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와 나
이동규
대학교수로 있을 때 나의 별명은 테미교교주였다. 테미교란 테니스에 미친 교수를 말한다. 조금 체면을 차려야 할 때에는 테니스를 아름답게 치는 교수들의 모임이라고 하지만 어색하다고 느낀다. 테미교는 충남대의 테니스 매니어들을 지칭했다. 지금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테미교이다.
이들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오후 세 시경이면 테니스장으로 모여든다. 구태여 약속을 잡을 필요도 없다. 비가 오면, 눈이 오면 테니스 코트라도 보고 다시 들어간다. 테미교 신자들의 바이오리듬이 그렇게 굳어져 있다. 그 시간에 다른 것은 할 수 없다. 소위 테니스는 만사제체 순위인 것이다.
테미교가 다른 종교(?)집단과 다른 점은 교주가 별도로 없고, 테니스 매니아라면 테미교 신자가 되고, 동시에 교주가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밖에 나가 자신을 소개할 때는 모두가 테미교 교주라고 소개한다. 이 말 한 마디면 다른 말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테미교라는 말을 맨 처음 만들었기 때문에 원조교주라는 호칭이 따라 붙는다. 80년대에는 충남대교수를 전부 아우르는 교수테니스 모임이 없었다. 다만 자연대나 농대 등에는 대학 차원의 테니스모임만 있었다. 나는 경상대교수인데도 자연대교수테니스모임인 태극회 회원이 되었다.
태극회에서 운동을 하면서 나는 테미회, 테미교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어느 날엔가 나는 그간에 탔던 모든 우승 컵 10여개를 상품으로 내 걸고 부상도 마련한 다음 테미교주 배 시합을 개최하였다. 테미교를 만방에 선포한 날이 된 셈이다.
테미교 신자들의 공통된 또 하나의 특성은 반드시 전국교수테니스대회에 참석한다는 점이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테니스대회에는 전국의 4년제 대학 교수들 1,500여명이 참가하여 열리는 전국 최대의 사회테니스 대축제이다. 제주도에서도 개최되었다.
테미교 신자들은 이 대회만 끝나면 바로 이제 364일밖에 안 남았다고 칼날을 간다. 바로 다음 날부터 오후 3시 반만 되면 꾸역꾸역 테니스장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개인전도 중요하지만 교수테니스대회는 역시 단체전이다. 응원하고, 아쉬워하며 우승했을 때는 그 기분이 정말 짜릿하다. 개인주의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학교수를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 승화시켜주는 계기가 된다. 테미교 신자들은 운동 못지않게 연구도 열심히 한다. 오후에 테니스를 하기 위해 나머지 시간에 온 힘을 바쳐 연구와 교육에 심혈을 기우리기 때문이다.
내가 자랑하는 것 중의 하나는 어느 해인가 전국교수테니스대회에서 개인전 우승도 하고 동시에 단체전 우승도 하였다는 것이다. 두 가지 우승을 한꺼번에 하기는 매우 힘들다. 왜냐하면 개인전을 먼저 하는데 우승하기까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서 그 다음날의 단체전에서는 맥을 못 추기 때문이다.
충남대 테니스연합회장, 유성구의 사회체육테니스회장을 지냈고, 회갑기념테니스대회, 테미30주년기념테니스대회, 정년기념테니스대회를 개최했다. 전국교수테니스대회 개인전 3차례 우승, 단체전 6차례 우승, 개인전과 단체전 동시 우승, 그리고 65세 이상 시니어전국대회에서 파트너를 정해서 개최하는 복식 개인전에서 우승을 하였다. 아마 프로를 아우르는 전국대회에서도 우승을 한 것이다. 지금도 매일 10시만 넘으면 두 시간 정도 테니스를 한다. 만사제쳐 순위이니 아직은 이 일을 바꾸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