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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수있는 청룡 실록 ~ - (3부) - 운명의 베리아.....
해병209기 박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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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마침 포항 사단엔 가랑비가 내렸다.
모두가 침묵으로 짐을 챙기고 누구 하나 말을 걸지도 않는다.
트럭으로 포항역으로 이동하는데 운전병의 라디오에서
때 마추어 가수 이상렬의 "아마도 빗물이겠지" 노래가 흘러나와
우리는 서로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는데
선임 하사님이 -
"야야 죽으러 가는 거 아니다 모두다 전쟁의 승리하여 자랑스럽게 개선하자" 고 호통을 쳐서
모두가 박수 치면서 나가자 해병대가를 비롯해 군가를 포항역에서 부산항까지 목이 터져라 블러댔다.
"잘 다녀오세요"
"살아서 돌아와 다오" ~ 온갖 환송의 현수막과 태극기 물결 사이로 수송선에 오르니
뿌 ~ ~웅 뱃고동이 소리 들으며 배는 서서히 부두를 밀어내고 가슴은 아파오는데
나는 집에 알리지도 않은 것이 죄스러워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한적한 곳을 찾아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편지를 쓴다.
3일이 지나 대만 해협을 지나자 햇볕이 따가워 갑판위로 나갈 수가 없다.
다시 3일이 지나고 다낭항구가 가까워지니 포성이 들리고 마음도 무거워진다.
이대로 뱃머리를 돌려서 다시 갈수는 없는 걸까?
갑자기 마음도 많이 동요가 되고 혼란스러워진다.
갑판위로 나오지 말라는 안내방송에 더욱 불안감이 스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하선하라는 명령에 따라 모두가 조바심속에 움직이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지만 여단 본부로 가는데 저 멀리 높은 망루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누구라 할 것도 없이 태극기다 외치면서 박수를 친다.
여단본부 가는 중에도 간간이 들려오는 총성은 불안하기만하다.
여단본부에서의 교육이 끝나고 각 대대로 호명되는데
나는 여단본부로 발령을 받았지만 동기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에
3대대로 보내달라고 하여 3대대로 가서 나는 대대본부 특별소대에 배치되었다.
그 특별소대에는 나보다 먼저 월남에온 황인철 동기가 있었는데
그때 피엑스에 파견근무 하면서 동기인 나를 나 몰라라 하더니 지금도 아니라고 우긴다.
그 동기가 1월 1일 진해 천자봉에 같이 등정한 동기이다.
특별 소대는 대대장을 경호하는 소대로
작전지역이나 대대외곽에 나가게 되면 미리 나가서 부락킹 붙거나 대대장 경호를 한다.
그래서 시간이 남으면 훈련이 많아진다.
월남 온지 한달여만에 대대본부 외곽으로 첫 매복을 나가
전쟁터의 삶을 실감하게 되고 많은 작전지역을 다니게 된다.
그렇게 월남에서의 생활은 세월을 흘러 보내고 날자가기만을 기다리는데
70년 5월 20일경 - 베리아 중대로 옮겨갈 대원을 대대본부에서 차출하고 있었다.
베리아 10중대는 아무도 가려고 하지를 않는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상자가 발생되는 곳이라 모두가 가기를 꺼려하는 것이다.
나는 그때 왜 그랬는지 베리아로 가겠다고 자발적으로 베리아 중대를 택하고
10중대 3소대 5분대 선임조장으로 배속된다.
특히나 5분대는 2분대가 작전 나가서 분대원 전원이 전사를 하여서 없어지고 생겨난 분대인 것이다.
여기서는 선임조장이라 항상 첨병만 앞서게 되고 중대벙커에서 자는 일이 거의 없다.
많은 작전과 매복으로 땅위에서 앉아서 잠을 자야만 한다.
베리아 중대에서의 첫 매복에서 전우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야만 했고 무서움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이제는 말할수있는 청룡 실록 ~ - (4부) - 勇士사가 되어간다....
해병209기 박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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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인원점검하고 중대벙커를 뒤로하고 선임조장이라 첨병을 선다.
오늘은 3소대만 나가서 저들의 야간 이동로를 확인하여 퇴각시키는 작전명이 떨어졌다.
햇볕은 따갑고 무거운 배낭과 어깨에 맨 실탄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게 하고
오늘은 교전이 있을 거라는 소대장님의 예상 때문에 긴장된다.
베리아는 전 지역이 모레 땅이라 다니기가 상당히 힘이 들어서 고통스럽다.
간간이 이어지는 습지 또한 위험지역이라 첨병으로서는 참으로 곤혹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나로서는 베리아 중대로 들어와서 첫 매복에 첨병이라
마음이 무척이나 두렵고 떨리고 긴장이 되었다.
분대장이 마음을 굳게 먹으라면서 다독거려주는데
조금은 힘을 주어 괜찮다고 하고 앞으로 전진 하는데,
아뿔사 그렇게도 교육을 받고 또 받고 하였건만
그들이 쳐놓은 거미줄 뷰비츄랩에 오른발이 걸려들고 말았다.
순간 긴장으로 몸은 경직되어 우뚝서있으니 뒤에서 무슨 일이냐고 전달이 온다.
정신 차리라는 고함소리와 어떤 종류인가하고 다그친다.
녹색거미줄이라고 겨우 대답을 하니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서있고 지시사항을 잘 들으라고 한다.
뒤따라오던 모든 병사들은 다 낮게 엎드리고 경계태세를 하게하고
지금부터 잘 들으라 하면서 가장 경사가 깊은 곳을 둘러보라고 한다.
순간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아무생각도 안 나고
저들만 살기위해서 준비만하고 나는 이렇게 세워놓는가 ---
한심스럽게 원망을 하는데 내말 듣고 있는 거야 하는 고함소리가 들린다.
네 하고 대답하니 네가 죽고 사는 것은 너 하기에 달려다.
그러니 지금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지시하는 데로 하라고 한다.
-- 가장 낮은 곳이 있으면 구령과 함께 빨리 뛰어서 납작하게 엎드리라 -- 한다.
네 알겠습니다. 순간 긴장이 감돌고 몸에 전율이 흐르는데 ~
아 ~ ~ ~ 나의 운명은 ~
하나, 둘, 셋 뛰어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최대한 멀리 내동이 치고 엎드렸다.
쾅 하는 폭음과 함께 솟구치는 모레가 온몸으로 쏟아져 내리고 다행이 파편들은 철저하게 피해갔다.
소대원들 모두다 피해는 없었고 다행히 낯이라 그들은 습격해 오지 않았고
다시 수습하고 서둘러 가야만 제시간에 매복지점을 갈수가 있다.
이것이 전쟁터이구나 하는 것을 실감 할 수가 있었다.
매복지점에 도착하여 서둘러 개인호를 파고 전방에 크레모아를 설치하고
앞에다 슈류탄 과 조명탄을 준비하고 두 명이 한조가되어서 근무를 선다.
나와 같이 한조가 된 후배는 월남 온지 한 달밖에 안된
신참내기 후배로 많이 긴장되어 있었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먼저 눈 좀 붙이라고 하고 앞을 주시하고 날이 새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신참내기는 긴장되는 가운데도 잠이 오는 모양이다.
나도 겪어봤지만 눈 뜨고도 자는데 잠은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새벽 4시경쯤 일은 터졌다.
저들도 그렇고 우리도 서로를 감지하지 못한채 저들은 내 반대편에서 지나가다가
가운데 호 통신병과 분대장이 있는 개인호에서 마주친 것이다.
개인호를 동서남북으로 파고 분대장은
통신병과 같이 가운데 참호 있었던 것인데 난감하였다.
베트콩이다 하는 분대장의 고함과 함께 총성이 울리고
조명탄이 일제히 터지고 중대벙커 관망대에서 보고 대 낯 같이 조명탄을 쏘아 올리고
저들은 오던 길로 쏜살같이 도망을 치는데 그들의 앞으로 포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정신없는 시간이 흐르고 날은 밝아오고 있었는데 그때까지 아군의 피해는 전현 없었는데
3명의 베트콩시신을 수습하려고 나간 신참내기가 집중사격을 받고 쓰러진다.
안돼 하는 절규와 나는 신참내기를 끌어안고 몸부림을 쳐보지만
숨을 몰아쉬는 신참내기는 몸이 쳐지면서 늘어지고 있다.
위생병이 응급조치할 상황이 아닌지 통신병 한데 빨리 헬기를 부르라고 하고
판쵸를 펴서 신참내기를 눕히고 주변의 살점과 잘린 다리와 손을 수습하는데
손은 팔닥 거리고 있어 빨리 병원으로 옮겨져 봉합 수술을 해야 하는데 안타가울 뿐이다.
아 !!!!
이것이 누굴 위한 전쟁이고 꽃다운 나이의 아름다운 목숨을 버려야하나
제발 살아다오 빌고 또 빌어보았지만 나중에 안일이지만 끝내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늘 내옆에 있었던 전우가 끝내 죽어가는 현실을 보고나서야 나도 모르게 勇士가 되어가고 있었다"
신참내기를 그렇게 보내고 나서 일주일 동안은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빨간색갈이 나는 음식이나 고기류는 먹을 수가 없고 - 쌀밥도 그렇고 --- 모두가 그 모습이 자꾸 연상이 되고, 탈수까지 겹쳐져서 무척이나 고생을 하다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할 무렵에 또다시 작전명령이 떨어졌다. 중대벙커 서남쪽 방향 강언덕에 개인호와 교통로를 파 진지를 구축하고 3소대 1분대는 최전방에서 강 건너에 밀림 늪지대 쪽의 적의 동태를 파악하고있었다. 몇일이 지났을까 많은 무리가 와서 농사일 하는 것처럼 낮에는 일하고, 야간에는 간간이 저들 쪽에서 총성이 들려 오건만,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침착하게 주시하고 있으라는 전달만이 내려온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 그러나 마침내 올 것이 오고 있었다. 우리 1분대 앞에 있는 저들은 아무런 미동도 안고서 일만하는데, 대체적으로 관측이 어려웠던 2분대 쪽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이 적으로 돌변해 순식간에 2분대 쪽이 뜷리면서 우리 1분대 까지 고립되는 절대 절명의 전선이 형성되었다. 그때까지도 미동도 하지 않던 우리 1분대 쪽 농민들도 갑자기 우리가 부락킹 붙어있는 곳으로 총을 난사하면서 언덕으로 수십 명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소대본부에 알리니 우리 뒤에도 저들이 있다고 한다. 우리분대는 완전히 포위가 되어있어서 우리 스스로가 해야만 한다. 상황실에서 어떻게 이렇게 모르고 저들에게 당하고 있는지 우리를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분대장은 무슨 수가 날것이니 버틸 때까지 버터보자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나와 같이 개인호에 있는 신참내기는 지난번 작전에서 전사한 신참내기와 같이 월남에온 해병이다. 그일 이후 내 곁에서 붙어살다시피 하는 졸병이라 많이 챙겨주고는 있었는데 어찌하랴 전선에는 떼어놓고 올수는 없는 일이라서 참여해야지 신참내기는 수십 명의 검정 옷을 입은 많은 베트콩들이 총을 쏘아대며 올라오니 고개도 못 내밀고 허공에다 총을 쏘아대고만 있으니 내가 철모를 두들기면서 앞을 잘보고 겨냥을 하라고 하니 눈에는 눈물로 얼룩져서 참으로 가관이 아니다. 살아서 돌아가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하니 대답은 하는데 머리는 또다시 아래로 향하고 총구만 내놓고서 사격을 하니 총신이 땅에 묻힌 것도 모르고 쏘아대니 총은 파열되고 총이 없으니 급하기 급했는지 내 것을 달라하는데 이 노릇을 어찌 할고 저들은 빠르게 오르고 있는데 아무리 사격을 해도 쓸어 지는 저들이 없다. 정조준을 할 그런 사항이 아니다. 실탄도 아껴야 할 때가 오고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 숫자가 줄어들지 않고 더 많아지는 것만 갔다. 이놈의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앞이 캄캄해지는데 분대장이 소리를 친다. 상황실에서 무전이 왔는데 개인호에 깊숙이 숨어 있으라한다. 포사격이 시작 될 것이니 명령이 하달되기 전까지는 꼼작하지 말라고한다. 와 이것은 무슨 청천벽력인가 저들이 있는 곳에 우리가 있는데 우리를 포기 한다 말인가 신참내기는 벌벌 떨면서 박수병님 우리 어떻게 해요 하면서 여기서 그냥 죽는 거 맞지요 야 이놈아 죽기는 왜죽어 살아서 가야지 기도나 열심히 하고 처박혀 있어 하긴 나도 긴장하기는 매한가진데 나라고 별수가 있나 -- 주여 우리를 보살펴주소서 나라의 부름에 따를 뿐이옵니다 -- -- 우리를 버리지 말아주소서 -- 나도 모르게 기도가 터져나왔다. 포성은 요란하게 울리면서 우리 진지 근처도 폭음과 함께 땅이 진동하고 모래흙이 쏟아져 내리고 옆을 보니 신참내기는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다. 나 역시도 긴장은 최고조에 달하고 --- 수백발의 포를 부어놓고는 ~ 소개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신속하게 무장을 확인하고 지원부대가 도착 할 때까지 경계태세에 들어간다. 신참내기는 살았다는 기쁨보다 내 눈치 보느라 정신없다. 총이 파열되었으니 부대 복귀후가 두려운 것이다. 지원 부대와 같이 저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언덕 아래로 내려가서 마을을 소탕하고, 많은 노획물과 베트콩 부상자들과 포로들을 파악하여 인계하였다. 지원 부대가 원위치로 돌아가고 우리도 중대 방석으로 복귀하였으나, 심신을 달랠 여유도 없이 분대장과 같이 중대본부로 불려가서 엄청난 매타작을 당하고 소대로 오니 ---- 쫄병들이 눈치 보느라 모두가 숨죽이고 바라본다. 분대장이 주의 사항만주고 알아서 처리하라 하는데 - 내가 너무 힘이 들어 -- 그만 자기 위치로 가서 맡은바 일이나 하라 -- 고 하고 내무반에 들어가 눕지도 못하고 엎드려있으니 신참내기 와서 죄송하다며 찢어진 엉덩이에 약을 발라주고 온갖 신경을 쓰는 것이 더 애처롭기만 하다. -- 이렇게 나는 점점 월남전의 고참으로 성숙 되어가고있었다. |
얼마동안의 시일은 지나고 대대가 참여하는 작전명령이 떨어졌다. 우리는 또다시 보이지 않는 저들을 소탕하기위해 완전무장을 꾸린다. 실탄 한발이라도 더 가져가려고 어깨에 걸칠 수 있는 한 엑스자로 둘러메고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놓으면서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마음속에 새기고 중대벙커에 남아있는 자들의 흔드는 손을 뒤로하고서 밀림을 향해 전진하는데 이번에는 첨병을 서지 않고 첨병분대 다음으로 참가하고 있었다. 이번 지역은 험난한 곳으로 한번 참여하였던 선임분대 선배님이 첨병을 서고 바로 다음분대가 우리분대다. 가는 길이온통 늪지대가 많고 숲이 너무 많이 우거진 곳이라 헤쳐 나가기가 상당히 힘들다. 모두가 지쳐가고 있을 때가 제일 위험하다고 하는데 도저히 피해갈수 없는 길로 들어서서 완전무장한 무거운 몸으로 건너뛰어야 하는 협곡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첨병이 지나가고 1분대가 우여곡절 끝에 지나고 내 바로 앞에서 마지막 전우가 건너뛰면서 넘어져 구르는 것과 동시에 쾅하는 폭음과 함께 내 몸은 도랑에 내동댕이치고 만다. 모두 경계태세로 부락킹 붙고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낮추고 기어 올라오니 앞에 넘어진 전우는 이미 숨을 거두우고 있었는데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다. 몸을 살펴보니 가슴에 바늘구멍 같은 작은 흔적만 있는데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전사한 것이다. 이때 위생병이 나보고 상의를 벗어보라고 한다. 왜 그러냐고 하면서 상의를 벗으려하니 왼쪽 가슴과 겨드랑이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왼쪽 가슴에서 겨드랑이 쪽 으로 파편이 지나간 것이다. 위생병은 천만다행이라고 가슴깊이 상처가 안 나서 옆으로 지나가서 살았다는 것이다. 바늘구멍 하나에 목숨을 버렸는데 이렇게 상처가 나고 피를 흘려도 죽지않았구나 하늘이시어 나를 보살펴 주셔나요 - !!!!
(우측,48년생 환갑인 저를 동안이라고합니다 - 그때 베리아에 청춘을 묻으며 모든걸 포기하고살아서 그럴까 - 희노애락 다 포기하고 --) 응급 치료를 하고 다시 전진 또 전진하면서 작전지역에 도착하여 진지를 방어하고서 매복에 들어가고 저들과 콩닥 콩닥 몇 날을 하면서 보냈다 - 상 남 훈련소에서 각개전투 훈련하듯이 -- 언제 큰 것이 터질지 모르는 긴박감에 있는데 미 헬기한데가 우리지역을 배회하다가 저들의 집중사격에 격추가 되고 불길에 휩싸이고 모두가 경계태세에 들어가고 제일 가까운 우리 분대보고 들어가서 미군병사를 구출하라고 하는데 도저히 접근 할 수도 없고 불을 끌 엄두도 못하고 속수무책이라 그러는 사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기체와 미군병사가 꼽작도 못하고 불타고만 있는데 사람 타는 냄새가 너무도 역겨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바닥에 엎드려 내장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놓고서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서서히 식어갈 때에 불탄 시신을 수습하는데 손에 잡히는 곳마다 홀라당 벗겨져 할수없이 끌어내릴 수가 없는데 누군가가 판쵸를 가지고 와서 뒤집어 쒸우고 묶어서 끌어내고 미군 헬기가 와서 후송해 가는데 아 ~ 참으로 허무 - 그 자체였다 !!! 부자 나라 미군 병사도 젊은 나이에 어떻게 저렇게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하는구나 그 부모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자식을 그리면서 살아갈까 ??? 이 지구상에 전쟁은 없어야할 존재인데 왜 전쟁은 끝이 없는 것인가??? 인간은 누굴 위해서 무엇 때문에 무고한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인가??? 이날 오후에 대대적인 미 함포사격이 있을 예정이라 한다. 사전예고 없이 아마도 미군 쪽에서 미군희생자들의 보복조치인거 같다. 대대적인 포사격이 있을 때는 먼저 마을 지역에 방송하고 삐라를 뿌리는데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눈앞에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폭격의 대 광경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함포사격이 있고 난후 미군 전투기들이 또 초토화시키면서 검푸른 대지가 황토색으로 뒤바뀌고 지형이 변하는데 무엇인들 남아있으리 -- 어떻게 표현을 해야 상황 설명이 되는지 도무지 나조차 거기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내심 기도는 했다 -- 우리 지역에 제발 포탄이 안 떨어지게 해달라고 -- 지금 생각하니 이것도 어쩔수 없는 인간 본심의 이기심이 아닌지 --- 모든 지원 사격이 끝나고 쑥대밭이 되어버린 vc마을 소개 작전이 시작되고 여기 베리아 지역은 가옥이 지상에는 없고 공동묘지무덤 봉분처럼 그렇게 되어있고 봉분에는 출입구가 있고 땅속으로 연결되어있어 모두 잡아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살아있는 적들을 색출생포하기 위해서 땅굴입구를 봉쇄하고 적을 소탕하는 작전을 하는데 - 내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게 된다. 앞으로 전진 하여 봉분을 뒤로 은폐하고 출입구를 살피려고 고개를 내미는 순간 적과 딱 마주치게 된다. 서로 놀라서 당황하고 멍하니 바라만 보면서 서로 총은 겨누고 있는데 방아쇠는 못 당기고 있는 것이다. 한발의 총성과 함께 적은 쓰러지면서 당긴 총알은 허공을 가르고 나는 털썩 주저 않는다. 뒤따라오던 전우가 상황 판단을 빨리하고 적을 쏜 것이다. 후일 이 작전에서 많은 양민이 학살되었다고 문제가 되어서 군사 재판을 받게 된다. 선임 조장인 나, 분대장, 소대장, 대대장, 순으로 브리핑을 하게 되는데 그때 이동용 여단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내가 이 군복을 벗고 계급장을 떼는 한이 있어도 너희들을 지킬 것이니 안심하고 지시한 작전대로 임무수행 한 것만 브리핑 잘하라고 격려를 해 주셨다. 재판이 열리는 날까지 무엇을 했는지 아무런 생각도 안 나고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버린 것이다. 어떻게 되는 것인가 영창 가는 것인가 영창가면은 어떻게 되나 도무지 마음이 안정이 안 되고 불안한 마음만이 엄습해오는데 이런 맘 조아리는 것을 누가 알까 미쳐버리고 말 것 같다. 날자는 어김없이 오고 시간이 되어 군사 재판장으로 향하는데 항간에는 재판에 지면은 조기 귀국을 하여 다시 재판받고 영창을 가든가 아니면 사형당할 수도 있다고 한다 정장차림하고 계급장이 별들로만 가득한데 여기서 주눅이 안들 사람이 있을까 에어콘 바람이 이날은 싸늘하게 피부를 스치는데 소름이 온몸을 감싸고 모든 사람의 시선이 느껴지고 자리에 앉으라는 헌병의 안내에 자리 잡고서 의자에 앉으니 왜 그리도 좌불안석인지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아무생각도 없다. 대대장님의 작전에 대한 상황설명이 끝나고 선임 조장인 나부터 부리핑 이 시작되고 분대장, 소대장, 중대장, 다시 대대장이 마지막으로 끝이 나고서 밖으로 나오니 조금은 살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 안에서는 논쟁이 한참 벌어지고 있고 우리는 다시 여단본부로 돌아오면서 어떻게 되는 것인가 잘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나 이대로 조국으로 갈수만 있다면 모두 버리고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 몇 날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으니 불안하기만 한가운데 부대로 복귀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다시 베리아로 돌아가 원상태 복귀하여 근무하던 중에 우리 분 대원에게 15일간 특별휴가가 떨어졌다. 고국으로 휴가 갈사람 아니면 다낭 휴게소에서 휴가를 보내는 두 가지 조건 고국에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배로 가야하니 가면서 오면서 날자 다잡아먹는데 갈수가 있나 ??? 우리는 다낭휴게소에서 꿈같은 날을 보내고 부대 복귀하여 다음 작전 준비를 하고 있는데 --- 귀국 3개월 남았다고 작전에서 열외를 시켜 주어서 귀국 준비로 월남 생활을 글과 그림으로 정리하는데 후배 전우 한명이 갑자기 병이 나서 의무실에 입원하게 되고 그날 작전 인원이 모자라서 다른 소대에서 채우려는 것을 보고 그때 아무 생각없이 - 내가 마지막으로 참전하겠다고 자원하여서 작전을 나가고 이 작전에서 ---- 그러니까 "1970년 11월 8일 10시에서 11시 사이에 한 많은 내 젊은 청춘의 몸을 잃어버리고 피를 토하게 된다". |
이제는 말할수있는 청룡실록 (7부)-내 청춘의 무덤-베리아 반도(중)
해병209기 박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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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아 에서의 마지막 날.
11월초 나는 마지막 참여하는 작전이라 생각하고 의무실에 입원해있는 졸병을 두고
작전에 만전을 하여 월남에서의 마지막 멋진 작전을 마무리하리라 마음먹고
소대본부로 배속되어 작전에 참여하게 된다.
이번 작전은 중대벙커에서 서쪽방향으로 나간다.
이 지역은 자주 나갔던 지역이라 조금은 우리가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곳이라 마음이 차분해진다.
소대진지를 구축하고 교통호와 개인호를 파고 각자위치에서 경계근무를 하면서
저들의 이동로를 주시하고 판단하여 중대본부 상황실로 보고하고 지시받으면서 일주일이 흐르고 --
그날 밤 서북쪽 4키로 미터 정도 떨어진 1분대 쪽에서 요란한 총성과 함께 대낮같이 밝은 조명탄이 터지고
1분대 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상황은 종료되고 소대본부에는 아군피해는 없다고 보고가 들어왔다.
저들이 강변의 코코아 숲 쪽으로 이동하다가 교전이 붙은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저들이 코코아 숲 쪽으로 이동을 못하게 하는 것이고
저들은 코코아 숲을 거점으로 하고 있으면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라서
어떻게 하든 막아야 하는 지역이다.
그떄 1분대에서 실탄 보급 요청이 왔다.
치열 했던 교전이다 보니 실탄이 따 떨어진 것이다.
코코아 숲으로 들어간 저들은 얄미울 정도로 우리를 괴롭히고 눈에 가시가 되어서
어떻게 하든 막아야 하는 지역이라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는데
코코아 숲은 한쪽으로는 강이 연결되어서 지역적으로 저들을 소탕하기가 힘이 들고
반대쪽은 늪과 숲이 우거지고 있어서 참으로 들어가기가 힘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그나마 들어 갈수 있는 모든 길은 우리가 매설해놓은 지뢰밭이 있어서
우리도 확인할 수가 없어서 못 들어가는 곳이다.
소대본부에 서둘러 1분대에 전해줄 실탄을 준비하여 졸병 두 명을 차출하여
내가 인솔하고 1분대로 향하는데 가는 길이 무척이나 험난한 것이다.
몇 시간 동안 쏟아 부은 비는 논과 밭 늪지대가 구분이 안 되고
온통 물바다를 이루고 있어 가기고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래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1분 대원들을 위해 서둘러야한다.
만약에 저들이 실탄이 없는 것을 알고 오면 속수무책이다. 그냥 당하는 것은 뻔 한일이다.
그나마 저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바닥이 보이는 물길을 따라가면서 때로는 허리까지 차오르는 곳도 있어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무거운 실탄을 잔득 메고서 물길을 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거기에 우리의 약점을 노리고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저들의 딱총소리는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고
소대본부가 멀어지면서 불안하기만 하고 앞서가는 후배해병들의 모습은 더 불안해보이고
떠들면서 갈수도 없는 노릇 침묵으로 가끔씩 돌아보면 손 흔들어 안심시키고 조심하라는 신호만 보내면서
어렵사리 가는데 왜 언덕이나 능선으로 못가고 물길로 가야하는지
이런 곳은 백발백중 지뢰나 저들이 있기에 수로를 택하여 가는 것이다.
물속에서 터지는 지뢰는 위력이 약하기 때문에 수로를 택하여 가는 것이고
또 저들도 물길로 오기가 힘이 들기 때문에 안전상 수로를 택하는 것이다.
한 시간여 오는 동안 물에 젖은 몸은 천근만근이 되어서 도저히 더 나갈 수가 없을 정도로 힘이 빠져
1키로 전방에 1분대가 있을 거라는 짐작과 함께 안심도 되고 해서 지형을 잘 살피고
밭둑길로 접어들라 하고 바짝 붙지는 말고 안전거리는 유지하라면서 밭둑길로 올라서니 조금은 살 것 같다.
잠시 조금씩 떨어진 상태에서 그 자리에 서 있는 채로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가 이야기하고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옮겨놓으면서 서둘지 말라고 하는 말과 동시에
-- 쾅하는 폭음과 함께 두 해병은 몸이 나뒹굴면서 내 다리~ 내 다리 하면서 아우성 대는데
-- 나는 그 자리에 정지되어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순간 오른쪽 언덕을 보니 우리 쪽을 향해서 저들의 검은 무리들이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 가
우리가 당 했구나 나는 두 해병에게 적들이 있으니 숨죽이고 있으라고 소리치고 있는데
다행이 아우성은 멈추고 조용해지니 내가 어떻게 된것인지 몸을 살펴보니 몸이 뜨거워진다.
나는 입으로 울컥 울컥 쏟아지는 것을 손으로 받아보니 핏덩이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 가
핏덩어리를 보는 그 순간 땅 바닥으로 털퍼덕 쓰러지고 정신이 희미해지는데 살아야 한다.
우리를 구출하러 올 것이다. 후방에 알려야한다는 생각에
M16을 끌어 당겨 허리에 차있는 실탄까지 모두 쏘아 올리면서 내 몸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고 ---
영화 필름처럼 스쳐가는 고향산천과 환갑이 넘으신 초라한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다가 사라지고 ---
형제자매가 보이고 사라지면서 서서히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웅성대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적들이 아닌가 !!!!
아군보다 저들이 먼저 온 것이다.
아 ~ 우리는 이제는 끝이 구나 나는 눈을 감아버리고
저들은 우리를 확인 사살하고 무기를 탈취해 가겠지
저들은 대단한 노획물이라고 저네들에게 자랑스럽게 떠들어 대겠지
귀신 잡는 한국 해병대를 3명씩이나 사살했다고 하면서
마치 영웅이 된 것처럼 들 저들을 환대를 받겠지 ----
아 ~ 이것이 마지막인가 ~???? ~ !!!!!!
적들의 확인 사살을 기다리며 나는 또 다시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말할수있는 청룡실록 (8부)-내 청춘의 무덤-베리아 반도(하)
해병209기 박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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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위생병이 내 몸을 흔들고 있었는데 깨어나서 다행이라는 얼굴 표정이다.
입에는 호흡기가 가려져있고 숨을 몰아 쉬면서 헐떡이고 있는
나에게 웃으면서 무어라고 말을 하는데
-- 나는 살아난 것인가 꿈속인가 생시인가 여기가 어디인가 --
-- 반문속에 어머님과 가족 얼굴이 크로즈업 되어 겹쳐진다 --
내 다리 내 다리 하면서 아파하고
소리 높여 아우성치는 후배 해병들의 절규 ---
우리는 그렇게 헬기 안에서 응급 치료를 받으면서
다낭 항구 앞바다에 떠있는 미군 병원선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또 다시 나는 정신이 희미해지는 가운데
눈을 감아버리고 혼수상태로 가고 있었다.
그렇게 7일간의 생과 사의 긴 사투 끝에
눈을 뜨게 되고 지금의 나로 돌아오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
내가 중간에 서고 앞뒤로 가던 후배들은
45도 각도로 튀는 파편에 다리가 절단되고
나는 가운데로 솟는 부비츄랩에 다리부터 가슴까지 찢어지고 터지고 --
내장이 밖으로 나온 상태에서 구조 요청 사격을 하다가
베트콩이 확인사살을 하려고 와서 우리를 내려다 보는 모습을 보며 정신을 놓았는데 --
그 순간에 마침 미군 전투용 헬기가 떠서
유난히 전투 헬기를 무서워하는 베트콩이 확인 사살을 못하고 도망갔다고 한다.
소대장님이 소대원을 이끌고 우리를 구출하러
우리가 그렇게 힘들게 통과한 언덕과 물길을 단숨에 달려 왔고
후배들은 절단된 다리와 함께 판쵸에 싸고
나는 밖으로 나온 내장과 함께 판쵸에 말려 헬기를 탓다고 한다...........
그 자리 ----
내가 - 해병정신 가득하던 내가 남자를 잃어
청춘이고 인생이고 모든걸 잃었던 그 자리 -----
40년간 다 쏟아 말라버린 눈물이
천자봉이 준 커다란 붉은 스카프가 다 젖도록 쏟아졌으나 ---
슬픔인지,회한인지,울분인지 --알수도 없고
버스를타고 --배를 두번씩 갈아타면서도
그 생소한 타국 땅을 말없이 동행해 주신 백마 선배님을 비롯한
선배님 후배님께 다시한번 감사올리며
차마 전우에게 올리는 글 단숨에 읽지 못하신 마린 선배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동행한 나의 동기 이상기는 이제 모든걸 잊으라 합니다...
잊어야 하는데 --
잊어야 하는데 --
[출처] 이제는 말할수있는 청룡의 청춘무덤(9부)-조국의 보답 5급장애자. |작성자 ojh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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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선에서의 긴 잠을 깨어보니...
비오는 소리에 눈을 뜨니 눈앞이 안개처럼 뿌옇게 보이고 주위는 조용하기만 하고 나는 반듯하게 누워서 몸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반신은 아무런 감각이 없고 양손은 묶여 있고 얼굴은 유리통 같은 것이 씌워져있고 숨은 코로 연결된 호수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 온 몸이 아무런 감각이 없어 내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지금 여기에 누워있는 것을 생각해보는데... 헬기에서 후송되어 온 후에 한국 군의관이 뺨을 찰싹 찰싹 때리면서 정신 좀 차려보라고 수술을 들어 가야하는데 몸에 상처가 너무 많이 나고 많은 모래가 상처에 달라붙어서 수술하기가 어려워서 냉동을 하고서 모레를 제거하고 수술을 해야 하니 아무걱정 말고 깊은 잠을 자라고 한다. 처음에는 추울 거라고 조금만 참으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소린인지 몰라서 이해가 안 되었다. 사람을 냉동시키면 은 죽는 것이 아닌가? 그럼 나는 살아날 희망이 없는 것인가 ??? 그래서 냉동을 시키는 것인가 ???? 조국은 이렇게 나를 머나먼 이국땅에다 버려두는 것이란 말인가 ??? 그래서 마지막 가는 길에 정신 차리게 하고 깊은 잠이나 자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인가 ??? 나는 몸부림을 쳐보지만 미동도 할수없고 온몸이 몸서리 처지도록 차가워지는데... 주여 나를 버리시나요. 주여 살려 주소서 아니 죽더라도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님 품안에서 죽게 하여 주소서 나는 하느님께 매달리고 있었다. 어머니를 한번만이라도 보고 갈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또 하고 애타게 절규하며 정신을 잃고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속세가 보이지 않는 북망산에 서 있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 홀로 그 산을 넘고 있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외로운 길을 타박타박 걸어서 오랜 시간이 걸려서 도착하니 그 앞에는 수천 길 낭떨어지기 절벽과 계곡 밑에는 소용돌이치는 수심 깊은 강물이 흐르고 있는데 모습이 없는 목소리로 그 강을 건너라 하는데 나는 못 건너간다고 하니 꼭 건너야한다고 뒤돌아보지 말고 건너야 한다고 한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고 건너야 한다고 서둘러 가야한다고 하면서 너를 안내할 동물이 있으니 따라가라고 하면서 앞을 보라고 한다. 앞을 보니 강위에 외나무다리가 놓아져 있고 하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면서 따라오라고 앞장서서 다리를 건너가는데 한발 한발 옮겨놓는 발길이 잘 떨어지지가 않고 불안하기만 하다. 천천히 가자하면서 강아지를 부르니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냥 가기만 하는데 도저히 따라 갈수가 없어서 소리를 치니 강아지가 뒤돌아보는데 그만 나는 외 나무 다리에서 떨어지고 강물로 추락하여 물길에 휩쓸려 떠내려가면서 헤엄쳐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바위 돌에 걸려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흘러가는 물소리만이 귀에 들리는데 여기가 어디쯤일까?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눈을 떠보니 비가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나는7일간의 긴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후일 글을 쓸 수가 있을 때 7일간의 긴 꿈을 옮겨놓아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우연이 아닌 꿈속에서의 똑같은 하얀 강아지는 1991년 11월 8일에 나에게로 왔다가 나의 삶과 같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살고서 2004년도 12월에 내 품안에서 생을 마감하고 우리 곁을 떠나갔다. 다낭 항구 앞 바다에 떠있는 미군 병원선에서 퀴논 한국군 야전병원으로 옮겨져서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고 경도에 따라 귀국할 수가 있으면 필리핀 클라클 미 공군기지에서 한국으로 귀국한다. 나도 빨리 귀국하고 싶어 보내 달라고 하지만 귀국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한다. 치료를 받으면서 귀국을 위해 몸 상태가 빨리 좋아지기만을 기다리는 있는데 여기서 육군 소위 간호장교의 극진한 보살핌과 배려로 치료를 받고서 필리핀 클라클 미 공군 기지 병원으로 옮겨져서 7일간의 치료를 받고 12월 19일 한 많은 전선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들것에 실려 비행기로 귀국하게 된다. 들것에 실린 채로 누워서 귀국하는 부상병에게는 다행히 창문 쪽으로 자리를 마련해주어 밖을 볼 수 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 몸 상태는 아직은 비행기를 탈수 없다고 하는 것을 생떼를 쓰다시피 해서 귀국하게 되었는데 그날 김포공항에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착륙을 못하고 회항하여 대구 공군 비행장에 내려서 하루 밤을 보내고 다음날 김포 공항으로 와서 들것에 실려 공항 활주로에 누워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사람이 나타나질 않는다. 더운 월남에서 1년여를 있다가 유난히 추운 겨울 활주로가 얼마나 추운가 ?? 눈은 내리고 날씨는 추워 얼어 죽을 것만 같은데 그나마 목발이라도 짚고서 걸을 수 있는 부상병들은 건물 안으로 몸을 피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들것에 있는 부상병들은 그대로 눈을 맞으면서 추위에 떨다가 -- 아우성을 치니 ---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대방동 해군병원에서 출발한 앰뷸런스가 눈길에 상당히 많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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