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마음과의 동승
서 미 애
지체장애 3급인 나는 외출 시 지하철을 즐겨 이용한다.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절룩거리는 다리로 많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불편함이 따르지만 플랫폼과 수평을 이루는 출입문이 타기가 수월해서다. 또 빈자리가 없어 의자에 앉지 못해도 출입문 옆 의자 기둥을 잡고 기대어 서면 흔들림이 심한 버스처럼 그리 위험하거나 불편하지도 않다.
그날도 친구와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타러 갔다. 1호선 신이문역에는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없어 개찰구를 빠져나와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계단의 중간쯤 내려가고 있을 때 ‘뜨르르르릉’ 하는 알림 신호가 울리고 열차가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갑자기 바빠진 사람들은 ‘타다다닥’ 계단을 급히 뛰어 내려가고,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던 걸음 그대로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서두를 수도 없는 나는 항상 내 걸음이 느린 만큼의 시간적 여유를 두고 출발하기 때문에 다음 차를 타면 될 것이었다.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 온 열차는 흡입력 강한 청소기처럼 열린 문으로 많은 사람을 단숨에 빨아 들였다. 내려설 계단이 아직도 다섯 칸이나 남은 나는 그 기차를 탈 생각은 안했다. 오른발이 먼저 한 계단 내려서면 짧고 불편한 왼발이 따라와 나란히 서는 식의 더딘 걸음으로 발끝만 보며 한 계단씩을 내려가고 있었다. 웬일인지 여느 때와 다르게 열차 문 닫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어보니 승무원 아저씨가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부드러운 인상에 나이는 오십 쯤 되어 보였다. 내가 이용하는 신이문역은 인천 방향으로 내려서는 계단 끝 플랫폼에 열차 꽁무니가 와 닿기 때문에, 승무원이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을 볼 수가 있었다. 아저씨의 눈이 내 눈과 마주치자 어서 내려와 타라는 눈짓을 보냈다. 나는 다음 차를 이용해도 되니 어서 출발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러나 아저씨는 여전히 기다릴 것이라는 눈짓을 보냈고, 나는 최대한 걸음을 빨리하여 열차에 오르며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처음 보는 눈빛이 서로 뜻을 전달할 수 있음이 묘했다. 차 안은 복잡했다. 빈자리는 물론이고 서 있을 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차가 출발하기 전에 무엇이라도 잡아야 했기에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의자 옆 기둥을 잡고 섰다. 차가 복잡할 때는 사람들 틈을 헤집고 들어가 손잡이를 차지해야 하는 난처함과 미안함이 따르기도 한다. 그때 객차와 연결된 승무원실 문이 철컥하고 열렸다. 조금 전 눈빛을 주고받았던 승무원 아저씨가 얼굴을 반쯤 내밀고 객차 안을 살피고 있었다. 그곳에 객차와 통하는 문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아저씨는 객차 안의 탑승 상황을 살피는 듯했지만 고개를 빼고 이리저리 누군가를 열심히 찾는 듯했다. 그 모습은 조금 전 눈빛으로도 알 수 있었듯이 내가 안전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는지 살피는 것 같았다. 아저씨는 비좁은 객차 안을 한참 두리번거리다 키 큰 남자에게 가려진 나를 발견했다. 내가 서 있는 모습에 깜짝 놀라며 승무원실에 의자가 있으니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나는 어떻게 그곳에 들어가느냐며 사양을 했다. 그곳은 분명히 관계자 외 출입금지일 텐데 나를 들여보냄으로써 어떤 문책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동안 지하철을 많이 타 보았지만 이러한 배려를 해 주시는 승무원은 처음이라 적이 당황하기도 했다.
나의 정중한 사양에도 아랑곳없이 어떻게 서서 가느냐며 자꾸 들어오라고 했다. 아저씨의 친절을 계속 거절하기가 미안했다.
“여긴 근무자 외 출입금지일 텐데 정말 들어가도 돼요?” 하며 따라 들어갔다.
“몸 불편한 사람 잠시 앉혀드리는 건데 무슨 일 있겠습니까?”라며 한가운데 벽 쪽으로 접어 두었던 의자를 펼쳐주었다.
“어! 이건 아저씨가 앉아야 할 자리잖아요.” 의자가 몇 개 있을 것으로 짐작했던 나는, 딱 하나밖에 없는 의자를 내어주는 아저씨를 보고 당황하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어차피 2분마다 문을 열어주어야 해서 앉을 시간 없어요.” 하며
“요즘 사람들은 도무지 양보의식이 없어 불편한 사람을 보고도 일어 설 줄을 모른다니까요.” 라는 말까지 덧붙이며 인심이 각박하다고 탄식까지 하셨다. 나는 나의 장애 때문에 애매한 사람을 욕 먹인다 싶은 마음에 미안함이 들었고, 그 덕분에 이런 호사를 누리게 되었으니 기쁘기도 했다.
한가운데 의자에 허리를 곧추 세워 앉으니 마치 내가 기관사가 된 것만 같았다. 실지로 내가 앉은 자리는 열차가 가는 방향이 바뀌면 기관사가 앉는 자리라고 했다. 똑같은 기관실을 앞뒤에 연결해놓고 차가 가는 방향에 따라 기관사와 승무원이 자리바꿈만 한다는 것이었다.
나란한 평행선이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녹슨 듯 짙은 밤색이었던 레일은 육중한 바퀴와의 수많은 마찰로 아픔을 도려낸 후 은색이 되어 있었다. 그 은색 레일은 운동회 날 트랙을 따라 그어놓은 하얀 선 같았고, 나는 그 선을 따라 나의 두 발로 힘껏 달리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운동회 날이면 항상 먼발치에서 구경만 했었는데, 나는 지금 계주 선수가 되어 달리는 것이고, 곧 손목에 1등 도장을 받고 기뻐할 것도 같았다, 언제나 더딘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야만 했던 내 속이 후련해지기도 했다. 또한, 짓누르는 고통을 잘 이겨내는 레일은 어두운 터널 같은 삶을 잘 견뎌 온 내 인생을 반증해 주는 것도 같았다.
“어디까지 가세요?”
아저씨의 목소리가 회기역을 빠져 나가며 혼자의 생각에 잠긴 나를 깨웠다.
“노량진 역 까지요.”
“좋은 일이 있나 봐요?”
“친구를 만나기로 했어요.”
“친구 만나면 좋겠네요. 고향 친구예요?”
“아니요. 사회친구예요.”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열차는 이내 청량리역 구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저씨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안전을 확인하고 쇠막대기 같은 것을 밑으로 슬쩍 내려 열차 문을 열었다. 승객들의 탑승 상황을 살핀 후, 문을 닫고 빨간 버튼을 눌러 기관사님께 출발 신호를 보냈다. 차가 플랫폼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고개를 내밀고 안전을 철저히 살폈다. 가끔 시스템 오류로 정차 역 표시가 잘 못 될 때에는 직접 방송도 했다.
‘이번 정차 역은 00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평소 객차에서 많이 듣던 목소리였다.
“어! 이거 아저씨 목소리였어요?”
놀란 토끼눈을 하고 묻는 나를 보고 아저씨는 그저 빙그레 웃으셨다. 이렇듯 나는 아저씨의 특별한 배려 덕분에 푹신한 의자에 편히 앉아 여러 가지 구경을 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곧잘 하시는 아저씨와 이러 저러한 인생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30여 분의 시간이 훌쩍 지나 목적지인 노량진역에 도착했다. 덕분에 편안히 오고 또 특별한 경험도 했다는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다시 객차로 나가려는 나에게 불편하게 그럴 필요 없다며 승무원실 문을 열어주는 친절까지 베풀어 주셨다.
승, 하차를 하는 사람들이 승무원실 에서 내리는 나를 보고 놀라 쳐다보았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으쓱함에 어깨까지 들썩했다. 예전엔 장애로 인해 놀림도 많이 당하면서 스스로 주눅 들어 어두운 터널 같은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 장애로 하여금 밝은 세상을 많이 보게 되었다. 사십 칠년을 살아오는 동안 장애에 대한 편견은 점차 없어지고 따뜻한 마음과 손길을 내 밀어 주는 이웃들이 많아진 것이다. 단 한 사람의 불편한 승객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지하철 승무원의 따뜻한 사랑이 세상을 아름답게 가꾼 날이었다.
2008,1,11
지하철 에피소드 공모전 우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