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딸들아!
(<성서조선> 창간호, 1927년 7월)
<현대어 해역>
나에게 한 가지 자랑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마음 아주 깊은 곳을 차지하고 있다. 내가 조선의 모든 상황을 보고 실망할 때마다 그것이 나의 심장에 새로운 힘을 주어 나의 머리를 높이 들게 하고 나의 눈에는 희망의 빛을 비추었던 때가 몇 번이나 있었던가?
나는 동북의 구석(함경도)에서 자라 시야가 좁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 좁은 것만큼 확신이 강하다. 즉 본 대로 신뢰한다. 나는 나를 낳아 준 어머니의 품속에서 자랐고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소박한 이웃들과 살면서 듣고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조선을 망하게 한 것은 남성들이었다. 남성은 멸망하여 다시 소망이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조선의 여성은 세계적으로 독보적이다. 조선의 희망은 그 특별한 조선적인 여성의 장점에 있다’고.
특히 일본의 풍습과 비교할 때, 누구나 우리들의 이 신념을 증명해주었고 우리들도 일본을 오랫동안 목격하면서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성서를 알게 되면서 정조 문제는 단지 열녀의 도리(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나 충신의 의무(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정조 문제는 인생에서 일관된 근본 원리이다.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며 남성의 문제이기도 하며, 현세만의 제도가 아니요 내세에 걸친 우주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자기와 교회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에 비유하였고, 여호와 하나님은 백성에게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엄하게 명령하셨다. 인류 중에서 유일신을 믿는 민족이 있었다면 이는 유대 민족일 것이고, 정조의 도를 가장 잘 지켜 온 민족은 조선의 여성일 것이다.
유대인의 미래에 희망을 가진다면 조선의 다시 회복될 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조선의 남성 특히 젊은 청년들은 불신과 방종으로 인해 멸망의 속도가 빨라질지도 모르지만 순수한 여성만은 진리에 살고 진리를 낳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자 확신의 이유이다.
그러나 최근의 소문은 어떠한가? 서울을 중심으로 한 학생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들과 각종 오락장을 다니는 어두운 상황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선 것이다. 즉 선대와 현대의 조선 여성 사이를 엄격히 분류하여 우리의 자랑을 전자(선대)에만 국한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얼굴에 열정을 가지고 품위가 떨어진 것을 세계를 향해 사과하고 확신이 거짓되었음을 뉘우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서생(세상일에 서툰 자)의 대처할 방한 방안으로 생활하고 있고 실상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경솔하게 실망하지 말고 묻는다. 아 한양의 딸들아! 당신들은 우리가 자랑을 높이고 싶은가, 아니면 우리의 얼굴에 수치를 씌우고 조선의 앞날을 어둡게 하려는가? 아 조선의 딸들아! 아 한양의 딸들아!
<해제>
글의 마지막에 탈고 날짜를 1927년 2월 17일로 기록해 놓은 것으로 보아, 김교신이 유학을 마치고 함흥 영생여학교 교사로 부임하기 직전에 쓴 것으로 보인다. <성서조선> 창간호에 수록된 다른 글들이 성서 연구를 표방한 것과 달리 이 글은 조선 여성의 정조 문제를 기독교 신앙과 관련지어 논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서조선> 창간호의 글 중에서도 가장 이채롭다.
김교신이 여성의 정조 문제를 말한 데는 그의 어머니의 삶이 그 배경에 놓여 있었다. 김교신의 어머니 양신은 김교신을 낳은 지 두 해만에 남편을 잃고 교신과 교량 두 아들을 홀로 키우며 살아왔으니, 김교신에게 조선적 여성의 원형으로 어머니가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일본 유학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여성과 조선 여성의 정조 관념을 비교하면서 조선의 희망을 여성의 정조에서 찾고 있다. 이런 관점을 단순히 가부장적 관념으로 치부할 것은 아니다. 김교신은 정조 관념을 성서의 맥락으로 옮겨 ‘인생을 일관하는 근본 원리’로, 더 나아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민족의 여호와 신앙과도 이어지는 ‘우주적 법칙’으로 확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