나 힘들어 하길래 즙을 짜주기도 하고 딸기 쉐이크도 만들어서 주기도 하며 조금 사랑을 베풀었다. 그랬더니 우리 병실에 자주 놀려 왔다. 천주교 신자 였는데 자기는 하나님이 두렵고 무섭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래서 내 마음 속에 계신 하나님을 소개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환경회복 운동과 친환경 농사에 대해서도 소개를 했다. “하나님을 마음에 영접지 못하고 환경회복 운동하는 것은 수박 겉핥기이다. 왜냐면 진짜 하나님을 사랑 할 때만이 내가 사랑하는 분이 만든 꽃 한송이, 돌맹이 하나에도 애정이 가는 것이다. 그럴때 마음에서 천연계를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마음이 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연보호가 되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을 떠난 환경운동이니 농사니 다 진수가 아닌 겉 핥기요 거짓이라 할 수 있다. 제1성경 천연계는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만물 가운데 나타내서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을 느끼고, 하나되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런데 사단은 인간자녀들이 천연계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교제하는 것을 방해 하기 위하여 고안해 낸 것이 산업화를 빙자한 환경파괴, 자연파괴이다. 이것은 사단의 걸작품이다. 우리가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농업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마음 속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임재 할 때만이 정말 환경회복 운동, 자연보호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우리의 사업에 대해서 나의 신앙 간증과 함께 이야기 해 주었다. 매일 식사 시간마다 내가 토마토 좋아하는 것을 알고 식단에 토마토가 나오면 자기가 먹지 않고 꼭 갖다 주곤 한다. 심부름 할 것이 없느냐고 하면서 건수를 만들어 우리 병실에 놀려 왔다. 나의 얼굴만 보고 가도 마음이 행복해 진다고 한다. 한번은 “언니 마음 속에는 보화가 감추어 있다."고 하며 살며시 다가와 나의 손을 잡더니 ”사람은 사람인데 언니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나 천사인 것 같다.“고 고백을 한다. 신이 아니면 이런 말씀이 그 입에서 나올 수없고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사람은 눈빛을 보면 한가지밖에 읽어지지 않는데 언니 눈빛은 여러 측면이 한꺼번에 보인다. 날카롭고 예리하면서도 착하고 선하고 이런 눈빛을 갖은 사람은 처음이라고 한다. 마치 예수님의 모습이 소, 독수리, 사자, 사람의 모습으로 보이듯이... 암튼 신비롭고 자기의 연구의 대상이라고 한다. 지금 인간 세계를 벗어난 신비로운 외계인을 대하는 느낌이라고 한다. 그리고 언니의 말을 듣고 있으면 가슴이 쿵쿵 울린다고 한다. “정말 사람이 맞아요?” 한다. “말씀을 받은 자는 神이라 (요 10:35)”는 성경말씀을 실감하게 되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하신 주님만 영접하면 하늘과 땅에 풀리지 않는 것이 없는 열쇠라는 것을 체험케 되었다.
청주 병원: 의사 선생님들이 나를 볼때마다 “이런 환자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치료가 너무나 재미 있다고 고백 할 만큼 매일 매일 좋아졌다. 처음 청주에 내려 올 때는 자가용으로 앉아서 오는 것도 자신이 없어서 앰브런스에 누워서 왔다. 혼자서 하는 일이라고는 겨우 걷는 것 뿐이었다. 아직 식사가 나와도 혼자 뚜껑을 열지 못해서 못 먹을 정도로 팔을 쓰지지를 못했다. 가족들이 간병을 해주었는데 어차피 수술을 피하고 재활을 선택하여 왔으니 옆에 누가 있으면 입 운동만 하게 되지 아프니까 잘 움직여지지 않으니 간호하는 가족을 보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복도 걸어다니는 것부터 시작 했다. 그 다음 계단 오르내리기, 난 새로운 목적지 운동을 시도 할 때마다 몸살을 앓아야 했다. 점점 늘려서 병원 뒤에 초등학교까지 갔다. 그리고 욕심 내어서 병원 뒤에 있는 우암산까지 매일 매일 몇 발자국씩 늘렸다. 재미가 있었다. 계속 몸살로 며칠씩 앓아 누워도 낫으면 그이상을 갈 수 있는 힘이 강화되어 있었다. 이렇게 늘린 것이 몇 달만에 산 정상까지 정복하게 되었다. 기적이었다. 그리고 줄넘기를 시작했다. 목과 어깨, 척추, 허리, 다리 모두 아픈 상태라 뛰는 것은 엄두도 못낼 때였지만 시도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났다. 처음 줄넘기 하나를 넘기는데 등뼈가 다 무너져 내리는 통증을 느꼈다. 그러면 주저 앉아서 통증이 가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또한번 하고 그렇게 50번씩을 한달 동안 꾸준히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씩 늘린 것이 500번까지 했다. 꾸준히 노력한 결과 다른 환자들에 배해 눈에 띄게 치료가 빨랐다. 가장 좋은 것으로만 인도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첫댓글 현숙아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완쾌됐지만 빨리 완전히 완쾌되어 좋은일 많이 하려므나 사랑과 봉사 불우한 이웃을 보살피는 좋은일들 말이야 오늘 하루도 좋은일만 있기를
고마워. 지금까지 그런일을 해왔고 치료 중에도 사실은 계속하고 있어. 그것이 나의 행복이고 삶의 보람이야.
현숙아광희야 대충읽어보았지만..그래도천만다행이다..니말따라주님이널돌보아주셨나보다,,너에신앙심에감복했다..어쨌든빨리쾌차하길바라고,,좋은모습으로언제만나자..행복한하루하루보내길~~~
고맙다. 열심히 치료하고 있어. 오늘 이렇게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매 순간 감사하고 있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