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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행을 어떻게 해야 하나?
- 초심자를 위한 불교 신행 안내 -
1. 인본주의 불교의 합리적 이해
불교는 중생을 교화제도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홍법도생(弘法度生)이라는 말이 바로 불교의 이 목적을 나타내는 말이지요.
이 말은 우리나라 교육이념을 나타내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말과 매우 유사한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교육을 통해서 인간을 성숙시켜 준다는 뜻입니다.
불교 역시 깨달음을 추구하는 본래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종교이지만 어느 종교보다도 교육적인 신행의 방법을 가지고 사람을 가르쳐 올바른 인생을 살아가도록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불교 신행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부처님의 교법을 올바로 이해하게 하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단순한 지식을 주입시키는 것이 본래 목적은 아니지만 우선 교법의 올바른 이해에서부터 불교의 신행이 바로 될 수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초심자를 가르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불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을 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불교의 특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바로 알게 하여 불교를 공부함으로써 인격의 도야가 이루어지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서양종교와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을 내세우는 신본주의 종교가 아닌 사람이 부처되는 인간성불론을 내세우는 것이 불교입니다.
이 인본주의가 바로 불교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점입니다.
이 인본주의인 불교의 교리가 가장 고등적인 이론을 세워 인간을 가장 합리적으로 교육시킬 수 있게 합니다.
초심자를 교육함에 있어서 합리적인 사고에 입각한 자율적인 발심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육자 혹은 지도자는 이 발심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불교에 입문할 수 있는 확실한 동기를 부여해 줄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초심자 교육의 성공을 가져오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2. 입중오법(入衆五法)
불교의 신행 교육은 먼저 인간의 윤리의식을 고취하는 도덕정신에서 시작 됩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불교의 계(戒)․ 정(定)․ 혜(慧) 삼학(三學) 가운데 계학에서 수행이 시작되는 것처럼 불교 입문과정에서도 윤리적 자세와 교양적 태도에 관한 것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로부터 우리 승가에 대중에 들어가 공동생활을 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입중오법이 있습니다.
이는 일반 사회생활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교양적 매너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입문자들에게도 신행에 임하는 몸가짐을 바로하기 위해 이 입중오법을 가르쳐 지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1) 하심(下心)
자신을 낮추고 남에게 겸손하게 대하는 것이 하심입니다.
아만을 가지고는 참된 법을 배울 수 없습니다.
남에게 하심을 해야 하고 거만한 인상을 결코 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청매 조사의 십무익송(十無益頌)에 부절아만학법무익(不絶我慢學法無益)이라 하여 아만을 꺾지 못하면 법을 배워도 소용이 없다 하였습니다.
2)자비(慈悲)
자비심으로 남의 일을 도와주려는 마음이 불교의 근본정신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이를 보살정신이라 합니다.
흔히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을 자(慈)라 하고 남의 슬픔을 위로해 주는 것을 비(悲)라 한다고 말합니다만 남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곧 자비입니다.
사회란 공동사회이기 때문에 남과의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여기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마음에 자비심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웃에 관심이 없고 내몰라 하는 것은 자비의 실종이 되는 것입니다.
3)공경(恭敬)
어른을 공경하고 선배나 상좌(上座)에게 경의를 표하는 마음으로 신의와 화합을 조성하는 마음입니다.
또 같은 연배라 하더라도 서로 상호 공경의 자세로 상대를 존중해 주는 것이 예의 있는 행동이 되며 이것이 인륜의 도리인 것입니다.
종교의 예법은 사회 일반의 예법보다 더 높은 것입니다.
공경의 참뜻은 인간 존중이며 나아가 생명의 존엄성을 받들려는 것입니다.
4)지차제(知次第)
분수 넘는 외람된 행동이나 말을 삼가하고 대중의 위계질서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유교의 삼강오륜(三綱五倫)의 오륜에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 많은 이와 적은 이가 차례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불교의 승가의 규범에 좌차(座次)가 있습니다.
법당이나 대중이 함께 기거하는 큰방에서 법랍(法臘)에 앉는 자리가 정해집니다.
음식을 돌릴 때도 순서가 있는 법이지요 소위 속언에 ‘찬물도 위, 아래가 있다.’는 말처럼 분수를 지키며 외람된 행동을 삼가 대중의 법도를 훼손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5)불설여사(不說餘事)
잡담이나 농담 등 쓸데없는 말을 삼가 하여 언어를 항상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다.
행동의 실수보다 말의 실수가 더 쉽게 일어납니다.
공부시간이나 정진시간에는 묵언을 해야 합니다.
잘못된 말 한마디가 대중의 정진 분위기를 깨뜨리는 수가 흔히 일어납니다.
그래서 초발심자경문에도 “입이 화의 문이니 굳게 지키라.”(口是禍門 必加嚴守)하였습니다.
이상과 같은 5가지 규칙은 법회나 신행활동에 참가하는 모든 대중이 지켜야하는 규범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신심교육(信心敎育)
모든 종교는 믿음을 중요시합니다.
사실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어떤 신념의 체계를 가지고 자기 인생을 그 신념 속에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불교에서는 믿음이 도에 들어가는 힘이라 합니다.
『화엄경』<현수품>에 “믿음이 도의 근원이며 공덕의 어머니(信爲道源功德母)다.” 하였습니다.
불교의 교리를 안다하여도 불교에 대한 신심이 없으면 불교 믿는 신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불교학자가 불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은 사례가 많았습니다.
불론 불교교육이 꼭 불자를 만들기 위해서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불교교육이 불교적 인물 배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하나의 상식이라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만 불교의 믿음은 다른 종교의 믿음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합리적인 인간성을 발휘하는 인격이 도야되는 것입니다.
믿음(信)의 어원을 범어에서 찾으면 스라다(sradha)입니다.
이 스라다의 뜻은 몰랐던 사실을 알고 났을 때 이해가 되었으므로 수긍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아, 그렇구나!’ 하는 긍정의 마음이 스라다입니다.
이 스라다는 마음에 의심이 없어지면서 마음이 밝아지고 깨끗해지는 것을 뜻합니다.
『보살본업경』에는 믿음을 정의하여 “믿음이란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信者令心淸淨)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믿는다는 것은 주관의 마음에 객관의 믿을 대상이 있는 것이라 설명할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믿음이 결국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라 말한 것은 믿으면 마음이 맑아지고 깨끗해지는 결과가 온다는 것을 강조하여 이 뜻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한 말이라 볼 수 있습니다.
『대승기신론』에는 믿음의 대상을 네 가지로 말한 사신(四信)의 설명이 나옵니다.
이는 불․ 법․ 승 삼보의 믿음 앞에 근본을 믿는다 하여 진여(眞如)를 믿는 것을 먼저 말했습니다.
삼보를 믿는 불교의 일반적 믿음은 삼귀의로 설명되는데 이 삼보의 근원인 진여 곧 깨달음 자체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대개 불교의 신앙정서는 귀의와 찬탄과 참회와 발원으로 설명됩니다.
이는 기도의례용 경전이라 할 수 있는 『천수경』의 내용이 이것으로 요약됩니다.
불교에 믿음을 일으키는 사람에게 있어서 불교신앙의 정서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또한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때문에 불교입문의 과정에서 모든 종교의 공통적 요소인 기도의 체험을 갖도록 하는 방편이 있습니다.
이 기도에 임하는 마음에서 불교신앙 정서가 일어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4. 기도(祈禱)
기도란 마음속으로 원하는 바의 일에 대하여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어떤 초자연적인 힘을 간절히 바라는 것이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기도는 부처님이나 보살에게 위신력(威神力)을 구하여, 현세의 이익이나 내세의 정토왕생을 발원하는 것 등의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부처님이나 보살에게 귀의하여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죄업을 참회 소멸하고 감사, 보은, 찬탄, 숭상의 마음을 일으키는 비공리적인 기도가 있는가 하면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부르는 일신의 안녕이나 생활의 보호를 기도를 통하여 받고자 하는 다분히 공리적인 기도도 있습니다.
때로는 주술적인 방법으로 초자연적인 힘이 나타나 사람의 일을 유익한 방향으로 이끌어 주기를 바라며 기도를 합니다.
또 일체 장애를 여의고 병을 낫게 해 달라는 뜻에서 종교적 행위를 주술적인 방법으로 실행하기도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러한 기도의 성격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밀교에서 더욱 발전된 이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밀교는 기도와 수행을 일원화 하여 다섯 가지 법으로 설명합니다.
1) 식재법(息災法) : 재앙과 고난을 기도를 통해 제거해 쉬게 하는 것.
2) 증익법(增益法) : 이익이 도모되어 행복과 건강 등이 누려지게 하는 것.
3) 경애법(敬愛法) : 사람의 마음에 공경스럽고 자애로운 마음이 일어나게 하는 것.
4) 조복법(調伏法) : 내 안의 나쁜 마음과 외부의 마장을 조복하는 것.
5) 구소법(鉤召法) : 원하는 수행의 경지에 빨리 도달하는 것.
이러한 밀교에서 설명하는 기도수행법은 삼밀가지(三密加持)로 설명되는데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면서 정근기도를 하는 것은 구밀(口密)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밀교에서는 입으로 진언을 외우며 손으로 인계(印契:mudra))를 맺고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신심을 단련해 가는 것이 신행교육의 요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누구나 원하는 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원을 사행심으로 막연히 이기적 생각만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불교의 기도는 불․ 보살을 받드는 의례와 의식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하면서 소원 성취를 좋은 인연공덕이 되어 자리이타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공리적인 기도도 대승적 차원에서는 그 기도의 공덕이 널리 중생에게 회향되게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승만경』에 설해져 있는 승만부인의 서원 같은 것입니다.
승만부인의 10대수 서원 가운데 “나만을 위하여 재물을 모으지 않으며, 무릇 받는 것이 있다면 가난하고 곤궁한 사람들을 성숙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하는 서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적 신앙심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정성을 바치는 정신적 온도를 높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정성의 도수가 높아야 기도의 성취가 이루어집니다.
마치 물이 섭씨 100도가 되어야 수증기가 나며 끓듯이 사람의 마음에 정성의 도수가 높을수록 불보살의 감응을 얻을 수 있는 것이며 남을 감동시틸 수도 있는 것 입니다.
불교 신행에 있어서 기도는 내 인생의 삶에 바치는 정성을 표현하는 것이며 이를 의례를 통해서 극기의 정신으로 하는 것입니다.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하는 정근기도가 있는가 하면 108배, 1080배, 3000배 등의 절을 하는 기도도 있습니다.
어느 시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기도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꽃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것과 같다.”
기도는 인생의 꽃을 피우는 거룩한 행위라는 뜻입니다.
5. 복분신(福分心)과 도분심(道分心)
불교신행에 있어 기복적인 신행방편이 있는가 하면 도를 깨달고자 하는 본분공부를 위해 몰두하는 두 가지 신행의 마음이 있습니다.
전자를 복분심이라 하고 후자를 도분심이라 합니다.
진정한 불교의 수행은 도분심에서 이루어짐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른바 무위심에 입각한 수행이 있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순수한 신심에서 불법을 배워가는 공부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해득실을 따지는 타산적인 마음으로는 불교공부가 바로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도분심의 함양을 위해서는 정확한 교리공부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기복적인 신심만 가지고는 도분심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신행은 신(信) ․ 해(解) ․ 행(行) ․ 증(證)의 단계로 나아갑니다.
믿음과 동시에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하며 올바른 이해를 통해 실천이 되고 체험이 되는 것이다.
『법구경』에도 말하기를 유신무해(有信無解)는 맹신(盲信)이 되고 무신유해(無信有解)는 사견이 되기 쉽다 하였다.
그러므로 불교의 근본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게 하는 것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선수행을 중요시 여겨온 한국불교의 약점 가운데 하나가 정확한 교리의 이해가 부족하여 불교전반의 지적수준이 미약한 것입니다.
이것이 부족할 때 대사회적으로 지적인 교류가 약해져 현실참여의 기능이 약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근래에 우리 불교계에서 사찰이나 재가 신행단체에서 불교대학 같은 것을 개설하거나 불교 강좌를 열어 불교의 교리와 경전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들을 갖게 하는 매우 바람직스럽고 고무적인 일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입니다.
이러한 방향으로 불교 신행교육이 실시되어 불교를 바로 아는 지적인 이해도를 높여서 불교에 대한 지식이 많은 사람들의 지적 공간에 들어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는 믿음을 통한 개인의 신념체계를 바로 세우게 합니다.
이 신념이 교법을 올바로 아는 데서 바로 서게 되지요. 믿음과 이해가 함께 이루어져야 교에 대한 신념이 강하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 신념을 오래 동안 유지시켜 가는 것이 불교의 생활화를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이에는 다음과 같은 방편이 있습니다.
6. 불교신행의 생활화 교육
불교의 생활화는 신행행위가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래 내가 불교를 신행한다, 혹은 나도 수행한다는 자신의 불교적 태도가 공개되어 남이 알 수 있도록 보여 지는 모범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자기 신행의 표현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매일 108배 등의 절을 꾸준히 행해가는 참배, 일정한 기간 인근 사찰 등에 예불을 다니는 것, 매일 일정한 시간을 할애하여 경전을 읽는 독경, 쓰는 사경, 또는 염불, 진언을 지송하는 주력, 참선을 하는 좌선 등을 통한 불교신행의 생활화가 밖으로 드러나 보여 지는 생활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교교육의 일환으로 이러한 신행자세를 견지하는 불자들이 나오도록 불교 신행교육의 방침과 목표가 교육을 담당하는 주체인 사찰이나 불교교육기관에서 분명하게 서 있어야 하고 이를 지도하는 시스템이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소정의 기간 예를 들면 100일의 기한을 정한다던가 하여 초심자들에게 취향에 맞는 한 가지씩을 선택하여 이를 몸에 습관화 되도록 익히게 하는 것입니다.
불교 신행은 지적인 이론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온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불교의 실천이 이루어지고 부처님의 정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의 예를 든 바와 같이 처음 불교에 입문하는 초심자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불교가 가슴으로 받아들여져, 자기 생활의 신념체계를 갖도록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인과법(因果法)을 알고 인연법(因緣法)을 알게 하며, 일심법(一心法)을 알게 하여 좀 더 성숙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불교 신행교육의 목표임과 동시에 그 효과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안(志安)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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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_()_
하심(下心)
열심히 공부합시다~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