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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희의 「아리수 강가에서․2」를 읽고
해를 등진 채 일렁이는 억새들이 눈부십니다.
해 는 양평문협으로 내린 문운(文運)이요 큰 빛 내림이라면, 억새는 수필사랑의 조용한 비상(飛上)인 듯 움틀거립니다. 무리를 지어야 제 색과 제 멋을 더하는 억새의 본성을 따라 지난번에 이어 동인지를 또 한 번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고뇌와 성숙을 위한 만트라(진언)의 아픔을 거둬들이고자 합니다. 현현한 하늘 아래, 그간 수필을 사랑하는 이들의 활동에 만감이 교차하면서 회심의 미소로 더듬어봅니다.
김원. 당신은 넓고 깊기에 작은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큰 바다를 보는 것 같습니다. 양평문협을 이끌어가는 당신은 글에서 조차 편안한 웃음으로 너그러이 포용해주십니다. 당신의 자작수필, <길 위에서 길을 묻다>에서는 명토박이 세상사를 해학과 겸손의 지혜로 놓치지 않고 읊어주셨습니다. 매해 건강 때문에 여름과 겨울을 보내는 미국생활에서 이번엔 토끼와의 전쟁을 치루셨나 봅니다. 지난 번 심어놓은 코스모스가 성하여 건강한 겨울나기를 하고 오시기 바랍니다.
김언홍. 주위를 언제나 웃음바다로 만드는 귀여운 여인이십니다. 회갑을 넘긴 당신이지만 풍부한 유머와 솔직함, 건강미가 넘칩니다. 매사를 담고 어르고 당신 품에 꼭 안았다가는 진한 감동의 글로 표현해내십니다. 막힘없는 글귀를 따라 가다보면 얼음 위를 달리는 시원함에 가슴 트이기도 하고 때론 눈가를 적시는 아픔도 건네주십니다. 잉꼬의 짝을 구해준 사연과 남편의 군시절 얘기로 웃기셨지만 당신 가슴에 옹이가 된 손자의 그리움으로 또 한 번 울리고 맙니다. 어찌 위로할까만 슬픔을 딛고 일어선 기쁨의 글들로 채워지기만 바랄 뿐입니다.
조인애. A군에게 보내는 어느 여인의 편지를 읽습니다. 사위가 될 뻔했던 A군, ‘우울증’으로 등을 돌린 당신을 자책하며 그 미안함을 편지로 대신 말하고 있습니다. 미워할 수 없는 글이기에 당신을 더욱 가깝게 만들어줍니다. 하얀 봉투에 도라지꽃, 족두리꽃, 채송화 씨를 담으면서 가을걷이를 하는 고운 손길을 느낍니다. 그리고 또 다른 시작을 위해 항상 배낭을 꾸리는 당신, 여행을 좋아하기에 당신의 글은 보다 넓고 신선합니다. 6개월 간 네팔 자원봉사를 다녀왔던 당신께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윤난순. 연꽃같이 고운 자태를 지닌 여인을 만납니다. 당신의 글에는 어머님 같은 따사로움과 불전 앞의 향이 은은하게 풍겨옵니다. 때로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와 유리알 같이 맑은 기운을 느낍니다. 아주 오래 전 이웃해 있던 아이가 장애인이 되어 재회를 하게 되면서 당신의 순수는 시작됩니다. 불교에서의 인연을 고마워하면서 연민의 아픔으로 다음 생의 더 나은 삶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거짓말로 인한 결과(?)에 미안해하는 진솔함과 과거의 어려움을 꽁트로 멋지게 연출해 내기도 합니다. 감동과 감성의 원천으로 보다 더 높은 자리매김을 하셨으면 합니다.
감문주. 당신의 며느리 적을 생각하며 지금의 당신 며느리의 힘든 것을 부드럽게 껴안은 시어머니가 계십니다. 귀여운 손자들의 사랑에 녹아들기도 하지만 손과 발이 되어야하는 부산함에 고달픔과 바른 소리도 털어놓았네요. 손자보다 더한 귀여운 투정(?)에 울고 웃게 됩니다.
‘ 나로부터 상대편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실천하는 부지런함이 잘 구워진 고구마처럼 이 겨울을 달게 데워줍니다. 농촌의 병든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위해 자원봉사활동을 하시는 이순의 젊은 언니, 당신의 글은 농촌을 더한 열기로 가득하게 합니다.
김종숙. 그녀의 글은 아지랑이처럼 나긋하고 봄의 느낌으로 살포시 내려앉아 사랑스런 향기를 피웁니다. 당신을 보면 마음이 고와야 글이 곱다는 말을 하고 싶어집니다. 당신과의 인연이 얼마나 고운글로 피어나는지 감사할 정도입니다. 당신의 손끝에서 맑은 희망과 의욕으로 가득 찬 기상을 읽습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성가의 반주를 들려주는 당신. 하나의 굵은 씨줄이 되어 멋진 날줄들과 엮이고 싶어 하는 당신. 베로니카는(김종숙님의 세레명) 늘 당당한 여인이며, 멋진 분이십니다.
박자방. 흙과 가장 가까운 여인. 당신에게서는 진한 달래향기가 상큼하게 전해옵니다. 겸손과 당당함을 함께 지닌 당신은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일깨워 주십니다. 우피니사드 - 요가의 교의에 ‘현상적인 모든 존재들은 음식의 산물이다. 태어나면 음식에 의존해서 살다가 죽어서 음식으로 돌아간다.’는 인용구를 들어가며 당신의 탁마된 지혜를 건네주고자 한결같습니다. 글을 통해 음식이 입안에 들어가 소화되기까지의 고마움을 표하며 오묘한 섭리 따라서 인체여행을 하다보면 얼마나 우리에게 생명의 메시지로 작용하는지 감히 말하고 싶어집니다. 기(氣)와 미(味)의 건강한 울림에 감사드립니다.
최상옥. 아버지의 청춘을 묻었던 포로수용소를 돌아보며 애절해하는 딸을 봅니다. 가족의 아픔과 애환이 가슴 저리게 다가옵니다. 시어머님의 병환으로 봄을 넘기고 이어 남편의 사고로 인해 가을도 넘겨버린 지친 여인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당신을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가을단풍보다 더 붉은 기운을 발하고 있는 당신은 당찬 여인입니다. 아픔이 자리하는 그 곳에서도 이렇듯 빛을 발하는 문구를 피워내고 있으니, 이제 더욱 성숙한 여인이 되어 이 겨울에 우뚝 서 있을 줄 압니다. 고운 손 열손가락의 희망도 함께 합니다.
박미재. 추억 속으로 떠나는 여인을 만납니다. 그녀는 아직도 봉숭아 꽃 물들이며 가을과 겨울사이에서 꽃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어머님이 쓰시던 기름병이 이젠 옛이야기를 담아놓은 항아리가 되어, 피아노 위에 예쁘게 놓여 그리운 엄마의 향기를 우리에게 전합니다. 시간의 저편에 남은 기억을 따라 옛집을 찾은 그곳에는 어린 날의 강이 흐르고 정겨운 토담집 아래서 친구를 만나게 합니다. 한옥 마당가로 돗자리 깔고 언제든 얘기보따리를 풀어놓고 함께 하고 싶은, 당신은 고향집 언니 같으신 분입니다.
김무숙. 그녀의 글에는 아직 푸성귀 같은 신선함이 묻어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사회를 향한 따끔한 질책과 선인들의 지혜를 찾으려는 질정한 시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의 눈높이로 함께 바라볼 줄 알고, ‘도서관이 내 품에 있다’라는 문구를 강조하며, 글 쓰는 이답게 책을 사랑하는 아이들이 되어주기를 희망합니다. 손을 믿고 부지런히 메모하라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씀대로 메모에서 일궈 낸 멋진 글 탄생을 기대해봅니다.
신동명. 그녀에게는 살아가는 그 자체가 수필입니다. 일상 속에서 그저 스쳐지나감이 없습니다. 모든 경험이 글자 화 되어 피어납니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뱀)’, 겨울비 내리는 어느 날 목욕탕에서 할머니의 등을 밀어주며 나무를 닮은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감성으로 곱게 빚어내어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여인입니다. 식물을 사랑하고 자연과 대화 나누는 법을 익혀가는 그녀는 누구보다 자연인으로 살고 싶어하며, 크고 넓은 나무를 닮아가는 여인입니다.
최경묵. 눈을 내리깔고 걸어가는 여인,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다시 그 생각 속으로 깊게 빠져드는 여인을 만납니다. 생각 없이 그녀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방향을 잃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녀의 글은 사색과 명상의 경지입니다. 페르조나(persona : 연극의 가면, 협상의 뜻)에서 풀어내려는 원칙적인 질문을 그녀 자신에게 끝없이 해댑니다. 왜곡된 렌즈를 통해 흑백으로 나누어지는 논리를 거부하며, 움츠려드는 내면을 향하여 소리치고 싶어합니다. 탄생에서 죽음까지 ‘울음’으로 그려놓은 비수필적인 시도는 분명 한 발짝 앞을 향하는 용기이기에 심심한 박수를 보냅니다.
김숙희. 서울을 떠나 양수리에 새로이 뿌리를 내린 님을 만납니다. 양수리에 오기까지 글로서 첫 대면을 하자니 더욱 진하고 긴 인사가 된 것 같습니다. 양수리 두물머리 어느 한 곳에서 둥지를 틀고 산수유를 바라보며 쓴 글들이 언젠가는 자연 친화의 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수 필사랑 가족으로의 첫 발걸음을 기념하며 아리수 강가에 오시게 된 내력을 알려주시어 우리 서로 빠르게 다가서게 하셨습니다. 깔끔하신 문체만 보아도 이미 오래 전에 등단하신 선배님의 세련된 필력을 느낍니다. 잠시 멈추셨다는 님의 문학활동은 앞으로 양평문단에서부터 멋진 모습으로 거듭나리라 믿으며 뜨겁게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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