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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동의 순간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자 사진에 입문했다는 여성 산사진 작가 강레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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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진, 특히 암빙벽등반 사진촬영은 남성의 영역으로 굳어져 있었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암벽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릴 수 있어야한다는 점이 체력적으로 뒤지는 여성들에게 무엇보다 큰 부담이기 때문일 것이다. 강레아씨(39·본명 姜信淑)는 그 고정관념을 이미 오래 전에 깼다. 디자이너 출신으로 뒤늦게 산사진에 입문한 그녀는 베이비와 패밀리 전문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2000년부터 등반을 촬영해오고 있다. 그 강레아씨의 등반사진이 월간山을 통해 이번 호부터 연재된다.
“클라이머든 바위든 우선 비주얼한 면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클라이머들의 거친 숨결과 배어나는 땀까지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고요.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려운 사진을 통해 등반 인구가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답니다.”
강레아씨는 늦깎이 산악사진가다. 86년 고교 졸업 후 여러 해동안 사회생활을 하다 뒤늦게 대학에 입학한 그녀는 94년 졸업 후 전공을 살려 디자이너로 활동해오다가 99년 사진을 제대로 해보고픈 마음에 신구대학 사진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진과 입학 한참 전인 88년이었다.
“시뻘건 해가 물결치는 듯한 산야 위로 떠오르는, 가야산 정상에서 맞은 일출은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그걸 나만 봐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아쉽더군요. 그 감동을 다른 사람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게 사진이었답니다.”
취미삼아 하던 사진촬영은 신구대학 사진과에 입학하면서 직업으로 바뀌었다. 졸업 전에 스튜디오 ‘솔바람’도 차렸다.
“클라이밍은 95년부터 시작했어요. 한 5년은 눈감으면 은빛 빙폭과 거친 바위가 어른거릴 정도로 줄기차게 다녔어요. 그런데 산에서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은 남편이 어느 날 암벽사진 시장이 곧 열릴 거라며 바위 사진촬영을 권하지 뭐예요.”
그녀는 2년간 흑백사진만 찍었다. 그런데 전시회를 열 마음에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니 쓸만한 작품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밖에 안 되었다.
“참 어려워요. 좋은 포인트에서 기다리다가 기대했던 모습이 나타나면 셔터를 눌러야하는데 타이밍을 맞춘다는 게 쉽지 않아요. 얼마 전에는 국내 톱클라이머인 손정준씨와 함께 촬영등반에 나섰다가 바로 이거다 싶은 순간을 만났는데 필름이 끝났지 뭐예요. 대어를 낚았다 싶었는데 손맛도 못 본 채 끝난 셈이죠.”
- “부나비 같은 클라이머들의 기록 남기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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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어를 낚는 순간일까. 강레아씨는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우선 그녀 자신이 무념무상의 상태에 접어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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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레아씨의 사진 작업은 늘 남편 유경호씨(42)와 함께 진행된다. 20년 넘도록 등반해온 남편 유씨가 앞장서 올라선 다음 로프를 고정시키면 어센더를 이용해 오르며 촬영하거나 촬영포인트에 매달려 찍는다. 강씨는 캐논 EOS5에 70~200mm와 16~35mm 렌즈를 휴대하고, 중형 카메라인 펜탁스 645와 45~85mm 렌즈는 늘 앞장서는 남편이 지니고 있다 촬영하거나 필요할 때 건네준다.
“사진 찍다보니 트레이닝이 필요하다 싶어 실내인공벽을 찾고 있어요. 제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김인경과 김자하 역시 인공암장에서 만난 사이에요.”
강레아씨는 암벽등반 실력을 이제 5.11급에 진입하는 단계지만, 빙벽은 여성 클라이머로서는 수준급에 속한다고 스스로 평한다. 98년 이후 거의 매년 토왕빙폭을 등반해온 강씨는 2004년 1월27일 새벽 4시에 대승폭 등반을 시작, 오후에는 소승폭 등반을 마치고 토왕폭 도전에 나섰으나 아쉽게도 강풍이 불어대 대상지를 매바위 빙폭으로 바꿔야했다.
“여성의 설악산 3대 빙폭 당일 등반기록을 세우는 날이었는데 아쉽게도 강풍이 불어대는 바람에 망치고 말았어요. 하도 아쉬워 그 다음주에 남편과 토왕폭을 올랐어요. 바위도 좋아하지만 얼음은 정말 좋아해요. 겁이 없어서 그런가 봐요. 그래도 3대 빙폭을 등반하면서 사진을 찍은 건 저밖에 없을 거예요(웃음).”
그녀는 “지난해 1월 초에는 25시간 동안 토왕폭을 등반하는 3개조를 등반하고 나니 너무 지쳐 이틀간 일어나지도 못했다”며, “힘들었지만 그 때 토왕골을 밝혀준 달빛은 잊을 수 없다”고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강레아씨와 화가인 유경호씨 부부는 거의 매주 인수봉으로 촬영등반에 나선다. 부부의 휴일은 매주 수요일로, 화요일 오후 도선사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대웅전에 올라가 108배(남편은 500배)를 마친 뒤 픽업 짐칸에 침낭을 펴고 지낸 다음 이튿날 새벽 인수봉으로 향하곤 한다. 사진 찍기에는 새벽빛이 좋기 때문에 일찍부터 서두른다.
“현상소에서 필름을 찾을 때면 재산이 또 늘어났다며 남편과 즐거워하지만, 곧 남편이 1%가 부족하다고 핀잔하곤 해요. 언젠가 이탈리아 산사진작가가 4년간 찍은 등반사진집을 본 적이 있어요. 클라이머들의 땀이 배어 있고, 거친 숨결이 느껴지는 사진들이었죠. 인수봉에 가면 어떤 때는 새카맣게 클라이머들이 붙어 있어요. 그들을 보면 언제 타 죽을지 모르고 불로 날아드는 부나비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사라져가는 그런 클라이머들의 생생한 모습을 기록하고 싶은 거예요.”
강레아씨는 “원하는 사진을 찍으려면 무엇보다 나 자신이 무념무상의 상태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며, “300배를 하면 크럭스가 오고, 500배를 하면 뭔가 보일 듯한데 1,000배를 하면 뭔가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고. 강씨는 “최선을 다해 좋은 사진을 촬영하고 그 작품을 월간山을 통해 산악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희망을 밝혔다.
첫댓글 “300배를 하면 크럭스가 오고, 500배를 하면 뭔가 보일 듯한데 1,000배를 하면 뭔가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