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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초등학교 6학년) 손자와 함께 157km 서울둘레길(Seoul Trail)을 걸었다.
70년의 나이차(差)에도 모처럼 행복한 10일이었다.
세월은 살과 같다(Time flies like an arrow/光陰如箭)던가.
일본의 압제를 받으며 시작된 내 삶이 어느새 황혼기에 들어있으니.
그간에, 광복은 되었으나 여-순 반란과 민족동란 등 동족살륙의 비극을 겪었다.
독재정권을 몰아낸 학생혁명과 군사쿠데타도 있었고 유신의 종식을 가져온 10.
26사건도 있었다.
5.18민주화운동을 불러온 권력에 탐닉한 세력의 종말을 보았고 민주적 절차에
따른 정권의 교체도 실현되었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았다던 권력의 말로도 바야흐로 보고 있다.
대부분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불행하기 짝이 없는 사건들이다.
그럼에도 앞날은 더욱 불투명하며 부정적이니 이 일을 어찌한다?
모든 면에서 후세에게 각기 본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조신해야 할 세대에게 조신은 커녕 지각 없고 단세포적, 동물적 본능 뿐이다.
사탕발림한 목전의 탐욕 따라 편 가르며 이전투구만 하고 있다.
참으로 한(恨)스럽고 통곡하지 않을 수 없다.
아들부부와 3살과 1살짜리 손자들과 함께 여행 중이던 어느 해 여름.
장마철인데다 장시간의 폭우로 불어난 황토빛 강물이 긴 다리의 난간을 때리며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다리마저 삼켜버릴 듯 기세등등한 강물 위의 다리를 지나갈 때 공포에 사로잡혀
새파랗게 질린 며느리가 손자 둘을 가슴에 안고 부르짖은 말.
"우리는 이만큼이라도 살았지만 아직 세상을 살아보지 못한 이 애들이 불쌍해서
어떻게 해요"
그렇다.
이 통곡은 세상을 실컷 산 나는 물론 얼마만큼이라도 살아본 아들 세대를 위한
통곡이 아니다.
세상에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 떡잎에도 미치지 못한 손자,안쓰럽고 가엾기 그지
없는 그들 세대을 위한 통곡이다.
이 가여운 손자들을 위해서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물려줄 유산이 없거니와 있다 해도 그것은 선이 아니라는 것이 내 신념이다.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우선인데 70년의 갭이 문제다.
그래도 시도해 보려면 방학 기간이 적기라 생각되어 부모의 동의를 요청했다.
손자와 함께 하는 10일간의 157km 서울둘레길 걷기에 대해서.
손자의 부모는 내 아들과 자식 위한 일에는 내가 무한히 신뢰하는 며느리다.
그들의 전폭적인 협조로 조손간(祖孫間)의 장도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8개의 코스 중 아들의 집 권역인 제7코스(봉산.앵봉산)부터 반시계방향(anti
clockwise)으로.
2016년 12월 26일 아침 9시.며느리가 손자를 데리고 나온, 7코스의 관문인 구파발역 3번출구 앞에서
모자의 기념촬영으로 시작(위)
역(anti)7코의 첫 문을 통과한 후(위) 곧 첫 스탬프를 찍었다(아래/스탬프대로 재활용하는 빨간 폐 우체통)
설명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손자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시설이다(위/아래) .
65년 넘게 보수를 거듭하며 관리하고 있으니, 아직도 필요한 시설이라면 슬픈 현실이며 비극 아닌가.
온몸으로 겪은 할아버지의 설명에 손자의 반응은 "그랬었구나". 할아버지에게는 자기의 현실이었지만
손자에게는 Once upon a time이거나 먼 나라의 일이니 조손간의 이 괴리를 어떻게 극복한다?.
길을 걷다가 틈만 나면 스마트폰이다.(위)
걸으면서도 이 괴물에 매달리고 있으니 위험천만이다.
원만한 조손 관계의 유지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될 것임이 분명한 스마트폰.
10일간의 함께 걷기의 성패가 이 폰의 성공적 관리 여부에 달려 있다면?
꾀꼬리가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앵봉산(鶯峰/위).
해발 230m로 16.6m라는 이 구간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라 하나 날씨 탓으로 돌릴까(아래)
쉬기를 자주 하려는 손자의 속내를 알아차렸지만(위)
1.200km 시코쿠헨로(四國遍路/일본)를 걸을 때 사용했던 수기다(
차량 통행이 많은 횡단보도를 건너갈 떼 사용하라고 트럭 협회가 만들어 놓은'横断中'수기가 손자에 의해 재활용 중.
서울시 은평구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경계인 서오릉로의 '벌고개' 횡단.
서오릉을 거론하면서도 서오릉을 코스에서 제외한 까닭은?
서울시 소재가 아니고 경기도 고양시에 있기 때문?
서오릉(西五陵)은 경릉(敬陵),·창릉(昌陵),·익릉(翼陵),·명릉(明陵),·홍릉(弘陵) 등 다섯 능을 말하며,
이조 왕실의 왕릉군(群)이다.
관심을 갖기에는 아직 연소하기 때문인지 시각적인 현장에서 설명해도 반응은 "그렇군요"인데 보이지도
않는 능들을 설명한다?
장황한 이야기에 대한 실증이 걸음에 까지 미칠까 겁이 났다.
해발209m 봉산烽
봉수는 변방에서 발생하는 병란 또는 사변, 기타 위급한 상황을 낮에는 연기를 피워서, 밤에는 횃불로
릴레이(relay)하여 중앙에 알리던 통신수단이다.
내 설명 중에서 손자가 가장 빨리, 가장 쉽게 반응했다.
병란, 사변 등 단어에 대해서도 물으며.
봉수대가 있던 자리 바로 아래에는 무인 산악 기상관측 장비가 설치되어 있다.(위)
동일 지형이 원시적인 통신시설과 첨단 관측장비 설치에 적합하다니.
자연의 오묘한 조화인가.
초등학생의 멘트도 있었다.
'발전'
할아버지, 왜 길이 이렇게 많아요?(위)
어린 손자의 눈에도 궁금하고 이상하게 보이는 듯.
요즈음 블랙리스트로 각광(?) 받고 있는 정부 부서에 엄청난 돈이 배정되어 있다.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인데 마치 시혜하듯 임의로, 부정하게 사용하다가 걸린 것이다.
지자체들이 길 만드는데 보태주는 돈도 있는데 그 돈 때문에 갖가지 이름의 길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손자에게 이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건강을 위한 각종 체육시설 설치는 우리나라가 세계 제일이다.
도농간에 가장 평준화 된 항목 역시 체육시설이다.
블랙리스트로 홍역을 치루고는 있지만 그 부서의 공(?)이 크다 할까.
이 코스의 2번째 스탬프대가 있는 이 곳도 체육공원(증산)이다.
체육공원이 다른 공원과 어떻게 다륹지는 애매하지만 아무튼.
금강산도 식후경.
점심을 먹기 위해 둘레길을 이탈, 불광천을 건넜다.
서대문구 남가좌동으로.
내 손자의 식욕이 이렇게도 왕성함을 미처 몰랐다.
삼겹살 1.5인분이 정량이라면 체구의 왜소함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서울둘레길은 불광천 천변로를 따라 서울월드컵 경기장으로 이어진다.(위)
2002년 FIFA의 한-일 월드컵 경기 개최를 위해서 건설했으며 66.806명(지금은 66.704석)을 수용하는 축구
경기장인데 내가 외모나마 육안으로 보기는 처음이다.
삼각산 자락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15년이 걸린 것.
까미노에서 만난 에스뺘뇰과 뽀르뚜게스, 이탈리아노들은 대개 꼬레아를 아는데 부정적이다.
모두 꼬레아와의 경기에서 부당하게 패했다는 것.
가랑비를 우산으로 피하며 난지도 제2매립지에 조성된 하늘공원 앞으로(아래)
해발 8m의 저지대였던 난지도가 최고 높이 해발 98m에 이르는 쓰레기 산이 된 이후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가스로 인한 폭발 가능성이이 회자되면서 접근을 두려워한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러나,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와 다른 혼합물들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월드컵 공원과 서울월드컵
경기장 시설의 열 에너지원으로 활용함으로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올리고 있단다..
쓰레기 더미를 노다지(no touch)로 만드는 지혜여! God bless you.
월드컵 공원은 5개의 테마공원(평화의 공원, 하늘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 난지한강공원/한강시민공원
난지지구)으로 조성되어 있다
도로변의 높은 축대에는 각종 다람쥐와 청설모 등 다람쥣과와 점프력이 약하거나 몸집 작은
동물들의 통로가 되도록 통나무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경사지게 묶어놓았다.(아래)
그 까닭을 손자에게 물었다.
관찰력 테스트였는데 1분도 못되어 정답이 나왔다.
나는 한참만이었는데 청출어람인가.
서울둘레길은 유감스럽게도 제2매립지에 조성된 하늘공원으로 오르지 않고 제1매립지에 만들어진
노을공원 쪽 차로를 따른다(위/아래)
우리나라에서 메타세쿼이아 길(metasequoia)의 오리진(origin)은 전라남도 담양군이다.
도로의 양쪽 가장자리에 서서 하늘을 찌를 듯 키 큰 아름드리 나무의 가지로 이룬 터널 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선정되는 것이 당연하도록 참 아름답다.
하늘공원에서 노을공원에 이르는 메타세쿼이아 길이(위/아래) 담양군 길에는 미치지 못해도
미구에 아름다운 길로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다만, 실기하기 전에 대담한 간벌 또는 이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거대한 속성수를 마치 묘목처럼 촘촘히 심다니?
난지2문을 통해서(위) 난지나들목으로(아래)
난지나들목(위)에서 지하통로를 거쳐(아래) 한강의 한강 진입 계단과 엘리베이터 앞(아래2)까지
가는 동안에는 조금은 지친 듯이 보인 손자.
"햇비들기는 아무리 싱싱해도 산등성을 넘지 못한다"는 격언이 있다.
힘의 안배와 지구력의 양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오전의 활달한 걸음에 비해 생기가 줄어든 동작이 그 증거다.
1개 층을 오를 뿐인데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위) 가양대교(아래)를 걸을 때는 구간 종점까지의
거리를 거듭 물어오는 손자에게 걷기를 기피할 정도의 무리가 올까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1.7km(측정 기준점에 따라 길이가 각기 다름) 가양대교만 건너면 되는 것이 천만 다행
.
2002년 5월에 개통되었으며 교각 간의 거리(100m~180m)가 국내의 교량 중에서 가장 길다는 다리.
다리의 길이에 비해 교각수가 가장 적으므로 시각적으로 간결하다는 뜻이다.
1960년대 초까지 한강에는 1개의 철교를 포함해 3개의 다리가 있었다.
1900년에 개통된 한강철교를 시작으로 모두 일제때 건축된 한강대교와 광진교가 전부였다.
한데, 지금 한강에 놓여있는 다리는 4개의 철교를 포함해 32개란다.
언젠가는 한강이 복개되지 않을까.
지혜롭게 덮으면 엄청난 황금 땅이 생성되겠다.
구간 마지막이며 순방향으로 진행하면 첫번째가 되는 스탬프를 찍어(위) 첫날의 일정을 무사히
마무리하게 되었는데 무심코 화살표를 따라감으로서 다음 구간의 첫 스탬까지 찍었다(아래)
개인 신상의 굴곡도 이만저만 아니었다.
7살부터 시작된 수술대에 눕기가 6차레에 달하는 과정에 앉은뱅이,목다리 등의
시기가 거듭되었다.
그랬지만, 지구를 3바퀴 돌았을 만큼 나라 안팎의 산과 길을 누비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 산수를 넘긴지도 한참 되었으니 무슨 욕심을 더 부리겠는가.
어린 손자와 함께 오순도순 하루를 걸어보니까 이보다 더한 낙이 없을 듯 하며
아무리 큰 세대간의 갭이라도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긴 사라리의 꼭대기에 앉아서 올라오기를 바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미
올라온 사람이 내려가서 만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니까. <계 속>
첫댓글 함께하는 즐거움으로 재미나게 따라 읽어가 보렵니다....손주와의 멋진 동행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