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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 스크랩 [펌]오지 마을 살둔
단디 추천 0 조회 25 11.07.25 13: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오지 마을 살둔 (2011, 6,6)

 

초여름으로 들어선 지난 현충일날, 홍천의 오지 마을 살둔마을을 찾아 갔다.
살둔은 삼둔에 속해 있는 마을인데 삼둔(三屯)은 살둔 (생둔.生屯)과  달둔(達屯)
월둔(月屯)으로 홍천의 세 깡촌을 한데 엮어 부르는 이름이다.
서울에서 두 시간 남짓 걸리는데 홍천 내촌면을 지나  미산 계곡을 지나는데 美山이란 말 그대로 너무나 아름다운 계곡이었다.
운전하는 남편더러 "여보, 저 계곡 좀 봐요!"하다보니 운전하는 사람이 한눈을 팔면 큰일나겠다 싶어 아까운 경치를 혼자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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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층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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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본 층층나무 꽃


가는 길가엔 이름모를 나무에 하얀 꽃이 층층이 피어 있었다. 흰꽃이 핀 나무가 산자락마다 피어 있어 마치 눈이 내린 것 같았다.
꽃이름이 궁금해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숲해설가로 활동하는 동생에게 보내고 꽃나무 이름을 물어봤더니 잠시후에 문자가 왔다. "언니! 그 나무 이름은 층층나무야." 라고..




구절 양장길을 돌아 나가니 갑자기  너른 들판이 나타난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뿐인 곳에 강이 흐르고 마을은 고즈넉하고 조용하다. 이 곳이 바로 삼둔 가운데 첫 번째 마을인 살둔 (생둔.生屯)마을이다. 너무나 잘 생긴 산들 사이로 내린천이 휘돌아 흐른다. 멀리 초록빛 산 그늘 아래 특이한 집 한채가 보인다. 살둔의 명물 살둔 산장이다.




1985년 지어진 이층짜리 귀틀집인데 한때 <한국에서 살고 싶은 집 100선>에까지 올랐던 집이라고 한다. 바람을 베고 눕는다 해서 침풍루(寢風樓), 산이 반, 물이 반이라는 뜻에서 산반수반정(山半水半亭) 으로도 불렸다.

하지만 살둔산장은 문을 닫아 걸었다. 문을 닫아 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집 주변을 빙둘러 철조망을 쳐놔서 접근이 불가능했다. 한때는 산장에 묵는 사람은 모두가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산장지기의 뜻에 따라 야영객과 숙박객이 함께 밥을 지어 먹고 함께 숙박을 했다는데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곳에서 하루 숙박을 하려던 계획이 어긋난 실망감에 맥이 빠져서 우두커니 서 있는데 마을 주민인듯한 아저씨가 무슨 일로 왔냐기에 저 귀틀집에서 하루 숙박을 하려고 했는데 아쉽다고 했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잠시후, 주인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너무 아쉬워서 잠깐 사진만 좀 찍고 나올 수 없겠느냐고 했더니 철조망 아래로 들어가 보라고 했다. 그나마도 다행이다 싶어서 철조망 아래로 기어서 들어 갔다. 그러나 철조망때문에 건물을 좀 떨어져서 찍고 싶었는데 저 윗사진처럼 비스듬히  찍을 수 밖에 없었다.



마당엔 산함박꽃이 지고 있었다.



몇송이 남은 산함박꽃



가까이서 본 창문이 아름답다.



이 집을 지은이은 월정사 복원할때도 참여했던 도편수라는데 집은 아름다운데 어쩐지 일본건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잠시 마루턱에 걸터 앉아 보기만해도 좋았다.


집 바로 옆에 있는 정자인데 지금은 인적이 없어서 그런지 썰렁해 보이기만했다.
저 마루 위에 누워 뒹굴면서 강물소리와 새 소리를 들으면 삼복 더위도 잊을 듯했다.



솔밭사이로 흐르는 강물이 시원하고 깨끗했다.


철조망을 쳐 놓아 사람하나 보이지 않는 강가
그런데 저 강까지 저 집주인 것이 아닐터인데 아무도 들어 갈 수 없었다.
물소리와 새소리만 들릴뿐, 사위는 어찌나 조용한지 휴대폰은 꺼버렸다.




강가엔 끝물 해당화가 피어 있었다. 아마도 올해 핀 해당화는 아무도 보는 이 없이 마지막으로 우리가 봐 준 꽃이 아닌가 싶었다. 13일 관절 수술을 앞두고 수술전에 여행을 해보자고 한 남편, 마음이 짠하고 안됐다. 어찌나 산을 잘 타는지 <산다람쥐>란 별명을 가졌는데....회사 관두고 내년엔 둘이서 배낭메고 도보 여행 같이 떠나자더니...




살둔 산장 앞에는 오래된 목조 '국민학교'가 서 있다. 1993년 문을 닫은 원당 초등학교 생둔분교다. 낡은 반공 방첩이란 구호와 오래된 잣나무들이 말없이 서 있다. 어린이들 모습은 간곳 없고 연휴를 맞은 가족단위의 캠핑족들이 그나마 침묵의 살둔을 깨운다.

 살둔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오직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이른 새벽 이슬에 옷자락을 적시며 안개낀 새벽강에 나가 강물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웠다.

 내가 너무 아쉬워하니까 남편이 다음에 연락이 닿으면 하루 와서 묵고 가자고 했다.
하는 수 없이 그 곳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홍천에서 묵을까 하다가 내친김에 춘천까지 갔다. 춘천 시내를 벗어나 김유정 문학관이 있는 실레 마을까지 갔다.

 날이 저물어 문학관은 닫혀 있었다. 문학관은 수차례 다녀 갔던 곳이었지만 아쉬웠다.
문학관 바로 옆에 있는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파리 쫓느라고 젓가락질 할 새가 없었다. 게다가 맛도 너무 없어서 몇술 뜨다 말았다.

숙소는 그 마을에 딱 하나 뿐인 **산장에서 묵었는데 TV는 안 나오고, 차 소리가 많이 들리는 곳이었다. 피곤해서 일찌감치 잠자리에 누웠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남편과 나란히 누워서 이런 저런 이야길 했다. 나이들고 노환이 생기니 자연히 얘기는 죽음에 대한 얘기까지 갔다.

"난 당신 먼저 가면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이사 갈거예요. 지금 집에선 혼자 못살  것 같아요." 

"이사 가지 말아요. 지금 집에서 그냥 살아요. 당신 성격에 낯선 집에 이사가서 적응하기도 힘들거요. 그냥 방 하나는 서재로 꾸며놓고 지내요. 내가 가꾸던 화분들도 그냥 길러요."

"그리고 회사도 올 가을 쯤 작은애한테 완전히 물려 주려고 해요. 큰 애랑 불러서 정리를 할 생각이예요. 그리고 남은 여생 편히 지내다 갈 거요."

"그렇게 하세요. 우리 떠나기 전에 얼마 안되는 거지만 정리를 해야죠."

"당신보다 내가 먼저 가야할텐데..."

"그래요, 당신 먼저 가세요. 할수만 있다면 당신 가고 나서 딱 1 년만 당신 생각하다가 따라 갔으면 좋겠어요."

"당신은 보슬이 동건이 시집 장가 가는 거 보고 천천히 와요.그리고 착한 두 아들 있는데 무슨 걱정이요"

"싫어요! 난 어머니 같이 혼자 남아 오래 살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그렇게 어머니처럼 살 자신도 없어요!"

남편이 어느새 코를 곯았다. 간간이 멀리서 차 소리가 들렸다.
남편 가고 나면 (내가 먼저 갈지도 모르지만..) 혼자 남아 견뎌낼 시간들들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베겟잇을 적셨다. 그러다 이 무슨 망발이람. 슬픔을 가불하다니..
얼른 옆으로 돌아 누워 잠든 영감 손을 잡았다. 남은 날들은 남편과 함께 알차게 살아 가야지...<있을때 잘해>란 노래가 생각나서 혼자 피식 웃었다. 암 그래야지! ^^



가는 길

수도권에서 출발할 경우. 길은  두 가지다. 빠르게 가려면 서울 양양 고속도로를 이용하는게 낫다.
동홍천 나들목- 44번 국도-철정 검문소에서 우회전 - 451번 지방도- 31번 국도-상남면 소재지우회전 - 446번 국도 지방도 -미산계곡- 살둔마을 순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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