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디로 갈꼬?
정선.단양.구례.무주.부안 ...
온 곳은 아득하고 갈 곳은 막막하다.
식당칸 한 귀퉁이에 갈겨둔 저 낙서를 보고 지인이 말했다.
"당신에게도 그렇게 깊은 번민이 있을 줄이야!"
나는 대답했다
"잠자리는 가을 내내 날아 고추밭을 벗어나지 못하고,
나는 반평생을 헤쳐 달렸건만 아직 첩첩산중이라오."
"그럼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떠하오?"
"어느 생의 고향을 말하는지요"?
" 당신이 찾는 곳이 몸을 누일 곳이 아니군요."
"예! 이 생각을 여읠 곳을 찾고 있습니다."
"부디 뜻 이루시길....."
나는 지난 십 년간 늘 돌아갈 자리를 찾았다.
왜 이 자리가 아니고 딴 곳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영 없는 건 아니지만....
웬지 모르게 나는 갈망하고 있었다.
내가 쉴 곳, 나의 모든 시름을 던져 버릴 수 있을 그곳,
설령 하루를 산다 해도 정말로 여기구나! 할 수 있는 곳을 가고 싶었다.
그곳을 찾아 많이도 다녔다.
처음엔 산이 높고 계곡 깊은 정선이 좋았다.
때론 하동 구례 곡성으로 흐르는 섬진강, 산청 경호강,
더 서쪽으로 장흥, 강진 탐진강까지 구석구석 벚꽃 길을 헤맸다.
언젠가 부안 적벽강의 석양에 밤새 울기도 하고,
신안 앞바다 무인도에 홀로 떠다니기도 했다.
아무런 근거 없는 오로지 나의 직관으로만 판단컨대,
이 땅에서 가장 살 만한 곳은 강진이다.
남도의 산하 강진 벌판에 서서 두 팔을 벌리고, 천 년 전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피가 역류했다.
정수리 끝으로 한 발이나 솟았다가 우유보다 더 짙은 흰색으로 변하여
내 몸속으로 다시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
어쩌면 나는 전생에 강진에서 청자를 굽던 도공이었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곳이 눈에 선하다.
도화담
완벽하다.
능히 살만한 곳이다.
마을 한가운데로 흐르는 큰 내는 돌멩이 하나하나에 다슬기 백 마리씩 감춰놓고 있었다.
수정 같은 물줄기는 큰 호수를 만들고, 햇볕과 바람을 맞은 호수 수면은 보석처럼 찬란히 빛났다.
수면에 깔렸던 루비, 사파이어, 토파즈, 에메랄드, 산호, 비취는 어둠이 깔리면
하늘로 올라 별이 되어 총총히 빛났다.
도화담은 스스로 선계임을 감추려 몇 가지 소품으로 위장하고 있다.
탈색된 도화담 정류소 입간판 ,
플라타너스 잎이 흩날리는 폐교,
물레방아 돌지 않는 방앗간,
고향 사진관 낡은 쇼 윈도 빛바랜 가족사진......
그러고 보니 또 갈등이다.
두 군데 중 어디로 갈까??
아니, 예당 저수지까지 세 군데다.
단양 비마루도 빼놓을 순 없지.......
갑자기 벨이 울린다.
나타샤다.
"우리 지리산 들어가 살아요."
"왜?"
"이녁처럼 멋진 사람들은 다 지리산으로 들어간데요"
"가서 뭘 하지요?"
"뒤뜰에 차나무 심고, 차 덖어 우려서 팔고, 안 팔리면 우리가 마시고 살면 되겠습디다."
"차 만 마시고 살 수 있을까요?"
"제가 화전 부쳐드릴테니 가끔 이슬도 마실 수 있어요 호!호!"
"언제 갈까요?"
"2년 후에요."
"그럼 난 그동안 뭘 준비해야 할까?"
"우리 타고 갈 흰 당나귀 한 마리 준비해요."
"알았어요!"
10년 고민이 나타샤 전화 한 통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런데 흰 당나귀는 어떻게 구하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첫댓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 나는 슬퍼 울렁울렁 눈물을 흘린다.
글 쓴 제마음이 님에게 충분히 전염 된 듯...ㅋ
나타샤를 만나고 싶군요.....
공주로 공주로 향하는 마음을 여기.....공주통나무학교에 묶어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