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매너’는 복장에서부터
필자가 골프를 처음 시작한 때는 88올림픽이 막 끝난 20년 전부터이다. 그 때 나는 모 금융기관에 대리에서 차장으로 승진하여 본점에서 광주본부로 발령을 받았다. 대리시절까지는 골프는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고 운동도 별로 안 될뿐 아니라 사치스러운 운동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때문에 그 당시 내가 주로 즐겼던 운동은 테니스였다.
그런데 광주본부로 발령을 받고 부임을 했던 그날 밤 본부장님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는데, "이제 골프도 해야지?" 하면서 다음날 골프연습장에 등록을 하여주시는 게 아닌가? 나는 할 수 없이 골프클럽을 할부로 구입하고 골프 스윙연습을 하게 되었다.
연습장에 등록 한지 한달이 되었지만 어깨, 옆구리, 허리 등이 결리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뜬금없이 본부장님이 "이제 연습한지 한달이 되었으니 내일 옥과로 머리를 얹으러 나가지?" 하시는 게 아닌가?
당시 광주지구에는 광주CC가 유일한 컨트리클럽이었다. "골프장에 가려면 우선 복장부터 예의를 갖추어야 해요." 하시면서 본부장님은 깃이 달린 셔츠를 입어야 하고, 모자를 써야하며, 징이 달린 골프화를 신어야 하고, 상의는 반드시 하의 속에 집어 넣어야 하며 정숙하게 옷차림을 하여야 한다면서 골프숍에 가서 소위 골프 드레스라는 옷을 함께 쇼핑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머리를 얹으러 광주CC로 갔다.
물론 그날 골프는 당연히 해메는 골프였다. 골프공이 앞으로 가는지 뒤로 가는지 들로 산으로 해메느라고 정신을 차릴 수 없는데다가, 본부장님이 어찌나 매너 교육을 철저히 시키던지, 이거야 정말, 골프공이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18홀를 돌았는지 기억이 아득하기만 했다.
그래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골프는 매너의 운동이며, 매너의 시작은 골프장에 나가는 날 마음가짐(술, 여자관계 등을 피하는 등), 골프공, 클럽, 복장 등 장비를 완벽하게 갖추어야 하며, 시간 약속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개념을 확실하게 집어 넣게 되었다. 그리고 골프매너의 시작은 복장부터 정숙하게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20년이 지난 지금도 컨트리클럽에 가기 전날에는 그 때의 본부장님의 골프 매너 교육을 상기시키곤 한다.
모든 스포츠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복장 규제나 또는 규범이 있다. 따라서 골프의 경우도 오래 전부터 지켜져 내려오는 복장에 대한 규제가 있다. 예를 들면 남자의 경우 깃이 달린 상의를 입어야 하고 상의는 반드시 하의 속에 집어 넣어야 하며 모자를 꼭 착용해야 한다. 혹서기에 반바지를 입을 때는 바지 길이가 무릎을 살짝 덮을 정도가 되어야 하고 양말은 무릎 높이까지 올라오는 긴 양말을 신어야 한다.
여자의 경우 노출이 심한 짧은 반바지는 금지되고, 소매가 없는 상의를 입어서는 안되며, 남녀 공히 청바지 차림은 클럽 하우스 입장조차도 금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년 전부터 이 같은 골프 복장의 규제가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이는 바로 미국프로골프협회(PGA)와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에서 활약중인 선수들의 영향 때문이다(깃 없는 티 셔츠를 즐겨 입는 타이거 우즈, 민 소매 셔츠를 자주 입는 줄리 잉스터 등).
원래가 실용주의를 택하고 사는 그들인지라 편해서 그럴 것이라고 이해는 되나 이 파괴가 드디어 국내 회원제 골프장까지 번지고 있어 실제로 국내 골프 코스에서 골퍼들과 관리자 사이에 복장에 대한 마찰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 혹서기에 민 소매를 입는 여성 골퍼가 점점 늘고 심지어는 청바지에 맨발로 샌들을 신고 나타나는 골퍼들까지 있는 실정이다.
이는 골프의 폭발적인 대중화로 인해 생기는 현상이라고 하지만 지켜야 할 일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모든 행사에는 의전과 의식이 있게 마련인데 매너의 운동인 골프는 복장에서부터 정숙하게 입어야만 골프 게임 매너도 보다 진지하게 지켜지게 될 것이다. 복장부터 제멋대로 소홀이하면 그날 골프매너도 흐트러지기 쉽다. 골프문화의 건전화를 위해서는 옷차림부터 정숙하게 차려 입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진 : 커티스 스트렌이지의 정숙한 골프복장. 그는 베스트 골프트레서로 선정되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