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교정에서 만난 그리운 제자들
지난 4월 27일, 옛 제자들의 모임인 삼오회 회장단이 광주 시내 한 음식점에서 나와 최국인 선배(당시 동 학년)를 초청하여 5월 1일 스승과의 만남을 갖자는 뜻을 알려왔다. 웅치초등학교 35회 졸업생들의 모임이다.
내가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두 번째로 근무하게 된 학교(모교)의 제자들이며 모교 부임과 동시에 2년 간 6학년을 담임한 후 1965년도에 5학년 담임에 이어 줄곧 6학년까지 2년 동안 맡았던 내 교직생활 중 가장 열성적으로 지도했던 학생들이기도 하다. 무려 40년 전에 만난 제자들인 것이다.
지난 2002년 추석명절을 맞을 무렵, 이 중 웅치면 청년회 지도자격인 박순선군(지금은 삼오회 광주 전남 회장)이 중심이 되어 KBS 6시 내 고장 '고향배달'의 주인공으로, 담임이었던 나를 지목하여 마을의 풍년을 구가하며 곱게 가공한 올벼쌀과 고향 막걸리, 송편을 담아 우리 집까지 배달했던 그 제자들 모임이다.
그들의 계획은 이러했다.
현재 진행 중인 삼오회는 서울, 광주 전남, 부산이며 이번 참석 범위는 서울, 광주, 보성, 부산의 남녀 회원들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
4월 30일(토)에 서울 친구들이 광주에 와서 일박한 후 5월 1일 9시 광주 친구들과 합류하여 부산, 보성 웅치 친구들과 10시 30분에 웅치 교정에서 만나고 11시에 선생님 두 분을 맞이한다는 계획이다.
며칠 동안 깊은 감회와 기쁨 속에서 옛 제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순진무구했던 어린 제자들의 모습에 스스로 안온함과 그리움을 함께 하였다.
강산리에 살었던 김영래 정옥식을 비롯한 8명, 대산리의 김진수 김춘모 박순선 백옥태를 비롯한 11명, 부왕리에 백형술을 비롯한 4명, 서동리 손정기 이세원을 비롯한 9명, 용반리 김준량 마철현 박승재 백학순 안병석 안찬균 임재석 임홍기 최효진을 비롯한 15명, 유산리 김선회 선병화 문종인을 비롯한 7명, 중산리 백형승 변연수 변재수 안세련 이윤섭을 비롯한 11명, 봉산리 위정길을 비롯한 3명, 약산리 문건수를 비롯한 4명. 옥암리 박우금군 등 무려 73명의 제자들.
아내와 함께, 약속한 시간에 도착하기 위하여 9시 30분에 광주를 출발하였다.
5월 초 하루. 신록 속으로 얼굴을 감추고 있는 노랗고 빨간 봄꽃들이 시골 길 산야를 뒤덮어 고향을 찾는 이방인에게 새로운 정취를 풍기며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으며 가는 곳 쉬는 곳마다 재잘대는 산새 소리도 어찌 그리 정겨울꼬.
10시 50분에 웅치초등학교 정문에 도착하고 보니 제자들은 이미 도착하여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제자들을 졸업 후 처음 만나게 되니 낯이 설지만, 40년 전의 옛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손을 잡고 흔들면서 힘주어 이름을 불렀다.
얼마만의 호명인가!
아직도 그 옛날 작은 교실에서 근엄한 교사의 얼굴을 바라보던 어린 학생시절의 자태를 잃지 않았으면서도 머리에 흰털이 희끗희끗한 장년이 되어 나타난 늠름하고 당찬 모습에 한결 어깨가 가벼움을 느꼈다.
"김영래 정옥식 김진수 김춘모 박순선 백옥태 백형술 손정기 이세원 김준량 마철현 박승재 (백학순) 안병석 안찬균 임재석 임홍기 최효진 김선회 선병화 문종인 백형승 변연수 변재수 안세련 이윤섭 위정길." 그리고 당시 2반 여학생들 17명. 총 42명이 모였다.
최국인 선배님 내외, 우리 내외 그리고 제자들이 교문에 새겨진 교가를 제창하고, 지금은 헐어버린 옛 교실 터를 지나 대운동장을 향했다.
재학 시절, 후편에 대 운동장을 만들고 앞면 운동장을 정원화 하면서 많은 노력동원을 했던 기억, 글씨를 잘 못 써서 숙제를 소홀히 했던 제자들이 벌 받았던 기쁜 추억, 때론 공부하기 싫어 사보타주했던 여학생들의 우스갯소리….
시끌벅적 학창시절을 더듬으며 교정을 걷자니 불현듯 그 옛날 그 모습에 빠져 모두들 숙연해지기도 했다.
제암산 휴양림 안에 자리잡은 제암산 회관(박순선 경영) 연회장으로 이동하였다.
임홍기 남자 총무가 사회봉을 들고 전·현임 회장단 총무단을 소개하고 그 간의 모임 경과보고를 마친 후 은사들에게 주는 꽃다발, 정이 담긴 선물, 약주 증정 순으로 진행되었다.
다음은 은사님 말씀을 듣기로 한단다.
"고맙습니다. 40년 전 제자들이 나와 내자를 이렇게 초청하여 융숭한 대접과 경의를 표해 주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회에 젖게 되었습니다. 당시 웅치교에 부임하여 나의 꿈을 펼치며 교직에 보람을 느꼈던 포근한 보금자리인 이곳에 다시 와서 보니 강산의 변화에 새삼 놀랐습니다. 여러분과 작별한 이후 나는 보성관내에서 오래 근무를 하다가 시군 장학사, 도장학사를 거쳐 목포관내 두 곳의 초등학교장을 맡은 후 최근에 정년퇴임을 하였습니다. 웅치의 관광자원이 이렇게 개발되고 또한 여러분이 이렇게 장성하였으니 웅치의 비약적인 발전이 또한 기대됩니다."
이상은 최국인 선배님의 말씀 요지.
나도 한마디.
"40년 전의 제자가 당시 담임을 초청하고 이렇게 환대해 주어 우리 내외는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당시 나는 23세 젊은 교사로서 모교에서 온 정열을 다 하는 것만이 교직의 정도라고 믿고 여러분과 2년 동안 최선을 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모교를 떠난 후 광주교육대학부속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젊은 시절 무모하게 교육에 임했던 미숙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나도 최국인 선배님과 함께 초등학교를 고수했어야 했는데, 외도를 하여 오늘 현재 대학 유아교육과에서 유치원 교사를 양성하는 직무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이제 40년이 지난 오늘 우리나라 각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면서 흐뭇함과 대견함을 아울러 느끼고 있습니다. 부디 모든 제자들의 가정에 행운이 같이 하기를 빕니다."
연회장에 모인 제자들.
"선생님 제가 한잔 올리겠습니다. ".
"저도 한잔…."
"그래 자네도 한잔 받게."
"너도 한잔 받아라."
정에 취하고 다향에 취하고 약주에 취하여 두 손들을 부여잡고 혹은 어깨를 끼고 세상살이며, 학창시절의 이야기에 젖어들 무렵 우리 두 담임들은 자리를 비워주기로 했다.
그러나 요놈들은 마지막까지 기념사진을 찍으며 떠나는 아쉬움을 남겼다. 아내와 나는 광주로 돌아오면서 새삼 교직의 행복함을 이야기했다.
(2005.5.1.)
첫댓글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는 피치못할 개인사정으로 선생님을 만나 뵐 기회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못내 아쉽고 안타깝지만 이렇게나마 선생님을 뵐 수 가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벌써 그렇게 오랜시간이 지났네요 엊그제 같은데요 또 뵙기를 고대합니다.
선생님1 예나 지금이나 열정적이십니다. 사이버공간에서라도 뵙게되어 고맙고 다행으로 여겨집니다.
자주 찿아뵙도록 노력하겠읍니다.
재석군, 댓글 주어 고맙네. 사이버 공간이지만 자주 만나면 좋겠네.
그때모습이 떠올라 다시금 웃음짓게 하는군요
저에게 저장된번호로 목소리듣고싶어 전화드렸는데 바뀌였나봅니다
울 담임도 번이 바뀌었네요 죄송합니다 자주 전화드렸다면 바뀐번호를 알았을텐데요
최국인 선생님 전화를 확인할 길이 있으니 연락해 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