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베드로
[Petrus/
영어 Peter Simon피터 사이몬]
첫번째 교황이며 십이 사도들의 지도자. 갈릴리에서 어부 요나의 아들로 태어나 아우 안드레아와 함께 어부 생활을 하던 중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그의 원 이름은 시몬이었으나 예수가 그에게 베드로 또는 아랍어로 게파(Cephas)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요한 1:42) 베드로나 게파는 둘 다 '바위'라는 뜻이다. 이러한 이름은 그의 강한 성격에도 어울리지만 후에 그리스도가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라고 하심으로써 그의 이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셨다. 베드로가 사도들 중에서 지도자적 역할을 담당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성서에서 그의 이름은 사도들의 명단 중 언제나 제일 처음에 기록되었으며(마르 3:11) 다른 어떤 사도들의 이름보다 빈번히 복음서에 나타나고 있다(루가 5:10). 베드로는 사도들의 대변인 역할을 했으며 예수가 사도들에게 질문할 때마다 그들을 대신하여 답변하곤 하였다. 베드로는 또한 예수의 거룩한 변모(transfiguration)의 증인이며(마태 17:1-8) 예수가 야이로의 딸을 살려냈을 때 그와 함께 있었고(루가 8:51) 게세마니에서 그리스도가 공포와 번민에 싸여 기도하고 있을 때도 그와 함께 있었다(마르 14:33). 예수는 자신과 베드로를 위하여 성전세를 바치셨으며(마태 17:24-27)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음을 알려주면서 천사는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전하라"(마르 l6:7)고 말하였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후에 베드로는 유다의 후계자를 뽑는 모임을 마련했으며(사도 1:15-26) 바울로와 바르나바가 참석했던 예루살렘 회의를 주관하고 논쟁을 잠잠케 하는 연설을 하기도 하였다(사도 15:6-12). 4복음서에 기록된 그 밖의 많은 일화들이 베드로의 지도자적 역할을 명백히 해주고 있으며 그는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신(요한 21:16-17) 그리스도의 마지막 말씀에 진심으로 순종하였다. 베드로는 여러 가지 강점들을 지니고 있었으나 때로는, 인간적인 결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의 성급함은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 동산에서 대사제의 종 말코스의 오른쪽 귀를 잘라버린 사건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요한 18:10). 그는 메시아적 사명을 잘못 해석하여 예수의 꾸지람을 듣기도 했고(마르 8:33) 예수와 자신과의 관계를 부인하는 비겁함을 드러내고는 몹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였다(루가 22:54-62).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약점들 중의 그 어느 것도 예수가 그에게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 16:19)고 말씀하심으로써 부여한 그의 역할의 중요성을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그리스도의 승천 후 베드로는 그리스도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아그리파 (Herod Agrippa) 1세에게 붙들렸다가 도망하여 소아시아 및 안티오키아에서 전도하였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로마에서 잠깐 동안 그리스도 교단을 주재하였으나 네로의 폭정 아래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는 후에 로마 초대 교황으로 추대되었다. [참고문헌] J. Lebreton and J. Zeiller, The History of the Primitive Church, New York 1961/ D. Stanley, Etudes mattheennes: La confession de Pierre a Cesaree, science Ecclesiastiques 6, 1954/ O. Cullmann, Peter, Disciple, Apostle, Martyr: An Historical and Theological Study, Philadelphia 1962/ O. Karrer, Peter and the Church: An Examination of Cullmann's Thesis, New York 1963.
NOTES:
*시몬베드로 : 어부이구요.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던 그 사람이지요.
O The First[Second] Epistle General of Peter(略Pet.)
/ 1 Peter[2 Peter]
: 베드로 (전,후)서(書)
O epistle:n.서간,편지;사도(使徒)서간
the Epistle to the Romans :로마서
2.안드레(아)
[라틴어 Andreas/
영어Andrew 앤드류]
열두 사도의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의 동생. 벳사이다 출신의 어부이며 예수를 처음 만나 몇 시간 동안 함께 지냈을때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 이튿날 형 시몬 베드로를 데리고 예수를 찾았을 때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 아니냐? 앞으로는 너를 게파라 부르겠다."라는 말씀을 들었다. 이들 형제는 갈릴리아호수에서 예수님의 부르심 을 받고 사도가 되었다. 예수를 뵙게하여 달라는 그리스 사람들의 간청을 들어 필립보와 함께 예수께 말씀드린 사실 에서 두드러진 지위를 엿볼 수 있다. 예수님을 집에 모셨고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의 종말이 언제 일어나는지를 예수께 질문했고 5,000명을 먹인 기적에서 한 소년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다고 보고하였다. 위경 `사도 안드레아의 행전'은 비신화화하기 어려운 역사적 사전을 간직하고 있다. 전승에 의하면 안드레아는 북 그리스, 에피루스 등지에서 선교하였다. 70년경 그리스 파트라스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술에는 십자가를 든 모습이 많다. 러시아와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이다
NOTES:
*안드레 : 원래는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그리고 5000명의 무리에게 생선과 빵을 먹일때
예수님께 시험을 당했던 사람입니다.
3.야고보
[라틴어Jacobus/
영어James제임스]
①열두 사도의 하나이며 알패오의 아들. 고대 전승은 작은 야고보와 동일 인물로 보는데 `작은'이란 신장이나 나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차야고보라 불러 왔 다. 전승은 나아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를 동일시한다. 그러므로 알패오와 글레오파는 동일 인물을 가리키는 두 개의 이름이며, 더구나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자매이므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주님의 형제뻘인 야고보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하여 최근의 다수 학자들은 신약성서에서 사도들과 주님의 형제들이 구별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구별은 사도 1:14와 1고린 15:7에서도 드러난다. 주님의 동생 야고보는 예루살렘의 야고 보와 같으며 바울로가 `야고보와 게파와 요한'을 교회의 기둥으로 열거한 것도 갈라 1:19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 다. 정경인 야고보의 편지는 주님의 동생 야고보가 쓴 것이다. 예루살렘의 야고보는 62년 혹은 66년경에 순교하였다. 동방전례에는 예루살렘의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다른 인물로 보고 축일을 달리 지내나 로마 전례에는 양자를 동일인으로 보아 5월 1일을 축일로 지낸다.
②열두 사도의 하나이며 제베대오의 아들. 축일은 7월 25일.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구별하여 장야고보라 불러 왔으나, 성서에서 붙인 호칭은 아니다. 갈릴래아의 어부였으며 삯꾼을 고용할 정도로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살로메이며, 이들 형제가 `천둥의 아들'이라 불린 이유는 사마리아 동네의 냉대를 참지 못해 하던 과격한 성격때문일 것이다. 44년 헤로대왕에 의하여 죽음으로써 사도들 중 첫 순교자가 되었다. 전승은 야고보의 스페인 여행시기를 예수님의 죽음이후, 야고보의 순교이전으로 잡고 있으나 이는 바울로의 말씀과 맞지 않는다. 스페인 콤포스텔라의 산티아고에 안치된 유해가 야고보의 것인지에 관하여 교황레오 13세가 칙사에서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다투어지고 있다. 회화에서 순례자의 종을 들고있는 모습이 많다.
NOTES:
*야고보 : 베드로와 함께 어부생활을 했던 사람이구요,
12제자중 제일 먼저 순교한 사람입니다.
O James:야고보;
야고보서
4.요한
[라틴어 Joannes/
독일어 Johannes/
영어John 존]
사도 ∼ (J. Apostolus, ? ∼100?) 12사도의 한 사람. 성인. 갈릴레아의 어부, 제베대오의 아들. 장(長)야고보의 동생(마태 4:21, 10:2, 마르 1:19, 3:17, 루가 6:14, 사도 1:13). 형 야고보와 함께 일찍부터 가업(家業)을 버리고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마태 4:21,22). 12제자 중에서도 베드로, 형 야고보와 함께 대표적 인물이며, 예수 생애의 중요한 장면에 등장하고 있다(루가 8:51, 마태 17:1, 마르 14: 33). 타고난 과격한 성격 때문에 `벼락의 자식'이라 불릴 정도여Twlks(마르 3:17), 요한 복음이나 편지 등과 관계가 깊다고 보고 `사랑의 사도'로도 일컫는다. 요한 복음에는 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예수가 사랑하고 계신 자" (13:23)라는 것이 요한이라고 일컫기도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로부터 성모 마리아를 돌보아 드릴 것을 부탁 받았다(요한 19:26). 성신 강림 후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사도 3:1)과 사마리아(사도 8:14)에서 포교활동을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황제(재위 : 81∼96)의 대박해 때 파트모스섬으로 유배되었다가 에페소로 돌아가 서기 100년경에 90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파트모스섬에서는 <요한 묵시록>을, 에페소에서는<요한 복음>과 3서한을 썼다고 한다. 미술에서는 독수리 또는 안에서 뱀이 기어 나오려 하고 있는 배(杯)와 함께 복음사가로, 파트모스섬 위의 환시자(幻視者)로, 또는 펄펄 끓는 솥 속의 환시자로 묘사되고 있다. 축일은 12월 27일. 세례자 ∼(J. Baptista) 사제 즈가리야와 엘리사벳의 아들. 예수의 사촌(루가 1: 36). 세례자로 불리는 것은 예수에게 세례를 주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하느님의 권위에 의해서 세례의 새로운 의식, `회개의 세례'를 가르쳤기 때문이다(마태 3:13-17, 마르1:9-11, 루 가 3:21 이하). 그의 출생, 석녀(石女)의 잉태, 어머니 태내에서 이미 성령이 충만함, 할례(割禮), 명명(命名) 등이 천사(가브리엘)에 의해 성전(聖殿)에서 그의 부친 즈가리야에게 고해졌다(루가 1). 가장 위대한 예언자로서 예수에 의해 증명되고(루가 7:28) 태어나면서부 터 평생을 나지르 사람으로서 바쳐진 수행자(修行者)이며, 메시아의 선구자(先驅者), 선지자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루가 1:17, 마태 17:12이하). 청년시절에 황야에서 기도와 고행으로써 자신을 준비하고 부름 받을 때를 기다렸다(루가 1:80). 로마황제 티베리우스(재위 : 14∼37)의 재위 15년째인 28년에 하느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자, 그는 베타니아의 요르단 계곡으로 갔다(요한 1:28). 그리고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으니'(마태 3:2), 죄를 용서받기 위해(루가 3: 3) `회개의 세례 '를 받을 것을 전달하였다. 요한의 세례에는 원죄(原罪)를 사해줄 힘은 없다. 이 세례는 내심의 영성(靈性)을 상징한 것 이며, 이것을 받으려면 내심의 개선을 필요로 한다. 이 세례는 하느님 나라에 받아들여지기 위한 회개에 의한 준비단계로서, 죄의 고백도 포함되어 있었다(마태 3:6). 그는 선교(宣敎)의 초기부터 자기는 메시아가 아니라면서, 장차 오게 될 메시아의 증인이 되었다(루가 3:15-18, 요한 1:19-28). 그는 장차 오게 될 그리스도를 위한 길을 마련하였다.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주는 것을 사양한 요한에 대해, 그리스도는 "모든 정의는 완수해야 한다"(마태 3:14) (예수는 죄인인 인류의 대표자로서 죄인처럼 세례를 받아야 하며, 그것은 구세주로서 완수해야 하는 의무라는 뜻)고 말하고 요르단강에서 요한으로부터 영세 하였다. 요한은 자기 제자와 어떤 유다인이 세례에 관해 의논했을 때, 제자들에게 답하여,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신랑 과 신랑의 친구의 비유를 가지고 그리스도에 관해 증명하고,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25-30)고 말하고 그의 선교를 끝마쳤다. 그후 갈릴래아 분국(分國) 헤로데 대왕의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의 결혼에 대해 그 부도덕 함을 비난했다가 체포되어 사해(死海) 동쪽 마케르스성(城)의 감옥에 투옥된 후 참수당하였다. 십자가의 ∼ (J. a Cruce, 1542∼1591) 성인 축일은 12월 14일. 스페인의 신비가. 아빌라의 데레사(Reresa of Avila)와 함께 맨발 의 가르멜회를 창설하였다. 폰티베로스(Fontiveros)에서 귀족 혈통을 이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563년 메디나 델 캄포(Medina del Campo)에 있는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갔으며, 살라만카(Salamanca)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1567년에 서품 받았다. 좀 더 엄격한 수도 규칙을 찾아 카르투지오회(會)의 수사(Carthusians)가 되려고 하였으나 아빌라의 데레사에게 설득되어 데레사의 개혁을 가르멜 남자수도회에 소개하고, 두루엘로(Duruelo)의 첫 개혁 수도회(맨발의 가르멜회)에 입회하였다. 그 뒤 알 칼라 데 헤나레스(Alcal de Henares)에 있는 가르멜회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으며(1570∼1572년), 아빌라의 강생수도원의 고해신부 가 되었다(1572∼1577년), 그러나 1577년 개혁을 원하지 않는 수도원장 때문에 톨레도(Toledo)에 있는 가르멜 수도원 에 갇혔으며, 9개월만에 칼바비오(Calvavio)의 수도원으로 도망침으로써 가르멜회는 맨발의 가르멜회와 이전의 가르멜회로 완전히 분리 되었다. 그는 베자(Baeza) 대학의 총장(1579∼1581년)과 세고비아(Segovia)의 소수도원장을 지냈으며, 1581년부터는 그라나다에서 아라비아의 신비주의와 접하였다. 이리하여 개인적인 체험과, 성서 및 토미즘을 바탕으로 하여 주석을 덧붙인 <갈멜산에 오름>(The Aseent of Mount Carmel), <영혼의 어두운 밤>(The Dark Night of the Soul), <영의 노래>(The Spiritual Canticle), <타오르는 사랑의 불길>(The Living Flame of Love) 등의 작품을 남겼다. 말년에는 선임자에게 불신을 받고 라 페누엘(La Penuel)의 탁발 수도회에서 우베다(Ubeda)로 쫓겨가 거기서 세상을 떠났다. 1762년 시성, 1926년교 회학자로 선포되었다. (→) 가르멜회 몬테코르비노의 ∼ (J. a Monte Corvino, 1247∼1328) 최초의 중국 선교사. 나폴리왕국 몬테 코르비노에서 태어나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였다. 1289년까지 아르메니아 와 페르시아에서 활동하다가 그 해 아르메니아의 왕 하이툰(Haitun) 2세의 사절을 대동하고 교황 니콜라오 4세를 만났고, 교황의 서한을 후대하여 다시 동방으로 갔다. 그 서한 가운데 하나가 몽고왕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1291년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에 도착하여 약 1년 동안 머무르면서 100여명을 개종시켰다. 1292년 바다를 건너 중국에 도착하였고, 1294년 북경에 입성하였다. 당시 북경에 인접한 산서성(山西省) 에는 네스토리우스파의 일파인 경교도(景敎徒)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과 논쟁하여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고, 1299년에는 북경에 최초의 성당을, 1305년에는 제 2의 성당을 각각 건립하였으며, 신약성서 와 시편을 번역하는 등 저술활동을 폈다. 1307년 교황 글레멘스 5세는 그를 북경주교로 임명하였다. 그는 또 복건성(福建省)에 대성당 과 수도원을 건립하고 교구를 설치하게 하였으며, 북경에도 수도원과 제 3성당을 설립하였다. 그가 죽은 지 약 40년 후인 1368년 몽고가 중국 땅에서 축출되면서 그가 활동한 중국포교지의 교회도 거의 소멸되었다. 1924년 상해 중국교회회의 는 교황청에다 그의 시복을 신청하였다. 천주의 성 ∼ (J. a D대, 1495∼1550) 성인. 원명은 Juan Ciudad. 포르투갈의 몬테 모로노보 태생. 파란 많은 생활을 한 뒤 스페인 카스틸랴의 오로프루사(Oroprusa) 백작의 목부(牧夫)가 되고, 이어서 1522년 백작 휘하의 병사(兵士)가 되어 스페인 프랑스 전쟁에 참전, 후에 헝가리에서 스페인 터키 전쟁에서도 싸웠다. 그 뒤 아프리카로 추방된 한 귀족의 하인이 되었는데, 아빌라의 복자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 덕행에 매료되었다. 1540년 그라나다(Granada)에 병원을 세우고, 영웅적인 사랑과 헌신으로 병자를 돌보면서 의료봉사(醫療奉仕) 사업에 몸을 바쳤다. 그가 죽은 뒤 1589년 교황 식스토 5세의 인가를 얻어 `요한의 자비의 벗 모임'이 발족되었다. 1630년 교황 우르바노 8세에 의해 시복(諡福), 1690년 알렉산데르 8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레오 13세는 1886년에 또한 비오 11세는 1930년에 각각 그를 병원 병자 간호인 등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하였다. 축일은 3월 8일 그의 유골은 그의 이름을 붙인 그라나다의 동수도회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NOTES:
*요한 :역시 세례요한의 제자였으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있었을 때
곁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o John:세례요한(=John the Baptist);
[St.John]사도요한;
요한복음;
요한의 편지
[1서(1John),2서(2John),3서(3John)]
O Baptist:n.세례주는 사람;뱁티스트(침례교인);
[the Baptist]세례요한;(the Bapotists)침례파
a.침례교회[파]의
O Baptist Church:침례 교회
5.빌립
[영어 Philip 필립]
뜻 : 말을 사랑하는 사람
[1] 사도 빌립:
열두 사도중 한 사람(마10:3, 막3:18, 눅6:14, 행1:13).
뱃세다 출신(요1:44).
나다나엘을 인도(요1:45).
요한 복음에 자주 언급 되었다
(요1:44, 6:5, 12:21,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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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부름을 받은 [빌립]("말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은 영적으로 우둔하여 실수도 많이 하였으나, 결국 자신 의 생명을 바쳐 하늘나라의 한 기초석이 된 믿음의 선진이다. 갈릴리 벱세다 마을에서 빌립은 친구 안드레와 함께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키우고 있었다.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며 진리를 찾아 구하던 빌립은 마침 벱세다에오신 예수님을 만남을써 복된 인생이 되었다. 예수님을 만난 빌립의 넘치는 기쁨으로 그의 친구 나다나엘을 주님께 인도하는 열심을 낳기도 했다. 예수님으로부터 최초의 제자로 부름을 받고 따라 나서는 빌립의 앞길을 항상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의 길이었다.
그러나 자신과 함께 계신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이심을 확신하지 못하는 빌립의 발걸음은 비틀거릴 수 밖에 없었다. 영적으로 무딘 빌립은 비록 예수님과 동행하며 많은 가르침을 받고 기적을 목격하였으나 믿음과 인간의 합리적인 생각 사이에서 혼란이 계속되었다.
순수한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 아닌 실제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빌립의 마음에는 그 어떤 믿음의 열매도 결실하기 힘들었다. 이러한 빌립의 충심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그에게 시험하시는 질문을 하셨다. 갈릴리 호숫가에 모여 있는 수많은 무리의 음식물을 구할 방법을 물으시는 예수님께 빌립은 인간의 방법 밖에는 제의할 것이 없었다.
전능자이신 주님의 곁에서 지내면서도 빌립은 그의 스승을 올바로 알고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또한 조심성이 많고 결단력이 부족했던 빌립은 예수님을 만나기 원하는 헬라인들을 선뜻 주님께 인도하지 못하는 소심함을 보이고 말았다. 이러한 빌립의 불신은 부활하신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주님과 동고동락하는 삼년 반의 세월이 지나도록 빌립의 눈은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인간적인 생각과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고를 하는 빌립을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놓으셨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에 순종하여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빌립은 뜨거운 성령 체험을 통해 불신의 장막을 제치고 믿음의 새아침을 맞게 되었다.
[육신의 사람] 빌립은 보는 것만을 믿을 수 있었으나
[영의 사람] 빌립에게는 믿는 것이 보는 것이 되었다. 이후로 빌립은 성령께서 그의마음을 주장하시자 이전의 결함많은 모습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사도로서 사명을 훌륭하게 감당하였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빌립은 열심으로 복음을 전파하다가 히에라폴리스에서 순교 했다고한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뛰어나게 능력있고 영리한 그리스도인들도 있으나 빌립처럼 우둔하고 결함이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두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자녀로 삼으시기를 원하신다. 뛰어난 사람들과 부족한 사람들이 함께 합력하여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갈 때 하나님의 전하신 뜻은 이루어질 것이다.
[2] 전도자 빌립:
예루살렘 교회에서 피선된 일곱 집사중의 일인(행6:1-6).
사마리아에 전도하고 이디오피아 고관을 개종 시켰다(행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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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은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서 열심으로 전도 활동을 한 평신도 전도자로 유명하다. 예루살렘교회에서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빌립은 모든 성도들의 귀감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즈음 초대교회 내에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구제품이 불공평하게 분배된다는 이유로 원망의 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모인 사도들은 구제사업을 전담할 일곱 집사를 세우기로 합의하였다. 성령과 지혜가 세우기로 진실한 빌립은 성도들에 의해 집사로 선택받고 사도들에게 인수받아 구제와 봉사에 힘쓰게 되었다. 그 후 교회는 점점 성장해 갔으나 교회에 대한 유대인들의 핍박도 이에 비례하여 심해져 갔다. 핍박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의 목숨을 노리게 이르렀고 그 첫 희생자로 스데반 집사가 순교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를 기화로 박해는 날이 갈수록 극심해지고, 결국은 성도들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복음을 확산시키는데 헌신할 사명감을 느꼈다. 사마리아 지방으로 내려간 빌립은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을 전파하기시작했다. 당시 사마리아에서는 우상을 섬기고 술객들이 활개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중에도 예수님께서 전하셨던 복음을 싹틔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요4:39-42 참조) 빌립은 예수 이름으로 병든 자들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 내는 등 많은 이적을 행하였다. 술객들마저 극복할 수 밖에 없는 빌립의 능력 앞에 사마리아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세례 받기에 이르렀다. 수많은 무리가 빌립을 따르게 되고 사마리아에는 기쁨이 가득하였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빌립을 사마리아에 그대로 머물게 하지 않으셨다.
사마리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명예를 버리고 성령의 인도대로 빌립은 광야길로 떠난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는 빌립이 가는길은 하나님의 예정 속에 계획된 길이었다. 광야길에서 빌립은 이디오피아 여왕 간디게의 내시를 만난다. 마침 성경을 읽고 있던 내시는 빌립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듣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다. 하나님께서 그의 충성된 일꾼 빌립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의 복음화의 장을 열게 하신 것이다.
신실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있을 때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받은 빌립은 민족적 감정을 뛰어넘어 사마리아인들은 물론 이디오피아의 내시를 변화시켜 주님의 나라를 확장시켰다. 또한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항상 하나님의 본위로 순종하며 살아감으로써 전도자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오늘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의 발을 맡기고 오직 "예수 이름으로" 하늘 나라를 전파하는 이름없는 전도자들의 열심으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찬양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3] 헤롯 빌립 1세:
헤롯 대왕의 아들 중의 하나.
헤로디아는 빌립의 이복형 헤롯 안디바의 아내였는데
다음엔 다른 이복형 헤롯 안디바의 아내가 되었다.
그래서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의 비난을 받았다(막6:17, 마14:3).
NOTES:
*빌립 : 야고보와 함께 5000명의 무리를 먹일때
시험당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하느님을
보여달라고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6.바르톨로메오
[라틴어Bartholomaeus/
영어Nathanael 너쌔뉴얼]
열두 사도의 하나. 축일은 8월 24일. 바르톨로메오는 공관복음서(마르 3:l8, 마태 10:3, 루가 6:14)와 사도행전(1:13)에 다른 사도들과 함께 이름이 나열되어 있을 뿐이며 그밖에 바르톨로메오라는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요한복음(1:45-51, 21:2)에 나오는 나다나엘(Nathanael)은 바르톨로메오와 동일 인물이라 추정할 수 있다. 양자가 동일 인물이 아니라면 일찍이 주님의 제자가 된 나다나엘이 공관복음서에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열두 사도의 하나인 바르톨로메오가 요한복음에 언급이 없는 사실이 부자연스럽다는 점, '바르톨로메오'는 '달메의 아들'(bar-Talmai)이란 뜻으로 성(姓)이므로 이에 이름이 있으리라 보며 나타나엘은 그의 이름일 수 있다는 점, 공관복음서에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가 함께 나열되어 있고 요한복음(1:45-46)에서 또한 필립보가 나다나엘을 예수께 데려갔다고 하여 함께 소개되어 있는 점 등을 그 논거로 한다. 전승에 의하면 바르톨로메오는 이디오피아, 인디아, 페르시아 등지에서 선교 활동을 하였다. 성무일도서에 따르면 그는 또한 아르메니아에서 선교하다가 거기서 순교하였는데, 살아 있는 채 피부가 벗겨지고 참수당하였다. 그래서 그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최후의 심판>에서 벗겨진 피부를 드러내 놓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NOTES:
*나다나엘(바르톨로메오) :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부른 첫번쨰 사람입니다.
7.토마스
[라틴어 Thomas ?/
영어Thomas토마스]
열두 사도의 하나. `쌍동(雙童쌍둥)이'를 뜻하는 아랍어에서 유래한 이름이며 축일은 7월 3일. 공관복음에는 열두 사도의 명단 가운데 한번 언급될 뿐이나(마태 10:3, 루가 6:15, 마르 3:18)요한복음에는 여러번 등장한다. 예수님이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유다로 돌아가려고 하실 때 "가서 그우리도 함께 와 생사를 같이합시다"(요한 11:16)하면서 굳은 신앙과 용기를 보였고, 예수님의 행선지와 그 길을 오해한 결과 "나는 길이요 진리 요 생명이다"(요한 14:7)라는 말씀을 들었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뵙지 않고는 스승의 부활을 믿지 않겠다고 고집하다가 마침내 예수님을 뵙고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요한 20:29)하고 고백하였다. 그리스도교 전승과 전설에 의하면 카스피해와 페르 시아만의 중간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였고 멀리 동인도에까지 왕래하였다고 전한다. 위경인 `토마스행전'에 따르면, 목수로 일하면서 선교하다가 인도에서 순교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예술에는 부활한 예수님을 직접 뵙고 확인하는 장면과, 목수의 연장을 들고 있는 모습이 많다. 중세에 건축가, 석공의 주보성인으로 공경받았다.
NOTES:
*도마 :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바로 믿지 못하고
상처를 만져보게 해달라고 한 제자입니다.
8.마태(오)
[라틴어 Matthaeus/
영어Matthew 매쓔]
복음사가. 축일은 9월 21일. 12사도의 한 사람(마태 10:3, 마르 3:18, 루가 5:27). 마르코 복음서 2장 14절, 루가 복음서 5장 27절의 두 군데서 그를 레위(Levi)라고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완전한 성명은 '레위 마태오'이다. 알패오(Alpheus)의 아들(마르 2:14)이고, 예수에게 불려가기 전까지는 로마제국을 위해 세금을 징수하는 가파르나움의 관리였으며(마태 9:9), 주를 따르라는 소명을 받은 후 자기 집에서 예수를 위해 연회를 베푼 것으로 보아 상당히 부유했던 것 같다(루가 5:29). 성령 강림 후 팔레스티나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데, 그 장소는 에티오피아·페르시아 ·파르티아(Parthia) 등 여러 설이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그리스 신학자인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Titus Flavius Clemens, 150년경-215년경)에 의하면 마태오는 채식주의자였으며, 12사도는 아무도 순교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에 반해서 다른 외전(外典)의 마태오 행록에는 화형(火刑), 돌에 의한 순교로 언급하고 있다. 그의 유해는 처음에 에티오피아로부터 페스툼으로, 다시 10세기에 이탈리아의 살레르노(Salerno)로 옮겨졌다. 축일은 라틴교회에서 9월 21일, 동방교회에서는 11월 16일, 코프트교회에서는 10월 9일이다. 복음사가로서 마태오는 그리스도교 예술에서는 인간(후에는 날개가 달린 천사)으로 상징되고 있으며, 사도로서는 책·칼 또는 창이 표호(票號)가 되고 있다.
NOTES:
*마태 : 제자이기전에 세리였던 사람입니다.
o Matthew:마태;마태[마태오]복음[略Matt.]
9.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작은 야고보
[영어James제임스]로 불림.
이 별명은 그의 키를 일컬어 말하는 것 같다
그의 자료는 거의 나오지 않음.
10.다대오
[라틴어Thaddaeus/
영어Thaddeus쌔디어스]
성인,Saint Judas의 별칭, 축일 10월 28일. 12사도의 한 사람. 마태오 복음서 10장3절, 마르코 복음서 3장 18 절, 루가 복음서 6장 16절, 사도행전 1장 13절에 그 이름이 나온다. 그는 소(小)야고보의 형제요, 따라서 '예수의 형제' 의 한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에게는 소서한(小書翰)이 남아 있다. 그는 선교왈동을 팔레스티나에서 한 것같다. 그곳에는 그의 손자가 로마황제 트라야누스 시대까지 거주하고 있었다. 서한에 의하면 유다는 정력적인 힘을 가진 인물이며 중후(重厚)한 심성의 논쟁가였던 것같다. 18세기말부터 그는 가톨릭 교도들 사이에서 특히 어려움을 당했을 때 대도(代禱)의 대상이 되어 왔다. 축일은 사도 시몬과 같은 날이며, 그리스도교 예술에서는 대개 이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표상(表象)은 사도의 상징인 책 또는 곤봉(棍棒)이다. 성서에서는 그를 이스카리오테의 유다와 엄밀히 구별하고 있다.
11.시몬[라틴어 Simon ?/
영어Simon사이먼]
12사도의 한 사람. 성인. 축일은 l0월 28일. 성서에는 그가 가나안 출신으로(마태 10:4) 사도인 야고보와 유다 및 요셉의 형제라고(마태13:55, 마르 6:3) 기록되어 있다. 사도로 선정되기 전에는 바리사이파인으로 구성된 혁명당(革命黨, Zeal-ot, 열심당이라고도 번역한다)의 일원으로 유다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 웠으며, 사도로 선정된 이후에는 근동지역의 전도를 맡았고, 전설에 의하면 그 후 체포되어 톱으로 육신이 두 동강이 나는 형벌을 당하고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회화에서는 시몬을 톱을 쥐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때로는 책을 쥐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예수의 형제라고 알려지기도 하지만 신빙성은 없다. 동방교회에서도 5월 10일을 그의 축일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그 이외에도 ① 사도들의 지도자이자 제 1대 교황인 베드로, ②예수에 의해 치유받은 베다니아인 나병환자(마르 14:3), ③ 예수가 십자가형을를 선고받고 처형장으로 갈 때 십자가를 대신지고 가기도 했던 키레네 사람(마르 15:21) 등도 성서에서는 시몬이라는 이름으로 적고 있다
NOTES:
*시몬 : 열심당원이라 부르는 정치적 우익 집단의
일원이었습니다.
12.가롯 유다
[영어Judas Iscariot쥬더스 이스캐리어트]
1) 예수를 판 제자(마27:5)
2) 그 이름은 제자중에 언제나 맨 끝에 적혀 있다
(마10:4,막3:19,눅6:16)
3) 회계를 맡아 보았다 (요12:6,13:29)
4)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여인을 책망하였다 (요12:4)5) 귀신을 쫓아 내고 병을 고친 일도 있다 (마10:1, 눅9:1)
가롯유다는 가롯 시몬의 아들이며 (요6:7) 주께서 택한 열두 사도 중의 한 사람이다. 가롯 유다는 복음서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 가장 불가사의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의 뜻과 배경, 성품 그리고 예수님을 배반한 동기와 죽은 방법등 모든 것들이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가롯이라는 이름에는 다양한 설명들이 제시되어 왔다. 즉 "그리욧 사람" "암살자" "가짜, 거짓말장이, 위선자" 등의 여러가지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설명되었다.
이 가운데 일반적인 설명은 두 가지이다. 첫째, "그롯사람"이란 견해로12사도 중에 11사도가 갈릴리지방 사람인데 반해 유일하게 가롯유다만이 유다 지방의 사람이라는 것을 근거로 삼고 있다. 둘째는 가장 가능성있는 견해로는 가롯이라는 말이 "가짜, 거짓말장이,위선자"를 뜻하는 "세케르"라는 아 람어의 어근에서 나온 것으로 이 말이 당시 아람어를 사용하던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배반자를 부를 때 사용한 별명이었다는 견해이다.
막3:14,요6:70을 미루어 보면 예수님은 복음을 전도할 사도를 신중히 선택하심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6:64를 보면 유다를 택한 것은 매우 곤혹스 러움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예수가 속죄적 죽음을 하기 위해 하나님의 계획에 의식적으로 복종한 것이라고 하여 이를 설명하려고 하는 바도 있지만 공관복음은 다른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예수께서 유다를 제자로 선택하신 것은 그를 유망하게 보고 또 그의 성격을 통찰하고 크게 쓰여질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여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를 받아들이고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또 이 무리안에 배신자가 있으면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여하튼 그의 성격을 생각하여 볼 때 아마 그리스도의 왕국이 건설될때 지상에 있어서 어떤 이들을 얻게 되리라고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가롯 유다는 예수의 제자단의 회계일을 보면서 일행의 전대를 맡았다. 그래서 그는 자기 호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부정을 행했다. 베다니의 마리아 집에서 그녀가 예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표시로서 지극히 비싸고 순수한 나도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었을 때 제자들 특히 유다는[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서 주지아니하였으냐]라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그의 본심은 그 돈으로 자신의주머니를 채우러는 생각이었다.
이에 예수께서 부드럽게 충고한즉 그는 오히려 분격하여 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팔아 넘길 것을 제의했다. 제사장들은 이에 동의하여 은 30개를 지불했다. 그것은 당시 노예 한 사람의 시세인데 약 9달러 50센트에 달한다고 한다. 이때부터 유다는 예수를 넘겨주려고 기회를 엿보고있었다. 유월절 만찬 석상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가 다가오는 것을 알고 유다에게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말씀했다. 마귀가 그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던 것이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라고 예수께서 조용히 말씀했을 때 제자들은 모두 근심하면서 저마다 [내니이까?] 라고 반문하였다. 베드로는 예수의 품에 기대어 누워있는 요한에게 머릿짓를 하며[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고 졸랐다. 그러자 예수께서는[나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요13:26)라고 말씀했다. 그것은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라고 한 성경말씀의 성취였다 (요13:18,시41:9) 그리고 예수께서는 한 조각을 찍어서 유다에게 주었다. 유다가 그것을 받자마자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갔다.
뻔뻔스럽게도 유다는 시치미를 뚝 떼고 [랍비여 내니이까]라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다(마26:21-25) 네 하는일을 속히 하라(요13:27). 제자들까지도 예수께서 왜 유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요13:28) 어떤 자는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쓸 문건을 사라고 하시는 것으로 혹 무엇을 나누어주라고 하시는 줄로 생각하였다. 이에 유다는 곧 나가서 제사장들에게달려갔다. (요13:28-30)
최후의 만찬이 끝나자 예수께서는 11제자와 같이 겟세마네 동산으로 갔다(마26:36). 기도가 끝났을 때 유다의 선도검과 몽둥이를 들고왔다. 야암이기 때문에 누가 예수인지 알리는 신호로서 유다는 예수에게 입맞추었다. 이리하여 예수께서는 체포되었다.(마28:47-50)유다가 예수를 배신한 동기가 무엇인지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사도들 중의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토록 악명높고 수치스러운 일화를 인위적으로 지어냈을 리는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이름은 더욱더 더럽혀져 제4복음서는 그를 사탄이나, 적그리스도와 동일시하고 있는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유다에 대한 적개심이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사건 자체의 사실성을 왜곡시켰다고는 보기 어렵다.
앞에서도 약간 언급되었지만 유다는 아마 단순히 욕심이 많고 부정직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예수를 배반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흉악한 반역으로 얻게 되는 돈이란 하찮은 소액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예수를 배반한 동기를 전적으로 이런식으로 생각 하기에는 조금 무리인 것으로도 여겨진다. 오히려 유다자신이 예수님에 대하여 많은 기대를 한 것에 대한 실망과 거짓예언자들과 거짓메시야를 공격하는 유대교의 율법 및 제도에 대한 집착으로 그러한 행동을 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튿날 아침 어느 정도 냉정해진 유다는 예수께서 정죄되어 사형을 선고 받았다는 것, 자기가 죄없는 사람의 피를 판 것을 알고 후회하면서 제사장 과 장로들에게 가서 은 30개를 돌려 주면서 [내가 무죄한 피를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라고 말했다. 그의 양심은 제자들의 양심처럼 마비되어 있지 않았다. 제사장들은 그에게 말했다.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리라] 그래서 유다는 은을 성소에 던져놓고나가서 목매어 죽었다. 제사장들은 [피값]을 성전 재정에 넣는 것을싫어하여 그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산다.
이 밭은 [피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마27:3-5). 사도행전에서는 이 부분을 상당히 다르게 언급하고 있다. (행 1:18,19) 즉 사도행전에 따르면 유다 자신이 그 밭을샀으며, 그의 몸이 곤두박질하여 (혹 부풀어 올라?) 배가 터져 창자가다 흘러나왔다고 한다. 유다의 비참한 죽음은 초기 기독교 설교자들과 저자들에 의하여 수없이 인용되곤 하였다. 그리고 또 유다의 죽음이 보다 무섭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소름이 끼치는 종류의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유다의 죽음에 관한 신약의 두 기사는 유다가 배신행위의 결과로 횡사를 당했다는 것과 예루살렘에 있는 작은 땅을 샀으나 배신행위의 결과로 인하여 [피밭]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은 서로 일치한다. 구약 시편 109편을 보면 유다의 죽음에 대한 것이 예시되어 있다. 이것은 원리 작자와 동시대에 된 일에 대하여 노래한 것이었으나 사실은 가롯 유다에게서 이루어진 예언 이었던 것이다.(시109:8,행1:20)그리고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만이 멸망했다(요17:12). 이 두 장을 살펴보면 그는 하나님에게 강요되어 멸망의자식이 된 것이 하나님의 긍휼을 거부해서였으며 그리고 그것을 구하지도 않아서 멸망했음을 알 수 있다.
NOTES:
*가롯 유다 : 잘알다시피 은 30냥에 예수를 팔아넘기고
자살한 사람입니다.
O Judas:
n.(1)가룟 유다((Judas Iscariot;예수를 배반한 사도;
마태복음 26:14,48));(우정을 가장한)배반자,
배반자(traitor)
(2)[judas](문 등의)들여다보는 구멍(peephole)
<judas window 또는 judas hole>;
play the judas:배반하다
O Iscariot
n.이스가리옷<예수를 배반한Judas의 성>;배반자
출처:인터넷,성경책,영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