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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항공전력 요약 |
F-4E 팬텀 전투폭격기 127대 A-4E,H 스카이호크 지상공격기 162대 미라쥬IIIC 35대 , 네셔 전투폭격기 40대 슈페르 미스텔 전투폭격기 15대 |
* 아랍측의 공군력 *
한편 아랍측은 6일전쟁 당시에 눈 녹듯 녹아버린 공군력을 급속히 다시 재건하는데 성공을 했다. (기름팔아서)
매일매일 이집트의 항구에는 소련에서 들어온 각종 항공기와 T-62전차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상황이 시리아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이집트 공군 주력 전투기 MiG-21 : 팬텀과 더불어 60년대를 대표하는 기종이었다.]
이집트공군의 주력전투기는 역시 미그21이었다. 미그21F에 더불어 미그21PF, MF등의 최신기종이 추가로 도입되었으며 이들의 뒤에는 미그17과 Su-7이 뒤를 받치고 있었다.
이집트의 최신 미그21MF형은 대지공격능력에서 큰 향상을 이룩한 기종이었다.
게다가 다수의 헬기들이 도입되어있었는데 Mi-8, 6, 4등의 헬기들이 무려 200대가량이나 각 전선에 보급되었다.
신임 총사령관이었던 호스나이 무바라크 소장이 이런 변화를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6일전쟁당시에 일렬로 주기해 있다가 미라쥬의 기관포 세례에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 쓰라린 경험을 바탕으로 전투기는 이제 모두 견고한 콘크리트 쉘터에 주기하여 보호되었다.
6일전쟁과 이후의 소모전에서 얻은 경험으로 이집트 공군은 정예 조종사를 양성하는데 열성을 기울이고 있었다.
공군사관학교의 과정과 각종 현역부대의 조종사들에 대한 실전 교육이 엄격하게 이루어 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여전히 이집트는 유능한 조종사의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었다.
[뛰어난 운동성으로 여전히 실전에 사용된 이집트 공군 소속 MiG-17F]
- 이집트 항공전력 요약 - |
총전술기 600여대>미그 21전투기 210대 >미그 17전투기 100대 >수호이 7B 지상공격기 80대 >IL-28 경폭격기 5대 >Tu-16 중폭격기 25대 |
한편 시리아 공군은 이집트와 같이 조종사의 양성에 힘을 기울였으며 항공기지에 쉘터를 설치했다.
여름부터 초가을에 걸쳐서 시리아공군은 신형 미그21MF와 Su-7B에 대한 조종사들의 전환 훈련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시리아 항공전력 요약 |
> 미그21전투기 200대 > 미그17전투기 80대 > 수호이 7B 지상공격기 30대 |
* 타아랍 제국의 참전 *
게다가 아랍의 단결을 제창한 이집트의 외교로 새로운 전쟁을 위하여, 타 아랍제국의 항공전력이 원조되고 있었다. 이라크는 시리아와 이집트에 호커헌터 1개대대, 미그21 1개대대를 전개했으며 알제리는 수호이7B 1개대대를 그리고
리비아도 미라쥬III 2개대대를 이집트에 급파했다.
* 아랍측의 방공망 *
[아랍 지상군이 새로 장비한 이동식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 : 사진은 SA-2 미사일차량이다.]
아랍의 지상군은 공중전력에서 이스라엘이 우세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지상군을 이스라엘의 전폭기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소련으로부터 최신의 이동식 지대공 미사일과 대공 기관포들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전쟁의 뚜껑이 열리게 되자 가장 위력을 발휘하며 전황에 큰영향을 끼치게될 아랍측의 무기는 공군전력이 아니라 육군이 보유한 최신형 SAM 인 SA-6 게일풀 미사일과 레이더조준식 기관포를 장비한 ZSU-23-4 대공자주포였다.
[ foxmouse: 전쟁은 언제나 비참한 결과를 낳는 법... 이 욤키요푸르전쟁은 불과 19일간의 전쟁이었으나 이스라엘과 아랍측을 합쳐서 1만2천여명의 죄없는 병사들이 사막의 모래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
* 지리적인 상황 *
중동의 각 국가들의 위치는 저번의 걸프전때 매일 TV에 나왔으니 여러분들도 어느정도 알겠지만 세계지도나 중학교때 쓰던 사회과부도를 가지고 계신분은 한번 들여다 보시길.. 이스라엘은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는 국토만이 적국이 없을뿐 좌우에 이집트와 시리아라는 강한 적국과 요르단, 레바논등과도 국경을 이루고 있 다.
특히 시리아와의 국경이 유명한 골란고원이었다.
원래 이 골란고원은 시리아의 영토였는데 이 고원에서는 이스라엘의 국토가 그냥 내려다 보였다.
그러니 여기서 야포만 쏴대도 이스라엘영토의 상당부분이 피해를 입을만한 군사적인 요지였다.
그러나 시리아군은 이 유리한 고지를 6일전쟁중에 이스라엘군에게 빼았기고 말았다.
전후에 반환을 요구했으나 이스라엘은 이요구를 묵살하고 있었다. (지금도 가끔 뉴스에 보면 아직도 이 골란고원 반환문제가 쟁점이더군요.)
그리고 이집트와는 시나이반도를 두고 국경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 시나이반도는 사막의 덩어리이다.
이것도 원래 이집트땅이었는데 6일전쟁중에 이 넓은 땅을 이스라엘에게 빼았겼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역시 이 땅을 돌려주지 않았다.
따라서 시나이반도와 이집트 사이의 수에즈운하가 새로운 국경이 된 셈이었다.
[ foxmouse: 이 영토문제가 4차중동전의 불씨를 당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이스라엘로서는 천신만고끝에 점령한 이 유리한 전략요충지를 돌려주고 싶지 않은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
* 1973년 10월 6일 '그날은 속죄의 날!!' *
10월 6일 오후 2시 5분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세의 이집트 미그전투기들이 수에즈 운하를 건너 시나이 반도로 날아갔다. 이전의 소모전에서 볼 수 없었던 대규모의 편대들이었으며 이와 때를 맞추어 이집트 포대의 위장망이 벗겨지면서 엄청난 양의 포탄이 수에즈 운하를 건너편 이스라엘군의 머리위에 쏟아졌다.
한편 반대편 전선의 시리아군도 신속하게 기습공격을 개시했다. 수천문의 야포, 박격포등이 쏟아졌고 약 200여대의 시리아 항공기가 이스라엘군의 진지에 공습을 가했다.
[ foxmouse: 이 욤키요푸르전쟁은 기본적으로 대규모 지상전위주의 전쟁이었다. 항공전사의 연재지만 지상전에관한 언급이 많은 양을 차지할 것이다. ]
이 공습의 주요 목표는 IDF최전선의 지휘소, 야포진지, 전자전센터, 통신소, 각 항공기지였다.
이 기습은 아랍측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기습이 성공하였으며 시나이반도내에 전개하던 수개의 이스라엘 항공기지는 사용불능이 되었다.
한편 이 엄청난 공습과 야포사격을 단순히 국경충돌로 여겼던 이스라엘 군은 상황이 점차 급박해 짐에 따라서 뒤늦게 방어전에 나섰다.
그러나 항상 진격에 익숙해있던 이스라엘 군들은 방어전에는 웬지 어색했으며 아직은 오만의 그림자가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한편 골란 고원의 사태는 급박했다.
최신의 T-62전차등으로 무장한 시리아 기갑부대는 그 압도적인 수적 우위로 3방향에서 이스라엘 군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개전의 첫날에 시리아 군은 6일전쟁후의 정전선에서 20km정도를 전진하는데 성공했다.
* 물벼락에 허물어진 모래성 *
한편 본격적인 공습과 포격이 있은후, 수에즈 운하위에는 수많은 이집트 도하정들이 개미떼처럼 건너오기 시작했다. 이집트군의 도하를 막는 이스라엘의 병사들은 고작 기관총사격정도로 맞서도 있었다. 사실 이스라엘은 수에즈운하의 자기쪽 가장자리에 6미터이상의 모래둑을 쌓아놓았는데 이 모래둑은 포격으로도 흐트러지지않는 특이한 장애물이었으며 타고 넘기도 힘들었다. IDF측은 이것이 이집트군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될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이 둑위에서 기관총 사격만으로도 운하를 건너는 이집트군 정도는 막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집트의 작전참모진에서는 이를 기발하게 극복하는 법을 이미 생각해 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고압 살수펌프였다. 독일에서 극비리에 입수한 이 살수펌프에 의해서 수에즈운하의 물벼락을 뒤집어쓴 모래둑은 그냥 쓸려나갔다.
순식간에 둑에 여러개의 큰구멍이 뚫렸고 이내 이집트 돌격대들이 돌입해왔으며 전선의 이스라엘 수비군은 "무능한 아랍군대"의 창의에 찬 기습작전에 허를찔려 말그대로 완전히 와해되었다.
개전의 첫날 기습의 심각한 상황을 뒤늦게 파악한 IDF참모부는 반격을 공군에 의한 반격을 지시했으나 첫날에는 이스라엘 항공기들의 활약이 미미했으며 피해도 적었다.
이스라엘 참모부는 우선 시리아의 공격을 막아서 골란고원을 사수한후에 이집트가 시나이반도를 건너는동안 모든 전력은 시리아와의 일전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반면 시나이 반도에서는 잘 훈련된 정예전차부대와 공군력만으로도 쉽게 이집트군을 공략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리아 기갑부대의 진격은 전형적인 소련의 전술이었다. 압도적인 수적우위를 바탕으로 하는 파도 전술 이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파도가 계속적으로 몰아치듯이 계속적인 전차들의 진격이 있었다.
결사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IDF의 방어라인은 속속 무너져 내렸다.
IDF측도 골란 고원을 넘겨줄수는 없다는 각오로 이제 드디어 전력을 재정비하고 배수의 진을 쳤다.
그러나 그들은 골란 고원의 시리아쪽에 지뢰나 철조망을 매설하지 않았는데 이를 무척이나 아쉬워 했다.
그러나 IDF 는 계속 밀리면서도 아직 적을 얕보고 있었다.
이제 대격전이 펼쳐질 골란고원의 눈물의 계곡에는 양군의 병력이 속속 집결하고 있었다.
* 오만의 대가 *
한편 시나이 반도저편에서는 이스라엘의 정예 전차부대가 사냥감을 맞이하기 위하여 대형을 갖추고 수에즈운하쪽을 향하여 진격했다. 탁트인 사막에서의 전차전에서는 압도적인 실력차이를 보여왔으므로 그들은 자신이 있었다.
더욱이 전투가 벌어지면 하늘에서 자신들의 공군이 이집트군에게 불벼락을 선물할것이므로 그들은 더욱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전차부대는 엄청난 공포 속으로 밀려들게 될 것이다.
이집트 전차부대와의 예상 조우지점에 다다른 IDF의 전차부대는 아직 전전차들이 시야에 보이지 않자 적들의 진격속도가 느린 것에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계속 전속전진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집트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었다.
헬기들로 미리 투입된 이집트의 육군 특공대원들이 이미 개인호를 굴설하고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쇄거미사일
각 3인조로 구성된 이들 특공대원들은 최신의 대전차 미사일인 쇄거미사일과 RPG-7 을 소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스라엘 전차대가 밀려올 지점에 이미 매복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IDF전차부대는 이미 이 이집트특공대원들이 만들어 놓은 함정의 한가운데에 빠져들었다.
이제 완벽하게 함정에 걸렸다고 판단한 이집트 특공대가 쇄거미사일을 발사 하기 시작했다.
한 전차장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갑자기 쉬익 하는 소리가 나면서 하늘에 검은 연기의 궤적이 나타났으며 이내 아군의 전차가 불타올랐다!"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쇄거미사일의 공격은 정말로 위력적이었다.
하늘에는 온통 검은 연기의 궤적으로 가특찼으며 '쉬익'하는 소리한번에 여지없이 M-48전차 1대가 나가 떨어졌다.
이제서야 현실을 알게된 IDF전차부대원들은 그야말로 공포에 질려서 아비규환속으로 빠져들었다.
개인호에 숨어서 날려대는 쇄거(sagger)미사일은 맥주병 2배정도의 작은유선미사일로서 속도는 고속이 아니었으나 이집트 특공대원들이 조이스틱으로 날아가는 미사일을 조종하여 정확하게 IDF전차들에 명중시키고 있었다.
적들이 도대체 어디서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는지 보이지 도 않고 하늘 가득히 검은 연기를 끌면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본 이스라엘 전차병들은 제대로 주포한번 발사해보지 못하고 불길에 휩쌓여 유폭을 일으키거나,
전차병들이 탈출을 했다. 불과 30분정도의 짧은 시간에 반수이상의 전차들을 잃은 IDF전차부대는 전속으로 줄행랑을 치는수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야말로 오만의 대가를 피로서 치룬 것이다.
한편 이들을 지원하기로 했던 이스라엘공군역시 또한번의 오만의 대가를 치루게 될줄은 모르고 이집트군의 상공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 공포의 SA-6 *
지상에서 그들의 전차부대가 그토록 심한 손실을 입으며 패퇴하고 있는 사실을 몰랐던 IDF공군기들은 수에즈운하를 건너진격해오는 이집트 기갑부대와 도하를 감행하고있는 적의 보급선을 차단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폭음도 드높게 시나이 반도를 건너왔다. 그러나 상공에는 아랍군의 미그기들이 보이지 않았으며 따라서 적의 전차부대는 공중 엄호가 없는 쉬운 목표로 보였다. 그러나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전투기들에 장착된 경보장치에 적의 SAM에 대한 경보가 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아랍군의 전차들 속에는 지대공 미사일을 장비한 미사일 차량들이 다수 섞여 있었던 것이다.
그순간 지상에서 먼지가 휘날리면서 연기를 뿜는 물체들이 솟아 올랐다.
후에 IDF의 조종사들이 회상 했던 것 처럼 악몽의 시작이었다.
[SA-6에 격추된 F-4E의 잔해를 자랑스럽게 밟고 서있는 아랍병사]
순식간에 선봉에 섰던 A-4전투기들이 수대가 피격을 당했다.
게다가 미사일을 피하기 위하여 편대들은 와해 되었으며 조종사들은 당황했다. SA-6 미사일은 기존의 미사일과는 달리 탐지가 불가능한 연속파(CW)레이더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미사일 자체의 기동성도 상당했다.
각 전투기들이 미사일을 피하기 위하여 훈련받았던 스플릿S나 급격한 브레이크턴을 사용했지만 한대당 6-7기씩 날아드는 SA-6미사일은 피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게다가 이 미사일을 피해서 저공으로 공격을 감행하려는 IDF의 전투기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이집트군의 ZSU-23-4 레이더 조준식 자주기관포였다.
여러대의 대공기관포들과 보병들이 소지하고 있던 SA-7견착식 대공미사일이 이스라엘 전투기한대에 대하여 대단히 많은 수가 발사 되었다.
상당한 수의 전투기들이 미사일에 맞아 불덩어리가 되거나 기관포에의해 벌집이 되어 사막의 저편으로 연기를 뿜으며 사라져 갔다. 이런 상황은 시리아 전선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개전초기 100시간동안에 이스라엘공군은 전투기 50대 이상의 손실을 입었으며 이러한 손실의 대부분은 이 SA-6와 ZSU-23대공기관포에 의한 것이었다.
* 그래도 우리는 역전의 용사들! *
한편 개전의 3일간 양전선에서 계속 밀리고 있던 이스라엘군은 우선 시리아와의 일전에서 승리를 노리고 있었다.
골란고원에서 3방향으로 부터 진격해오는 시리아의 전차부대들에 밀리고 있었지만 후퇴는 효과적인 통제에 의하여 실시되었고 기회만 있으면 반격을 하였다. 이제 양측은 골란고원의 마지막 격전지 '눈물의 계곡'에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었다.
시리아군은 계속적인 진격에 고무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사이에서도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이기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서 월드컵에서 인도네시아가 브라질에 전반 10분경에 선취골을 넣었다면 그나라 국민들은 그 경기를 보면서 이길수 있다는 생각이 들까? 설마 설마 하면서도 속으로는 '곧 역전골 먹고 지겠지..' 하는 맘이 있을 것이다.
시리아의 병사들의 생각이 바로 이랬다. 적들이 그렇게 밀려나는게 뭔가 수상했던 것이다.
어쨌든 이제 시리아군 역시 승리를 결정지을 계기가 필요했다.
결국 '눈물의 계곡'전투에서 가동 가능한 전차는 모두 투입하기로 하였다.
공격의 1파가 무너지면 2파를 투입하고 그 뒤를 이어서 3파가 공격하고 또다시 4파를 투입하는 이른바 제파공격을 감행하기로 하였다.
이 작전은 엄청난 수의 전차가 필요 했지만 시리아는 이에 충분한 전차들을 가지고 있었고.. 한가지 전차병들의 경험이 문제였으나 이제까지의 기세로 적을 밀어붙이기로 하였다.
한편, 더이상 뒤로 물러설수 없었던 IDF의 육군은 눈물의 계곡에 방어선을 구축하면서 저항했다. 지형은 IDF측에 유리했다. 게다가 예비대가 속속 도착하고 있었으며 공군이 막심한 손실을 입으면서도 계속적인 지원폭격을 해주기 시작했다. 적의 전차부대의 돌격전을 예상한 IDF는 돌격을 효과적으로 저지하며 최후의 한사람까지 자기 자리를 사수한다는 결사의 항전태세에 돌입했다.
드디어 골란 고원 북부의 눈물의 계곡에 집결한 시리아 군이 곧장 제파 공격을 감행했다. 개전의 첫날 시리아군의 1, 2차공격을 간신히 막아낸 IDF의 최정예 제 7기갑부대는 이제 엄청난 사투를 해야만 했다.
골란고원 남부에서는 비교적 약한 시리아군의 공격이 허물어지고 있었는데 남부의 병력들이 시리아군의 공격을 물리치고 북부로 원군을 보내기 전까지는 눈물의 계곡을 반드시 지켜야만 했다.
3일째의 새벽이 되자 갑자기 하늘에서 미그-17기들이 나타나 지상폭격을 감행하는 것을 시작으로 시리아군의 제 3차 공격이 시작되었다. 100대의 전차가 40대로 줄어버린 제7기갑여단의 운명도 풍전등화였지만, 시리아측의 사정도 다급했다. 남부의 전투에서 이스라엘군에게 밀리고 있었으므로 북부를 반드시 뚫어야 했는데 이제 시리아도 전차가 바닥나기 시작했다. 본토수비를 해야하는 공화국수비대의 전차들이 동원되기 시작한것이다.
3차공격은 전차들만의 전투였는데 이전투에서 쌍방이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이스라엘군의 사격술이 우세했으므로 결국 시리아군은 더 큰 피해를 입었으며 돌파구를 찾지못하고 전투는 소강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곧 공화국수비대의 T-62전차 400대가 마지막 돌격을 해왔다 .
20여대의 M-48전차밖에 안남은 이스라엘군은 필사적인 저항을 했으나 방어선이 드디어 뚫리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전차들 사이로 시리아 전차들이 섞여 들기 시작했으며 이제 전투는 포탑을 360도 회전시키며 제로거리에서 사격을 해야하는 백병전의 양상이 되어버렸다.
순식간에 남은 전차는 6대로 줄어버렸다. 눈앞의 시리아군의 전차부대가 밀려들어오는 모습을 보자 제7기갑여단장 아비그도르 대령은 절망적인 눈길로 이제 최후의 돌격을 감행하려고 하였다.
마지막 전차병들이 포탄과 수류탄, 기관총탄등을 분배하고 있을때 언덕의 시리아전차부대가 돌격을 해왔다.
* 하늘의 수호신 팬텀 *
그러나 갑자기 하늘에는 이스라엘군의 팬텀기 8대가 나타났다. 이들이 지원 폭격을 감행하자 시리아군이 일순간 멈칫했으며 미사일의 원호가 없는 이들 시리아군 전차들을 향해서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쏟아넣었다. 폭탄과 로켓탄들이 하늘에 연기의 괴적을 남기며 날아들었으며 F-4E팬텀들은 마치 연습하듯이 아래에 전개한 시리아군 전차들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아래에서 이스라엘 기갑사단 장병들은 이 멋진 에어쇼를 보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15분정도의 공습이 끝나고 팬텀기들이 돌아가자 30여대의 전차들이 불길에 휩쌓여 있었다. 겨우 숨을 돌린 시리아군은 다시 전진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병사들과 시리아군의 병사들이 모두놀랄 사태가 벌어졌다. 어디선가 포성이 울리더니 선두의 시리아전차가 갑자기 폭발을 일으키며 나가떨어지면서 시리아군의 대열이 흐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시리아군이 당황하며 혼란에 빠져들때 반대편의 서쪽 능선에 M-60전차들과 센추리온전차들이 모습을 속속 드러냈다.
이들이 놀라운 사격술로 원거리에서 주포사격을 해대자 시리아군의 전차들이 계속 파괴되었고 30대가량의 전차들이 나뒹굴자 시리아군은 당황했다. "이스라엘의 원군이다!" 한 시리아전차장의 무전이 있음고 동시에 시리아군은 힘이 쭉 빠졌다. 승리를 눈앞에 두고 그들은 제풀에 용기를 잃었으며 썰물이 빠져나가듯 후퇴를 했다. 그러는 동안 속속 나타난 이스라엘 원군 전차대가 도착을 했다. 그 대수는 겨우 16대였다. 시리아군이 속은것이었다. 어쨌든 전투가 끝난 눈물의 계곡에는 시리아전차 400여대를 포함한 500대이상의 전차들의 잔해가 나뒹굴고 있었으며 마지막 전차한대까지 모두 동원한 시리아군은 도박에 실패를 하고 이제 후퇴를 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스라엘군이 대반격을 시작할 순간이 다가온 것이었다.
* 대이집트 전선의 반격 작전 *
지상에서의 전투에서 역전의 기미가 보이자 시리아군은 신속히 후퇴를 했다. 마치 6일전쟁 당시의 모습을 보는듯했다. 정예의 IDF(Israel Defence Force)공군을 꽁꽁 묶어놓았던 시리아의 SAM기지들이 IDF기갑부대에게 속속 떨어지자 공군의 F-4E팬텀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 까지 진출하여 맹폭을 가했다. 이제 더이상 시리아군은 위협이 되지 못했고 시리아를 향해 맹진격중이던 이스라엘군은 절반이상의 병력을 이집트와의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시나이 반도로 돌렸다.
한편, 이집트군역시 시나이반도에서 계속적인 승리를 하고 있었음에도 전격적인 진격에는 소극적이었다. 한걸음만 더 진격을 하면 이스라엘군을 완전한 궁지에 몰아넣었을 찬스가 여러번 있었으나 그들은 번번히 그앞에서 더이상 진격을 하지 않고 주저하고 있었다. 아직 이스라엘군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시리아군을 물리친 이스라엘은 반격의 기회를 잡았고 바야흐로 시나이반도에서의 대회전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10월 8일과 9일사이에 참호를 파고 전개해 있는 이집트군에 대한 반격이 계속적으로 실패하자 이스라엘군은 방어선을 통합하여 항공기지, 포병진지, 부교 포트사이트에 대한 폭격을 계속했다. 하지만 아직 이집트군의 신무기들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던 IDF의 기갑부대와 공군은 큰 피해를 보았다.
하루동안에 3개 기갑여단이 전멸을 했으며 공군기들도 SAM의 위력에 큰피해를 보았다. 이날 이집트군은 모두 16대의 F-4와 A-4를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공군의 반격을 물리친 이집트군은 루스 엘 스토방면으로 본격적인 전진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과감한 전진은 결과적으로 실수였다. 이전의 잘편성된 대공무기들의 원호없이 돌격해 들어온 이집트의 지상부대는 SAM 의 방어권 밖으로 나와버린 셈이 되버렸고 IDF공군의 F-4와 A-4의 대규모 편대가 기다렸다는 듯이 이들을 공격했다. 하늘에서의 대규모 공습에 더불어 이스라엘 전차부대가 반격을 가했으며 쇄거미사일을 휴대한 보병들이 미처 따라오지 못하여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전차전에서는 IDF기갑부대가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결과적으로 루스 엘스토 대회전에서 대패한 이집트군은 더이상 공세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역전의 찬스를 잡은 이스라엘군은 공군과 기갑부대가 합동해서 이집트군을 공격하는 전술을 새로이 창안했다. SAM의 위력이 실로 대단하여 공군만의 단독작전은 많은 피해를 감수해야 할것이었으므로 이른바 공지합동작전이 시도된 것이었는데 이 공지합동작전은 전술적인 모범이 될만한 멋진 작전이었다.
이스라엘 기갑부대가 맹렬한 기세로 돌진하여 SAM기지를 최우선으로 공격하여 무력화 시키면 IDF의 팬텀과 스카이호크가 이 안전권으로 날아들어서 기갑부대의 앞쪽에 엄청난 지원 폭격을 가했으며 이 틈에 기갑부대가 다시 한 걸음 전진을 하고 기갑부대에 동반하고 있던 공수부대원들이 집차를 타고 SAM기지를 찾아 돌격하여 점령하면 다시 공군기들이 지원폭격을 하는 식의 전술이었는데 대성공을 하였다.
공군기들에겐 죽음의 사신이었던 SAM 기지들은 기관총을 들고 돌진해오는 공수부대원들에겐 무력했다. SAM기지들이 속속 IDF의 기갑부대에게 떨어지자 이제 전선의 상공에 팬텀과 스카이호크 그리고 미라쥬등의 IDF공군기들이 활발하게 누비고 다녔으며 이에 대항하는 이집트 공군기들이 드디어 전선상공에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출격준비 - 스카이 호크의 20mm기관포탄을 급히 장탄하고 있는 이스라엘 지상정비원]
쌍방의 전투기들이 상공에 모습을 드러내자 다시 격렬한 공중전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개전의 일주일동안 80여대에 이르는 공군기를 상실한 이스라엘이었으나 아직 공군의 세력은 건재했으며 공중에서의 제공권 다툼에서는 여전히 한수위의 실력을 과시했다. 지상의 기갑부대가 계속적인 전진을 해서 SAM 기지들이 속속 무력화 되었으므로 IDF의 공군기들은 큰 짐을 덜었다.
전쟁이 중반전을 넘어선 10월 16일부터 이스라엘의 공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제공권마저 이스라엘측에 떨어지자 이제 지상전의 양상은 이스라엘의 공격과 이집트의 후퇴가 반복되었다. 수세에 몰린 이집트군은 계속적으로 붕괴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이집트 본토까지 진격한 이스라엘 기갑부대가 이집트이 제 3군을 완전히 포위하자 이집트는 정전 테이블에 나왔으며 미국과 소련의 압력속에 양측이 정전 협정에 조인함으로써 이스라엘 독립이후 가장 치열했던 이 전쟁은 끝이나게 되었다.
* 항공전 분석 *
욤키요푸르 전쟁에서의 공중전은 상당히 격렬한 면이 있었다. 시나이사막과 수에즈운하 그리고 골란고원상공에서는 30대에서 40여대의 전투기들이 서로 섞여서 격투전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 공중전은 대개 저공에서 실시되었다. 대개 지상공격중인 공격기에 이를 요격하기위한 상대편의 전투기가 나타나면 공격기의 호위기들이 달려드는 양상의 전투가 빈번했기 때문이었다.
[F-4E의 건카메라에 잡힌 미그-21 격추의 순간 : 날개에 명중되면서 불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아랍군의 주력은 역시 미그21이었으며 구형과 신형에 관계없이 모두 아톨 공대공미사일을 장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아톨은 성능이 한정되어있어서 적기를 공격하기 위한 가장이상적인 위치를 잡은상태에서도 적기가 격렬한 기동을 하면 록온을 걸기가 어려웠다. 또한 미그21MF형은 각각 30mm NR-30기관포와 23mm Gsh-30-1기관포를 장비하고 있었는데 이들기관포는 위력은 훌륭했으나 2.75G가 넘는상태에서의 기동을 하면 자이로식 조준기가 균형을 잃어서 조종사는 육안으로 예측사격을 해야했다.
이집트공군의 신형 MiG-21PF는 소련제 K-5 알칼리 레이더유도 공대공미사일을 장비하고 있었으나 이 초기형 레이더유도미사일도 고기동의 항공기에게는 록온을 걸기가 어려웠다. 전후에 아랍군의 파일럿들은 절호의 위치를 잡은 상태에서도 조준기나 미사일의 성능불량으로 적기를 격추할 수 없었다고 불평했다.
이라크군의 호커 헌터기도 전투에 참가했는데 이전투기는 기동성면에서는 미그-17을 웃도는 우수한 성능에 무장도 30mm 아덴기관포 4문의 중무장이었으나 아음속이었으므로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이었다. 아랍군의 조종사들은 주로 소련식의 지상관제 요격방식에 의한 훈련을 받았으며 따라서 전술적인 주도성을 갖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다. 이집트군의 조종사들은 실전경험이 많은 파키스탄 공군의 교관들로부터 저공/저속에서의 공중전 전술을 전수받고 있었다. 그러나 경계, 비상대기 정비 그리고 경제적인 군운영과 소비를 억제하는 방침에 따라서 일상의 훈련비행도 제한받고 있어서 이스라엘의 조종사들과 같은 수준의 상대에게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있는 상태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전투 공중초계시에 이집트군의 전투기들은 2차대전의 독일공군기들이 사용했던 Finger Four 라는 편대대형을 취했다. 이 핑거포는 엄지손가락을뺀 나머지 4개의 손가락과 같은 대형으로 비행하는 것인데 전투가 개시되면 이편대는 2개조로 분리되어 각각 요기를 엄호하며 공격을 행하는 것이다.
욤키푸르 전쟁에서 공중우세를 획득함에 있어서 IDF의 주력은 역시 F-4E팬텀과 미라쥬 IIIC그리고 네셔등의 전투기들이었다. 항공우세를 확보하기 위한 전투에서 광범위하게 펼쳐진 IDF의 감시체제와 중앙집중화된 지휘통제망이 커다란 역할을 한것이다. 따라서 아랍군은 이스라엘의 통신망을 방해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스라엘공군의 조종사들은 그들의 격추스코어의 대부분이 사이드와인더P형과 샤프릴과같은 우수한 공대공미사일의 도움이 컸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라파엘 무기연구소에서 국산화 시킨 샤프릴유도탄은 사이드와인더P형을 발전시킨 것으로서 전투중에 56%명중이라는 높은 신뢰성을 자랑했다. 사이드와인더P형도 우수한 격추기록을 남겼으며 이 열추적미사일들에 의하여 격추된 아랍군기들은 무려 200여대에 달한다. 그러나 여전히 공중기총사격술에 소흘하지 않았던 IDF의 조종사들은 미사일발사후에 이를 희피한 아랍의 미그기들은 추격하여 기총으로 격추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총 50여대의 아랍기가 기총에 피격되었다고 한다. 팬텀에 장비된 스패로우는 발사기회가 적었으며 총 17기가 발사되어 7기의 격추를 기록했다.
[ SA-6에 대한 이스라엘 팬텀의 전술 - 상당히 위험했지만 위력을 발휘했던 전술로서 SA-6차량을 발견하는 즉시 미사일의 가속을 허용하지 않고 즉시 유효사거리 내로 급격하게 강하하여 폭격으로 제압하는 전술의 일러스트 이다.]
IDF 공군은 공중전 전술에 대해서는 거의 밝히지 않았지만 전후에 한 퇴역 IDF조종사의 말에 따르면 미해군의 전술과 유사한면이 많았다고한다. 기본적으로 루즈 듀스(Loose Deuse)라고 불리는 미해군의 편대 비행법은 4기의 편대가 아닌 2기의 편대가 옆으로 나란히 비행하며 종방향으로 1200미터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것인데 이 루즈 듀스의 편대조는 각기 공격과 엄호를 언제라도 교체할수있는 융통성이 있는 장점이 있었다. 여기서 가장중요한것은 팀웍이며 1대가 적기를 공격하고 있을때 다른 1대가 이 공격중인 우군 전투기를 엄호할수 있는 위치에서 언제나 필요한 행동을 취할수 있게 지켜보면 된다. 2대는 교대로 목표를 공격하며 이러한 행동은 목표가 격추될때까지 지속되는 것이다. 만일 이때 다른 적기가 가세해 오면 루즈 듀스의 2대중 대기중인 전투기가 요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맞서 싸우게 된다.
* 항공전 후기 *
전후에 양측은 서로 많은 적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했지만 나중에 미국의 CIA가 조사한자료에 따르면 IDF공군은 아랍군기를 총 335대 격추했으며 공중전에서의 손실은 총 손실대수의 1/10정도은 12대라고 한다. 총 피격수가 112대였으므로 대부분의 피해는 SA-6 SAM과 ZSU-23-4 대공자주포에 의한 손실임을 알수있다.따라서 양측의 격추교환비는 30:1로서 이스라엘공군은 여전히 공중전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더구나 전쟁중반이후에 공지합동작전이라는 멋진 입체작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서 IDF공군은 여전히 아랍공군에겐 무서운 존재임을 증명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