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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최일환목사
즐거워하며 주를 섬깁시다.
로마서5:1~11
2013년 4월 7일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주일 낮예배 설교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설교:
오늘도 주님의 평안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뭘까요?
제가 컴퓨터로 찾아본 것 중에 최고 많은 단어는 ‘여호와’입니다. 5910번입니다. 두 번째는 ‘사람’입니다. 4588번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하나님’입니다. 3597번입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단어는 557번, 믿음이라는 단어는 253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전치사나 정관사를 빼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중에 성경에 많이 나오는 단어 중 하나가 ‘기쁨’입니다.
‘기뻐하다’ ‘기쁨’ ‘기쁘게’ 또는 ‘기쁘다’ 등 명사, 형용사, 동사, 전부 합쳐서 548번이 개역개정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슬픔’, ‘슬프다’ 등으로 표현된 단어는 139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삶은 기뻐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임을 교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슬퍼하며 괴롭게 사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을 촉구하면서 외친 말씀이 뭔가요? 렘29:11절을 보세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려고 하시는 것이고 재앙을 주려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니 회개하고 돌이켜 평안 가운데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주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또 요한복음15:11절을 보세요. 포도나무 비유를 들면서 말씀하신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하셨습니다.
주안에 꽉 붙어서 주께서 주시는 기쁨을 누리고 살아가라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 종교 중에 우리 기독교만이 찬송을 부릅니다. 물론 불교도 기독교를 본 받아 찬불가라는 것을 만들었답니다. 기타 몇몇 종교도 노래가 조금씩 있으나 우리 기독교와는 비교가 안 됩니다.
왜 우리 하나님이 찬양을 기뻐하실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기쁨으로 찬송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신앙생활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구원 받았다고 믿으면서 신앙생활이 괴롭고 힘들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주인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갖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은 실상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분의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염려와 근심에 매여 괴롭고 힘들게 살지 말고 오히려 주님께 맡기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기도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로마서 5장 말씀은 우리가 구원 받은 백성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특히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은 백성은 의롭다 함을 받은 백성인데 그렇다면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요구하는 말씀이 즐겁게 주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성도는 무엇을 즐거워하며 어떻게 기뻐해야 할까요?
오늘 하나님이 주신 본문 말씀을 보면 ‘즐거움’이라는 단어가 몇 번 반복되어 나옵니다. 그것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은혜를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1. 구원받은 자로서의 즐거움을 누려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십자가의 보혈로 살리셨습니다. 그러기에 그 구속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안다면 그는 엄청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절을 보세요.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여기‘그로 말미암아’라고 했습니다. 그가 누구십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라는 은혜를 얻었습니다. 그러니 그 구원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 그를 통해 받으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즐거워하시나요?
여러분이 기뻐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단순한 육체적인 쾌락이나 세상적인 부귀영화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아직 하늘의 은혜를 맛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인간의 참된 행복과 기쁨은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쾌락의 수준에서 머물지 말고 한 차원 높아져야 합니다.
만약 동물적인 본능과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느끼는 행복과 즐거움이 우리 기쁨의 전부라면 그것은 구원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하늘로부터 임하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나는 영적인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을 보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죄로 말미암아 슬퍼하고 고통을 당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슬픔과 고통을 늘 안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신 말씀을 보세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를 받았으며 영생의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충분히 즐거워 할 이유가 있으며 그 즐거움을 누려야만 합니다.
물론 우리가 죄를 지으면 참회하며 통곡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으면 그 사함의 은혜를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을 즐겁게 행복하게 믿어야 할까요? 구원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뭔지를 바로 알고 믿는다면 정말 우리는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을 기록한 다윗은 시편51:12절에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구원의 즐거움의 회복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행복하고 즐겁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도 충성하고 영광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기도하는 여러분 되길 축원합니다. 이 즐거움은 외적인 것이나 눈에 보이는 것 때문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 누리는 즐거움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보세요.
합3:17~18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
하셨습니다. 이 성구를 가지고 노래가사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같이 찬양합시다.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우리의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 기뻐하리라/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가 뭔가를 가져서 기쁜 것이 아닙니다.
비록 가진 것 없고 누리는 것 없어도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의 사람의 고백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조금은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하시는 성도되기를 축원합니다.
2. 환난 중에도 즐거움을 누려야 합니다.
본문 3~5절을 보세요.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본문 3~4절이 정말 중요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세상 사람과 믿는 성도의 확실한 차이는 이런 것에서 발견됩니다.
믿는 사람은 좋은 일뿐만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환난 속에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좀 이상합니다. 불신자들은 환난 당하거나 어려운 일을 당하면 절대로 기뻐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성도는 그런 환난 속에서도 즐거워하고 행복해 합니다.
장례식을 보세요. 불신자들은 “아이고~ 아이고~ 哭(곡)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는 이런 때에도 찬송을 합니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나가 만나리....
왜 환난 중에 노래 할 있죠? 우리가 어려움과 환란 중에도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은 현재가 아닌, 미래에 우리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미래지향적입니다. 우리 신앙의 종점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죽음이 아닙니다. 천국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른 것입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합니다.
여러분은 마태복음5:10절 이하를 이해하실 수 있나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또 마5:11~12절에는 뭐라고 하셨나요?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예수님 때문에 욕 얻어먹고 박해를 받고 사람들에게 악한 말을 들을 때도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찌하라고 하시나요? 슬퍼하고 울고 있으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왜냐?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당장은 즐겁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은 고난이 있습니다. 그래서 힘이 들고 미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왜?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난과 핍박 중에도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가 누리는 기쁨과 행복은 외적인 것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환난 중에도 천국을 바라보고 기뻐해야 합니다. 환난과 핍박은 천국에 대한 더 큰 소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소망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구원받은 성도는 소망의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고 바라며 기쁨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을 보세요.
그들은 소망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환난과 고난의 터널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모세는 40년간의 광야라는 터널을 자났습니다. 요셉은 13년이라는 터널을 통과 했습니다. 다윗도 하루아침에 왕이 된 것이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운 고난과 환난, 그리고 연단의 과정을 밟았습니다.
그때 그들이 어떻게 그 혹독한 터널을 견디었을까요? 소망의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았다면 그들은 사탄의 종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니 믿는 성도만이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3. 받은 사랑을 나누면서 즐거움을 누려야 합니다.
찬송가 가사 중에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저는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늘 아쉬움이 있습니다.
1절은 지금 가사대로 그렇게 부르게 하고, 2절은 ‘당신은 사랑 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불렀으면 참 좋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참 즐거움과 참 행복은 어느 때 있느냐? 사랑을 받기보다는 사랑을 줌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랑을 나누면 그 기쁨은 배가 되는 것입니다. 함께 나눔으로서 그 행복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세요. /사랑은 /나눔으로 배가되고/ 고통은 /나눔으로 줄어 든다/ 아멘?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창피하다고 혼자 끙끙대지 마세요. 많은 사람에게 나누세요. 그러면 해결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사랑을 지금 나누고 계십니까? 나누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누면 나눌수록 그 은혜는 더 커지고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노만 빈센트 필 박사라는 유명한 분이 계십니다. 그는 말하기를 “사람의 행복은 사랑 할 수 있는 일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행복은 사랑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처럼 사랑하는데서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을 행복하게 할 때 행복할 수 있고, 남을 즐겁게 하면 즐겁게 됩니다. 남을 슬프게 하면 나에게도 슬픔이 옵니다. 남을 근심시키면 나에게도 근심이 옵니다.
본문 6절 이하를 보세요.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여기를 보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것입니다. 그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 사랑 때문에 오늘 우리가 행복을 얻었고 그 사랑 때문에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랑을 받은 우리는 이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무엇을 나누나요? 쌀을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을 주며 구제하는 것?
그것도 나눔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도요 선교입니다. 아무리 먹을 것을 주고 장학금을 주고 해봐요.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 갑니다. 그러니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가장 중요한 사랑의 나눔은 전도요 선교입니다. 그 사역에 생명을 걸고 헌신하는 것이 그 분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어떤 것인가요?
전도는 이름을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전도는 전도 받은 자의 이름을 바꾸어 줍니다. 어둠의 자녀에서 빛의 자녀로 바꾸어 줍니다.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이름을 바꾸어 줍니다.
또 전도는 소속을 바꾸어 줍니다.
전도는 땅에 속한 자를 하늘에 속한 자로로 바꾸어 줍니다.
그리고 전도는 운명을 바꾸어 줍니다.
파멸을 당한 운명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합니다.
그리고 전도는 삶의 방향을 바꾸어 줍니다. 자신을 위해서 살던 사람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는 자가 되게 합니다.
우리나라에 <JOY선교회>라는 선교단체가 있습니다.
저는 처음 그 선교단체 이름을 보고 오해를 했습니다. 그저 ‘기쁨선교회’라는 이름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단어는 J 와 O와 Y의 합성입니다.
J는 JESUS,
O는 OTHER(다른 사람), 그리고
Y는 YOURSELF(자기 자신)이란 것입니다.
이것은 우선순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먼저는 예수님, 그리고 둘째는 다른 사람들, 마지막에 자신을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이순서가 올바로 될 때 비로써 행복과 기쁨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기위해서는 예수님이 최우선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해야 하고 마지막이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제일 먼저는 나요. 그 다음은 하나님, 그리고 마지막이 남들입니다. 이러면 기쁨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세요.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느니라” 라는 말이 뭡니까? 원수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신 예수님, 그분으로 인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주님은 나를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도 그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게 뭡니까? 그게 전도요 선교입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목숨을 걸고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온 선교사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이 자신들만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그 사랑을 우리에게 나누질 않았다면 우리는 어찌 되었을까요?
그러기에 우리는 빚진 자입니다. 사랑에 빚진 자입니다.
사도바울도 자신을 빚진 자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마음속에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꿈을 갖습니다. 결국 로마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마지못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기쁨으로 했습니다. 마지못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도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에게 무거운 짐이 돼서는 안 됩니다. 즐겁게 행복하게 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행복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늘 즐겁고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발견하고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기쁨을 누리세요. 그리고 천국에 소망을 두고 찾아오는 환난도 즐거워하세요. 그리고 받은 사랑을 주변 사람에게 열심히 나누어 주세요. 그러면 여러분 인생은 즐거워하며 주를 섬기는 인생으로 변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통성기도)
http://cafe.daum.net/ilhwan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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