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반대하거나 혹은 전쟁을 찬성하는, 서로 입장이 나뉜 상반된 시위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함께 등장하는 구호가 있다면 바로 평화(peace)라는 말일 것이다. 특히 흑[敵]과 백[友]의 구분이 분명했던 냉전시대를 경험한 세계는 나와 우리의 평화를 위해 그와 그들의 평화를 인정해야 한다는 값비싼 교훈을 얻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느 곳에서는 전쟁을 준비하고, 전쟁이 벌어지고,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평화를 외치는 곳에는 전쟁의 위협이 그 어느 곳보다 높다. 멀리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부터 가까이 남과 북의 철책선 너머로 우리는 '평화와 정의'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그 정당성이나 도덕적 가치를 따지기에 앞에 우리 모두가 인정해야 하는 것은 분명히 이 땅에는 평화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너무 난무해서 오히려 그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 것이 평화와 화해의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르게 이해되는 평화의 이해 때문에 이 땅에 평화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해답을 찾기 위해 히즈키아스 아세파 박사는 그의 책 ࡔ평화와 화해의 새로운 패러다임ࡕ에서 "왜 평화를 일상의 인사로 사용하는 문화권에서조차 수없이 많은 비참한 전쟁이 치러졌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누구나 희망하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평화와 화해를 통합적이고 상호의존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공동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히즈키아스 박사는 화해의 이해를 돕기 위해 화해의 4가지 차원(영적, 개인적․심리적, 사회적, 생태적)을 설명하고 있다. 즉, 신과의 화해 없이는 자신과의 화해도 쉽지 않고, 자신과의 화해 없이는 남(타인)과의 화해와 더 나아가 자연과의 화해가 불가능하다는 단순한 진리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화해(reconciliation)의 어원은 '함께 오다' '같이 모이다.'라는 의미가 있다. 즉 화해는 서로 헤어지고 나뉘었던 사람들이 다시 함께 걷기 시작하는 행동을 뜻한다. 히즈키아스 박사는 이를 위해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y)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 개인이나 집단의 성공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성공할 때에라야 진정한 가치가 있다. 이럴 때 비로소 사회적 인간관계 형성에서 평등, 존중, 상호인정의 기초가 이뤄지고, 자신의 권한과 자유, 그리고 독립성마저도 양보하는 자발적 포기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비로소 통합적이고 포용적인 평화와 화해의 의미, 그리고 대안적 실천이 뒤따를 수 있다.
히즈키아스 박사는 이러한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평화와 화해의 관점으로 정치, 사회, 경제, 종교를 바라보는 해안을 제시하고 있다. 다수 정당제도가 야기하는 왜곡된 민주주의와 민심과 괴리된 소모적 정쟁이나, 무한경쟁의 경제제도가 만들어온 '위신소비(positional consumption)'의 폐해를 그는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또한 더 이상 갈등과 반목의 사회 속에서 평화와 화해의 도구가 되지 못하는 기독교 교회들에게 던지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히즈키아스 박사는 자신의 고향인 아프리카 케냐의 정치, 경제, 사회를 배경으로 이 책을 썼지만, 흥미롭게도 그의 책은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당 간의 갈등과 경제적 양극화 현상,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을 더 명확히 이해하는 데 신기하리만큼 큰 도움을 준다. 그것은 아마도 전 세계가 하나의 커다란 문화와 경제의 장으로 묶여가고 있는 세계화의 트렌드 속에서 이 책이 갖고 있는 전우주적 통찰력 때문일 것이다.
"평화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매우 훌륭한 기초 작업이다.
아세파 박사의 접근은 오늘날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점에
평화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토론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 셀리 팀멜(Sally Timmel), 갈등전환훈련센터 소장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사회갈등이 왜 해결되지 않는지 그 원인을 찾고 있다면, 히즈키아스 박사의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아주 짧지만 너무나 깊고, 아주 평범하지만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히즈키아스 박사의 책 ࡔ평화와 화해의 새로운 패러다임ࡕ은 평화의 이론적 배경 연구가 척박한 한국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책속으로
"평화는 갈등이 발생했을 때 부분적으로 대처하는 '땜질'식 해결기술이 아니라, 갈등이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적용될 수 있는 더 광범위한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평화는 철학이다.
동시에 그 자체가 가치와 규칙을 갖는 하나의 패러다임이다.
이러한 좀 더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이해는 진정한 평화와 평화 형성의 과정을 창조하는 데 가장 기초가 되는 작업이다."
"화해(reconciliation)의 어원은 '라틴어 'conciliatus'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말은 '함께 오다' 또는 '같이 모이다'라는 뜻이다.
존 넬슨(John Nelson)에 따르면 화해는 함께 걷는 것, 즉 동행을 의미한다.
즉, 화해는 서로 헤어지고 나뉘었던 사람들이 다시 함께 걷기 시작하는 행동이다. 본질적으로 화해는 갈등으로 인해 서로 멀어지고 헤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모이고,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화해는 갈등 해결을 말하지만
그 차원과 의미는 더 높고 심오하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