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판(山坂)이란 말뜻은 산에서 벌목 또는 어떤 특정 작업을 하는 현장을 이르는 말로 술판 노름판 굿판 난장판....등도 같은 형태의 말이라 할 수 있겠다.
솔개산판으로 불리어졌던 첫 번째 사진. 이 사진의 위치는 어디였으며 바닷가 방파제 같은 구조물을 어째서 산판이라 하였고 어떤 목적에 이용되어 졌는지를 2022년 이 시점에서 그 내력을 아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나 감만동의 옛 모습을 소개하는 사진으로는 자주 보았을 것이다. 사진의 위치는 솔개해수욕장 서편, 지금의 현대아파트 1차와 2차 가운데 도로에서 직전방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었고 토산(土山:도야마)의 마사토(磨砂土)를 바지선으로 실어 내기 위한 부두 역할을 한 곳이다. 토산은 솔개마을 산등성이가 모래구지 쪽으로 연이어져 내려와 솔개와 모래구지를 가로지르는 야산이었는데 양쪽을 오가려면 이 토산을 넘어야 했고 잡목이 무성했다고 한다.(두 번째 감만동 항공지도 참조)
토산의 토질은 산 전체가 모두 질 좋은 마사토였는데 초량쪽 부두 조성 공사시 바다밑에 깔았고 항내 곳곳에 있는 뻘을 준설한 후 그 바닥에도 토산의 마사를 깔았다고 한다. 이렇듯 토산의 마사를 파내어 실어내는 작업 현장이 곧 산판인데 바지선에 싣는 부두시설까지 일괄해서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이 같은 산판은 돌산 화강암 채석장쪽에 세 곳이 있었고 모래구지 선착장 방파제였던 돌 산판과 맞은편 멸치를 삼던 흙 산판해서 모두 여섯 곳이 있었다. 사진의 솔개 산판은 한시적 시설이었던지라 상부는 흙으로 덮혀 있어 잡초가 무성했다.
어렸을 때 형이나 삼촌을 따라 낚시를 가서 자주 올랐던 곳인데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완전히 허물어 졌고 썰물 때면 흩어져 있는 돌덩이들이 드러나 보였다. 산판 건설 당시 바다 안쪽 끝부분은 전신주 같은 나무로 말목을 박고 말목 사이에 돌을 끼우면서 쌓아 올려 산판의 유실을 방지했는데 산판이 허물어 진 이후 썰물 때면 시커먼 말목이 수면 위로 나타나 보였고 이것을 "말등다리"라고 불렀다.(세 번째 대충 그려 본 이미지 참조)
마사를 채취하기 위해 토산을 깍아내면서 감만 본동 쪽과 모래구지 사이의 교통로 역할을 했던 고갯길만 그대로 두고 토산은 완전 착평되어 졌는데 이때 조성된 넓은 평지에 1950년대 초반, 전시( 戰時) 군용 폐차량 집하장으로 군에서 사용하였다. 토산은 그렇게 사라졌지만 그 지역을 계속 도야마(土山)라고 불렀다.
맞은편 현재의 솔개다리쪽 산등성이는 토산이 깍여지면서 지형 차이에 의해 높다란 절벽 같은 형태로 남게 되었는데 토산의 본 줄기이지만 암산이라 불리어졌고 잡목도 무성했다.(네 번째 사진 참조)
이 일대에 한 때 안교선씨가 운영하던 안강목재가 들어 서기도 했고 이후 4차선 새 도로가 개통되고 현대 아이파크가 들어서면서 암산의 형태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