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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봉 허석진(石蜂 許錫軫)*
(1924년 3월~2012년 8월 8일)
본 김해, 부산 좌천동 출생, 호:석봉(石蜂)
장용득/ 김종철/ 임응승 분들과 같은 시대 나이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암울 했던 시기에 태어난 [묻지마 갑자생]
부산진보통학교(부산진초등학교)26회 시절엔 영도다리 개통식의
화동(花童)으로 뽑혀 제일 먼저 건너 갔던 행운의 소년.
그의 부친의 사업(고무제품생산)차 여수로 이주한 그는 순천고보1회생으로 졸업
징병으로 끌려가 해방으로 부산으로 귀환후, 부친의 사업(보생고무)를 이어 받았으나,
경영미숙으로 도산. 이후, 세면기,연탄화덕등...생활용품 개발에 뛰어 들었지만,
자금부족으로 번번히 실패. 70년대 초반 친지 도움으로 물순환 방식 가정용 보일러를
연구 개발하여, 부산 서면 지역에서 사업가로 키워 나갔다.
생산품이 달려 전국대리점에서 아우성칠 무렵인,
75년 10월 과로로 몸져 누워 혼신을 다 했던 보일러 공장도 남의 손에 넘기고 만다.
문병온 친구의 권유로 “사주 주역 철학”을 공부했던, 선생은
“그럼 어떻게 해야 사주를 잘 타고 나는냐?”는 의문에 이르된것.
운명의 눈뜨기 시작한 것 그는 부산진시장에서 사주책과 함께 사온[산서요집]을 우연찮게 펴 보다
라는 구절을 읽고 발심하게 된것이 풍수지리 입문동기가 된것이다.
풍수지리 공부는 독학과 더불어 전국에 이름난 지관들을 상대로 한
탐문 수학(探門受學)으로 일취월장 했다.
그러던중, 형기학의 대가인 하남 장용득(河南 張龍得)선생의 문하에
입문 한 허선생은 하남선생이 이끄는 樂山會에서 실수실참(實修實參)한 후
현대풍수지리연구소를 1988년도 개설, 2000년 까지 약 15여년 동안
400여 이상의 수료생을 배출 하였다.
전문 과정 수료 연구반원도 상당이 많이 배출 하였고,
제자중에는 풍수관련 책을 4권이나 펴 낸 수료생들도 있고,
석봉 허석진 선생의 예리하고 상세하며 시원스럽게
귀신같은 눈으로 수료생을 가르치는것으로
영남 지역에서는 지평이 높다.
<99년 강의 모습>
일제 해방전, 부산상고 영어선생으로 호랑이 선생이라고
소문나기도 할 정도라고 함. 교편을 잡아서 인지,
연구소에서 가르치는 명 강의사가 따로 없어 보인다.
그림을 잘 그리던 선생은 하남 장용득 선생이 석봉선생 문하생이였을때도
산세도를 잘 그린다고 칭친을 할 정도로 평시 연구소 수료생과
관산같을때도, 즉석으로 그려 내는 산세도는 과히 일품이다.
<99년 관산중, 산세도를 그리며 설명중>
석봉 허석진(石蜂 許錫軫)은 그의 자(子)를 옆에 두고 강의와 관산에
꼭 데리고 다녀야 할 정도로,연구소 운영할때 부터 자신의 풍수지리학을
가르쳐 주며, 일본어와 영어를 할 줄 알았던, 석봉선생은
그의 자(子)는 건축관련쪽으로 사업하고 있기에, 양택에 관련된
일본쪽 도서를 들여 와서, 풍수를 가르쳤다 한다.
부산 서면 롯데 백화점 건너편에 4층 건물에 3층에는 그의 자(子)가
건축인테리어사업을 하고, 석봉선생은 4층에서 연구소에서 강의.
답산을 할시에는 보통 30~40여명 정도의 문하생들이 석봉 선생의
말한마다 한마디를 녹취를 할 정도록,
석봉 허석진석생의 산세를 작은것 까지 읽어 내는 그 능력이 일출 월장 했다.
<고성지역 탐방>
90년도 중반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를 관활한것으로 잘 알려진, 황영웅 법사를 알게되는것을 동기로 영남지역 초대 풍수대가 강연도 여는 시기인 첫 강연때,
500여 일반인들이 공개 강연에 몰릴정도로풍수 대중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왔던, 시대적 시기라
<김대중 전 대통령 묘지 관장 하셨던,황영웅법사님, 석봉 선생님의 부산지역 풍수지리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마련된 강연>
그 후로도 강연시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부산에서 석봉 허석진(石蜂 許錫軫)의 영남지역 풍수대가로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정도록 알려 져 있다.
석봉 허석진(石蜂 許錫軫)는 하남 장용득(河南 張龍得)선생/ 황영웅 법사와의 만남과 인연으로
풍수대가로서의 명성이 더 높여 졌다고, 생전에 이 두분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현, 국회의원중 2선,4선하는 국회의원도 만들어 주었고, 부산에서 알아주는 해운대 기업의 유명 쇼핑건물은 기업회장의 부탁으로
양택을 해 주어 설계에 반영되어 지어 졌지만, 준공후 조심해야 할 부분을 지적해 줌에도 불구하고, 변형함을 알고는 큰일난다고 예언했지만, 석봉 허석진(石蜂 許錫軫)의 걱정대로 그 어마한 건물은 적절한 금액에 매도 되었다고 합니다..
석봉 허석진(石蜂 許錫軫)선생은 강한 어조로 말을 표한 하지만, 속은 부드러운 감성을 지니고,
거짓하는 것을 금물로 하신분으로 알려져 있다.
석봉 허석진(石蜂 許錫軫)는 올 2012년 8월 8일 향우 88세의 어느날 오전에 운명을 달리 하셨다.
석봉 허석진(石蜂 許錫軫)선생 같은 풍수가가 다시 나오길 영남인은 기다리고 있다.
불교발행월간지서적에서 발취
(* Seokbong heoseokjin石蜂许锡轸) *
(1924년 3월~2012년 8월 8일) (March 1924 to August 2012 and 8 days)
본 김해, 부산 좌천동 출생, 호:석봉(石蜂) Issue: This Gimhae, Busan jwacheondong birth, Seokbong (石蜂)
장용득/ 김종철/ 임응승 분들과 같은 시대 나이대 Age, the era, such as those of jangyongdeuk / Jong - Chul Kim / imeungseung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암울 했던 시기에 태어난 [묻지마 갑자생] Was born in the modern history of Korea from the darkest period [Do not ask, suddenly St]
부산진보통학교(부산진초등학교)26회 시절엔 영도다리 개통식의 Busanjin usually Busanjin elementary school () 26 times youth, I have zero leg opening ceremony
화동(花童)으로 뽑혀 제일 먼저 건너 갔던 행운의 소년. The first crossing went unplugged East (花童) lucky boy.
그의 부친의 사업(고무제품생산)차 여수로 이주한 그는 순천고보1회 생으로 졸업 Graduation he moved his father's rubber products business (production) car spillway born 1st Suncheon gobo
징병으로 끌려가 해방으로 부산으로 귀환후, 부친의 사업( 보생고무 )를 이어 받았으나, As a draft drawn by the liberation of Busan after returning to his father's business (for rubber) followed received
경영미숙으로 도산. Bankruptcy Management immature. 이후, 세면기,연탄화덕등...생활용품 개발에 뛰어 들었지만, Afterwards, wash basin, briquette oven, etc. ... jump in the development of the household heard
자금부족으로 번번히 실패. A lot fails due to lack of funds. 70년대 초반 친지 도움으로 물순환 방식 가정용 보일러를 Friends and relatives with the help of the early 1970s, home boiler water circulation method
연구 개발 하여, 부산 서면 지역에서 사업가로 키워 나갔다. Research and development, raised by local businessmen in Busan written out
생산품이 달려 전국대리점에서 아우성칠 무렵인, From the national distributor products depends roar of time,
75년 10월 과로로 몸져 누워 혼신을 다 했던 보일러 공장도 남의 손에 넘기고 만다. Parry Mandaue lay interference by overwork momjyeo October 75, the boiler plant in someone else's hands.
문병온 친구의 권유로 “사주 주역 철학”을 공부했던, 선생은 At the urging of a friend, visitor. "Four weeks" protagonist philosophy teacher, who studied
“그럼 어떻게 해야 사주를 잘 타고 나는냐?”는 의문에 이르된것. Reach the question, "So what should you do four weeks I ride well?"
운명의 눈뜨기 시작한 것 그는 부산진시장에서 사주책과 함께 사온 [산서요집]을 우연찮게 펴 보다 Fate of nuntteugi started accidentally San seoyo home he bought four weeks with a book in the market Busanjin spread than
라는 구절을 읽고 발심하게 된것이 풍수지리 입문동기가 된것이다. Read the phrase foot badly feng shui introductory motivation, paying, paying.
풍수지리 공부는 독학과 더불어 전국에 이름난 지관들을 상대로 한 Branch against the country in the name, I studied feng shui with the self-taught
탐문 수학(探門受學)으로 일취월장 했다. Canvass math (探门受学) was ilchwiwoljang.
그러던중, 형기학의 대가인 하남 장용득(河南 張龍得)선생 의 문하에 Then, the sentence crane guru Henan jangyongdeuk (河南张Dragon得) of a pupil teacher in
입문 한 허선생은 하남선생이 이끄는 樂山會에서 실수실참(實修實參)한 후 山会Henan teacher led樂mistake silcham (实修实参) after introductory huh teacher
현대풍수지리연구소를 1990년도 개설 , 2000년 까지 약 10여년 동안 Modern Feng Shui Institute opened in 1990, for about 10 years until 2000.
400여 이상의 수료생을 배출 하였다. Were produced over more than 400 graduates.
전문 과정 수료 연구반원도 상당이 많이 배출 하였고, Specialized courses completed the study, the class was worth a lot of emissions,
제자중에는 풍수관련 책을 4권이나 펴 낸 수료생들도 있고, Disciples during the Feng Shui book four graduates and spread, and
석봉 허석진 선생의 예리하고 상세하며 시원스럽게 Cool, carefully detailed and sharp and teacher Seokbong heoseokjin
귀신같은 눈으로 수료생을 가르치는것으로 Graduates to teach in a ghoulish eyes
영남 지역에서는 지평이 높다. Higher the Yeongnam region, Horizons.
<99년 강의 모습> <99 years river frontage
일제 해방전, 부산상고 영어선생 으로 호랑이 선생이라고 Japanese colonial liberation, Busan Commercial High English teacher teacher called tiger
소문나기도 할 정도라고 함. Rumors and eccentric enough to say that. 교편을 잡아서 인지, Is taught to catch,
연구소에서 가르치는 명 강의사가 따로 없어 보인다. Saga seems not a separate person lectures taught at the Institute.
그림을 잘 그리던 선생은 하남 장용득 선생이 석봉선생 문하생이였을때도 Dream teacher as well and I even Henan jangyongdeuk teacher disciple was a teacher Seokbong
산세도를 잘 그린다고 칭친을 할 정도로 평시 연구소 수료생과 That Green sans well enough to chingchin peacetime Institute graduates
관산같을때도, 즉석으로 그려 내는 산세도는 과히 일품 이다. Guanshan ever, is instantly drawn to that sans a la carte gwahi
<99년 관산중, 산세도를 그리며 설명중> <'99 Gwansanjung, sans the circle described in>
석봉 허석진(石蜂 許錫軫)은 그의 자(子)를 옆에 두고 강의와 관산에 (石heoseokjin Seokbong蜂许锡轸) teaching and his party (子) HOLDING Guanshan in
꼭 데리고 다녀야 할 정도로,연구소 운영할때 부터 자신의 풍수지리학을 Necessarily enough to attend, bringing the Feng Shui Institute when his geography
가르쳐 주며, 일본어와 영어를 할 줄 알았던, 석봉선생은 Teaches us, that were thought to be in Japanese and English, Seokbong teacher
그의 자(子)는 건축관련쪽으로 사업하고 있기에, 양택에 관련된 Related to his party (子) towards the construction-related businesses, and because - Tag
일본쪽 도서를 들여 와서, 풍수를 가르쳤다 한다. Taught feng shui books on Japan, come in..
부산 서면 롯데 백화점 건너편에 4층 건물에 3층에는 그의 자(子)가 Four-storey building on the third floor across from the Lotte Department Store, Busan writing his characters (子) the
건축인테리어사업을 하고, 석봉선생은 4층에서 연구소에서 강의. Architectural and interior projects, Seokbong teacher lectures on the fourth floor at the Institute.
답산을 할시에는 보통 30~40여명 정도의 문하생들이 석봉 선생의 Halsey usually dapsan a disciple of about 30 to 40 people Seokbong teacher
말한마다 한마디를 녹취를 할 정도록, The degree to recording every word spoken Rock
석봉 허석진석생의 산세를 작은것 까지 읽어 내는 그 능력이 일출 월장 했다. Saint Seokbong - examination jinseok sans small to reading ability. Woljang Sunrise
<고성지역 탐방> <Castles explore the area
90년도 중반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를 관활한것으로 잘 알려진, 황영웅 법사 를 알게되는것을 동기로 영남지역 초대 풍수대가 강연도 여는 시기인 첫 강연때, Mid-1990, when the synchronous the Yeongnam region invited to Feng Shui return speech opening the tomb of former President Kim Dae-jung, a well-known Covers hangeoteuro hwangyoungung Judiciary to know that when the first lecture,
500여 일반인들이 공개 강연에 몰릴정도로풍수 대중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왔던, 시대적 시기라 Feng Shui popularized over 500 ordinary people driven into the public discourse brought a lot of attention, and the times when La
<김대중 전 대통령 묘지 관장 하셨던,황영웅법사님, 석봉 선생님의 부산지역 풍수지리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마련된 강연> Former President Kim Dae-jung did oversee the cemetery, hwangyoungung beopsanim Busan local feng shui Seokbong teacher to notify the public, designed lectures
그 후로도 강연시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부산에서 석봉 허석진(石蜂 許錫軫)의 영남지역 풍수대가로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정도록 알려 져 있다. Thereafter, also in Busan, Yeongnam region (石heoseokjin Seokbong蜂许锡轸) of Feng Shui in return had a lot of attention at the time of the lecture, many people know enough rock are known.
석봉 허석진(石蜂 許錫軫)는 하남 장용득(河南 張龍得)선생/ 황영웅 법사와의 만남과 인연으로 (石heoseokjin Seokbong蜂许锡轸) Henan jangyongdeuk (河南张Dragon得) teacher / ties and meeting with hwangyoungung Judiciary
풍수대가로서의 명성이 더 높여 졌다고, 생전에 이 두분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Higher reputation as a Feng Shui consideration, jyeotdago These two gentlemen are on in life, it has my gratitude.
현, 국회의원중 2선,4선하는 국회의원도 만들어 주었고, 부산에서 알아주는 해운대 기업의 유명 쇼핑건물은 기업회장의 부탁으로 Of 2-wire, 4-wire current, parliamentarians, lawmakers had made, that I know from Busan's famous Haeundae corporate shopping building businesses as a favor to the Chairman of the
양택을 해 주어 설계에 반영되어 지어 졌지만, 준공후 조심해야 할 부분을 지적해 줌에도 불구하고, 변형함을 알고는 큰일난다고 예언했지만, 석봉 허석진(石蜂 許錫軫)의 걱정대로 그 어마한 건물은 경매로 올 연도초에 넘어 갔다. Zoom - Tag a given design is reflected in the built, but pointed out the part you want to be careful after completion, despite the deformation know is worried he'll prophesy, but Seokbong heoseokjin (许锡蜂轸石) of worry as the countless miles the building went over the coming year, at the beginning of the auction.
석봉 허석진(石蜂 許錫軫)선생은 강한 어조로 말을 표한 하지만, 속은 부드러운 감성을 지니고, 거짓하는 것을 금물로 하신분으로 알려져 있다. (石heoseokjin Seokbong蜂许锡轸) teacher expressed an emphatic horse, however, it is known that the genus has a soft sensibility, false taker you.
석봉 허석진(石蜂 許錫軫)는 올 2012년 8월 8일 향우 88세의 어느날 오전에 운명을 달리 하셨다. (石heoseokjin Seokbong蜂许锡轸) One day, in the morning, the fate of hyangwoo 88-year-old come August 8, 2012, said otherwise.
석봉 허석진(石蜂 許錫軫)선생 같은 풍수가가 다시 나오길 영남인은 기다리고 있다. Feng Shui (石heoseokjin Seokbong蜂许锡轸) teacher to come out again youngnamin waiting.
불교발행월간지서적에서 발취 Buddhist books, published monthly in the excer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