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소중한 목숨과 건강에 관한 놀라운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자신이 운도 없고 복도 받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독자라면 이 책을 그냥 덮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글을 계속 읽다보면 결코 운이 없거나 복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설이지만, 오줌의 그 놀랍고 기적같은 효과 때문에 오줌으로 병을 고치고 예방하는 건강법이 국내에 공개적으로 소개된 지 14년이나 됐음에도 아직까지 대중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제도권 의료계(의사, 약사, 한의사)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에게도 혐오스럽고 더러운 민간요법으로 도외시 되고 있다.
나는 오줌요법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알고 나서부터는 처음과는 달리 오줌요법에 대해 잘 말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 기적같은 효과와 안전성에 흥분돼 마치 큰 돈벌이라도 되는 양 주위사람들에게 알리고 권유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절대로 내가 먼저 남들에게 말하거나 권하지 않는다.
상대편에서 내 신분을 알고 물어오더라도 기회가 되면 오줌요법에 관한 책이나 한번 읽어보라고 조언해 줄뿐이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오줌요법에 대해 말하거나 오줌을 마신다고 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오줌요법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아주 더럽고 혐오스럽게 생각한다.
현재 나는 만 14년째 건강신문사 사장이며 건강신문사에서 발행하고 있는‘건강신문’,‘건강가이드’,‘한국의 첨단의술’을 비롯한 여러 매체의 발행·편집인이자 중앙일보사 ‘문예중앙’의 신인상을 받으면서 등단한, 한국문단에서 공인 받은 시인이며, 의료평론가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의 최첨단의술과 의·약·한방과 의료에 대해 비교적 정확하게 알고 있는 전문가이기도 하다.
의학과 약학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도 국내에서 누구못지 않게 많이 읽은 사람이다.
또한 어떻게 명의, 명약사가 되고 환자들에게 의료인들이 절대적으로 군림할 수 있는지를 너무나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20년째 의료관련 일선현장을 취재하는 기자이기도 하다.
내가 이처럼 나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내가 오줌을 마시고 마사지를 하며 또 눈과 코에 넣기도 한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는 국내외 최첨단의술과 의료현장의 한가운데서 살고 있다.
수많은 의료관련 학술논문집과 박사학위 논문을 읽고 있다.
그러므로 적어도 이 분야에 몸 담고 일한 1984년 이후의 첨단의술과 의료에 관해서는 객관적이고 정통하게 파악하고 있는, 국내에서는 드문 현직사장이면서 기자인 사람이다.
생각이 앞서가는 독자라면 이쯤해서 이 책을 덮을지도 모른다.
그런 독자들을 위해서 분명히 밝히겠다.
나는 1999년 6월 이후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오줌을 마시기도 하고 눈과 코에 넣기도 하고 오줌으로 양치질을 하기도 한다.
가끔은 두피와 얼굴을 마사지하기도 한다.
물론 그 놀랍고 기적같은, 불가사의한 효과를 체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오줌요법이 제도권 의료계나 대중적으로 확산되지 못하는 것은 거듭 지적하지만 놀랍고 기적같은, 불가사의한 효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줌요법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면 건강에 관한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현재의 의료시스템과 제약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의사·약사·한의사 등 의료인들에게도 지금의 의약분업제도 후유증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는 의료제도, 제약산업, 의료인들의 기반 자체를 뒤흔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제약회사나 병·의원, 의사가 많지 않아도 되며 약도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용할 일이 없어진다.
약이 사실상 ‘독’이라는 것은 전문가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최근에 와서 제도권 의료인들이 난치·불치라고 명명하는 각종 성인병 등을 자신이 스스로 관리하면서 치료도 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내가 오줌요법을 알고 난 뒤 가장 의문스러웠던 것이 바로 이 점이었다.
왜 이처럼 기적같은 요법에 대해 국가나 제도권 의료계 또는 제약계가 나서지 않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결코 나설 수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현재의 의료시스템, 제약산업, 의료인들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매년 1만명 이상씩 배출되는 의사·약사·한의사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대도시는 물론 중소도시에도 이제 한 건물 건너 하나씩 병·의원·한의원 또는 약국이 들어서있다.
정부는 이를 두고 국민이 보다 쉽고 편리하게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며 오히려 업적처럼 자랑하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의료기관이 늘어나고 의료인 수가 늘어난다고 양질의 의료혜택을 보다 쉽고 편리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지금의 의료제도, 특히 잘못된 의약분업제도하에서는 결코 그렇지가 않다.
잘못된 정책 입안자들이나 정부 당국자들은 의료기관과 의료인 수로 자신들의 실패를 합리화하려고 하겠지만 국민들(환자들) 입장에서는 매년 엄청나게 늘어나는 의료비만 감수해야 한다.
이미 상업화된 의료시스템에서 의료기관과 의료인 수가 늘어나면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국민들이 또 그만큼 많은 부담을 해야 된다.
이런 현실에서 돈이 단 1원도 들지 않는 오줌요법이 확산되면 그들의 생존권 자체가 위협받는다.
한국사회의 상류층을 형성하고 있는 그들이 자신들의 생존권 자체가 뒤흔들리는 혁명적인 일에 앞장서 나설리가 만무한 것이다.
실제로 오줌요법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몇 년씩 병·의원엘 가지 않으며 약도 거의 먹지 않는다.
나도 오줌요법과 자연요법(자연의학)을 알면서부터 지난 5년간 치과에 몇 번 다녀온 것 외에는 의료기관에 간 적이 없다.
물론 감기약도 한번 안 먹었다. 감기 정도는 오줌과 생수, 운동 등으로 거뜬하게 물리칠 수 있다.
나 자신이 오줌요법의 효능을 직접 체험했지만, 오줌의 성분과 오줌요법의 약리기전, 효능과 부작용, 안전성 등에 대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실험할 수 없는 한계를 알고 난 후부터는 나 또한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일부 깨인 지식인이나 의료인, 종교인들이 선각자적인 정신으로 실천하면서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같은 이유에서 오줌요법에 대해서는 내가 지금도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불가사의한 효과를 직접 체험하고 있다는 사실만 밝힐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2004년 3월 15일 현재 제도권의료계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는 검증이니 임상이니 의학적 인정이니 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 없다.
그러나 오줌의 성분과 효과에 대해서는 전 세계 의학·제약계가 인정하면서 꾸준히 활용해 왔다.
오줌에서 추출한 항암제, 혈전용해제, 살균제, 각종 피부연고제 등은 이미 훌륭한 의약품으로 사용되고 있다.
1999년 초, 오줌요법을 실제 암·당뇨·비만 등 불·난치병의 치료에 활용하고 있는 김용태 약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5월쯤 바람 쐬러 독일이나 한번 다녀오자는 것이었다.
그에게 굳이 독일까지 갈 이유가 있느냐고 물으니, 오줌요법에 관한 세계학술대회가 독일의 한 휴양지에서 열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까짓 오줌요법에 무슨 세계학술대회인가, 하면서 건성으로 지나쳤다. 며칠 뒤에 김 약사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나는 독일의 휴양지라는 곳에 더 흥미가 끌려 휴양지나 한 번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함께 가겠다고 대답했다.
물론 유럽의 의료제도와 의료시스템도 둘러볼 생각이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최첨단의술의 한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에 오줌요법에 대해서는 대단히 불결하고 더러운 방법으로 생각했었다.
병이 깊어 현대의학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시도해 보는 구역질 나는 민간요법쯤으로만 여겼던 것이다.
신문사를 운영하면서 기자일을 겸하다보니 오줌요법에 대해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알고는 있었으나 신문에 다루거나 취재를 할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판단했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외곽에 있는 아름다운 휴양마을 게스펠더는 인간의 주거환경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 조그마한, 그러나 동화속에나 나올법한 그림같은 전원 소읍이었다.
세계오줌요법 학술대회가 열린 5일 동안 나는 김용태 약사와 같은 방을 쓰게 됐다.
함께 갔으니 방을 같이 쓰는 것이 당연했지만 김 약사가 오줌을 마신다는 사실이 더럽고 혐오스러워 함께 있는 내내 불편했다. 구역질이 나는 것 같았고 사람 자체가 추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독일행 비행기안에서도 나를 제외한 일행들은 수시로 종이컵을 들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오줌을 받아 마셨다.
장시간(약 18시간)비행에서 오는 피로와 낮과 밤이 바뀌는 시차로 인한 불면증을 오줌 몇 잔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는 별난 사람들의 기행쯤으로 생각하며 기자 입장에서 언젠가 이들의 모습을 증언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호텔방 안에서 김 약사는 오줌요법에 여전히 극도의 거부감과 혐오감을 갖고 있는 나를 의식해서인지 별다른 강요나 설득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욕실에 있는 컵도 내가 사용하는 것을 분명히 구분해 놓았다. 혹시나 김 약사가 오줌을 받아 마시던 컵을 내가 사용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 였다. 이튿날부터 시작된 세계 오줌요법 학술대회장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오줌요법신봉자들의 모습도 놀라웠고 그렇게 수백 명이 자발적으로, 그것도 적게는 수십 만원에서 많게는 수백 만원의 돈을 들여가며 오줌요법 학술대회에 참석한 것을 보고 나는 내 편견과 무지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기회가 되면 이런 모습도 상세하게 기록할 생각이다)
그러나 오줌요법은 물론 오줌 자체에도 여전히 관심이 없었던 터라 학술대회 행사에는 참석하는 둥 마는 둥 건성이었다.
내 관심사는 아름다운 전원휴양마을인 게스펠더와 독일의 의료제도 및 의료시스템에 있었다.
김용태 약사는 학술대회 행사장에서 오줌을 사용하는 여러 도구들을 이것저것 구입하더니만 이튿날부터는 오줌을 코에도 넣고(코킹) 귀와 눈에 넣기도 하면서 점점 더 오줌요법 신봉자가 됐다.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현지에서 합류한 성균관대학교 생명공학과 강국희 교수도 열렬한 오줌요법 신봉자였다.
강 교수는 일본 동경대학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 지식인이었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잦은 장거리 운전, 정신적인 노동(책과 신문제작)으로 당시 극도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던 나는 (이 부분도 나중에 자세히 증언할 생각이다.
이러다가 죽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나빴었다) 독일에서의 7박 8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도착하는 날 곧바로 동네에 있는 동신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오후 4시쯤 집에 도착해서 8시쯤 응급실로 감).
그 당시 한두 달을 전후해 10번 이상을 응급실로 실려갔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었다.
원인불명의 극심한 피로감과 금방이라도 쓰러지거나 죽을 것 같은 공포감, 사람을 미치게 할 만큼의 불면증, 머리가 빠개질 것 같은 두통이 당시의 내 증상이었다.
눈은 퀭했고 얼굴도 말이 아니었다. 몸무게도 60㎏정도까지 줄어들었다. (현재 72∼73㎏) 어느 날은 7시쯤 동네응급실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9시쯤 집으로 왔다가 다시 증세가 나타나 급기야 밤 11시쯤 119 구급대에 실려가 연세의료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기도 했다.
응급실에서의 응급처치라야 고작 5% 포도당과 신경안정제 투여가 전부였다.
그렇게 포도당을 맞으면서 응급실 침대에 누워 한 30분쯤 자고나면 또 견딜만해서 집으로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여전히 원인불명이었다.
명색이 건강신문사 사장이라면서 자신의 건강관리 하나 제대로 못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그때 나는 이미 몇 년째 서울 은평구 일대에서 명약국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서울 은평구 응암동 대림시장안에 있던 도미당 약국의 약을 습관적으로 거의 매일 먹고 있었으며, 환자가 미어터지는(의원인데도 보통 1∼2시간 기다려야 된다)은평구 응암동 김혜옥 내과에도 자주 들락거렸다.
피검사, 초음파, 위내시경, 소변검사, 기타 임상병리검사 등을 했지만 여전히 원인불명이었다.
최저 혈압이 40을 간신히 넘고 맥박도 겨우 40회를 넘기는데도 모두들 신경성이라고 하며, 스트레스를 덜 받고 과로하지 말라고만 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생활, 그것도 신문사를 경영하면서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응급실에서 링겔(포도당 5∼10%) 한 병을 맞으며 한잠 자고 나면 불안하거나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은 사라졌다.
이따금 포도당 외에 진정제를 함께 맞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 대장항문병 전문이라는 ‘대항병원’에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기도 하고 갑상선 질환일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갑상선 질환의 최고 전문가라는 이종석 내과에 가서 갑상선 정밀검사를 받기도 했다.
또 심장에 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해 연세의료원 심혈관센터에서 24시간 심장을 체크하는 심장정밀검사도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원인을 알 수가 없었으며 증상에 차도가 없었다.
견디다 못해 문단의 선배이기도 한 남서울병원의 신승철 원장(정신과전문의)에게 부탁해 공황장애 증상의 약을 먹기 시작했다.
6개월에서 1∼2년 정도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1개월 분으로 2∼3개월간 나누어 복용했다.
그런 상황에서 독일을 갔었으니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에서는 나왔지만 여전히 극심한 만성피로 증후군과 불면증, 두통, 공포감, 쇠약감 등의 증상은 계속됐다.
그런 상황에서 독일을 갔었으니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에서는 나왔지만 여전히 극심한 만성피로 증후군과 불면증, 두통, 공포감, 쇠약감 등의 증상은 계속됐다.
그러던 중에 오줌요법연구단체인 한국 MCL연구회 김정희 회장의 소개로 한국자연건강학회 김태수 회장을 만났다.
나는 김 회장을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자연요법을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대 생물학과와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석사학위까지 받은 분과 국회의원까지 지내고 또 서울대 영문과를 나온 사람이 무지해서 자연요법을 실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태수 회장은 배설을 잘 시키고 생수를 많이 마시며 오줌요법을 실천하면서 허블화이버를 복용해 보라고 권했다.
모든 비용이 한달에 1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3개월 정도 지나면 한 달에 2∼3만원 정도로 그 이전의 치료비나 기타 경비 등과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됐다. 나는 김태수 회장으로부터 그 외 다른 자연요법(나는 자연의학이라고 한다)도 여러 가지를 전수받았다.
1999년 5월 하순경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오줌을 마시기 시작했다.
워낙에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던 터라 정확히 오줌을 처음 마시던 시기와 상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오줌을 마시면서 자연요법을 실천했다.
나는 철저한 첨단의학(현대의학) 신봉자였지만, 첨단의학으로 내 몸과 건강을 회복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오줌요법과 자연의학의 실천결과는 기적 그 자체였다. 내가 시인이고 기자이지만 그 이상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동안 나는 손발이 싸늘하도록 차서 아내로부터 수족냉증이라는 핀잔을 들어왔고, 병적으로 유독 추위를 많이 탔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족냉증이 없어졌으며, 더이상 추위를 타지도 않는다. 심지어 한겨울에 웃통을 모두 벗고 잠을 자기도 한다. 그 이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다.
한 때는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하루종일 나오는 소변을 모두 마신 적도 있지만 보통은 커피 반잔 정도의 양만큼 마신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저 한 모금만 살짝 마시기도 하는데, 오줌을 마시고 한 30분쯤 지나면 손발이 따뜻해지면서 온몸 (특히 손, 발)의 혈액순환이 기가 막히게 잘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요즘은 내가 생각해도 건강이 놀라울 정도로 좋아져 매일처럼 마시지는 않지만 오줌 맛으로 몸 컨디션이나 상태를 체크한다.
오줌 맛이 거부감이 없을 때는 몸 상태도 최상이다.
그러나 오줌 맛이 쓰거나 짜면 몸이 피로하거나 상태가 좋지 않다.
몸도 여기저기 가렵고 찌뿌둥하다.
그럴때면 나는 나대로 피에 독소가 많이 있거나 탁해진 때문으로 해석하고 생수를 많이 마시는데 그러면 곧 좋아진다. 가끔씩 오줌에 눈을 담그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눈이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다.
음식은 특별히 가리거나 주의하지는 않지만 옛날처럼 육류나 우유는 잘 먹지 않는다. 특히 우유는 거의 먹지 않는다.
지난 20여 년 동안 체중을 늘리기 위해 고기와 우유를 날마다 먹는 등 무척 노력을 했었지만 허사였다.
그런데 배변에 신경쓰면서 생수와 오줌요법, 자연의학을 실천하고부터는 놀랍게도 체중이 10㎏ 이상 늘었다.
지금은 오히려 체중이 73㎏ 이상 넘지 않도록 조절하고 있는 실정이다.
체중이 73㎏ 전후가 되면서 몸 컨디션이 최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건강이 회복된 후부터 나이는 40대 중반을 넘었지만 육체는 몸으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자신 있었던 스무살로 돌아간 것 같다.
20대, 30대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건강하고 정력적이다.
지금 나는 인생에서 가장 건강하고 활력에 찬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주변사람들이 예전에는 늘 만성피로에 찌들어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는데 요즘은 강인한 모습이라고 말한다.
축구를 좋아해 동네 축구동호회에 가입해 4년째 일주일에 서너번씩 공을 차고 있다.
20대부터 60대까지 약 80여명의 회원이 있는데 체력적으로는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마흔일곱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별명이 야생마이다.
일요일에는 보통 한두시간씩 게임을 한다.
지난해에는 고교동문체육대회에 가서 20년 가까이 어린 후배들과 운동장을 뛰면서 1위를 해 부상으로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요즈음은 건강신문사 축구단을 만들어 매주 전국을 돌며 축구를 즐기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오줌과 자연의학 덕분이라는 것을 나는 분명히 증언한다.
오줌요법을 알고 나서 내가 경영하는 신문사에서 오줌요법에 관한 책을 여덟 권이나 출간했다. 자연요법(자연의학)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출간했다.
그동안 오줌을 마시는 대학교수, 의사, 약사, 한의사, 종교인 등 선각자적인 사회지도층 인사들도 여러명 만났다.
몇년전 북으로 갔던 미전향 장기수중의 한 사람은 북한에 가면 오줌요법을 정책적으로 확산시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기수 확신범으로 15년간 한국의 감옥에 있던 사람이었는데 오줌요법으로 건강관리를 했었다는 것이었다.
북한에서는 상당한 지도자급 인사였던 그는 북한의 여러 실정을 감안할 때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 오줌요법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실용적인 건강관리법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오줌요법에 관한 취재 차 그를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북으로 가게 되면 나이가 70이 넘은 만큼 이념이나 사상보다는 오줌요법을 북한에 전파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줌에 관한 국내 언론의 태도도 아직까지는 편견적이다. 별로 진지하게 다루지 않고 화제성이나 기행 정도로만 취급하고 있다.
내가 이처럼 장황하게 오줌요법과 내가 오줌요법을 실천하게 된 배경을 늘어놓는 것은 현대의학의 한계와 그 한계를 잘 인정하려하지 않는 현대의학자들 때문이다.
첨단의학의 한 가운데 있던 내가 그 첨단의학의 한계와 비겁함을 절감했다면 현대의학의 신봉자들은 내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난치성, 불치성 혹은 심인성, 신경성이란 말로 또 얼마나 많은 환자들을 현혹할 것인가.
왜 원인이 없는가?
치료방법이 없는가?
자신들이 모른다고 원인불명, 치료불가라는 말로 무지와 무식을 숨기려 하고 있는가?.
어떻게 첨단의술이고 신치료술이 되는가.
소위 제도권 의료계가 주장하고 있는 의학적 검증을 받는 과정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첨단의술과 신치료술이라는 미명아래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실험동물이 되고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는가.
의료인들은 왜 자신들이 악성 암에 걸리면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를 거부하며 자연의학에 매달리려 하는가.
난치, 불치성 성인병에 걸리면 자연의학을 찾아 헤매는가.
나는 지난 20여년간 수많은 최첨단 수술과 치료, 처치, 진단 장면을 눈으로 보아오면서 인간의 항상성 즉 자연치유력과 복원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언젠가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나는 내가 보고 듣고 확인한 사실을 기록할 것이다.
첨단의술의 눈부신 발전과 그 무한한 혜택을 결코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 않은 기적같은 효과를 보이고 있는 자연의학에 대해서도 현대의학자들이 무조건적으로 배타적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보다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2004년 3월 15일 윤 승 천 윤승천:약력
▲ 대학에서 문학을 대학원에서 병원 행정학을 공부했다. ▲ 대학 재학중 전국 7개 대학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대학가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 1984년 대학 4학년때 등단하여 1991년 조선일보와 한국문학, 문예중앙 등 여러 문예지에 작품발표를 하면서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1990년 중앙일보사에서 세번째 시집을 펴낸 이후 지금까지 단 한편의 글도 쓰지 않고 있다. ▲ 지난 20년 동안 전국각지의 수많은 명의·명한의사·명약사 등과 자연요법(민간요법)전문가들을 만나면서 비법·비방 등을 기록해 오고 있다. ▲ 축구를 즐기는 시인, 의료평론가, 언론·출판인, 자연의학자이기도 하다.
출처 : [기타] 건강신문사(02/305-6077) 기적을 일으키는 오줌요법 본문중에서
제가 알고있는 타 오줌카페에서 퍼왔습니다..
초보자도 알기쉽게 일목요연한거같아서 퍼왔으니 많은 도움 되시기 바랍니다...
*마시기
오줌을 유리컵이나 도자기에 받아서 마신다. 요료법의 요령은 처음에 나오는 오줌 두 숫갈
정도를 버리고중간뇨를 받아서 그대로 마신다. 냄새 때문에 냉장고에 넣어서 식혀서 마시는
사람도 있으나 가능한 받자마자 마시는 것이 좋다. 처음 마시는 양은 50cc 정도(소주 1잔)
로 하다가 익숙해지면 150~200cc 정도(맥주잔 1컵)로늘린다. 하루의 오줌중에서 아침 첫
오줌에 유용한 호르몬이 많이 들어 있어서 가장 좋다.
건강한 사람이 예방목적으로 할 때에는 매일 한번이면 족하고 아침 첫 오줌을 마시면 된다.
환자는 아침 첫 오줌을 비롯하여 여러번 마실수록 좋다.
오줌 마시기를 시작하는 경우엔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약을 먹더라도 마음
이 부정적이면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이 오줌을 더러운 것으로 생각하거나 억지로 마
시는 것은 좋지 않다.
내 몸에서 이렇게 훌륭한 생명수가 끊임없이 나오는 생명의 신비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마셔야 효과가 더 좋다.
*비위가 약할 경우 마시는 방법
가. 칵테일요료법
처음에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사람은 커피를 적당히 타서 마시면 냄새도 없어지고 색도 마치
콜라처럼변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마시는 것을 계속할 필요는 없으며 처음에 몇 번만 시도
해 보고 그 다음에는 순수한 상태로 자연스럽게 마시도록 하는 것이 좋다. (강국희 교수가 개발한 방법)
나. 수용성 분말 프로폴리스 혹은 포도즙을 요에 타서 마시면 오줌냄새도 없어지고 상승효과로 인하여 효과가 배로 빨라진다.
다. 오줌에 바이오미네랄 수를 5~10cc 타서 마시면 물맛으로 변하여 먹기 쉽게 된다.
*요맛사지
오줌을 받아서 마시고 나머지로 손 바닥에 묻혀 얼굴, 목, 머리, 발 , 온몸을 문지르고 20분 정도 있다가 냉수로 샤워한다. 벌레 물린 곳, 무좀, 건버짐,비듬,여드름,알레르기 등과 같이 피부밖에서 바르는데는 오래 숙성시킨 오줌, 적어도 4일 이상 묵힌 것이 효과적이다.
*내복용으로 할 때는 절대적으로 바로나온 오줌을 마셔야 한다는 것 주의하세요.
*요관장
오줌을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사람은 관장을 한다. 음식물을 통과시키는 소화관의 내부점막은 마치 외부의 피부와 같은 보호기능과 흡수기능을 갖고 있으며 그외에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오염된 환경물질로부터 몸을보호하기 위하여 특별한 임파조직이 분포되어 있고 전신의 면역체계와 연결이 되어 있다.
외부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 인후부는 이물질이나 세균의 혼입에 대비하여 임파조직이 매우 발달되어 있고거기에는 많은 면역담당세포가 진을 치고 있어서 해로운 물질이 들어오면 처리해 버린다.
또 대장에도 세균이 많이 서식하므로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임파조직이 잘 발달되어 있고 면역담당세표가 진을 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대장 벽에는 숫자상으로나 종류로 보아도 뇌에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신경세포가 뻗혀 있고 그것이 가지를 쳐서 복잡한 신경회로망을 구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소화기계의 신경조직을 최근에는 뇌의 척수와 같은 중추신경계에 비해 "창자의 신경계"라 부르고 있다. 물론 뇌로부터의 지령도 전해지겠으나 간단한 것이라면
창자 신경계의 내부에서 정보를 처리하고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오줌을 입으로 마시면 인후부에 있는 면역세포를 자극하여 체내의 세포가 활성화되는 것과 같이 오줌을 항문으로 넣어주면 오줌이 창자 안에 고여 있는시간이 길기 대문에 입으로 마시는 경우와 비슷한 효과를 나타낸다.
아주 소량 5~10g의 오줌으로 충분하고 여기에 수용성 프로폴리스나 유산균을 혼합하여 관장을 하여도 좋다.
이 방법은 도저히 오줌을 마실 수 없는 사람이나 아기들에게 권할 수 있는 방법이다.
또 치질환자에게는 이 방법이 가장 직접적으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실제로 여러명의 치질환자, 탈홍,치루 중증환자들이 항문으로 오줌을 넣어 치료하였다.
항문으로 오줌을 넣을 경우 시판되고 있는 관장기 또는 주사기를 이용하면 된다.
항문으로 오줌을 집어 넣으면 창자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서 구강으로 마시는 것보다 유기체의 흡수는 훨씬 쉽다.
독일인 의사 Martin Krebs박사(1942)는 오줌을 내복약, 외용약,주사, 관장에 사용하였으며 관장하는 요령은,
신생아에게 3~5ml, 어린이 5~15ml, 성인 5~30ml를 하루에 1~2회 실시한다.
특히 치질환자에게는 이 방법이 직접적으로 효력을 발휘한다.
*요단식
요료법의 최고경지는 요단식이다.
쾌적한 환경에서 명상을 하면서 오줌과 생수만을 마시면서 식사를 하지 않고 금식하는 것이다.
질병의 치료효과도 매우높아지고 몸안의 노폐물을 씻어내는데 매우 좋다.
요단식의 요령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경험자의 지도를 받으면서 하는 것이 좋다.
단식이 끝난 후의 회복기에 음식조절이 매우 중요하다. 될 수 있으면 여러사람이 모여서 하는 것이 좋다.
매주 하루(24시간)만의 단식으로도 우리 몸에 쌓인 노폐물을 제거시키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최상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1년에 7~10일씩의 단식을 3번씩만 하면 관절염, 근육부분의 노폐물 찌꺼기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
단식에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무리하고 무계획적인 단식은 오히려 건강을 헤칠 수도 있다.
단식의 요령은 여러방법이 있다. 단식을 7일 한다고 가정하면 예비단식(감식기간), 본단식 7일, 보식기간(증식기간)7일로 하여 21일간 음식조절을 해야한다.
예비단식 7일은 8부 죽(물 20% + 밥 80%)에서부터 시작하여 7부, 6부 등 점점 묽은 미음으로 밥의 양을 줄여 나가야 하며 보식기간엔는 그 반대로 서서히 밥의 양을 늘여야 한다.
*기타응용-눈,귀 ,코, 양치질
아침에 오줌울 받아서 마시고 나머지로 눈,코, 귀에 넣으며 양치질도 한다.
치약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샤워나 목욕할 때에도 오줌을 받아서 눈,코 귀에 넣고
나머지로 얼굴, 목,머리, 항문,사타구니,팔, 다리,배꼽, 생식기 등에 전신 맛사지를 하고
30분 정도 있다가 샤워한다.
이쯤되면 오줌에 대한 혐오감은 완전히 없어지고 매끌매끌한 오줌이 몸에 닿으면 신비한 생명의 에너지를 받는 다는 느낌이 생긴다.
맛이 좋은 오줌을 생산하기 위하여 음식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많이 먹으면 오줌의 색이 연두색이고 투명하며 냄새도 향기롭고 맛이 짜지 않아서 부드러워진다.
*약과 병용할 경우
요료법을 하는 사람이 병원이 약을 함께 복용할 경우에 오줌으로 약이 배설되어 염려하는
사람이 있는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약은 체내에서 이미 상당시간이 지나 소화된 상태이므로 오줌으로 배설되는 것은 이미 약 성분으로서의 기능이 상실된 것이다.
고혈압인 사람이 혈압약을 복용하면서 요료법을 함께 실시하면 약과의 상승작용으로 혈압이
더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일이 있으므로 마시는 양을 50cc 정도로 줄이는 것이 좋다.
혈압의 높고낮은 정도에 따라서 약의 양을 조절하며 서서히 약을 끊도록 하는 것이 좋다. 다른 질병이 있는 경우에도 갑자기 약을 끊지 말고 상태를 보아가면서 서서히 약을 줄이다가 끊는 것이 좋다
*암치료 집중 요료법
암에 걸린 사람은 다음과 같이 집중적인 요료법을 실시하여야 한다.
암말기 환자가 요료법을 한다고 100%치료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신념을 가지고 적극적인 생각으로 실천하면 몸의 전체적인 건강상태가 호전되어 식사를 할 수 있게 되고 기운이 생겨나서 일어나고 앉을 수도 있게 되며 걸을 수도 있게 된다.
물론 요료법만으로 말기암을 치료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반드시 자연식-과일,과일즙,야채나 야채즙(녹즙)-을 하루에 500~1000cc정도 마셔야 한다.
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소중한 목숨과 건강에 관한 놀라운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자신이 운도 없고 복도 받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독자라면 이 책을 그냥 덮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글을 계속 읽다보면 결코 운이 없거나 복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설이지만, 오줌의 그 놀랍고 기적같은 효과 때문에 오줌으로 병을 고치고 예방하는 건강법이 국내에 공개적으로 소개된 지 14년이나 됐음에도 아직까지 대중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제도권 의료계(의사, 약사, 한의사)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에게도 혐오스럽고 더러운 민간요법으로 도외시 되고 있다.
나는 오줌요법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알고 나서부터는 처음과는 달리 오줌요법에 대해 잘 말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 기적같은 효과와 안전성에 흥분돼 마치 큰 돈벌이라도 되는 양 주위사람들에게 알리고 권유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절대로 내가 먼저 남들에게 말하거나 권하지 않는다.
상대편에서 내 신분을 알고 물어오더라도 기회가 되면 오줌요법에 관한 책이나 한번 읽어보라고 조언해 줄뿐이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오줌요법에 대해 말하거나 오줌을 마신다고 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오줌요법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아주 더럽고 혐오스럽게 생각한다.
현재 나는 만 14년째 건강신문사 사장이며 건강신문사에서 발행하고 있는‘건강신문’,‘건강가이드’,‘한국의 첨단의술’을 비롯한 여러 매체의 발행·편집인이자 중앙일보사 ‘문예중앙’의 신인상을 받으면서 등단한, 한국문단에서 공인 받은 시인이며, 의료평론가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의 최첨단의술과 의·약·한방과 의료에 대해 비교적 정확하게 알고 있는 전문가이기도 하다.
의학과 약학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도 국내에서 누구못지 않게 많이 읽은 사람이다.
또한 어떻게 명의, 명약사가 되고 환자들에게 의료인들이 절대적으로 군림할 수 있는지를 너무나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20년째 의료관련 일선현장을 취재하는 기자이기도 하다.
내가 이처럼 나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내가 오줌을 마시고 마사지를 하며 또 눈과 코에 넣기도 한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는 국내외 최첨단의술과 의료현장의 한가운데서 살고 있다.
수많은 의료관련 학술논문집과 박사학위 논문을 읽고 있다.
그러므로 적어도 이 분야에 몸 담고 일한 1984년 이후의 첨단의술과 의료에 관해서는 객관적이고 정통하게 파악하고 있는, 국내에서는 드문 현직사장이면서 기자인 사람이다.
생각이 앞서가는 독자라면 이쯤해서 이 책을 덮을지도 모른다.
그런 독자들을 위해서 분명히 밝히겠다.
나는 1999년 6월 이후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오줌을 마시기도 하고 눈과 코에 넣기도 하고 오줌으로 양치질을 하기도 한다.
가끔은 두피와 얼굴을 마사지하기도 한다.
물론 그 놀랍고 기적같은, 불가사의한 효과를 체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오줌요법이 제도권 의료계나 대중적으로 확산되지 못하는 것은 거듭 지적하지만 놀랍고 기적같은, 불가사의한 효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줌요법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면 건강에 관한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현재의 의료시스템과 제약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의사·약사·한의사 등 의료인들에게도 지금의 의약분업제도 후유증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는 의료제도, 제약산업, 의료인들의 기반 자체를 뒤흔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제약회사나 병·의원, 의사가 많지 않아도 되며 약도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용할 일이 없어진다.
약이 사실상 ‘독’이라는 것은 전문가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최근에 와서 제도권 의료인들이 난치·불치라고 명명하는 각종 성인병 등을 자신이 스스로 관리하면서 치료도 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내가 오줌요법을 알고 난 뒤 가장 의문스러웠던 것이 바로 이 점이었다.
왜 이처럼 기적같은 요법에 대해 국가나 제도권 의료계 또는 제약계가 나서지 않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결코 나설 수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현재의 의료시스템, 제약산업, 의료인들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매년 1만명 이상씩 배출되는 의사·약사·한의사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대도시는 물론 중소도시에도 이제 한 건물 건너 하나씩 병·의원·한의원 또는 약국이 들어서있다.
정부는 이를 두고 국민이 보다 쉽고 편리하게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며 오히려 업적처럼 자랑하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의료기관이 늘어나고 의료인 수가 늘어난다고 양질의 의료혜택을 보다 쉽고 편리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지금의 의료제도, 특히 잘못된 의약분업제도하에서는 결코 그렇지가 않다.
잘못된 정책 입안자들이나 정부 당국자들은 의료기관과 의료인 수로 자신들의 실패를 합리화하려고 하겠지만 국민들(환자들) 입장에서는 매년 엄청나게 늘어나는 의료비만 감수해야 한다.
이미 상업화된 의료시스템에서 의료기관과 의료인 수가 늘어나면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국민들이 또 그만큼 많은 부담을 해야 된다.
이런 현실에서 돈이 단 1원도 들지 않는 오줌요법이 확산되면 그들의 생존권 자체가 위협받는다.
한국사회의 상류층을 형성하고 있는 그들이 자신들의 생존권 자체가 뒤흔들리는 혁명적인 일에 앞장서 나설리가 만무한 것이다.
실제로 오줌요법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몇 년씩 병·의원엘 가지 않으며 약도 거의 먹지 않는다.
나도 오줌요법과 자연요법(자연의학)을 알면서부터 지난 5년간 치과에 몇 번 다녀온 것 외에는 의료기관에 간 적이 없다.
물론 감기약도 한번 안 먹었다. 감기 정도는 오줌과 생수, 운동 등으로 거뜬하게 물리칠 수 있다.
나 자신이 오줌요법의 효능을 직접 체험했지만, 오줌의 성분과 오줌요법의 약리기전, 효능과 부작용, 안전성 등에 대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실험할 수 없는 한계를 알고 난 후부터는 나 또한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일부 깨인 지식인이나 의료인, 종교인들이 선각자적인 정신으로 실천하면서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같은 이유에서 오줌요법에 대해서는 내가 지금도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불가사의한 효과를 직접 체험하고 있다는 사실만 밝힐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2004년 3월 15일 현재 제도권의료계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는 검증이니 임상이니 의학적 인정이니 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 없다.
그러나 오줌의 성분과 효과에 대해서는 전 세계 의학·제약계가 인정하면서 꾸준히 활용해 왔다.
오줌에서 추출한 항암제, 혈전용해제, 살균제, 각종 피부연고제 등은 이미 훌륭한 의약품으로 사용되고 있다.
1999년 초, 오줌요법을 실제 암·당뇨·비만 등 불·난치병의 치료에 활용하고 있는 김용태 약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5월쯤 바람 쐬러 독일이나 한번 다녀오자는 것이었다.
그에게 굳이 독일까지 갈 이유가 있느냐고 물으니, 오줌요법에 관한 세계학술대회가 독일의 한 휴양지에서 열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까짓 오줌요법에 무슨 세계학술대회인가, 하면서 건성으로 지나쳤다. 며칠 뒤에 김 약사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나는 독일의 휴양지라는 곳에 더 흥미가 끌려 휴양지나 한 번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함께 가겠다고 대답했다.
물론 유럽의 의료제도와 의료시스템도 둘러볼 생각이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최첨단의술의 한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에 오줌요법에 대해서는 대단히 불결하고 더러운 방법으로 생각했었다.
병이 깊어 현대의학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시도해 보는 구역질 나는 민간요법쯤으로만 여겼던 것이다.
신문사를 운영하면서 기자일을 겸하다보니 오줌요법에 대해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알고는 있었으나 신문에 다루거나 취재를 할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판단했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외곽에 있는 아름다운 휴양마을 게스펠더는 인간의 주거환경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 조그마한, 그러나 동화속에나 나올법한 그림같은 전원 소읍이었다.
세계오줌요법 학술대회가 열린 5일 동안 나는 김용태 약사와 같은 방을 쓰게 됐다.
함께 갔으니 방을 같이 쓰는 것이 당연했지만 김 약사가 오줌을 마신다는 사실이 더럽고 혐오스러워 함께 있는 내내 불편했다. 구역질이 나는 것 같았고 사람 자체가 추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독일행 비행기안에서도 나를 제외한 일행들은 수시로 종이컵을 들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오줌을 받아 마셨다.
장시간(약 18시간)비행에서 오는 피로와 낮과 밤이 바뀌는 시차로 인한 불면증을 오줌 몇 잔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는 별난 사람들의 기행쯤으로 생각하며 기자 입장에서 언젠가 이들의 모습을 증언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호텔방 안에서 김 약사는 오줌요법에 여전히 극도의 거부감과 혐오감을 갖고 있는 나를 의식해서인지 별다른 강요나 설득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욕실에 있는 컵도 내가 사용하는 것을 분명히 구분해 놓았다. 혹시나 김 약사가 오줌을 받아 마시던 컵을 내가 사용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 였다. 이튿날부터 시작된 세계 오줌요법 학술대회장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오줌요법신봉자들의 모습도 놀라웠고 그렇게 수백 명이 자발적으로, 그것도 적게는 수십 만원에서 많게는 수백 만원의 돈을 들여가며 오줌요법 학술대회에 참석한 것을 보고 나는 내 편견과 무지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기회가 되면 이런 모습도 상세하게 기록할 생각이다)
그러나 오줌요법은 물론 오줌 자체에도 여전히 관심이 없었던 터라 학술대회 행사에는 참석하는 둥 마는 둥 건성이었다.
내 관심사는 아름다운 전원휴양마을인 게스펠더와 독일의 의료제도 및 의료시스템에 있었다.
김용태 약사는 학술대회 행사장에서 오줌을 사용하는 여러 도구들을 이것저것 구입하더니만 이튿날부터는 오줌을 코에도 넣고(코킹) 귀와 눈에 넣기도 하면서 점점 더 오줌요법 신봉자가 됐다.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현지에서 합류한 성균관대학교 생명공학과 강국희 교수도 열렬한 오줌요법 신봉자였다.
강 교수는 일본 동경대학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 지식인이었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잦은 장거리 운전, 정신적인 노동(책과 신문제작)으로 당시 극도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던 나는 (이 부분도 나중에 자세히 증언할 생각이다.
이러다가 죽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나빴었다) 독일에서의 7박 8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도착하는 날 곧바로 동네에 있는 동신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오후 4시쯤 집에 도착해서 8시쯤 응급실로 감).
그 당시 한두 달을 전후해 10번 이상을 응급실로 실려갔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었다.
원인불명의 극심한 피로감과 금방이라도 쓰러지거나 죽을 것 같은 공포감, 사람을 미치게 할 만큼의 불면증, 머리가 빠개질 것 같은 두통이 당시의 내 증상이었다.
눈은 퀭했고 얼굴도 말이 아니었다. 몸무게도 60㎏정도까지 줄어들었다. (현재 72∼73㎏) 어느 날은 7시쯤 동네응급실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9시쯤 집으로 왔다가 다시 증세가 나타나 급기야 밤 11시쯤 119 구급대에 실려가 연세의료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기도 했다.
응급실에서의 응급처치라야 고작 5% 포도당과 신경안정제 투여가 전부였다.
그렇게 포도당을 맞으면서 응급실 침대에 누워 한 30분쯤 자고나면 또 견딜만해서 집으로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여전히 원인불명이었다.
명색이 건강신문사 사장이라면서 자신의 건강관리 하나 제대로 못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그때 나는 이미 몇 년째 서울 은평구 일대에서 명약국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서울 은평구 응암동 대림시장안에 있던 도미당 약국의 약을 습관적으로 거의 매일 먹고 있었으며, 환자가 미어터지는(의원인데도 보통 1∼2시간 기다려야 된다)은평구 응암동 김혜옥 내과에도 자주 들락거렸다.
피검사, 초음파, 위내시경, 소변검사, 기타 임상병리검사 등을 했지만 여전히 원인불명이었다.
최저 혈압이 40을 간신히 넘고 맥박도 겨우 40회를 넘기는데도 모두들 신경성이라고 하며, 스트레스를 덜 받고 과로하지 말라고만 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생활, 그것도 신문사를 경영하면서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응급실에서 링겔(포도당 5∼10%) 한 병을 맞으며 한잠 자고 나면 불안하거나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은 사라졌다.
이따금 포도당 외에 진정제를 함께 맞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 대장항문병 전문이라는 ‘대항병원’에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기도 하고 갑상선 질환일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갑상선 질환의 최고 전문가라는 이종석 내과에 가서 갑상선 정밀검사를 받기도 했다.
또 심장에 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해 연세의료원 심혈관센터에서 24시간 심장을 체크하는 심장정밀검사도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원인을 알 수가 없었으며 증상에 차도가 없었다.
견디다 못해 문단의 선배이기도 한 남서울병원의 신승철 원장(정신과전문의)에게 부탁해 공황장애 증상의 약을 먹기 시작했다.
6개월에서 1∼2년 정도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1개월 분으로 2∼3개월간 나누어 복용했다.
그런 상황에서 독일을 갔었으니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에서는 나왔지만 여전히 극심한 만성피로 증후군과 불면증, 두통, 공포감, 쇠약감 등의 증상은 계속됐다.
그런 상황에서 독일을 갔었으니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에서는 나왔지만 여전히 극심한 만성피로 증후군과 불면증, 두통, 공포감, 쇠약감 등의 증상은 계속됐다.
그러던 중에 오줌요법연구단체인 한국 MCL연구회 김정희 회장의 소개로 한국자연건강학회 김태수 회장을 만났다.
나는 김 회장을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자연요법을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대 생물학과와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석사학위까지 받은 분과 국회의원까지 지내고 또 서울대 영문과를 나온 사람이 무지해서 자연요법을 실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태수 회장은 배설을 잘 시키고 생수를 많이 마시며 오줌요법을 실천하면서 허블화이버를 복용해 보라고 권했다.
모든 비용이 한달에 1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3개월 정도 지나면 한 달에 2∼3만원 정도로 그 이전의 치료비나 기타 경비 등과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됐다. 나는 김태수 회장으로부터 그 외 다른 자연요법(나는 자연의학이라고 한다)도 여러 가지를 전수받았다.
1999년 5월 하순경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오줌을 마시기 시작했다.
워낙에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던 터라 정확히 오줌을 처음 마시던 시기와 상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오줌을 마시면서 자연요법을 실천했다.
나는 철저한 첨단의학(현대의학) 신봉자였지만, 첨단의학으로 내 몸과 건강을 회복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오줌요법과 자연의학의 실천결과는 기적 그 자체였다. 내가 시인이고 기자이지만 그 이상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동안 나는 손발이 싸늘하도록 차서 아내로부터 수족냉증이라는 핀잔을 들어왔고, 병적으로 유독 추위를 많이 탔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족냉증이 없어졌으며, 더이상 추위를 타지도 않는다. 심지어 한겨울에 웃통을 모두 벗고 잠을 자기도 한다. 그 이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다.
한 때는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하루종일 나오는 소변을 모두 마신 적도 있지만 보통은 커피 반잔 정도의 양만큼 마신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저 한 모금만 살짝 마시기도 하는데, 오줌을 마시고 한 30분쯤 지나면 손발이 따뜻해지면서 온몸 (특히 손, 발)의 혈액순환이 기가 막히게 잘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요즘은 내가 생각해도 건강이 놀라울 정도로 좋아져 매일처럼 마시지는 않지만 오줌 맛으로 몸 컨디션이나 상태를 체크한다.
오줌 맛이 거부감이 없을 때는 몸 상태도 최상이다.
그러나 오줌 맛이 쓰거나 짜면 몸이 피로하거나 상태가 좋지 않다.
몸도 여기저기 가렵고 찌뿌둥하다.
그럴때면 나는 나대로 피에 독소가 많이 있거나 탁해진 때문으로 해석하고 생수를 많이 마시는데 그러면 곧 좋아진다. 가끔씩 오줌에 눈을 담그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눈이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다.
음식은 특별히 가리거나 주의하지는 않지만 옛날처럼 육류나 우유는 잘 먹지 않는다. 특히 우유는 거의 먹지 않는다.
지난 20여 년 동안 체중을 늘리기 위해 고기와 우유를 날마다 먹는 등 무척 노력을 했었지만 허사였다.
그런데 배변에 신경쓰면서 생수와 오줌요법, 자연의학을 실천하고부터는 놀랍게도 체중이 10㎏ 이상 늘었다.
지금은 오히려 체중이 73㎏ 이상 넘지 않도록 조절하고 있는 실정이다.
체중이 73㎏ 전후가 되면서 몸 컨디션이 최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건강이 회복된 후부터 나이는 40대 중반을 넘었지만 육체는 몸으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자신 있었던 스무살로 돌아간 것 같다.
20대, 30대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건강하고 정력적이다.
지금 나는 인생에서 가장 건강하고 활력에 찬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주변사람들이 예전에는 늘 만성피로에 찌들어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는데 요즘은 강인한 모습이라고 말한다.
축구를 좋아해 동네 축구동호회에 가입해 4년째 일주일에 서너번씩 공을 차고 있다.
20대부터 60대까지 약 80여명의 회원이 있는데 체력적으로는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마흔일곱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별명이 야생마이다.
일요일에는 보통 한두시간씩 게임을 한다.
지난해에는 고교동문체육대회에 가서 20년 가까이 어린 후배들과 운동장을 뛰면서 1위를 해 부상으로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요즈음은 건강신문사 축구단을 만들어 매주 전국을 돌며 축구를 즐기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오줌과 자연의학 덕분이라는 것을 나는 분명히 증언한다.
오줌요법을 알고 나서 내가 경영하는 신문사에서 오줌요법에 관한 책을 여덟 권이나 출간했다. 자연요법(자연의학)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출간했다.
그동안 오줌을 마시는 대학교수, 의사, 약사, 한의사, 종교인 등 선각자적인 사회지도층 인사들도 여러명 만났다.
몇년전 북으로 갔던 미전향 장기수중의 한 사람은 북한에 가면 오줌요법을 정책적으로 확산시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기수 확신범으로 15년간 한국의 감옥에 있던 사람이었는데 오줌요법으로 건강관리를 했었다는 것이었다.
북한에서는 상당한 지도자급 인사였던 그는 북한의 여러 실정을 감안할 때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 오줌요법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실용적인 건강관리법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오줌요법에 관한 취재 차 그를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북으로 가게 되면 나이가 70이 넘은 만큼 이념이나 사상보다는 오줌요법을 북한에 전파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줌에 관한 국내 언론의 태도도 아직까지는 편견적이다. 별로 진지하게 다루지 않고 화제성이나 기행 정도로만 취급하고 있다.
내가 이처럼 장황하게 오줌요법과 내가 오줌요법을 실천하게 된 배경을 늘어놓는 것은 현대의학의 한계와 그 한계를 잘 인정하려하지 않는 현대의학자들 때문이다.
첨단의학의 한 가운데 있던 내가 그 첨단의학의 한계와 비겁함을 절감했다면 현대의학의 신봉자들은 내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난치성, 불치성 혹은 심인성, 신경성이란 말로 또 얼마나 많은 환자들을 현혹할 것인가.
왜 원인이 없는가?
치료방법이 없는가?
자신들이 모른다고 원인불명, 치료불가라는 말로 무지와 무식을 숨기려 하고 있는가?.
어떻게 첨단의술이고 신치료술이 되는가.
소위 제도권 의료계가 주장하고 있는 의학적 검증을 받는 과정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첨단의술과 신치료술이라는 미명아래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실험동물이 되고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는가.
의료인들은 왜 자신들이 악성 암에 걸리면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를 거부하며 자연의학에 매달리려 하는가.
난치, 불치성 성인병에 걸리면 자연의학을 찾아 헤매는가.
나는 지난 20여년간 수많은 최첨단 수술과 치료, 처치, 진단 장면을 눈으로 보아오면서 인간의 항상성 즉 자연치유력과 복원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언젠가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나는 내가 보고 듣고 확인한 사실을 기록할 것이다.
첨단의술의 눈부신 발전과 그 무한한 혜택을 결코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 않은 기적같은 효과를 보이고 있는 자연의학에 대해서도 현대의학자들이 무조건적으로 배타적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보다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2004년 3월 15일 윤 승 천 윤승천:약력
▲ 대학에서 문학을 대학원에서 병원 행정학을 공부했다. ▲ 대학 재학중 전국 7개 대학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대학가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 1984년 대학 4학년때 등단하여 1991년 조선일보와 한국문학, 문예중앙 등 여러 문예지에 작품발표를 하면서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1990년 중앙일보사에서 세번째 시집을 펴낸 이후 지금까지 단 한편의 글도 쓰지 않고 있다. ▲ 지난 20년 동안 전국각지의 수많은 명의·명한의사·명약사 등과 자연요법(민간요법)전문가들을 만나면서 비법·비방 등을 기록해 오고 있다. ▲ 축구를 즐기는 시인, 의료평론가, 언론·출판인, 자연의학자이기도 하다.
출처 : [기타] 건강신문사(02/305-6077) 기적을 일으키는 오줌요법 본문중에서
제가 알고있는 타 오줌카페에서 퍼왔습니다..
초보자도 알기쉽게 일목요연한거같아서 퍼왔으니 많은 도움 되시기 바랍니다...
*마시기
오줌을 유리컵이나 도자기에 받아서 마신다. 요료법의 요령은 처음에 나오는 오줌 두 숫갈
정도를 버리고중간뇨를 받아서 그대로 마신다. 냄새 때문에 냉장고에 넣어서 식혀서 마시는
사람도 있으나 가능한 받자마자 마시는 것이 좋다. 처음 마시는 양은 50cc 정도(소주 1잔)
로 하다가 익숙해지면 150~200cc 정도(맥주잔 1컵)로늘린다. 하루의 오줌중에서 아침 첫
오줌에 유용한 호르몬이 많이 들어 있어서 가장 좋다.
건강한 사람이 예방목적으로 할 때에는 매일 한번이면 족하고 아침 첫 오줌을 마시면 된다.
환자는 아침 첫 오줌을 비롯하여 여러번 마실수록 좋다.
오줌 마시기를 시작하는 경우엔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약을 먹더라도 마음
이 부정적이면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이 오줌을 더러운 것으로 생각하거나 억지로 마
시는 것은 좋지 않다.
내 몸에서 이렇게 훌륭한 생명수가 끊임없이 나오는 생명의 신비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마셔야 효과가 더 좋다.
*비위가 약할 경우 마시는 방법
가. 칵테일요료법
처음에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사람은 커피를 적당히 타서 마시면 냄새도 없어지고 색도 마치
콜라처럼변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마시는 것을 계속할 필요는 없으며 처음에 몇 번만 시도
해 보고 그 다음에는 순수한 상태로 자연스럽게 마시도록 하는 것이 좋다. (강국희 교수가 개발한 방법)
나. 수용성 분말 프로폴리스 혹은 포도즙을 요에 타서 마시면 오줌냄새도 없어지고 상승효과로 인하여 효과가 배로 빨라진다.
다. 오줌에 바이오미네랄 수를 5~10cc 타서 마시면 물맛으로 변하여 먹기 쉽게 된다.
*요맛사지
오줌을 받아서 마시고 나머지로 손 바닥에 묻혀 얼굴, 목, 머리, 발 , 온몸을 문지르고 20분 정도 있다가 냉수로 샤워한다. 벌레 물린 곳, 무좀, 건버짐,비듬,여드름,알레르기 등과 같이 피부밖에서 바르는데는 오래 숙성시킨 오줌, 적어도 4일 이상 묵힌 것이 효과적이다.
*내복용으로 할 때는 절대적으로 바로나온 오줌을 마셔야 한다는 것 주의하세요.
*요관장
오줌을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사람은 관장을 한다. 음식물을 통과시키는 소화관의 내부점막은 마치 외부의 피부와 같은 보호기능과 흡수기능을 갖고 있으며 그외에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오염된 환경물질로부터 몸을보호하기 위하여 특별한 임파조직이 분포되어 있고 전신의 면역체계와 연결이 되어 있다.
외부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 인후부는 이물질이나 세균의 혼입에 대비하여 임파조직이 매우 발달되어 있고거기에는 많은 면역담당세포가 진을 치고 있어서 해로운 물질이 들어오면 처리해 버린다.
또 대장에도 세균이 많이 서식하므로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임파조직이 잘 발달되어 있고 면역담당세표가 진을 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대장 벽에는 숫자상으로나 종류로 보아도 뇌에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신경세포가 뻗혀 있고 그것이 가지를 쳐서 복잡한 신경회로망을 구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소화기계의 신경조직을 최근에는 뇌의 척수와 같은 중추신경계에 비해 "창자의 신경계"라 부르고 있다. 물론 뇌로부터의 지령도 전해지겠으나 간단한 것이라면
창자 신경계의 내부에서 정보를 처리하고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오줌을 입으로 마시면 인후부에 있는 면역세포를 자극하여 체내의 세포가 활성화되는 것과 같이 오줌을 항문으로 넣어주면 오줌이 창자 안에 고여 있는시간이 길기 대문에 입으로 마시는 경우와 비슷한 효과를 나타낸다.
아주 소량 5~10g의 오줌으로 충분하고 여기에 수용성 프로폴리스나 유산균을 혼합하여 관장을 하여도 좋다.
이 방법은 도저히 오줌을 마실 수 없는 사람이나 아기들에게 권할 수 있는 방법이다.
또 치질환자에게는 이 방법이 가장 직접적으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실제로 여러명의 치질환자, 탈홍,치루 중증환자들이 항문으로 오줌을 넣어 치료하였다.
항문으로 오줌을 넣을 경우 시판되고 있는 관장기 또는 주사기를 이용하면 된다.
항문으로 오줌을 집어 넣으면 창자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서 구강으로 마시는 것보다 유기체의 흡수는 훨씬 쉽다.
독일인 의사 Martin Krebs박사(1942)는 오줌을 내복약, 외용약,주사, 관장에 사용하였으며 관장하는 요령은,
신생아에게 3~5ml, 어린이 5~15ml, 성인 5~30ml를 하루에 1~2회 실시한다.
특히 치질환자에게는 이 방법이 직접적으로 효력을 발휘한다.
*요단식
요료법의 최고경지는 요단식이다.
쾌적한 환경에서 명상을 하면서 오줌과 생수만을 마시면서 식사를 하지 않고 금식하는 것이다.
질병의 치료효과도 매우높아지고 몸안의 노폐물을 씻어내는데 매우 좋다.
요단식의 요령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경험자의 지도를 받으면서 하는 것이 좋다.
단식이 끝난 후의 회복기에 음식조절이 매우 중요하다. 될 수 있으면 여러사람이 모여서 하는 것이 좋다.
매주 하루(24시간)만의 단식으로도 우리 몸에 쌓인 노폐물을 제거시키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최상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1년에 7~10일씩의 단식을 3번씩만 하면 관절염, 근육부분의 노폐물 찌꺼기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
단식에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무리하고 무계획적인 단식은 오히려 건강을 헤칠 수도 있다.
단식의 요령은 여러방법이 있다. 단식을 7일 한다고 가정하면 예비단식(감식기간), 본단식 7일, 보식기간(증식기간)7일로 하여 21일간 음식조절을 해야한다.
예비단식 7일은 8부 죽(물 20% + 밥 80%)에서부터 시작하여 7부, 6부 등 점점 묽은 미음으로 밥의 양을 줄여 나가야 하며 보식기간엔는 그 반대로 서서히 밥의 양을 늘여야 한다.
*기타응용-눈,귀 ,코, 양치질
아침에 오줌울 받아서 마시고 나머지로 눈,코, 귀에 넣으며 양치질도 한다.
치약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샤워나 목욕할 때에도 오줌을 받아서 눈,코 귀에 넣고
나머지로 얼굴, 목,머리, 항문,사타구니,팔, 다리,배꼽, 생식기 등에 전신 맛사지를 하고
30분 정도 있다가 샤워한다.
이쯤되면 오줌에 대한 혐오감은 완전히 없어지고 매끌매끌한 오줌이 몸에 닿으면 신비한 생명의 에너지를 받는 다는 느낌이 생긴다.
맛이 좋은 오줌을 생산하기 위하여 음식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많이 먹으면 오줌의 색이 연두색이고 투명하며 냄새도 향기롭고 맛이 짜지 않아서 부드러워진다.
*약과 병용할 경우
요료법을 하는 사람이 병원이 약을 함께 복용할 경우에 오줌으로 약이 배설되어 염려하는
사람이 있는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약은 체내에서 이미 상당시간이 지나 소화된 상태이므로 오줌으로 배설되는 것은 이미 약 성분으로서의 기능이 상실된 것이다.
고혈압인 사람이 혈압약을 복용하면서 요료법을 함께 실시하면 약과의 상승작용으로 혈압이
더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일이 있으므로 마시는 양을 50cc 정도로 줄이는 것이 좋다.
혈압의 높고낮은 정도에 따라서 약의 양을 조절하며 서서히 약을 끊도록 하는 것이 좋다. 다른 질병이 있는 경우에도 갑자기 약을 끊지 말고 상태를 보아가면서 서서히 약을 줄이다가 끊는 것이 좋다
*암치료 집중 요료법
암에 걸린 사람은 다음과 같이 집중적인 요료법을 실시하여야 한다.
암말기 환자가 요료법을 한다고 100%치료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신념을 가지고 적극적인 생각으로 실천하면 몸의 전체적인 건강상태가 호전되어 식사를 할 수 있게 되고 기운이 생겨나서 일어나고 앉을 수도 있게 되며 걸을 수도 있게 된다.
물론 요료법만으로 말기암을 치료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반드시 자연식-과일,과일즙,야채나 야채즙(녹즙)-을 하루에 500~1000cc정도 마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