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바르게 잘 쓰자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난의 제목이 왜 하필 '우리말 클리닉'일까?
[삶이 보이는 창]의 송경동 기획위원이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원고 줄 때가 되었다고 알려주면서, 꼭지 이름을 바꾸면 안되겠느냐고 물었다. 딴은 그렇다. 우리말 '바로 쓰기'나 '길라잡이' '다듬기' '가꾸기' 같은 제목이라야 내용과 포장이 딱 들어맞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말 '순화'도 '정화'도 '치료실'도 아닌 꼬부랑말 '클리닉'이라니, 짜증나는 이도 있을 법하다.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꾸고 바르게 쓰자는, 자기 만족과 보람 외에는 별로 생기는 것 없는 운동을 열정과 끈기로 펼치고 있는 분들이 참으로 많다. 그 분들의 글과 책을 두루 섭렵하지는 못했지만, 내 깜냥으로는 그래도 눈에 띌 때마다 열심히 읽고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사실 어색하거나 틀린 말법을 찾아내 바로잡아주고 좋은 우리말 표현을 찾아 널리 쓰이도록 힘쓰는 그 분들의 노력이 없다면 우리말은 비틀비틀, 더욱 어지러운 걸음을 걷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누구나 쓸 법한 '우리말 가꾸기' 같은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우리말'에 대한 자의식을 쏙 빼고, 그냥 저잣거리의 감각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오히려 우리말 '클리닉'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무슨무슨 클리닉이라 깔끔떨며 붙어 있는 병원 간판들이나 무슨무슨 플라자, 라운지, 아트홀 같은 혀짧은 제목들을 두둔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말 가꾸기는 가꾸기대로 제 갈길 가고, KTF니 에버랜드니 씨네마플러스니는 또 그것대로 가는 식은 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진짜 내 바람 아닐까. 우리말 '클리닉'이 불만스럽거나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독자는 그만큼 더 우리말을 아끼고픈 마음이 있어서가 아닐까.
우리말 사랑이 불꽃처럼 뜨거운 분들의 주장을 읽다보면, 어떤 내용은 우리말 순수주의나 순결성에 너무 매여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말도 삶도 순종(純種)은 없다. 우리 몸이 외부세계와 교섭하는 것이 바로 육체적 생존이듯이, 말도 그 본질은 다른 언어와 끊임없이 교섭하면서 생성되고 발전하는 것이다. 말의 운명은 오늘날 세계에서 그렇게 잡종적일 수밖에 없고, 그런 운명 속에서 풍요로워지고 새롭게 모습을 바꾸어가는 것이다.
말은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주인이다. 내 입으로 내 말을 하는, 가장 자유스러워야 할 말하기까지 규범과 도덕과 우열가리기로 짓눌러서는 안될 것이다. 소통이면 소통, 절규면 절규, 탐구면 탐구인 대로, 말함으로써 한층 자유로워져야지, 말을 잘 가꾸자는 노릇이 되레 말의 굴레를 쓰고 끙끙대게 만드는 구속이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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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일간지 중에서 가장 우리말 가꾸기에 힘쓰고, 관련 기고도 자주 싣는 신문이다. '강호'의 '고수'들이 펼치는 그 번뜩이는 우리말 사랑에서 나는 많은 깨우침을 얻는다. 그렇지만 더러는 고개가 갸웃거려질 때도 있다.
'∼에 다름 아니다'와 비슷하게 쓰는 일본말투로 젠체하기 좋아하는 인물이 취임 인사를 할 때, 목에 힘을 주어 이말 저말 지루하게 늘어놓고는 간단하나마 이것으로 '인사에 가름한다'고 한다. 민중서림에서 낸 국어대사전에는 '가름한다'를 타동사로 규정해 '구별한다, 분별한다'고 풀고, 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 큰사전에는 이름씨 '가름'의 뜻을 '가르는 일'이라고 하고는 '가름한다'를 남움직씨로 규정하고, 예문으로 '승패를 가름한다'를 보였다.
한편, 일본말에는 '∼을 ∼으로 대신한다'는 뜻으로 쓰는 'か(代)える'가 있어서 '서면으로 인사를 대신한다'―しょめん(書面)をもってあいさつにかえる―처럼 쓴다. 이것으로 보면 '∼에 가름한다'는 우리말본에 없는 일본말꼴이므로 위에 보인 인사말은 '인사를 대신한다'고 끝맺어야 한다.
(이수열, [한겨레] 기고. 인터넷 등록 2002.10.16)
이 때 쓰는 말은 '가름하다'가 아니고 '갈음하다'인 듯해 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와 있다.
갈음: 이미 있는 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 대신함. 갈음-하다. (한글학회 [우리말 큰사전])
그리고 [남명집언해] [능엄경언해]에 나오는 옛 형태를 보이고 있다.(국립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
따라서 위 [한겨레] 글의 지적은 '갈음하다'가 '가름하다'와 발음이 같아서 생긴 착오이다.
'갈음하다'는 두루 쓰이기보다 "간단하나마 이것으로 인사말을 갈음할까 합니다"([금성판 국어대사전])와 같이 주로 격식을 차려 말할 때 쓰이는 듯하다. 교장선생님이나 기업체 회장님의 훈화가 길어질 때 사람들은 '이것으로 ○○○을 갈음합니다'가 나오길 학수고대한다. 용례를 더 두루 살펴 살려쓰면 좋은 우리말이지만, 오늘날 그 뜻과 쓰일 데를 정확히 알고 쓸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인사에 갈음합니다'와 같이 쓰는 것이 일본말투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면, '이것으로 인사말을 갈음합니다'라고 완전한 꼴로 말하기보다 '(간단하나마) 인사말로 갈음합니다'와 같이 줄여 쓰이기도 한다.
선수들의 투지가 승패를 ( ) ·가늠했다.
발전을 비는 것으로 축사를 ( ) ·가름했다.
물이 얼마나 깊은지 정확히 ( ) ·갈음했다.
어느 것이 맞는지 잘 '가늠'해서 '가름'해보자. 모르면 사전을 찾아보면 된다. 인터넷 국어사전을 찾아도 금방 나온다.
그런데 내가 바로 알고 제대로 써도 다른 사람이 잘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것도 문제다. 굳이 '가름한다'고 쓸 것 없이 '승패를 갈랐다' 하면 더 명쾌하고, 축사를 하면서 축사를 '대신한다'(갈음한다)고 하지 말고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축사를 마칩니다' 하면 더 듣기가 좋다.
'갈음하다'라는 우리말 표현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우면, 혼동되기 쉽고 제대로 알아들어주는 사람도 없는 입말에서보다 글에서 좀더 자주, 정확하게 써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