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6, 체네비 예배당 헌당예배와
불가리아 선교지 방문
일시 : 2026년 5월 3일~14일(10박 12일)
장소 : 불가리아 체네비, 그르맨, 사도부챠, 고체델체브 교회 및 그르맨 선교관
인원 : 엄홍대 목사, 예홍식 장로, 박현경 전도사, 전예은 권사, 정옥례 권사, 이종춘 집사 (총 6명)
대한예수교 장로회
은혜교회 선교부
<은혜교회 체네비 예배당 헌당예배와 선교지 방문 일정>
인천 출발 26/5/3(주일) 밤 11:20 소피아 출발 26/5/13(수) 밤 9:05
인천공항 제 1터미널 소피아 공항 제 2터미널
ICN-IST TK0091 5/3(일) 23:20 SOF-IST TK1030 5/13(수) 21:05
IST-SOF TK1027 5/4(월) 07:30 IST-ICN TK0090 5/14(목) 01:50
소피아 도착 5/4(월) 아침 08:45 인천 도착 5/14(목) 저녁 5:40
◆ 5/3(주일) : 출발 1박(비행기 안)
밤 23:20분 TK0091 인천공항 출발 11시간 40분 비행
◆5/4(월) : 도착 1일차
이스탄불 공항 도착 05:00 Transit 2시간 30분 대기
이스탄불 공항 출발 TK1027 07:30 1시간 15분 비행
오전 8:45분 소피아공항 도착/입국수속/세관통과
9:30~10시 체네비교회로 출발
점심식사 후 휴식
저녁 __시 체네비 교회 헌당예배
.두피나챠 시에서 호텔 1박
➕ <체네비교회>
* 2019년 당시 27명 출석. 집시교회. 두피니챠 도시에 있음.
* 예배당 건축허가 3년만에 받음. 고속도로 진입로 언덕받이 과수원 땅(1,300평 규모).
* 울타리 길이 110m, 땅 사고 3년이 넘음
* 한국교회 집사님 내외가 1억 6천 헌금 약정(남편-샐러리맨, 아내-학교 선생님/전세집에 살다 헌금 하시고 그 해에 이사의 축복받음). 그 중 1억 사용(2천-담장, 나머지 8천~1억 이상 필요 예정).
* 사역자 – 플라멘(아내 안토니아); 자기 집 아버지 방과 거실을 가정 예배당으로 사용(오벧에돔의 집처럼 집에 성막이 거함). 외아들이 결혼 후 자녀가 없어 며느리가 애타게 기도한 결과 병원에서는 아들에게 문제가 있어서 자녀를 생산할 수 없다고 진찰 결과가 나왔으나 하나님께서 영리하고 잘 생긴 아들을 출산케 해주심. 아들도 직업이 없어 고생하다가 플라멘이 다니는 전기회사에 취직하게 됨.
* 교회 성도들이 흩어지지 않기 위해 꼭 교회당을 지어야 함.
* 2019/3/27 예배당 건축을 위해 저녁 6시에 모여 식사를 나눈 후 4시간을 기도함.
* 체네비 교회의 특징 – 음식을 푸짐하게 마련하여 나누고 단합도 잘함.
* 2020년 7월 교회당 1층 건축 마치고 2충 올리다가 흙이 무너져 내려 치우고 방수페인트 3겹 바르고 자갈 넣고 바깥 외벽에 파이프를 넣어 하수도로 뺌. 비탈진 경사 땅으로 옥벽을 치듯 콘크리트로 부어서 벽을 만듬.
* 2020년 9월. 건축비가 소진되어 골조 공사만 마치고 지붕 공사를 못하고 공사를 멈춤. 나머지 유리창, 전기공사, 타이 화장실 등 공사비를 주시기를 기도.
* 2021년 5월. 다시 공사 재개. 파송교회에서 필요한 경비 4천만원 중 2천만원 헌금, 무명 성도님께서 2천만원 헌금 보내주셔서 창문 유리창 완성. 지붕공사는 진행중.
* 2021년 5월. 앙겔리아, 엘레, 에밀리아, 요하나 왕복 300km를 내려와 선교관 청소를 해줌
* 2021년 7월. 지붕공사 완료. 옹벽공사 허가남.
* 2021년 8월 7일. 신입 교우 3명이 두피니챠 산 계곡으로 가서 교인과 함께 예배드리고 세례를 받음.
* 2021년 9월. 세내어 빌려 예배드리던 건물에서 예배당 내부에 아무것도 없어도 건물 안으로 들어가 예배를 드리기 시작함. 사역자 플라맨의 사돈이 얼굴과 온 몸이 붓고 병원에서 1달밖에 못산다 했는데 주님이 치유하여 주심. 지금은 일도 운전도 잘하여 간증거리.
* 2021년 9월 23일. 옹벽공사 시작하여 3000만원에 잘 마침(시카고 사돈 장로님 5,100불, 뉴저지 은사 목사님 1,000불, 아들목사 섬기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교회에서 5,000유로 등 1,400만원 공급하심). 11월에는 마당 전면에 현관과 진입로 출입구 펜스 공사 시작.
* 2022년 7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가가 오르고 자재들도 올라 일부 내장재를 사다보니 인건비가 없어 전기공사 및 다른 공사를 일시 멈추었다 다시 시작. 외벽 칠 공사하는 동키호테 사장님이 십자가를 자기가 만들겠다고 하여 근사하게 만들어 외벽에 붙임. 창틀 테이프 제거 작업은 스페인에서 칠공사 전문으로 하던 불신자가 자원하여 작업을 하겠다고 함. 교인들도 믿음이 자라 예배당 내부 유리창과 문 공사를 위해 5,000레바(약 400만원)정도를 모금함. 플라멘과 토니와 다른 교우들이 교회 마당 정면 철 울타리 43m 만드는 작업을 스스로 하겠다고 하여 재료를 사주었더니 정성들여 연구하여 정말 예쁘게 만듬.
* 플라멘의 아내 안토니아-장미빵, 알렉산드라-케잌을 잘 만들어 구워서 보냄. 불가리안은 겨울 양식을 위하여 오이피클, 고추양념구이, 콩줄기, 토마토, 자두, 체리, 복분자, 복숭아 등 병조림을 철따라 만드는데 안토니아는 겨울이 되면 이것들을 한 병씩 꼭 보냄.
* 2022년 10월 실내 내벽공사, 전기공사, 본당타일, 화장실 문, 세면기, 변기, 거울, 주차장, 감사 사례비 등(5천만원 소요) 마무리 공사 남음
* 2022년 11월. 실내 벽, 칠, 조명등 작업 중. 실내 타일, 계단 출입구, 로비, 건물 안 환풍구, 수도연결, 화장실 공사 남음.
* 미뜨꼬가 믿음이 성장하여 독일에 일하러 가서 사람들을 모아 예배를 인도하고 전도사 역할을 감당하고 돌아올 때 사도부챠 교회를 위해 그들이 헌금한 것을 가지고 옴. 성도들도 성전 건축에 힘쓴 결과 직업이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물질의 복을 많이 받고 아이들도 공부도 잘하며 가정들이 안정되고 간증이 많아 기쁨을 나누고 있음. 그때그때 필요한 건축헌금으로 도와주며 선교사에게 힘과 격려가 되고 있음.
* 체네비 성도들과 아센이 와서 겨울에 땔 나무를 작업하여 쌓아주고 감. 실내온도 17도 이하로 내려가면 나무를 때고 그 이상은 간이 전기난로로 절약함
* 2023년 7월. 소방서 조사관이 나와 두꺼비집이 플라스틱이라 안되니 다 뜯어내고 쇠로 된 것으로 바꾸라고 명령함. 공사는 10%정도만 남기고 마무리 단계에 들어감.
* 2023년 8월 26일. 세례식 거행. <데아>자매가 세례를 받음. ‘싸모콥’으로 가는 산속에서 세례식을 거행. 예배당 건물 내부는 거의 완성. 그러나 교회 마당, 주차장, 본당 건물 뒤쪽으로 올라가는 길 포장비용이 추가로 생각 밖에 많이 필요함.
* 엘레나가 100레바의 헌금을 뜻밖에 드려(평소에는 5레바, 10레바 드림), 무슨 감사한 일이 있냐고 물으니, 아들이 운전하여 소피아에서 내려오면서 마지막 터널을 빠져 나오며 갑자기 차가 차도 바깥으로 튕겨서 구르며 50m가량 굴렀는데 그로인해 문짝 4개가 다 부서지고 본넷, 트렁크도 다 부서져 차가 휴지조각처럼 구겨졌는데도 아들과 그 옆자리 친구가 하나도 다치지 않고 멀쩡하여 다음날 일하러 나갔다고...모두 감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
* 2023년 11월. 마당 포장공사 비용이 엄청나서 콩크리트 대신 보도블럭으로 할 생각으로 값을 알아보다 1/3값에 하는 그리스공장 직수입 보도블럭을 구입함. 좋은 기술자와 공사비를 위해 기도.
* 2024년 3월 – 교회당 공사 마무리 단계. 보도블럭 공사 마침. 본당 올라가는 계단 난간과 화재방지 소방수 설치해야 준공 검사 신청하고, 그동안 공사를 감사한 카티야와 계약된 감사비 지불해야 함. 은혜교회에서 보낸 헌금으로 주문했던 장의자를 찾아오고 칠은 교우들끼리 하기로 함.
* 찬양인도자 에밀리야- 키가 크고 뚱뚱하고 성량이 풍부함. 악보를 몰라 안타까와 기회가 되면 가르치지만 진전은 없으나 노래는 빨리 잘 배움. 주일학교 교사도 함. 준우 스나 선교사 부부가 토요일에 체네비 교회로 가서 한국의 어린이 찬양을 번역하여 가르치고 보급함. 에밀리야는 <나는 예배자입니다>를 배움. 딸 요안나도 같이 배우며 그 노래를 좋아함. 어느날 에밀리야가 그 찬양을 부르며 운전을 하고 오다가 갑자기 덤프트럭이 들이닥쳐 1cm 남기고 멈추어 울며 집에와 남편에게 하나님이 그 찬양 때문에 지켜 주고 살려주셨다 간증하니 남편도 하나님을 믿겠다고 결심하게 됨.
* 다른 에밀리야 남편 메소디- 목축업 종사. 교회 행사 때 직접 생산한 우유를 제공함. 믿은지 1년이 안되었으나 겸손히 섬김.
* 토니 – 50살 먹은 숫총각. 오케스트라의 드러머. 믿은 지 2년 정도이나 교회봉사 열심.
* 이 둘이 아주 순수하고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가졌으나 아직 신앙고백을 못함. 플라맨이 와야할 때에는 졸음운전 감시자로 순번을 돌아가며 따라옴.
* 2025년 3월 – 사역자 플라맨의 아내 안토니아가 3월 25일 복부 수술(복강경)
* 2025년 7월 – 예배당 5년만에 완공. 그러나 준공검사 신청 못함. 시에서 소화전을 설치해주어야 하는데 관할 도청이 바뀌어 늦어짐. 체네비 교회 예배당은 설치 순서가 맨 끝에 접수되어 기다려야 함. 현재는 무허가 상태.
◆ 5/5(화) : 도착 2일차
아침 두프니챠시(체네비)에서 출발 --> 릴라수도원 도착(약 48km, 57분 소요)
● <릴라 수도원> 방문 – 불가리아 정교회 본산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록된 정교회 신학교)
릴라 수도원(불가리아어: Рилски манастир)은 불가리아 남서부 릴라산맥에 위치한 동방 정교회 수도원입니다. 불가리아의 수도인 소피아에서 남서쪽으로 117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수도원 안에는 교회, 주거 구역, 박물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1927년 이반 릴스키(릴라의 이반)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수도원이 설립된 이후에는 불가리아의 통치자들의 후원을 받았으며 특히 불가리아 제 2제국의 거의 모든 차르(Tsar, 슬라브계 국가에서 국왕이나 황제를 이르는 군주의 칭호)들이 수도원에 기부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12세기부터 14세기까지는 불가리아 국민들로부터 문화적, 정신적 중심지 역할을 했으나 14세기 말에 일어난 오스만 제국의 불가리아 침공으로 인해 수도원은 한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15세기 중반에 재건되었습다. 15세기 말에는 아토스산에 있던 로시콘(Rossikon) 수도원, 러시아 정교회의 후원을 통해 이반 릴스키의 유품이 수도원으로 이전했고 두프니차에서 온 3명의 형제들에 의해 개축이 진행되었다. 수도원 안에 있는 복합 건축물들은 불가리아가 외세의 지배를 받던 동안에 불가리아의 언어, 문화를 소장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불가리아 부흥기(18세기~19세기) 시대에 수도원은 큰 변화를 맞았습니다. 1833년에는 화재로 인해 파괴되기도 했지만 1834년부터 1862년까지 진행된 불가리아 국민들의 지원을 통해 재건되었습니다. 1816년에는 수도원 내에 주거 구역이 건설되었고 1844년에는 종탑이 설립되었다. 또한 수도사들에 의해 수도원 내에 학교가 설치되었다.
1976년에는 불가리아 국립사적지로 지정되었으며 1983년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고 1991년 이후부터는 불가리아 정교회 소유로 남아 있습니다.
*릴라수도원 --> 고체델체브 도착(약 143km, 2시간 21분 소요)
● <그르맨 교회>, <사도부챠 교회>, <고체 델체브 교회>, <선교관 그르맨 교회> 방문
➕ <그르맨 교회>
* 불가리아 1호 교회, 서선교사님 댁과 가장 거리가 가까움, 집시족 교회
* 교회 휘장도 한국서 보고 설치하고 독일서 의자를 헌납함. 선교사님 가정과 서로 돕고 사랑하는 교회
* 사역자 – 게오르기(58세) / 돈카(58세): 아들 니트고
* 2019년 당시 - 교인 35명(중 어린이 27명)
* 목회자가 주변 사람들과 인간관계가 좋고 사모님이 남편을 잘 섬기고 밖에 나가서 일을 함 – 교회가 뒷받침되니 사역에 전념하도록 기도
➕ <사도부챠 교회>
* 선교사님 제 2호 교회(선교사님 집에서 22km, 40분 거리).
* 처음에는 가정집에서 시작했고 땅을 사서 교회를 지음(철근 값이 비싸 5천만원 이상 듬)
* 집시족 교회, 산골 마을, 대부분 문맹, 모슬렘 지역
* 사역자 – 뮬라덴 전도사(갑자기 사임). 2019년 당시까지 그동안 배고프며 주의 일에 충성했 고 자녀들이 잘 되어 복을 받음, 손주손녀 6명. 처음에는 독일에 돈 벌러 간다고 사임(전도사 임명도 받았는데..). 1년 후 전도사를 안수하여(강도권 주기 위해) 재임명했으나 사명감이 결여되었고 음성도 약함, 사람은 좋은데 신실하지 못함. 사위와 며느리는 교회출석, 딸은 돈벌러 가고, 아내, 장모, 친구도 교회 안 나옴
* 사역자 – 콜리오(아내 마리아)를 임시 사역자로 세우고 서준우 목사가 돌봐줌.
* 2019년 방문 당시 기도제목 – 1) 2달간 부교역자 라마단(1년전 세례받았음, 이전에 술, 폭력성 있었으나 변화되었고 2년동안 열심히 사역함)이 사단의 역사를 물리치고 교회 사역을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2) 좋은 사역자가 세워질 수 있도록
* 2020년 3월 사역자 – 루맨을 세움.
* 2020년 11월 – 부모들이 외국으로 돈벌러 떠나서 남아있는 유아들이 유아실에 모여 떠들곤 하여 최순이 선교사가 다목적실로 가서 그림성경책으로 창세기부터 가르치는 주일학교를 시작함. 교인 3명이 세례문답 공부를 시작함 5주후 추운 겨울이라 온천에 가서 세례를 받겠다고 함.
* 2021년 1월 – 말기암 1년 시한부선고 받은 성도 2명이 간절히 회개기도하고 다시 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암이 고쳐지는 기적이 일어남.
* 2021년 9월 – 생후 4달된 아기 아센이 열이 39도로 오르고 기침과 가래가 끓다가 혀가 말려 목 속으로 들어가는 위급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살려주셔서 지금은 건강한 기적. 그로 인해 믿음이 없던 애기 엄마 륩카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바르게 살겠다고 다짐, 온 가족이 음식을 만들어와 잔치를 함.
* 단쵸 부부 – 집시 교회 나오는 유일한 불가리안. 늘 아프다고 도움을 요청하고 거짓으로 돈을 요구하며 교회도 몇 달 다니다 그만두고 다시 나오다 그만두고 하여 사람들이 다 그 부부를 피하는 형편이었으며 8월에도 지붕이 무너졌다고 100만원을 교회가 달라고 떼를 썼으나 이제 변화됨. 루우맨의 아들 그름이 교회에서 겨울에 쓸 장작 15큐빅을 사서 헌납했는데 그 장작을 단쵸가 이틀에 걸쳐 전기톱으로 다 자르고, 감자 농사 지은 것을 교우들과 온 동네사람들에게 나누어 줌. 선교사님 가정에도 해마다 주던 빨간 감자를 두 자루나 줌. 강낭콩도 추수하여 다 나누어 줌(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고 말함). 입에서 찬송이 안떨어질 정도로 하루종일 찬양을 부름.
* 스테판 – 쵸컬릿을 사가지고 와서 돌림. 차를 운전하다 길 가운데 큰 웅덩이가 있고 앞 뒤에서 차가 와서 위험했는데 갑자기 뒤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지며 뒤에서 오는 차를 막아줘서 큰 사고를 막아주어 무사했다고 간증함
* 2022년 7월 – 산골마을에 있는 빠칭코 가게에 타국에서 힘들게 번 돈을 털어넣는 믿음 적은 교우들 문제가 있음. 세상 줄 끊고 구별된 삶을 살도록 기도.
* 2023년 5월 – 사역자 루맨이 심장이 아파 입원하여 각교회 성경공부반을 시작하지 못함.
* 2023년 7월- 그동안 중단되었던 <목요 기도회>가 다시 모이기 시작함. 어느날 <무쇼만/ 무슬림>들 5명이 교회에 와서 자기 엄마가 얼마전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예수, 예수” 그러면서 운명을 했다고 자기 집에 한 번 와달라고 요청했다고 루맨이 보고하여, 다음 주에 2시간 걸리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지나 유명한 스키장 <빰빠로바>를 지나 그들이 사는 산골 마을 <체펠라레>에 도착하니, 60살 된 할머니(아쎈카)와 손녀딸이 반갑게 맞이함. 아쎈카 할머니 남편은 터키사람 무쇼만, 상처한 사위도 손녀딸의 약혼자도 모슬렘이라 나가버렸음. 할머니 말씀이 건강하던 38살의 딸이 갑자기 죽었는데 딸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갔으니 자기도 예수님을 믿어야겠는데 자기 마을에는 정교회밖에 없고 개신교회가 없어 105km 떨어진 사도부챠에 교회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 다른 마을에 사는 할머니 여동생은 폭우로 못 온다고 스마트폰으로 함께 예배드림.
* 2023년 8월- 사역자 루맨이 집 앞 비탈 도로에서 차를 빼려는데 차가 갑자기 자기 발 위를 굴러서 계속 구르려고 하는데 순간 구르던 차가 멈춰 죽는 줄 알았다가 발도 멀쩡하니 괜찮았다고 함. 너무 감사해서 음식을 만들어 가져와 함께 간증을 나누고 기뻐함.
* <체펠라네> 아쎈카 할머니 가족은 스마트폰으로 계속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음.
* 2023년 11월 – 콜료와 아내 마리아는 (20년 전에 처음 만났을 때) 콜료가 아주 가난한 집시의 딸 마리아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빠 교감선생님, 엄마 고고학 연구원, 형 변호사가 사는 집에서 쫓겨나 마리아와 가난하게 사는 산골 마을 젊은이 부부였다. 마리아는 학교도 다닌적 없어 글도 못읽는 문맹자였으나 선교사 부부가 매 토요일마다 콜료 집으로 가서 성경과 영어와 통역에 필요한 교육을 시켜 성경학교 통역을 맡겼고 10년이 넘도록 봉사하였다. 특히 성막공부를 통해 믿음의 확신을 얻고 성장하여 집사와 리더로 세움을 받았다. 그 후 한국에 데려가 각 교회들을 견학하며 배우게 하였고 콜료는 그 사이 운전도 배우고 차도 사고 땅도 사서 집을 짓는 중에 있다. 지금은 범사에 복을 받아 개인 건축 회사를 운영하며 발전함. 마리아는 감자 밭에 일하러 가기도 하고 봉제공장에 다니며 빵과 케잌을 만들어 팔기도 하며 딸과 아들을 낳아 잘 기르고 자녀들이 영어 통역에 영향을 받아 전국 영어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함. 이제는 부모님도 마리아를 며느리로 받아들이고 시아버지 교감선생님이 마리아를 가르쳐서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배우는 중, 마리아는 특히 요리에 관심이 많아 김치담그기, 고추장 만들기 등 한국 음식을 배웠고 교회 행사가 있을 때마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봉사함.
* 2024년 1월 20일 – 사역자 루맨 집 화재가 나서 2층이 전소됨. 1층은 소방차가 물을 8톤을 퍼부어 이재민이 됨. 불가리안 교회에 예배당 뒤 식당과 사무실을 내어 주어 임시로 살도록 함. 인구 1만 5천명만 사는 아주 작은 마을이나 동회에서 모든 자재를 대고 온 마을 사람들이 자원봉사로 집을 짓고 자비로 음식을 만들며 돈도 기부하고, 사도부챠 교인들도 열심히 봉사하고, 고체델체브 교회 일군들인 콜료, 쎄르게이, 알렉스 멤버(이들은 전문 집짓는 기술자들)이 사도부챠까지 와서 지붕을 만들고 봉사자들에게 기술 지도를 하여 집을 너무나 휼륭하게 지어줌.
* 2024년 3월 23일 – 7명의 교인 세례식을 거행. 5주간 문답공부와 믿음 점검 교육 등 이들 중 2쌍이 결혼식을 못하고 살았기 때문에 17일에 결혼식을 올리고 23일에 세례를 받음.
* 2025년 11월 – 영적 공격으로 교회당 앞에 세워논 사역자의 차를 칼로 타이어 4개를 찢어놓은 사건이 있었음. 8월달에도 있었던 일.
➕ <고체 델체브 교회>
* 선교사님 제3호 교회. 땅매입 2천만원으로 시작. 총 1억 넘게 들어서 나머지 다 건축
* 사역자 – 안드레이(아내, 무슈) 46세. 인터넷으로 공부를 많이 하고 사역자 중 제일 지적 수준이 높음. 교회가 안정되어 사례비도 많이 받음. 교회가 자체로 자립이 되니 사모님이 공장에서 미싱일을 함. 딸 3명. 2010년 봄에 교회 완공하고 가을에 한국 방문. 엄마는 신앙생활 하시고 이태리가서 일함(믿음의 배경이 탄탄함). 큰 딸 23세(2019년 당시 16세 10학년-고1), 막내 딸 시오나(2019년 가을에 처음 학교 입학)
* 콜리오가 이 교회 주일학교 사역을 함(콜리오가 선교사님 수제자 루멘보다 영적으로 성숙)
* 루멘(아내, 나일렌) – 2019년 방문 당시 우리를 영접해준 성도. 결혼한 지 8년차(2019년)까지 아기가 없음. 영국가서 일함. 부인이 피아노 반주.
* 2023년 5월. 주일학교를 위한 후원비를 각 교회에 나누어 준 것으로 교회 뒷산 해발 2,000미터 피린산으로 소풍을 감
* 콜료, 쎄르게이, 알렉스(고체델체브 교회 일군들)가 그르맨에 있는 불이나서 전소된 슈퍼마켓 3층 건물을 새로 짓는데 가서 돈 안받고 자원봉사로 봉사하여 다시 슈퍼마켓을 오픈하게 됨. 너무 감사해서 큰 화분 두 개를 선물함.
* 2025년 3월 – 사역자 안드레이가 2개월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사역에 복귀함. 그동안 서준우 선교사 내외가 사역을 감당함.
➕ <불가리안 교회: 선교관 그르맨 교회>
* 서선교사님 가정 교회. 약 151평. 슬라브족 교회. 1가정(콜리오)
* 2019년 5월 4일에 헌당예배 드림(불가리안들은 자기들이 정통 정교회인이라는 자부심으로 개혁교회는 이단으로 알고 절대 받아들이지 않으며 집시족하고는 같은 자리에 있는 것조차 꺼려하여 슬라브족 사람들만의 예배당이 필요했음. 마당에 있던 낡은 창고를 부수고 그 자리에 예배당을 건축함)
* 2019년 7월 6일 전도초청잔치 실시 – 한국음식 party. 100명 초청에 68명이 오심(젊은 모슬렘 부부도 참석). 한국 파주 집사님, 권사님이 오실 때, 한국음식 준비하여 오심.
* 찬송가 제 2집 발간
* 2021년 5월. 선교관 공사하고 주변 정리함
* 동네 사람 고쇼, 줌빌라/게오르기, 돈카/뒷집 크리스토/콜료, 마리아를 통해 토마토와 오이를 공급받음.
* 스테판 할아버지, 마리아 할머니 집은 온 집안에 꽃잔치. 해마다 토마토, 고추 모종을 주심
* 2022년 8월 – 최순이 선교사 상박(어깨) 골막염. 서선교사 비뇨기에 18mm 돌로 허리통증. 치료를 위한 기도 부탁.
* 선교사역 20년간 성경학교를 통해 사역자 6명과 후보생 1명을 양성하였으나 2명은 세상을 사랑하여 갔고 5명은 모두 맡은 사역을 잘 감당함. 그러나 루맨이 가끔 심장문제로 입원을 하면 따로 맡길 사역자가 준비되지 않고 있어서 선교사가 감당하고 있음. 불가리안들은 인구수도 적지만 다 돈벌러 가기를 원하고 하나님 앞에 헌신자가 없어서 걱정이다.
* 2023년 8월 정통파 유대인 77세 할머니 미리암(남편 핀하스/비느하스)이 예루살렘에서 불가리아 방문 8/2~8/1. 이들 부부와 4년간 교제함. 핀하스는 4월에 뇌출혈로 사망. 미리암은 병수발로 고생하여 메일 교제를 통해 위로를 받음. 미리암은 텔아빕에서 태어나 히브리 대학 화학박사 후 연구원으로 있다가 수리학을 다시 전공하여 두 개의 박사를 한 지성인. 그러나 16일간 체류 후 소감은 유대인의 선민의식과 틀에 얽매인 율법주의적 생활 양식으로 인해 너무나 불쌍한 생각이 들어 그 가정(아들 가정, 딸 가정, 두 손자 손녀, 뉴욕의 아들 가정)이 예수믿고 구원받도록 계속 기도할 예정.
* 2023년 9월 첫 주에 지난 5년동안 독일에서 공부한 아들 서준우 목사 가족(정스나, 서윤, 서율)이 불가리아로 돌아와 선교사 가정에 합류함. 서윤은 초등 4학년(지금은 7학년), 율은 초등 1학년(지금은 4학년). 불가리어를 몰라 홈스클링으로 공부, 적응 중. 월화수 3일은 선교사 가정, 목금토주일 4일은 아들 부부가 식사준비.
* 강아지(구월이)와 고양이(마네)가 집에 나타나 손주들을 위해 기르기로 함.
* 각 교회 주일 순회사역 – 아들 선교사 내외와 역순으로 돌며 담당.
* 각 교회 기도회 – 매주 화요일, 사도부챠는 수요일로 바꾸고 준우선교사가 설교와 기도인도.
* 2023년 12월 18일 서희범 선교사 심장수술. 1년 전부터 숨차고 심장이 아팠으나 그대로 지나다가 병원가서 조영술하니 심장혈관이 98%, 95%, 98% 막혀있었음. 바로 입원하여 응급 상황을 넘기고 다음날 소피아로 보내져 수술받고 25일 성탄절에 퇴원함. 각교회에서 철야기도회로 열심히 기도함. 가슴뼈가 붙고 회복되려면 3달 소요.
* 2024년 3월 – 서선교사님 콩팥에서 결석이 요관으로 빠져나옴.
* 서준우, 정스나 선교사 사역 맹활약 – 선교사 자녀로 자라며 대학공부를 위해 고국에 돌아갈 때도 하루 전까지 같이 사역하였기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므로 아빠 입원, 회복기간 동안 사역을 잘 감당함.
* 서준우 선교사는
- 한국 어린이 찬송가 불가리아 말로 번역하여 가르치고 보급
- 외국으로 돈벌러 갔다가 돌아온 장기 결석자 가정 심방
- 감기 바이러스로 결석 교인 전화 심방
- 사역자 설교학 강의, 세례 문답 공부, 수요 기도회 인도
- 체네비 예배당 공사 감독, 홈 스쿨링 교사
* 정스나 선교사는
- 사토부챠 교회 독일어반 공부 , 영어성경 읽기반
- 토요일 그르맨 중학교 독일어반 강의
- 홈스쿨링 교사 , 가족을 위한 식사당번 목요일~주일까지
* 2024년 10월 17~19일 사역자 수련회 잘 마침(장소: 스키장 지역 반스코)
* 2024년 11월 – 포막족 유메르와 유비애. 유메르가 혼자 옥수수 이삭 10개를 가지고 옴. 우리는 우박으로 농사가 망가졌다고 하니 이틀 후 다시 피망 한 자루를 가져다줌. 유메르는 트랙터 등 농기계도 많이 있는 부농. 심방을 가려했으나 여름 농사일로 바빠 뒤로 미루고 매일 그 가정(유메르, 유비에, 딸가정, 사위, 손녀, 아들가정) 모두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기도.
* 팜파로바 산골 모슬렘 마을 체펠라레 아센카 할머니, 영감님, 아들, 사위, 손녀와 약혼자, 동생 알베나 할머니와 딸 쏘냐를 위해 예수님 영접하도록 매일 기도.
* 성도들이 서유럽으로 돈벌러 가서 땔감 해줄 교우가 없어 쪼개서 파는 나무를 사옴.
* 강아지(송이)가 마당으로 들어옴. 마네는 집을 나갔고 나중에 구월이와 송이도 빅토르가 새로 짓는 집에 갖다 줌. 다음 날 노란 고양이가 집에 들어옴(짱아)
* 2025년 3월 – 조국의 문제로 잠을 못 이루다 일어나보니 눈의 초점이 안맞아 어지럽고 힘들어 병원 갔으나 의사 휴진으로 진료도 못받고 고통중에 있는데 그날 밤 고체델체브 식구들이 평소대로 선교관에 기도하러 모였다가 놀라서 합심기도를 하는 와중 다음날 아침에 정상으로 돌아와 크게 기뻐하고 영광돌림.
* 유메르 가족이 1월 방문 때 유비애 동생 할머니까지 불러 소개시키고 인사나누며 마당에서 따서 저장한 포도와 포도쥬스를 대접하고 스위트콘 얼린 것과 간식도 싸줌, 유메르도 농사지은 감자를 한아름 줌.
* 2025년 4월 1일~6월 3일 고국방문.
* 2025년 7월 – 불가리아는 산업과 일자리가 없어 EU 다른 국가들로 나갈 수밖에 없어 신앙생활에 어려움이 있음. 주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려는 사역자도 찾기가 어려워 대를 이을 다음 사역자의 발굴이 필요한 상태. 더욱이 돈을 쫓아 살다보니 형편은 나아졌으나 신앙생활과 교회 봉사도 등한히 하고 건전한 가정 생활에 문제가 생기며 이웃과 싸우는 일도 빈번하고 사역자들의 가르침에 순종하려는 마음도 많이 사라지고 있음. 사역자들이 감당할 힘과 용기를 주시도록 기도가 필요함. 아들 선교사 부부가 어린 자녀 윤, 율(10살, 12살) 홈스쿨링으로 자녀 양육하고 있음. 선교사 가정에 건강, 평안, 성령충만, 필요를 채우시고 사역을 감당할 지혜와 힘과 강하고 담대함의 능력을 주시도록 기도부탁.
* 2025년 9월 – 독일 프랑크푸르트 사랑의 교회 청년 10명과 담당 목사님이 선교지를 방문하여 체네비, 고체델체브, 사도부챠 교회에 <여름성경학교>를 실시함. 복음을 전하고 찬양, 율동 창작활동, 게임, 간식, 교제의 시간을 가짐. 40도가 넘는 더운 날씨에 사도부챠 교회와 체네비 교회의 울타리를 페인트 칠 하고 주변 정리를 해줌. 사도부챠 교회 옆집이 외양간을 부수고 담을 쌓지 않아 이들이 콘크리트 기둥을 만들고 담을 쌓음. 성경학교 이후 저녁에는 서준우 선교사가 요한1서 말씀 주제로 특별세미나를 실시하여 은혜를 나눔.
* 2025년 10월 – 10/16~18일 3일 동안 스키장이 있는 반스코에서 사역자 수련회를 가짐. 디모데후서 말씀으로 <목회자의 영성과 갖추어야 할 덕목>의 주제를 가지고 목회 현장에서의 어려움과 반성, 토론과 위로와 휴식의 시간을 가짐. 윷놀이와 상품 증정, 한국식 소고기국과 요리로 대접하여 그들의 노고를 위로함.
* 2025년 11월 – 각 교회 기도회를 돌아가며 서준우 선교사가 섬김. 통성기도 훈련. 불가리안 교회 점심 비빔밥은 명물이 됨. 주일 오전에는 온 가족이 함께 예배 후 점심으로 모두 비빔밥을 먹고 점심식사 후 어른들은 성경공부를 하고 아이들은 주일학교를 함. 각자 집에서 만들어 온 반찬과 예배 동안 전기밥솥에 지어진 밥을 고추장 넣고 비벼 먹음. 한국 고추장을 좋아하며 가정마다 1kg씩 주문하기도 함.
.고체델체브 지역 호텔 1박
◆ 5/6일(수) : 도착 3일차
■ 그리스 입국 -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
● 빌립보 성 (행16:11-12)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행16:11-12)
- 빌립보(Philippi)는 BC.346년 알렉산더 대왕의 부친 필립 2세가 정복한 그리스 북쪽의 도시로서 그의 아들 알렉산더 대왕이 증축하여 많은 사람을 이곳으로 이주시켰습니다. BC.167년 그리스가 로마에 정복당하면서 빌립보는 로마의 도시가 됩니다.
- BC.42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제2차 삼두정치)가 이끄는 군대와 카이사르 암살 주역인 부루투스와 카시우스가 이끄는 군대가 이곳에서 충돌합니다(필리피 전투).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는 이 전쟁에서 승리하였는데 이후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 연합하여 옥타비아누스와 대립하다가 BC.31년 악티움 해전에서 패배하여 자결하게 됩니다. 이후 로마는 1인지배 체제 제국이 되어 옥타비아누스가 황제의 자리에 올라 ‘가이사 아구스도’가 되고, 승전지 빌립보는 로마의 직할 도시가 됩니다.
- 빌립보의 아크로폴리스(산성) 기슭에 있는 로마 아고라에는 비잔티움(이스탄불)에서 출발해 네압볼리를 거쳐 오는 에그나티아 대로(Via Egnatia)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이 길은 데살로니가를 거쳐 로마로 향하는 중요한 도로입니다. 바울은 이 길을 따라 마케도냐 지방의 첫 성이자(행16:12) 로마의 가이사 황제 정권이 탄생한 빌립보에 들어와 유럽에서 복음을 최초로 담대히 외치게 된 것입니다.
- 사도 바울은 AD. 49년에 이 빌립보 도시를 방문하여 유럽 땅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이 때 자주 장사 루디아와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개종하여 유럽 최초의 교회(빌립보교회)가 세워졌고 바울은 옥중에서도 그들에게 기쁨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선교 사역에 매우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아주 건강하게 성장하여 사도바울이 생각할 때마다 항상 마음에 두고 기도하며 감사하고 기뻐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빌1:3-6)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여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1:3-8)
● 바울의 감옥 (행16:16-40) 기도000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35.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36.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38.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교회 유적지(바실리카) 앞 전망대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바울이 갇혔던 감옥이 나옵니다. 이 곳은 한 건물 물 저장고였던 곳인데 바울은 채찍질을 당한 후 이 마른 저수조에 갇혀 한 밤중에 찬송과 기도를 통해 권능이 임하자 옥문이 열렸고, 이들을 발견한 간수가 자결하려 하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고 선포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핍박과 고난 중에 탄생한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옥에 갇혔을 때에 적극적으로 그를 도와 바울로부터 옥중서신을 받을 수 있었고, 환난과 핍박 중에 찬송으로 세운 빌립보 교회는 더욱 견고해져서 후에 ‘기쁨의 서신’이라고 일컬어지는 빌립보서를 바울로부터 받게 됩니다.
● 빌립보 유적지 아고라, 바실리카, 원형극장 (행16:16-40)
그리스 빌립보(Philippi)는 고대 마케도니아의 중요 도시로서 그리스, 로마, 초기 기독교 시대동안 번성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곳을 방문한 후 유럽 최초의 기독교 공동체가 생겼고 이후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4세기 이후 지진, 침략 전쟁 등으로 도시가 점점 쇠퇴하였고 14세기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점령한 이후 완전히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빌립보 유적지는 바울과 실라가 갇혔던 감옥, 5세기 바실리카(A, B) 교회터, 로마식 원형극장, 아고라(시장) 등 초기 기독교 역사와 로마 문명이 공존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입니다. 현재 고대도시 빌립보에 남아 있는 유적들은 바위산(레카니스산) 위에 세워진 아크로폴리스, 바위산을 배경으로 한 원형극장과 거대한 시장터(아고라)가 그 특징입니다.
◉ 아고라(Agora):
아고라는 당시 도시의 시장, 광장으로 시민들이 모여 장사하고 소통하던 거대한 상업 및 행정 광장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이곳을 지날 때 귀신 들린 한 소녀를 고쳐주고 결국 주인에게 고소를 당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이 아고라 북쪽(비마, Bema; 재판석)에서 재판을 받았다고 여겨지고 채찍형을 당한 후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 바실리카(Basilica):
바실리카란 그리스어로 ‘왕족의’라는 뜻인데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한 건축 양식을 말하며 교황이 특별한 교회에 칭호를 부여한 성당들을 칭하기도 합니다. 빌립보에는 초기 기독교 시대의 3개 이상의 대규모 교회터가 남아있습니다. 5세기에 지어진 바실리카 유적은 당시의 화려한 교회 건축 양식을 보여줍니다. 특히 하트 모양 기둥 등 독특한 기둥과 기둥에 십자가 문양이 새겨진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또한 바실리카 A, 바실리카 B처럼 여러 교회터가 언급되며, 기둥, 벽 일부와 모자이크 일부가 남아 초기 기독교 건축의 변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 원형극장 (Theater) :
알렉산더 대왕이 아버지 빌립 2세를 위해 지은 것으로, 이후 로마 시대에 확장된 야외 극장입니다. 빌립보 원형극장은 로마의 식민지였던 도시 특성상 로마식 건축 양식이 강하게 남아 있으며 바닥에 구멍이 뚫린 돌이 배수 시설의 일부로 보이거나 일부 학자들이 음향 장치로 보기도 합니다. 또한 원형극장 내부에서 소리가 주변으로 전달되는 울림 좋아 현장감 있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 자주장사 루디아 기념교회(행16:13-15)
빌립보 교회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루디아인데 그녀는 빌립보에 살면서 자주 옷감 장사를 하는 여성 사업가였습니다. 그녀의 고향은 소아시아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초대교회 가운데 하나가 있던 두아디라 지역입니다. 두아디라는 중국의 비단이 유럽으로 건너가는 무역로인 비단길(Silk Road)이 거쳐가는 길목으로 소아시아 염색 공업의 중심도시였습니다. 자주 장사는 바로 이 중국산 비단을 자주색으로 염색하여 유럽에 판매했던 것입니다. 자주색은 열대 뿔고동이나 조개 혹은 특수한 식물의 뿌리에서 채집되는 당시에는 아주 값비싼 염료로써 로마 귀족들이나 고급 장교들만이 입을 수 있는 최고의 옷감이었습니다. 빌립보에는 로마 귀족들이나 군인들이 많이 살았기에 자주 옷감 장사에게는 최적의 환경이었던 것입니다. 유대인 남자 10명만 있어도 회당을 설립할 수 있는 것이 당시 유대인들의 관습이었지만 빌립보에는 불과 몇 가정밖에 유대인들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몇명의 유대 여인들이 강가의 기도처소에 모여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루디아였습니다. 이 루디아 기념교회는 바울이 루디아 여인을 만난 것과 그에게 세례를 준 것을 기념해서 간지테스 강가 바로 곁에 그리스 정교회에서 1974년에 세운 교회입니다.
● 간지테스 강가 (기도할 곳이 있나하여 나가셨던, 행16:13-15)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행16:13-15)
간지테스(Gangites) 강가는 사도 바울 일행이 기도할 처소가 있는가 보려고 나갔던 곳으로 그곳에서 두아디라 시에서 자주 옷감 장사를 하던 루디아를 만나게 된 장소입니다. 루디아의 고향 두아디라는 요한계시록 2장에 나오는 아시아 7교회 중 하나로서 현재 터키 서부의 아크히사르(Akhisar)라는 도시입니다. 고대에는 소아시아 지역의 리디아 왕국에 속했던 상업도시로서 귀족들이 입는 고급 자색 옷감의 주요 생산지였습니다. 이 루디아는 바울이 설교할 때 마음이 열려 바울을 따르고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바울 일행을 자기 집에 초대하여 머물게 하였고 이렇게 하여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이방 여인으로서 유대교의 하나님을 공경하던 루디아는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듣고 빌립보 교회의 기초석을 놓게 되며 바울의 선교 후원자가 되어집니다.
● 까발라(네압폴리) 바울도착 기념 예배당 (행16:9-11) 기도000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행16:9-11)
네압볼리(Neapolis)는 ‘새로운 도시’(Νέα πόλις)라는 뜻으로 사도바울이 드로아(Troy)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 섬을 지나 도착한 마게도니아 지방의 첫 항구입니다. 현재 이름은 까발라(Kavala)이며 빌립보에서 동남쪽 16km 지점에 있습니다. 사도바울 당시 네압볼리는 빌립보에 속한 항구도시로서 바울은 2차전도 여행 때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이 항구에 도착하여 마게도니아의 중심 도시 빌립보로 향하였으며, 3차 여행 때는 빌립보에서 이 항구를 지나 배타고 드로아로 갔습니다(행20:6).
네압볼리는 구도시와 신도시로 구분되어 있는데, 구도시는 조금 높은 언덕인 ‘파나기아’(Panagia) 지역에 있고, 신도시는 항구를 끼고 발달하였습니다. 이 도시에서 중요한 곳은 바울이 유럽 최초로 도착한 지역임을 기념하여 1928년에 건립한 ‘바울 기념교회’인데, 구도시로 올라가는 길 옆에 있습니다. 큰 길을 따라 올라가면 오스만제국이 건설했던 ‘수로교’가 있있며 계속 올라가면 정상에는 비잔틴 시대의 성곽이 둘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네압볼리(까발라)는 ‘데살로니가’ 다음 가는 제 2의 항구도시입니다.
.까발라 호텔 1박
◆ 5/7일(목) : 도착 4일차
암비볼리 마을과 사자상(행17:1)
바울 사도 강을 건넌 나룻터(행17:1) 기도000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행17:1)
● 암비볼리(Amphlpolis)
암비볼리의 위치는 빌립보에서 남서쪽으로 약 60km 떨어진 스트리몬(Strimon)강 유역에 있습니다. 이 스트리몬강을 건너면 평온한 시골 마을 암비볼리 마을이 나오는데 그 입구에는 BC. 4세기경 알렉산더 대왕 시대에 마케도니아의 영광과 힘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사자상이 서 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석방된 후 이 길을 따라 데살로니가로 가는 길에서 바울도 이 사자상을 보았을 것입니다.
스트리몬강 유역의 암비볼리 스트리몬강 다리(빌립보에서 임비볼리로)
암비볼리 사자상
암비볼리 사자상 안내판 사자상 전면 사자상 주위의 석조물
●아볼로니아 바울의 비마, 장터, 로마시대 목욕탕. 기도000
아볼로니아(Apollonia)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암비볼리를 거쳐 데살로니가로 가는 길에 들렀던 도시입니다. 이곳은 암비볼리로부터 48km, 데살로니까로부터는 61km 떨어진 곳에 있는 볼레(Borle)호수(현재 명칭은 Volvi 호수) 남쪽에 위치한 도시로서 에그나티아 가도에 자리잡은 고대의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당시에는 약 만 명 정도의 인구가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아테네와 맘먹는 수준이었습니다. 고대 아볼로니아(현재는 미그도니아) 도시 안에는 궁전 원형극장, 공중목욕탕, 운동장, 시의회 등과 함께 장터(아고라, Agora)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아고라 주변의 기둥과 건물 터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바울은 암비볼리에서 떠나 데살로니까로 가는 도중 이곳에 잠시 들러서 설교를 했다고 하며 마을 입구에는 사도 바울이 강론한 자리로 전해지는 바울의 비마(Bema, 연단) 바위가 남아 있습니다.
아볼로니아 바울의 비마(연단) 바울의 비마 비석
아볼로니아 로마시대 목욕탕 바울의 비마 앞 호수(볼레, 볼비)
데살로니키(데살로니카) 호텔 1박
◆ 5/8일(금) : 도착 5일차
●데살로니키(행17:1-9) 기도000
데살로니키(Thessaloniki; Θεσσαλονίκη, 혹은 데살로니카, 살로니카)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 다음가는 도시로서 그리스령 마케도니아 지방의 상업, 공업, 해운, 문화, 정치의 중심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명예 지명으로 그리스의 ‘공동 수도’라고 일컫기도 하며, 비잔티움 제국 때에는 ‘공동 황제 수도’라 일컫기도 하였습니다. BC. 315년경 마케도니아 왕 카산더가 이 도시를 건설하고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 누이이자 자신의 아내인 ‘데살로니카’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였습니다.
BC 146년 이후 로마시대에 이 도시는 식민지 마케도니아의 수도로서 번영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2차 선교 여행 중 이 도시에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웠으며, 그가 보낸 서신서 데살로니가전,후서의 배경이 됩니다. 이 도시는 비잔틴 제국 시대에도 중심 도시 역할을 했으나 1423년에 베네치아에게 양도되었고 1430년에는 투르크의 술탄 무르다 2세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1912년 발칸전쟁이 터지면서 그리스와 불가리아는 이 도시를 점령하려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결국 이 도시는 그리스 군대에 의해 함락되어 그리스 왕국에게 양도되었습니다(1913, 부쿠레슈티 협정). 이처럼 이 도시는 이스탄불처럼 동서양의 교차점에 있는 교통요지로서 오랜 세월 외부 세력에 의해 숱한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2차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함락되어 6만 여명의 유대인들이 모두 나치 수용소로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인구 130만명(도심은 30만)이 거주하는 그리스 제 2의 도시로서 수많은 강대국의 지배 속에서도 다양한 문화가 섞여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도시입니다. 대표적인 랜드마크는 ‘화이트 타워’(레프코스 피르고스)와 ‘알렉산더 동상’, 그리고 서쪽 해안가의 ‘아리스토텔레스 광장’ 등입니다.
◉ 알렉산더 대왕 동상
데살로니키는 알렉산더 대왕의 고향입니다. 그는 아리스토레스의 제자이자 마케도니아 왕으로서 당시 헬라 제국을 평정한 인물입니다. 이 동상은 자신의 애마였던 ‘부케칼로스라’는 말에 타고 있는 역동적인 모습으로 조각되었고, 동상의 높이는 6m, 무게는 4톤, 전체 높이는 11m입니다. 그는 자신의 부친 필립 2세왕이 개발한 신무기 ‘사리사’를 사용하여 세계정복에 나섰습니다. 이 조각상과 창 등은 1973년에 화이트 타워 근처에 세워졌습니다. 비록 알렉산더를 배신하고 그의 가문을 몰살시킨 카산더가 세운 도시이지만 위대한 알렉산더 대왕을 기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헬라 제국은 얼마 안 가서 알렉산더 대왕의 나이 33세에 그가 요절한 후 신하 4명에 의해 분열되고 맙니다(단7:6 표범의 날개 넷과 머리 넷, 단8:8 숫염소에게서 난 현저한 쁠 넷) 단7:6 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단8:8 수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 네 바람을 향하여 났더라
. 그의 신하 4명은 카산더(그리스와 마게도니아), 리시마쿠스(트라케, 비두니, 소아시아), 셀류쿠스(시리아, 바벨론), 프톨레마이오스(이집트, 팔레스타인, 아라비아, 페트라)입니다.
알렉산더 동상과 그의 아버지 필립이 개발한 신무기 ‘사리사’ 창
◉ 화이트 타워(White Tower, 레프코스 피르고스, Λευκός Πύργος)
데살로니키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인 화이트 타워는 높이가 약 30m로서 15세기 이탈리아 베니치아인에 의해 세워진 도성의 일부입니다. 18-19세기의 터키 시대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으며, 당시 대량학살이 일어나 ‘피로 물든 탑’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탑 표면을 흰색으로 칠해 ‘화이트 타워’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현재 이곳은 비잔틴 시대의 유물 전시를 위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화이트 타워(레프코스 피르고스)
화이트 타워 위로 올라가는 내부 계단 박물관으로 쓰이는 화이트타워 내부
타워 내부 창살에서 바라본 바깥 에게해와 화이트 타워 전경
◉ 에게해 살로니카 해변
에게해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있는 지중해의 길쭉한 만입니다.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 사이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마르마라해와 연결되고 마르마라해는 흑해와 연결됩니다. 에게해 제도는 바다 안에 위치하며 크레타(그레데) 섬과 로도서 섬을 포함한 일부 섬은 남쪽 경계를 이룹니다. 데살로니키는 에게해의 북부 항구 도시로 살로니카 해변은 웅장한 바다 풍경과 화이트 타워가 보이는 역사적인 산책로로 유명합니다.
데살로니키 (살로니카) 해변 살로니카 해변산책로 카페유람선
살로니카 해변에서 아리스토텔레스 광장 아리스토텔레스 동상 해변가의 알렉산더 동상
에게해 테르마이코스만 에게해 살로니카 (테르마이코스만) 해변과 산책로(볼타)
(행17:1~9)
1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 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를 받고 놓으니라
바울은 유럽의 첫 항구도시인 네압볼리를 통해 이어서 빌립보, 암비볼리,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카에 도착하였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카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 늘 하던대로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3주(세 안식일)에 거쳐서 성경을 풀어 강론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부활에 관하여 상세히 설명하며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살전2:9에서 바울 자신과 일행이 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생업에 종사하며 단 3일이 아닌 좀 더 긴 기간 동안 일하면서 전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의 이러한 수고로 인해 데살로니카의 많은 시민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며 바울은 후일 데살로니가전·후서를 통해 이들에게 믿음을 담대히 가지도록 권면하였습니다. 한편 시기에 가득 찬 유대인들은 사람들을 모아 떼를 지어 몰려가서 당시 야손이 집에 머물고 있는 바울과 실라를 잡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를 찾지 못하자 그 집 주인 야손과 형제들을 끌어내어 재판정의 읍장들에게 끌고가서 천하를 어지럽히는 자들을 맞아들였다는 이유로 소동을 부렸습니다. 결국 무리와 읍장들은 야손과 그의 형제들에게서 보석금을 받고 풀어주게 됩니다. 할 수 없이 바울과 일행은 몰래 예수 믿는 형제들의 도움으로 데살로니카를 떠나 베뢰아로 가게 됩니다.
◉ 야손의 집
데살로니가의 전승에 의하면 당시 바울과 실라가 머물렀던 야손의 집은 데살로니가 시내를 내려다 보는 산 능선에 있었으며, 그 인근에 후일 블라타데스(Vlatades/ Vlatadon) 수도원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 블라타데스 수도원(Vlatades Monastery)
데살로니카에서 가장 유서 깊은 장소 중 하나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역사적 장소 위에 세워졌으며 데살로니카의 초기 기독교 및 비잔틴 기념물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지정되었습니다. 이 수도원은 비잔틴 시대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폐쇄되지 않고 운영 중인 데살로니가의 유일한 수도원이며,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머물 때, 유대인 회당에서 강론한 후, 이곳에서 설교를 이어갔다는 전승이 내려옵니다. 이곳은 바울이 도망칠 때 이용했던 성문과 가까우며 산꼭대기에 있는 동쪽 성벽의 삼각 망대(Trigonio Tower)에서 북쪽 성벽을 따라 500m 떨어진 곳, 즉 데살로니가 구시가지의 가장 높은 곳인 아노 폴리(Ano Poli) 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테르마이코스만과 화이트 타워 도시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수도원 본당(Chatholicon) 옆에는 바울이 설교하기 위해 머물렀던 자리를 기념하는 ‘바울의 보폭’이라는 작은 경당(Parekklesion)이 있으며 바울이 섰던 자리에는 ‘바울의 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4세기에 제작된 정교한 비잔틴 양식의 벽화와 이콘들을 볼 수 있습니다.
블라타데스 수도원 블라타데스 수도원 내부 블리타데스 수도원 전망
블라타돈 수도원 경당 내부 / 프레스코화 바울의 돌 블라타돈 수도원 명패
◉ 사도 바울 기념교회(Holy Church of Saint Paul the Apostle, 성 바울 성당, Ιερός Ναός Αγίου Αποστόλου Παύλου)
데살로니가(테살로니키)의 사도 바울 기념 교회는 사도 바울이 서기 50년경 데살로니가에 방문했던 역사적 발자취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상징적인 정교회 성당입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야손의 집에 불량배들이 몰려와 폭동이 일어날 즈음 바울과 실라가 급히 도시를 떠나 성벽의 가장 높은 곳을 통해 성도들의 도움으로 베뢰아를 향해 탈출할 때, 잠시 물을 마시기 위해 들렀다고 전해지는 샘터의 샘물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이 샘물은 수 세기 동안 '사도 바울의 성수(Apostle Paul's Holy Water)'로 알려지게 되었고, 신자들의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22년에 케드리노스 언덕 기슭 블라타돈 수도원 바로 곁에 작은 교회가 먼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사도 바울에게 헌정된 현재의 웅장한 “성 바울 기념교회(Agios Pavlos)”가 완공되었습니다. 이 사도바울 기념교회는 언덕 위에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어 도시와 에게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성지순례 명소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 기념교회(Holy Church of Saint Paul the Apostl) Ιερός Ναός Αγίου Αποστόλου Παύλου
사도 바울의 성수(Apostle Paul's Holy Water) 'Αγίασμα Αποστόλου Παύλου
● 성 디미트리오스 성당(Church of Hagios Demetrios, Άγιος Δημήτριος)
그리스 데살로니키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성당으로, 4세기 초 로마 황제 갈레리우스의 기독교 박해 당시, 신앙을 지키다 창에 찔려 순교한 젊은 로마 군인이자 정교회 성인인 드미트리우스를 기념하는 성당입니다. 이 성당은 드미트리우스가 갇혀 있다가 순교한 고대 로마 목욕탕 터 위에 세워졌는데 5세기에 처음 대형 성당으로 지어졌으나 여러 차례 화재를 겪었습니다. 특히 1917년 데살로니가 대화재로 거의 소실되었다가 1948년에 현재의 웅장한 5랑식 바실리카 형태로 복원되었습니다. 성상 파괴 운동(iconoclasme) 이전에 제작된 7~8세기경의 희귀하고 아름다운 비잔틴 모자이크들이 성당 기둥 등에 그대로 남아있어 예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데살로니키의 초기 기독교와 비잔틴 양식의 건축물 중 중요한 하나로서 1996년에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등록되었습니다. 지하 유적지(크립트)에는 성인이 갇혔던 로마 시대 목욕탕의 잔해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으며 발굴 당시 나온 고대 유물들과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성 데메트리오스 교회 지하에는 테살로니키의 수호성인인 성 데메트리오스를 비롯한 초기 로마 시대의 기독교인들이 순교한 장소가 있는데 수세기에 걸쳐 지반이 점차 높아지면서 이 지역은 지하 묘지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전승과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이곳은 데메트리오스가 투옥되었다가 서기 303년에 순교한 옛 목욕탕이었습니다. 5세기에 최초의 성 데메트리오스 교회가 세워지면서 그의 순교 장소는 교회에 편입되었고, 샘물은 성수대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샘물에는 신자들이 성인의 유물에서 나오는 향기로운 기름인 미론을 담을 수 있도록 여러 개의 물받이가 설치되었습니다. 이 지하 묘지는 오스만제국 시대에 흙으로 메워졌다가 1917년 화재 이후에야 재발견되었습니다. 이후 고고학청의 복원 작업을 거쳐 1988년에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성 드미트리우스 대성당(Church of Hagios Demetrios)
이코노스타시스(성소와 회중석을 구분하는 성화벽) 성당 후면 성 조지(데메트리우스)와 아이들
지하 납골당 입구 지하 납골당 내부 5세기 교회의 원래 조각상과 기둥 분수
● 베레아(행17:10-14)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거늘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카에서 황급히 떠나 베레아로 향합니다. 베레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던 강팍하고 완악하여 자신들의 신념과 다른 바울의 설교를 배척하며 바울 일행을 잡으려고 소리쳐 난동을 부리던 유대인들과 같지 아니하게 신사적이고 너그러워서(유게네스, εὐγενής 고귀한 혈통의, 마음이 고상한, noble) 열린 마음으로 바울의 설교를 잘 듣고, 그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회심자가 많이 나타났고 그 중에는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에 있던 강팍한 유대인들이 베레아까지 쫓아와서 여기서도 소동을 일으켜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할 수없이 믿음의 형제들은 바울을 내보내 아덴으로 가는 바다까지 가게 하였으나 바울의 일행이었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이 베레아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바울을 인도하던 사람들은 아덴에 이르러 실라와 디모데를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베레아로 떠납니다.
● 베레아 바울의 비마(행17:11) 기도000
현재 베리아 중심가에는 바울이 서서 말씀을 전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1세기 당시의 돌계단 3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떠나 베레아(현재의 베리아)에서 복음을 전했던 역사적인 강단(설교대)입니다. 계단 주변은 아름다운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 벽화가 있는데 중앙에는 말씀을 선포하는 바울의 모습이, 왼쪽에는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는 바울의 벽화가, 오른쪽에는 바울의 설교를 경청하는 베레아 사람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또한 바울의 전신 동상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야외 제단 형태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비마 벽화 (중앙 바울의 모습) 우측 벽화 좌측 벽화
2019년 방문 기념 사도바울(중앙)과 예수님(상단)의 기념비 사도 바울의 동상
● 유대인의 게토
베리아(Berea)에는 성경 시대부터 이어진 유서 깊은 유대인 거주 지역(게토)인 '바르부타(Barbouta)'가 있습니다. ‘바르부타’는 이 지역에 오래된 분수 이름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 건축 양식: 외부 세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집들이 서로 빽빽하게 밀착착되어 폐쇄적인 삼각형 구조를 이루며 외부와 통하는 출입구는 단 두 개뿐이었습니다. 미로 같은 골목과 독특한 마케도니아식 전통 가옥들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 사도 바울의 발자취: 신약성경 사도행전 17장 10절에 등장하는 ‘베뢰아’의 유대인 회당에서 사도 바울이 서기 50년경 복음을 전했습니다.
- 역사적 배경: 1943년 나치 점령 당시, 약 460명의 베레아 유대인들이 이곳 회당에 갇혀 굶주린 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 학살당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슬픈 홀로코스트의 역사).
- 트리포타모스 강가: 마을은 깎아지른 듯한 트리포타모스 강 절벽 위에 세워져 자연적인 요새 역할도 했습니다. 현재는 복원된 석조 주택들과 유대인 회당(Synagogue)이 남아 있어 전 세계에서 많은 순례자와 관광객들이 찾는 역사적 명소가 되었습니다.
● 베리아 유대인 회당(Veria Synagogue)
북부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인 회당입니다.
1850년 오스만 제국 황제의 칙령으로 재건축되었으며, 화려한 나무 천장 조각과 모자이크 바닥이 특징입니다. 회당 내부에는 휘장으로 가리워져 토라를 보관하는 보관함이 있어서 회당 뒤편에는 유대인의 전통 정결 목욕탕인 미크베(Mikveh)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유대인 게토지역 신발 전시 구역
바르부타 주택
베리아 유대인의 회당 앞에서
베리아 회당 명판 베리아 유대인 회당 베리아 유대인 회당 내부
휘장(파로켓Parochet)으로 가려놓는 토라 보관함(Aron Kodesh, Echal) / 유대인 구역(바르부타) 표지판
● <비잔틴 시대 교회와 골목의 초대교회들>
◉ 구세주 그리스도의 부활 교회. (Church of the Anastasis tou Sotira Christou)
베레아에 있는 구세주 그리스도의 부활 교회는 베레아 시 중심부, 시청(Town Hall) 바로 옆에 위치해 있으며 14세기(1315년 경, 비잔틴제국 말기)에 지어진 비잔틴 시대의 중요 유적으로서 베레아에 있는 48개의 교회 중 매우 중요하고 귀중한 역사적인 종교 건축물 교회로 꼽힙니다. 이 교회 내부는 벽면을 가득 채운 고품질의 프레스코화로 유명한데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칼리에르기스(Kalliergis)의 서명이 있는 독창적인 프레스코화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외부는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기둥(Frescoed portico)이 14세기 특징적인 비잔틴 양식을 잘 보여줍니다. 이콘들은 세 구역으로 나뉘는데, 하단에는 성인들의 전신상이, 중간에는 복음서 저자, 예언자, 성인들의 흉상이, 상단에는 정교회 12대 축일(Dodekaorton) 정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생애 중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기리는 12개의 절기. 최대 욱일인 부활절 다음으로 중요시 여김. ①성모 탄생 ②성십자가 현양 ③성모 입당 ④성탄 ⑤신현 ⑥주 만남 ⑦성모 희보 ⑧예루살렘 입성 ⑨주 승천 ⑩성령 강림 ⑪주 변모 ⑫성모 안식
의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으며, 그중에서도 십자가형과 부활 장면이 가장 두드러집니다.
구세주 그리스도의 부활 교회의 외형과 실내
구세주 그리스도의 부활 교회의 실내의 프레스코화
◉ 베리아 구 대성당(Old Metropolis of Veria, 팔레아 미트로폴리(Παλαιά Μητρόπολη)
- 역사적 가치: 11세기 초 비잔틴 제국 시절에 건립된 발칸반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바실리카 양식 성당 중 하나로서 사도 바울(Paul the Apostle)에게 봉헌된 성당입니다.
- 변천사: 1430년 오스만 제국이 도시를 점령했을 때는 이슬람 사원(모스크)으로 개조되어
'휸카르 모스크(Hünkar Mosque)'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1912년 발칸전쟁 이후 버려졌다가 교회로 재 봉헌되었고 이후 세속적인 용도로 사용하면서 오랜 기간 방치되어 훼손되었습니다.
- 복원: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거쳐 12~14세기의 귀중한 비잔틴 벽화(프레스코화) 등이 다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2019년 방문 당시에도 복원공사가 진행중이었습니다.
복원중인 베리아 구 대성당 대성당 후면
프레스코화가 새겨진 베리아 구 대성당 실내
.베레아 호텔 1박
◆ 5/9(토) : 도착 6일차
■ 알바니아 입국
알바니아는 동남유럽 지역에 위치한 국가로서 공식 국명은 알바니아 공화국((Republika e Shqipërisë, 리퍼블리카 에 슈치퍼리아)입니다. 총면적 28,748km², 2022년 기준 인구는 286만여명으로 인천광역시보다 적으며 수도 티라나에 약 70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알바니아인 90% 이상으로 구성된 단일 민족 국가입니다. 주요 도시는 수도 티라나, 두러스, 블로러인데 해외 이주 및 고령화로 인해 지속적으로 인구가 감소 추세로 현재는 약 200만명 중반으로 봅니다. 알바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무슬림 비율이 높은 지역으로 종교를 가진 인구의 68.0%가 무슬림입니다. 그 다음으로 정교회(22.0%)가 많으며, 가톨릭(10.0%)이 그 뒤를 잇습니다. 무종교인의 비율도 꽤 되지만, 이 중 무신론자는 소수로 인구의 2% 남짓한 수준입니다.
.알바니아 피스쿠팟 또는 린에서 1박
* 그리스 베레아에서 알바니아 페슈코피까지는 약 311km로 자동차로 약 4시간 44분(유료도로) 거리.
* 그리스 베레아에서 알바니아 린까지는 약 286km로 자동차로 약 4시간(유로도로) 거리.
◉ 페슈코피(Peshkopi)
- 알바니아 북동부에 위치한 페슈코피(Peshkopi)는 알바니아 디버르(Dibër)주의 주도로, 북동부 지역의 경제 및 문화 중심지입니다. 마케도니아 국경 근처의 코라프산(2,764m) 부근에 위치하여 지형이 높고 험준합니다.
- 온천과 자연: 이 지역은 약 2500㎢ 이상의 면적에 걸쳐 있으며, 특히 온천(thermal baths)으로 잘 알려져 있어 치료 목적으로 찾는 관광객들이 있습니다.
- 인구 및 분위기: 페슈코피는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로, 인구는 약 13,000명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대도시와는 다른 조용하고 전형적인 알바니아의 고산 도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 교통: 수도 티라나에서 차로 약 3~4시간 정도 소요되며, 산악 지형을 통과하는 경로라 이동 시간이 긴 편입니다.
◉ 린(Lin)
- 알바니아 동부 국경, 오흐리드 호수(Ohrid Lake) 연안의 작은 반도에 위치한 린(Lin)은 발칸 지역의 숨겨진 보석이라 불리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 위치 및 풍경: 오흐리드 호수의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반도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붉은 지붕의 집들과 돌길이 어우러진 여유로운 호숫가 마을입니다.
- 역사적 유적: 마을에는 기독교 초기 시대의 바실리카 모자이크 유적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습니다.
알바니아 오흐리드 호수 연안 린 페슈코피와 린
두레스, 티라나, 페슈코피 오흐리드 호숫가 연안 린
◆ 5/10(주일) : 도착 7일차
출발 전 주일 예배 드린 후 두레스로 출발
* 페슈코피에서 두러스까지는 126km, 2시간 21분 거리이며
* 린에서 두러스까지는 141km, 2시간 37분 거리입니다.
● 일루리곤(현 지명, 두레스(Durrës)); 롬15:19
- 로마시대부터 아드리아 바다를 건너 이태리로 왕래가 많은 알바니아 2번째 큰 항구.
-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이곳 출신으로 로마 황제들이 별장을 지었던 지금도 아름다운 도시.
(롬 15:19)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 일루리곤은 로마서 15장 19절에 언급된 당시 로마의 속주로, 오늘날의 알바니아와 그 인근 지역(발칸 반도 서부 아드리아 해안)을 가리키는 고대 지명입니다. 바울은 제3차 전도 여행 중 마케도니아 북쪽이자 아드리아해 동쪽인 일루리곤 지역까지 편만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 두러스는 고대 로마 시대에 '뒤라키움(Dyrrachium)'으로 불리던 일루리곤의 핵심 항구 도시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로마로 향하거나 일루리곤 지역에서 선교할 때, 이 주요 항구 도시인 두러스를 거쳐 가거나 이곳을 통해 육로인 '비아 에그나티아(Via Egnatia)'로 진입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요약하자면, 일루리곤은 바울이 복음을 전한 넓은 지역(현재의 알바니아 전체)을 의미하며, 두러스는 그 일루리곤 내에서 바울의 선교와 이동의 거점이 된 핵심 항구 도시(뒤라키움)입니다.
- 역사: ‘두러스’라는 도시 이름은 ‘디르하키온’ (라틴어: Dyrrhachium , 고대 그리스어: Δυρράχιον)에서 온 것으로 원래 기원전 7세기 그리스인들이 세운 '에피담노스(Epidamnos, 고대 그리스어: Ἐπίδαμνος , 알바니아어: Epidamn)'에 기원을 둔 도시로서 로마시대에 두러스는 중요한 항구도시였습니다.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동서로마의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입니다. 두러스는 에그나티아 가도가 끝나는 항구도시로 이곳을 지나 바다를 건너면 이태리의 브린디시(Brindisi)라는 도시로 연결되며 그곳에서부터 로마까지 중요한 도로인 아피아 가도(Via Apia)로 연결되는 곳입니다. 또한 이 도시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주전 48년에는 이곳에서 줄리어스 시저와 폼페이가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으며 중세에는 시칠리아 왕국과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기도 했습니다.
- 현재, 알바니아 서부 아드리아해 연안에 위치한 두러스(Durrës)는 알바니아 제2의 도시이자 최대 항구 도시로, 기원전 627년 세워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로마와 비잔틴, 오스만 제국의 유적이 공존하며, 베네치아 타워와 대규모 원형 경기장 등 관광 명소와 아름다운 해변을 갖춘 주요 휴양지입니다.
- 주요 명소:
- 로마 원형 경기장 (Amphitheatre of Durrës): 발칸반도에서 가장 큰 규모 중 하나로, 과거 검투사 경기가 열렸던 장소.
- 베네치아 타워 (Venetian Tower): 도시 성벽의 일부로, 오스만 시대 요새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
- 해변 (Beach): 긴 해안선을 따라 현대적인 호텔과 레스토랑이 즐비한 휴양 시설.
- 교통: 수도 티라나와 가깝고, 이탈리아를 잇는 페리 항구가 위치해 교통의 요지 역할을 합니다
● 바울 기념교회(Apostle Paul & Saint Asti) (롬15:19)
- 당시 바울사도가 직접 전도하셔서 약 20여가정이 있었다 함.
- 예루살렘으로부터 그 때 당시 서쪽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심.
- 로마제국은 바다를 건너 중동 아시아 대륙까지 점령할려고 이곳을 집중적으로 키웠음.
- 알바니아의 고대 항구 도시 두러스(Durrës)에 있는 바울 기념 교회는 정식 명칭으로
'사도 바울과 성(聖) 아스티 교회(Apostle Paul & Saint Asti)'라고 불립니다
- 위치 및 역사적 배경: 로마 시대의 중요한 항구였던 두러스의 원형경기장 인근 바닷가 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지역은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당시 일뤼리쿰(일루리곤, 현재의 알바니아 지역)에서 선교했을 때 통과했던 경로로 추정됩니다.
- 기념하는 인물: 일루리곤 지역의 최초 전도자인 사도 바울의 선교를 기념하는 동시에, 주후 100년경 이 지역의 주교였으나 로마 트라얀 황제 때 최초로 순교한 순교한 성 아스티(Saint Asti)를 함께 기리는 교회입니다.
- 건축: 1994년 기공되어 2000년대 초반 완공 후 2009년 5월에 정식 축성되었습니다.
- 교회의 의미: 구체적으로 바울이 두러스를 직접 방문했다는 명확한 성경적 기록은 없으나, 이곳을 통해 이탈리아 로마 등으로 이동하며 복음을 전했을 것이라는 오랜 구전과 전통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알바니아 내 기독교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로마로 이어지는 뱃길의 길목인 두러스에서 바울의 전도 흔적을 기념하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사도 바울과 성(聖) 아스티 교회(Apostle Paul & Saint Asti) 예배당 입구의 사도바울 그림
교회당 실내의 사도 바울과 예수님 성화 성 아스티 그림 성화벽(이코노스타시스)
● 로마시대 원형극장(Amphitheatre of Durrës); 콜로세움(검투사, 야수들)
알바니아의 항구 도시 두러스(Durrës)에 있는 원형극장은 발칸반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로마 시대 유적 중 하나입니다. 흔히 '알바니아의 콜로세움'으로 불리며, 2세기 초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건설되었습니다.
- 규모와 구조: 15,000~20,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던 타원형 경기장으로, 로마의 콜로세움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 용도: 검투사들의 전투, 야수와의 싸움 등 잔인한 볼거리가 열렸던 공간이었습니다.
- 보존 상태: 오랜 기간(6세기와 10세기)의 대지진으로 크게 파손되었으며, 16세기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흙으로 덮여 묻힌채 그 위에 가옥들이 지어져 있다가 1966년에 발견되어 현재는 일부가 복원된 상태로 대중에게 공개되어 있습니다. 경기장 지하 구조물과 검투사들이 사용했던 통로 등을 볼 수 있습니다.
- 위치: 두러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해 있으며, 근처에 베네치아 탑(Venezia Tower)과 요새 성벽이 있습니다.
● 비잔틴 시대 지하도시 예배당 흔적
-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고 검투사 경기가 금지된 4~5세기 이후인 6세기 무렵, 원형극장의 지하 통로를 개조하여 이 예배당을 조성했습니다. 이 두러스 원형극장 내부에 숨겨진 비잔틴 시대 지하 예배당과 그 유명한 모자이크 흔적은 원형극장의 지하 갤러리(회랑) 구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초기 기독교 예배당: 경기장 내부 갤러리에 만들어진 예배당입니다. 예배당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성인들의 비잔틴 양식 모자이크가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 지하 터널: 고대 검투사들과 동물들이 경기장으로 입장하던 지하 통로를 직접 걸어볼 수 있습니다.
두러스의 원형극장 파노라마
주택가 집들에 둘러 쌓여있는채 발굴된 두러스의 원형경기장
6세기 앱스형 장례 예배당 원형극장 입구 원형극장 계단 초기 기독교 모자이크
● 박물관(Muzeu Arkeologjik i Durrësit)
두레스 고고학 박물관은 아드리아해 연안의 가장 중요한 고고학 박물관 중 하나로, 알바니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고고학 박물관입니다. 고대 디라키움(Dyrrhachium) 유적에서 발굴된 그리스, 헬레니즘, 로마 시대의 방대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주요 전시품으로는 대리석 조각상, 모자이크, 암포라, 고대 동전 등이 있으며, 인근의 거대 원형 극장과 함께 알바니아의 고대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주요 명소입니다.
- 전시 내용: 고대 그리스 식민지에서 로마의 중심지로 변모한 두레스의 역사를 담은 다양한 유물로서 주요 소장품은 로마 시대의 정교한 장례용 석비(Stelae)와 거대한 석조 석관, 아름다운 모자이크, 일리리아(Illyrian) 및 로마시대의 도자기류, 고대 동전 및 난파선에서 인양하여 조개껍데기가 붙어 있는 암포라(항아리) 등이 있습니다. 또한 고대 두레스가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로마의 비너스)를 숭배하는 종교적 중심지였음을 보여주는 비너스의 방에는 다양한 비너스 흉상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는 Durrës가 여신 숭배의 중심지였던 시대를 증명합니다
- 역사적 배경: 1951년에 설립된 이 박물관은 1997년 알바니아 내전 당시 심각한 약탈과 파손을 겪었으나, 이후 복원 과정을 거쳐 2015년에 현대적인 시설로 재개관했습니다
- 위치 및 특징: 해안가에 위치하여 경관이 뛰어나며, 인근 원형 극장과 연계하여 관람하기 좋습니다.
두레스 고고학 박물관 외부 박물관 실내
비너스의 방 암포라(항아리)
.두레스 호텔 1박
◆ 5/11(월) : 도착 8일차
.북마케도니아 행
티라나(Tirane, 알바니아 수도) 지나서 북마케토니야 입국
오홀리드(Ohrid) 호수
- 알바니아와 마케토냐에 걸친 발칸반도의 제일 큰 아름다운 호수를 보며 갑니다.
* 두러스에서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까지 36km, 45분 거리이며,
티라나에서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 호수까지 131km, 2시간 44분 거리,
오흐리드 호수에서 키체보까지 61km, 1시간 거리입니다.
* 알바니아 두러스에서 북마케도니아 키체보까지 총 4시간 30분, 약 230km 거리입니다.
.키체보 호텔 1박
◆ 5/12(화) : 도착 9일차
■ 북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
* 키체보에서 스코페까지는 110kg, 1시간 52분 거리입니다.
* 스코피에에서 불가리아 두피니챠 까지는 179km, 약 2시간 50분 거리입니다.
* 북마케도니아 키체보에서 불가리아 두피니챠까지 총 289km, 4시간 42분 거리입니다.
■ 불가리아 입국
온천 휴식
불가리아 두프니차(Dupnitsa)에서 가장 가깝고 유명한 온천 지역은 사파레바 바냐(Sapareva Banya)입니다. 위치는 두프니차에서 차로 약 15~20분 거리로 매우 가까우며 발칸반도에서 가장 뜨거운 온천수가 솟아나는 간헐천이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아쿠아 클럽 코트바타(Aqua Club Kotvata)가 대표적인 온천 휴양지로, 야외 수영장과 온천 시설을 잘 갖추고 있어 인기가 높습니다.
.두피니챠 호텔 1박
◆ 5/13(수)10일차 / 마지막 날
■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
불가리아 서부 비토샤 산 아래 분지에 위치한 소피아는 유럽에서 가장 역사가 긴 수도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14세기 이전까지는 세르디카(Сердика)라고 불렸으나, 소피아라는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된 계기는 비잔틴 제국 황제인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소피아라는 여동생이 온천으로 유명했던 세르디카에서 요양을 한 후 그녀의 병이 깨끗이 나았다고 하여 이를 기뻐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성 소피아 성당을 짓게 되고 이후 이 도시가 소피아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 알렉산더 넵스키 정교회(Alexander Nevsky Cathedral)
불가리아 소피아의 '성 알렉산더 네브스키 대성당'은 세계에서 규모가 큰 성당 중 하나로 유서 깊은 정교회 성당입니다. 1877~1878년 러시아-튀르크 전쟁 당시 불가리아를 오스만 제국의 지배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싸우다 숨진 러시아 군인 20만 명을 기리기 위해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불가리아 국민들의 성금으로 세워진 기념비적인 건축물입니다. 1882년에 착공되어 1912년에 완공되었으며 성당의 명칭은 러시아의 국민적 영웅인 알렉산드르 넵스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 건축 양식: 웅장한 네오 비잔틴 양식으로, 외관의 거대한 황금빛 돔과 아치들이 조화를 이루는 걸작입니다.
- 규모: 내부 면적은 약 2,600㎡에 달하며, 한 번에 약 5,000~최대 10,000명의 신자를 수용할 수 있는 압도적인 크기입니다. 동방 정교회 건물 중 10대 규모에 속하며,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성 사바 대성당에 이어 발칸반도에서는 2번째로 큰 대성당입니다.
- 내부 장식: 이탈리아산 대리석, 브라질산 마노(오닉스), 화려한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로 가득 차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 지하 크립트: 불가리아 국립미술관의 분관으로 운영되며, 유럽에서 가장 방대한 규모의 정교회 성화(아이콘)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 특별한 성물: 제단 왼쪽 함에는 성 알렉산더 네브스키의 실제 갈비뼈 일부인 성유물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알렉산더 네브스키 대성당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 내부
●대통령궁(Presidential Palace)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 중심부에 위치한 대통령궁은 대통령 집무실과 라르고 복합단지가 어우러진 소피아의 랜드마크입니다. 대통령궁 정문(라르고 광장 근처)에서는 매 시간(또는 1시간 반)마다, 2인 1조 근위병들의 절도 있고 독특한 교대식이 열립니다. 궁전 안뜰에는 4세기 로마 유적인 성 게오르기우스 로툰다 성당이 보존되어 있어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Rotunda of St. George)
4세기 초 로마 시대에 지어진 붉은 벽돌의 원형 교회로, 소피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대통령궁 안뜰에 둘러싸여 있으며, 내부의 10~14세기 프레스코화가 유명한, 숨은 역사적 명소입니다. 4세기 초 로마인들이 건립한 이래로 교회, 모스크, 박물관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 왔는데 10세기부터 14세기까지 그려진 다양한 프레스코화가 내벽에 남아있어 당시의 예술을 볼 수 있습니다. 성당 주변으로 고대 로마 도시 세르디카(Serdica)의 유적이 발굴되어 있어 역사적 분위기를 더합니다.
불가리아 공화국 대통령궁 정문 앞 근위대병의 모습
불가리아 상징의 사자 문장 대통령 궁 중정의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 외부 유적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 출입문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 실내
● 네델야 교회(St. Nedelya Church)
불가리아 소피아 중심부에 위치한 '성 네델랴 성당(St. Nedelya Church)'은 10세기부터 자리를 지켜온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정교회 성당입니다.
- 역사적 사건: 1925년 폭탄 테러: 이 성당은 불가리아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성 네델랴 성당 폭탄 테러(1925년 4월 16일)'의 현장입니다. 당시 불가리아 공산당 세력이 국왕 보리스 3세를 암살하기 위해 지붕에 폭탄을 설치해 터뜨렸습니다. 이 사고로 약 200명 이상이 사망하고 5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으나, 정작 타깃이었던 국왕은 다른 장례식에 참석하느라 늦게 도착하여 화를 면했습니다.
- 재건된 역사: 테러로 파괴된 후 1933년에 현재의 웅장한 네오 비잔틴 양식의 중앙 대형 돔으로 다시 지어졌습니다.
- 내부: 내부에는 13세기 세르비아의 국왕이었던 스테판 밀루틴(Stefan Milutin)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어 많은 신자와 관광객들이 찾으며 1970년대에 완성된 아름다운 벽화들과 테러 속에서도 살아남은 19세기의 화려한 성화벽(아이콘 월)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 참고: 성 네델랴 대성당은 활동 중인 예배 장소로, 모든 방문객이 자유롭게 출입하고 탐방할 수 있으나 가장 붐비는 예배 시간을 피하기 위해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입장료는 없지만 내부 프레스코화를 촬영하려면 5 BGN의 작은 비용이 부과됩니다. 이곳은 운영 중인 대성당이기 때문에 방문객은 전통적 정교회 복장 규정을 준수해야 합니다. 이는 남성과 여성 모두 어깨와 무릎을 가려야 하며, 남성은 입장 전에 모자나 머리 덮개를 벗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배 참석자나 개인기도 중인 이를 존중하기 위해 침묵을 엄격히 지켜야 합니다.
성 네델랴 성당(St. Nedelya Church)
성 네델랴 성당(St. Nedelya Church) 내부 프레스코화
● 비잔틴시대 발굴 유적지(Ancient Serdica Complex)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 가장 대표적인 비잔틴 시대 발굴 유적지는 고대 세르디카 유적지(Ancient Serdica Complex)입니다. 소피아(Sofia)는 고대 로마 시대에는 '세르디카(Serdica)'로 불렸으며, 이후 비잔틴 제국의 주요 도시로 번성하며 찬란한 유적들을 남겼습니다. 2010년에서 2012년 사이 지하철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되어 발굴된 대규모 복합 유적지로서 지하철 세르디카(Serdica)역 일대 및 독립광장 지하에서 볼 수 있으며, 고대 로마 및 비잔틴 시대의 도시 구획, 주거지, 목욕탕, 하수도 시스템 등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당시의 도시 생활상을 그대로 엿볼 수 있습니다.
고대 세르디카 유적지 안내판 세르디카 유적(로마시대 목욕탕)
세르디카 지하 유적지
이상 불가리아 선교지 답사 여정을 마치고
.선물센타
저녁식사 후 소피아 공항 체크인
쏘피아 공항 T2 TK1030편 출발, 밤 21:05
이스탄불 공항 도착 22:35 transit 3시간 15분 대기
◆ 5/14(목) : 도착 11일차(출발 12일차)
이스탄불 공항 TK0090편 출발, 01:50
인천공항 도착, 오후 17:40
*** 모두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며, 목사님과 함께한 일행들, 선교사님과 가족들, 그리고 후원해주시고 기도해주신 은혜교회 모든 교역자 및 성도님들과 가족들에게 감사드립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