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준용 민주노동자 시흥연대 의장
2001년 신천연합병원에 입사를 했다.
월급 80만원의 원무과 야간 당직 비정규직 노동자...
나의 직장생활의 시작은 이것이었다.
이틀에 한번 씩 하루 15시간의 야간 당직일로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몸이 피곤하고 힘들어도 쉬는 날은 없었다. 아예 휴가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적은 임금에 장시간 야간 노동이 죽도록 힘들었지만 더욱 힘든 것은 같은 부서 주간 근무자들의 시선이었다. 야간에 발생한 모든 일의 책임이 나에게 있고, 그 책임 추궁을 당하는 아침 시간이면 죄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야간 당직 비정규 노동자는 뭔가 부족한 존재로 취급받는 모멸감은 이루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던 나는 자연스레 노동조합을 알게 되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허락되질 않았다. 노동절 집회라도 가겠다고 노동조합 상근자와 친해졌다. 그이와 병원 밖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을 관리자에게 발각(?)되고 나서 원무과장에게 끌려가 입에 담기 힘든 쌍소리를 들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매일 아침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욕을 먹는다. 옆에 있는 부서 동료들은 ‘그럼 그렇지. 뭐’ 당연하다는 듯 바라만 보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를 몸서리 처지게 경험한 나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바로 그 해 신천연합병원이 파업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파업의 결과로 나는 정규직 노동자가 되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로비에서 파업을 하고 있을 때 난 원무과 데스크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표현하지 못했지만 속으로 응원을 보내곤 했는데 복도에서 마주친 정규직 노동자가 살며시 다가와 나에게 한마디 한다.
“선생님. 우리가 왜 투쟁을 하는지 아세요? 선생님들 정규직 만들자고 파업을 하고 있는 거예요. 선생님들이 정규직이 되어야 우리도 언젠가 비정규직이 될 걱정을 하지 않거든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복도를 지나오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그렇구나. 이 분들은 나를 위해 파업까지 하고 있던 것이구나.’
그 이후 난 결심을 했다. 정규직 직원이 되면 노동조합 활동을 열심히 하겠다고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인 나를 탄압하던 그 관리자들을 가만 두지 않겠다고...
몇 년이 지나 나를 괴롭히던 원무과장은 병원에서 쫓겨나듯 병원을 떠나게 되었고 원무과 부서 내에서는 나를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노동조합 대의원이 되었고 상집 간부가 되고, 시흥지역에 시의원에 출마를 하게 되었다. 낙선은 되었지만 그 이후 신천연합병원의 노동조합 지부장이 되었고, 원무과에 야간당직 전문 인원을 없애 이제는 주간 근무자들이 모두 돌아가며 야간당직을 하게 되었다.
80만원 짜리 야간당직 비정규 노동자가 그 병원의 노동조합 지부장이 되기까지가 그저 행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우리 병원에는 비정규직을 없애겠다는 각오로 파업을 하고 자신들의 몫을 양보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비정규 노동자들은 나와 같은 인생경로를 밟지 못한다. 1년짜리 계약을 연명하며 파리목숨처럼 직장을 다니는 그들에게 스스로 삶의 굴레를 벗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2001년도 내가 비정규직 노동자에서 정규직 노동자가 되게 해준 것처럼 누군가 이끌어주고 싸워줘야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정치권에서도 노동계 내에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에서 정규직 노동가 되기까지를 직접 체현한 나에게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기대와 우려가 된다.
우리 사회에만 특이하게 존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더 많은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우리 모두에게 내재화 되어 왔다. 정규직 노동자의 높은 임금과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노동운동의 대안적 모색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협동조합과 경영참여이다.
좋은 대안을 연구하고 제시해서 힘을 다져야 할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거 자본가의 근원적 축적을 없애는 것으로 부터 사회주의 혁명을 시도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의 근원적 축적을 스스로 없애자고 할 수는 없을까? 그리고 비정규직에게 돌려주고 시작할 수는 없을까?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끈은 윤주형 비정규노동자와 술 한잔 하며 들었던 가슴 절절한 현장이야기의 먹먹함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