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역해전도(朝鮮戰役海戰圖)
일본 동경 ‘아오키 화랑’에 가면 ‘조선전역해전도’라는 한 장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혹시 일본 동경의 ‘아오키 화랑’을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참고하기 바란다.
먼저 ‘유국재’ 씨의 의견을 소개하고자 한다. - 인터넷에서 퍼온 글.
구 역사스페셜에서 임진왜란당시 그림인 조선전역해전도가 ‘명량해전’이라고 주장한 사실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 동경 ‘아오키 화랑’에 있는 ‘조선전역해전도’에 대해서 칠천량 해전그림이었다는 엇갈린 주장이 제기된바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그림이 후세(1940년 오다 텐요오)에 그려진 그림이고, 몇 가지 점에서 명량대첩이라는 점을 주장하고 싶다.
1. 덕수 이씨 : ‘이(李)’자가 새겨진 깃발이다. 원균의 경상우수영 배라면 ‘원(元)’자가 붙어야 한다. 나는 명량대첩이라고 생각한다.
2. 임진왜란 당시의 그림이 아니고 1940년대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것이다. 즉 역사 고증이 확실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근거로 내세운 통제영 거북선은 화가가 상상해서 그린 것이다. 통제영 거북선을 근거로 내세운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하겠다.
3. 조선역해전도에 그려진 그림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각종 쇠뇌하며 병졸들도 중화기로 무장하고 있다. 한번 상상해보자. 칠천량 해전이라면 일본군으로서는 대첩중의 대첩일 것이다. 칠천량 해전에는 구루시마 군(軍)이 아닌 도도 다카도라, 와끼자까 등이 등장 한다.그런데 공교롭게도 조선군은 상상이상으로 강하게 그려지고 있다. 나는 명량해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군의 구루시마 군(軍)과 이순신의 12척이 맞붙은 것이다. 그리고 가장 극적인 전쟁이었다. 함선 12척에 333척이 맞붙은 전쟁. 해전 사에 그보다 더 극적인 전쟁은 없었을 것이다. 보라. 궤멸되었던 조선수군이 화려하게 부활되었다. 그리고 일본함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이것이 아오키 화랑에 보관된 조선전역해전도의 진실이다.
4. 의문점 : 플라툰 잡지에 기고했던 김세랑기자는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 아오키 화랑에 보관되어있다면 그 주인은 그 그림이 어떤 전쟁을 주제로 하고 있는지 알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나 덕수 이씨 깃발이나 구루시마 부대라든지 이러한 것은 깡그리 무시하고 통제영 거북선 하나만으로 단정 짓는 우를 범하고 있다. 우리국민들이 일본으로 달려갈 수 없다고 해서 진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왜 덕수이씨 깃발이 나부끼는 지 이유를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화가는 이순신을 신격화하는 도고제독 휘하의 일본해군성의 의뢰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일본해군에서 이순신에 대해서 신격화한다면 원균을 주인공으로 하는 칠천량해전 보다는 이순신이 극적으로 승첩한 명량대첩을 주인공으로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화가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지 않고 거북선=이순신이라는 등식을 앞세워 그림을 그린 것이다. 실제 명량해전에서는 거북선이 없었다. 칠천량 해전에서 거북선 3척이 수장되었다.
5. 일본해군성에서 누구를 타켓으로 그림을 그렸겠느냐는 것이다. 내가 해군성 역사기록물 제작자라면 한산, 명량, 노량을 선택해서 역사병풍을 만들었을 것이다. 돈이 없어서 하나만 선택하라면 명량을 선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산은 왜군이 개죽음 당한 것이고 노량은 도망가다 개죽음 당한 것이다. 이순신이 죽은 것이긴 하지만 일본군에게 있어서는 불명예스러운 전쟁이라는 것이다. 조선전역해전도가 명량해전이라는 것은 명백한 것이다.
그러면 왜 이 그림이 칠천량 해전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경상도 지역주의라고 생각을 한다. 경상도 신라주의자들은 이순신이 김유신의 명예를 깎아 먹는다고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균은 서인정권에 속한 사람이었지만 경상도 우수사였기 때문에 비호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이순신은 동인이었지만 전라좌수였기 때문에 미워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역감정과 신라사관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특히 김유신과 김춘추는 한반도 망국의 일등공신이요 만고의 역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신라사관과 경상도 지역주의로 인해서 원균 영웅 론이 나오고 모든 영광을 원균에게 줄려는 의도에서 조선전역해전도가 불명예스러운 칠천량 해전임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승리인 ‘원균과의 싸움’이라고 구라를 친다는 것이다. 여기에도 어쩌면 원씨 종친회의 입김도 들어갔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급변하는 역사전쟁시대에 돌입하여 역사스페셜에서는 변화하는 이슈에 따라서 타이틀을 정하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관련해서 제작을 하면 국민들에게 호응을 얻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조선일보에서 주장하는 신라 흉노 설에 대해서 검증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북적 흉노 몽골도 한국사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조선일보 몽골이야기와 월간조선 조갑제 홈페이지를 보면 역사왜곡을 서슴지 않고 있다. 각종 인터넷상에 떠도는 역사물도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칠지도에 관한 역사스페셜 잘 시청하였습니다. 일본이 백제의 제후국이었더군요.
일본인이 그린 조선역해전도 입니다.
일본 동경에서 발견되었는데 그림의 배경은 "명량해전"으로 추정된답니다.
전체그림 : 전체적 구도는 왜군의 세키부네가 조선의 판옥선 한 척을 향해
달라붙은 모습.
거대한 판옥선과 세키부네의 모습.
이쯤에서 조선군모습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기 시작함을 느낍니다.
판옥선위에 옹기종기모인 조선수군의 확대된 모습입니다.
사극은 물론 심지어 민족기록화라는 곳에서도 웨이터드레스(포졸복)을 입고
갑옷 입은 왜군들과 싸우던 그들의 눈에는 두정갑과 간주형 투구들로 무장한
조선수군들이네요.
천자총통을 쏠 준비를 하는 조선수군
붉은 통의 정체는 질려포통.
일종의 수류탄 같은 것인데 당시에도 우수한 화약무기를 다량 보유한 조선군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李)자(字) 깃발이 휘날린다.
왜군진영 - 포르투갈에서 들여온 조총 사용 중.
후방에서 활을 쏘며 지원하고 있는 왜군 궁수들.
사극에선 장거리무기는 조총병만 나오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조선쪽 배에 뛰어오르는 도세이 구소쿠를 입은 꽤나 잘 나가는듯한 젊은 사무라이 한명이
조선수군을 향해 창을 쭈 욱 뻗고 있는 모습.
창을 들고 조선판옥선에 뛰어오르는 왜병. 젊은 방패수가 인상을 찌푸리네요.
얼마나 무서웠을까?
갑판위로 달려들어 칼부림하는 왜군과 방어하는 조선군.
정신없이 싸우는 조선수군들
올라온 줄사다리 치우랴, 갈고리 치우랴, 뛰어 올라오는 왜군들 치우랴,
바쁘고 생동감 있게 표현한 그림.
그림에서도 보면 알 수 있듯.
당시 우리나라 조선군들도 왜군들에 당하긴 했지만. 용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