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MTB라고 하는 것이 생겨나기 전부터 자전거로 산이나 들을 달리던 사람들이 적지는 않았다. MTB의 역사도 게리 피셔(Gary Fisher) 라는 사람이 그의 동료들과 산에서 자전거를 즐기던 중에 자신들에게 맞는 자전거를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산악 자전거의 유래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있지만 대체로 게리 피셔 (Gary Fisher)를 처음으로 꼽는다.
이 사람이 1974년에 자작한 기어 범위가 유래없이 넓고 강력한 브레이크를 장착 Schwinn사의 엑셀셔 -X' 를 첫 산악 자전거로 꼽는다.
이후 게리 피셔와 찰리 켈리(Charlie Kelly)가 1979년 '마운틴 바이크스' MountainBikes)라는 이름의 회사를 만든 것이 첫 산악 자전거 제조 회사이고 이 때부터 비포장 도로경기가 활성화되면서 산악자전거가 시작되었고 비포장 도로 경기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경기때 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저변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스포츠이다.
산악 자전거가 생기기 이전에도 자전거를 타고 산길을 달리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의 자전거와 다른 산악 자전거가 개발된 것은 70년대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타마 히어스산에서 자전거 크로스 컨트리(장거리 경주) 및 다운힐 레이스(활강경기)경기가 활발하게 펼쳐지면서 동호인들이 경기력 향상을 위하여 자전거를 개조한 데에서 유래한다.
그 개발의 대표주자가 게리피셔와 죠프리즈로서 77년에 현재의 MTB원형이 되는 제1호 프리져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이 프리져가 나타난 뒤 산악 자전거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하였고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92년 7월에 전국 MTB연합회가 발족되었고, MTB 레저 동호인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산악자전거(Mountain bike : MTB)란 거친 오프로드, 심지어 산에서도 자전거를 타보자라는 모험심에서 탄생한 자전거를 말한다.
MTB는 1970년대초, 샌프란시스코 부근 마린 카운티에서 "게리 피셔(Gary Fisher)"란 젊은이에 의해 시작되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의 젊은이들은 서핑에 지치면 곧잘 자전거를 타고 모래둔덕을 달리곤 했는데, 이게 바로 '비치크루져'라고 불리우는 1단짜리 자전거였다. 모래 위를 달리는 자전거니까, 기존의 자전거들보다 바퀴가 넓었었고 튼튼했었는데 "게리 피셔"는 이 '비치크루져'를 개조(변속기 부착)하고는'델머페이 산'을 달려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물론 모험 좋아하는 또래 친두들과. 이 최초의 산악자전거에 "게리 피셔"는'크랭커'란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볼 수 있는 본격적인 MTB 프레임 제작자는 게리 피셔의 친구인 "조 브리져"였으며, 그가 제작한 자전거는 세계 최초의 MTB로 오클랜드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산악자전거라는 스포츠는 여타 스포츠에 비하여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산악자전거의 묘미는 어느 스포츠와도 비교할 수가 없을 것이다.
1976 ~ 1978 의 MTB 게리피셔가 만든 "액셀셔 - X"를 개조 일반인들에 화제가 되었지만 이것으로 만족한다면 역사는 그것뿐이다.
그러나 어떤 시대라도 중시되는 것은 레저의 세계다 게리피셔와 그 회원들은 더욱 고성능의 작품에 욕심이 생겼다.
그때문에 근본적으로 새롭게 제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클럽의 한사람 이었 던프레임 제작자 죠 프리즈가 76년부터 설계를 시작하여 77년에 완성한 현재의 MTB에 원형이되는제1호 프리져를 만들었다.
이 프리져가 출현된 후 많은 프레임 제작자가 완전히 새로운 형태뿐만 아니라 매력적인 자전거 프레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또한 MTB 역사에 대해 논함에 있어 일본의 부품 메이커들과의 관련을 배제할 수 없다. 게리피셔의 "엑셀셔 X" 에 부착된 쉬프트레버는 선투어의 비치크루져 용이였고 향후 부품제작의 합의가 가능했던 것도 일본의 부품 메이커들이었다.
MTB의 이벤트도 일반인들의 여행이나 레이스로부터 점점 대규모 이벤트까지 개최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대표적인것이 콜로라도주 크레스테드뷰트에서부터 아스펜 마을까지 해발 3900M 의 높은 산을 넘는 "팔 파스 투어"였었다.이투어는 현재까지도 년 1회 개최되어지고 있다.
1979 ~ 1983 의 MTB 지금까지 [펄라] [크랭카] [패트타이어]등으로 불여지고 있던 MTB는 79년이 되기 시작하여 게리 피셔에 의해 [MOUNTAIN BIKE]라고 명명되어졌다. 80년에들어와 세계최초로 MTB잡지 'FAT(tire flayer)'가 창간, 창간 당시는 타이핑을 해서 복사본을 호치킷으로 찍어 만든 물건이었지만 MTB의 묘미가 지면에 넘쳐흐를 정도였다. 81년에 스페셜라이즈드에 의해 MTB의 양산품이 발매 되었다.
그해 자이크쇼에는 피셔와 리치 그리고 찰즈 케리가 창립한 회사 '더 마운틴 바이크'가 나왔으나 곧바로 이 회사는 해산하여 피셔와 리치는 헤어졌다. BE'PAL은 이 해 6월에 창간호부터 MTB를 다루어 BE'PAL의 기획대로 MTB레져의 방향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82년은 일본의 자전거 메이커들이 MTB를 의식하고 상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완성차의 최초 메이커는 림으로 유명한 아라야공업 이었다(MB-MF26DX). 일본 메이커 아라야는 아직도 튼튼한 자전거를 만들기로 유명한 자전거 회사로 이름을 널리 날리고 있다.
1984 ~ 1996 의 MTB 84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삼천리에서 극대 타이어를 채용한 모델명 크루저라는 MTB를 최초로 국내에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사람 대부분이 구체적인 용도를 모르고 그저 도시형 자전거로 활용되어 왔었다. 그후 88년 올림픽 때 일부 외국인이 MTB를 시내에서 주행하는 것을 보고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서울의 강남 지역에서 부터 점차 확산되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89년도 에는 수출 중심이었던 코렉스 자전거가 내수시장에 본격적으로 MTB를 시판하기 시작하여 MTB 열기에 불을 지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수의 MTB는 그저 학생들의 통학용으로 사용되어 왔고 일부 사이클을 타던 동호회 에서부터 점차 MTB가 확산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거의 대부분의 자전거는 수입에 의존되어 왔고 국내 브렌드는 전무 하다고 할 수 있었다. 90년에는 삼천리가 한강고수부지에서 MTB강습을 겸한 전시회를 개최하고 91년 코렉스에서도 올림픽공원 벨로드롬에서 MTB경기 대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역시 MTB는 학생들의 등하교용 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92년에 들어서면서 삼천리와 코렉스는 전문 산악자전거를 양산 하였으며 이때를 기준으로 다양한 시합과 전문 MTB동호회가 결성에 박차를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