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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료 스크랩 시편의 배경 - 김정우 주석
아이얼굴 추천 0 조회 306 12.05.03 11:44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목 차

Ⅰ. 시편의 명칭과 정격에서의 위치............................................. 2

Ⅱ. 시편의 수와 절 구분 ........................................................... 3

Ⅲ. 시편의 본문비평 .................................................................4

Ⅳ. 시편의 형성 과정과 구조 ......................................................9

Ⅴ. 시편의 표제 .......................................................................11

Ⅵ. 시편의 저작 연도 ............................................................... 12

Ⅶ. 시편 해석 방법론 ............................................................... 13

Ⅷ. 시편의 저주와 정경적 해석 .................................................. 15

Ⅸ. 히브리시의 성격과 특징 ...................................................... 16

 

Ⅰ. 시편의 명칭과 정경에서의 위치

1. 시편의 명칭

우리에게 시편이라는 명칭을 전해준 사본은 주후 4세기 작품인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이다. 여기에는 ‘시’(Psalmoi)라는 표제와 ‘시서’(Biblos psalmon)라는 부제가 나타나며, 주후 5세기 알렉산드리아 사본에는 ‘시집’(Psalterium)이란 단어가 나타나고 있다. 원래 헬라어에서 ‘시’(psalteion)라는 단어는 ‘현악기와 함께 노래하다’는 뜻이었다. 여러 사본에서 ‘시편’이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확고하게 사용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사본 단편들과, 가장 권위 있는 알레포 사본(Codex Aleppo)과 게닌그라드 사본(Codex Leningradensis)에는 시편이라는 명칭이 나타나지 않으며, 역대기 마지막 마소라 부호 다음에 약간의 공백을 둔 후 시편1편을 바로 시작하고 있다.

시편 속에서 우리가 시편의 표제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시편 72:19,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끝나다’에 나타난다. 즉, 시편 기자는 시편을 ‘다윗의 기도’로 보았다. 역대기에서는 여러 노래들이 ‘다윗의 말’ 혹은 ‘아삽의 말’로 소개된다. 아마 이런 표현들은 ‘다윗의 기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유대인의 랍비 문학을 살펴보면, 시편은 ‘찬양’이란 뜻을 가진 단어와 이어져, 세페르 테헬림(Sefer Tehillim, 찬송가: 바벨론의 Baba Bathra 14b) 혹은 단지 텔림(Telim) 혹은 틸레(Tille)라고 한다. 이런 문법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남성복수형 테힐림(tehillim)을 사용한 것은 성전에서 사용하는 시편 찬양을 일반 찬송과 구별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2. 히브리 정경 안에서 시편의 위치

일반적으로 볼 때, 시편은 성문서에서 처음 혹은 두 번째에 있다.

인쇄본 성경에서 시편은 시가서 중에서 항상 처음에 나온다. 아마 시편은 고대로부터 성문서를 대표한 것 같다.

신약 성경에서 시편은 성문서 전체를 대표하는 단어가 된다. 필로의 책(Contemplation)에도 ‘율법과 선지자들이 전한 말씀과 찬송과 다른 글들’이란 표현이 나오며, 막카비 2:13에 나타나는 ‘왕들과 선지자들과 다윗의 글들에 대하여’라는 표현은 신약성경의 표현과 유사하다. 모세의 책5권, 선지자의 글 13권, 나머지 4권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인간 행위에 규범을 주는 것이다.라는 말에서 볼 수 있다.

 

Ⅱ. 시편의 수와 절 구분

1. 시편의 수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히브리어 성경에는 150개의 시편이 담겨 있다. 그렇지만, 레니그라드 사본, 바지카 사본과 네이플 사본에는 149편으로 나타난다. 이 차이점은 시편 114-115편을 하나로 묶는 것 때문에 만들어졌다. 이런 현상은 미샤엘벤 우지엘(Mishael ben Uzziel)과 사무엘 하 나기드(Samuel ha-Nagid)의 시편 사본 뿐 아니라, 몇몇 히브리어 사본에도 나타나고 있다.

70인역은 마소라 사본의 9, 10편과 114, 115편을 각각 하나로 묶어 배열하고 있지만, 116편과 147편을 각각 둘로 나누기 때문에 여전히 150개의 시편으로 되어 있다.

시편을 150편으로 나눈 이유는 일차적으로 150이란 숫자가 거룩한 숫자일 뿐 아니라, 시편을 예배 시간에 정기적으로 읽기 위해서였다.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을 삼년에 한번 다 읽기 위해, 해마다 토라와 선지서와 성문서를 각각 나누어 읽었다. 따라서 사람들느 세 개의 시편을 1년 50주의 단위로 3년간 시편을 모두 읽었을 것이다. 물론 다양한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전통은 달라졌다.

 

2. 시편의 절 구분

쿰란 시편을 보면, 시편 119편은 알파벳 시편이므로 절의 배열리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우대 문헌들 역시 절의 분석을 다르게 제시한다.

⑴ 타나임 자료들에서 시편이 모두 5,896절로 나타난다.

⑵ 서방 마소라는 2,527절로 구성된다.

⑶ 동방 마소라는 2,524절로 구성된다.

⑷ 인쇄본에서는 최소한 세 개의 단어가 한 절을 구성하는 규칙을 따르게 한다. 세단어

혹은 그 이상으로 구성된 표제는 달리 계산되었다.

 

Ⅲ. 시편의 본문비평

히브리어 성경이 전수되는 최종적 과정에 자리잡고 있는 마소라 사본도 오류가 없는 본문이 아니며, 본문이 훼손되는 다양한 과정에서 제외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렇지만 마소라 시편 사본이 얼마나 신실하게 ‘가상적인 원본’을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마다 큰 시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스탐은 버나드 둠과 헤르만 궁켈이 ‘자유로운 추측(freier Konjekturen)을 따라 ’비평의 마지막 울타리까지 넘어가도록‘ 마소라 사본을 다루었다고 한다.

최근에 와서 70인역 연구가 크게 발전하고 있고, 쿰란 시편의 발견으로 시편의 본문비평에 새로운 자극이 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핵심적인 고대의 역본인 70인역과 쿰란 사본들을 마소라 시편과 비교하여 각 전통들의 가치를 평가하고, 원문에 보다 충실한 독법이 무엇인지 찾아 볼 필요가 있다.

 

1. 마소라 시편과 70인역 시편

역사적으로 볼 때, 70인역은 히브리어 시편의 본문 비평에 가장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물론 쿰란 시편도 큰 기여를 하였지만, 그것의 ‘정경적-의식적’ 위치에 대한 논의와 특히 쿰란 공동체의 분파적인 성격 때문에 본문 비평적인 논의는 약화되었다.

70인역은 원래 히브리어나 아람어에 익숙하지 않은 팔레스타인 밖의 흩어진 유대인들을 위한 번역서였다. 따라서 번역자들의 일차적인 관심은 히브리어 성경을 일반 독자들이 보다 쉽게 이해하도록 하는 데 있었다. 성경을 보다 쉽게 대중에게 소개하자는 것이 이 번역서의 일차적인 목표였으나, ‘비유대인으로 구약성서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선교적인 동기도 무시될 수 없었다.

이런 동기와 목적 외에도 70인역은 신학적 이해와 해석적인 방법론과 헬라어 및 히브리어에 대한 능숙도에 있어서 서로 차이가 있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지 때문에, 마소라 본문과의 차이를 심화시켰다. 또한 번역이 오랜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같은 책을 번역하는데 있어서도 여러 사람들이 수정을 가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시편의 본문 전승 역사는 사무엘서나 예레미야서처럼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본문의 전승사에 대한 이론은 대부분 시편 밖에서 이루어져 왔으며, 시편에서는 마소라 사본과 70인역 사이에 근본적인 충돌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면, 시편에 잇어서 두 본문 전통 사이에 아래와 같은 차이점들이 드러난다.

1) 배열의 차이

BHS 시편에는 150개의 시편이 담겨 있다. 70인역은 자체의 배열 방식을 갖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9-10편과 114-115편을 하나로 묶지만, 116편과 147편을 둘로 나누기 때문에 여전히 150개의 시편으로 되어 있다.

2)표제의 차이

마소라 시편에는 다윗 시편이 73개이나, 70인역 시편에는 84개가 나타난다. 또한 이 표제들에는 ‘부차적인 자료들’이 많이 나타나는 점도 이러한 가정을 뒷받침해 준다. 전반적으로 볼 때, 70인역 표제는 마소라 사본의 표제를 확대한 것‘으로 결론 내릴 수 있을 것이다.

3) 70인역의 문자적 번역

70인역은 히브리어를 잘 모르는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번역자들은 히브리어의 특성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70인역의 헬라어는 꼭 ‘유대적 헬라어 방언’(Thackeray)은 아닐지라도 ‘히브리어적 주형’이 찍혔으며, ‘어휘 뿐 아니라 통사론에 있어서 문자주의’가 두드러진다. 요약하자면, 70인역 시편은 ‘히브리어 시편을 비교적 문자 그대로 번역한 것’(Pietersma 199-;214)으로 여겨진다.

4) 의도적 수정

⑴ 문체적인 이유에 근거한 수정(Soffer 1974:413)

70인역은 시편 18:7절에서 ‘이는 그가 노하심이라’는 독법에 ‘하나님이 그들에게’란 구를 첨가하여 독자들이 본문을 더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해석적 요소는 70인역이 대중의 성경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헬라어 번역은 독자들의 성경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해석적 요소는 필요할 때 나타나게 되었다.

⑵ 의식적이 이유에 근거한 수정

시편 자체가 의식(儀式)적인 용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정경시편에는 의식적인 배경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70인역은 유대인의 예배 공동체를 위한 번역이므로, 본문을 의식적인 이유로 수정하는 현상은 자연스러우며, 특히 70인역 시편 사본에는 의식적인 성격이 빈번히 나타난다.

⑶ 신학적인 이유에 근거한 수정

① 하나님의 칭호 수정

70인역은 하나님의 칭호인 아도나이(Adonay)를 ‘주’(kyrios)로 번역하며, 하나님의 이름인 야웨(YHWH)도 ‘주'(kyrios)로 대치한다. 여기에서 70인역 번역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주‘로 대치한 것이 당대의 구전을 따른 것인지 독창적인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이름을 높이는 것은 번역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될 수 없는 문제였다.

② 신인동형적 표현(anthropomorphism)

‘신인동형적 표현’을 철저하게 피하는 탈굼 시편과는 달리, 70인역에서는 ‘반(反)신인동형적 표현’(antianthropomorphism)이 빈번하게 나타나지 않으며, 빈도수는 책마다 다르다.

즉, 히브리 시편에 있는 신인동형적 표현은 70인역에서 대부분 직역되며, 문맥이 의역을 필요로 할 때 비유적으로 번역된다. 신인동형적이며, 신인동감적인 표현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문맥에 따라 적절하게 번역되었으므로 소퍼는 70인역 시편 번역자가 히브리어에 대해 상당한 실력을 갖춘 단일 번역자로 여긴다.

5) 첨가

⑴ 히브리어 본문에 구절을 첨가함

시편 14:3a-c에서 70인역(LXX 13:3a-c)은 긴 삽입절을 첨가한다. 이 외에도 이런 현상이 몇 곳에 더 나타난다.

⑵ 여분의 시편을 첨가함

70인역은 151편 전체를 첨가한다. 초대교회는 이 시편을 여분으로 여겼다. 이 시편은 여러 성경들로 짜깁기 된 것이다. 이 시편은 아다나시우스가 마르켈리누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윗의 작품’이라고 언급되며, 마리아의 이름으로 이그나티우스에게 보낸 편지에도 인용되며, 알렙 사본에도 시편의 일부로 나타나지만, “알렙포 사본에서는 조심스럽게 시편 자체에서 배제된다”

6) 오류, 무지, 추측

⑴ 70인역의 시편 5편의 표제에서 고서체적 혼란이 나타난다.

⑵ 70인역 시편 표제들은 히브리어 본문에 없는 첨가 자료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96편(LXX 9편)에서, ‘포로 후 집을 건축하였을 때, 다윗의 노래’ 라는 표제는 시편 95편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⑶ 토브는 70인역 번역자들이 가끔 히브리어에 대한 무지함을 드러낸다고 지적하였다. 번역자는 히브리어 단어나 구가 번역이 잘 안될 때에는 번역을 생략하거나 혹은 음역한다. 음역된 단어들은 대부분 전문 술어이거나 단 한번 나타나는 단어(hapax legomena)나 문맥을 잘못 읽어 보통명사를 대명사로 여긴 경우들이다.

⑷ 히브리어의 뜻을 추측한다. 번역자는 문제가 된 히브리어 단어를 표현할 수 있는 일반적인 단어를 체택하여 자신의 부족한 히브리어 지식을 숨긴다. 70인역 번역자는 일반적으로 이것을 ‘주다’(dosei)로 번역한다. 왜냐하면 ‘덮다’가 현재 문맥에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7) 원문에 더욱 가까운 독법들

70인역이 마소라 독법과 명백하게 다른 것을 저본(底本)의 차이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므로, 그 차이들을 마소라 사본과는 다른 본문의 전통을 반영한다고 보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70인역의 이독(異讀)은 꼭 다른 저본(Voriage)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가 된 히브리어 단어나 구에 대해 70인역이 더 정확한 독법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2. 마소라 시편과 쿰란의 시편 필사본들 비교

① 배열의 차이

② 표제의 차이

③ 페쉐르 번역 원리 : 페쉐르 시편으로 알려진 몇 편에는 주석이 첨가되어 있다.

④ 의도적인 수정 ; 문제적인 이유에 근거한 수정과 의식적인 이유에 근거한 수정

⑤ 첨가

⑥ 오류

⑦ 원문에 더욱 가까운 독법들

 

3. 11QPs2의 정경적 지위에 대한 토의

1) 샌더스의 입장

샌더스는 11QPs2의 설화체 결어(1967:89)에 근거하여 이 시편이 쿰란에서 정경적 위치를 누리고 있었다는 주장을 하면서, 동시에 11QPs2는 ‘고정된 정경’이 아니라, ‘유동적인 정경’임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시편의 마지막 세 번째권 부분에서는 이 유동성이 두드러진다고 본다. 샌더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1966:89). “이 모든 점들을 살펴볼 때, 제 4동굴과 제 1동굴에서 나온 모든 자료들을 출판하기 전까지 당분간, 시편 두루마리를 시편의 마지막 세 번째 부분에서 이미 엄격하게 고정된 정경에서 이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편 정경화에 있어서 다면체적인 역사의 이정표로 여겨야 한다. 정경화는 점진적이고 복잡한 일이었다,”

2) 스케한의 입장

스케한은 샌더스가 다룬 동일한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후에 그와는 정반대되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이 시작하는 방식이나, 끝나는 방식이나 그 사이에 있는 여러 시사하는 점들을 볼 때, 1QPs2는 150개 시편의 표준적인 전집에 의존하며, 쿰란의 시편 자료들 중 그 어느 것도 이와 상충되는 견해를 실제적으로 시사할 수 있는 개연성을 제시하지 못한다.” 다시말하면, 1QPs는 쿰란에서 정경적 시편으로서 마소라 사본 이전의 다른 전통을 반영한다기 보다 오히려 마소라 사본에 담긴 정경적 시편이 와나성된 이후의 것으로서 마소라 시편의 전신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3) 윌슨의 입장

샌더스와 스케한의 상반된 견해에 대해 윌슨은 각자의 기여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샌더스에 대해 윌슨은 쿰란 서기관들이 시편의 ‘표준적인’ 마소라 본문과는 다른 순서를 제시하며 또한 정경 시편에 ‘외경’ 시편들을 첨가하는 문제를 보면서, 쿰란 사본이 현 시편의 정경적 순서를 전체적으로 ‘지지하는 통계’와 ‘지지하지 않는 통계’를 살피고 있다.

윌슨은 스케한의 입장에 대해 역대상 16:8-36과 그 속에 인용되었다고 하는 시편의 연관성이 ‘만족스럽게 확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또한 역대기의 본문은 ‘시편 105, 96, 106편의 혼성곡으로서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고 본다.

4) 11QPs2의 의식적 성격과 정경성 문제

5) 남은 문제들

⑴ 정경성의 개념 문제

윈슨은 샌더스의 입장과 스케한의 입장 사이에 있는 대립이 ‘정경’이란 용어를 비롯한 몇 개의 용어에 대한 불분명한 정의에 기인한다고 본다.

⑵ 정경화(Canonization) 과정 문제

‘정경성’에 대한 논쟁 못지 않게, 역사적으로 ‘정경화가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졌는가?’ 하는 문제도 심각하다.

⑶ 본문비평적 가치 문제

‘성경 본문의 전수과정에 있어서 여러 가지 이유들, 즉 교리나 문체 등으로 성경 속에 다른 독법을 의도적으로 삽입하고, 서기관의 언어적인 독특성이나 특징적인 개념이나 사상 때문에 우연한 변화가 통제할 수 없이 만들어지는 현상은 늘 나타나며, 이런 현상은 ’쿰란 성경‘에 모두 나타나고 있다“. 이런 문제는 모든 번역이나 역본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며,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4. 기타 고대 역본의 본문들

1) 아람어 탈굼

본문 비평에 있어서 아람어 성경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한계성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먼저 탈굼을 만든 이유는 정확한 본문을 전달하기 위함이 아니라 교육받지 못한 유대인들이 히브리어 본문을 아람어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그 당신의 ‘신학적인 성향’에 따라서 본문을 의역하고 설명하는 구절을 첨가하며 재해석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2) 옛 라틴번역과 벌게이트

제롬은 세 개의 시편 번역을 하였는데 그 중 두 번째 번역을 우리는 벌게이트라고 부른다. 교황 다무수스(Damasus)의 명을 따라서 제롬은 70인역을 따라서 신속하게 일부만 먼저 번역하였고, 이것은 우헤 로마의 시편으로 불려졌다. 그는 후에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랴에 머물면서 두 번째로 시편의 완전한 개정판을 만들었고 이것은 갈리카늄의 시편 혹은 벌게이트로 불려지게 되었다. 끝으로 제롬은 구약성경 전부를 히브리어 본문에서 라틴어로 직접 번역하였다. 특히 시편을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할 때 그는 ‘원본의 아름다움고 매력’을 드러내려고 노력하였다. 제롬은 히브리어 원본에서 라틴어로 직접 번역 하려고 노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70인역, 심마쿠스, 아퀼라와 데오도션에 자주 의지하였다.

3) 시리아 번역본(페쉬타)

페쉬타의 기원과 본문의 전승 과정은 여전히 모호한 상태이다. 뷰르트바인은 페쉬타의 번역이 ‘여러 개의 다른 손’을 거쳐서 이루어졌으며 각 책의 번역의 질이 다르다고 보았다. 본문 비평에 있어서 시편 페쉬타가 마소라 사본과 70인역과 어느 정도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학자들은 서로 상충되는 두가지 입장을 가지고 있다. 다이스트 역시 페쉬타와 70인역 사이에 있는 밀접한 관계를 발견하고 페쉬타의 본문 비평에서 최종적인 결심을 내릴 때 숙지할 요령을 제시한다.

페쉬타가 하나의 독자적인 본문을 증거하는 것으로 믿기 전에 히브리어

본문으로부터 떠난 독법이 70인역에 근거한 것이 아닌지 확실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구약 성경 전반에 걸쳐 적용될 뿐 아니라 시편과 소선지서에도 구체적으로

적용이 된다.

Ⅳ. 시편의 형성 과정과 구조

시편이 현재의 다섯 권으로 나누어진 것에 대한 가장 오래된 증거는 1Q30에 나타난다. 이 사본은 아주 나쁜 상태로 보전된 의식적인 단편으로서, 초기 기독교 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70인역의 시편은 아무리 늦어도 주전 150년 전에 완성되었을 것이다. 제롬 역시 시편을 다른 책보다 먼저 번역하였다. 따라서 대부분의 70인역 학자들은 시편 번역 연대를 선지서 번역 이전으로 잡는다.

그렇지만 70인역의 구분법은 문제를 볼 때, 바벨론 포로 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로서 ‘모든 백성은 아멘 하여라’는 구절은 아주 독특하다. 이 표현은 의식적인 것이며, 원래 시편의 언어가 아니다. 따라서 이런 표현은 아주 초기에 회당에서 붙였을 것이다.

 

1. 시편 편집의 과정

현재의 시편이 만들어 지기 전에 여러 개체의 시들이 여기 저기, 이 동네 저 동네, 이 성소 저 성소에 흩어져 있었고,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필요를 따라 하나씩 낱권으로 모여지기 시작하였고, 결국 바벨론 포로 후의 최종적인 편집자(혹은 편집 위원회)가 현재 형태로 만들었을 것이다. 시편이 현재 형태로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편집 과정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몇 개의 실마리들이 시편 속에 담겨 있다.

1) 시편 편집 과정에 대한 시편 자체의 증거

현재의 시편 편집에 따르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데 뚜렷이 다른 두 개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야웨 시편으로 불려지는 제 1권에서는 야웨라는 이름이 주로 사용된다. 제 2권과 3권 중 엘로힘 시편으로 불려지는 42-83편을 보면, 엘로힘은 210회 사용되고 야웨는 44회 사용되어, 전자가 후자보다 약 다섯 배 이상 더 많이 사용된다. 또한 제3권의 마지막 시편 84-89편과 후기 야웨 시편으로 불려지는 90-150편에서는 야웨가 각각31번, 339번 나타나며, 엘로힘은 각각 7번과, 9번 나타날 뿐이다. 그리고 아주 낯선 하나님의 칭호인 ‘하나님 나의 하나님(Elohim Elohai, 43:4)과 ’하나님, 당신의 하나님‘이 오직 엘로힘 시편에만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각 권에 따라 이렇게 일관성 있게 다른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우연일 수 없고, 편집자의 활동과 연관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시편 편집 과정에 대한 잠정적 가설

⑴ 시편 편집 초기에는 여러 개의 작은 낱권집들이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었을 것이다.

여러 성소에서 주제나 예배 의식이나 절기의 성격에 따라 조그만 묶음집을 만들었을 것이다.

⑵ 두 번째 단계에서는 여러 개의 낱권들의 묶음을 더 큰 소품집으로 만드는 작업이 있었을 것이다. 이미 다윗 시대에 레위인들은 성전 예배를 위한 시편들을 준비하였다.

⑶ 세 번째 단계에서 첫 다윗 시편(3-41편)을 엘로힘 시편(시42-83편)과 묶는 작업이 일어났을 것이다.

⑷ 네 번째 단계에서, 주님의 왕권을 노래하는 시편들(90-107편)과 다윗 시편들(108-111편)과 할렐루야 시편들(111-118편), 알파벳 토라 시편(119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120-134편), 다윗 시편(138-145편)과 마지막 할렐루야 시편(146-150편) 들이 모이게 되었을 것이다.

 

2. 시편의 전체적 구조

현재의 시편은 모두 다섯 권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 권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송영으로 마무리 되고 있다. 제1권(1-41편)은 41:13,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할찌로다 아멘 아멘”으로 마친다. 제2권(42-72편)은 72:18-19, “홀로 기사를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으로 마친다. 제3권(73-89편)은 89:52, “주님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으로 마친다. 제4권(90-106편)은 106:48,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 모든 백성들아 아멘 할지어다 할렐루야”로 마친다. 끝으로 제5권(107-150편)은 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주님을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로 마친다.

 

3. 시편 5권의 각 권 구조

1) 제 1권(1-41편)

제1권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시편 3편으로 시작하여 41편으로 마친다. 토라 시편으로 알려진 시편 1편은 l편 전체의 서론이며, 시편 전체를 열어주는 관문이다. 제왕시로 알려진 시편 2편은 시편 전밥부를 짜는데 72편. 89편의 서론으로 주어졌다.

2) 제 2권(42-72편)

이 책은 소위 엘로힘 시편으로 알려지는 큰 단위(42-83편)의 일부로 형성되어 있다. 아마 엘로힘 시편은 원래 통일성을 갖고 있었는데 시편을 5권으로 만들면서 둘로 나누어지고, 2권과 3권을 나누는 지점에 72:18-19절의 송영과 편집자 주를 삽입하였을 것이다.

3) 제 3권(73-89편)

제 3권은 엘로힘 시편의 나머지 부분(73-83편)과 몇 편의 여호와 시편(84-89편)을 부록으로 담고 있다. 이 부록이 첨가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1권부터 3권까지 하나님 이름을 사용할 때 교차대구법을 사용하기 위함인 것 같다.

4) 제 4권(90-106편)

제4권에서는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가문과 연관된 시들이 소개되지 않고, 주제를 따라 엮어지고 있다.

5) 제 5권(107-150편)

제5권은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네 가지의 중요한 삶의 영역에서 노래하는 107편으로부터 시작하여 몇 개의 다윗 시들(108-110편)이 뒤따라 나온다. 이어 10번째 할렐루야 시편(111-117편)이 제시된다.

Ⅴ. 시편의 표제

1. 표제의 고대성

시편의 표제를 살펴보면, 주로 ‘음악적인 배경’ (지휘자를 따라, 악기의 유형, 그리고 어떤 멜로디), ‘의식적인 배경’, 저작권과 연관된 내용들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와 연관된 것으로서는 그의 생애의 사건들을 소개하기도 한다(다윗의 시들 중에는 13개의 시편이 그의 생애와 연관되어 있다).

시편 표제들의 고대성을 뒷받침하는 것으로서, 사본 상의 증거를 들 수 있다. 시편의 표제들은 이미 여러 사본이 만들어지기 전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쿰란 시편에 이미 표제들이 나타난다.

 

2. 음악적 표제

⑴ 시 (mizmor)

시편에서 57회 나타나며, ‘다윗의’ 라는 말이 첨부된 경우는 모두 35회 나타난다. 우리말 성경에서 이 단어는 ‘다윗의 시’ 혹은 ‘다윗의 노래’로 번역된다.

⑵ '영장‘ (혹은 악장)

원어(natsach)에서 ’뛰어나다, 빛나다‘는 뜻을 갖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지위자를 위하여‘(표준)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것은 시편에서 표제로 55회 나타나고 있다.

⑶ ‘스미닛’

히브리어로 ‘여덟 번째’를 뜻한다,

⑷ ‘관악에 맞춘’

시편 5편에 단 한번 나타나며 RSV는 단지 ‘with the Nehiloth'로 음역하고, 난와주에 관악기(Wind instruments)라고 말한다.

⑸ ‘힉가욘’

힉가욘은 시편 9:16과 19:14에도 나타나며, 기본적으로 ‘묵상’을 뜻한다.

⑹ ‘여두둔’

시편의 표제로 39편, 62편, 77편에 나타난다. 여두둔은 개인의 이름이며, 아삽과 해만과 함께 다윗 시대에 악사로 일한다.

 

3. 의식적 표제

시편 30편에는 ‘성전 낙성가’라는 표제가 나오고 있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성전의 낙성식과 별 연관이 없어 보인다. 히브리 시편에서 오직 92편만이 특별한 날인 ‘안식일을 위하여’하는 표제가 나타난다.

 

4. 저작권과 연관된 표제

시편 150편 중 116편에는 저자를 가리키는 표제가 나타나며, 34개의 시편에는 아무런 제목도 나타나지 않으므로 익명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등장하는 시인들은 모세(90편), 다윗(73회), 솔로몬(72, 127편), 아삽(12회), 에스라 사람 헤만(88편), 에스라 사람 에단(89편), 고라의 자손들(11회)이며 지휘자를 뜻하는 ‘영장’이 50번 이상 언급된다.

 

Ⅵ. 시편의 저작 연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역사비평학이 절정에 달햇을 때에는 시편이 마카비와 하스모니안 시대(주전165-104년)에 나온 것으로 여겨졌다. 이 연도 결정은 신학적 예표론과 언어학적 예표론에 의해 결정되었다. 신학적 예표론(theological typology)은 신학과 종교의 진화에서 어떤 패턴을 찾아, 이 발전의 틀 속에 집어 넣는 것이다. 언어학적인 예표론도 마찬가지이다.

이 비평학자들은 시편 형성을 마카비-하스모니아 시대의 배경에 두었기 때문에 시편은 그 시대의 정치적인 갈등 가운데 있던 평신도들의 경건을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시편에 있는 순수한 유일신론은 구약신학에서 가장 후대에 발전된 것으로 여겨졌다. 여기에서 개인의 자의식(自意識)이 강조되었다.

이 비평학자들은 언어학적인 예표론(linguistic typology)를 통해 시편의 언어가 예언문학의 흔적을 담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문서설에 따르면, 예언문학이 구약에서 초기의 작품이기 때문에, 시편은 예언 문학이 훨씬 발전된 형태를 담고 있으므로 그들은 시편을 후대의 작품이라고 하였다. 오늘날에는 이런 방법론과 결론이 아래의 이유 때문에 완전히 기각되었다,

⑴ 시편은 성문서에서 아주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⑵ 헬라어 역본은 회당 예배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으므로, 시편 번역은 예언서 번역 전 에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⑶ 쿰란의 증거를 살펴보면, 시편의 제1, 2권은 이미 하스모니아 시대에 결정되어 있었 다. 쿰란 사람들이 시편을 모방하여 감사 시를 만든다는 정황은 추정하기 어렵다

⑷ 시편에 나타나는 신학을 살펴볼 때, 통일 왕조 시대의 ‘제왕 신학’이 지배적이며, 89편 을 통하여 ‘다윗 언약의 위기’가 분명히 제시된다.

⑸ 고대 근동 아시아와 초기 문헌들을 보면, 시편과 형식, 모티브, 표현에서 유사성이 많 다.

 

Ⅶ. 시편 해석 방법론

1. 전통적인 역사적 방법

전통적으로 시편은 성도들의 개인적인 영적 생활을 위해 쓰여졌다고 여겨졌다. 시편을 개인의 영적 생활을 위한 기도와 말씀으로 여기는 과정에서, 해석자들은 시편의 중심 인물로 나타난 다윗을 경건의 모델로 삼았다. 이리하여 이 방법은 시편이 다윗에게 돌린 표제를 중심으로 시편과 역사서에 나타난 다윗의 생애와 연결시킨다.

그렇지만 다윗 시편을 다윗 생애와 잇는 것은 역사서에 있는 다윗 이야기를 시편 속으로 지나치게 많이 가져오거나, 다윗의 생애를 시편에 근거해서 인위적이고, 주관적으로 재구성하기 쉽다. 표제에 나타나는 ‘악장에게’라는 표시 자체가 이미 여러 시편들을 다윗의 배경에서 일반적인 배경으로 전환했음을 말해준다.

 

2. 문학 분석 및 역사적 방법

‘문학 분석’이란 용어 자체가 너무나 넓은 범주이기 때문에, ‘문학분석 및 역사적 방법’이라는 범주가 모호하지만, 이 방법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비평가들이 주로 사용한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이리하여, 다윗의 시는 시편에서 거의 모두 배제해 버리며, 표제의 신빙성도 폄하하여, 시편 전체를 ‘제 2성전 시대의 찬송가’로 보게 되었다.

그렇지만 현대의 시편 연구는 시편 중 상당 수가 제 1성전의 배경에서 쓰여졌음을 증거한다. 쿰란의 시편에도 이미 시편 제1, 2권이 결정되었음을 증거해준다. 더구나 포로 후기에 자주 쓰여진 ‘마지막 날에’, ‘주의 날에’ 라는 종말론적인 표현들은 시편에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시편에서 포로 후기를 명백히 암시하는 것은 시편 126:1과 137편에 나타날 뿐이다. 시온의 노래들(46, 48, 7편 등)은 포로 이전의 분위기를 반영하며, ‘기름부음 받은 자’는 예루살렘에서 통치하고 있는 왕으로 나타나고 있다.

 

3. 양식비평적 방법

시편에 여러 형식이 있다는 것은 현대 시편 학자들이 찾아낸 것이지만, 사실 성경 속에 시편의 형식에 대한 근거가 있다. 역대상 16:4에 따르면, 다윗은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법궤 앞에서 섬기게 하고 구체적으로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다’고 한다.

양식비평의 문제점은 삶의 정황을 지나치게 좁게 잡은 데 있다. 그 동안 양식비평가들은 시편에 나타난 원수들과 고난당하는 시인의 정체에 대해 많은 토론을 하였다. 시인의 원수는 병든 시인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정죄하며 이 기회에 시인을 없애버리려고 한다. 크라우스는 시편에 나타나는 병자나 고소된 자나 죄의식에 눌린자가 다 같은 사람으로 고난을 다양한 은유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버클란드는 시인은 왕이었으며, 원수는 외적이었다고 보았다. 궁켈의 제자였던 모빙켈은 초기에는 시편의 고난 당하는 자들이 원수의 마술에 의해 고통을 당하는 자로서 질병을 앓고 있다고 보았으나, 후기에는 주술론적인 해석을 버리고 역사적인 해석을 시도하였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으로서는 시편의 원래의 배경을 잘 알 수 없으나 시인이 다양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여러 종류의 원수와 싸우되, 시인은 언약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의인의 회중’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시의 속성이 원래의 정황을 모호하게 함으로써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호소하는 것임을 미루어 볼 대, 시편의 원수와 시인의 고난의 정체를 모호하게 만든 것이 오히려 의도적이었을 것이다.

 

4. 의식 기능적 방법(Cult-functional approach)

이 방법은 양식비평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그러나 전통적 양식비평에 따르면, 시편이 비록 제의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최종적인 형태는 제외에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가정이나, 회당이나, 개인 기도, 묵상용으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시편의 용도에 있어서, 양식비평은 훨씬 개인 경건을 강조한다. 따라서 궁켈은 예식 기능적 학파 보다, 제의를 훨씬 더 원시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예식 기능적 방법을 시편에 도입한 모빙켈은 개인적인 용도 보다, 성전에서의 제의적 용도에 훨씬 어 큰 비중을 두었다. 의식 기능법에서는 시의 형식도 중요하지만, 시가 예배 의식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재구성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으로 본다. 특히 고대 이스라엘에서 왕은 성전과 성전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5. 수사학적 분석과 구조 분석

구약 성서해석학에서 전문적인 수사비평은 1968년 마일렌버거의 글, ‘양식비평을 넘어’에서 그 기초를 확립하게 되었다. 그에 따르면, 수사비평이란 “히브리 문학 작품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으로 넓게 제시될 수 있다. 그것은 시이든 내러티브이든 간에 한 문학적인 단위를 형성하는데 사용된 구조적 패턴을 드러내며 술어들이 형성되어 하나의 통일체로 짜여지는 수많은 다양한 장치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시편의 수사 분석은 시편을 구성하는 부분과 전체가 어떻게 통합되고 있는지를 제시하는 것이므로, 결국 구조분석으로 나아가게 된다. 우리가 시를 보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 구조를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다. 다행스럽게 수사분석 방법론이 도입된 이후에, 구조분석은 학문적인 접목을 통하여 좀 더 객관성을 띠고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6. 종말론적-메시아적 방법론

신약에서 인용한 시편들 중 어떤 시들은 메시아적 성격을 띠고 있지 않은 시들도 있다. 달리 말하면, 예언사와 비예언시를 구별하는 일관성 있고 종합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예언과 성취’의 관점을 좀 더 보완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칼빈, 델리취, 커크페트릭, 페론은 전통적인 입장을 가지고, 문학적, 역사적 해석을 시도한다. 이들은 성경의 영감성과 예언의 가능성을 믿으며, 신약의 시편 해석을 권위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시편 자체의 역사적, 문학적 의미를 충분히 고려한다.7

 

7. 정경적 해석방법

신약과 구약을 잇는 고전적인 방법으로서, 예언과 성취의 관점, 풍유적 해석법, 충만한 뜻, 예표론, 종말론적 메시아 해석법이 실패하였기 때문에, 20세기 후반에 와서 ‘정경적 해석’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경비평의 대표적인 두 학자 중 한 명인 샌더스(J. Sanders 1984)는 ‘정경적 비평(canonial criticism)으로, 현재 히브리어 성경이 20세이고 정경적기 후반0세?하게 된 과정을 면밀히 살?더스(J. 샌더스는 본문이 역사적 공동체의 선별과 사용 과정으로 보기 때문에, 공동체가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을 통해 정경을 형성한 것으로 본다.

 

Ⅷ. 시편의 저주와 정경적 해석

1. 문제제기

우리는 구약에서도 가장 난해하며 악명 높은 소위 ‘저주시’로 알려진 69편을 중심으로 기독론적 해석에 대한 정경적 조망을 형성해 보고자 한다. 이 시편은 기본적으로 ‘애가’이며, 원수에 대한 저주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편의상 ‘저주시’라고 부른다. 오늘날 시편 학자들은 이런 시편의 저주에 대해 높은 영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기독론적 해석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저주 소원을 시인의 인성의 표현으로 보고 성령의 감동을 배제한다. 이 시편에 대해, 궁켈은 ‘미워하고 보복할 줄 아는 고대 유대인의 표현’이라고 하며, 문희석은 “원수에 대한 증오가 잔인하고, 극치를 이룬다”고 말한다. 김정준은, “강한 민족주의의 표현이다. 철저한 복수심의 발로이다. 비복음적이다. 그러나 이 약점과 감정적인 것이 이 시인의 인간성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장차 나타날 ‘복음’은 이 인간성을 승화시키는 성령의 역사일 것을 우리에게 알리고 있다.

문제는 69편이 신약에서 상당히 자주 인용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다양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구약과 신약의 거리감을 극대화 시켜버릴 수 없다는 데 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위의 시인들의 원수에 대한 저주가 ‘정당한지’ 확인해 보고, 만약 정당하다면 이 시편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와 만날 수 있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2. 시편 69편에서 본 시인의 저주

⑴ 첫째 저주 : 식사와 교제에서 단절되기를 구함(22절)

⑵ 둘째 저주 : 건강을 상실하길 구함(23절)

⑶ 셋째 저주 : 하나님의 분노가 쏟아지길 구함(24절)

⑷ 넷째 저주 : 가족과 가정이 망하길 구함(25절)

⑸ 다섯째 저주 : 벌에 벌을 더하길 구함(27절)

⑹ 여섯째 저주 : 생명 책에서 지우길 구함(28절)

 

3. 신약의 기독론적 관점에서 본 시인의 저주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은 이런 저주시에서 기독론적인 설교를 하였을까?

더욱 흥미로운 점은 예수께서 시편 69편을 다루실 때, 자신과 먼 거리감을 두고 본문을 인용하는 것 같지 않다. 달리 말하자면, 그는 저주시들도 높은 구약적 영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기신다. 물론 우리는 시편 69편과 109편이 신약과 불연속성을 이루고 있음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시인의 죄 고백(5절)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도록 가르치셨다. 이 점에 있어서 저주시의 ‘저주’는 더 이상 한 개인에게 적용되지 않으며, 악의 더 깊은 실체인 사단과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를 거스리는 모든 영적인 세력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주님은 그의 십자가에서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

 

Ⅸ. 히브리시의 성격과 특징

1. 성경에 대한 문학적 접근

성경이 문학적이므로 역사성이나 신학을 담을 수 없다는 입장은 현대의 이원론적인 문학개념을 성서 속에 억지로 집어 넣는 것이다.

해석자의 잣대로 성경의 문학성은 비판하는 것은 현대 해석자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초대 교회의 교부들도 성경의 시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수사적인 기법을 속임수로 보고, 진실성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초대교회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학자들은 자신이 가진 문학에 대한 전이해로, 성경의 문학성과 역사성에 대해 비판 하였다. 이런 현상을 볼 때, 해석자들은 현대의 고정 개념을 고대의 본문 속에 억지로 집어 넣고 읽으려는 태도를 떠나 고대 본문 자체의 세계에서 본문을 읽도록 일차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히브리 시편의 시 이론을 찾아내기 위해 해석자는 자신의 개념을 가지고 고대 본문 안으로 들어갈 뿐 아니라, 본문 안에서 원래의 범주를 찾도록 해야 한다. 영시와 한시와 우리 민요의 규칙은 히브리시의 규칙과는 다르다. 따라서 우리의 것으로 들어가, 고대의 본문에 적용해 보고, 다시 고대의 본문으로 우리 개념을 비판하는 순환적인 해석작업을 계속 해야 한다.

 

2. 히브리 시와 내러티브의 구별

내러티브의 문체도 고도의 문학적인 기교를 따라 짜여지지만, 시는 내러티브 보다 훨씬 더 다듬어지고 강화되며 고양되고, 우리의 감정과 의지에 더 깊은 호소를 해준다.

⑴ 시는 짧고 간결하다. 시인은 단어를 절약하며 농축하여 사용한다.

⑵ 메시지의 초점이 선명하다.

⑶ 세련된 문체와 함께 은유와 영상을 많이 사용한다. 이를 통해 생동감을 불러 일으킨다.

최근에 와서 학자들은 히브리어 시와 내러티브 사이에 절대적인 구별을 만들지 않고, 상대적인 구별을 만든다.

넓게 말하자면, 시란 내러티브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서, 보다 정선된 언어를 구사하여 심미감을 극대화 시키는 문학 형태이다. 달리 말하자면, 보다 억제된 가운데 의미 전달을 하므로, 내러티브처럼 자유로운 사상의 흐름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사실 히브리 시와 내러티브 사이에는 양적인 차이 뿐 아니라 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러나 히브리시는 영시(英詩)에서처럼 운율(meter)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히브리시에 두운과 각운이 있지만, 이것은 수사학적인 장치로서 장식물이지, 히브리시의 본질적인 내용은 아니다.

 

3. 평행법(혹은 병행법)

1) 평행법을 잊은 시기(제 1기)

랍비들과 교부들이 이런 입장을 가졌으며, 이들의 시대는 평행법을 잊어버린 시대이다.

2) 평행법을 찾은 시기(제 2기)

로버터 로우스는 문장 속에서 형행법을 발견하고, “유사한 것은 유사한 것과, 같은 것은 같은 것과 일치한다”고 정의하였다. 그의 입장은 한마디로, ‘진술과 재진술’로 설명될 수 있다. 그는 평행법을 크게 둘로 나누어, 의미론적 평행법과 문법적 평행법으로 구별하며, 전자를 다시 세 개로 나누었다.

⑴ 유사적 평행법은 두 행에서 서로 다르면서도 밀접하게 연관된 두 개의 단어를 사용하여 동일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⑵ 반의적 평행법은 유사적 평행법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며, 반의어로 동일한 생각을 표현하여 두 개의 대조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⑶ 종합적 평행법은 기본적으로 둘째 행 이후의 행이 첫 행이나 둘째 행을 완성 하거나, 추가하거나, 혹은 보강하는 것이다.

⑷ 상징적 평행법(emblematic parallelism)은 유사적 평행법에 속한 것이나, 두 행 사이의 연관성이 직유나 은유로 주어지는 것이다.

⑸ 반복적 평행법(repetative parallelism)은 계단식 혹은 점층식 평행법으로 불려진다. 첫행이 계속 반복되며, 새로운 시상이 새롭게 제시된다.

⑹ 전환축 평행법(pivot pattern)은 문장의 중앙에 있는 단어나 구가 앞뒤로 연결되는 형태이다.

⑺ 교차대귀법(chiasm)은 계속되는 평행법의 지루함을 깨뜨리기 위해 동심 구조로 전환하는 방법이다.

⑻ 점층법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분위기가 점층적으로 고조되어 간다.

3) 평행법의 의미를 새롭게 찾은 시기(제 3기)

⑴ 제임스 쿠걸(James Kugel, 1981)

⑵ 로버터 알터(Robert Alter)

⑶ 에들리 벌린(A. Berlin)

⑷ 마이클 오코너(M. O'Connor)

 

4. 영상

1. 영상이란 유사성 혹은 유추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 표현 중 하나이다. 따라서 영상은 어디에서나 만들 수 있다.

⑴ 영상은 구체적인 느낌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⑵ 영상은 놀라움을 불러 일으키는 요소를 지녀야 한다.

⑶ 영상은 새로울수록 효과적이며, 옛 것은 새롭게 전환해야 한다.

2. 영상은 온유와 직유로 나누어진다. 이 둘은 어는 정도 그 기능에서 중복되나, 후자가 전자보다 더욱 명료하다.

⑴ 단순 직유

⑵ 한 쌍의 직유

⑶ 세 쌍의 직유

⑷ 일련의 직유

 

5. 히브리 시의 부차적인 특징들

⑴ 알파벳 시(acrostic)

시인들이 알파벳을 따라 시를 쓴다는 것은 이미 어떤 기존하는 틀 속에 자신의 시상을 집어 넣는 것이므로, 시가 가지는 어떤 자유를 억압하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히브리 시에서 알파벳 시는 독특한 기능을 갖고 있다. 먼저 시인은 알파벳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틀을 찾아낸다. 나아가 알파벳 시편은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어떤 강조점을 갖고 있다.

⑵수미일치법은 시편의 시작과 끝을 같은 단어나 구나 절로 일치시키는 문학적인 기법이다. 시편 1:1에는 ‘죄인의 길’이 1:6절에서 ‘악인의 길’과 짝을 이룬다.

⑶ 합성어(merism)는 두 단어가 합쳐져 사물의 전체성을 표현한다.

⑷ 환유(metonymy)는 한 단어로서 다른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⑸ 한 쌍의 단어(word pair)는 ‘머리와 정수리’와 같이 늘 한 쌍을 이룬다.

⑹ 반복법(repetition)은 핵심 단어를 반복하여 중심 사상을 드러내는 기법이다.

⑺ 후렴은 한 문장을 반복하여 시 전체의 흐름을 만들어 준다.

⑻ 생략법(ellipsis)은 때로는 대명사, 전치사, 부사, 의문사도 생략한다.

⑼ 중언법(hendiadys)은 접속사로 이어진 두 단어가 하나의 개념을 제시하는 것이다.

⑽ 역설(irony)은 정밥대의 의미를 유도하는 기법이다.

⑾ 과장법(hyperbole)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묘사하는 기법이다.

⑿ 두운(alliteration)은 시작하는 단어나 마치는 단어의 발음이 계속 일치하는 것이다.

⒀ 숫자 평행법은 숫자를 통해 점층법이나, 점강법을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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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2.05.03 11:44

    첫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자료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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