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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Nederland) *출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표어: Je Maintiendrai(프랑스어:나는 유지할 것이다.)
수도 암스테르담
공용어 네델란드어
정부형태 입헌군주제
국왕 빌럼 알렉산드러
총리 마르크 뤼터
독립 공화국 1581년
왕국 1815년
면적 41,526㎢ (131위)
내수면 비율 18.41%
인구 16,407,491명
인구밀도 395명/㎢ (15위)
네덜란드(네덜란드어:Nederland네덜란드[*][ˈneːdərˌlɑnt]듣기(도움말·정보), 문화어: 네데를란드)는 유럽에 있는 국가이다. 서유럽에 있는
입헌 군주국으로 수도는 암스테르담이다. 홀란트(Holland) 지방에서 딴 이름인 홀란트라고 부르기도 하며 이를 한문으로 음차한 화란(和蘭)으로도
알려져 있다.
네덜란드 왕국(Koninkrijk der Nederlanden)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로 국토의 25%가 해수면보다 낮은 지역이다.
네덜란드라는 이름도 '낮은 땅'이란 뜻이다. 이 나라는 제방(둑)과 풍차, 나무 신발, 튤립 등으로 유명하다.
2009년 5월 10일 유로스타트는 네덜란드가 유럽에서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라고 발표했다.
지리
독일, 벨기에, 그리고 바다를 사이에 두고 영국에 둘러싸여 있으며 총 면적은 4만 1000㎢이다. 북해에 면해 있는 국토는 라인 강
(네덜란드어로는 레인 강(Rijn),마스 강(Maas), 스헬더 강(Schelde) 등이 만드는 삼각주를 중심으로 저지대가 펼쳐져 있다.
남서쪽은 구릉지대로 되어 있으나 림뷔르흐 주에 있는 이 나라 최고 지점조차도 321미터에 지나지 않는, 전체적으로 평탄한 국토를 가지고 있다.
현재 소유하고 있는 식민지인 아루바 섬과 네덜란드령 안틸레스도 포함한다. 과거에는 '네덜란드령 기아나'라는 이름을 가진 수리남은
물론 본국의 100여 배도 넘는 땅인 인도네시아도 '네덜란드령 동인도'라는 이름으로 식민지에 포함되었었다.
기후
홀란트의 겨울
네덜란드는 위도가 높은 곳에 있지만, 북부 지역은 북해의 난류와 편서풍의 영향을 받는 해양성 기후로 1년 내내 온화한 편이다.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는 작지만, 날씨는 변하기 쉽다. 그러나 남동부 지역은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기후가 거칠고 기온차도 심하다.
역사
고대와 중세
켈트와 게르만인이 자리잡고 살던 네덜란드에 로마인이 들어와 외국 지배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BC 50년 경이다. 남부의 마스트리흐트에 로마 시대의
요새 유적이 남아 있다. 로마 지배의 말기에는 프랑크와 색슨-프리스 인들이 들어와 정착하기 시작했고 이 무렵 네덜란드에 기독교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슬람을 막은 카롤루스 대제가 교황 레오 3세로부터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관을 받았다.(800년) 그가 사망(816년)한 이후, 유럽은 베르됭 조약(843년)으로
서 · 중 · 동 프랑크로 나뉘게 되는데, 이 때 저지대 국가는 스헬데 강을 중심으로 서쪽(현재의 벨기에)은 서프랑크 왕국에, 동쪽은 동프랑크 왕국에 속하게 된다.
10~13세기에는 상업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하였으며, 홀란트 백작이 북부를 중심으로 세력을 강화하였다.
독립 전쟁
14세기에 접어들어서는 부르고뉴(부르군트) 공작 지배하에 들어가고, 15세기에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6세기에 들어와 에스파냐의 지배를 받게 되었을 때에는 근대 자본주의에 눈을 뜨게 된 시민들이 우상파괴 폭동사건과 네덜란드 종교개혁
등의 끈질긴 저항으로 에스파냐 세력을 몰아내고, 1588년 공화국(국호는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으로 독립을 쟁취하기에 이른다.
공화국은 1815년에 폐지되고 네덜란드는 입헌군주제로 바뀐다.
황금시대
무역국으로 발돋움하면서 문화적으로도 황금기에 접어든다.
1588년에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이 성립되자 정치적으로 안정을 되찾은 네덜란드는 해외 진출의 황금시대를 맞이하였다(당시에는 총독이 통치했다).
17세기에는 주식회사인 연합 동인도 회사(VOC)를 설립하여 세계 제일의 무역국으로 발돋움하였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주주들의 투자를 받아서
설립된 주식회사였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남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지에 인도네시아 등의 방대한 식민지를 건설하였으며, 북미 대륙에도
뉴암스테르담(지금의 뉴욕)을 건설하기까지 하였다.
오세아니아에도 간 상인들은 뉴질랜드를 발견하기도 하였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일본에도 진출하였는데, 일본에서는 나가사키에 활동 공간을
마련해주었으며, '난학'(蘭學)이라고 불리는 네덜란드 문화를 배워가기도 했다.
이는 막부시대 일본에서 금지한 종교인 기독교의 선교를 하지 않고 무역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한편, 이 시기에 문화적으로도 황금기를 맞이하여, 렘브란트 판 레인과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등의 화가와 에라스무스, 스피노자와 같은
철학자도 배출하였다. 특히 에라스무스는 그 자신은 로마 가톨릭 사제였지만, 《우신예찬》으로 로마 가톨릭교회를 비판한 종교 개혁자였으며,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인 루터, 츠빙글리의 사상형성과 성공회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분리된 잉글랜드 종교개혁에 영향을 주었다.
네덜란드는 미국의 뉴욕 주, 뉴저지 주 등을 식민지로 삼고 인도네시아를 식민화하였다.
쇠퇴기
그러나 네덜란드를 견제하려는 영국과의 계속되는 전쟁에서 밀려나 세계의 상권을 영국에 빼앗기게 되었으며, 1793년 2월 1일, 프랑스는
네덜란드에 선전 포고하였다. 1810년에는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프랑스 영토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815년 빈 회의의 결과 네덜란드 왕국이 새로이 탄생하였다.
하지만 로마 가톨릭 국가인 벨기에와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가 합병된 왕국이었기 때문에, 1831년 벨기에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여 벨기에
왕국을 건국했다.
현대사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나치 독일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도 나치 독일의 네덜란드 점령기의 인물 중 하나이다. 전후 네덜란드는 안정된 정치와 높은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식민지 인도네시아가 종전과 동시에 독립을 선언하자, 네덜란드군이 이를 탄압하여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으로 이어졌으며,
많은 비난 끝에 국제연합의 중재로 독립을 승인하였다. 현재는 카리브 해의 네덜란드령 안틸레스와 아루바만이 식민지의 잔재로 남아 있다.
1971년에는 맥도날드 햄버거집이 네덜란드 잔담에 상륙하였다.
정치
네덜란드는 입헌군주제 국가로서 현재의 군주는 빌럼알렉산더르 국왕이다. 의원내각제를 기반으로 하는 대의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의회는 상원과 하원이 있는 양원제로 임기는 각각 4년이다. 행정부 장관은 총리에 의해 지명되며 14개의 행정부서가 있다.
현재의 총리는 마르크 뤼터이다. 최고법원과 5개의 고등법원에 각 지방법원과 간이법원이 속해해 사법권을 행사한다.
법관은 최고법원과 법무장관의 추천으로 국왕이 임명한다. 헌법재판소는 없으며 법률의 합헌 여부는 특별 법정에서 가린다.
경제
네덜란드의 경제적 특징은 역사적, 지리적으로 무역 의존도가 높다는 것이다. 무역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외국의 영향을 받기 쉬운 약점을 가지고 있다.
농업국이었던 네덜란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공업화를 추진하여 근대 공업 국가로 발전해 왔다.
1960년에 발견된 천연 가스 덕택에 에너지의 자급률이 높고 적극적인 해외 시장 개척에 노력하여 높은 경제 수준을 유지해 왔다.
로테르담, 암스테르담 등의 천혜의 항만과 수송 시설을 배경으로 국제적인 거대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했고, 석유 정제, 석유 화학, 전기 기기,
식품 가공 등이 이 나라 공업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외에 낙농과 원예도 중요한 산업이며, 치즈와 꽃은 네덜란드의 주종 산업이다.
사회, 문화
문화
회화로는 17세기 황금시대와 19세기에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뛰어난 화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17세기 초에는 유화 기법의 선구자 프란스 할스가
활약하였고, 중엽에는 유화 기법의 완성자로 일컬어지는 렘브란트 판 레인이 나타났다. 중산 계급이나 농민의 생활을 주로 그린 얀 스테인, 풍경화가
로이스달 등도 활약했다. 실내화에서는 우아한 광선을 살린 그림으로 유명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를 들 수 있으며, 19세기에는 강렬한 개성을
가진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등장한다.
네덜란드의 공예품으로는 델프트(Delft) 도자기와 붉은 색의 아름다운 마캄 도자기[모호한 표현]를 들 수 있다. 도자기는 16세기 말에 이탈리아의
기술을 받아들임으로써 시작하였고, 17세기부터 중국 등의 영향을 받아 18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스포츠
세계적인 축구강국으로 명성이 높다. FIFA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3번 달성한 축구강국이지만 아직 우승한 적은 없다.
그러나 단 한번 FIFA 랭킹 1등에 랭크된 적은 있다.
동성애자 결혼 합법화
네덜란드는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국가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경우로 네덜란드는 유럽 국가 최초로 1993년 동성 결혼을 합법으로
인정하였으며 2001년 4월 1일을 기해 동성애자 커플의 결혼과 이혼을 허용하는 법이 시행되었다.
마약 합법화 논쟁
네덜란드의 마약 정책은 마약 사범을 처벌하는 처벌 위주 정책이 아닌 중독성이 낮다고 판단되는 마약을 합법적으로 관리하는 정책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1976년, 상대적으로 중독성이 낮으며 인체에 피해가 적은 대마, 환각 버섯 등을 연성 마약(Soft Drug)으로 규정하여 5g 이하의
대마를 피우거나 소지하는 것을 허용하였으며 커피숍이라는 곳에서 대마를 피는 것을 허용하되 500g 이하만 판매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는 연성마약을 허용함으로써 헤로인과 코카인 등 이른바 중독성 마약을 가까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책이지만, 이로 인한 폐해도 있다.
바로 대마중독자 문제이다. 2008년, 네덜란드에서는 마약중독자가 줄어든 대신 대마가 주는 편안함 때문에 복용을 끊지 못하는
대마중독자가 늘어나고 있다.
종교
네덜란드는 종교개혁의 전통을 갖고 있는 개신교 국가였기 때문에, 메노나이트 교회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망명하기도 하였다.
현재도 네덜란드 기독교인의 28.3%는 개신교 신자이며, 최대교단은 네덜란드 개혁교회(NHK, 네덜란드 장로교회)이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개신교가 많지 않은 남부지역에서 영향력이 있다. 이외에 힌두교, 유대교(나치독일의 유대인 박해로 교세가 감소함), 이슬람교도들도 있다.
행정 구역
네덜란드는 12개의 주(provincie)로 나뉜다.
• 노르트브라반트 주(Noord Brabant)
• 노르트홀란트 주(Noord Holland)
• 드렌터 주(Drenthe)
• 림뷔르흐 주(Limburg)
• 오버레이설 주(Overijssel)
• 위트레흐트 주(Utrecht)
• 자위트홀란트 주(Zuid-Holland)
• 제일란트 주(Zeeland)
• 프리슬란트 주(Friesland)
• 플레볼란트 주(Flevoland)
• 헬데를란트 주(Gelderland)
• 흐로닝언 주(Groningen)
프리슬란트 주의 프리지아인은 프리지아어를 사용하여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다.
대외 관계
대한민국
네덜란드는 조선 시대에 벨테브레가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들어온 일, 헨드릭 하멜도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도착한 일 등으로 대한민국과 처음으로
만나게 된 유럽 국가이다. 네덜란드는 1949년 7월 25일,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였으며, 한국 전쟁 때에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해 대한민국을 지원하였다. (보병 1개 대대, 군함 1척) 헤이그에 대한민국 대사관(주 헤이그 국제기구 대표부 겸임)이 개설되어 있다.
서울에 주한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대(對)네덜란드 수출은 46억2698만USD, 네덜란드의 대(對)대한민국 수출은
44억2550만USD(각 2011년)에 달하여, 네덜란드는 대한민국에 있어서 제27위의 수출국이자 제25위의 수입국이다. 모두 1,771 명
(재외국민 1,663명, 시민권자 108 명)의 한민족들이 네덜란드에 거주(2010년 12월 기준)하고 있다.
한국과 네덜란드는 KLM과 대한항공의 노선으로 운항하고 있다.
프랑스
프랑스는 11월 유럽의 현존하는 정부들을 전복하려는 모든 인민들에게 원조를 제공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하였고 1793년 1월에 드디어 루이 16세를
처형하였다. 1793년 2월 1일, 프랑스는 네덜란드 공화국에 선전 포고하였다. [12]네덜란드 공화국은 잉글랜드, 오스트리아 등과 함께 제1차 대프랑스
동맹을 맺고 대항하였다. 1795년 초, 하천의 결빙으로 네덜란드의 요새의 방어력이 떨어지는 겨울철을 노려 피슈그류가 이끄는 프랑스군은 네덜란드에
대규모 공세를 펼쳤다. 네덜란드는 프랑스 혁명에 동참하고 협력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도시는 차례로 함락되어 네덜란드 총독 빌렘 5세가 도망가고,
네덜란드 함대는 접수되었다.
그리하여 네덜란드에 바타비아 공화국이 세워졌고(1795년 1월 19일), 브라반트 공국과 마스트리히트가 프랑스에 할양되었다.
브뤼메르 18일 쿠데타(1799)로 권력을 잡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그의 동생 루이를 네덜란드 왕(로데베이크 1세)에 즉위시켰다.
(1806) 1810년에는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프랑스 영토가 되기도 하였다.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출신의 막시마 소레기에타가 이 나라의 왕비이다.
이 때문에 양국간 우호가 상당히 돈독해졌다.
또한 양쪽 모두 세계적인 축구강국으로 명성이 자자하며 관련분야의 교류가 활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