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국도1번에 해당되는 영남대로가 동래를 떠나 밀양,청도를 거처 팔조령을 넘어 파동에 다다르면 영남제일관이 눈에 들어온다. 그 옛날에는 과객이 영남제일관 앞의 주막에 들려 막걸리 한 사발에 시정 인심을 살피고 서쪽 성벽을 돌아 달성공원앞과 인교동,지금의 비산로터리를 지나 원고개(지금비산1동-북비산국교넘어가는길)에 다다른다.
여기가 바로 옛날 善政을 배풀던 고을원이 죽자 마을 주민들이 모여 넋을 기리며 북춤을 추었던 곳이며, 새로 부임하는 고을원에게 善政을 빌며 애원의 소리인양 환영하는 농악을 울리던 대구부의 서북부의 관문이다. 지금 이 북춤과 농악은 대구시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날뫼북춤,비산농악으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이 길은 지금 시장으로 변하여 원고개시장 이라고함) 계속 걸으면 옛날 미나리깡이라 불리던 달서천변을 지나 노원동을 거처 금호강에 다다른다. 여기가 유명한 조선조때 학자이자 예술가인 徐居正(1420-1488) 이 읊었던 大邱8景중 하나인 櫓院이다. 지금의 팔달교 다리 밑으로 옛날에는 맑은물이 흐르고 나루터와 역원이 있었던 곳이다.북구 원대동과 노원동의 동명도 여기서 유래되었습니다. 노원에 들른 서거정이 다음과 같이 櫓院送客(노원에 손 보내기)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습니다.
官道年年柳靑色, 短亭無數接長亭. 관도(官道)에는 해마다 버들잎이 푸른데
唱盡陽關各分散, 沙頭只臥雙白甁. 단정(短亭)이 수없이 장정(長亭)에 잇다아 있네.
양관곡(이별할때부를는노래)을 부르고 나서 각각 이별후
모래밭에는 다만 두개의 흰 술병만 누워있네.
팔달교 푸른 물결넘어 자동차 숲속 희미한 매연속에 신동재와 인동으로 이어지는 영남대로의 옛 길이 있고 개나리봇짐 진 영남선비의 과거급제를 향한 옹골찬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그런가 하면 원고개에서 원님의 고혼을 위로하던 구성진 덧베기 북장단과 사열하듯 늘어서서 울리던 비산농악의 흥겁고 웅장한 삼채장단이 내 귀를 울리는 것 같습니다. 목민관들이여 !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려운 때일수록 民草들은 그대들만 처다보고 잘 살게 해 달라고 둥둥 울리는듯 ....... -也 川, 권 오 정이가-
첫댓글 지천님의 귀한글 올려두었는데....이거 원 한글 애호가라 자칭하던 내가 읽지도 못하고 뜻도 잘 모르겠으니...참내 이거원.....미안합니다. 상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