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전라도 보성에서 태어나셔서 결혼후 저를 낳고 얼마 안되어 광주로 나오신 뒤 목수생활,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운영하시다가 마지막으로 농촌에서 양돈을 25년간 하셨습니다. 저의 중학교이후 직장생활을 10여년간 할 때까지 축산(양돈)으로 우리 집 가계를 이끄셨습니다. 어려운 과정이 수없이 있었지요.
(물론 대한민국 부모님 세대에는 다반사의 일이겠습니다만...)
제 이야기로 들어가지요.
성당 청년회, 교구청년회 소모임활동(가톨릭사상연구회)을 통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은 신앙의 기본이라는 의식을 가지게 되고, 공동체를 지향하는 모임(다사람)에의 참여 등을 통해 생활공동체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과 좀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사회생활준비(고시공부,직장준비)를 철저하게 하지 못하고 대학을 졸업하게 됩니다. 다른 동기들 처럼 고시공부한답시고 2년간 방황...1994년 생활공동체를 지향하는 협동조합인 신협에 입문하게 됩니다. 성당내 활동을 통해 지향하는 바와 딱 맞아 떨어진 것이지요..얼마나 좋았던지요....(하지만 지금은 초심이 많이 상실....저를 포함하여 모두가 이기적임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 )
1998년 4월 전주로 발령나서 근무하던중 전주귀농학교 모집이 있었습니다[생명운동과 실직자를 위한 제4기 귀농학교: 주관 전주 근로자 선교상담소 : 1999.10.14~11.11: 전주 전성교회:화,목,토]. 어엿한 직장생활을 하는 저로서는 당시 귀농학교 수강생들에 비하면 호강에 초치는 격으로 여유있게 귀농학교를 댕겼더랬습니다.(토요일 강의는 현장실습시간, 주말 가족 나들이 겸.... 이러믄 동기들이 뭐라고 할 것 같습니다만)
그 당시 주말에는 현장체험, 주중에는 이론과 선배들의 경험담 등으로 진행된 귀농학교 학생생활은 저에게 제2의 인생의 꿈을 주었습니다. 그때는 당장 직장생활을 접고 귀농을 할 까 했었습니다. 변산으로...
하지만 주변인들은 반대하였으며, 니가 시골에서 고생을 안해봐서 그런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지요.
그 이후 지금까지 도시노동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전주생활이 협동조합의 초기모습을 간접체험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유기농생산자공동체인 변산의 한울공동체 방문, 생협운동에 관심이 많은 분들과의 인연 등을 돌아보면, (1960년 5월 1일 순수민간조직으로 조직되어 경제운동체로 시작하여 이미 성장해버린) 신협의 초창기도 꼭 이랬을 것 같더군요.. 그리고 그때는 제 집사람도 천주교인으로서 생명 평화에 관심이 많았었구요. 지금은 관심이 거의 없는 듯하며, 반면에 개신교 신자로서 아주 열심(?)입니다.(그나마 개방적인 천주교인으로서가 아니라 개신교 특정교파 소속인으로서라는 것이 아쉽지만요)
전주생활을 하던중 전보발령으로 다시 광주로 와서 아파트 생활 2년하다가 어찌하여 담양 수북에 전세로 들어가 삽니다.이때부터 본격적인 텃밭농사에 관심을 가지고 책도 사보고 귀농관련 카페도 자주 들락거리는 시기였습니다. 거름만든다고 제 오줌을 받아두었다가 구더기가 생기는 일도 있었구요. 텃밭에 나타난 뱀이 무서워 장화를 신거나 쇠소리를 미리 예고를 하고 밭에 들어가는 소심함도 익혔구요...
어찌하여 다시 광주로 나와서, 아파트가 처음으로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1층살면서 화단에 여러 작물도 심어보았지만(오이,옥수수,고구마,들깨,더덕 등), 공동주택관리상 결국 철거하는 신세... 그러다가 2층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1층 현관입구 지붕(2층 계단에서 넘나들며)위에서 화분으로 몇가지 작물을 키워보기도 했지요. 문제는 한여름 한참 더울때 물을 주는 것이 어렵더군요. 주변사람들의 눈치도 보이고... 결국 3년만에 아파트 텃밭(?)농사를 접었습니다.
지금도 부모님은 농사를 통해서는 소득이 보장이 안된다고 절대 반대하십니다. 차라리 식당 서빙일이 났다고 하십니다.(관계 종사자분들께는 폄하하는 이야기가 아니니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저도 아직 용기를 못내고 귀농학교 수료후 10년이 지난 지금도 임금노동자(직장인)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주말에 부모님 시골일을 거드는 일부터 차분히 준비하려고 합니다. 저는 힘들지만 자연속에서 몸을 굴리면서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희망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솔직히 여유있게 전원생활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마다하지않겠지만요...)
도시가 지옥이 아니듯이 시골자체가 행복 그 자체는 아니라고 합니다..어디서나 나 하기 나름... 내일만 기다리다 오늘을 허비하지는 말구요. 희망을 품으면서 오늘에 충실하는 모습을 가져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귀농한 선후배들이 있으니 나중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서 없이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첫댓글 저도 항상 땅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지금껏 동경하고 잇습니다 3년동안 텃밭도 가꾸어보앗고 ...ㅎㅎ
언젠가는 한평에 땅이라도 가질날이 오겟죠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니 아직아파트 생활이지만요
나는 1986년에 인성고등학교을 졸업한 박 한수입니다. 나를 기억할런지는 모르겠지만 나 박한수는 님을 기억하고 있지요.공부를 정말 잘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나지요.우연하게도 님의 카페에 들리게 되었네요.항상 평화롭고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기회 있으면 나의 카페{다음카페-박한수의 알기쉬운 1등 부동산공법]도 방문해 주시면 반갑게 맞이 하겠습니다.끝으로 님의 꿈꾸는 세상이 활짝 펼쳐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박한수님, 동창이라니 반갑구만... 공인중개사 시험준비하면서 부동산 공법을 잠깐 보았다네... 포기하였지만, 직장에서 부동산감정평가관련하여 부분적으로 접하기는 하지만... 여하튼 반갑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