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고대.
(1) 이집트
이집트의 문화는 진보적이고도 장대하며 위엄있는 문화였다. 이집트의 문화가 생성된 이면에는 종교가 있었으며, 이집트인의 종교관은 그들이 제작한 모든 조형물에 적용되고 있다.
이집트의 가구 종류는 수납용 가구 및 탁자형태의 가구도 있으나 좌석용 가구가 지배적이며 이러한 좌석용 가구는 이후 유럽의 각지에서 발생하는 좌석가구 양식의 기본 형태가 되었다.
의자는 명예의 상징으로 고귀한 신분의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의자의 다리는 황소의 발굽이나 사자의 발톱을 조각하였으며 발굽 또는 발톱 밑에 작은 나무토막이 받쳐져 있는데 이것은 사자의 머리나 발톱, 소의 발굽 등 조각장식과 함께 이집트 가구양식을 대표하는 것으로 이후에 발생한 유럽의 가구양식에 있어서 주요한 형태의 전형이 되고 있다.
침대는 집권층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사치스러운 가구의 본보기였다. 초기의 침대형태는 발을 두는 방향으로 침대가 경사져 있었고 흔히 침대 위에 초승달 모양의 목침을 두고 있다.
이집트인의 미학적인 표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집트의 가구양식은 가구의 구조적인 접합이 매우 치밀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으며 가구의 장식에 쓰이는 재료와 좌석에 사용된 직물의 특성을 발달시켰다.
(2)그리스
그리스의 모든 건축과 가구에는 기하학적인 공식과 대수학에 기초를 둔 이론적 제도가 적용되었으므로 일정한 규격의 단위형태와 단위형태 상호간의 관계를 고려하여 적절하게 조합된 형태로 발전되었다. 따라서 건축과 가구의 양식은 직관적인 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스 초기시대의 가구에 있어서 가장 경리로운 작품은 앞뒤로 벌어진 우아한 곡선의 다리와 둥글게 에워산 등받이의자, 즉 장식을 배제한 클리스모스(klismos) 의자로 헤제소(Hegeso) 벽화에서 그 완벽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 밖의 초기시대와 고시대의 의자들은 이집트의 의자와 유사하게 다리 부분을 개나 사자의 발톱 등 동물의 다리로 장식하고 있으며, 키가 낮은 의자의 등받이 상단부는 백조의 머리형태를 조작하고 있다.
BC 5세기경에는 의자 다리의 전단면이 둥글거나 사각형태인 직선적인 다리형태의 새로운 의자가 등장하였으며 BC 5세기 후반에는 등받이 상단부에 장미무늬나 소용돌이 무늬를 새겨 넣거나 신화적인 장면을 조각 또는 채색하였다.
BC 4세기경부터 장방형의 탁자는 점차 다리가 세 개 달려 있는 둥근 형태의 탁자로 대체되었으며 이러한 둥근 탁자는 헬레니즘 시대에 크게 유행하였으며 로마 시대 탁자의 전형이 된다.
(3)로마
고대 로마에서는 시민을 사회제도로서 여섯 계급으로 나누고 최상급의 시민을 클라시커스(classicus)라고 하였다. 이것이 전래되어 예술상의 한 양식으로 발전하였고, 이러한 양식의 작품을 클래식(classic)이라 부르게 되었다. 따라서 가구의 세계에서 모범적, 전형적인 작품을 클래식이라 부르나 그 범위는 매우 넓게 쓰이고 있다.
좌석가구로는 솔리움(solium), 카테드라(cathedra), 셀라쿠룰리스(sellacurulis), 바이셀리움(bisellium)등이 있다.
그리고 탁자로는 원형의 천판과 삼각대 탁자와 두꺼운 목재로 된 장방형의 천판과 대리석의 구각으로 형성된 탁자가 있다.
이상과 같이 볼 때 로마 시대에는 장이나 함과 같은 수납가구는 발달이 미약하였고 탁자나 의자 그리고 침대와 같은 좌석가구가 발달하였다.
2.중세.
(1)비잔틴 양식
비잔틴 양식의 가구로는 남아 있는 것이 적다. 그 이유는 이 양식이 과도기적인 것으로 후기의 로마네스크 양식에 쉽게 흡수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가구로는 사자의 머리와 발톱, 돌고래 등의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의 조각장식을 사용한 접을 수 있는 스툴인 쿠올(cuoule)이 있고 목조의자에 정교한 조각장식을 한 다음 금판을 덮고 등받이 부분에 당시의 건축양식을 사용한 성피터(St. Peter) 의자, 7세기에 제작된 청동에 도금한 다가베르트(Dagabert)의자, 동방의 상아조각의 양상을 보여주는 상아로 된 막시미아누스(Maximianus)의 사교좌등이 있다.
(2)로마네스크 양식
로마네스크 양식은 비잔틴 양식에 지방 특유의 요소가 융합하여 형성된 양식이다. 이 로마네스크 양식은 가구를 비롯한 장식미술에 있어서 다분히 동양적이고 추상적 형태의 기하학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가구로는 독일 지방에서 제작된 선삭가공으로 만든 목제의 다리를 부착한 농민의자와 스칸디나비아 지방에서 제작된 사각형의 다리와 후판으로 만들어진 의자 및 책상, 의류를 수납하고 걸상을 겸용한 철과 청동장식의 궤, 13세기 중엽에 스위스에서 제작된 아치형의 다리를 부착시킨 호두나무 퀘 등이 대표적인 가구다.
(3)고딕 양식
고딕 양식의 가구는 비율, 치수 등에 있어 외형상 장중한 것이 대부분으로 직선을 선으로 한 장방형으로 되어 있다. 또한 가구의 접합부분도 거의 직각으로 구성되어 딱딱한 느낌을 준다.
고딕 양식의 가구는 도금을 하거나 건축적인 주제를 가구의 양식으로서 적용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며 천의 주름과 같은 부조를 가구표면에 장식하는 리넨 폴드(linen fold) 장식과 매듭형태의 부조장식인 트레서리(tracery) 등을 적용한 것도 고딕 가구의 특징이다.
의자는 대부분 직립형이며 등받이에 문장 조각이나 창식, 원화창식의 부조를 하였으며 목제의 천개를 가진 의자도 있다.
상자형태의 함은 중세시대의 가구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이 함은 정치적 여건이 불안전한 기간 동안 가구의 필수적 장점인 운반의 용이성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레덴스(credence)도 고딕 시대의 주요한 가구중의 하나인데 이것은 제대 또는 공물대를 지칭하는 것을 이 크레덴스는 함에 다리를 부착한 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또 헌치라는 궤는 가정의 가장 중요한 귀중품을 보관하는 상자로 사용되었으며 치대 옆에 항상 놓여 있었다.
침대는 네 귀퉁이에 지주를 부착시키고 그위에 덮개를 씌웠으며, 트런들(trundle) 침대는 하인이나 아이들이 사용하는 소형의 각륜침대를 가리키는 것이다.
고딕 양식의 가구나 북부와 중부의 유럽에서 재작되는 동안 회교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가구에 기하학적인 장식을 적용한 플라테레스코(plateresco) 양식을 발전시켰다.
3.현대.
산업혁명과 과학의 발전은 새로운 형태, 새로운 양식, 새로운 재료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공장 생산으로 인한 대량 생산은 가구발전에 큰 몫을 한 것은 사실이나 무분별한 모방과 저질가구의 대량생산이란 부작용도 함께 가져왔다. 이러한 저질 가구의 생산은 기계에 의한 가구제작을 배격하고 수공업적인 생산을 하게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1)미술공예운동(Art & Craft Movement)
수공예품의 수요가 줄어들고 품질이 조합한 기계생산 모조품이 범람하자 가구디자인은 그 전통성을 잃고 혼란기에 들어가게 되었다. 모조품이 범람하는데 대한 윤리적 반감은 1860년 영국의 낭만파시인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에 의해 주창된 미술공예운동으로 나타나게 됐다.
(2)아르누보(Art Nouveau)
아르누보는 'New Art'를 의미하는 합성어로, 1900년 파리 대박람회에 출품된 각종 공예품이 아르누보로 지칭된 것이 아르누보의 명칭이 되었다.
아르누보 양식은 1902년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열린 공예경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모던 디자인의 전위적 운동으로 1910년을 계기로 쇠퇴하였다.
(3)세제션(Secession)
영국의 미술공예운동이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영향을 미쳐 세제션운동의 기폭제가 된다.
본래 세제션의 어원은 라틴어의 '분리'에서 유래되었는데, 종래의 아카데미즘(Academism)에서 분리하는 것을 주장하는 운동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 운동은 오토 와그너(Wtto Wagner)교수의 건축사상에서 영향을 받아 구조와 재료에서 산출되는 자연스러운 형태미를 추구하였다.
(4)데 스틸(DE Stijl)
이 운동은 철, 콘크리트, 유리 등 새로운 소재로, 제1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도시건설에 대한 요구로 일어난 일종의 구성주의(Constructivism)가 디자인의 기능주의와 융합함으로써, 가구디자인은 장식을 배제한 직선과 평면의 구성에 의해 구성요소를 단순화해 조립함으로써 미를 추구하는 조형이론이며, 네델란드를 중심으로 일어났는데 이것이 데 스틸 운동이다.
(5)바우하우스(Bauhous)
바우하우스는 미술과 공예의 통합을 목표로 1919년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에 의해 독일에서 창설되었는데, 재료의 연구와 합리적인 조형의 연구를 통하여 기능주의라는 근대디자인의 이론을 확립하였다. 가구디자인은 수평과 수직의 직선적 구성을 기본으로 가구의 재료를 철, 합성목재, 천 등 여러 가지를 사용하여 혁신을 꾀하였다.
(6)스칸디나비아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의 스칸디나비아 3국은 바우하우스 이후 합리주의를 목표로 한 형태미 추구와 기능주의를 바탕으로 가구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풍부한 산림자원에 의해 탄생된 성형합판은 수공업에서나 가능한 유연한 곡선을 마음대로 연출하면서도 기능미를 추구하여, 조형미에서 우수한 가구를 탄생시켰다.
(7)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구양식의 중심지는 미국으로 옮겨가게 되었으며 새로운 가구 디자인과 제작기술이 개발되었다.
거의 모든 가능성을 가진 플라스틱은 새로운 미를 요구하였는데 그러한 미를 발견해내는 것은 화학산업이 가구제조의 필요에 대해 플라스틱을 적용시키고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도움을 받았고 복잡해졌다. 디자이너들은 비교적 단순성을 지니면서 인체에 맞는 의자를 디자인하였는데 그들의 상상력은 기계생산이 지닌 필요조건과 재료의 특성에 의해 제한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