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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몰군경미망인진천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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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인 이야기 스크랩 전몰군경미망인회이야기..
큰빛 추천 0 조회 184 13.07.27 14:2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전몰군경미망인회이야기

뉴스일자: 2008년12월20일 09시37분



?핏빛 한을 가슴에 묻은 여인들

금으로부터 58년전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수족이 다치고,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해야만 했던 그 한의 날은 장렬하게 죽은 이에게는 차마 눈을 감지 못하는 한으로, 살아남은 이에게는 서럽고 힘겨운  삶으로 연이어지고 있다.
깊어가는 겨울, 진천 보훈회관에 자리를 잡은 ‘대한민국 전몰 군경미망인회’를 찾아 사랑하는 남편을 전쟁터에서 잃고 자식들과 힘겹게 살아온 홀어미들의 슬픈 삶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58년이란 긴 세월로 전쟁의 아픔은 다소 가셨다지만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반토막의 조국이기에 진천군 전몰군경 홀어미처럼 장열하게 전사한 이들의 간절한 통일의 염원을 잊지 않는 이들이 있다.
 차마 눈을 못 감았을 전사자들의 아픔을 온전히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군경 참전 전몰 용사 부인들의 단체인 ‘대한민국 전몰군경 미망인회’회원들이다. ‘대한민국 전몰 군경미망인회’ 는 나라를 위해 장열하게 싸우다 전사한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하고 홀로, 또는 유복자, 자녀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전몰 군경 부인들의 단체다.
이 단체는 1963년 8월 23일 제정됐다. 1984년까지는 이간난 지회장(1대)이 단체를 맡아오다가 현재는 이규옥 지회장(2대)이 24년째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단체를 꾸려오고 있다. 3년전까지는 관내 여성단체 소속으로 편성되어 있다가 회원들의 나이가 너무 고령화 되어 여력이 되지 않아 2005년 여성단체에서 분리된 이후로는 자체적으로 회원들과 상부상조하여 자활 능력을 배양하고 순국자의 유지를 이어 조국통일을 앞당겨 이룩할 수 있는 활동에 더욱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진천군 전몰 미망인회는 상이군경의 처, 고엽제 유족회를 포함하여 총 50명의 회원들이 한달에 한두번씩 보훈회관에 모여 월례모임을 갖고 순국자의 평화 통일 염원 유지를 받들며 서로의 아픈 상처를 보듬어 주고 있다.
진천군 전몰 미망인 협회 이규옥 지회장은 미망인 단체연혁, 활동사항의 설명과 함께 정규 모임 외에 시 행사 보조 활동과 충혼탑 참배 및 환경 정화에도 힘쓰고 있다며 작년 한 해 동안 무공 수훈자, 전몰 군경 유족회, 상이군경 협회와 함께 늘 서로 도움주고 도움받는 단체로서 뜻 깊은 활동을 하고 있음을 전했다. 특히 해마다 국립묘지와 진천 충혼탑을 찾는다는 故홍종근 일병의 아내 이규옥 여사. 그녀는 차마 눈을 감지 못했을 남편 생각에 눈시울을 붉힌다.
? ‘未亡人’으로서의 삶

나라위한 숭고한 희생정신..
그 정신을 이어가는 그들의 아내들? 핏빛 恨을 가슴에 묻은 여인들

“그 세월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겠어…” 덕산면 구산리에서 태어나 오창의 송대리에 사는 남편(故 홍종근 일병)과 결혼했다는 이규옥 여사는 긴 세월을 더듬기라도 하듯 채 말을 잇지 못한 채 창밖을 한동안 바라보다 다시 말을 잇는다.
“뜻밖의 전사통지서를 받으니 정말 하늘이 샛노래 보이더라고. 그때 나이 27세였고 남편은 그때 25세였거든. 서울서 난리가 나는 바람에 시댁이 있는 오창으로 왔는데 식구는 많고 정말 먹고 살 방법이 없더라구. 그 당시 봄, 가을에 나오는 연금 2000원(그 때 당시 연금 액수)은 턱없이 부족하여 생활 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했어. 그때 산 사람은 살아야 겠기에 비단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장사를 시작했지. 당시에 버스가 제대루 있었겠어. 물건을 하려면 증평에 가서 기차를 타고 대전까지 가야 했는데, 기차역에서 신문을 깔고 자면서 이를 악물고 그렇게 15년을 장사했어. 그때 그렇게 억척스럽게 살았기에 시부모와 식구들을 덕산 개미실로 모시고와 자리잡고 이만큼 살게 된거여. 그때 머리에 하도 무거운걸 이고 다녀 키가 못 커서 140cm밖에 안돼”라며 지나간날들에 대한 恨 서린 이야기를 웃음으로 마무리 했다.
때론 날품도 팔고 비단 장사를 하며 지금에 이르렀지만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눈도 감지 못한 채 죽었을 남편 생각에 가슴 한 구석엔 휑하니 바람이 인단다.
? 통일이여 오라~
진천군 전몰 군경 미밍인회의 장금순(82) 여사는 “지금은 그전보다는 훨씬 많은 연금이 나와 생활은 나아졌지만 치솟는 물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고달픈 삶을 사는 회원들이 여전히 많아” 라면서 “그러나 회원들은 모두 부실한 경제적 지원보다 더 아쉬운 것은 요즘 사람들의 무관심이라고.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과 그 가족에 대해서는 경제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그 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며 그 분들의 염원을 기억하길 바란다” 고 전했다.
전쟁이 끝난 뒤 부족한 식량에도 허리 띠 졸라매며 좀도리 쌀 모은 어머니들의 근면함이 우리나라의 경제를 키웠듯 나라를 위해 장렬하게 싸우다 죽은 남편을 차마 따라 죽지 못한 채 홀로 자녀들을 키우며 어려운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홀어미들의 강인함이 순국자들의 유지를 받들어 우리의 염원인 평화 통일을 이룩하길 기대해본다.
아울러 나라 위해 피땀 흘린 선열들의 행적이 조금씩 잊혀져 가고 있는 요즘, 자신의 이익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전몰군경미망인들의 삶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취재/강성진기자


전몰군경 미망인지회 이규옥 지회장

“항상 남을 위해 살고
남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
진천군 보훈회관 가족들과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이규옥 지회장을 이억척지회장이라고 부른다. 
시부모에게는 자상한 며느리로, 아들에게는 완고한 어머니로 살며 늘 남을 위해 헌신하고 애쓰는 마음으로 살아온 진천군 전몰 군경 미망인 지회장 이규옥(74)씨는 “늘 내 자신에게 『항상 남을 위해 살고 남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는 좌우명으로 살고 있다” 고 말한다.  외롭고 불우한 처지에서 고생하는 회원들을 보훈회관의 3개 단체와 함께 위로잔치(생신상 차려드리기등)를 베풀어 외로운 마음을 달래 주고, 혼자 사는 미망인 병간호 및 위문금 전달 등 동병상련 미망인의 한을 어루 만져주는 사랑의 전도사 역할도 담당하며 진천에서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인물이다.

이 뉴스클리핑은 http://jcjachi.com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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