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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훈장이 서프에 교육칼럼을 올린 지 1년이 되어갑니다.
그 짧은 기간 불어 닥친 거친 폭풍은 과수원의 탐스러운 과일들을 땅 바닥에 나뒹굴게 하고, 그 떨어진 과일을 호시탐탐 훔쳐 먹자고 백성을 꼬드기던 어둠의 세력들이 급기야 성실한 머슴을 쫒아 내고 자유롭게 난장판 치게 되었습니다. 이름하여 십자가를 빙자한 신자유민주주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종교가 그 어느 전쟁보다 더 많은 광기로 인류를 도탄에 빠뜨리고 부를 착취하고 더 많은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또, 리버럴이란 열 네살 먹은 소녀가 무대에서 라이브섹스쇼를 하고 있을때 그 소녀가 법정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지를 궁금해하는 성추행당이라 불리우는 신자유주의를 가장한 신보수주의일 뿐입니다. 부패한 그들은 주인인 국민의 집 안방에서 제정일치의 의식으로 새로운 바벨탑을 기원했습니다.
이제 남은 시간도 없고 역사의 왜곡을 견제할 실낱같은 마지막 기회만 남았습니다. 똑똑하거나 냉소적이어서 정치를 등한히 한 국민들은 반드시 잘못된 정치권력으로부터 굴욕을 당하게 되고, 부정부패에 관대한 사회를 만들어 국가경쟁력을 잃게 하여 국민경제를 황폐화시킬 것입니다.
북경대 리앙첸교수는 중국의 '동북공정은 북한처리 대비책략이며 만주역사는 과거사실의 문제가 아닌 미래이익의 문제'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또 땅도적때들이 백두대간의 지맥을 물길로 끊고 국민혈세를 강속에 쏟아 버리려하며 독도를 자기땅이라 우겨대는 일본에게 '지금은 곤란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하고, '과거사위원회를 폐지'시킨다며 'I will leave historical issues up to the judgment (of Japanese politicians)'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죽이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이제 소중한 주권을 팽개친 어리석음에 4.19혁명의 4월이 실패하여 한반도가 다시 강대국들이 각축하는 격전장의 전초기지가 될까 두렵습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백성은 반드시 어려움을 자초합니다.
부디 세계적 성웅 이순신 장군이 천신만고와 살신성인으로 지켜낸 배달민족의 자긍심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지난 해 외면당한 '尙有十二 盧心不死 !'를 다시 다듬어 올립니다. *************************************************************************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나는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장수를 몰랐다. 단지 해전에서 몇 번 이긴 그저그런 다른 조선장수 정도였을 거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가 겪은 그 한 번의 이순신,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는 달랐다. 나는 그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몇 일 몇 날을 먹을 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하는 장수로써 나의 직무를 다 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갔다." - 와카자카 야스하루(1544~1626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장수) -
茶를 좋아하고, 명예를 중시하고, 살생보다 덕을 베풀어 적을 자기수하로 만드는 사무라이의 전형이자, 2천의 군사로 5만이상의 조선군을 물리친 일본의명장 와카자카 후손들은 400년이 지난 지금도 이순신장군 탄생일만 되면 충렬사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집안을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컸다.
아시아 역사를 바꾼 이순신 이미지가 안 보이면 보기(v)에서 새로고침을 누르세요. ""하루는 어두운 밤, 눈이 몹시 내리고 그 바람이 칼날 같아서 살결을 찢는듯하니, 감히 밖으로 나서지 못하겠더라. 그러한데 그 속을 통제사 영감이 홀로 지나가니, 무슨 까닭으로 이 어둡고 추운 바람 속으로 거닐고 있는 걸까? 궁금하던 차에 한번 따라가 보니 통제사 영감이 가고 있던 곳은 바로 왜놈이 잡혀있는 데로 가는 거 아닌가. 더욱이 이상하여 더 밟아보니 통제사영감 손에는 한권의 책이 있더라. 밖에서 보니 통제사 영감은 그 왜군에게 명심보감 중 효행 편을 읽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 명나라 사신 "운덕"의 기록입니다.
황제폐하 이곳 조선에서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에게 명을 내리시어 조선국통제사 이순신을 요동으로 오라 하게 하소서.. 신(臣)이 본 이순신은 그 지략이 매우 뛰어날 뿐 만 아니라 그 성품과 또한 장수로 지녀야할 품덕을 고르 지닌바 만일 조선수군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께서 귀히 여기신다면 우리 명(明)국의 화근인 저 오랑케(훗날청國)를 견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저 오랑케의 땅 모두를 우리의 명(明)국으로 귀속시킬 수 있을 것이옵니다. - 명 황제 신종(만력제)이 조선에 파견된 진린 도독으로 부터 받은 서신 내용입니다.
△ 명량대첩 복원도 [ 호그니님의 '명량해전'이미지 크게 보기☜ ]
尙有十二 舜臣不死 !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세계 海戰史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던 성웅 이순신의 명량해전. 위 이미지는 독자 ‘호그니’님이 ‘불멸의 이순신’이란 제목으로 도깨비뉴스 제보게시판에 남겨준 걸작입니다. 고작 13척의 배로 333척에 달하는 왜 수군을 대파한 위대한 승전 ‘명량해전’을 컴퓨터 작업을 통해 복원했다고 합니다. ‘호그니‘님은 “명량해전에 관련된 자료는 많은 것 같지만, 정작 관련 그림은 인터넷에 거의 없는 것 같다”며 “이 점이 아쉬워 이미지를 만들게 됐다”고 했습니다. - 도깨비뉴스 리포터 ipapnamu@dkbnews.com
△ ‘호그니’님이 제보한 명량해전 관련 그림 - 영화 "300" 이 연상됩니다. 울돌목
1597년 9월 16일. 이순신 장군은 단 13척의 배를 이끌고 물살이 험하고 협소한 명량해협으로 왜 함대를 유인합니다. 이미 원균이 100여척을 칠천량 해전에서 잃어 남은 것이라곤 단 12척의 낡은 배와 전의를 상실한 100여 명의 수군들뿐. 명량해전을 앞두고 배 한 척이 추가되어 13척입니다. 조선 13척, 왜군 333척.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엄청난 숫적 열세에도 굴하지 않고, 무려 30여배의 적을 깨뜨립니다. “우리들이 지금 임금의 명령을 다 같이 받들었으니 의리상 지금 죽는 것이 마땅하다. 사태가 여기까지 이르렀는데 한번 죽음으로써 나라에 보답하는 것이 무엇이 그리 아까울 것인가,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놀랍게도 조선 수군의 전함은 단 한 척의 피해도 없었습니다. 우리 측의 전사자는 2명, 부상은 3명. 사상자는 모두 합해서 5명밖에 되지 않았고, 이에 비해 일본 측 피해는 격침된 배가 31척, 대부분의 배는 심한 파손을 입고 달아났습니다. ‘‘명량해전’ 에 대해 더 자세히 알기☜
충무공을 신처럼 모셨던 일본제국주의 해군제독 도고 헤이하치로에 의해 일본 해군 사령부가 있던 경남 진해에서 약 40km 떨어진 통영 충렬사에 가 주기적으로 진혼제를 지내는 것이 일본 해군의 중요 행사 중 하나였습니다. 러시아와의 전투를 앞두고 충무공영정에 승전을 기원하는 제례를 한 뒤, 이순신의 학익진 전법의 변형인 '정자 진법'을 사용해 러시아의 3분의 1 규모에도 불구하고 대승하여 일제해군영웅으로 추앙받게 된 도고는 러일해전승리 후, "이순신 장군에 비하면 나는 일개 하사관에 불과하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나의 함대를 가지고 있었다면 세계의 바다를 제패했을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러.일해전 이후, 한반도는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합니다. 또 영국학자 발라드는 "영국 사람으로서 넬슨[프랑스 함대를 격파한 트라팔가 해전의 제독]과 견줄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긴 항상 어렵다. 그러나 그렇게 인정될만한 인물이 있다면, 그 인물은 바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위대한 동양의 해군 사령관 이순신 장군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불멸의 이순신 OST 역사스페셜[명랑대첩의 비밀] 에서 처음에 소개하는 '조선역해전도'(朝鮮役海戰圖)는 2차대전 중, 일본 해군성 의뢰로 역사전문가이자 대화공인 오오타텐요오[太田天洋 :1884-1946]가 우리해안에 남아있던 수군전선과 군장비와 사료에 의한 사실적 고증에 의해, 세밀한 전통적인 일본화 기법으로 그린 100호 크기 그림입니다. 공영방송 역사프로그램에서 인용한 이 자료를 신빙성 없는 자료라고 폄하하는 x들은 친일매국노xx들로 생각됩니다. 그린 의도는 조선 수군 원균을 크게 물리친 漆川梁海戰승리의 선전화로 보여지는데, 오오타텐요오의 착오인지, 실제로 명랑해전 자료와 고증을 참고하다 그린 것인지, 칠전량에 출전한 적도 없고, 명랑해전에서 패퇴한 '구루지마수군의 깃발들'과 조선 수군의 '李씨 깃발'만 보입니다. 朝鮮役海戰圖 이 그림은 일제시대 일본해군의 장교 집합소[수교사]에 걸려있었던 것인데, 2차대전 패전 후, 야마모토켄베에 대장의 초상화와 함께 미군의 압수를 피한 뒤, 일본 도쿄 신주쿠의 아오키라는 화랑에 소장되게 된 그림입니다. 아오키씨는 "이 그림은 이순신 장군이 실각한 뒤에 다시 복직하고 나서 싸웠던 1597년 무렵의 명량 해전을 그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림의 일본 수군 깃발들이 명량 해전에 참가했던 구루시마 수군의 깃발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림을 제보한 '뉴스보이'님과 다른 곳에서 이를 본 네티즌들은 상세한 그림에 감탄하며 무엇보다 조선 수군의 복장과 장비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동안 봐왔던 영화와 드라마의 선입견 탓인지 조선 수군이라면 벙거지 쓴 포졸 정도의 빈약한 군장의 군졸을 연상해왔는데요. 정교하게 그린 그림을 보면 그간 품어왔던 이러한 선입견이 깨지는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림에 나온 조선수군 대부분은 두정갑, 갑주, 투구등 완전 군장에 화포와 쇠뇌, 수류탄 같은 각종 중화기들로 그야말로 '중무장'한 병력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일본군의 눈에는 조선수군은 현재의 드라마에 비춰지는 것처럼 결코 어설픈 '포졸틱'한 이미지가 아니라 '고도로 무장한 정예병력'이었다는 거지요. 이를 보면 충무공이 탄 기함이 홀로 신이 들린 듯 수십 척의 왜 군선을 깨부셨다는 사료의 기록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는 것과, 육지에서 주름잡던 일본군조차 왜 "이순신의 조선수군"이라는 말만 들으면 오금을 저리며 도망갈 궁리만을 했는지 그 이유가 짐작됩니다. 더불어 지휘관의 뛰어난 '전술'과 실제 상대를 압도하는 무기체계 같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절묘한 배합만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독도문제로 촉발되어 노 대통령이 강경대처를 천명한 현재의 '한-일 대결'에도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합니다. 출처는 ‘디씨밀갤’입니다. 그림의 평에 대해서는 밀갤의 다른 분들 덧글을 몇 자 옮겼습니다. -뉴스보이- ▽ 솔직히 칼과 창과 화살과 총알이 난무 하는 판국에 어찌 포졸복하고 사또복장 하고 싸우나? [그림 설명은 디시인사이드 밀리터리 갤러리의 ' 헑 '님이 적어놓은 것입니다] 전체적인 구도는 왜군의 세키부네가 조선의 판옥선 한 척을 향해 달라붙은 모습 되겠소. 왜군 전선, 크기로 보아 세키부네 정도로 보이오만, 대략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서 분간이 잘 안 되더이다. 거대한 판옥선과 그에 달려드는 세키부네의 모습, 판옥선 위에 옹기종기 모인 조선수군의 확대된 모습. 오, 충격! 사극은 물론이요, 천자총통을 쏠 준비를 하는 조선수군. 붉은색 통을 던질 준비를 하는 붉은 갑주를 입은 조선수병. 조선수군 판옥선의 화력을 실감하게 해주는 무기들 중 하나. 붉은 상자의 정체는 질려포통 이었던 듯하오. 질려포통은 일종의 수류탄과 같은 것이며, 왜군 진영- 뎃포 아시가루들이 조선수군을 향해 한 명은 겨누고 공성 병기? 잘은 모르겠으나 방패를 든 조선수군을 향해서 찌르는 듯한 모습이오. 활을 쏘며 지원하는 왜군 궁수들. 조선 수군 배를 향해 올라라? 배에 오른 도세이 구소쿠를 입은 꽤나 잘 나가는 젊은 사무라이가 배에 오른 아시가루. 대비하고 있는 팽배수들의 표정이 인상 깊소. 판옥선 위의 조선수군들. 대부분이 두정갑으로 중무장하고 있소. 휘날리는 조선군의 깃발. '이?' 덕수 李씨 할 때 그 李자? 왜검을 빼들고 갑판위로 올라와 달려드는 왜군과 정신없이 싸우는 판옥선 위의 조선수군. 올라온 줄사다리를 치우느라 허겁지겁, 맹선? 아니면 협선? 이런 함선에 탑승한 수군들도 모두 완전무장하고 있소. ******************************************************************************** 한국 사람은 이순신을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 징키스칸을 능가 하는 명장...
적국 일본인이 본 이순신 장군!
몇 달 전, 일본 동경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사람입니다. 일본에서는 4년 정도 있었고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에서 식당, 유흥업소 서빙 등등 안해본 게 없습니다. 한번은 일식당에서 서빙을 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전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난생 처음으로 민망하고 부끄럽고 죄스럽기까지 했던 경험을 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겪었던 그때의 경험을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흔히 일본인들을 가리켜 족보도 전통도 없는 민족이라 말합니다. 일본이 오늘날 경제대국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그저 남의 것을 잘 베끼는 능력 때문으로 폄하해 버리기도 합니다.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이 훌륭하든 보잘 것이 없든 그것을 받들고 존중하고 계승해 나가려고 하는 자세만큼은 세계 제일의 수준이라고 봅니다. 일본의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거리들을 지나다 보면 조상으로부터 3대, 5대, 심지어는 10대에 이르기까지 가업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알바를 했던 일식당 사장님(주방장) 역시 3대째 식당을 경영해오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원래는 사장의 형님이 가업을 물려받아 식당을 경영했는데 12년 전 형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게 되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가업을 잇게 되었답니다. 우리는 식당을 명퇴를 당했거나 할 것이 없을 경우, "만만한 게 음식장사"라는 생각에서 식당을 하거나 가방끈이 짧은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죠. 저도 일본에 가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장은 명문 게이오대 출신으로 글로벌 기업 소니사의 일원으로서 남부러울 게 없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외모는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일본인의 모습(작고 왜소하며 안경을 쓰고 뻐드럭니로 인해 입이 튀어나온... 절대 그 분과 일본인을 비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님)이었죠. 저도 사장의 이력을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부터 말씀드리고자 하는 하나의 사건을 통해서 알게 됐죠. 열 달 좀 안됐네요. 식당 문을 닫을 무렵이었는데 사장이 불쑥 역사에 관심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그것도 임진왜란에 대해서요. 그렇다고 했죠. 역사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전 관심 정도가 아니라 많이 안다고 자부했던 쪽이었습니다. 특히 전쟁사, 영웅전기 같은 책들을 많이 봤었고, 그래서 사장의 물음에 대해 속으로는 "일본의 역사도 아마 당신보다 내가 더 많이 알 걸"이라고 생각 했었고요. 내가 역사에 관심이 있다고 하자 사장이 다짜고짜 "이순신에 대해서 잘 아느냐"고 하더군요. 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우쭐해지는 게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저는 사장이 어디서 이순신 이야기를 듣고 자세히 알고 싶어서 그러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얼마든지 대답해 줄 용의가 있었죠. 밤이 새도록 말이죠. 그래서 그의 다음 질문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질문은 뜻밖의 것이었습니다. "이순신이 구사한 해전술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거북선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느냐, 복원은 언제 되느냐"고 하더군요. 질문을 받고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핵심 해전술?" "거북선의 복원?" 뭐 하나 제대로 답해 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위의 두 가지 질문 외에도 바로 이어서 몇 가지가 더 있었던 것 같았는데 너무 당황했던 나머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자, 여러분이 제 입장이었다고 합시다.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답변을 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또 그 답변이 정답이고 오답이고를 떠나서 아마 대부분의 분들은 저처럼 당황해 하실 겁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전술에 대해서야 누구라도 학익진이 어쩌고저쩌고 이야기합니다만, 그 전술의 원리, 그리고 그 전술이 해전장별로 어떻게 응용되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설명하실 수 있는 분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거북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저는 거북선이 2층인지 3층인지, 머리가 유황을 뿜는 굴뚝용인지 대포를 쏘는 포탑용인지 선수 하단부체 충돌용 돌기가 있는지 없는지 몰랐습니다. 저는 그날의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순신에 대해서라면 이를 갈며 증오심과 적개심을 드러내리라고 생각했던 일본인을 통해서 제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을 알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사장은 나에게서 자신이 원했던 것을 얻기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해 주더군요. "이순신은 중세기 세계 최강의 군력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군을 꺽었다. 만약 이순신이 없었다면 일본은 그 군력으로 중국은 물론 아랍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순신의 정신과 해전술은 우리 근세 일본해군의 동력이 되었다. 생각해 보라. 임진왜란은 조선과 중국 대 일본의 싸움이 아니었다. 이순신과 일본의 전쟁이었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이순신은 징키스칸을 능가는 인물이다." 사장은 어렸을 적부터 일본 전국시대를 풍미한 영웅전기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고 하더군요(사실 일본사람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특히 전국시대 3대영웅이라고 일컬어지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인들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인물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의 우익과 성인남자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일본이 개국한 이후, 처음으로 섬을 벗어나 대륙으로 눈을 돌린 인물이기 때문이랍니다. 아울러 평민출신으로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점도 일본인들에게 영향을 줬겠죠. 사장은 대학시절 이순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바다의 맹장들이 왜 하나같이 맥을 추지 못하고 연거푸 패해야 했는지, 천하의 용장들이 총출동한 전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군은 조선에서 철수해야 했는지.... 일본 자위대는 물론 정계의 정점으로 추앙받고 있는 도고 헤이하치로는 무엇 때문에 이순신을 칭송했는지.... 말이죠. 관련 서적, 논문 같은 것도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많다고 하더군요. 일본인의 시각으로는 아무래도 연구에 한계가 있지 않겠냐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한국인은 세계적인 영웅을 배출한 민족이면서도 그 가치를 제대로 구현해 내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만약 이순신 같은 인물이 일본에서 배출되었다면 징키즈칸 못지않은 세계적인 인물로 부각되었을 거라면서.... 그날 숙소에 돌아온 저는 마치 무엇에 홀린 것 마냥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죠. 그리고는 서울 형님에게 전화를 걸어 이순신 장군에 관한 책을 좀 사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형님이 보내주신 몇 권의 책이 왔습니다. 칼의 노래...? 소설류에서부터 해전에 대해 기술해 놓은 전문 서적류까지... 모두 읽었습니다. 그런데 공허해 지더군요. 너무 막연했고 황당했으며 거기서 거기였습니다. 또 이미 알고 있던 얘기들이었고요.
그리고 한 달 전, <이순신과 임진왜란 이순신역사연구회 편 전4권 48,000 비봉출판사>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울면서 봤습니다. 새로운 사실들, 그리고 지금껏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얘기들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됐습니다. 서문을 보니 작가들은 이 책을 쓰기 위해 무려 20년이 넘게 집필에 전념해 왔다고 하더군요. 어떤 분은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 두면서 말입니다. 또 서문에는 사카모토 사장이 제게 물었던 이순신의 해전술의 원리와 거북선의 실체를 밝혀주는 글이 들어 있었습니다. 전율을 느끼며 책장을 넘기고 넘겼죠. 거짓말 않고 꼬박 밤을 새워 1권의 반을 읽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까지 나는 이순신과 임진왜란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도대체 제도권 교육에서 우리가 배웠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말로는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문화민족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교육이 문화민족의 일원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던 것일까요? 대한민국의 해군과 군사학회는 그동안 무엇을 했던 것일까요? 제가 지금까지 배웠던 교육이 [이순신과 임진왜란]보다도 충실하지 못했다면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이순신과 임진왜란> 1권 서문의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이것이 많은 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군요.
세계사에 지각변동을 가져온 충무공의 해전원리 20세기 일본 해군은 직충(直衝,ramming) 등을 오역하지 않았기에 충무공의 '거북선+학익진의 해전원리'를 제대로 해독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일본은 20세기 초 세계사의 지각변동을 가져온 청.일해전과 러.일해전에서 승리했고, 한반도는 일본에 합방되었으며, 청나라와 러시아는 차례로 문을 닫는다. 그 후 일본 해군의 학익진(丁자진) 해전원리를 승계한 영국 해군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해군을 분쇄했고, 2차 세계대전에서는 미국 해군이 레이테만(스리가오)에서 학익진(T자진)으로 일본의 태평양 함대를 궤멸시켰다. 또, 학익진 원리에서 2차대전의 미국해군의 도쿄개구리뜀뛰기 상륙작전과 란체스타 공군전술이 개발되었다. 그런데 기존의 서적에서는 세계 해군들의 학익진 연구사가 빠져 있기에 지금까지 우리의 이순신 연구는 우물 안 수준에 머물러 있음이다. [그림1] [그림2] 두 개의 그림이 재미 기업인 윤원형씨에 의해 2006년 미국 뉴욕에서 공개됐다. 기법으로 보아 역시 漆川梁海戰圖를 그린 오오타텐요오 작품으로 추정한다. 이 그림은 그동안 학계에서 논란이 되어 온 거북선 원형에 대한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가로 140cm, 세로 239cm의 크기로 2장의 비단 천에 그려진 이 그림에는 거북선 모양의 배 위에서 회의 중인 장수들과 소형 선박에서 무기를 점검하는 병사들, 물건을 나르는 민간인들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특히 거북선 모양의 배는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 전서’에 대략적인 스케치 형태로 그려져 있는 2층 구조가 아니라 3층 구조로 돼 있어 눈길을 끈다. 또 [그림1]왼쪽 하단에 육안 판독이 불가능하긴 하지만 바랜 서체로 거북선 제원이 기록되어 있어 주목된다. 학계는 적외선 촬영을 통해 이 글씨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윤씨는 “평양 숭실학교 교장을 역임한 미국인 선교사 데이비드 마우리의 손자며느리인 마우리 여사로부터 지난해 1월 구입했다”면서 “1867년 일본 니가타(新潟)현 인근의 나가오카 성벽을 허물 때 발견된 그림이라는 설명을 마우리 여사로부터 들었다”며 “조지아大에서 탄소동위원소 방식으로 연대를 측정한 결과 300~350년 전 제작된 그림으로 추정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최고 1640년대의 그림으로 추정이 가능하며 이 경우 임진왜란 후 거북선을 비롯한 당시 군선과 수군 장병의 모습을 실제로 보고 그린 그림일 가능성이 크다. 윤씨는 “그림을 그릴 당시에 사용했던 석채(광물성 물감)가 용머리 방패 깃발 등 일부분에 남아 있고, 나머지 부분은 일본에 건너간 뒤 덧칠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바다와 수군의 일본사 역해전도에 의한 거북선 복원 랜덤하우스 출판 '거북선'13,500 원 에 실린 거북선 내부도
혁명과 죽음에 대한 논란 이순신의 혁명~! 우리들은 왜 이순신은 혁명을 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 하였을까?하는 의구심을 품어 보았다. 수많은 공로에도 불구하고 조선조정으로부터의 의심과 질투를 받은 그는 단 한 번만이라도 혁명이라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을까? 우리는 만일 이순신장군이 혁명을 일으켰다면 과연 성공하였을까? 하는 부분부터 토론을 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12명의 학자 모두 조선은 멸(滅)하고 새로운 이순신의 나라가 세워졌을 거라고 의견을 모았다. 이순신장군에겐 2만여명의 수군과 약 5천여명의 의병. 그리고 전라도와 충청이남. 경상도부근에 이순신을 따르는 군(軍)의 수는 1만여명, 총 3만 5천여명에 다다르고 이 군대에 대응할 조선의 군대는 없었다. 더욱, 이순신에겐 두 가지의 또 다른 무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민심과 명분이었다. 그래서, 임진왜란 파병과 청의 견제로 국력이 약화된 명은, 강력한 이순신군대와의 충돌을 피하고 청을 견제하기 위해, 파견장수 유정에게 사신을 보내 이순신 장군의 손을 들어 주었을 것이다. 이는 "폐하 이 전란이 끝나면 즉시 조선의 수군통제사 이순신으로 하여금 요동으로 부르소서. 그로 하여금 북의 오랑케를 견제토록 하소서.."라고 명의 장수 진린이 황제에게 올린 문록(文錄)을 보면 알 수 있다. 전란이 끝나면 이순신장군의 군대를 요동으로 이동시키는 시나리오(論議)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순신장군의 혁명으로 궁지에 몰린 선조와 조정대신(이순신의 반대파세력)들이 일본과 손을 잡는다면 과연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러한 진퇴유곡을 피하고 조선을 구하기 위해 장군은 치밀하게 마지막 전투에서 살신성인을 택한 것 아닐까? - 이케다 하야토 교수의 [아시아 역사를 바꾼 이순신-자료미확인이나 그릇된 판단은 아니라 봅니다]중, 14부 '이순신의 혁명과 죽음'중에서
최근 새로이 밝혀진 내용 李舜臣(1545~ 1598)장군의 국보 제76호 '亂中日記'의 친필草稿本과 함께 전해 내려 온, 현재 전해지지 않는 을미년 일기 초고본 등 당시의 원자료들을 보고 필사한 것이 분명한 17세기말 충무공 관련 초서필사본 [충무공遺事]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32일 간의 일기 내용이 새로이 밝혀졌다. 지난 2004년 '난중일기' 원본 13만자(字) 전편(全篇)을 최초로 DB(데이터베이스)화했던 노승석(盧承奭)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대우교수가 2006년부터 문화재청의 의뢰로 현충사에 소장된 고서 '忠武公遺事'를 판독·번역한 결과 밝힌 내용은 ▲가족에 대한 애틋한 심정 동영상 : 난중일기 '빠진 32일치' 처음으로 내용 밝혀져 2008.4.2 너무나 개인적이고 민감한 기록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80402033405003&cp=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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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조 |
■ 명량해전
명량해전 1597년(선조 30년)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12척의 전선으로 적함대 133척을 맞아 거둔 대첩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조선 조정은 일본 첩자 요시라의 이간질로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경질하고 원균을 기용한다. 1597년 8월 조선 조정은 권율 도원수 밑에 있던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시킨다. 그에게 남은 전선은 단 12척 뿐, 그러나 12척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
■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
전투용 함선에 대량의 화포를 싣고 근대적인 함대전을 벌인 것은 이순신 장군이 최초다. 선조의 선왕인 중종 대에 완성을 본 판옥선 역시 장군의 전술에 큰 기여를 했다. 일단 이 배는 용골이 없다. 또한 왜구들의 배에 비해 그 높이가 매우 높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기동성이다. 전쟁의 모든 시기에 걸쳐, 조선 해군과 일본 해군의 병력차는 역전된 적이 없다. 화력과 기동력의 우위, 반면에 병력의 열세. 1592년 7월 8일. 이순신은 포구 안쪽에 웅크려 해전에 응하지 않는 일본해군을 일본 해군의 전투는 주로 적함에 접근하여 적군과 칼을 맞대며 싸우는 단병접전의 형태였는데, 적선에도 화포가 있긴 하지만 서로 뭉쳐 있어 공격 전면이 작을 뿐더러 포의 절대수도 적다. 일본 해군 70여척 중 66척 완파. 이후 일본 해군은 판옥선보다 큰 여러 함선을 건조하기도 하고 |
첫댓글 ~~거북선에 누가 타고 있었을까?~?~~단순히 그냥 수군?~?~거북선 1대나 2대로 왜선들의 포화를 상대했다?~?~착각하지 마시길~~이순신은 진정한 전술가였따~~
예~ 대단한 경영인이지요. 전투외의 보급을 위한 농사부터 병력공급까지 정말 불가능한 상황이었는데 아주 치밀했지요.
무어라 새삼 말하겠습니까.그분의 끝없는 충의와 인의를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는 자들 중 가증스럽게도 이분의 정신을 욕되게 하는 소위 사외지도층 종자들이 널린 현실을.박정희라는 자가 이분을 가장 많이 판게 기억나구요,친일파 후손들이 특히 개거품을 물면서 추앙하는 기사를 오래전 좃선에서 읽은 기억도 나네요.철면피들의 후안무취를 후손들에게 절대로 전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오롯이 전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겠죠.
충무공이 안 계셨다면 이 나라는 일찍 문화도 없어졌을 것입니다. 일본인들도 존경하니 친일매국세력도 존경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 -