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이 16일 오후 6시 12분경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선종하셨습니다. 향년 87세.
김수환 추기경은 1922년 대구 남산동에서 김영석 요셉과 서중하 마르티나 부부의 5남3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집안은 신유박해 때 순교한 광산 김씨 일파로 조부인 보현공이 서울에서
순교했으며, 유복자로 태어난 부친은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 밑에서 자랐습니다.
8살에 부친을 여윈 추기경은 행상을 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린 어머니로부터 신부가 될 것을
권유받고 사제의 길을 걷게 됩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이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와 동성종합학교를 거쳐 일본 상지대학에서
유학을 하게 됩니다.
당시 학병으로 소집돼 죽음의 위기를 넘긴 추기경은 해방 후 성신대학에 편입하지만, 한국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도 성소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여러 은인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사제성소를 확인한 추기경은 전쟁 중 대구에서 신학과정을
마치고 1951년 9월 15일 대구교구 사제로 서품을 받았습니다.
사제가 된 김수환 추기경은 안성 목성동 성당 주임신부를 시작으로 대구교구장 비서, 김천
성당 주임신부, 성의 중․종합고등학교 교장으로 사목했으며, 1956년, 다시 한번 독일 유학길
에 오릅니다.
귀국 후에는 가톨릭시보사, 현재의 가톨릭신문사 사장을 역임합니다.
그리고 1966년 새로 생긴 마산교구의 초대교구장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주교 서품을 받게
됩니다.
2년 뒤에는 서울대교구장에, 다음해인 1969년에는 한국 교회 최초로 추기경에 서임됩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30년 가까이 한국 가톨릭교회의 수장을 역임하면서 힘없는 이들을 대변하고
정의의 편에서 민주화 운동에 기여합니다.
김 추기경은 특히 광주 민주화 운동을 재임 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로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1983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신앙대회를 앞두고 인생의 가장 친한 벗이자 위안이었
던 김동한 형님 신부를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기도 했던 김 추기경은 1998년, 서울대교구장직
에서 은퇴함으로써 교회 수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고 2009년 2월 16일, 하느님 품 안에 안식을 얻을 때까지 기도와 봉사로서 우리들에게 신앙적인 삶의 모범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