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8 분기점을 뒤로하고서 850m봉을 사면길로 우회해 7분 남짓 내려서면 720m능선에 내려서게 되고 이어서 좌측으로 꺾어 8분 남짓 더 진행하면 655.2m봉의 능선에 올라서게 되는데 군데군데 너덜바위가 자리하다 좌측으로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자리해 우측으로 비켜 지나니 참나무 숲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묵은 묘지를 지나서부터는 쭉쭉 뻗은 소나무 숲이 이어지더니만 지형도상에 삼각점이 설치된 399.9m봉에는 삼각점은 없고 편안한 소나무 숲이 계속 이어지다가 탑골안부를 지나 8분 남짓 후 시멘트포장도로에 내려서게 되었다.
그렇게 시멘트포장도로에 내려서니 지형이 우측으로 이어지는 것 같고 좌측은 계곡처럼 느껴져 생각 없이 우측으로 30~40m진행하다보니 뒤따르던 대방님이 GPS를 확인하고서 방향이 다른 것 같다고 해서 지형도를 꺼내어 확인해보니 반대방향인 벽운암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전봇대에도 벽운암방향이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지형도를 확인하지 않고 지형만 보고서 진행하다보니 잠시 헷갈리게 되었던 것이다.
(삼각점은 보이질 않는다)
(내려선 임도에서 좌측으로 진행한다)
(우측의 벽운암방향의 능선이 높아보여 잠시 발품을 팔고 돌아왔다)
09:26 어쨌거나 다시 30~40m를 뒤돌아가서 내려왔던 방향에서 좌측으로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서 몇십미터 진행하니 임도삼거리가 자리하면서 “구화사”와 “보림사” 그리고 “탑곡공소” 안내판과 함께 영남알프스둘레길, 탑골샘:2.2㎞, 유촌마을:1.5㎞라 표시된 이정표가 세워져 있기도 한다.
아마도 이 임도는 좌우로 이어지면서 태화강100리길로 영남알프스둘레길을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임도를 가로질러 숲으로 들어서니 고도 180m남짓을 극복하며 오르는 오르막 능선이 시작되는데 좌측으로는 잠시 철사줄울타리가 이어지더니만 7분 남짓 가파르게 오르다보니 준희님의 격려표시판이 소나무에 걸려있고 이어서 6분 남짓 더 오르니 482.1m봉에 올라서게 되는데 묘지1기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묘지봉에서 다시 살짝 내려섰다 15분 남짓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능선을 따라서 진행하다보니 560m능선에 올라서게 되고 이어서 23분 남짓 편안하게 더 진행하니 고도 613.3m봉인 천마산에 올라서게 된다.
천마산은 작은 정상석이 세워진 가운데 작은 공터가 자리해 한쪽에 자리를 잡고서 휴식을 취하는데 대방님은 웃옷을 벗고서 홀로 막걸리를 마시고 있어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 미안한 마음에 옆에서 술을 따라주었다.
사실 홀로 지맥길을 이어갈 때는 술을 마시지 않는 스타일인데 대방님과 부용지맥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대방님의 끈질긴 권유에 항복해 마시게 되었는데 난 산행중에 술을 마시면 다리가 풀려 힘들게 산행하게 되고 요즘은 알레르기반응까지 있어 산행 중에는 금주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첫번째 봉)
(먼저 도착해 정상석을 인증하고서 휴식을 취한다)
10:52 천마산에서 그렇게 휴식을 취하고서 5분 남짓 진행하다보니 좌측으로 바위들이 자리하는 전망대가 자리하는데 안개가 끼어있어 조망다운 조망을 느끼지 못하고서 557m봉을 지나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내리막 능선을 내려서다보니 너덜지대의 내리막길이 시작되고 이어서 278m봉에서 좌측으로 꺾어 4분 내려서면 우측 미호저수지로 내려서는 안부를 하나 지나게 되고 다시 7분 후 2차선 아스팔트포장도로인 상동고개에 내려서게 되었다.
상동고개에는 전원주택이 한 채 자리하기도 한다.
(전망대)
(더널의 내리막길)
(상동고개방향으로 내려다보고)
(상동고개에 자리하는 전원주택)
11:53 도로를 가로질러 옹벽으로 올라선 후 8분 남짓 가파르게 오르다보니 준희님의 격려표시판이 걸려있고 이어서 11분 나짓 더 오르다보니 404.7m봉에 올라서게 되는데 뒤따르던 대방님이 힘든지 뒤처지기 시작해 3분 남짓 기다렸다 다시 7분 남짓 진행하다보니 묵은 헬기장인 듯 잡풀이 우거진 능선에 올라서게 되었고 이어서 9분 남짓 완만하게 이어 내려서다보니 시멘트포장도로 아래에 좌우로 이어지는 임도인 복안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복안고개는 좌측으로는 새터, 우측으로는 미호리로 이어지는 임도인데 복안고개 중간만 비포장임도인 모양이다.
복안고개에서 우측의 임도로 들어섰다 좌측의 숲으로 들어서면 묘지 뒤로 표시기들이 많이 걸려있는 가운데 소나무 숲이 시작되는데 고도 140m정도를 극복해가면서 21분 남짓 오르다보면 지형도상에 삼각점이 표시된 361m봉인 삼봉에 올라서게 되는데 표시된 삼각점은 없고 커다란 묘지와 함께 산불초소만이 자리하고 있다.
(복안고개로 내려서면서 삼봉을 올려다보고)
(복안고개)
12:19 뒤처진 대방님을 삼봉에서 기다릴까 생각하다가 경부고속도로를 통과해 점심을 먹기로 약속했기에 삼봉을 뒤로하고 우측으로 급하게 꺾어 8분 남짓 내려서다보니 송전철탑 밑을 통과하게 되고 이어서 6분 남짓 더 완만하게 내려서다보니 좌측으로 성터가 자리하고 있어 성터의 돌담에 올라가 잠시 성터를 확인하고 내려와 3분 남짓 내려서다보니 석물과 함께 망부석이 세워진 묘지가 자리하고 있다.
묘지를 가로질러 내려서니 뚜렷한 내리막길은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서고 좌측의 흐릿한 길에 많은 표시기가 걸려있어 우측으로 휘어지는 뚜렷한 내리막길을 나뭇가지로 막아놓고서 좌측의 흐릿한 숲으로 들어서 7분 남짓 내려서니 전면으로 경부고속도로와 함께 35번 국도가 내려다보이는 절개지에 내려서게 된다.
지맥산행을 떠나올 때마다 선답자의 사전정보를 확인하지 않는 버릇이 있어 이번에도 고속도로 절개지로 내려서게 되었는데 고속도로를 어떻게 통과할 방법이 없어 보여 다시 뒤돌아가 조금 전에 막아 놓았던 뚜렷한 길로 내려갈까 망설이다가 일단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생각해보기로 하고서 시멘트로 포장된 넓은 배수로에 앉아 젖은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서 대방님을 기다리는데 대방님이 내려오지 않아 연거푸 전화를 걸어 봐도 받지를 않아 뭔가 잘못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혹시라도 다쳤는지 아니면 다른 길로 빠져버렸는지...
대방님은 GPS가 있으니 다른 길로 빠졌더라도 다시 마루금으로 복귀해 내려올 텐데 전화도 받지 않으니 어걸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면서 30여분을 기다리다보니 고속도로 넘어 35번국도 아래에 대방님의 모습이 내려다보여 어찌나 반갑던지 큰소리로 불러보니 지친모습으로 올려다본다.
다급하게 양말과 등산화를 신고서 절개지로 내려서 고속도로를 건너려니 방법이 없고 다시 35번국도로 올라서야 될 것 같아 황당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니 35번국도로 다시 오르기가 장난이 아닐 것 같다.
하여 도로보수용으로 설치된 난간으로 올라서 사다리로 오르기로 마음먹고 첫 번째의 교각기둥를 확인하니 도저히 올라설 수 없어 두 번째의 교각기둥을 확인하니 박쥐처럼 매달려 오르면 가능해 보일 것 같다.
배낭과 스틱을 교각에 설치된 철망위에 올려놓고서 박쥐처럼 올라붙어 가까스로 철망위에 올라서게 되었는데 정말 위험한 짓이라서 하지 말아야할 행동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철망으로 올라선 후 원형의 통 안에 설치된 사다리를 타고서 35번 국도로 올라서니 다행히도 출입문이 자물통으로 그냥 걸려있어 자물통을 빼내고서 35번 국도에 올라서게 되었는데 자물통이 채워져 있었다면 다시 내려섰어야 할 아찔한 행동으로 반성해보게 되었다.
다친 관절이 아직도 불편한 상태로 장애를 안고 있으면서 또다시 무모한 행동을 했던 자신을 질책하면서 35번국도의 미호육교를 건너게 되었다.
(성터)
(여기서 대방님을 마냥 기다린다)
(이걸 타고서 35번 국도로 올라섰는데 위험하고 또 아무나 못올라온다)
13:06 어쨌거나 대방님은 삥삥 돌아서 이곳에 도착했다고 하는데 나와 30여분 넘게 시차가 벌어졌었던 상태이었고 점심 먹을 장소를 물색하다보니 도로를 건너 시원한 임도에 앉아 점심을 먹어야 될 것 같아 철 계단을 이용해 절개지로 올라선 후 169.2m봉의 숲을 빠져나오니 임도가 시작돼 임도삼거리에 자리를 잡고서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난 준비해온 주먹밥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대방님은 도시락과 함께 막걸리를 곁들여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고속도로를 건너면서 고생을 많이 했었는지 계속해서 한탄과 푸념 섞인 원망을 이야기한다.
15:09 계획했던 시간보다 1시간 남짓 지체된 시간이지만 대방님이 힘들어하니 빨리 가자고 하지도 못하겠고...
그렇게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서 이제 중림고개까지는 임도를 따라서 진행하게 되는데 임도를 따라서 14분 남짓 진행하다보니 임도삼거리가 자리해 좌측의 임도를 따라서 2분 남짓 더 진행하다보니 좌측으로 삼각점이 설치된 226.1m봉이 자리해 삼각점(언양-417, 1982-재설)을 확인하고 뒤돌아 나와서 다시 임도를 따라서 진행하는데 멧돼지의 배설물로 추측되는 배설물들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렇게 임도를 따라서 32분 남짓 진행하다보니 2차선 포장도로를 대하게 되고 이어서 좌측으로 아스팔트포장도로를 따라서 진행하다보니 대우농장식육점이 자리하는 중림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식당주인께 지하수의 식수를 받을 수 있겠느냐고 양해를 구해 식수를 보충한 후 다시 당산고개로 진행하게 되는데 마루금은 중림고개의 좌측으로 내려섰다 한전표시판이 세워져 있는 우측의 도로로 들어서야 하는데 시간도 지체되고 대방님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 당산고개까지 그냥 도로로 진행하자고 대방님께 제의하니 GPS의 트랙이 좌측으로 이어진다고 해서 대방님에게 지형도를 보여주면서 여러 번의 의견을 교환하다 좌측의 도로로 조금 내려서니 도로 건너편으로 한전표시판이 내려다보여 그곳으로 진행하려고하니 대방님께서 육덕님의 제의대로 우측의 도로로 진행하자고 한다.
아무튼 내가 긴장이 풀렸었던지 여기서 지형도를 잘못 읽는 바람에 도로를 따라서 진행하느라고 고생하게 되었는데 다행히도 뒤따르던 대방님이 승용차 한 대를 히치해 당산마을 마주머니 덕분에 편안하게 당산고개에 도착하게 되었고 중간의 민가 식당의 아주머니가 시원한 물까지 챙겨줘 작은 페트병 하나씩 단숨에 들이켜 마시게 되었다.
어쨌든 내가 지도를 잘못 읽는 바람에 그냥 걸어서 온 시간이나 차를 얻어 타고 온 시간이나 비슷하게 시간이 소요된 것 같다.
(이제 임도와의 전쟁은 시작되고)
(중림고개)
(당상고개)
16:51 당산고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서니 우측으로 전원주택단지를 조성하려는 듯 축대를 쌓아놓은 것이 자리하고 이어서 숲으로 들어서 7분 남짓 진행하다보니 송전철탑을 가로질러 4분 후 묘지를 가로질러 오르게 된다.
망부석이 세워진 묘지를 가로질러 8분 남짓 진행하다보니 준희님의 격려표시판이 걸려있고 이어서 12분 남짓 더 올라선 320m 능선에서 좌측으로 꺾어 12분 남짓 더 완만하게 오르니 좌측의 420.4m봉을 우측 사면으로 진행해 이정표(지나온 당상마을: 0.9㎞, 좌측으로 상월평마을:2.0㎞, 진행방향으로 치술령정상:2.0㎞)가 세워진 430m봉의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이정표를 뒤로하고 살짝 내려섰다 완만하게 오르는 490m봉의 오르막능선을 따라서 진행하는데 우측사면으로 진행되면서 좌측의 능선방향으로는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목책을 설치해둔 가운데 9분 후 쉼터의자와 함께 이정표가 세워진 쉼터안부에 도착하게 된다.
이정표에는 치술령정상:1.6㎞, 당상마을:1.0㎞, 외동:4.0㎞, 상월평마을:2.4㎞라 했다.
뒤처진 대방님과 함께 진행하기 위해 쉼터의자에 배낭을 내려놓고서 5분 남짓 기다려도 올라오질 않아 시간이 더욱 지체될 것이 염려돼 그냥 치술령정상에서 기다리기로 마음먹고 5분간의 휴식을 접고서 18분 남짓 오르다보니 643.8m봉에 올라서게 되고 이어서 7분 남짓 더 진행하니 710m봉에 올라서게 된다.
삼거리갈림길을 이루고 있는 710m봉에서 우측 옷밭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꺾어 6분 남짓 오르니 전망테크가 설치된 가운데 “망부석”에 대한 유래가 기술되어 있는 안내판이 설치된 쉼터에 올라서 짧게나마 조망을 즐기고서 8분 남짓 더 오르니 치술령의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올라선 치술령에서 등산화를 벗고서 신모사지 옆에 걸터앉아 대방님을 기다리다보니 땀이 식는 듯 한기가 느껴져 안은 자세로 몸을 풀다보니 20여분 후에 대방님이 도착돼 정상석 옆에 자리를 잡고서 준비해온 빵으로 간단하게 간식을 먹으며 17분 남짓 더 휴식을 취하고서 막바지 산행을 이어가게 되었다.
(대방님을 기다리면서 5분 남짓 휴식을 취하고 그냥 간다)
神母祠址(신모사지)
신라시대 충신 박제상(朴提上)의 아내를 배향하던 사당 신모사(神母祠)가 있던 곳으로, 경주시 외동읍 녹동리 치술령(致述嶺) 정상에 있다.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이 일본으로 건너가 왜국에 인질로 잡혀간 왕의 동생 미사흔(未斯欣)을 신라로 탈출시키고 왜군에게 잡혀 순절한 뒤 그의 아내가 날마다 치술령에 올라가 왜국 땅을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세상을 떠나자, 신라 사람들이 그녀가 죽은 자리에 신모사(神母祠)를 짓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현재 치술령 정상에 '신모사지(神母祠址)'라고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다.
<박제상의 설화>
박제상의 설화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 문헌에 따라 조금씩 내용이 다르지만 문헌에 따르면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 2년(418)에 고구려에 사신으로 가서 장수왕을 설득해 눌지왕의 아우 복호를 데려왔다고 하며, 복호를 데려온 자리에서 눌지왕이 왜국에 있는 아우 미사흔을 그리워하자 박제상은 곧바로 다시 왜국으로 향했다.
신라를 배반하고 도망쳐왔다고 속인 박제상은 미사흔을 빼돌려 신라로 도망치게 하고 자신은 붙잡혔다.
신하가 될 것을 청하는 왜왕의 요구를 거절하고 박제상은 목도(木島)에서 불에 타 숨지고 만다.
또한, 삼국유사에 따르면 제상의 부인이 남편을 그리워하며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가 왜국쪽을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화석이 되어 망부석(望夫石)이 되었다고 한다.
그 넋은 새가 되어 날아가 그 옆의 국수봉 바위굴로 숨어들었는데 그 곳이 바로 “은을암”이라 한다.
은을암(隱乙岩)의 의미가 바로 새가 숨은바위란 뜻이라 하며, 그 새가 날아와 앉은 자리를 비조(飛鳥)라 부르니 지금의 두동면 만화리의 비조마을이 그 곳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박제상의 부인을 치술신모(致述神母)라 하여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는데 지금의 박제상유적지가 그 사당터다. 조선시대에 이곳에 치산서원이 세워졌다고 하며, “증보문헌비고”에 그 유래가 전하는 신라가요 치술령곡도 박제상의 부인을 기리는 노래라고 한다.
부인과 함께 첫딸 아기(阿奇), 3녀 아경(阿慶)도 울다가 죽었지만 2녀 아영(阿榮)은 어린 동생 문량(文良)을 위해 살아남았다고 한다.
문량이 바로 방아타령으로 유명한 백결선생이며 아영은 미사흔의 아내가 되었다고 전 한다
(먼저 도착해 아이패드로 쎌카를 찍고서 20여분 기다리다보니 대방님이 도착된다)
18:55 치술령에서 긴 휴식을 접고 직진으로 가로질러 6분 남짓 내려서니 석게 상동못 약수터 갈림길이 자리하고 이어서 4분 남짓 더 진행하니 721m봉에 올라서게 된다.
표찰을 카메라에 담고서 30여분 더 바쁘게 진행하다보니 781.2m봉인 묵장산에 올라서게 돼 표찰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서 3분 더 진행하니 헬기장이 자리하고 이어서 철쭉나무 터널을 기다시피 빠져나오니 우측으로 석계자연농원으로 내려서는 삼거리갈림길을 대하게 된다.
이정표가 세워진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들어서 11분 남짓 가파르게 오르다보니 마루금이 우측으로 급하게 꺾이는 700.7m봉에 올라서게 된다.
도계는 여기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이어지지만 마루금은 우측으로 급하게 꺾여 서라벌CC로 내려서기에 뒤처진 대방님을 기다렸다가 진행할까 망설이다 어차피 여기서 대방님을 기다리다가는 더 늦어질 것 같아 골프장에 내려서 기다리기로 마음먹고 우측으로 급하게 꺾어 내려서다보니 급경사의 내리막길에 바위지대가 자리해 조심스럽게 바위지대를 돌아가며 통과해 28분 남짓 가파르게 내려서다보니 서라벌CC에 내려서게 된다.
골프장입구에 배낭을 내려놓고서 8분 남짓 기다리다보니 대방님이 도착된다.
(대방님이 늦어 셀카로 인증을 하고서 출발한다)
(지나온 700m봉을 뒤돌아보고)
(서라벌 CC)
20:03 이제 목적지인 사일고개까지는 2.0㎞의 거리로 40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하여 대방님이 지쳐있는 것 같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진행하고자 대방님에게 골프장을 가로질러가다가 좌측의 능선으로 오르자 하고서 골프장으로 진행하다보니 골프라운딩이 끝났을 것으로 추측했던 예상이 빗나가 어쩔 수 없이 그린을 피해서 진행하다보니 421.2m봉을 멀리 돌아서 오르게 되고 말았다.
묘지가 자리하는 421.2m봉에 힘들게 올라선 후 17분 남짓 길게 내려서다보니 아침에 대방님의 차를 세워두었던 사일고개에 내려서게 되었는데 게획했던 시간보다 2시간 남짓 더 소요된 느낌이다.
어쨌거나 안전하게 산행을 끝낸 것으로 위안을 삼고서 간단하게 행장을 정리한 후 대방님의 차편으로 소호분교로 이동해 내 차를 회수한 후 내일 산행 날머리인 토함산 아래 추령( 경북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 산257-6번지)으로 65㎞남짓 운전해 이동하게 되었다.
추령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정자를 찾아보았지만 경주지역이 국립공원지역이라서 어디 공원에서 취사를 할 수 없어 추령의 포장마차지역에 자리를 잡고서 하루 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늦게 도착한 관계로 바쁘게 압력밥솥으로 밥을 짓고, 동태찌개를 끓여 막걸리와 함께 저녁식사를 끝내고서 대방님은 평상에 설치한 텐트에서 난 차내에서 하루 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대방님이 잠자리에 들어간 이후 이것저것 정리하다보니 자정이 넘어간 00시30분쯤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3시10분에 일어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