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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절
2월이란 뭔가 아쉬운 것이 남아있는 계절이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연을 태우는 것은 못내 섭섭한 일이었다. 며칠 전 대보름 쥐불놀이를 준비하면서, 마당에서 겨울 내내 하늘 높이 띄우며 놀던 연을 불태울 때야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야 복이 온단다.”
엄마는 그렇게 말했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호르르 방패연 종이가 타오르고 이윽고 대나무 심이 탈 때, 그 발갛게 핏줄처럼 붉어지는 대나무 연살을 보면서 신나게 놀던 겨울방학도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마당가를 도는 바람에도 따스한 기운이 있었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새 학년이 시작될 것이다.
“아재, 계십니까.”
이른 아침이었다. 겨우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우수가 지난 때라 9시가 되어서도 아직 이부자리 속에 있었다. 아침은 먹었지만, 된서리가 솔솔 내린 마당을 창구멍으로 보고는 다시 이부자리 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어서 오게.”
황급히 손님을 맞는 아버지의 성화에 못이긴 척 일어나 앉았다.
“아이고, 연희도 오는구나.”
엄마는 부엌에서 내다보고는 계집아이 하나를 반겨 맞고 있었다. 방에 들어온 손님은 어리둥절해 있는 나를 보고
“참 많이 컸다.”
고 하시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계집아이는 다소곳이 손님 곁에 앉아 있었다. 몇 마디 인사가 오가고 손님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앞으로, 우리 연희하고도 잘 지내라. 학교도 같이 가고.”
손님이 나가자, 엄마는
“아무래도 길게 살 것 같지는 않지요?”
하고 물었다.
“글쎄, 일만 풀리면 곧 가겠지.”
무덤덤한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개학날이었다.
“재봉아, 연희랑 같이 가거라.”
엄마가 그 낯선 계집애의 손목을 잡고 집으로 들어왔다.
“대문간에서 내내 기다리고 있더라. 처음 가는 길이니까, 네가 데리고 가고, 못된 애들이 괴롭히면 말려주고, 알겄제?”
신신당부하는 목소리를 뒤로 하고, 애들이 모여 있는 한길 방앗간 앞으로 갔다. 뒤돌아보니, 연희는 졸랑졸랑 따라오고 있었다. 방앗간 앞에는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여학생들은 먼저 가고 없었다.
“쟤 이름이 멋이여?”
길수가 물었지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묻지 마.”
꼭 꾀죄죄한 놈이 물으니까 신경질이 났다.
학교로 가는 길은 두 길이었다. 신작로로 해서 가는 길은 가깝지만, 비 오는 날이나 특별한 날이 아니면 가지 않았다. 그 길엔 자그마한 언덕이 있고 주막이 있었다. 가끔 아버지도 그 주막에서 선생님들과 술을 마시곤 했다.
선생님은 볼 때마다, 바지를 훑으시며
“요놈, 불알 얼마나 컸나 보자.”
하시는 것이었다. 그게 싫어서 항상 산길로 해서 학교를 다녔다.
그렇지만 그날은 신작로 길로 갔다. 계집애에게 산길보다는 신작로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산길은 재미는 있지만 무엇보다도 위험했다. 문둥이가 밀밭 같은 데 숨어 있다가 혼자 가는 아이를 잡아서 간을 빼먹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산길을 갈 적에는 항상 여럿이 모여서 갔고, 고무신에다 모래를 담고 다녔다. 달려드는 문둥이에게 모래를 뿌리면, 모래가 썩어가는 살에 박혀서 문둥이가 꼼짝도 못한다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보리밭 밀밭에 곡식들의 키가 커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검정고무신에 모래를 담고 맨발로 다녔다.
뱀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뱀이 많은가 몰랐다. 새알을 삼킨 구렁이가 둥그적거리며 가는 것도 많이 보았고, 물뱀은 아예 물고랑마다 살고 있었다. 꽃뱀도 많았었다. 여자애들은 그런 뱀을 만나면 질겁을 했지만, 우리는 뱀만 만나면 신나는 일이었다.
“쏘아!”
각자 돌 두 개씩 든 팔이 흔들리면, 뱀은 집중포화를 맞게 된다. 수십 개가 날아가는데 뱀이 성할 리 없었다. 대개는 맞고 긴 몸을 뒹굴었다.
“와아, 내가 맞혔다.”
맞힌 녀석은 좋아라 하지만, 우리를 만나는 뱀은 참말로 재수 없는 놈이었다. 만나는 그 순간 세상을 하직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떤 뱀은 몸을 곧추세우고 쫓아오기도 하였다. 뱀도 상대가 약해 보이면 얼마든지 달려든다고 하였다. 그래서 계집아이들은 산길을 좋아하지 않았다. 좀 멀고 재미없더라도 계집애들은 신작로 길로 학교를 다녔다.
같이 가는 애들이 싫었던지 연희가 자꾸 내 곁으로 붙었다. 하긴 친구들이야 한마디로 더럽기가 거지떼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으니, 싫기도 하였을 것이다. 더구나 그런 거지꼴로 흘끔흘끔 쳐다보고 있으니, 내 곁으로 붙을 만하였다.
“저만큼 가아!”
그럴 때마다 창피해서 계집아이를 쫓곤 하였다. 연희는 울상을 지으면서도, 떨어지지 않게 뒤따라 왔다.
며칠 후, 하굣길이었다. 그날도 우리는 신작로 길로 해서 오고 있었다. 그런데 산길로 가는 길목에서 요상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얼라리 꼴라리, 누구누구는 신랑 각시 한대요.”
나는 책보를 어깨에 둘러맨 채 소리를 쫓아갔다. 안 그래도, 학교 담벼락에 ‘재봉이 각시는 연희다.’ 란 낙서를 보고 많이도 열 받은 상태였다. 잡아서 족쳐주어야지 하고 몽그리고 있는데, 때마침 놀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산길로 접어들자, 저만큼 몇 놈이 달려가고 있었다. 방향을 짐작하고 아래 지름길로 갔다. 조금 기다리자 희희덕거리며 애들이 왔다. 나는 제일 목소리를 크게 낸 길수부터 잡아서 때려주었다.
그 다음부터는 놀리는 일은 없었지만, 연희는 등굣길이든 하굣길이든 나를 기다렸고, 우리는 항상 같이 다녔다. 동네 계집애들과 어울려 사방치기나 고무줄놀이도 하는 것을 가끔 보았지만 등하교만큼은 꼭 붙어 다녔다. 그러다 보니, 동네 계집애들도 나랑 같이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당연히 친구들은 싫어했을 것이다. 같이 다니며 뱀도 잡고 새알도 훔치고 찔레순도 꺾어먹고 보리끄스럼도 해야 하는데, 내가 빠지니 재미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얼마가 지나자, 연희도 학교길이 익숙해진 눈치여서 다음부터는 산길로 해서 갔다. 나도 재미있는 산길이 좋았다. 진달래가 피는 4월 초순이었다.
달콤한 진달래 꽃즙이 입술가에 묻어서 모두 입술이 푸르스름한 자줏빛이었다. 여기저기 피어난 진달래를 따서 입에 몰아넣고 한번 꼭 눌러 씹으면 한모금 정도의 꽃즙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저어기 진달래 많아.”
연희가 야트막한 야산 비탈진 곳을 가리켰다.
“안 돼, 거긴 가지 마. 거기 꽃은 못 먹어.”
“왜애?”
곁에서 현성이가 끼어들었다.
“저기 무서운 곳이다. 인공 난리 때 사람들 산 채로 묻은 곳이다.”
가끔 비가 오려면 귀신도 출몰한다는 곳이었다. 해마다 봄이 되면, 그 생매장 터엔 진달래가 억수로 피어났다. 그러나 그 크고 탐스런 꽃을 아무도 따먹지 않았다. 사람 피를 빨아먹고 큰 진달래라고. 그래서 크고 이쁘다고 하던 어른들 말 때문이었다. 먹을 만큼 먹은 우리는 얼른 그 자리를 떠났다. 연희도 곁에 바싹 붙어 있었다.
“거기 안 서냐!”
5월이 왔다. 소나무 껍질에서 송기를 벗겨내어 껌처럼 씹어 먹어도 좋을 때였다. 사방에 지천으로 먹을 것이 있었지만, 남의 밭에서 밀이며 보리를 훔쳐다가 구워먹는 재미를 따를 것이 없었다. ‘보리끄스럼’이라고 하였다. 그날도 우리는 째보네 밭에서 보리를 꺾어다가 불을 피웠다.
불을 붙이고 호호 불어서 불길이 일어나면, 보리를 올렸다. 매운 연기에 눈물 콧물 흘려가며 보리를 뒤집으면, 까스락들이 타고 보리모개가 시커매진다. 약간쯤 탄 듯한 것이 맛있었다. 뜨거운 보리이삭을 손에 올려서 부비고, 또 껍질을 없애느라 호호 불면 파아란 보리알갱이들이 손바닥에 남는다. 그걸 입에 털어넣으면, 입안에 도는 파란 맛이 그렇게도 좋을 수가 없었다. 나는 솜씨가 서툰 연희에게 조금씩 나눠주었다.
그렇게 먹고 있을 때, 째보네 아버지가 나타난 것이었다. 나는 연희의 손을 잡고 후다닥 튀었다. 한두 번 겪어본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는 평소 약속처럼 두 갈래 길로 나누어서 도망쳤다. 그래야 쫓는 사람이 헷갈리기 때문이다. 한참 달리다보니까,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렸다. 길수였다. 잡힌 소리가 들리자, 우리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다. 더 이상 잡을 일이 없고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언덕 아래로 바라보니, 째보네 아버지가 길수를 꿇어앉히고 닦달을 하고 있었다. 길수는 열심히 빌고 있었다.
“안 먹었어요. 난 안 먹었어요. 구경만 했어요.”
그러나 길수의 입은 시커맸다. 째보네 아버지가 그 꼴을 보고 기가 막힌 지 웃고 있었다.
5월이 되면, 즐거운 일이 또 있었다. 모내기철이라 저마다 사람들이 냇가로 모여들고 있었다. 논물이 필요해서기도 하지만, 우리들은 냇가에서 하는 다양한 놀이를 알고 있었다. 목욕이며 고기 잡는 일은 기본이고, 모래밭에서 하는 신짝뺏기 놀이도 재미있었다.
펄떡이는 고기를 쫓다보면 목욕이야 저절로 되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계집애들이 없어서 좋았다. 하긴 덜렁거리는 고추며 불알을 쳐다볼 계집애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고기 종류도 많았다. 주로 붕어가 많이 잡혔지만, 모래무지며 밀대(기름쟁이) 같은 고기는 뼈가 적어서 구워먹기에 딱 좋았다. 간혹 가물치며 장어가 잡히면 그날은 횡재를 하는 날이었다. 가물치는 회로, 장어는 고추장만 발라서 구워먹어도 좋았다. 물이 맑은 모래밭 언덕 물밑에는 새우들이 돌아다니고, 가끔 바다에서 ‘껄떡’이라고 불리우는 농어새끼와 학꽁치도 시냇물을 따라 올라왔다.
그러나 그렇게 물속에서 오래 놀다 보면 애들이 귓병을 자주 앓기도 하였다. 거머리에 뜯겨서 종아리에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일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물속에서 장난하다가 물을 잔득 먹고 토하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어른들은 냇가에서 오래 놀지 못하도록 말렸다. 그러나 말을 들을 우리가 아니었다.
둥굴아재는 그 악역을 맡은 어른이었다. 우리가 냇가에서 정신없이 놀라치면, 옷을 가져가 버리곤 하였다. 그날도 갯버드나무 아래에 옷을 벗어두고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우리 중에 성열이가 가장 고추가 컸다. 우리는 성열이 고추를 놓고 놀리기도 하고 만지기도 하였다. 성열이는 기겁을 하고 도망 다녔지만, 결국은 붙잡혀서 엉엉 울 때까지 괴롭힘을 당했다. 그러다가 그날은 집으로 갈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버드나무 아래 놓아둔 옷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둥굴아재 짓임이 분명했다. 틀림없이 마을 앞 시정(詩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우리는 냇가에서 시정을 바라보았다. 틀림없었다. 둥굴아재가 거기 있었다. 매번 당하는 일이지만 큰일이었다. 시정까지 갈려면 들을 건너야 하고, 들은 마을에서 뻔히 보이는 곳에 있었다. 우리가 알몸으로 걸어가면 동네사람들이 다 볼 것이다. 고추야 손으로 가리고 가면 되지만 벌거벗은 엉덩이는 어찌할까 싶었다.
해가 저물면 더 큰일이었다. 공부 안 하고 집 안 보고 냇가에서 놀았으니, 밭에서 돌아온 엄마 성화를 어찌 견딜 것인가. 엄니 성화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좀 창피하더라도 시정까지 갈 것인가. 상의 끝에 결국 가기로 했다. 우리 중에는 창피한 줄 모르는 덜 떨어진 녀석도 있지만, 각자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보 같은 길수를 앞세우고, 다음 기선이랑 열을 서서 고추를 잡고 줄래줄래 시정을 향해서 갔다. 중간쯤에 도랑이 있었다. 도랑을 건너갈 때, 마을 쪽에서 웃는 소리들이 들렸다. 사람들이 그때서야 본 줄 알았다. 계집애들 소리도 들렸다.
그러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만 냇가를 향해 오던 길을 내쳐 달려갔다. 죽으면 죽었지 하면서 이를 꽉 깨물었다. 갯버드나무 밑에 도착하여 모래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저물어서야 엄마가 옷을 가지고 왔다.
밤이면 계집애들은 어느 집 마당 덕석 위에 모여 누워 별을 헤아리겠지만, 우리들은 밤이면 시정에 모였다. 거기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고, 모험이 있고, 우리가 가보지 못한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어이 삼태양반, 도깨비 잡았다는 이야기 좀 해봐.”
삼태아재는 힘이 장사였다.
“그러니까, 전쟁이 끝나던 병인년 일이야. 그때 모내기 끝나고 벼가 한참 자랄 무렵에 가뭄이 들었었지.”
삼태아재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땐 다들 냇가에서 물을 퍼서 논에 물을 대고 있을 땐데, 자시 무렵 집사람이 술참거리를 가져온다면서 집으로 갔다네. 나는 좀 쉰다 하고는 볶은 콩을 먹고 있었지. 그런데, 저쪽에서 웬 사내 하나가 오지 않겠나.”
들판 저쪽 말바위 근처에 도깨비불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침을 삼키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곁으로 오더니 앉더라고. 수고 많으시오 하길래 나도 맞인사를 했지. 옆마을 사람인 줄만 알았던 게지.”
“하긴 그때는 전부 물 푸느라고 다들 정신들이 없었지. 죄다 냇가로 나왔을 때니까.”
“그려, 나도 그런 줄만 알았다니께. 그런데, 옆에 앉더니만 먹고 있는 콩을 좀 주라는 게야.”
“그래서?”
“주었더니, 아 글쎄 씹지도 않고 그냥 훌렁 삼켜버리는 것이여. 참 요상했지. 그래도 그때꺼정은 그냥 그런가부다 했는데, 담배를 피우려니까 아 글쎄, 이번에는 담배를 좀 주라는 것이여.”
그 시절 담배는 막담배인 봉초였다. 담배가루를 종이로 싸서 둘둘 만 다음 침을 발라서 묶고 불을 붙여 피우던 봉초담배였다. 필터 담배는 귀한 물건이던 시절이었다.
“주었더니, 아 이것도 그냥 삼키는 것이여. 그때서야 알았지. 이것이 사람이 아니구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들은 다음에 전개될 무서운 이야기에 숨을 멈추고 듣고 있었다.
“내가 그 생각을 하자마자, 이것이 나를 보면서 씩 웃는 것 아니겠어? 인자 알았냐 함서 말이여.”
냇가에는 수령이 2백년도 더 된 갯버들이 수없이 냇가를 따라 늘어서 있었다. 가물치는 버들을 좋아한다고 했다. 비가 온 다음 날 냇가에 가 보면, 버드나무에서 가물치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 오면 버드나무를 타고 올라갔다가, 사람들이 오면 떨어져 물속으로 숨는 것이었다. 그 갯버드나무가 있는 냇가는 도깨비가 살기에는 딱 좋은 곳이었다.
“그렇게 웃고 나더니, 이놈이 ‘알았으면 씨름이나 한 번 할까’ 하는 것이겠지. 그땐 나도 한창 때라 힘에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어.”
곁에서 행기동 아재가 나섰다.
“그건 내가 증명함세. 삼태양반 젊었을 적에는 지게로 나무 한 짐을 지고 장까지 5키로를 한 번도 쉬지 않고 가는 걸 봤으니까.”
삼태아재는 수염을 한번 쓰다듬으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험험, 하여튼 나도 좋다고 함서 일어나 마주 섰지. 그런데 도깨비란 놈 이게 장난이 아니야. 키도 장대만큼 크고 가슴이 딱 벌어진 것이야. 좋다고 했지만 가슴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어. 지면 죽는다는 것은 다 알잖아.”
우리는 저도 모르게 손을 모으고 똥그래진 눈을 깜박거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허리춤을 잡고 일어서는데, 살라고 그랬는지 도깨비 다리는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구만. 하나는 헛다리고 하나는 진짜다. 그러니까 헛다리를 걸려고 하면 헛힘만 쓰고 지쳐서 진다. 그러니까 진짜 다리가 어느 쪽이냐는 것이 도깨비 씨름의 승부처라고 생각했지. 그런 생각 끝에 한번 이놈을 흔들어봤다네. 그러곤 알았지. 아, 오른쪽이구나.”
“왜 오른쪽이어?”
누군가 묻자 장성아재가 급하게 대신 대답했다.
“아, 음양설에도 나오잖이여. 도깨비는 귀신과 같은 음성을 띠는 요물이지. 더구나 밤에만 나오는 음성(陰性)이니까, 좌양우음(左陽右陰) 해서 오른쪽이 도깨비 진짜 다리라는 것이지.”
“맞네 맞아, 그래서 오른쪽 다리만 집중적으로 공격한 것이야. 힘도 있을 때니까 밀어붙이다 요렇게 오른다리를 오른쪽으로 잡아챈 거야.”
“넘어뜨렸어?”
“암, 그리고는 무릎팍으로 눌러서 꼼짝 못하게 하고는 허리춤에서 허리띠를 빼서 놈을 버드나무에다 칭칭 묶어놨지. 다 끝나고 나니까 오만정이 떨어지는 것이야. 도깨비 놈도 지쳐서 씩씩거리고 나도 힘이 다 빠지고 해서 얼른 자리를 떴다네, 가다 보니 저만큼 집사람이 오더구만.”
“그래서 어찌 되었나.”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그 버드나무 있는 데로 가보았어. 아 글쎄 묶여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묵은 대나무 막대기, 그것도 핏자국 같은 검으튀튀한 자국이 묻어있는 대나무 지팡이었다네. 집사람도 믿을 수 없다는 거야. 그래서 설마하고 대나무를 갈라보니까, 그 마디 속에 나한테 받아서 먹은 콩도 나오고 담배가루도 나오데. 징그러워서 그만 불에 태워버렸지.”
“아따, 한번 사람들한테나 보여주지 그랬나?”
“그러다 살아나면 어떡하게? 집사람도 그걸 봤으니까 증인은 있는 셈이지.”
이야기가 끝나자, 우리는 너무 놀래서 입마저 얼어붙은 채 말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 삼태아재는 우리들 사이에 영웅으로 통했다. 도깨비를 잡은 영웅. 그러나 도깨비는 하나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4학년이 되던 그 해 들판 건너 앞마을에서 신혼부부가 밤늦게 일을 하다가 신랑 되는 이가 도깨비에게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죽은 이는 눈이며 코며 귀며 온갖 구멍이란 구멍에 흙이 그득 채워진 채로 죽었다면서, 사람들은 그것이 도깨비에게 씨름에 져서 죽은 사람의 모습이라고 하였다.
가을이 오고 있었다. 우리는 가을 운동회며 학예회 준비에 바빴다. 그러나 내 친구 대부분은 할 일이 없었다. 운동도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는 놈들이니, 어떤 배역이나 역할도 주어질 리가 없었다.
우리 학년에 옥희라는 계집애가 있었다. 학교 근처 마을 방앗간집 딸이었다. 좀 이쁘장 하고 공부도 잘 했던 그 계집애는 다른 계집애들보다 얄미울 정도로 유난을 떨었다. 우리 친구들이 옆으로 가면 인상을 찌푸리거나 저리 가라고 손사래질을 쳤다. 더럽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 지경이니 우리 친구들도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은 혼내 주자며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어느 점심시간이었다.
“재봉아, 드디어 들어갔다!”
옥희가 화장실에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됐어, 가자!”
우리 모두는 검정고무신에다 시궁창 흙을 담았다. 그리고 옥희가 들어갔다는 화장실 쪽으로 갔다. 그리고 곧 터져 나올 비명소리를 기대하며, 신호에 맞춰 시궁창 흙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전혀 엉뚱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놈이야!”
들려온 것은 옥희의 가냘픈 목소리가 아니었다. 화가 나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굵직한 남자 선생님 목소리였다. 소리에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친구들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목소리가 다른 것을 알고는 얼른 튀었다.
“너, 이리와!”
영문을 몰라 하며 멍청하게 서 있던 애들이 잡혔다. 길수를 선두로 성열이가 잡혔다. 선생님은 머리에서부터 윗몸 전부가 시궁창 흙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화가 잔뜩 나셨을 것이다. 잠시 후 매 맞는 소리, 우는 소리며 각종 기압 받는 소리가 온 운동장을 울려왔다.
그래도 다행히 나는 불지 않은 모양이었다. 오리걸음부터 앞으로 굴러, 뒤로 굴러 하면서 돌고 있는 친구들은 눈물이야 콧물이야 얼굴이 범벅이 되어서 낑낑대고 있었다. 아마 옥희는 화장실을 보고 나가고, 그 사이 선생님이 들어왔던 모양이었다. 바보 같이 하나 정도는 망을 보고 있어야 했지만, 그러기에는 멍청한 친구들이었고 상황 파악도 잘 못하는 어린 나이였던 시절이었다.
어쨌거나 의리는 지켜야겠기에 기압이 끝날 때까지 학교 교문 앞에 앉아 있었다. 해가 저물 무렵에야 학예회 연습을 마친 계집애들이 나왔다. 연희도 있었다. 모아놓고 기다리니까, 그때서야 친구들 기압도 끝났다. 얼마나 기압을 받았던지, 엉금엉금거리며 훌쩍거리며 흙먼지 잔뜩 묻은 얼굴로 나오는 친구들을 데리고 우리는 마을을 향해 출발했다.
학교 앞 개울에서 친구들 얼굴을 씻기고 나자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왼쪽으로 산길이 있었다. 늦어서 신작로 길을 버리고 산길 쪽으로 가기로 했다. 달빛이 구름 사이로 살짝살짝 비치는 날이었다.
밤길을 갈 때는 가장 용감한 애가 앞장서고 가운데는 계집아이들을, 그리고 뒤쪽으로 좀 힘이 센 형들이나 머스매들이 서는 법이었다. 그래서 가장 뒤에는 배짱 좋은 맹묵이를 세웠다. 바보 같은 녀석을 뒤에 세워놓으면 꼭 무슨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마치 누가 뒤에서 채가는 것처럼 생각하고는 겁을 먹고,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도 ‘엄마야, 엄마야’ 놀래기 때문에 배짱 좋은 맹묵이가 적격이었다. 작은 언덕을 넘어서면 왼편으로 작은 마을이 하나 있었다.
마을은 십여 가구 정도였고, 어느 해 염병이 돌아서 사람 몇 안 남고 다 죽었다는 마을이었다. 그 동네 애들도 학교를 다녔지만, 수가 적어서 항상 기가 죽어서 지냈다. 더구나 가난한 탓인지, 영양부족으로 얼굴마저 핼쓱한 아이들이었다.
옛날부터 그 마을에는 달걀귀신이 나온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그 마을 애들 하고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 애들도 우리를 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학교가 파하면 같이 오는 날도 있었지만, 먼저 저희들끼리 가버리곤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달걀귀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척 궁금했다.
“눈도 코도 없다고 하더라.”
“입만 있대.”
“하얀 얼굴에 빨간 입만 있대지, 아마?”
남자 애들이 입을 까불대며 달걀귀신 이야기를 하자, 계집애들이 정색을 했다.
“하지 마야 !”
계집애들이 하지 말라고 아우성이었다. 길수는 이 기회란 듯이 헤헤거리며 달걀귀신 흉내를 내며 놀렸다. 이 바보는 친구들 수가 좀 많다 싶으면 언제나 이 모양이었다. 방금까지도 죽도록 기압 받던 일은 어디가고 없었다. 연희는 내 뒤에 바짝 붙었다. 계집애 하나가 길수 보고 악을 썼다.
“고만 해라이!”
그러나 마을이 가까워졌다. 마을 앞에는 자그마한 시내가 흐르고 있었다. 동네 아줌마 하나가 달빛을 받으며 빨래를 하고 있었다. 아마 들에서 일을 하다가 늦은 모양이었다.
“탁 탁 탁”
밤이라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냥 갔으면 좋으련만, 길수가 아주머니를 불렀다.
“아줌마, 아줌마!”
귀찮은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자, 재차 불렀다. 이번에는 성열이도 현성이도 가세했다.
“아줌마, 아줌마, 아줌마!”
성화에 못이긴 아주머니가 겨우 대답을 했다.
“왜애?”
그러면서 방망이 소리가 뚝 멈추었다. 우리는 그 무렵 징검다리 가까이 있었다. 물을 건너면 우리 마을로 가는 길이 나왔다. 그만했으면 좋으련만 이번에는 기선이가 큰소리로 말했다.
“달걀귀신이 어떻게 생겼대요?”
아주머니가 귀찮은 듯 아무 말이 없자, 힘을 받은 나머지 친구들이 합세했다.
“어떻게 생겼대요. 어떻게 생겼대요. 어떻게 생겼대요!”
마치 악마구리떼 같이 떠들고 있었다. 그때 나는 첫 징검다리 돌 위에 발을 올리고 있었다. 이윽고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째, 한번 보고 잡냐?”
이 정도면 돌아가는 사태 파악을 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몰랐다. 보고 싶냐는 말에 나는 무심코 아주머니를 돌아보고 있었다. 친구들은 큰소리로 답을 하고 있었다.
“예!”
그러자 아주머니가 얼굴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손을 한번 얼굴 위에서 아래로 크게 훑어 내렸다. 마침 달빛이 바람에 흔들리며 냇가를 비추고 있었다. 그렇게 달빛에 드러난 얼굴은 하얀 얼굴에 빨간 입술을 지닌,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그 얼굴이었다. 얼굴은 하얗게 웃고 있었다.
“악!”
계집애들이 비명을 울리고 있었다. 얼마나 놀랬는지 친구들도 엉거주춤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씻겨진 듯이 손이 내려진 얼굴은 달빛에 너무도 하얗게 드러나고 있었다. 정말이지, 눈도 코도 없었다. 입만 커다랗게 웃고 있었다. 달걀귀신이었다.
‘후닥닥’
정신을 차린 나는 징검다리 너머로 튀었다. 다리가 땅에 닿지 않는다는 말이 옳았다. 냇물을 밟고 앞만 보고 달렸다. 하얀 달걀귀신 얼굴이 뒤를 쫓는 것만 같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저만큼 영금바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숨을 헐떡거렸다.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고 있었다.
“어찌 되었을까.”
연희 걱정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계집애 하나가 울면서 오고 있었다. 제일 등치 좋고 발 빠른 계집애였다. 남학생들이 놀리면 기어코 쫓아가서 패주는 아이였다. 붙들고 물었다.
“연희, 못 봤냐?”
“몰라, 엉엉엉.”
울면서 먼저 가버렸다. 또 한참 있으니, 그때서야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절뚝거리는 놈, 어디를 다쳤는지 옆구리를 잡고 오는 놈 하며 하나같이 성한 놈이 없었다. 그러나 연희는 보이지 않았다.
오던 길을 다시 가기로 했다. 놔두고 갈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등하굣길에 한 번도 먼저 간 일이 없고, 먼저 끝나면 교문 앞에서 기다리던 연희였다. 가는 길은 더 무서웠다.
얼마쯤 가자 오리나무 숲이 보였다. 그래도 연희는 보이지 않았다. 저만큼 그 문제의 마을이 보였다. 달걀귀신이 연희를 잡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고 싶었다. 연희를 다 먹고 나서 다른 애까지 잡아먹으려고 이 길을 오고 있지나 않을까. 덜덜 떨면서 망설이고 있는데 어디서 죽어가는 듯한 사람소리가 들려왔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소리는 작고 가느랗게 들려왔다. 화들짝 놀래서 도망치려고 등을 돌렸다. 소리는 다시 들려왔다.
“재봉아, 재봉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
연희다 싶어 가만가만 가보니, 길 옆 작은 바위 밑에 뭔가 웅크리고 있었다. 연희였다. 반가움에 큰소리가 나왔다. 처음 불러보는 이름이었다.
“연희야!”
여태까지 한 번도 곱게 불러준 적이 없었다. 그동안 고작 부른다는 것이 ‘야이, 가시내야.’하든가, 아니면 ‘너 이리 와, 저리 가’ 하는 정도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연희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하면서 더 움츠릴 뿐이었다.
“연희야, 나야 나. 재봉이야.”
하자, 그때서야 연희는 내 목소리를 확인했는지 고개를 들고 있었다. 큰 눈이 눈물에 젖어 더 크게 보였다.
작은 몸을 업고 길을 돌아서 걸었다. 파들거리던 연희 몸도 안심이 되었는지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호흡소리도 고르게 들려왔다. 영금바위를 지나, 상엿집 앞을 지날 때도 무섭지 않았다. 뭔가 커다란 것을 지켜냈다는 행복이 가슴에 벅차올랐다. 등 뒤로 느끼는 연희 몸에도 따스한 열기가 오르고 있었다. 저만큼 마을 사람들이 우리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먼저 간 친구들이 마을에 알린 모양이었다. 내리고 싶다고 하였다. 그 사이 밤소쩍새가 울고 있었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