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1만원에 막걸리가 세 병이요, 안주는 지천이라…. 주지육림(酒池肉林)이 펼쳐지는 전주시 완주군 삼천동 막걸리골목.
원조도 따로 없이 어느 집이건 안주대박이다.
푸짐한 상차림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주류, 비주류할 것 없이 모두 즐겁다. 남도 지방 특미인 삼합(홍어, 편육, 김치), 병어회, 미역국, 해삼, 날치알, 방게무침, 두릅, 번데기, 고둥, 더덕, 장조림, 샐러드, 배추뿌리, 파전, 생선조림 등 무려 스무 가지가 넘는 안주가 상다리를 부러뜨릴 태세다.
안주는 1만원 단위로 추가된다.
한 주전자(막걸리 세 병)를 다 먹고 또 한 주전자(1만원)를 추가하면 서비스 안주가 줄줄이다.
세 명이 두당 1만원이면 랍스터에 산낙지, 영계백숙까지 맛볼 수 있으니 ‘밤새 마시자’ 작정한 서울 주당들이 놀토를 앞두고 전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 풍경도 흔해졌다. “한 상은 적자, 두 상은 봉사, 세 상은 되어야 인건비 정도 남는다”는 공공연히 오가는 대차대조표.
가격대비 효과에 있어 이만한 박리다매가 또 있을까?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탯자리인 전주(全州) 예로부터 ‘온고을’이라 하여, 모든 것이 풍족했다.
전주막걸리는 전주천 맑은 물과 탁월한 누룩 빚기의 장인들이 이룬 쾌거라 아니할 수 없을 터.
이곳이 활기를 띠다 못해 외지인들로 북적대자 전주시는 급기야 이 골목을 관광상품화 하고 「막프로젝트」를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절주(節酒) 추세에 역행, 「막프로젝트」가 「막가 프로젝트」 될 수 있다는 반대 여론도 있긴 했다. 그런데 전주막걸리에 날생(生)자는 왜 붙는 것일까?
전주 막걸리를 공급하는 전주 대성주조공사 현병직 이사의 말을 들어보자. “전주 막걸리는 효모균이 살아있는 게 특징입니다. 웃국물을 따라보면 사이다처럼 기포가 올라와 청량감이 느껴지지요. 막걸리도 웰빙 시대거든요.” 과거에는 막걸리를 흔들어 걸쭉한 탁주 형태로 마시곤 했지만 요즘은 사이다처럼 웃국물만 따르는 게 유행.
한결 맛이 부드러워 그냥 넘어간다. “삼겹살에 막걸리를 마신 자, 대중교통 이용금지의 법안을 시행하라”는 우스개 말이 있듯, 막걸리 시음 후 트림이란 옆 사람에겐 차라리 형벌이다.
그러나 전주 생막걸리는 트림이 나오지 않으니 얼마든지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좋다.
삼천동에서 벌어지는 재밌는 현상 중 하나는 중년 아주머니들의 고용창출이다.
수 십년간 집에서 반찬을 만들어온 남도 아낙들의 솜씨 자랑, 즉 그들의 쿠킹칩이란 요리연구가들이 내놓는 어불성설 레시피와는 차원이 다르다. 찹쌀풀을 듬뿍 넣어 담근 맛김치, 해산물을 넣어 끓인 미역국이며 짭조름한 양념들이 남도 아낙의 손맛 아니고선 흉내조차 힘들다. “집에 있음 우울증 걸려요. 나와서 일하면 활력소가 생기죠. 돈 걱정하면서 집에서만 있지 말고 2년만 맘먹고 벌어봐요. 몸도 마음도 건강해져요!” 「전주막걸리집」 손맛의 주자인 권순자 씨(51세)와 김정애 씨(48세)의 까르륵 웃음. 서른 곳이 넘는 막걸리집마다 손맛 전쟁이니, 외지인이 들어와 장사를 시작하면 성공이 쉽지 않다. 대포집에서 한 잔씩 걸치던 ‘추억의 술 막걸리’, 일터에서 새참으로 마시던 ‘국민의 술 막걸리’. 그러나 막걸리는 곡주인지라 한번 취하면 쉽게 깨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다음날 아침, 몽롱한 의식 속으로 전주 톨게이트가 아련히 비껴가고 자신의 추태가 어렴풋이 떠오른다면?
생각만으로도 발등에 못이 박히는 것 같다. 막걸리엔 뽕짝이 제격.
‘네 박자’로 분위기를 맞출 정도면 딱이니, 부디 ‘네 박자’가 엇박자 되기 전에 자제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