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묵시아 등대
최옥
묵시아에 내렸을 때는 비바람이 불고 있었다. 숙소를 찾아가서 배낭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창문을 열자 육지에 상륙해 있던 파도소리가 와락 달려들며 내 가슴에 눈물방울을 뿌렸다. 품안 가득 파도를 껴안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나는 왜 고요한 바다보다 이렇게 들끓는 바다가 좋을까, 왜 온 몸을 뒤척이는 바다, 자신을 송두리째 드러내는 바다가 더 좋은지 모르겠다. 그래서 태풍이 오는 날은 접근 금지의 바다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태풍속의 바다는 어떤 표정이 되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드디어 묵시아로 왔다. 800키로 산티아고 순례길, 그 먼 길을 걸어서 마지막 여정으로 묵시아 바다를 찾아온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겠다고 계획을 세운 것도 나 혼자였고‘사랑하는 아이들아’로 시작하는 유서를 써 놓고 비행기를 탈 때도 혼자였다. 세상의 모든 길을 모아 놓은 듯 다양한 길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걸을 때도 혼자였다. 처음 그 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 “아니, 여자 혼자서?”라는 표정으로 주변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외국여행 경험도 없고 언어소통도 안 되는 중년의 여자가 그 먼 길을 혼자 걷겠다고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발바닥의 고통을 참으며, 혼자라는 두려움과 외로움을 고스란히 견디며 걸어갈 때 아무도 내 발걸음에 자신의 걸음을 맞춰주지 않았다. 그 길을 걷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걸음대로 묵묵히 걸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37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대륙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라 등대 앞에 섰을 때, 세상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륙의 끝이 저 끝없는 대서양을 향하여 눈을 돌리고 있었다. 몸서리가 날만큼 거대한 해안절벽을 보며 나는 그만 말을 잊었던 것이다. 그곳에 서 있던 피니스테라 등대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름다운 자리, 외로운 자리,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리를 홀로 지키고 있었다. 그 등대를 보고 있으니 마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을 보는 듯 했다.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부족하고 보잘 것 없었지만 내 삶의 자리를 어디에 둘 것인지를 뚜렷이 생각했던 순간이다. 그리고 일정에 넣지 않았던 묵시아 바다를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만 들었던 작고 예쁘다는 어촌 마을, 묵시아. 그곳에서 아름답고 고단했던 나의 여정을 마무리하리라 다짐했다. 두고 온 것도 없고 만나볼 사람도 없었지만 소중한 것을 두고 온 사람처럼 나는 묵시아를 찾아 온 것이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고 파도소리에 잠이 깼다. 밖으로 나가니 지난 밤 비의 흔적은 없었고 해맑은 아침이었다. 하늘에 구름이, 진부한 표현이지만 아이들이 하얀 솜을 뜯어서 방금 붙여 놓은 것 같다고 정말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파도는 알맞게 철썩였고 물빛 역시 하늘을 닮아 있었다. 그 바닷가에서 순례자들이 감동한다는 0.00 km 표지석을 만났다. 800km부터 시작하여 0.00km까지, 이제 더 이상 걸을 곳도 없고 나아갈 곳도 없다는 표지석이다. 벗어나고 싶었던 상황, 잊고 싶었던 일들, 두고 온 문제들을 이 0 km 표지석 앞에서 다시 떠올렸다. 0 km라는 건 다 왔다, 혹은 끝이라는 의미보다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이고, 내가 걸어가야 할 삶의 시작 지점이었다. 이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린다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은 없을 것이다. 지난 37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지고 다니던 배낭처럼 내 삶의 무게를 기쁘게 지고 간다면 두려울 것은 없었다.
언덕에 올라가니 마을이 한눈에 보였다. 푸른 바다는 쉬지 않고 마을을 향하여 달리고, 마을의 집들은 높고 낮음의 다툼 없이 거의 오렌지색 지붕이었다. 묵시아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는 고층 건물이 없고 함께 사는 사람들의 집이 서로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언덕 꼭대기에서 두 손을 활짝 펴며 그의 빈자리를 잘 견뎌준 내 삶을 향하여 큰소리로 만세를 불러 주었다. 그리고 산책길을 따라 내려가니 예전에 있었던 기름유출사건을 기억하자는 기념비가 서 있었고 그 아래 바닷가에는 성모성당이 있었다. 파도가 침범하는 곳에 지어진 성당이라니, 신비롭고 특별한 매력이 느껴졌다. 몇 백 년 세월의 무게를 담고 있는 성당의 돌벽을 만지며 나의 삶을 돌아보았다. 인생이 둥글둥글 둥근 것이라면 내 인생의 시간도 3분의 2는 돌아왔겠지.
성당에서 눈을 돌리니 저만치 떨어진 곳에 묵시아 등대가 보였다. 묵시아 등대는 어느 각도에서 보든 아름다운 배경이 되었는데 사람들은 모두 등대를 등지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둥근 기둥처럼 하얗게 서 있는 등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바다는 아름다웠고 갯바위 속의 등대도 덩달아 아름다웠다. 등대를 잠시 올려보다가 등대에 기대어서 눈을 감았다. 어쩌면 나는 이 등대에 기대려고 그 먼 길을 걸어왔는지도 모른다. 등대 옆에 앉아서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 건너편에 있는 먼 산에서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이 느껴졌다. 저곳에 무엇이 있든 멀어서 갈 수는 없겠지, 체념하면서도 그 산에 있을 무언가가 그리워졌다. 이곳에 있으면 저곳이 그립고 저곳에 있으면 이곳이 그리워지는 것이 삶의 이치인가 보다. 멀다고 체념한 저 산보다 더 먼 곳에 있는 당신, 당신이 이 세상에 있다면 저 산 너머, 아니 그 너머에 있다 해도 나는 찾아갔을 것이다.
등대 옆에 앉아서 발을 내려다보았다. 이 작은 발, 하얀 붕대를 훈장처럼 감고 있는 발, 이 작은 보폭으로 800km에 발걸음을 찍고 온 것이 흐뭇하여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박수를 쳤다. 나는 왜 그 길을 걸어야 했을까. 그 길을 걷고 나면 당신이 떠난 후 멈춰버린 나의 일상들이 다시 시간 속으로 흐를 수 있으리라, 그리 믿었다. 신발 끈을 풀고 등산화를 벗었다. 많이 걸어서 아직도 욱신거리는 발, 다 아물지 못한 발의 상처가 비로소 편안해졌다. 아침마다 신발 끈을 묶으며 배낭을 메고 나섰던 지난 37일이 꿈만 같았다. 배낭이 무거워서 힘겹다고 여겨지면 배낭 속의 물건들을 모조리 꺼내놓고 버릴 것은 없는가, 쓸데없이 지고 다니는 것은 없는가를 살피고 또 살핀 날들이다. 그러면서 마음 안에 부질없이 자리 잡고 있던 생각들도 하나씩 버려졌다.
파도가 바위에 부서져서 하얀 거품이 되고 하얀 거품이 되었던 파도는 다시 푸른 바다가 되기를 거듭하고 있었다. 삶이란 바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의 모순에 대항하여 끝없이 부서지다가 어쩔 수 없이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나. 그래, 이 바다를 만나기 위해 그 먼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하자. 이 바다에 아직 버리지 못한 마음 속 돌멩이들을 던져버리고 가자.
묵시아 바다에 던져 둔 내 눈빛이 긴 선을 그리고 있었다. 등대 앞에서부터 시작된 선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서 어느 새 우리나라, 내가 사는 부산바다에까지 닿았고 내가 자라던 유년의 바다 통영에까지 닿았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과 나의 바다에도 가 닿았다. 지금 나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려오는 파도는 혹시 나를 키웠던 그 바다를 알고 있을까. 당신이 바라보았고 당신 눈길이 닿았던 그 파도는 아닐까.
다시 당신이 그립다. 당신과 함께 이 등대에 기대고 앉아서 저 바다를 보고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언젠가 기장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던 당신의 그윽한 눈빛, 몸짓, 표정이 연달아 생각났다. 그립다는 건 아프면서도 기쁘고 아리면서도 행복하다. 당신이 언제나 내 기억 속에 함께 있어서 그래도 이 세상 살아갈 만한 거지. 이제는 당신이 나의 등대라고 여기며 살게. 내 삶의 바다를 지켜주는 등대라고 여기며 그렇게 살아갈게.
고개를 돌려 보니 가까운 곳에 외국인 여자 하나가 나처럼 혼자 갯바위에 앉아서 바다를 보고 있었다. 이제 막 순례길을 마치고 온 듯 옆에는 커다란 배낭을 내려두고 신발 끈을 푼 채 벗어둔 등산화도 보였다. 그녀가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듯 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녀가 걸어온 길도 저 바다 속에서 함께 출렁거리고 있겠지. 노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 속 돌덩어리도 저리 하얗게 부서져서 가벼워졌을까. 같은 길을 걸어 왔을 그녀에게 연민의 정을 보냈다.
나는 묵시아 바다를 가슴에 담고 일어서며 등대의 몸을 어루만졌다.‘너에게 기대었던 내 등을 너는 결코 잊지 않겠지’하얗게 질렸던 나의 삶이 묵시아 바다에서 푸른 빛을 띠며 다시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묵시아 등대가 나에게는 바로 세상의 끝이었다. 세상의 끝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또 다른 길이 거기에 있었다. 등대를 뒤로 한 채 나는 세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묵시아 등대는 나의 등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내가 걸어갈 길을 언제나 환하게 비추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