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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자생한방병원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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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에서 ‘인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글쓴이는 귀한 생물을 키우는 데는 사랑의 본질인 관심, 배려, 보살핌, 책임 등이 요구된다며 의미를 부연했습니다. 사랑의 힘으로 자라는 것이 어찌 인삼 뿐이겠습니까. 그러나 ‘인삼’이라는 말에서 오는 느낌과 최근에 고전 평론가 고미숙의 책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접한 연유로 사랑의 본질과 동양 의술의 본래적 가치가 관련성 있게 연상 작용을 일으켰습니다. “의학과 인문학이 따로 있지 않고 오히려 그 둘이 함께할 때 우리 안의 치유본능을 이끌어 내어 궁극적으로 몸과 삶과 생각이 하나가 된다”고 고미숙은 설명하고 있는데, 이 말로 인해 ‘의학에도 은근한 향기와 온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평소의 막연한 제 생각이 지지와 탄력을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타자와 나 사이를 공글리고, 예리해진 대립각을 둥글게 하며, 냉과 열이 다사롭게 기운을 합치는, 그리하여 생의 에너지가 자율적 물꼬를 트도록 만드는 사랑의 가치와 한의학의 실체가 닮았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오던 참에 말입니다. 얼마 전, 일로 인연을 맺은 서울의 어느 한방병원 선생님이 “의사가 환자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이 과학으로 포장되고, 법적으로 면허화되고, 전문화, 세분화의 미로 속에 놓이다 보니 심오하고 아득해 보이는 것 뿐이지, 실상은 환자와 눈을 맞추고, 따뜻한 미소를 보이고, 환부를 만지고, 교감하며 희망을 나누는 행위가 치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라는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마치 제 생각이 맞다는 걸 확인해 주려는 듯한 공교로운 타이밍의 ‘내부자 발언’에 흐뭇하고 흡족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의 말에는 차가운 청진기가 아닌 따스한 문진의 손길, 창백한 알콜 냄새 대신 온후한 한약 내음과 함께 환자의 자생력, 삶의 내재적 회복력을 먼저 헤아리려는 미더운 정성이 담겨 있었습니다. 열흘 전, 같은 병원의 탕전원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약재 구입에서부터 보관, 관리, 제조, 전달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고 설명을 들으면서 양방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식과 한방의 섬세하고 공교한 손길이 양한방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교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다 커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약재 잔류 농약 시비나 한방의 치료 효용성 논의의 소요(騷擾)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면모를 일신하며 동양 전통 의학의 맥이 이어져 갈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습니다. 잘디 잘게 나누어진 단절과 분절, 타자와의 어떤 교감의 기미도 마다하는 차단의 삶을 사는 시대입니다. ‘사랑’ ‘소통’ ‘힐링’ 등 알곡 없는 겨와 같이 가볍고 알량한 말들이 공허하게 떠도는 세상입니다. 불신의 깃발이 생명과 삶을 조롱하듯 나부끼는 세태에 익숙해진 지도 오래입니다. 이 모든 부박한 시대 현상이 ‘후투루’ 양풍(洋風) 탓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의료계 또한 서양의학에 대한 과대 신뢰로 동양의학이 부지불식간 홀대를 받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호주에만도 한방은 인정의 수준을 넘어 이미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에도 정작 전통을 이어가야 할 우리는 무심하게 딴청을 부리는 모습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은근한 군불처럼, 웅숭깊은 우물처럼, 두터운 가마솥처럼 삶 속에 스며들 듯 한의학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푸근하고 고마운 일이라는 걸 잊고 있다고 할지. 온갖 시비분별이 어지럽고, 양극단이 대립하며, 모 아니면 도의 긴장 속에서 분절되고 조각난 삶을 전체적, 통합적인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일은 비록 '시지포스의 돌'일지언정 거듭거듭 반복되어야 합니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남성다움을 알면서 여성다움을 유지하고, 흰 것을 지탱하며 검은 것을 인정하는, 영광을 취하면서 오욕의 자리에도 설 수 있는, 양가적 가치가 통합된 상태를 가장 가치있는 선(善)이라고 하듯이, 한의학이 비단 의료 환경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삶 전체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원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자생(自生)에 뿌리를 둔 몸과 마음의 치료를 통해 우리 삶을 창조적이며 지혜롭게 회복시키는 것이 한의학의 핵심 사상이기에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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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호주의 의료행위는 자연치유에 목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좀 천천히 치유가 되더라도 독한약을 사용하지않고 우리몸 스스로 이길수있는 힘을 길러주는 그런 방법이
동양의학과 비슷하다고할지요........ 한국에서도 꾸준히 글을 실어주심에 감사합니다
네, 바로 그 원리지요. 결국 서양이나 동양이나 의료의 본래 모습은 자연치유의 원리에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살면서 호주 의료 행위는 더욱 그렇다는 걸 느낍니다. 한국은 벌써 춥습니다. 이제 호주는 겨울 채비겠군요...
나이들어갈수록 알콜냄세보단 한약냄세가 좋아요. 글을 읽고보니 아마 따뜻한 온기와 정성이 필요한가보네요
맞습니다. 한방의 은은함이 품위있고 고상한 삶을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인삼이 주인의 발자국소리를 들으며큰다니 말이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되기도하네요
사랑 관심 이런건 비단 인삼뿐이아니라 내가낳은 자식도 그렇게 키우기 어려운데
농부의 마음이 짐작이가는군요
농사짓는 분들은 이 말을 정말 공감하시더군요. 우리도 화초를 가꿀 때 작은 경험을 하지요. 물을 주면서도 말을 건네고 칭찬을 해주면 화초가 윤기나게 잘 자라는 경험 말이죠. 하물며 사람이야...
한방치료는 어쩐지 좀.. 과학적이지 안아서요
과학적이라는 것 속에 우리가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하게 됩니다. 우리 삶의 원동력, 근원에 생각이 미치면 더욱 그러합니다... 병도 그러하지 않을까요...단순한 예로 마음이 힘들 때 병이 드는 걸 생각한다면.
하긴, 오늘 옳다고 생각하는 과학도 내일은 다른 부작용이 많아서 금지하지않나요? 어찌보면 오래동안 우리곁에있었던 동양의학이 앞으로도 함께 가야할 우리것인것 같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